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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피는 꽃 (렘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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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예언자 예레미야가 나라 민족을 위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소명을 받을 때의 기사입니다. "네가 무엇을 보느냐"는 하나님의 질 문에, 예레미야는 "살구나무 가지를 봅니다."고 대답했습니다. 살구나무는 감복숭아로 히브리어로는 "샤케드"입니다. 샤케드는 이스라엘과 북부 아 프리카에 서생하는 식물로서 흰 꽃이 피며 열매가 열립니다. 샤케드는 1월에 꽃이 피는 특수한 나무로서 <겨울꽃>이란 별명이 붙어있습니다. 에 델바이스가 눈 속에서 꽃이 피는 것과 비슷한 성격의 꽃입니다. 하나님 이 청년 예레미야에게 샤케드 꽃을 보게 한 것은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예레미야에게 희생의 길을 택할 것을 요구한 것입니다. 추위 속에서 꽃피는 샤케드처럼 희생적인 정신으로 예언하라, 다시말해 희생을 각오하고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사명은 예루살렘의 멸망 을 에언하며 "이스라엘 백성아,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회개하라"는 설교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조국의 멸망을 예언하며 회개하라고 외치는 것은 몹시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가 참다운 예언자가 되기 위해서는 눈 속 에서 꽃을 피우는 샤케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부르신 목적이었습니다. 샤케드가 지니는 또 하나의 의미는 "내 말이 이루어지는가 이루어지지 않는가를 깨어 지켜보리라."는 것입니다.(성경 난하주 참조:비슷한 발음 인 쇼케드의 뜻을 말합니다.) 즉 깨어 지켜보는 하나님이 네 곁에 있으므 로 나이가 어리다느니, 경험이 부족하다느니, 요시야 왕과 그 막강한 세 력을 두려워하는 염려를 버리고 하나님의 부름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샤케드, 겨울꽃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청년 예레미야는 용기 백 배 희생의 길을 나섰습니다. 희생의 길, 샤케드의 삶을 살라고 하는 하나님의 명령이 쓴 잔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봄꽃이나 여름꽃이 좋지 왜 하필 내가 겨울꽃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은 누구나 갖게 됩니다. 예수께서 도 오죽 하셨으면 십자가의 쓴 잔을 앞에 두고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나에게서 옮겨주소서."하고 기도하셨겠습니까 그러나 예수께서는 십자가 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죽음의 겨울 바다 같은 이 세상에 생명의 겨울꽃을 피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여러 번 강조 하는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제사보다 낫다는 것이며 하나님은 사랑과 희생의 제물을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너회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라."고 신앙생활의 핵심 을 말하였습니다.
1. 예레미야에게 보이고 아론의 지팡이에 꽃피었던 겨울꽃, 샤케드는 오늘날 우리의 가슴에서 꽃피어야 하겠습니다. 어느 율법사가 예수께 와 서 "(눅10:25).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고 질문했 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사람에게 되물었습니다. "(눅10:26)율법에 무엇 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율법사는 "(눅10:27).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 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고 정확하게 대 답했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눅10:28)네 대답이 옳 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그러자 이 율법사는 자기를 옳게 보이 려고 "(눅10:29).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고 다시 물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비유 하나를 말씀하셨습니다. "(눅10:30).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 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눅 10: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눅10: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눅10:33)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 고 불쌍히 여겨 (눅10: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눅10:35)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 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눅 10:36)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 냐 (눅10:37)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이 비유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는 강도입니다. 강도는 남에게 고통과 아픔, 피해를 입히는 사람입니다. 둘째, 제사장과 레위인입니다. 이들은 요즈음 말로 하면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자처하는 기독교인 들입니다. 이들은 강도만나 죽어가는 사람을 피하여 지나가 버린 무자비 한 사람들로 이웃의 아픔과 고통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실속만 챙기는 사람들입니다.
