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사랑하는 자의 마음 (렘31:15-20)

본문

성경에 예수님이 웃으셨다는 기록이 없다. 그 분은 눈물을 흘리셨다. 민말히 여기셨다. 통분히 여기셨다. 그 분은 웃으실 줄을 모르셨는가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그 분은을 만난 후에 다 밝고 환하게 살아갔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왜 웃지 않으셨는가 그 분의 마음 깊은 곳에 아픔이 있었을 것이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이다. 이는 하나님의 아픔을 웅변적으로 대변해 준다. 하나님의 아픔을 모르고는 기독교를 알 수 없다. 하나님의 아픔은 사랑의 무한성 때문이다. 죄인을 심팜하시면 그만인데 그걸 못하신다. 그렇다고 심판을 영원히 유보하실 수만도 없다. 여기에 하나님의 아픔이 있다. 하나님의 진노와 사랑 사이에서 생긴 아픔이다. 순전히 우리 때문에 생긴 가슴앓이 이다. 구약에는 하나님의 아픔이 나타난다. 하나님께서 참회하는 그의 백성을 측은히 바라보시고 불쌍히 여기신다. 하나님의 징계와 사랑
1. 하나님의 징계(15) “(렘31:15)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도다 ”
1) 슬픔, 통곡, 애곡,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땅을 치며 가슴을 치며 우는 모습니다.
2) 자식이 없으므로: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사랑하는 젊은 자식들을 칼에 내어 주었다. 범죄하는 그들을 그대로 둘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의 징계는 무서운 것임을 기억하라.
2. 이스라엘의 회개(18-19) 에브라임(이스라엘)이 스스로 탄식하며 울면서 고백했다. 하나님의 징절은 사랑의 손길이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1) 우리는 멍에에 익숙치 못한 송아지, 그것이 우리의 모습이다.-징계를 맏은 후에 자신의 죄성을 고백한다.
2) 주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시니(18).-징계를 받은 후에 하는 고백,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고백-(주), 내가 마땅히 순종해야 할 분.-(나의 하나님), 능력의 신, 나의 축복의 근원이 되신 나의 조물주.-(여호와), 나와 언약을 맺으시고 나를 백성으로 삼으신 분-나와 언약을 맺으신 나의 여호와는 능력의 신, 창조주, 내가 마땅히 순종할 나의 주님이십니다.
3)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18).-징계를 거두시고 바벨론 포로에서 돌이켜 주소서. 내가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리이다.-영적인 회복도 이루어 주소서. 내가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을 찬양하리이다. 주께서 돌이키면 내가 돌아오겠다는 말은 위와 같이 두 가지 회복을 포함한다.
4) 내가 돌이킴을 받은 후에 뉘우치고 슬퍼합니다. 나의 범죄로 인해 아픈 징계를 받은 것이 부끄럽고 욕되기 때문입니다(19).-주께서 돌이키시니 내가 돌아왔습니다.-지난 일들을 뉘우칩니다. 가슴을 치며 슬퍼합니다(볼기를 친다는 표현이 영역본에서는 가슴을 치는 것으로 번역되었따. 이는 슬픔의 표시이다).-내가 당한 징벌이 치욕스럽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성을 고백하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주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라는 고백에 하나님은 희열을 느끼신다. 뉘우치고 슬퍼하는 눈물을 하나님은 아픈 마음으로 돌아보시고 닦아주신다.
3. 하나님의 사랑(16,20)
1) “(렘31:16) 네 소리를 금하여 울지 말며 네 눈을 금하여 눈물을 흘리지 말라”-그들을 징계에서 해방하고 원수들의 땅에서 돌아오게 하시리라는 약속이다.-눈물을 흘리는 자의 아픔보다 더 진한 하나님의 아픔을 본다.-하나님을 거역하는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우시는 하나님의 눈물과 탄식과 슬픔이 이곳에 있다.-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우셨던 주님(눅 1334-35; 19:41-44).
2) “(렘31:20)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범죄한 우리를 징계하심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는 것이다.-그 분의 사랑은 변함이 없고, 회개하는 자식에 대한 그 분의 기쁨은 측량할 수 없다.
3) “(렘31:20)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노라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내 마음이 측은한즉 내가 반드시 그를 긍휼히 여기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징계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징계를 받는 아들의 아픔보다 더 아프다.-(측은함), 하나님은 뉘우치는 자녀를 사모하신다.-하나님의 긍휼하신은 변함이 없다. 주의 인자는 끝이 없고, 주의 자비는 무궁하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죄인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서는 것이다. 이것을 잊지 말라. 회개의 양보다 은혜의 양은 넘친다.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에 자신을 맡기라. 인간의 아픔과 하나님의 아픔
1. 인간의 아픔은 사랑의 한계성에서 생기는 것 인간의 사랑은 한계성이 있다.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미치지 못한다. 미국의 한 상류사회의 가정에서 생긴 일이다. 부부동반 파티가 흥겹게 열리고 있었다. 그 때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건 사람은 베트남 전쟁에서 막 돌아온 그 집 아들이었다. 아들:어머니, 저 돌아왔어요. 어머니:왜 들어오지 않고 전화를 하니 어서 들어오렴. 아들:어머니, 제 친구를 데리고 가고 싶어요. 어머니:그래 좋고 말고, 데려 와서 며칠 함께 지내자꾸나. 아들:하지만 어머니, 이 친구에 대해서 먼저 아셔야 할 일이 있어요. 그는 한 쪽 다리가 없고 한 쪽 팔이 없고 한 쪽 눈이 없고 얼굴은 보기 힘들 만큼 일그러져 있어요. 그 친구를 집으로 데려 가도 괜찮겠어요 어머니:다만 며칠간만 집에 데려 오너라. 아들:제 말씀을 못 알아들으시는군요. 어머니, 저는 그가 우리와 함께 살기를 원한다구요. 어머니는 당황하여 안 된다는 설득을 하기 위해 온갖 변명을 계속했다. 그러는 동안 전하는 끊겼다. 몇 시간 후 경찰서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우리는 금방 외팔, 외다리, 외눈에 얼굴이 형편없이 망가진 청년이 막 자살한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시체에 있는 신분증을 보고 그가 당신의 아들인 것을 알았습니다 라고.
2. 주님의 아픔은 사라의 무한성에서 생긴 것.-우리 주님은 죄인과 세리의 친구-문중이도 받아 주시고-앉은뱅이도 고쳐 주셨다.-사람들이 경멸하는 죄인인 여자의 섬김도 받으시고-그를 배신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다.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시면서 하시는 말씀은 “(눅13: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 “(눅19:42)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 자신을 죽이는 자들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심은 사랑의 무한성 때문이다. 교훈
1. 하나님의 징계는 아프다. 징계를 받기 전에 돌이키라.
2. 하나님은 지금도 기다리신다. 그 분이 용서치 못할 죄는 없다.
3. 이미 징계를 받았다면, 그 분께 돌아와 회복을 받으라.
4. 회개의 양보다 은혜의 양은 넘친다. 주께서 돌이키시는 날에는 당신의 입에 웃음이 가득할 것이다. “(시126: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시126: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816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