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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언약의 백성 (렘31:31-34)

본문

예레미야는 기원전 586년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기 전 약 40년 동안에 활동한 예언자이다. 그는 하나님의 계약 백성인 온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이방 세력에 의존하는 죄악을 범하다가 야훼 하나님의 진노로 인하여 필경 멸망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이게 된 것을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으로 직시 하면서 예언했다. 그 백성은 일찍이 이집트에서 노예 상태에서 신음하고 있었으나 하나님께서 그들의 손을 굳게 잡고 이끌어 내신 다음, 시내 산에서 계약을 맺음으로써 야훼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그 분의 백성이 되기로 굳게 약속했던 처지였다. 물론 그 계약 관계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라 이미 족장 시대에 성립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인 관계를 넘어 제도적으로는 모세 시대에 이르러 새롭게 재확인하는 의미로 돌비에 그 내용을 새기고 율법으로써 그들의 생활 지침으로 삼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후손인 예레미야 당시의 백성들은 송두리째 저버리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저버리실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그것은 곧 강력한 이방 세력 앞에 놓여 있던 이스라엘의 멸망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조만간에 예루살렘이 폐허가 될 것을 예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는 하나님과의 계약 관계를 자기네에게 유리하게 해석하여,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보호를 내세우면서 예루살렘은 절대로 파멸되지 않는다고 예언하는 거짓 예언자의 무리들이 있었다. 그리하여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한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았다. 그는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형벌에 대해 하소연하거나 항변하기도 하다가 하나님의 책망을 받기도 했다. 그는 마치 두 바위틈에 낀 개구리 꼴이 되어 비통한 심정으로 예언을 계속했던 것이다.
그런 가운데 한 줄기 빛을 바라보듯 30-31장에서는 구원의 말씀을 집중적으로 예언하기 시작했다. 기원전 600년 무렵은 바벨론의 위협으로 남왕국 유다는 풍전등화와 같은 형편에 놓여 있었다. 이런 때에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서 위로와 약속의 말씀을 주시게 된 것이다.(렘31:15-22). 렘 31:15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도다 렘 31:16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네 소리를 금하여 울지 말며 네 눈을 금하여 눈물을 흘리지 말라 네 일에 갚음을 받을 것인즉 그들이 그 대적의 땅에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 31:17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의 최후에 소망이 있을 것이라 너의 자녀가 자기들의 경내로 돌아오리라 렘 31:18 에브라임이 스스로 탄식함을 내가 정녕히 들었노니 이르기를 주께서 나를 징벌하시매 멍에에 익숙지 못한 송아지 같은 내가 징벌을 받았나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시니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 렘 31:19 내가 돌이킴을 받은 후에 뉘우쳤고 내가 교훈을 받은 후에 내 볼기를 쳤사오니 이는 어렸을 때의 치욕을 진고로 부끄럽고 욕됨이니이다 하도다 렘 31:20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노라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내 마음이 측은한즉 내가 반드시 그를 긍휼히 여기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 31:21 처녀 이스라엘아 너를 위하여 길표를 세우며 너를 위하여 표목을 만들고 대로 곧 네가 전에 가던 길에 착념하라 돌아오라 네 성읍들로 돌아오라 렘 31:22 패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하나님께서 구원의 말씀을 주신 까닭은 이스라엘이 비록 하나님을 배반했으나 하나님 자신은 결코 그 계약을 파기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며, 본문의 말씀과 같이 계약 조문을 그 백성의 마음 속에 새겨 주심으로써 그 계약 관계의 유지를 바라셨기 때문이다.
