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소서 (사62:1-12)
본문
교회와 그 구성원이 되는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과 계시를 세상 사람들에 게 증거하는 데 꼭 있어야 하는 증인입니다.성령님의 권능과 역사,하나님의 세상을 구원코자 하시는 의지와 섭리는 증인된 하나님의 자녀들의 증거행위를 통해 성취되어 집니다.예수님은 최후의 지상에서의 말씀에서 땅끝까지 이르 러 증인이어야 함을 명시하셨습니다.증인이란 어떤 일에 증거로 나서서 사건의 시비를 판단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결정적인 보증,증명, 진술 등을 하는 제 삼자입니다. 증인으로 이 세상에 우리가 내 보내졌다는 것은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보 다 더 많은 것을,정확하게,깊이있게 용기와 지혜를 가지고 하나님의 편에 서 서 하나님의 하시는 모든 일을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더 차원높은 깊이를 가진 '증거의 영역'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올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소서!'말씀을 표어로 삼고 새 해 출발을 합니다.이스라엘의 회복과 번영을 예언한 이사야 선지자는 이 스라엘이 지금의 고난과 수모로 겪는 고통과 두려움에서 벗어나려면 오직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영적체험을 하는 증인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본다'는 말은 '안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다는 것은 눈으로 사물의 외양이나 정체,변화,움직임,상태,의미,성격,특성 등을 알고,지각,경험하는 것입니다.중학교 시절 영어시간에 아주 무서운 선 생님을 저는 지금도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분은 수업시작부터 끝날 때 까지 수업에 관련된 말씀 외에는 거의 하지 않는 분이셨습니다.아이들은 그래도 이 시간에는 다른 학과 시간과는 정말 다르게 조용조용 수업에 임했습니다.같 국민학교를 졸업한 막무내기들이었 지만 그 시간엔 거의 자신들 세대의 성격과는 동떨어지게 행동했던 것입니다.왜 그랬을까요 아이들은 아무 말없는 선생님이었지만 새 학기 첫 시간 학급 전체 모든 아이들의 종아리를 사정없이 때린 교탁위에 놓여있는 나무 몽댕이와 무표정한 선생님의 얼굴에 기가 죽어 그 누구도 감히 떠들거나 딴 짓을 한다는 것이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눈으로 아이들은 선생님에 대해 나름대로 경험했던 것입니다.이스라엘 백성 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는 경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아주 중요한 일 이었습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한 것들,홍해바다가 갈라져 마른 땅으로 건너간 것,광야에서 성막을 덮은 광채와 구름,진행하는 이스라엘을 위해 예 비된 구름기둥,불기둥,하늘에서 떨어진 만나와 메추라기,반석에서 솟아난 물, 사막에서 발견하게 된 열 둘 샘물과 종려나무들,호렙산에서의 장엄한 광경, 이 모든 것들은 다 이스라엘이 보았던 하나님의 영광이었습니다.
이 영광은 1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하나님 자신이 임재하신 것으로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의 확신'을 갖게 했습니다.인간이 언제 비참해 지고 두려움에 갇혀 불안하게 사는 지 아십니까,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임재하심에 대한 확신이 없어 질 때입니다. 그래서 우린 하나님의 임재를 보는 영적인 경험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서 .이사야는 어둠으로 갈 길 몰라 방황하는 이스라 엘과 열방을 구원하는 횃불로,강하신 능력의 오른팔로,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충실히 다한 백성들에게 주시는 상급과 보상으로,한 행동에 대한 공정하고도 공평한 보응으로,활동하시는2하나님의 권능을 말하고 있습니다.하나님 의 영광을 보아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는 것입니다.무기력 하고 결실없는우리가 아닌 능력위에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함을 말해줍니다. 주님께 책망과 저주를 받게 된 열매맺지 못한 무화과나무가 되선 안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은3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열의와 사랑이기도 했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쉬지도 않으시고 잠잠지 않으시고 아 끼고 돌보신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을 '헵시바'라 부르신다고 하시는 데,이는 히스기야왕의 아름다운 왕후의 이름과 동일한 것으로 '너는 내게 기쁨의 대 상이다'라는 뜻으로,왕이 아름다운 왕후를 진정 참된 애정의 대상으로 삼고 사랑하듯 이스라엘을 그렇게 사랑의 대상으로 삼는 다는 의미입니다.
