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곳 (사61:1-3,눅4:1-15)
본문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충만히 임하신다는 것은 우리가 바라는 큰 소원 가운데 하나입니다. 기왕 그리스도인이 된 바에야 좀더 철저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우리가 원해서 성령님 충만을 간구하기도 합니다. 성령님 충만하면 방언도 하고 병도 고칠 수 있을테니까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성령님이 오시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실 것이니까 말씀을 깨닫는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담대하게 말씀을 전할 수도 있게 될 것입니다. 어쨌든 성령님이 임하시면 무엇인가 좋은 일이 생기고 다른 사람과 구별된 능력이 내게 임할 것이고, 무엇인가 축복을 받는 것이라는 생각이 대체로 우리가 성령님 충만을 간구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들 심성 속에는 무엇인가 신비한 체험을 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데 성령님 체험이야말로 바로 신비 체험과 직결되는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님 체험을 내적이고 은밀한 체험으로서가 아니라 방언이나 신유의 은사처럼 외적이고 기적적인 체험으로 생각하고 그런 체험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신앙의 높은 경지에 올라간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이 성령님과 관계된 것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우리의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기 위해서 역사하시는 분입니까 성령님께서 우리 병을 고쳐 주시기 위해서 오시는 분입니까 아닙니다.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오시는 목적은 따로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우리 중심으로 성령을 생각하는데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는 생각지 않고 나의 호기심과 욕망과 소원의 충족을 위해서 성령님을 간구하고 있는 우리의 자세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알라딘 램프의 신처럼생각하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필요하면 대령하여 소원을 이루어주는 능력있는 심부름군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성령님 충만을 간구한 것은 대단히 이기적인 동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하겠습니다. 내가 성령님께 무엇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우리가 알고 거기에 따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성령님이 하시는 일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를 요약하여 말하면 `창조(創造)'와 `구원(救援)' 입니다. 성부(聖父) 하나님은 모든 일을 계획하시고 주관하십니다. 성자(聖子)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성육신(成肉身)하시어 고난당하시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시어 지금은 하나님 우편에 계십니다.
성령님 (聖靈)은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의 역사 전반에 역사하셔서 성부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시고, 그 뜻 을 이루도록 능력을 주시기도 하며, 구원의 역사가 성취도도록 일을 하십니다. 성령님은 직접 능력 으로 역사도 하시지만 주로 사람들 속에 임재하셔서 그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원을 성취하 도록 이끌어 가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세에게 성령님이 함께 하셨습니다(출 3:12). 모세와 함께 하신 성령님은 그를 애급에서 고난받는 히브리인들에게로 이끌어 가셨습니다. 그래서, 바로와 싸워 그 민족을 구출하여 가나안으로 향하여 나갔던 것입니다. 모세는 바로에게 열 가지 재앙을 내리게도 하였고,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너기도 하였으며, 광야에서는 반석을 쳐 물이 나게도 하였습니다. 성령님께서 그에게 주신 능력입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모세로 하여금 하게 하신 주된 임무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자손들을 구원하는 일이었습니다. 성령님은 예언자들과 함껫 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게 하셨습니다. 예언자에게 임한 성령님은 그들로 하나님의 큰 구원의 역사를 통찰하게 하시고 이스라엘이 나가야 할 방향이 어디인가를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길에서 벗어나 우상숭배로 빠져버린 그 백성들을 깨우쳐 회개를 촉구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져버리고 다른 길로 나가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와 그 율법의 말씀에 따를 것을 촉구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미래의 계획을 알려 저들로 하여금 그 구원의 역사에 동참할 것을 예언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성령님은 엘리야나 엘리사 같은 예언자에게는 능력으로 함께 하셔서 기적을 행하게도 하셨지만, 문서 예언자(文書 預言者)들에게는 오직 말씀으로만 임재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예수님과도 함께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요단 강에서 세례받고 올라 오실 때 그 위에 강림하셨습니다. 그 이후 성령님은 오직 예수님과만 함께 하셔서 활동하셨습니다. 예수님게서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병도 고치시고 기적도 행하시며, 또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므로 마침내 태초에 예정되었던 하나님의 구원사업을 성취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예수님과 함께 하셔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도록 하신 것입니다. 성령님은 오순절 후 사도들에게 임재하셔서 저들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와 부활의 의 미를 깨닫게 하시고 그리고는 땅끝까지 나가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게 하시고 교회를 세우게 하 셨습니다. 특히 바울과 함께 하신 성령님은 바울로 소아세아와 헬라 지역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간단히 살펴 보아도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곧 알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하시는 일의 주된 임무는 기적을 행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수행하는데 있습니다. 이런 성령님의 임무는 교회의 2천년 역사를 통해서 수행되어 왔습니다. 