부정을 긍정으로 받을 때 진정한 감사가 나온다 (욥1:21-22,합3:17-19,시126:5-6)
본문
오늘은 추수 감사절이다. 올 한 해에도 변함없이 은혜 베푸신 하나님 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려 드리자. 건강도 주시고, 우리의 하는 일 들 위에도 같이 해주셔서 특별한 어려움 없이 잘 지낼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자. 무엇보다도 믿음의 주요, 또 온존케 하시는 이이신 주님을 바라보며 푯대를 향하여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달려 갈 수 있도록 우리의 믿음을 지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자. 출애굽기 23:16절에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고 했다. 추수 감사절은 구약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 이 한 해의 농사를 마치고, 가을 추수를 하여 곡식을 창고에 넣고, 풍년 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절기를 지켰던 "수장절"이 바로 지금의 추수 감사절이다. 신명기 16:13절에 "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수장한 후 에 칠일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라고 했다. 이 수장절을 다른 이름으로 초막절이라고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추수 감사절을 칠일동안 지켰는데, 집을 비어두고 들판으로 나가 초막 을 짓고 풍성한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리는 절기를 지 켰다. 이것은 풍성한 기쁨을 주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종되었던 애굽 에서 인도하여 내신 바로 그 하나님이심을 일깨워 주시기 위함이었다. 곧 지난날을 잊지 말라는 뜻이다. 우리는 가끔 오늘의 현실만을 바라보고 지난날을 잊어버릴 때가 많다. 그래서 감사해야 할 일에도 감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날의 저들은 애굽에 종 되었던 자들이다. 종은 자기의 것이 없는 것이다. 곧 저들의 지난날은 가진 것이 하나 없는 무일푼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 라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날을 잊고 오늘의 현실만을 바라보기에 감사하지 못할 때 가 있다. 오늘의 현실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지난날을 생각하고 감사하라는 것이다. 오늘의 현실만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남들과 비교하는 상대적 부족에서 오는 불만과 불평으로 감사를 하지 못한다. 누구는 저렇 게도 좋고, 잘 하고, 잘 사는데 나는 왜 이 모양인가. 그래서 감사를 못하게 된다. 진정한 감사는 부정을 긍정으로 받을 때 진정한 감사가 나온다고 본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초막을 짓고, 추수 감사의 수장절을 지키게 하신 것은 바로 애굽에 종 되었던 지난날을 돌이 켜보아 광야를 통과하며 지은 초막을 기억하게 하시고, 내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던, 종 되었던 지난날을 생각하게 하신 것이다. 그래서 풍년이 와도 감사하고, 흉년이 와도 감사하게 하신 것이다.
곡식의 소출이 없고, 한 해의 농사가 헛일이 되어도, 종 되었던 자신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가나안에 이르게 하신 하나님, 약속의 땅을 주시어 나라를 이루게 하신 하나님, 종이 아닌 자유인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리게 하신 것이다. 진정한 감사는 부정을 긍정으로 받을 때 진정한 감사가 나온다 그렇다. 흉년이 와도, 사업이 실패하여도, 내 하는 일이 어려움에 쳐 하 였어도, 손해가 되어도, 실패와 낭패뿐인 오늘의 현실이라도 이러한 오늘의 현실이 부정적이라도 이 부정이 긍정으로 나에게 받아 드려질 때, 그때 나의 입에서 진정한 감사가 나온다. 긍정을 긍정으로 받아들이고 하는 감사는 누구나가 다 하는 감사이다. 풍년이 들어 감사하고, 사업이 잘 되어 감사하고, 내 하는 일이 형통 하여 감사하고, 이익이 생겨서 감사하고, 성공을 거두어 감사하는 일은 누구나가 다 할 수 있는 감사이다. 긍정을 긍정으로 받아들이는 감사는 누구나가 다 할 수 있는 감사이다. 부정을 부정으로 받아들이고 불평과 원망을 하는 것도 누구나가 다 할 수 있는 일이다. 흉년이 들어 하늘을 원망하고, 사업이 실패하여 남 을, 나라를, 자신을 원망하고, 내 하는 일 잘 안되어 세상을 원망하는 일은 누구나가 다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부정을 긍정으로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다. 누구나가 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부정을 긍정으로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것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요, 누구나 다 할 수 없는 감사 이기에 이것이 진정한 감사가 된다. 