왕은 머리에 얹은 왕관과 면류관을 통해 자신의 권위와 영예를 만세상에 드러 내 보입니다.왕관은 곧 자신이 왕임을 증명하는 증거가 되는 것으로 곧 왕인 자기 자신인 것입니다.이스라엘은 하나님에게 곧 하나님 자신인 왕관이요 면류관이라는 것입니다.하나님은 이스라엘은 마치 신랑이 신부를 기뻐하듯, 사랑과 능력의 팔로 안고 맹세하며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까지 사랑하고 계심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만왕의 왕되신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있음은 우리가 이 세상을 기뻐하며 감사하며 살 수 있게 합니다. 그러나,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하나님의 임재 하심과 권능,그들에 대한 사랑을 보지 못하고 살았습니다.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해 하나님의 영광에서 떠난 이스라엘은 이사야의 선지자의 말에 보 듯 '황무지'로서의 이스라엘,'빼앗긴 자'로서의 이스라엘,'버리운 자'로서의 이 스라엘,'열방에 멸시받는 자'로서의 이스라엘이 되고 말았습니다.황무지를 생각해봅시다.손도 되지 않아 거칠어 진 땅,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한 처량함과 음산함을 느끼지 않습니까,교회는 여기저기 성도들이 사랑과 정성으로 손을 대어 가꾼 모습을 보여 주어야 되는 데 황무지같은 교회의 모습을 보일 순 없지 않습니까 우리는 지역 주민들에게도 아름다운 믿음의 꽃과 사랑의 나 무가 있는 동산으로 비춰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본 이사야 그가 어떻게 그 영광을 볼 수 있었을까요 그 것은 하나님과의 기도를 통해서 였습니다.우리가 볼 영광은 믿음의 눈,영혼 의 눈을 통해서 보게됩니다.기도는 우리의 어두운 눈을 활짝 열게 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도록 해줍니다.지난 새 해 첫날 24시간 연속 기도회를 기 억하십니까,그 날 하루 기도한 것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가 기도 하는 데 전심전력해야 합니다. 교회본당이 너무 추워서 기도하고 싶어도 발 길이 선뜻 나서지 않았겠지만,이제는 하나님께서 추운 겨울에도 지난 해 말 쯤 새롭게 보수한 난방시설이 잘 된 교육관에서 더 기도에 매달리라는 말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게 어쩐 일입니까오히려 새벽에 모이는 것,틈틈히 예배당에 와서 기도하는 발길이 좀처럼 보이지 않으니 말입니다. '본다'는 것은 하나님께 얻은 것을 맡고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 말 '사위를 보다' '집을 보아라' 라는 말의 뜻이 사위를 이제 얻게 되었다는 것이요,우린 밖에 나갈 테니 네가 집좀 잘 맡아서 지키라는 것입니다.이스라엘 백성에게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아 경험한 것은 하나님이 내 게 주신 은혜요,나의 소유가 된 것이고,그것을 맡게 된 것이고 잘 지켜야만 합니다.그래서 이사야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파숫군'이라고 말합니다.종일 쉬지 않고 망대위에서 사방을 둘러보며 두루 살피는 일을 해야만 합니다.이사야는 파숫군의 구체적으로 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는 것'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찬송이란 단순히 '노래'하는 것이 아닙니다.찬송가나 복음송가를 늘 부르라는 말이 아닙니다.찬송은 '하나님을 높이고 기리는 것이요,하나님을 자랑하 고 극찬하며 영광을 높이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이사야는 '만민을 위하여 기'를 놓히 들라고 하였는 데,이 '기'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깃대로세상 사람 들 앞에서 하나님을 한없이 높이고 받들며 사는 우리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올 한 해의 표어에 따른 실천항목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의 실천내용들입니다. 우선1감사하는 생활을 하도록 합시다.지난 날의 서운함과 속상함,원 망과 불평을 다 잊도록 합시다.물론 지금도,앞으로도 힘든 일이 우리 앞에 놓여 있고, 있게 될 지도 모릅니다.그러나,감사함으로 미래를 예비합시다.감사의 깃발을 내려 놓으면 파수군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맙니다.어느 청년이 자기의 과거를 숨긴 채 여인과 사랑을 나누다가 그만 들통이 나고 여인은 그녀의 고향으로 가고 말았습니다.고민하다 못해 청년은 마지막 편지를 썼 습니다.그가 그녀를 사랑한다고 용서해 달라고.그리고 그 표시로 기차를 타 고 그녀의 고향으로 갈 때 기찻길 옆 그녀의 집 과수밭 언덕 높은 나무 위 에 노란 수건을 걸어 놓으라고,그가 기차를 타고 그곳을 지나가게 ㄷ을 때 그곳엔 하나가 아닌 수 십개의 노란수건이 바람에 나팔거리고 있었고 그들 은 서로 다시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사랑을 나누었던 남자가 원 망스럽고 미웠지만 오히려 용서하고 다시 시작하겠다는 감사와 사랑의 표시 를 여인은 했던 것입니다.우리도 늘 하나님께서로에게 감사의 깃발을 바람 에 날리며 생활해야 합니다.