셋째는 유대인들로부터 멸시천대를 받는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강도를 만나 죽어가는 사람이 유대인이든 아니든 가리지 아 니하고, 또한 그들로부터 어떠한 대접을 받고 있든 개의치않고 강도만나 고통가운데 죽어가는 사람의 상처를 싸매주는 사람입니다. 우리 사회에도 이 이야기에서 처럼 이웃에게 고통을 일으키며 고통을 주는 자와 이웃의 고통에 대해 무관심, 무자비한 사람, 그리고 이웃의 고통을 싸매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웃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은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웃에 고통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무자비한 사람 에 대해 처벌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각에서 볼 때 그 사람 은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영육간에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내버려 둔다면 그것은 분명 장차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죄악입니다. "(겔3:18)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 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 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겔3:19)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 죄악 중에서 죽 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겔3:20) 또 의인이 그 의에서 돌이 켜 악을 행할 때에는 이미 행한 그 의는 기억할 바 아니라 내가 그 앞에 거치는 것을 두면 그가 죽을지니 이는 네가 그를 깨우치지 않음이라 그 가 그 죄 중에서 죽으려니와 그 피 값은 내가 네 손에서 찾으리라 (겔 3:21) 그러나 네가 그 의인을 깨우쳐 범죄치 않게 하므로 그가 범죄치 아 니하면 정녕 살리니 이는 깨우침을 받음이며 너도 네 영혼을 보존하리라."
<제노비즈의 경우>(Genovese Case)란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뉴욕 퀸 즈에서 발생하였던 실화에서 나온 말입니다. 1964년에 키티 제노비즈가 살해되었습니다. 이 여자가 공격을 받고 살해되는 장면을 설흔 여덟 개의 얼굴이 창문에서 바라보았는데 한 명도 경찰을 부르거나 나가서 도와주 지 않았습니다. 뒤에 그들을 심문하였는데 38명이 한결같이 "다른 사람이 도와줄 것으로 생각했다."는 말이었습니다. 최근 미국의 몇 개의 주는 위 기를 보고도 도와주지 않은 사람을 처벌하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가령 로 드 아일랜드의 경우 이런 무관심한 자에게 5백달러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벌금이 무서워 남을 도울 정도라면 수준 이하일 것입니다. 문민정부는 '양파정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양파는 껍질을 벗겨내고 벗겨내도 알맹이는 없고 눈에서 눈물만 흐르게 만듭니다. 한마디로 문민 정부는 껍데기뿐이며 백성에게 고통의 눈물만 안겨주었습니다. 남에게 고 통을 주는 사람은 반드시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이 땅에 고통받는 나라 와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해 무관심한 족속들도 하나님의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적어도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 이웃을 사랑하 며 살아야 하는 기독교인들은 고통당하는 나라 백성들을 외면한다면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정녕 하나님의 사랑을 가 슴에 품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아픔과 상처를 싸매주어야 할 것입니다. 영육간에 추운 겨울을 만나 이 나라 백성을 위해 희생적인 사랑으로 겨 울꽃, 샤케드를 피우시기를 바랍니다. 청량리 굴다리 밑에서 굶주림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위해 매일 밥지어 그들의 허기를 채우는 다일공동체는 이 시대 우리 한국의 사마리아인들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밥짓는 시인, 퍼주는 사랑>이란 책에 나오는 그 들의 희생적인 복음전파의 한 단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서 아침기도를 올리고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점심밥을 짓고, 만든 밥과 국 반찬들을 들고 내려가 손수레에 실어서 채 소시장까지 운반하여 배식했다. 