중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나이 많은 할머니가 병으로 다 죽어 가 고 있었다. 아들 내외가 보기 드문 효자이어서 할머니가 원하는 것은 다 했다. 좋다는 약은 다 먹었고, 유명하다는 점쟁이, 무당, 스님을 부르 기도 했다. 그러나 병세는 좋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악화되어 갔고, 희망이 없게 되었다. 그때 그 집 며느리가 양코배기 선교사 예수쟁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예수라면 질색이던 할머니도 자신 앞에 다가오는 죽음을 알고 며느리의 말에 못 이기듯 허락을 하였다. 선교사가 찾아와서 복음을 전하고 "할머님 하나님의 뜻이면 반드시 할머님의 병을 낫게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할머님, 이것을 믿습 니까"라고 물으니, 믿으니 어서 빨리 기도해 달라시는 할머님이다. 그러나 선교사는 곧바로 기도하지 않고, "할머님,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모르는데, 할머님이 돌아가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할머님, 믿습니 까"라고 묻자 "예수쟁이가 날 보고 죽어라 한다" 하시는 불호령에 선 교사는 도망치듯 그 집을 나왔다. 며칠이 지나 그 집 며느리가 다시 선교사를 찾아와 할머님이 찾으신 다고 해서 들렀을 때, 그 할머님은 "내가 죽는 것도 하나님의 뜻으로 믿겠으니 기도해 달라"고 했다. 선교사님이 할머니의 손을 잡고 기도하는 중에 그 할머님은 운명하셨다고 한다. 그 할머니의 얼굴이 평소에 볼 수 없는 평온함이 넘쳐 흘렀다고 한다. 죽는 것도 하나님의 뜻으로 믿겠다. 다시 말해서 부정을 긍정으로 받 아들이겠다고 했을 때, 하나님은 그 할머님의 영혼을 데려 가셨다. 병고 침으로 얼마간 더 사는 감사보다 더 큰 감사를 드렸을 것이다. 이렇게 부정을 긍정으로 받아들일 때, 거기에 진정한 감사가 있다. 부 정을 긍정으로 받아들일 때, 거기에 아무나 할 수 없는 감사가 있다. 부 정을 긍정으로 받아들일 때, 거기에 참으로 진실된 신앙고백이 있다. 부정이 긍정으로 바뀔 때 진정한 감사가 나온다 성경 속에 나타 난 이런 진정한 감사를 하나님께 돌리는 사람들을 살펴 보고져 한다.
1.욥의 감사 욥기 1:21-22절에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 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 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 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고 했다. 욥은 우리 성도들에게 고난의 대명사로 알려지리만큼 고난을 감당한 사람이다. 그것도 자신의 죄로 인한 고난도 아니고, 자신의 잘못으로 인 한 고난도 아니다. 하나님을 진실되게 믿는다는 이유로 실로 어처구니 없는 고난을 당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된 욥의 삶의 모습을 살펴 보면, 욥기1:1절에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고 했다. 욥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우스 땅의 족장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순 전하고 정직하였다. 하나님을 경외하였다. 악에서 떠난 자였다. 욥기 1:5절에 "그 잔치 날이 지나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케 하 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 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사가 항상 이러하였더라"고 했다. 욥의 자녀는 10남매로 생일이 되면 10남매가 한 집에 모여 잔치를 벌 였다. 잔치 날이 지나면 "혹시 내 아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 을 배반하였을까." 하여, 자녀들을 불러다가 번제를 드려 성결케 하였다. "욥의 행사가 항상 이러하였더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를 염려하고 있다. 참으로 순전하고 정직한 마음을 가진 자다운 삶의 자세이다. 자식들의 죄된 행동에도 무관심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욥의 관심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할 까"이다. 욥기 1:3절에 "그 소유물은 양이 칠천이요 약대가 삼천이요 소가 오 백 겨리요 암 나귀가 오백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고 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진실되게 살아가는 욥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 고, 동방의 거부로 물질적인 축복도 듬뿍 받았다. 양이 칠천, 약대가 삼 천, 소가 오백 겨리, 암 나귀가 오백, 종도 많이 있었다고 한다. 이 사람 욥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고 했다. 이런 욥에게 어느날 갑자기 큰 환란과 시련이 닥쳐왔다. 사탄의 시샘 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허락으로 사탄의 장난이 시작된 것이다.