2섬기며 살도록 합시다.바리새인 집에 초대되어 가신 예수님께 옥합을 깨 어 주님의 발에 입을 맞추고 자신의 머리털로 닦았던 여인이 있었는 가 하 면 발 씻을 물조차 내어 드리지 못했던 바리새인들이 있었습니다.형식과 겉 치레로 주님을 초대한 바리새인이 아닌 진정 자신의 옥합을 깨어 주님을 섬 기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누가 하나님을 찬양하며 사는 사람일까요,예수님 이 우리 가련한 인생을 긍휼히 여겨 구원하시고자 스스로 종의 형체를 빌어 섬기는 자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같이 우린 섬김의 모범을 보여 주어 야 합니다.이따금 제자신이 목회하며 어려움을 겪는 데는 섬김의 종으로서 의 모습을 잃어 버릴 때였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섬기지 못하는 경우를 보 면 이치를 따지고,순리를 말하며 권위와 질서를 내세우고 논리와 변명을 늘 어 놓을 때 입니다. 가령 교인이 아주 습관적으로 당연히 아무 말도 없이 교회에 나오지 않으 면,제자신이 속이 상합니다.도대체 아무 사전에 말도 없이 그럴 수 있느냐는 사고입니다.꼭 먼저 전화를 하고 찾아 가서 비위를 맞추어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이런 일들이 저를 고민에 싸이게 하곤 했습니다.그러나,제가 깨 달아야 하는 것은 주님의 심정이요,주님의 행동입니다.주님을 수없이 떠나고 외면하고 돌아서 버린 영혼들을 또 다시 찾아간 섬김의 모습과 행동말입니다.저는 여러분들을 섬기고 싶습니다.섬기고자 합니다.이 섬김의 깃발을 높 이 들고 결코 내려놓지 않는 것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파숫군이 해야 할 일 이기 때문입니다.
3사랑하며 삽시다.하나님을 사랑하는 깃발을,서로를 사랑하는 깃발을 듭시다.연을 날려 보셨게지요.연은 연에 매달린 줄을 잘 요령 껏 다루면서 하늘 에 놓히 떠 오르게 합니다.연은 낮게 떨어지다가도 다시 달려가며 줄을 팽 팽히 잡아 당기면 높이 솟아 오릅니다.우리 사랑의 줄을 힘차게 잡아 당깁 시다.낮아 기울어지고 떨어지려는 사랑의 연을 활활 날려 보십시다. 우리가 하나님께 성령님을 의지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보이 고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히 우리에게 임하여,온 세상은 비록 어두워져 있어도 우리로 세상과 만민에게 하늘의 영광 을 드높히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이 영광은 1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하나님 자신이 임재하신 것으로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의 확신'을 갖게 했습니다.인간이 언제 비참해 지고 두려움에 갇혀 불안하게 사는 지 아십니까,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임재하심에 대한 확신이 없어 질 때입니다. 그래서 우린 하나님의 임재를 보는 영적인 경험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서 .이사야는 어둠으로 갈 길 몰라 방황하는 이스라 엘과 열방을 구원하는 횃불로,강하신 능력의 오른팔로,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충실히 다한 백성들에게 주시는 상급과 보상으로,한 행동에 대한 공정하고도 공평한 보응으로,활동하시는2하나님의 권능을 말하고 있습니다.하나님 의 영광을 보아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는 것입니다.무기력 하고 결실없는우리가 아닌 능력위에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함을 말해줍니다. 주님께 책망과 저주를 받게 된 열매맺지 못한 무화과나무가 되선 안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은3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열의와 사랑이기도 했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쉬지도 않으시고 잠잠지 않으시고 아 끼고 돌보신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을 '헵시바'라 부르신다고 하시는 데,이는 히스기야왕의 아름다운 왕후의 이름과 동일한 것으로 '너는 내게 기쁨의 대 상이다'라는 뜻으로,왕이 아름다운 왕후를 진정 참된 애정의 대상으로 삼고 사랑하듯 이스라엘을 그렇게 사랑의 대상으로 삼는 다는 의미입니다.