처음엔 밥을 나눌 수 있다는 기쁨과 공동 체생활을 시작했다는 감격에 들떠 별다른 어려움이 없이 일들을 처리해 냈다. 그러나 날마다 봉사팀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무거운 음식통을 6층 옥상에서부터 아래층까지 들어나르기란 정말 힘이 들었다. 그래도 우리들 은 사력을 다해 음식을 만들고 기쁨으로 음식을 운반하고 쓰레기더미 속 에서도 감사함으로 나누어 먹었다. 음식 만드는 봉사에 힘을 모았던 교회 중 주님의 교회 소망교회 은현교회 새바람교회 신장위교회 등 다섯 교회가 제일 처음 참여해주었다. 봉사자들이 만들어내는 음식은 메뉴도 새롭고 다양했다. 뿐만 아니라 정성을 다한 음식이라 정말 맛있었다. 윤 기 흐르는 밥과 영양가 있고 따뜻한 국과 맛깔스러운 반찬들이 매일 나 누어지자 밥상공동체 식구들은 날로 늘어갔다. 처음엔 40150명쯤 되던 식구가 한 달도 못되어 70명, 그 다음달은 1백명이 되더니 석달만에 1백 50명으로 늘어나고 말았다. 밥을 함께 먹는 사람들은 행려자와 무의탁 노 인뿐이 아니었다. 청량리 채소시장 언저리에서 찌꺼기 야채를 모아 파는 영세 좌판상 할머니들과 근처의 가난한 상인들, 학교에 다니지 않는 가난 한 어린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밥 먹는 사람들에게 어떤 제한을 두지 않았다. 배고픈 사람이면 누구나 다 함께 먹을 수 있다는. 우리의 태도에 불만을 품는 봉사자들도 있었다. "저 사람은 옷차림으로 보아 얻어 먹을 사람이 아닌데요. 아니, 왜 멀 쩡한 사람까지 밥을 주어야 하나요" 그러면 한 마디로 대답했다. "집에서 따슨 밥 편히 먹을 사람이 한 끼 얻어 먹자고 이 냄새나는 쓰 레기더미 앞에서 몇 시간씩 줄서서 기다리겠어요 겉으론 그래 보여도 아마도 말 못할 사정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일부 자원봉사자들 가운데는 '오직 기쁘게 봉사하고 갔으면 좋 겠는데' 하는 내 생각과는 달리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팀이 의외로 적지 않았다. 어디에나 있을법한 일이기에 그저 참고 말없이 봉사하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길 기도할 도리밖에 없었다. 우리는 처음부터 밥을 나누면서 말로 하는 선교행위를 일절 하지 않았다. 누구를 만나도 예수님이니 어느 교회니 하는 말은 입 밖에도 내지 않기로 작정했다. 나뿐 아니라 다른 자 원봉사자 식구들에게도 예수의 '예' 자도 꺼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러면 신학교에 갓 들어온 풋내기 신학생이나 처음 봉사하러온 열성쟁이 집사들은 도무지 이해가 안간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아니, 그럼 밥 먹이는 것 자체가 교회의 목적이란 말이에요예수를 믿으라고 전도를 해야지요, 전도를‥‥‥‥ '밥만 주나요 말씀을 줘 야지요." 그럴 때마다 나는 말했다. "밥 한 그릇으로 예수님을 팔 생각입니까 우리가 아무 말 안해도 정 말 예수님 사랑으로 저들을 대하면 끝내 예수 사랑을 다 알게 되고 저 분들도 다 천국 가게 될 겁니다. 내 말을 듣고 아무 생각 말고 언제나 친 절하게 웃으며 밥이나 퍼드리세요." 그래도 그네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영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곤 했다. 심지어는 밥 푸던 주걱을 놓으며 "난 더 이상 인본주의자들과는 함께 일 못해요." 하고 토라져가는 예수 쟁이 같지 않은 예수쟁이도 있었다. '예수쟁이'라는말이 나왔으니 생각나는 '사건' 하나가 있다. 동네 사람 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 한번도 전도사란 말을 쓰지 않았다. 누가 내 이름 을 묻거나 직업을 알고 싶어하면 그냥 "예, 최씨입니다. " 라고만 대답했다. 그러자 그들 사이에 매일 밥해 가지고 나오는 그 키 큰 젊은이가 누 구냐는 말이 오갔던 모양이다. 하루는 두 패로 나뉜 사람들이 다가오.더 니 그중 한 노인이 물었다. "최씨, 최씨는 성당 댕기는 사람이지유 누가 그러는데 신부님인가, 수 사님인가 말하던디유" 그러자 다른 한 쪽에 있던 사람이 반박했다. "아녀, 그게 아녀. 최씨는 교회 댕긴다더먼, 뭔 소리여.아이고, 교회에서 이런 일 하는 것 봤남 내가 알기로는 이런 일은 다 성당에서 하더먼그랴그래도 지난번에 왔던 어떤 여자분에게 내가 살짝 물어봤더니, 자기는 집사라고 허고, 저 양만은 전도사라고 하던디,그럼 뭐가 진짜로 맞는대유 속 션하게 말이나 해주셔유." 그들의 말을 듣다보니 우습기도 하고 교회에서 좋은 일 하는 건 못 보 았다는 말에 가슴이 저려오기도 했다.