머리털 까지 세신바(마10:30) 된 하나님의 자녀를 사탄이 마음대로 해치지 못한다. 맏아들의 집에서 잔치를 벌리고 있던 날, 스바 사람들이 쳐들어 와서 종들을 죽이고 소와 나귀를 빼앗아 갔다.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양과 종을 불살라 버렸다. 갈대아인들이 종을 죽이고 약대를 빼앗아 갔다. 대 풍이 몰아쳐서 집이 무너져 잔치하던 10남매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하는 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꼬리를 물고 들려 왔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스바 사람이나 갈대아 사람의 침략은 그래도 이해가 가지만, 하늘에서 불이 내리고 대풍에 집이 무너지다 니. 그 집에 10남매가 한꺼번에 깔려 죽다니. 이것은 분명 하나님의 치심인데. 하나님 앞에서 항상 행하였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진실되게 살아왔는데. 왜 이렇게 모질게 치실까. 10남매를 한꺼번에 라니. 차라리 나를 치실 일지 10남매라니. 누구나가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할 만한 처지이다. 하늘에서 불이 내 리고 대풍이 몰아쳐 불태우고, 죽이니 하나님 외에 누구를 생각하겠는가 그렇다. 욥도 하나님을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범죄치 않았고, 어 리석게 하나님을 원망치 아니하였다고 했다. 욥기 1:20-21절에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 드려 경배하며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했다. 자식과 재물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그 비통하고 괴로운 상황 속에서 도, 하나님이 치신 것이 분명한 그런 상황 속에서도 "어리석게 하나님 을 원망하지 아니하는 그 마음 어디에서 왔을까요 욥도 분명히 하나님이 치셨다고 하나님을 생각했다. 사탄의 시샘으로 당하는 고난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다. 그러나 어리석게 하나님을 원 망치 않고 오히려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하고 하나님께 감사 찬양을 돌리고 있다. 이런 감사 찬양이 진정한 감사 찬양이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감사 찬 양이 아니다. 누구나 드릴 수 있는 감사 찬양이 아니다. 부정을 긍정으 로 받아 드릴 수 있는 자만이 드릴 수 있는 감사 찬양이다. 욥기 1:21절에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 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 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했다. 욥은 오늘에 처한 그 혹독한 현실만을 바라본 자가 아니었다. 이스라 엘 백성들에게 초막을 지어 들판으로 나가 추수 감사의 수장절을 지키 라고 하셨던 그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는 자였다. 그 하나님의 말씀 대로 자신의 지난날을 뒤돌아 본다. 어머니 배속에서 내 빨가숭이로 빈손 들고 나왔으니, 내 또한 빈손 들고 돌아가리라, 내 가진 모든 부귀와 영화, 모든 물질, 자식들까지도 다 하나님이 주신 것 이제 하나님이 가져 가시니 무어라 할 수 있겠는가. 이제까지 축복을 누리게 하셨으니, 감사하고 찬양할 일이로다. 동방의 거부라던 그 많던 재물도, 10남매의 자식까지도 다 죽는 참 으로 낭패와 실망뿐이요, 환란과 고통뿐이다. 그러나 욥은 이런 부정적 현실을 긍정으로 받아 들였다. 지난날 모태에서 태어나는 자신을 회상 하며 오늘의 현실을 긍정으로 받아 들였다. 그때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감사가 진정한 감사이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 이다! 부정을 긍정으로 받을 때 진정한 감사가 나온다 바로 욥이 여호와 하나님께 드린 감사이다. 누구나가 드릴 수 있는 감사가 아니다. 아 무나 할 수 있는 감사가 아니다. 부정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자만이 할 수 있는 감사이다.
2.하바국의 감사 하바국 3:17-19절에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 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 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 로다 이 노래는 영장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고 했다. 이 말씀은 하바국 선지자의 기도 중에 나오는 감사로 구원의 하나님 을 인하여 오는 즐거움과 기쁨을 찬양하고 있다. 범죄한 유다 백성의 멸망 중에서도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구원의 은총을 노 래하고 있다. 하바국 1:4절에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 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공의가 굽게 행함이니이다"라 고 했다. 당시의 유다 백성들은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굽게 행하여 져서 겁 탈과 강포, 간악과 패역이 판을 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죄악을 심판하 시려고 갈대아 사람을 들어 치시겠다고 했다. 하바국 1:13절에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 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라고 했다. 유다 백성들이 지은 죄로 징벌을 당하는 것은 마땅하지만 하필이면 왜 강포하고, 패역하고, 잔인무도한 갈대아 사람인가 하나님께 호소하 고 있는 하바국 선지자이다.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킬 수 있느냐고 호소하고 있는 하바국 선지자이다(합1:13). 하바국 2:4절에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했다. 갈대아인들의 교만함과 그 마음의 정직하지 못함을 인하여 그들도 심 판한다는 것이다. 유다의 범죄로 징치하기 위한 도구로 갈대아를 사용 하나 저들은 자신이 심판주인 것처럼, 욕심을 음부처럼 넓히며 사망 같 아서 족할 줄 모르고(합2:5), 열국을 살육하고 있다(1:17). 그러나 이러한 심판 속에서도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것이다. 유다 백성들의 죄악, 하나님의 징치하시는 심판, 잔학무도한 갈 대아 사람들의 살육, 그 속에서도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소망을 주셨다. 그래서 하바국 선지자는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라고 감사와 찬양을 하나님 께 돌리고 있다. 하바국 3:17절에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 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라고 했다. 하바국 선지자가 처한 오늘의 현실은 실망과 낭패뿐인 부정이다. 무 화과나무에는 무화과 열매가 없다. 포도나무에는 포도 열매가 없다. 감 람나무에는 감람 열매가 없다. 밭에는 식물이 없다. 우리에는 양이 없다. 외양간에 소가 없다. 모두가 없는 것뿐이다. 모두가 부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하늘을 원망 하는 것은 누구나가 다 할 수 있다. 이 상황에서 감사는 아무나 못한다. 아무나 못하는 감사 이런 감사가 바로 진정한 감사이다. 이런 진정한 감사는 부정을 긍정으로 받아들일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바로 "비록 이 없을지라도, 나는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감사 하리라"고 했다. 비록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이 눈에는 안보이지만 분명히 살아 계신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 계시기에 그분에게 감사할 수 있었던 하바국 선지자이다.