왕은 머리에 얹은 왕관과 면류관을 통해 자신의 권위와 영예를 만세상에 드러 내 보입니다.왕관은 곧 자신이 왕임을 증명하는 증거가 되는 것으로 곧 왕인 자기 자신인 것입니다.이스라엘은 하나님에게 곧 하나님 자신인 왕관이요 면류관이라는 것입니다.하나님은 이스라엘은 마치 신랑이 신부를 기뻐하듯, 사랑과 능력의 팔로 안고 맹세하며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까지 사랑하고 계심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만왕의 왕되신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있음은 우리가 이 세상을 기뻐하며 감사하며 살 수 있게 합니다. 그러나,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하나님의 임재 하심과 권능,그들에 대한 사랑을 보지 못하고 살았습니다.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해 하나님의 영광에서 떠난 이스라엘은 이사야의 선지자의 말에 보 듯 '황무지'로서의 이스라엘,'빼앗긴 자'로서의 이스라엘,'버리운 자'로서의 이 스라엘,'열방에 멸시받는 자'로서의 이스라엘이 되고 말았습니다.황무지를 생각해봅시다.손도 되지 않아 거칠어 진 땅,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한 처량함과 음산함을 느끼지 않습니까,교회는 여기저기 성도들이 사랑과 정성으로 손을 대어 가꾼 모습을 보여 주어야 되는 데 황무지같은 교회의 모습을 보일 순 없지 않습니까 우리는 지역 주민들에게도 아름다운 믿음의 꽃과 사랑의 나 무가 있는 동산으로 비춰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본 이사야 그가 어떻게 그 영광을 볼 수 있었을까요 그 것은 하나님과의 기도를 통해서 였습니다.우리가 볼 영광은 믿음의 눈,영혼 의 눈을 통해서 보게됩니다.기도는 우리의 어두운 눈을 활짝 열게 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도록 해줍니다.지난 새 해 첫날 24시간 연속 기도회를 기 억하십니까,그 날 하루 기도한 것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가 기도 하는 데 전심전력해야 합니다. 교회본당이 너무 추워서 기도하고 싶어도 발 길이 선뜻 나서지 않았겠지만,이제는 하나님께서 추운 겨울에도 지난 해 말 쯤 새롭게 보수한 난방시설이 잘 된 교육관에서 더 기도에 매달리라는 말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게 어쩐 일입니까오히려 새벽에 모이는 것,틈틈히 예배당에 와서 기도하는 발길이 좀처럼 보이지 않으니 말입니다. '본다'는 것은 하나님께 얻은 것을 맡고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 말 '사위를 보다' '집을 보아라' 라는 말의 뜻이 사위를 이제 얻게 되었다는 것이요,우린 밖에 나갈 테니 네가 집좀 잘 맡아서 지키라는 것입니다.이스라엘 백성에게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아 경험한 것은 하나님이 내 게 주신 은혜요,나의 소유가 된 것이고,그것을 맡게 된 것이고 잘 지켜야만 합니다.그래서 이사야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파숫군'이라고 말합니다.종일 쉬지 않고 망대위에서 사방을 둘러보며 두루 살피는 일을 해야만 합니다.이사야는 파숫군의 구체적으로 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는 것'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찬송이란 단순히 '노래'하는 것이 아닙니다.찬송가나 복음송가를 늘 부르라는 말이 아닙니다.찬송은 '하나님을 높이고 기리는 것이요,하나님을 자랑하 고 극찬하며 영광을 높이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이사야는 '만민을 위하여 기'를 놓히 들라고 하였는 데,이 '기'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깃대로세상 사람 들 앞에서 하나님을 한없이 높이고 받들며 사는 우리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올 한 해의 표어에 따른 실천항목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의 실천내용들입니다. 