그래도 그들의 말을 못들은 척하며 대답했다. "최씨예요. 그냥 밥집 아저씨라고 부르든지 최씨라고만 하든지 맘대로 하세요." 그러자 전도사라고 자신있게 말하던 사람이 시체말로 열받았는지 한마 디 던졌다. "아하, 이제 알았다. 전도사는 전도산디, 전도사라고 말할 수는 없는 사람이로구나. 데모하다가 제적을 당했든지 시국사건으로 '큰집에 갔다 왔 든지 말여.암, 그렇지 않고서야 자기 신분을 못 밝힐 리가 없잖은가." 옆사람이 또 거들었다. 그래도 그 말에 대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 고 돌아섰다. 그러나 '저사람이 누군가' 하는 시비는 쉽게 끝나질 않는 듯 했다. 그 후 며칠이 지나, 형사 한 사람이 나눔의 집으로 찾아왔다. 낯선 사람은 나를 보자 대뜸 물었다. "간첩이 나타나서 거지 떼에게 밥해주며 가난한 이들을 선동한다기에 일단 현장 조사를 하러 나왔습니다. 여기 저기 알아보니 최 전도사님이 시인이시고 곧 장로교 목사님이 되신다는 건 저희도 잘 알고 있습니다. 청량리역 광장에서 좋은 일하시는 것까지도요. 하지만 그들이 최 전도사 님께 밥을 얻어 먹고도 간첩일지 모른다고 신고까지 하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글쎄요, 얼마 전 그들이 모여 내가 누구냐고 자꾸 묻기에 그저 최씨라 고, 압집 아저씨'라고 했더니 수상쩍게 생각했나보군요." 하도 기가 막혀서 그만 하하웃으며 대꾸했다. 그러자 그 형사도 웃음 을 터뜨리며 이 한 마디를 남기고 자리를 떴다. "우리 청량리 경찰서 관할 내에서는 전도사님에 대해 소문이 좌악퍼져 있어요. 전도를 할 바에야 저렇게 어려운 현장을 직접 뛰며 전도해야 진 짜 전도라고요." 복음전도는 고통받는 삶의 현장에서 사랑으로 희생할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땅의 교회 가운데는 병들어 고통당하는 사람을 신유의 은사 를 통해 고침받게 하는 능력이 있어야 교회가 부흥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것을 목적삼는 교회와 기독교인이 없지않습니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신출귀물한 방법으로 세상을 구원하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가 받은 상처의 아픔과 고통을 몸소 걸머지시고 십자가에 희생하심으로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그 분은 십자가의 쓴잔을 땅에 쏟아버리지 아니하시고 친히 그 잔을 받으시고 온 인류를 위해 겨 울꽃을 피우셨습니다. 겨울을 만나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샤케드, 겨 울꽃을 피우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샤케드의 두 번째 의미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의 부르심 에 순종하여 꽃을 피우라는 것입니다. 자동차 뒤에 붙이는 스티카 글 (Bumper Sticker) 중에 이런 좋은 말이 있었습니다. "네가 심어진 장소에 서 꽃을 피우라."(Bloom where you are planted) 이 격언을 신앙 면에서 해석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심어 주신 이 교회에서 내가 꽃을 피워야 한 다는 말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한 교회에 발을 붙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고향을 찾지 못하는 사람처럼 안타까운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기쁨과 만족과 보람은 교회생활에 푹 파묻혀 봉사하고 성도의 교제를 천국 으로 알고 온 가족이 그 교회를 뿌리로 해서 가지를 뻗고 꽃피우고 열매 를 맺는 생활이 만족이 있는 신앙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동화 중에 토끼 브레어 (Brer rabbit)가 있습니다. 브레어 토 끼는 어느날 같은 시간에 두 집에서 만찬 초청을 받습니다. 일찌감치 집 을 떠나 갈래길까지 왔습니다. 오른쪽 길은 테라핀씨 집으로 가고 왼쪽은 포숨씨 집으로 가는 길입니다. '어느 집이 잘 차렸을까' 브레어 토끼는 왼쪽 길로 조금 가다가 아무래도 미세즈 테라핀의 요리 솜씨가 나을 것 같아 오른쪽 길로 갔다가 한참 동안 이렇게 두 길 사이를 뛰어다니다가 두 집 파티가 다 끝났다는 이야기입니다. 브레어 토끼는 결코 행복하지 못합니다. 하나뿐인 인생을 실패작으로 남기게 됩니다. 엘리야 선지는 갈멜산에 모인 민중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길 사이에서 머뭇머뭇하겠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찌니라."(왕상 18:21)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서는 자리를 확실하게 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입으로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 하나님 을 믿는다고 하지만 물질의 우상, 황금의 우상, 섹스의 우상인 바알신과 아세라신에게도 기웃거리고 관심을 보내면서 두 길 사이를 왔다갔다 하 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나라 대통령 선거 중에 이런 말이 돌았습니다. 어느 후보가 당선 되면 미국으로 이민가겠다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있었습니다. 