따라서 오늘도 성령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는 일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시키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의 도리를 이 땅의 백성들로 하여금 받아들이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성령님 충만을 간구하여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려는데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님 충만을 간구하는 까닭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사도들과 같이 일군으로 참여하기 위해서입니다. 능력이 왜 필요합니까 적그리스도와 싸우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기적이 왜 필요합니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환상이 왜 필요합니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대한 확신을 위해서입니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성령님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위해 활동하시게 하는 것이 아니 라 그로 하여금 방언과 신유의 은사를 나누어주는 역할만 감당케 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을 받았 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교회, 자기 명예를 위해서만 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 불의가 이 땅에 가득한데도 이는 외면한 채 자기 성공, 자기 만족에만 도취해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지금 이 땅에서 하시고 싶어하는 일이 무엇일까요 이 수 많은 교회들로 하여금 깨어 일어나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무엇인지 알게 하셔서 그 뜻을 오늘 이 땅에 실현케 하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우리는 이 성령님의 역사를 훼방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역사 때문에 바쁘신 성령님을 붙잡고 우리는 그 기적이 신기하니다른 것은 고만두고 기적만 보여달라고 조르는 어린 아이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이제 정신을 차리고 성령님이 성취하고자 하시는 구원의 역사를 위해 간구하고 동참하여야 하겠습니다.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곳 그러면, 이렇게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위해 활동하시는 성령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를 인도해 가시는 곳이 어디일까요 시편 23편에 노래한대로 잔잔한 물가와 푸른 풀밭과 같은 평안한 안식처로 인도하실까요 아무 문제도 없고 고통도 없는 세계로 우리를 이끄실까요 아닙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일하게 하시기 위하여 일감이 있는 곳으로 인도해 가십니다. 문제를 해결하게 하시기 위해서 문제가 있는 곳으로 이끄시는 것입니다. 본문인 이사야서 61장에 보면, 야훼의 신이 고난받는 종에게 임하여 오셔서 그를 가난한 자에게로, 마음 상한 자에게로, 모든 슬픈 자에게로 인도하셨습니다. 가난한 자에게로 이끄셔서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시고, 마음 상한 자에게로 가게 하셔서 고치게 하시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로 이끄셔서 놓임을 전파하게 하셨고, 모든 슬픈 자에게 가게 하셔서 저들을 위로하게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님은 야훼의 종으로 하여금 고난이 있는 곳으로 가게 하셔서 그들에게 자유와 위로와 기쁨을 주게 하신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모세를 어디로 인도하셨습니까 애급의 바로에게로 인도하시지 않았습니까 모세 자신은 그렇게 가기를 두려워했던 바로에게로 성령님은 그를 이끌어 가셨습니다. 성령님은 예언자들을 어디로 인도하셨습니까 바로 이스라엘로 타락케 만들고 있는 왕들에게로 이끌지 아니하셨습니까
누가복음 4장 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성령님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 오셨는데, 성령님은 그를 이끌어 광야에 나가게 하시고 거기서 40일간 금식케 하신 후 마귀에게 시험을 받게 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예수를 바로 죄의 근원인 마귀에게로 이끌어 가셨습니다. 그래서 그와 정면으로 부딛쳐 싸우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예수님을 이끌어 십자가로 나가게 하시지 않았습니까 예수님 자신도 십자가를 지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간절하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성령님은 그것을 허락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를 이끌어 십자가로 나가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신 성령님은 그를 영광의 자리로 이끄신 것이 아니라 마귀에게로, 고난의 골짜기로, 십자가로 이끌어 가셨던 것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구원이 성취되는 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들과 함께 하신 성령님 역시 그들을 고난과 핍박 가운데로 인도하시지 않았습니까 성령님 충 만함을 받은 사도 가운데 평안하게 지낸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가 잡혀가고 채찍질 당하고 옥에 갇히고 마침내는 순교당하지 아니하였습니까 사도 바울의 일생을 보면, 그는 전도자이기에 끝없는 고생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성령님에 이끌려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려고 땅끝까지 가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전쟁과 기아, 억압과 착취, 생태게의 파괴와 생명의 위협, 불의와 도덕성의 타락, 이것들이 우리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이 아닙니까 성령님은 오늘도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게 하시기 위해서 교회들을 이 문제들에 직면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에 오신 성령님은 이 교회들로 하여금 오늘의 이 땅의 분단의 비극과 직면하게 하시며, 남북에서 공히 저질러지고 있는 인권탄압과 불의와 거짓과 도덕적 타락 그리고 생태게의 심각한 파괴로부터 오는 문제에 직면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들은 이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순순히 따르고 있습니까 오늘 한국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성령님운동은 본질적으로 잘못되고 있습니다. 성령님이 인도하시고자 하는 방향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성령님의 능력은 성령님이 시키고자 하시는 일에 종사할 때만 필요합니다.