우선1감사하는 생활을 하도록 합시다.지난 날의 서운함과 속상함,원 망과 불평을 다 잊도록 합시다.물론 지금도,앞으로도 힘든 일이 우리 앞에 놓여 있고, 있게 될 지도 모릅니다.그러나,감사함으로 미래를 예비합시다.감사의 깃발을 내려 놓으면 파수군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맙니다.어느 청년이 자기의 과거를 숨긴 채 여인과 사랑을 나누다가 그만 들통이 나고 여인은 그녀의 고향으로 가고 말았습니다.고민하다 못해 청년은 마지막 편지를 썼 습니다.그가 그녀를 사랑한다고 용서해 달라고.그리고 그 표시로 기차를 타 고 그녀의 고향으로 갈 때 기찻길 옆 그녀의 집 과수밭 언덕 높은 나무 위 에 노란 수건을 걸어 놓으라고,그가 기차를 타고 그곳을 지나가게 ㄷ을 때 그곳엔 하나가 아닌 수 십개의 노란수건이 바람에 나팔거리고 있었고 그들 은 서로 다시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사랑을 나누었던 남자가 원 망스럽고 미웠지만 오히려 용서하고 다시 시작하겠다는 감사와 사랑의 표시 를 여인은 했던 것입니다.우리도 늘 하나님께서로에게 감사의 깃발을 바람 에 날리며 생활해야 합니다.
2섬기며 살도록 합시다.바리새인 집에 초대되어 가신 예수님께 옥합을 깨 어 주님의 발에 입을 맞추고 자신의 머리털로 닦았던 여인이 있었는 가 하 면 발 씻을 물조차 내어 드리지 못했던 바리새인들이 있었습니다.형식과 겉 치레로 주님을 초대한 바리새인이 아닌 진정 자신의 옥합을 깨어 주님을 섬 기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누가 하나님을 찬양하며 사는 사람일까요,예수님 이 우리 가련한 인생을 긍휼히 여겨 구원하시고자 스스로 종의 형체를 빌어 섬기는 자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같이 우린 섬김의 모범을 보여 주어 야 합니다.이따금 제자신이 목회하며 어려움을 겪는 데는 섬김의 종으로서 의 모습을 잃어 버릴 때였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섬기지 못하는 경우를 보 면 이치를 따지고,순리를 말하며 권위와 질서를 내세우고 논리와 변명을 늘 어 놓을 때 입니다. 가령 교인이 아주 습관적으로 당연히 아무 말도 없이 교회에 나오지 않으 면,제자신이 속이 상합니다.도대체 아무 사전에 말도 없이 그럴 수 있느냐는 사고입니다.꼭 먼저 전화를 하고 찾아 가서 비위를 맞추어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이런 일들이 저를 고민에 싸이게 하곤 했습니다.그러나,제가 깨 달아야 하는 것은 주님의 심정이요,주님의 행동입니다.주님을 수없이 떠나고 외면하고 돌아서 버린 영혼들을 또 다시 찾아간 섬김의 모습과 행동말입니다.저는 여러분들을 섬기고 싶습니다.섬기고자 합니다.이 섬김의 깃발을 높 이 들고 결코 내려놓지 않는 것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파숫군이 해야 할 일 이기 때문입니다.
3사랑하며 삽시다.하나님을 사랑하는 깃발을,서로를 사랑하는 깃발을 듭시다.연을 날려 보셨게지요.연은 연에 매달린 줄을 잘 요령 껏 다루면서 하늘 에 놓히 떠 오르게 합니다.연은 낮게 떨어지다가도 다시 달려가며 줄을 팽 팽히 잡아 당기면 높이 솟아 오릅니다.우리 사랑의 줄을 힘차게 잡아 당깁 시다.낮아 기울어지고 떨어지려는 사랑의 연을 활활 날려 보십시다. 우리가 하나님께 성령님을 의지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보이 고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히 우리에게 임하여,온 세상은 비록 어두워져 있어도 우리로 세상과 만민에게 하늘의 영광 을 드높히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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