3.울며 씨뿌리는 자의 감사 시편126:5-6절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 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 아 오리로다"고 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징치하심으로 잔혹한 갈대아 사람들 곧 바벨론의 침공으로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사로잡혀 간 바벨 론 땅에서 돌아오는 기쁨을 감사 드리는 찬양입니다. 저 밭에 농부 나가 씨를 뿌린다. 울며 씨를 뿌린다고 한다. 왜 일 까 농부에게 있어서 "씨를 뿌림"은 소망을 심는 일이다. 그 소망스러 운 일을 하며 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고 있을까 그 이유는 바로 바벨론 땅에서 종으로서 씨를 뿌리고 있기 때문이다. 종은 자기의 것이 없는 사람이다. 자기의 소망을 위해 씨를 뿌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회초리로 등가죽을 내리치며 불호령을 하고 있는 바벨 론 사람을 위해 씨를 뿌리고 있기 때문이다. 창세기 3:17-19절에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 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 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고 했다. 범죄한 인간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징벌이다. 저주받은 땅에서 종신토 록 수고하여 씨를 뿌려 그 소산을 먹게 하셨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 게 하셨다. 그 저주받은 땅에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나게 하셨다. 저주받은 땅 을 경작할 수밖에 없는 인생인데, 그 땅에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나게 하신 것이다. 인간은 그 근본된 토지를 갈며 경작할 때, 찢기고 상하여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찢기고 상할 때마다, 초막을 지어 수장절을 지켜 지난날을 기억케 하 신 그 하나님이 인간으로 하여금 지난날의 에덴을 기억케 하시고, 그 에덴의 하나님을 기억케 하신 것이다. 곧 내게로 돌아오라는 말씀이다.
시편 137:1-2절에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 니"라고 했다. 버드나무에 수금을 걸어 놓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여러 강변에 꿇어 엎디어 눈물로 씨를 뿌리고 있다. 시온을 기억하며 눈물로 씨를 뿌리고 있다. 술자리의 여흥을 위해 수금을 치며 "시온 노래"를 부르라는, 술취한 바벨론 사람의 채찍에 상하고 찢기어 피를 흘리며. 눈물로 씨를 뿌리 고 있다. 내 비록 여기서 죽을언정, 이방땅에서 그것도 술자리의 여흥을 위해 시온 노래를 부르리요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지로다(시137:5). 차라리 손이 찍히고, 혀가 잘려도 예 루살렘을 잊을 수 없노라고 눈물로 씨를 뿌리고 있다. 그렇게 눈물로 씨를 뿌린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 밭에 농부 나가. 익은 곡식 거두니, 그 단이 바로 "고국으로 돌아가라"는 단이었다. 기쁨 의 단이요, 감사의 단이요, 하나님 찬양의 단이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고 한다. 그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찬양 이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목이 터져라 소리 높여 부르는 감사의 찬양이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가 누구인가 가시덤불과 엉겅퀴에 찢기고 상하여 피를 흘리면서도 근본된 토지를 경작해야 하는 농부이다. 고요한 바다가 아닌 비바람이 치고 큰 물결이 뛰노는 바다에 어쩔 수 없이 고기잡이배를 타야 하는 어부이다. 욥처럼 시련 중에 빠져 있는 우리 성도들이다. 부정을 긍정으로 받을 때 진정한 감사가 나온다오늘에 처한 나의 현실이 눈물로 씨를 뿌릴 수밖에 없는 부정적인 여건이라도 구원의 하나님을 기억하고 긍정으로 받아 들이자. 거기에 진정한 감사가 있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시매 감사히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 가시덤불과 엉겅퀴에 찢기고 상해도, 이로인해 에덴을 기억하고, 에덴의 하나님을 기억케 하니. 감사히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 비바람 불어와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 감사히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 내가 당하는 시련이 무거운 짐 되어 고통의 멍에가 될지라도 이로인해 더 큰 은혜 주시니. 감사히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의 오늘이 무화과나무에 무화과 열매가 많 습니까 포도나무에 포도 열매가 많습니까 감람나무에 감람 열매가 많 습니까 하는 일이 잘 되고 성공적입니까
그렇다면 긍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를 드리자. 찬양을 돌려 드리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의 오늘이 밭에 식물이 없습니까 우리에 양이 없습니까 외양간에 소가 없습니까 하는 일이 힘들고 괴로워 실 망과 낭패뿐입니까
그렇다면 부정을 긍정으로 받아 들여 욥처럼, 하바 국 선지자처럼.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 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욥처럼 감사와 찬양을 하나님께 드리자. 이것이 진정한 감사이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진정한 감사이다. 비록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고 감사와 찬양을 하나님께 드리 자. 이것이 진정한 감사이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진정한 감사이다. 진정한 감사는, 부정을 긍정으로 받을 때 진정한 감사가 나온다 이 사실을 기억하 고 눈물로 씨를 뿌리자. 감사히 받으면 버릴 것이 실상은 하나도 없다. 우리 누구나 할 수 있는 감사보다 더 큰 아무나 할 수 없는 진정한 감사를 드리자. 눈물로 씨를 뿌린 기쁨의 단을 가져와 나의 구원의 하나님께 드리는 추수 감사절이 되게 하자.