그런데, 일은 하지 않고 능력만 달라고 기도하고 그 능력을 엉뚱한 곳에 사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한국교회는, 종교는 정치에 간여해서는 안된다고 선언해 놓고 교회를 피난처로 삼아 거기서 안주하며 거기서 자기들끼리 낙원을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성령님은 그런 교회들 가운데 계시지 않습니다. 성령님은 한가하게 우리의 그런 안이한 요구에 응답하고 계실 틈이 없으십니다. 그는 성부 성자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실천하기에만도 바쁘신 분입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정신을 차리고 올바로 성령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곳이 어디인가를 분명히 알고 바르게 따라가야 하겠습니다. 그곳이 문제가 있고, 고난이 있으며, 가기 싫은 곳이라 할지라도 주저하지 말고 나가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님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지고 성령님 충만을 간구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가 올바로 이해한다면 함부로 성령님 충만하게 해달라고 간구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죽을 각오가 되어 있지 아니하고는 성령님 충만함을 간구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를 완전히 하나님께 바쳐 희생할 각오가 없이는 성령님이여 오소서라고 큰소리로 기도하기가 어렵습니다. 성령님은 결코 우리를 황홀경으로 이끌어 신비의 체험을 하게 하시는 영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불의한 세상 한복판으로 내 보내시는 분입니다. 거짓의 세력들과 맞서 싸우도록 우리를 몰아내시는 분입니다. 거기에 고통이 따르고 십자가를 지는 일이 있는 줄 아시면서 성령님은 우리를 그곳으로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오늘 진정으로 이 땅에는 성령님 충만한 교회가 필요한 때입니다. 타락한 도덕성을 회복하고 이 땅에 자유와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성령님 충만함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가기는 싫지만 그래도 회피할 수 없는 문제라면 이제 담대히 나서서 성령님 충만함을 간구하고 능력으로 무장하여 악의 세력과 직면하여야 하겠습니다. 이제 회피하지 말고 성령님의 능력으로 무장하여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기 위하여 일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님 (聖靈)은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의 역사 전반에 역사하셔서 성부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시고, 그 뜻 을 이루도록 능력을 주시기도 하며, 구원의 역사가 성취도도록 일을 하십니다. 성령님은 직접 능력 으로 역사도 하시지만 주로 사람들 속에 임재하셔서 그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원을 성취하 도록 이끌어 가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세에게 성령님이 함께 하셨습니다(출 3:12). 모세와 함께 하신 성령님은 그를 애급에서 고난받는 히브리인들에게로 이끌어 가셨습니다. 그래서, 바로와 싸워 그 민족을 구출하여 가나안으로 향하여 나갔던 것입니다. 모세는 바로에게 열 가지 재앙을 내리게도 하였고,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너기도 하였으며, 광야에서는 반석을 쳐 물이 나게도 하였습니다. 성령님께서 그에게 주신 능력입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모세로 하여금 하게 하신 주된 임무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자손들을 구원하는 일이었습니다. 성령님은 예언자들과 함껫 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게 하셨습니다. 예언자에게 임한 성령님은 그들로 하나님의 큰 구원의 역사를 통찰하게 하시고 이스라엘이 나가야 할 방향이 어디인가를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길에서 벗어나 우상숭배로 빠져버린 그 백성들을 깨우쳐 회개를 촉구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져버리고 다른 길로 나가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와 그 율법의 말씀에 따를 것을 촉구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미래의 계획을 알려 저들로 하여금 그 구원의 역사에 동참할 것을 예언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성령님은 엘리야나 엘리사 같은 예언자에게는 능력으로 함께 하셔서 기적을 행하게도 하셨지만, 문서 예언자(文書 預言者)들에게는 오직 말씀으로만 임재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예수님과도 함께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요단 강에서 세례받고 올라 오실 때 그 위에 강림하셨습니다. 그 이후 성령님은 오직 예수님과만 함께 하셔서 활동하셨습니다. 예수님게서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병도 고치시고 기적도 행하시며, 또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므로 마침내 태초에 예정되었던 하나님의 구원사업을 성취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예수님과 함께 하셔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도록 하신 것입니다. 