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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시키시는 하나님 (사6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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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에 작고(作故)한 유명한 흑인 작가인 알렉스 헤일리가 쓴 '뿌리' 라는 소설 작품이 있습니다. 이 소설은 작가 자신이 조상의 뿌리를 찾아서 과거에서 현재까지 미국에 사는 흑인들의 역사와 삶의 이야기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 소설이 출판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일으 켰고, 공중파 TV에서도 연속물로 방영되기도 했었는데, 우리 나라는 물론 미 국 TV역사상 시청자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끌었던 작품 중의 하나였습니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대서양 연안의 중부 아프리카 에서 살고 있던 쿤타킨테라는 한 젊은이가 노예 상인에 의해서 미국으로 팔 려 갑니다. 그는 원래 한 부족을 다스리는 부족장(추장)의 아들이었습니다. 부족장이라는 신분은 그 사회에서 꽤 높은 신분이었고 이 청년은 밀림에서 열심히 사냥하며 살아가는 성실한 자유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돈에 눈이 먼 백인 노예 상인에게 강제로 잡혀서 미국으로 끌려가 노예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자유인이었다가 졸지에 노예가 된 이 젊은이는 자유없는 노예 생활을 견 딜 수가 없었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자유의 땅, 자기 고향 아프리카로 가기 위해서 생명을 내놓고 탈출을 시도합니다. 그때마다 그는 번번이 실패했고 탈출한 대가로 상상못할 무서운 형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주인으로부터 토비 라는 노예의 이름을 받고 짐승처럼 일만 하다가 그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 치게 되고, 이제 토비라는 이름이 적힌 초라한 무덤만이 쓸쓸한 언덕에 남게 됩니다. 그로부터 상당한 세월이 흐른 후, 어릴 때 강제로 아버지의 품을 떠나 노 예로 팔려 나갔던 딸이 장성해서 아버지 쿤타킨테의 무덤을 찾아옵니다. 이 딸은 아버지의 초라한 무덤을 발견하고서는 하염없는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 면서 아버지의 무덤임을 알려주는 토비라는 팻말을 쳐다봅니다. 이때 딸은 떨리는 손으로 팻말에 적힌 토비라는 이름을 지우고 쿤타킨테라는 원래 이름 으로 바꿔 놓습니다. 잘못된 아버지의 이름을 원래의 이름으로 회복시키는 딸의 모습은 긴장되어 있었고 엄숙했습니다. 그러나 무척 만족스럽고 흐뭇한 표정이었습니다. 아무런 죄도 없이 이역 땅에 끌려와서 짐승과 다름없는 노예 생활을 하고 살았지만, 죽어서까지 더럽고 치욕적인 노예의 이름을 간직할 수 없다는 것 입니다. 딸은 아버지가 이제 더 이상 토비라는 노예의 이름이 아닌, 쿤타킨테 라는 명예로운 아프리카 왕족의 이름을 회복시키고 싶었던 것입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들려주었던 아름다운 아프리카에서 자유인으로의 삶의 모습을, 아버지는 이미 죽어 고인(故人)이 되었지만 다시 회복시켜 주고 싶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를 막론하고 회복시키고 싶어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것은 비단 한 개인이나 어떤 공동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추되고 더렵 혀진 자기의 명예를 회복시키고자 합니다. 약해진 몸을 다시 건강하게 회복 시키고자 합니다. 허리가 가운데로 뚝 잘린 채로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 한반 도를 이제 통일된 한 나라로 다시 회복시키고자 하는 것은 우리 한민족 공동 체 모든 사람들의 한결같은 소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옛날 고구려 광개토 대왕이 정복하여 우리 땅이 되었던 넓고 광활한 중국의 만주 땅까지 다시 회 복시켜야 한다고 욕심을 내기도 합니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 오늘 우리들에게 허락하신 본문 이사야서 61장의 말씀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말씀인 데, 이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3번씩이나 바벨론의 침공을 받게 되었는데, 세 번째 침 략 시기에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당시 유다의 왕 시드기야가 보는 앞 에서 왕자들을 무참하게 학살하고, 그것도 부족해서 살아있는 시드기야의 눈 알까지 빼서 많은 백성과 함께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그것도 부족하여 침략 자들은 하나님의 성전과 왕궁을 불살랐습니다. 많은 집들을 불태웠고 심지어는 예루살렘 성벽까지 허물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던 쓸모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물건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깡그리 가져갔습니다. 아무런 힘없는 가난하 고 천한 백성들만 남겨 놓아 포도원을 지키는 농부로 살게 했습니다. 그나마 남아 있는 백성들은 식민지 백성으로서 온갖 억압과 수탈과 착취 를 당하면서 살아야 했고, 포로로 바벨론에 잡혀간 백성들은 집단 수용소에 서 노예의 신분으로 짐승처럼 살아야 했습니다. 