곡식의 소출이 없고, 한 해의 농사가 헛일이 되어도, 종 되었던 자신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가나안에 이르게 하신 하나님, 약속의 땅을 주시어 나라를 이루게 하신 하나님, 종이 아닌 자유인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리게 하신 것이다. 진정한 감사는 부정을 긍정으로 받을 때 진정한 감사가 나온다 그렇다. 흉년이 와도, 사업이 실패하여도, 내 하는 일이 어려움에 쳐 하 였어도, 손해가 되어도, 실패와 낭패뿐인 오늘의 현실이라도 이러한 오늘의 현실이 부정적이라도 이 부정이 긍정으로 나에게 받아 드려질 때, 그때 나의 입에서 진정한 감사가 나온다. 긍정을 긍정으로 받아들이고 하는 감사는 누구나가 다 하는 감사이다. 풍년이 들어 감사하고, 사업이 잘 되어 감사하고, 내 하는 일이 형통 하여 감사하고, 이익이 생겨서 감사하고, 성공을 거두어 감사하는 일은 누구나가 다 할 수 있는 감사이다. 긍정을 긍정으로 받아들이는 감사는 누구나가 다 할 수 있는 감사이다. 부정을 부정으로 받아들이고 불평과 원망을 하는 것도 누구나가 다 할 수 있는 일이다. 흉년이 들어 하늘을 원망하고, 사업이 실패하여 남 을, 나라를, 자신을 원망하고, 내 하는 일 잘 안되어 세상을 원망하는 일은 누구나가 다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부정을 긍정으로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다. 누구나가 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부정을 긍정으로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것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요, 누구나 다 할 수 없는 감사 이기에 이것이 진정한 감사가 된다. 중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나이 많은 할머니가 병으로 다 죽어 가 고 있었다. 아들 내외가 보기 드문 효자이어서 할머니가 원하는 것은 다 했다. 좋다는 약은 다 먹었고, 유명하다는 점쟁이, 무당, 스님을 부르 기도 했다. 그러나 병세는 좋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악화되어 갔고, 희망이 없게 되었다. 그때 그 집 며느리가 양코배기 선교사 예수쟁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예수라면 질색이던 할머니도 자신 앞에 다가오는 죽음을 알고 며느리의 말에 못 이기듯 허락을 하였다. 선교사가 찾아와서 복음을 전하고 "할머님 하나님의 뜻이면 반드시 할머님의 병을 낫게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할머님, 이것을 믿습 니까"라고 물으니, 믿으니 어서 빨리 기도해 달라시는 할머님이다. 그러나 선교사는 곧바로 기도하지 않고, "할머님,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모르는데, 할머님이 돌아가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할머님, 믿습니 까"라고 묻자 "예수쟁이가 날 보고 죽어라 한다" 하시는 불호령에 선 교사는 도망치듯 그 집을 나왔다. 며칠이 지나 그 집 며느리가 다시 선교사를 찾아와 할머님이 찾으신 다고 해서 들렀을 때, 그 할머님은 "내가 죽는 것도 하나님의 뜻으로 믿겠으니 기도해 달라"고 했다. 선교사님이 할머니의 손을 잡고 기도하는 중에 그 할머님은 운명하셨다고 한다. 그 할머니의 얼굴이 평소에 볼 수 없는 평온함이 넘쳐 흘렀다고 한다. 죽는 것도 하나님의 뜻으로 믿겠다. 다시 말해서 부정을 긍정으로 받 아들이겠다고 했을 때, 하나님은 그 할머님의 영혼을 데려 가셨다. 병고 침으로 얼마간 더 사는 감사보다 더 큰 감사를 드렸을 것이다. 이렇게 부정을 긍정으로 받아들일 때, 거기에 진정한 감사가 있다. 부 정을 긍정으로 받아들일 때, 거기에 아무나 할 수 없는 감사가 있다. 부 정을 긍정으로 받아들일 때, 거기에 참으로 진실된 신앙고백이 있다. 부정이 긍정으로 바뀔 때 진정한 감사가 나온다 성경 속에 나타 난 이런 진정한 감사를 하나님께 돌리는 사람들을 살펴 보고져 한다.