성령님은 오순절 후 사도들에게 임재하셔서 저들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와 부활의 의 미를 깨닫게 하시고 그리고는 땅끝까지 나가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게 하시고 교회를 세우게 하 셨습니다. 특히 바울과 함께 하신 성령님은 바울로 소아세아와 헬라 지역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간단히 살펴 보아도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곧 알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하시는 일의 주된 임무는 기적을 행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수행하는데 있습니다. 이런 성령님의 임무는 교회의 2천년 역사를 통해서 수행되어 왔습니다. 따라서 오늘도 성령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는 일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시키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의 도리를 이 땅의 백성들로 하여금 받아들이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성령님 충만을 간구하여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려는데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님 충만을 간구하는 까닭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사도들과 같이 일군으로 참여하기 위해서입니다. 능력이 왜 필요합니까 적그리스도와 싸우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기적이 왜 필요합니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환상이 왜 필요합니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대한 확신을 위해서입니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성령님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위해 활동하시게 하는 것이 아니 라 그로 하여금 방언과 신유의 은사를 나누어주는 역할만 감당케 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을 받았 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교회, 자기 명예를 위해서만 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 불의가 이 땅에 가득한데도 이는 외면한 채 자기 성공, 자기 만족에만 도취해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지금 이 땅에서 하시고 싶어하는 일이 무엇일까요 이 수 많은 교회들로 하여금 깨어 일어나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무엇인지 알게 하셔서 그 뜻을 오늘 이 땅에 실현케 하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우리는 이 성령님의 역사를 훼방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역사 때문에 바쁘신 성령님을 붙잡고 우리는 그 기적이 신기하니다른 것은 고만두고 기적만 보여달라고 조르는 어린 아이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이제 정신을 차리고 성령님이 성취하고자 하시는 구원의 역사를 위해 간구하고 동참하여야 하겠습니다.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곳 그러면, 이렇게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위해 활동하시는 성령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를 인도해 가시는 곳이 어디일까요 시편 23편에 노래한대로 잔잔한 물가와 푸른 풀밭과 같은 평안한 안식처로 인도하실까요 아무 문제도 없고 고통도 없는 세계로 우리를 이끄실까요 아닙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일하게 하시기 위하여 일감이 있는 곳으로 인도해 가십니다. 문제를 해결하게 하시기 위해서 문제가 있는 곳으로 이끄시는 것입니다. 본문인 이사야서 61장에 보면, 야훼의 신이 고난받는 종에게 임하여 오셔서 그를 가난한 자에게로, 마음 상한 자에게로, 모든 슬픈 자에게로 인도하셨습니다. 가난한 자에게로 이끄셔서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시고, 마음 상한 자에게로 가게 하셔서 고치게 하시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로 이끄셔서 놓임을 전파하게 하셨고, 모든 슬픈 자에게 가게 하셔서 저들을 위로하게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님은 야훼의 종으로 하여금 고난이 있는 곳으로 가게 하셔서 그들에게 자유와 위로와 기쁨을 주게 하신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모세를 어디로 인도하셨습니까 애급의 바로에게로 인도하시지 않았습니까 모세 자신은 그렇게 가기를 두려워했던 바로에게로 성령님은 그를 이끌어 가셨습니다. 성령님은 예언자들을 어디로 인도하셨습니까 바로 이스라엘로 타락케 만들고 있는 왕들에게로 이끌지 아니하셨습니까