시편 기자는 그 당시 이스라 엘 백성들의 삶의 모습을 시편 137편 1절에서, (시137:1)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 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바벨론 강가에 앉아서 하염없는 눈물을 지으면서 슬퍼 하는 모습을 그린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택받은 백성들이고, 자신들이 살고 있던 유대땅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자신들에게 허락해 주신 땅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은 영구적인 왕조의 중심지이고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기 때문에 영원하리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자랑거리들은 여지없이 부서지게 되었고, 높은 이상은 깨어지고 파괴되었으며 식민지 백성, 바벨론의 포로민이라는 수치심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생각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피하여 깊은 곳에 숨어 버렸고,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우리와 함께 동행하지 않으시며, 우리가 그토 록 애원하며 간구하는 부르짖음도 들어주지 않는다고 믿게 되었고, 따라서 암흑과 절망의 고통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절망과 좌절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때, 선지자 이사야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다시 회복시켜 주 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낙망하고 있는 그들에게 구원의 은총을 베 풀며, 그들의 쓰라린 아픔을 깨끗이 치유해 주고, 하나님과의 잘못된 관계를 정상적으로 회복시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 주며, 수치스러운 그들의 이름 을 다시 명예로운 이름으로 회복시켜 줄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경험하게 될 구원의 모습을 본문 이사야 61장 10절과 11절은 이렇 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사61:10)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 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 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 셨음이라 (사61:11) 땅이 싹을 내며 동산이 거기 뿌린 것을 움돋게 함같이 주 여호와께서 의와 찬송을 열방 앞에 발생하게 하시리라 날마다 시간마다 듣고 들어도 싫지 않은 시(詩)입니다. 정말 아름다운 노 래입니다. 고통 중에 절망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랑과 신부가 모 든 사람들의 축복 속에 영광스러운 결혼식을 올리는 것처럼 그렇게 만들어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현재 당하고 있는 모든 어려운 문제를 깨끗 이 해결해 주시겠다는 놀라운 약속의 말씀입니다. 황폐해진 땅이 싹을 내며 아름다운 열매를 주렁주렁 맺는다고 했습니다. 노예로 끌려가 치욕적인 대우를 받고 살아가던 불쌍한 민족이 이제자랑스러 운 민족이 되어, 많은 민족들 앞에서 힘차게 승리의 노래를 부른다는 말씀입니다.
2. 문제가 회복되지 못할 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각 사람에게 어떤 문제가 회복되지 못할 때 하루 하루의 삶이 불안스럽고 짜증스럽습니다. 한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가정 안에서 부부 사이에 혹은 부모와 자녀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는데 그것 이 회복되지 못할 때 가족 구성원 모두는 불행합니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문제가 많이 발생합니다. 우리는 어떤 문제로 고민하고 있습니까 어떠한 문제가 우리네들의 가정 안에 있으며 또한 그것은 어떻게 회복되어져야 합니까 어떤 문제가 저와 여러분들이 섬기는 우리 성신교회 공동체 안에 있다고 생각하시며, 내가 지금 교제하고 사랑을 나누는 사람 사이에 어떻게 회복되어져야 합니까 이러한 문제들을 누가 해결해 줍니까 어떻게 회복될 수 있겠습니까 물론 어떤 문제는 우리가 스스로 노력함으로써 회복되어질 수 있습니다. 인간 관계에서 실타래처럼 꼬인 문제는 내가 조금 양보함으로 회복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모든 문제의 해결은 하나님께서 하셔야 원만하게 회복될 수 있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 건축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스가랴 선지자는 스가랴서 4장 6절에서, (슥4:6)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 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의 힘으 로 인간의 능력으로는 가능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성령님의 능력으로 된다는 놀라운 말씀입니다. 어느 자매의 고백을 들려 드리겠습니다. 아들이 자신의 부주의로 자기 차 문에 새끼손가락이 끼어 다치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아파 죽겠다고 손가락을 거머쥐고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습니다. 손가락은 금방 까맣게 피멍이 들고 퉁퉁 부어 올랐습니다. 상처입은 아들에게는 물론 미안했고 같이 차를 타고 있던 남편 보기에도 민망했다고 합니다. 