제아무리 우리 나라가 추운 겨울같아도 하나님의 부름받은 내 나라 내 땅에서 샤케 드, 겨울꽃을 피우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심겨진 장 소에서 꽃을 피우는 샤케드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프랑스 시사주간지 누벨 옵세르바퇴르는 25일자에서 한국 경제는 황제 행세하는 재벌총수들이 망쳤다면서 한국인들 앞에는 길고 혹심한 겨울이 기다리고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주요기사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국민총생산의 절반을 잃어버린 한국은10년을 후퇴했는데 이는 오로지 재벌을 소유하고 경제를 지배하고 있던 30대 혈족 때문입니다. 부채가 자 기 자본의 4배를 넘으면 서구에서는 곧바로 파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재벌들의 외형 부풀리기를 향한 경쟁은 광란을 넘어 정신착란의 지경 에 이르렀습니다. 서울의 한 고위 관리는 "한국사회는 지난 10년동안 민 주화됐으나 재벌만은 과거의 독재적 문화에 젖어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재벌은 다국적 기업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사이비종교처럼 기능했다."는 것입니다. 재벌 총수들은 유리와 철강으로 지어진 빌딩 속에 갇혀서 경호원에 둘 러싸여 있었고, 참모들이 외부세계와 필터 역할을 했으며, 그들은 스태프 진에게 우상숭배에 가까운 경배를 받으면서 세계 최고 갑부행세를 하는 등 마치 옛 황제처럼 살았습니다. 그들은 반대를 받은 적도 없고 그럴 수 도 없었습니다. 삼성 그룹의 상속자인 이건희 회장은 기계에 열광하고 페라리 자동차 수집가입니다. 그래서 그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삼성마크의 자동차를 갖고자 집착했습니다. 한 재벌 총수의 욕망 때문에 이미 포화상태인 자동 차 산업에 무모하게 투자하여 1백억 프랑을 단숨에 창밖에 던져버렸습니다. 왜 그토록 강력한 권한을 지닌 청와대가 재벌들의 고삐를 놓아버렸는 가 한국의 한 기자는 "금년 초 한보철강이 망했을 때 아무런 보증도 없 이 은행에서 대출받은 45억달러중 60%만 투자되고 나머지는 한보의 총 수와 수 십명 정치인들의 호주머니로 사라졌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말했 습니다. 최근 재벌 총수 여러 명과 두 명의 전직 대통령 그리고 현 대통 령의 아들이 관련된 재판은 이러한 부패의 위중함을 잘 드러내주었습니다. 거인이 돼버린 재벌들은 돈으로 정치를 사서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정치권에 음성적 자금을 조달함으로써 얻어진 영향력 덕분에 재벌 총수 들은 정부가 통제하고 있는 국민저축을 빨아먹었고 은행들을 피흘리게했 습니다. 재벌 총수들은 파라오같은 야망과 세계 정복의 꿈을 실현하기 위 해 한국을 파산의 나락으로 몰고갔던 것입니다. 칼국수먹던 청와대는 이 제 피죽도 못는 처량한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한국인들 앞에는 길 고 혹심한 겨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라의 앞날은 비록 추운 겨울이라 할지라도 겨울에 핀 한 송이 샤케 드를 우리가 사는 울산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은 어느 일간 신문에 난 기사입니다. <뇌사 판정을 받은 12세 소녀가 8명의 난치병 환자에게 새 삶을 선사 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평소 백의의 천사가 되겠다던 정영주(울산 명정 초등학교 5)양이 친구들과 놀다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진 게 지난 18 일. 악성 뇌종양이었고, 23일 뇌사 판정을 받았습니다. 정병호(34)-이미연 (34)씨 부부는 가슴에 묻을 자식 사랑을 장기이식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나눠 주었습니다. 부산 백병원에서 실시한 장기적출 수술은 먼 곳의 환자 들에게 장기가 빨리 전달될 수 있도록 25일 오전 5시에 시작돼 6시간여 만에 끝났습니다. 영주양의 심장과 폐는 인천 길병원에서 심장병과 폐질 환을 앓는 이들에게, 간은 부산 고신복음병원에서 선천성 담도폐쇄증을 앓는 생후 14개월된 아기에게 이식되었습니다. 신장과 각막, 연골도 다른 환자들에게 옮겨졌습니다. 우유배달원과 보험설계사로 일했던 어머니 이 씨는 영주 이름으로든 보험적립금 3백60여 만원을 어려운 이웃에 써달라 며 교회에 헌납했고, 영주 또래 어린 환자들에게 새 생명을 주고 싶다며 사랑의 장기기증운동 부산본부에 사후 장기기증을 약속했습니다.> 이 땅에 겨울이 아무리 길고 춥더라도 한 송이 꽃, 샤케드를 피울 수 있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환난과 고통가운데서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그 고통와 아픔을 친히 십자가에 걸머지신 예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호6: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 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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