누가복음 4장 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성령님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 오셨는데, 성령님은 그를 이끌어 광야에 나가게 하시고 거기서 40일간 금식케 하신 후 마귀에게 시험을 받게 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예수를 바로 죄의 근원인 마귀에게로 이끌어 가셨습니다. 그래서 그와 정면으로 부딛쳐 싸우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예수님을 이끌어 십자가로 나가게 하시지 않았습니까 예수님 자신도 십자가를 지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간절하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성령님은 그것을 허락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를 이끌어 십자가로 나가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신 성령님은 그를 영광의 자리로 이끄신 것이 아니라 마귀에게로, 고난의 골짜기로, 십자가로 이끌어 가셨던 것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구원이 성취되는 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들과 함께 하신 성령님 역시 그들을 고난과 핍박 가운데로 인도하시지 않았습니까 성령님 충 만함을 받은 사도 가운데 평안하게 지낸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가 잡혀가고 채찍질 당하고 옥에 갇히고 마침내는 순교당하지 아니하였습니까 사도 바울의 일생을 보면, 그는 전도자이기에 끝없는 고생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성령님에 이끌려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려고 땅끝까지 가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전쟁과 기아, 억압과 착취, 생태게의 파괴와 생명의 위협, 불의와 도덕성의 타락, 이것들이 우리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이 아닙니까 성령님은 오늘도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게 하시기 위해서 교회들을 이 문제들에 직면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에 오신 성령님은 이 교회들로 하여금 오늘의 이 땅의 분단의 비극과 직면하게 하시며, 남북에서 공히 저질러지고 있는 인권탄압과 불의와 거짓과 도덕적 타락 그리고 생태게의 심각한 파괴로부터 오는 문제에 직면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들은 이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순순히 따르고 있습니까 오늘 한국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성령님운동은 본질적으로 잘못되고 있습니다. 성령님이 인도하시고자 하는 방향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성령님의 능력은 성령님이 시키고자 하시는 일에 종사할 때만 필요합니다.
그런데, 일은 하지 않고 능력만 달라고 기도하고 그 능력을 엉뚱한 곳에 사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한국교회는, 종교는 정치에 간여해서는 안된다고 선언해 놓고 교회를 피난처로 삼아 거기서 안주하며 거기서 자기들끼리 낙원을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성령님은 그런 교회들 가운데 계시지 않습니다. 성령님은 한가하게 우리의 그런 안이한 요구에 응답하고 계실 틈이 없으십니다. 그는 성부 성자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실천하기에만도 바쁘신 분입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정신을 차리고 올바로 성령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곳이 어디인가를 분명히 알고 바르게 따라가야 하겠습니다. 그곳이 문제가 있고, 고난이 있으며, 가기 싫은 곳이라 할지라도 주저하지 말고 나가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님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지고 성령님 충만을 간구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가 올바로 이해한다면 함부로 성령님 충만하게 해달라고 간구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죽을 각오가 되어 있지 아니하고는 성령님 충만함을 간구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를 완전히 하나님께 바쳐 희생할 각오가 없이는 성령님이여 오소서라고 큰소리로 기도하기가 어렵습니다. 성령님은 결코 우리를 황홀경으로 이끌어 신비의 체험을 하게 하시는 영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불의한 세상 한복판으로 내 보내시는 분입니다. 거짓의 세력들과 맞서 싸우도록 우리를 몰아내시는 분입니다. 거기에 고통이 따르고 십자가를 지는 일이 있는 줄 아시면서 성령님은 우리를 그곳으로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오늘 진정으로 이 땅에는 성령님 충만한 교회가 필요한 때입니다. 타락한 도덕성을 회복하고 이 땅에 자유와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성령님 충만함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가기는 싫지만 그래도 회피할 수 없는 문제라면 이제 담대히 나서서 성령님 충만함을 간구하고 능력으로 무장하여 악의 세력과 직면하여야 하겠습니다. 이제 회피하지 말고 성령님의 능력으로 무장하여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기 위하여 일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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