병원에 가서 X-Ray를 찍었는데 새 끼손가락 뼈끝이 상했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다친 손가락이 상처가 심해서 혹시 덧나지 않을까 걱정을 하고 있는데, 몇 주일이 지나가면 상처가 아물면서 손톱이 빠지고 새 손톱과 새 살이 날 것이라는 의사의 말처럼 깨끗하게 나았다고 합니다. 아파서 그토록 고통스러 워하던 아들의 손가락이 하루하루가 다르게 나아지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의 아픈 상처를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고 하면 서 하나님께 감사를 돌렸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은 이러한 놀라운 경험을 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지난 '94년 11월에 개척하여 오늘 이 시간까지 우리 교회가 직면했던 모든 어려운 문제들, 도저히 회복할 수 없으리만큼 불가능하 게 보였던 문제들이 하나님의 역사로 회복되어지는 것을 우리는 똑똑히 보았 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난 날에도 그렇게 우리를 인도하셨듯이 현재는 물론, 앞 으로도 그렇게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당하고 있고, 우리 교회가 당하고 있는 어렵고 힘든 모든 문제들을 능히 해결하여 주실 것을 저는 확실히 믿습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들의 간증이고 또한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3. 하나님의 회복시키시는 방법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의 문제들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까 오늘 본문 이사야서 61장의 말씀은 여기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첫째, 구원의 아름다운 소식을 통하여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이사야서 61장 1절부터 3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61:1)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 며, (사61: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사61: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 동안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슬픈 이야기만을 들었습니다. 마음이 상하 고 실망스러운 이야기만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희망의 소식을 듣게 될 것입니다. 포로로 잡혀간 그들은 가난하며, 마음이 심히 상해 있었으며, 포로이기 때문에 갇혀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가난한 마음이 부요해지며 상 한 마음이 고침을 받으며, 포로된 자들이 자유를 얻으며 슬픔을 당한 자들에 게 기쁨의 꽃다발이 안겨지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약속의 말씀은 역사적으로 바사(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바벨론 을 지배하게 되었을 때 그대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고레스 왕을 내가 세운 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레스 왕이 즉위해서 바 벨론의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이제 고국에 돌아가도 좋다는 귀환령을 선포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첫 번째 선포하신 말씀이 바로 이 말씀이셨습니다. 누가복음 4장 18절과 19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눅4:18) 주의 성령님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 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눅4: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자기 자신은 영적인 문제로, 마음의 문제로, 육적인 문제로 고통 당하는 백성들을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가시는 곳마다 사람들에게 하늘 아버지를 알게 하셔서 영적으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상한 마음을 부둥켜안고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시고 생 명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육신적으로는 고통 당하는 소경을 보게 하시고, 혈루병 걸린 여인을 고치 셨으며, 앉은뱅이를 고치시는 등 병든 자의 육체를 회복시키셨습니다. 사탄과 귀신과 사망의 어두운 권세에 매여서 절망과 쓴 뿌리와 두려움에 쌓여 있는 사람들을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때 그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회복의 역 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지금도 그 회복의 역사를 진행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오셨고 저와 여러분들 가정에 오신 것이 구원의 아름 다운 소식이며 복음입니다. 주님의 회복의 역사는 신비합니다. 지금까지 우리 자신에게 회복의 역사가 없었다면 과연 몇 사람이 이 자리에 앉아 있겠습니 까 주님의 회복의 역사가 우리의 생애에 계속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지금도 주님의 회복의 역사가 계속된다는 아름다운 소식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힘들고 어려운 세상을 힘차게 살아갈 수 있으 며, 말할 수 없이 곤고한 날에도 승리의 날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회복시키시는 분이십니다.