1.욥의 감사 욥기 1:21-22절에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 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 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 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고 했다. 욥은 우리 성도들에게 고난의 대명사로 알려지리만큼 고난을 감당한 사람이다. 그것도 자신의 죄로 인한 고난도 아니고, 자신의 잘못으로 인 한 고난도 아니다. 하나님을 진실되게 믿는다는 이유로 실로 어처구니 없는 고난을 당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된 욥의 삶의 모습을 살펴 보면, 욥기1:1절에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고 했다. 욥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우스 땅의 족장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순 전하고 정직하였다. 하나님을 경외하였다. 악에서 떠난 자였다. 욥기 1:5절에 "그 잔치 날이 지나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케 하 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 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사가 항상 이러하였더라"고 했다. 욥의 자녀는 10남매로 생일이 되면 10남매가 한 집에 모여 잔치를 벌 였다. 잔치 날이 지나면 "혹시 내 아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 을 배반하였을까." 하여, 자녀들을 불러다가 번제를 드려 성결케 하였다. "욥의 행사가 항상 이러하였더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를 염려하고 있다. 참으로 순전하고 정직한 마음을 가진 자다운 삶의 자세이다. 자식들의 죄된 행동에도 무관심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욥의 관심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할 까"이다. 욥기 1:3절에 "그 소유물은 양이 칠천이요 약대가 삼천이요 소가 오 백 겨리요 암 나귀가 오백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고 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진실되게 살아가는 욥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 고, 동방의 거부로 물질적인 축복도 듬뿍 받았다. 양이 칠천, 약대가 삼 천, 소가 오백 겨리, 암 나귀가 오백, 종도 많이 있었다고 한다. 이 사람 욥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고 했다. 이런 욥에게 어느날 갑자기 큰 환란과 시련이 닥쳐왔다. 사탄의 시샘 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허락으로 사탄의 장난이 시작된 것이다.
머리털 까지 세신바(마10:30) 된 하나님의 자녀를 사탄이 마음대로 해치지 못한다. 맏아들의 집에서 잔치를 벌리고 있던 날, 스바 사람들이 쳐들어 와서 종들을 죽이고 소와 나귀를 빼앗아 갔다.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양과 종을 불살라 버렸다. 갈대아인들이 종을 죽이고 약대를 빼앗아 갔다. 대 풍이 몰아쳐서 집이 무너져 잔치하던 10남매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하는 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꼬리를 물고 들려 왔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스바 사람이나 갈대아 사람의 침략은 그래도 이해가 가지만, 하늘에서 불이 내리고 대풍에 집이 무너지다 니. 그 집에 10남매가 한꺼번에 깔려 죽다니. 이것은 분명 하나님의 치심인데. 하나님 앞에서 항상 행하였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진실되게 살아왔는데. 왜 이렇게 모질게 치실까. 10남매를 한꺼번에 라니. 차라리 나를 치실 일지 10남매라니. 누구나가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할 만한 처지이다. 하늘에서 불이 내 리고 대풍이 몰아쳐 불태우고, 죽이니 하나님 외에 누구를 생각하겠는가 그렇다. 욥도 하나님을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범죄치 않았고, 어 리석게 하나님을 원망치 아니하였다고 했다. 욥기 1:20-21절에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 드려 경배하며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했다. 자식과 재물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그 비통하고 괴로운 상황 속에서 도, 하나님이 치신 것이 분명한 그런 상황 속에서도 "어리석게 하나님 을 원망하지 아니하는 그 마음 어디에서 왔을까요 욥도 분명히 하나님이 치셨다고 하나님을 생각했다. 사탄의 시샘으로 당하는 고난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다. 그러나 어리석게 하나님을 원 망치 않고 오히려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하고 하나님께 감사 찬양을 돌리고 있다. 이런 감사 찬양이 진정한 감사 찬양이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감사 찬 양이 아니다. 누구나 드릴 수 있는 감사 찬양이 아니다. 