예레미야가 활동하던 때의 시대적 상황은 왕하 22:25장에 나타나 있다.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된 이후 200년이 못되어 북왕국은 앗시리아에게 멸망했다. 북왕국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하나님의 계명과 교훈을 따르지 않고 이방의 힘을 업고 나라를 유지하려고 했기 때문에 온 결과였다. 북왕국이 망한 다음에도 남왕국 유다는 정신을 차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기원전 640년 요시야 왕은 앗시리아의 약화를 틈타 국력 신장에 힘쓰게 되었다. 그는 안으로는 종교 개혁을 단행하여 신앙적으로 하나됨을 추구했고, 밖으로는 북진 정책을 써서 잃었던 옛 땅을 되찾고자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요시야 왕은 기원전 609년 북으로 진격해 오는 이집트의 바로 느고와 므깃도에서 싸우다가 죽고 말았다. 이집트의 바로 느고는 요시야의 뒤를 이어 즉위한 여호아하스를 이집트로 사로잡아 가고는 요시야의 다른 아들인 여호야김을 왕으로 세웠다. 4년 후 605년에는 앗시리아를 멸망시키고 새로이 등장한 바벨론이 갈그미스 전투에서 이집트를 격파시켰다. 그리하여 유다는 이제 바벨론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그러나 여호야김은 바벨론을 거슬러 이집트를 의존하는 정책을 고수했다. 그래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대군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침공해 왔다. 예루살렘이 포위된 가운데 여호야김은 죽고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즉위했다. 예루살렘은 함락되고 여호야긴은 포로로 끌려갔다(597 B.C.). 바벨론은 요시야의 또다른 아들 시드기야를 유다 왕으로 세웠다. 그 후 시드기야는 바벨론을 배반하여 이집트와 힘을 합해서 바벨론의 수중에서 벗어나려고 하다가 바벨론의 재차 공격을 받게 되었다.
1년 6개월간의 예루살렘 포위 끝에 유다는 폐허가 되고 말았다. 느부갓네살은 시드기야와 유다 백성들을 포로로 끌어갔고 유다 땅에는 그달랴를 총독으로 세웠다. 그러나 그달랴는 암살되고 그를 암살한 저항 세력들은 이집트로 망명했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함락 후에도 그곳에 남아있다가 그달랴를 죽인 무리들을 의해 이집트로 끌려가서 거기서 생애를 마친 것으로 전해진다. 본문의 내용을 자세히 보면 장차 일어날 일에 대해 주목하라고 이른다. “보라 그 날이 기필코 임할 것이다.” 이 말씀은 야훼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야훼의 말씀이다”란 표현이 31-34절의 매 절마다 반복됨으로써 이 본문의 말씀이 백성들의 가슴을 향해 강하게 접근해 온다. 이 내용은 그토록 각별한 권위를 가지고 다가온다. 신학적으로 말해서 이 예언은 이 본문 직전에 언급된 개인의 책임에의 강조(31:29-30)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렘 31:29 그 때에 그들이 다시는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겠고 렘 31:30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 이가 심같이 각기 자기 죄악으로만 죽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더불어 새 계약을 맺으시겠다는 결심을 토로하신다(31절). 이미 맺은 계약이 있는데 무슨 새 계약이란 말인가 하고 의아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새 계약이 됨은 결코 내용상의 새로움이 아니다. 그것은 계약 당사자인 이스라엘 백성의 계약 준수 태도에 관련된 것이다. 그것은 예전에 이집트 땅에서 이스라엘 조상들을 이끌어 내실 때 그들과 맺었던 계약을 그들이 파기했기 때문이다(32절). 이제 그날이 오면 새 계약을 새 이스라엘과 맺으실 것이다. 물론 그 계약 내용은 변함이 없다. 곧 유일신 야훼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이다(33절). 하지만 그 때 하나님께서 그 율법을 그 백성의 마음에 새겨 주시고 각 사람이 하나님을 살뜰히 알게 된다는 것이 새로운 것이다(33-34절). 이렇게 된 것은 우선 하나님께서 이제까지의 그 백성의 허물과 죄를 다 용서해 주셔서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34절).
성경에서의 계약 “베리트”는 일반적으로는 계약 당사자가 서로에게 어떤 의무를 이행할 것을 약속하는 동시에 상대편이 그런 책임과 의무를 기꺼이 지킬 것을 신뢰하는 관계 설정을 뜻한다.