둘째는, 영토의 회복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본문 이사야서 61장 4절과 5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61:4)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예로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 (사61:5) 외인은 서서 너희 양 떼를 칠 것이요 이방 사람은 너희 농부와 포도원지기가 될 것이나, 여기 4절과 5절 말씀을 유심히 보시기 바랍니다. 곤고한 타향살이를 이제는 그치고 꿈에도 그리던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 황폐해진 성을 다시 재건하 며 무너진 집을 다시 짓는다고 했습니다. 황무지로 변해 버린 척박한 땅에 푸른 풀이 돋아나는 목장을 만듭니다. 잡초가 우거져 버려진 황무한 땅에 포 도원을 만들어서 맛있는 포도 열매를 먹게 합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대로 포로의 신분으로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게 실현이 도저히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던 해방의 기쁜 소식이 강대국 바벨 론을 멸망시키고 바사(페르시아)의 왕이 되었던 고레스왕 시절에 선포되었습니다. 포로로 잡혀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고국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칙 령이 선포되었습니다. 이 기쁜 소식을 듣고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찬송을 부르며 고국으로 향했 습니다. 이들은 고국에 돌아가서 포도원을 다시 만들고 집을 다시 지었습니다. 하나님은 종들을 미리 예비하셔서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성전을 짓게 하 셨고,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쌓게 하셨고, 에스라를 중 심으로 종교적인 부흥 운동을 일으키셨습니다. 어둡고 암울한 일제시대에 살았던 이상화 시인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를 지었습니다.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에 푸른 들이 맞붙는 곳으로 가네.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정처없이 걸어가네 걸어만 가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네 빼앗기겠네. 여기에서 시인은 나라를 빼앗겨 땅에도 봄조차 이제 오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적인 상태에 있지만, 분명히 봄은 빼앗긴 땅에도 다시 올 것이라는 희망 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일제의 악랄한 통치 가운데서도 일본 제국은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을 하면서 많은 민족 지도자들이 친일파로 변절했던 불행한 기 억을 한국 역사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애타게 그리던 해방이 1945년 8월 15일에 이루어졌습니다. 어떤 학자는 말하기를 이 해방의 소식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셋째는 영적인 회복과 물질적인 번영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본문 이사야서 61장 6절과 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사61:6)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얻을 것이라. 사람들 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열방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며, (사61:7) 너희가 수치 대신에 배나 얻으며 능욕 대신에 분깃을 인하여 즐 거워할 것이라 그리하여 고토에서 배나 얻고 영영한 기쁨이 있으리라.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이방인들의 더러운 군화에 무참하게 짓밟히는데 도 하나님은 마치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은 이 스라엘 사람들이 원수로 생각하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을 그의 종으로 사 용하셨습니다. 은혜를 저버리고 불순종의 삶을 살아가는 배은망덕한 이스라 엘 백성을 그를 통하여 심판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연단의 기간이 지난 다음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신의 거룩 한 백성으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로 다시 회 복된다는 것은 이 세상 어떤 일보다 가장 가치있는 일인 것입니다. 옛날 땅 으로 돌아가면 기름진 땅에서 소출을 두배나 만들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다른 민족들이 보면 부러워 할 정도로 회복시켜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넷째는 정의를 회복시킬 것입니다. 계속해서 8절과 9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61:8) 대저 나 여호와는 공의를 사랑하며 불의의 강탈을 미워하여 성실 히 그들에게 갚아 주고 그들과 영영한 언약을 세울 것이라. (사61:9) 그 자손을 열방 중에, 그 후손을 만민 중에 알리리니 무릇 이를 보는 자가 그들은 여호와께 복받은 자손이라 인정하리라. 