부정을 긍정으 로 받아 드릴 수 있는 자만이 드릴 수 있는 감사 찬양이다. 욥기 1:21절에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 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 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했다. 욥은 오늘에 처한 그 혹독한 현실만을 바라본 자가 아니었다. 이스라 엘 백성들에게 초막을 지어 들판으로 나가 추수 감사의 수장절을 지키 라고 하셨던 그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는 자였다. 그 하나님의 말씀 대로 자신의 지난날을 뒤돌아 본다. 어머니 배속에서 내 빨가숭이로 빈손 들고 나왔으니, 내 또한 빈손 들고 돌아가리라, 내 가진 모든 부귀와 영화, 모든 물질, 자식들까지도 다 하나님이 주신 것 이제 하나님이 가져 가시니 무어라 할 수 있겠는가. 이제까지 축복을 누리게 하셨으니, 감사하고 찬양할 일이로다. 동방의 거부라던 그 많던 재물도, 10남매의 자식까지도 다 죽는 참 으로 낭패와 실망뿐이요, 환란과 고통뿐이다. 그러나 욥은 이런 부정적 현실을 긍정으로 받아 들였다. 지난날 모태에서 태어나는 자신을 회상 하며 오늘의 현실을 긍정으로 받아 들였다. 그때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감사가 진정한 감사이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 이다! 부정을 긍정으로 받을 때 진정한 감사가 나온다 바로 욥이 여호와 하나님께 드린 감사이다. 누구나가 드릴 수 있는 감사가 아니다. 아 무나 할 수 있는 감사가 아니다. 부정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자만이 할 수 있는 감사이다.
2.하바국의 감사 하바국 3:17-19절에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 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 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 로다 이 노래는 영장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고 했다. 이 말씀은 하바국 선지자의 기도 중에 나오는 감사로 구원의 하나님 을 인하여 오는 즐거움과 기쁨을 찬양하고 있다. 범죄한 유다 백성의 멸망 중에서도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구원의 은총을 노 래하고 있다. 하바국 1:4절에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 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공의가 굽게 행함이니이다"라 고 했다. 당시의 유다 백성들은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굽게 행하여 져서 겁 탈과 강포, 간악과 패역이 판을 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죄악을 심판하 시려고 갈대아 사람을 들어 치시겠다고 했다. 하바국 1:13절에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 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라고 했다. 유다 백성들이 지은 죄로 징벌을 당하는 것은 마땅하지만 하필이면 왜 강포하고, 패역하고, 잔인무도한 갈대아 사람인가 하나님께 호소하 고 있는 하바국 선지자이다.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킬 수 있느냐고 호소하고 있는 하바국 선지자이다(합1:13). 하바국 2:4절에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했다. 갈대아인들의 교만함과 그 마음의 정직하지 못함을 인하여 그들도 심 판한다는 것이다. 유다의 범죄로 징치하기 위한 도구로 갈대아를 사용 하나 저들은 자신이 심판주인 것처럼, 욕심을 음부처럼 넓히며 사망 같 아서 족할 줄 모르고(합2:5), 열국을 살육하고 있다(1:17). 그러나 이러한 심판 속에서도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것이다. 유다 백성들의 죄악, 하나님의 징치하시는 심판, 잔학무도한 갈 대아 사람들의 살육, 그 속에서도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소망을 주셨다. 그래서 하바국 선지자는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라고 감사와 찬양을 하나님 께 돌리고 있다. 하바국 3:17절에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 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라고 했다. 하바국 선지자가 처한 오늘의 현실은 실망과 낭패뿐인 부정이다. 무 화과나무에는 무화과 열매가 없다. 포도나무에는 포도 열매가 없다. 감 람나무에는 감람 열매가 없다. 밭에는 식물이 없다. 우리에는 양이 없다. 외양간에 소가 없다. 모두가 없는 것뿐이다. 모두가 부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하늘을 원망 하는 것은 누구나가 다 할 수 있다. 이 상황에서 감사는 아무나 못한다. 아무나 못하는 감사 이런 감사가 바로 진정한 감사이다. 이런 진정한 감사는 부정을 긍정으로 받아들일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바로 "비록 이 없을지라도, 나는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감사 하리라"고 했다. 비록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이 눈에는 안보이지만 분명히 살아 계신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 계시기에 그분에게 감사할 수 있었던 하바국 선지자이다.