그런데 본문에 나타나 있는 새 계약은 비록 이스라엘이 계약을 불이행했음에 불구하고, 하나님만이 해당 의무를 끝까지 이행하신다는 사실과 그 백성의 허물을 용서하신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 점이 지난 날 종살이하던 히브리인들을 구원하신 후 시내 산에서 맺었던 계약과의 차이점이다. 그러나 옛 계약에서는 율법을 철저히 지킬 것을 요구했으나, 본문의 새 계약에서는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는 일이 필수적인 요건이 아니다. 이번의 새 계약을 맺는데 있어서는 하나님께서 그 율법을 마음에 기록해 주실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자발적으로 율법을 따르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계약을 수행할 능력까지도 채워주시는 가운데 새 계약을 맺으시고자 하신 것이다. 이런 놀라운 일이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전히 성취된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다. 오늘의 본문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약속은 실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이 세상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3일만에 다시 사심으로써 성취되었다. 곧 그 피로 세우신 새 계약이다. 고전 11:25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눅22:20 저녁 먹은 후에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이 말씀을 힘입어 우리는 이미 새 계약의 백성이 되었으며, 새 계약의 일꾼이 된 것이다 고후 3:6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뜻을 새겨서 우리에게 이루어진 새 계약의 은총을 새롭게 입어야 한다. 이럴 때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법이 쓰여져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이런 일이 가능하기 위해서 옛 계약이 실패한 이유와 새 계약의 특성을 검토함으로써 하나님의 약속의 실체를 파악하고 동시에 우리의 삶과 관련시켜야 할 것이다. 이런 전제에서 다음과 같은 대지를 나누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1)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31) 그 당시 남북으로 나뉘어진 그 백성을 하나님께서는 엄연히 하나로 간주하셨다. 이 통일된 새 백성과 맺으실 새 계약은 옛날에 선조들과 맺었던 것과는 다른 것이다. 그것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새로운 마음으로 거듭나서 자발적으로 그 법을 지킴으로써 온 인류를 구원케 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옛 계약의 실패의 역사를 예레미야 당시의 상황을 통해서 알아볼 수 있었다. 옛 계약이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한 까닭은 이스라엘 편에서 하나님만을 의지하라는 계명대로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2)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리라.”(33) 그들의 조상은 돌비에 새긴 율법을 지키다가 실패했으나 이제 그 법을 그 백성의 마음에 기록하시기를 하셨으니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오늘의 우리는 이미 새 계약의 백성인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옛날의 이스라엘 백성과 마찬가지로 계약을 깨뜨리는 일을 부지 부식간에 저지르게 된다. 그래도 그 계약의 조문은 마음에 기록된 것이므로 우리를 절망에 몰아가지는 않는다. 이제까지의 하나님의 행위로 보아 그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으실 것은 확실하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우리를 늘 새롭게 하시는 성령님의 도우심만이 우리가 다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롬8:1-11 롬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님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롬 8: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8:5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롬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롬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롬 8: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롬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롬 8: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롬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새 계약의 은혜로 새로워지도록 기대해야 한다.
3)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 하리라.” (34) 새 계약의 또다른 특징은 그 속에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깃들어 있는 점이다. 옛 계약의 실체인 모세 율법에는 이를 범한 자들에게 저주가 임할 것을 규정했다(레 26장, 신 28장). 이 저주가 크게 임한 것이 기원전 586년의 예루살렘 파멸이다. 그 계약은 신성한 행동의 표준으로 주어진 것이기는 하지만, 그들의 마음의 죄로 인하여 도저히 그 표준을 지킬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새 계약은 마음에 기록된 것이므로 각 사람이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명을 지킬 것을 강요하거나 하나님을 알라고 채근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의 죄악에 대해서 너그러워질 수 있다사 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죄악을 용서하시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이 무조건 온 인류에게 임하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 사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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