이스라엘 공동체에 정의를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국가와 국가 사이에 정의를 회복시킬 것입니다. 불의하게 강탈했던 자들에게 응분의 조치를 취하 시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정의를 사랑했던 후손들을 복되게 할 것입니다. 역사상 진실은 기필코 승리합니다. 이것은 한 국가나 한 교회나 가정 등 공 동체의 역사나 개인의 역사나 마찬가지입니다. 불의한 방법으로 인생을 살아가려는 사람은 처음에는 잘되는 것처럼 보이 지만 결국은 패망하게 됩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불의한 생각과 행동으로 살 아가도 성공하게 될 것이라고 유혹의 손길을 끊임없이 펼쳐 옵니다. 그러나 이것은 속임수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진실만이 승리합니다. 특히 믿음의 사람들, 저와 여러분들은 진실만이 승리한다는 것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 다섯째는 감사와 찬양의 노래를 회복시킬 것입니다. 본문 이사야서 61장 10절과 11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61:10)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 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 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 셨음이라 (사61:11) 땅이 싹을 내며 동산이 거기 뿌린 것을 움돋게 함같이 주 여호와께서 의와 찬송을 열방 앞에 발생하게 하시리라 포로로 잡혀간 백성들에게 무슨 감사가 있고 또한 무슨 찬양이 있겠습니 까 오직 한숨과 곡하는 소리만이 들릴 것입니다. 서로를 향한 불평의 소리 가 들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포로된 백성들에게 감사와 찬양의 노래를 회복시킬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마음속 에 진정한 감사와 찬양의 노래가 있습니까 우리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속한 성신교회와 각 가정 공동체에 감사와 찬양의 노래를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사야의 예언대로 이루어졌던 회복의 역사 가 우리 개개인에게도 가정에도 우리가 속한 성신교회 공동체에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후로부터 오늘 이 시간까지 회복의 역사는 이루어져 왔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안에 계실 때,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의 가정에 주인이 되셨을 때, 주님께서 우리 성신교회 공동체의 머리로 계실 때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분명히 나타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는 부유한 포목상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현재도 경제적인 부를 누리면서 풍요하게 살고 있었고, 장차도 부자로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환경에서 자란 프란시스는 부도 적당히 누리면서 또한 하나님 과의 영적으로 뜨거운 관계를 가지고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뜻과는 반대로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아서 신앙생활은 언제 나 메마른 상태에 머물렀습니다. 그 후에 그는 우연히 마태복음 19장에 등장하는 부자 청년의 이야기를 읽 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바 대로 이 부자 청년은 예수님을 만나 게 되었지만 재물이 많은 연고로 근심하면서 예수님의 곁을 떠나고야 말았습니다. 프란시스는 여기에서 나오는 부자 청년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 았습니다. 많은 재물이 있었지만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가 회복되지 않아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하던 프란시스는 주님의 말씀 대로 순종했습니다. 풍요한 아버지의 집을 떠나 황폐한 나병 환자의 집에 그들과 같이 동고동 락(同苦同樂)하면서 자신의 모든 삶을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맡겼습니다. 사도 적인 청빈 생활을 실천하기 위하여 누더기 옷을 입고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 로 다니면서 온갖 병자들을 돌보아 주고 회개와 사랑의 복음을 외쳤습니다. 그때 그가 시작했던 것이 그 유명한 프란체스코 수도회입니다. 프란시스는 자신이 경험했던 하나님의 회복하시는 역사를 이렇게 시로 표현했습니다. 이 것이 바로 유명한 '평화의 기도'입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며,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며, 자기를 온전히 줌으로서 영생을 얻기 때문이니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미움과 상처와 분열과 의혹과 오류와 절망과 어둠 과 슬픔이 있는 우리 개인의 심령과 가정과 이 땅위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서는 회복시켜 주신다는 것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문제를 회복시키시는 평화의 도구로 우리를 사용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풍성 한 회복의 역사가 여러분의 생애에 풍성히 나타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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