3.울며 씨뿌리는 자의 감사 시편126:5-6절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 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 아 오리로다"고 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징치하심으로 잔혹한 갈대아 사람들 곧 바벨론의 침공으로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사로잡혀 간 바벨 론 땅에서 돌아오는 기쁨을 감사 드리는 찬양입니다. 저 밭에 농부 나가 씨를 뿌린다. 울며 씨를 뿌린다고 한다. 왜 일 까 농부에게 있어서 "씨를 뿌림"은 소망을 심는 일이다. 그 소망스러 운 일을 하며 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고 있을까 그 이유는 바로 바벨론 땅에서 종으로서 씨를 뿌리고 있기 때문이다. 종은 자기의 것이 없는 사람이다. 자기의 소망을 위해 씨를 뿌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회초리로 등가죽을 내리치며 불호령을 하고 있는 바벨 론 사람을 위해 씨를 뿌리고 있기 때문이다. 창세기 3:17-19절에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 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 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고 했다. 범죄한 인간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징벌이다. 저주받은 땅에서 종신토 록 수고하여 씨를 뿌려 그 소산을 먹게 하셨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 게 하셨다. 그 저주받은 땅에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나게 하셨다. 저주받은 땅 을 경작할 수밖에 없는 인생인데, 그 땅에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나게 하신 것이다. 인간은 그 근본된 토지를 갈며 경작할 때, 찢기고 상하여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찢기고 상할 때마다, 초막을 지어 수장절을 지켜 지난날을 기억케 하 신 그 하나님이 인간으로 하여금 지난날의 에덴을 기억케 하시고, 그 에덴의 하나님을 기억케 하신 것이다. 곧 내게로 돌아오라는 말씀이다.
시편 137:1-2절에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 니"라고 했다. 버드나무에 수금을 걸어 놓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여러 강변에 꿇어 엎디어 눈물로 씨를 뿌리고 있다. 시온을 기억하며 눈물로 씨를 뿌리고 있다. 술자리의 여흥을 위해 수금을 치며 "시온 노래"를 부르라는, 술취한 바벨론 사람의 채찍에 상하고 찢기어 피를 흘리며. 눈물로 씨를 뿌리 고 있다. 내 비록 여기서 죽을언정, 이방땅에서 그것도 술자리의 여흥을 위해 시온 노래를 부르리요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지로다(시137:5). 차라리 손이 찍히고, 혀가 잘려도 예 루살렘을 잊을 수 없노라고 눈물로 씨를 뿌리고 있다. 그렇게 눈물로 씨를 뿌린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 밭에 농부 나가. 익은 곡식 거두니, 그 단이 바로 "고국으로 돌아가라"는 단이었다. 기쁨 의 단이요, 감사의 단이요, 하나님 찬양의 단이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고 한다. 그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찬양 이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목이 터져라 소리 높여 부르는 감사의 찬양이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가 누구인가 가시덤불과 엉겅퀴에 찢기고 상하여 피를 흘리면서도 근본된 토지를 경작해야 하는 농부이다. 고요한 바다가 아닌 비바람이 치고 큰 물결이 뛰노는 바다에 어쩔 수 없이 고기잡이배를 타야 하는 어부이다. 욥처럼 시련 중에 빠져 있는 우리 성도들이다. 부정을 긍정으로 받을 때 진정한 감사가 나온다오늘에 처한 나의 현실이 눈물로 씨를 뿌릴 수밖에 없는 부정적인 여건이라도 구원의 하나님을 기억하고 긍정으로 받아 들이자. 거기에 진정한 감사가 있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시매 감사히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 가시덤불과 엉겅퀴에 찢기고 상해도, 이로인해 에덴을 기억하고, 에덴의 하나님을 기억케 하니. 감사히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 비바람 불어와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 감사히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 내가 당하는 시련이 무거운 짐 되어 고통의 멍에가 될지라도 이로인해 더 큰 은혜 주시니. 감사히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의 오늘이 무화과나무에 무화과 열매가 많 습니까 포도나무에 포도 열매가 많습니까 감람나무에 감람 열매가 많 습니까 하는 일이 잘 되고 성공적입니까
그렇다면 긍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를 드리자. 찬양을 돌려 드리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의 오늘이 밭에 식물이 없습니까 우리에 양이 없습니까 외양간에 소가 없습니까 하는 일이 힘들고 괴로워 실 망과 낭패뿐입니까
그렇다면 부정을 긍정으로 받아 들여 욥처럼, 하바 국 선지자처럼.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 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욥처럼 감사와 찬양을 하나님께 드리자. 이것이 진정한 감사이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진정한 감사이다. 비록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고 감사와 찬양을 하나님께 드리 자. 이것이 진정한 감사이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진정한 감사이다. 진정한 감사는, 부정을 긍정으로 받을 때 진정한 감사가 나온다 이 사실을 기억하 고 눈물로 씨를 뿌리자. 감사히 받으면 버릴 것이 실상은 하나도 없다. 우리 누구나 할 수 있는 감사보다 더 큰 아무나 할 수 없는 진정한 감사를 드리자. 눈물로 씨를 뿌린 기쁨의 단을 가져와 나의 구원의 하나님께 드리는 추수 감사절이 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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