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가상 칠언 (사53:4-7)
본문
오늘은 2000년전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감당하시고 죽으신 바로 그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날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어 주신 이 사실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날을 잊지 말고 주님의 고난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고난들은 미래의 소망을 위한 고난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고난이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위한고난 이라면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면서 참고 인내하기를 복음을 위하여 비록 전도함에 힘들고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나의 성질을 다 죽이고 나의 잘못된 고집을 다 죽이고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수고와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수많은 신학자인 사람들은 예수님을 신학적으로 정확하게 규명하기 위하여 많은 연구와 연구를 거듭 하면서 얻어낸 결과는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과 동등 되신 하나님이오 예수님은 신격에 있어서 하나님과 동등 되심을 말했습니다. 성삼위 중 2위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 이 땅의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이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인하여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요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라고 말씀을 한 것입니다. 이사야에보면 예수님에관하여 잘 말해 주고 있는데 (사53:4-7)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 라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살이 찢기고 피가 나고 머리에는 가시로 관을 쓰셨는데도 마치 양이 덜을 깍는목자들 앞에 잠잠함 같이 잠잠했다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고통이 뒤따르고 수많은 어려움이 지금 임하고 찢어지는 고통이 임하고 지옥의 고통을 맛보면서도 주님은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사명을 완수하시고 자기 백성을 위하여 죽어 주시기 위하여 수많은 그 고통을 참고 인내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주님 앞에만큼은 아무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어느 집사님이 남편에게 너무도 매를 맞고 집에서 쫓겨나기가 일수고 돈도 잘 벌어다 주지 않고 너무도 힘들게 함으로 한 번을 교회로 쫓겨나 철야 아닌 철야하면서 기도하며 주님께 하소연을 했답니다. 하나님 너무 힘들어요 너무 힘들어요 하며 한잠 기도했답니다. 그랬더니 주님은 나타나 위로를 하시면서 “사랑하는 딸아 그렇게 힘이 드느냐 너는 십자가의 고통이 무엇인지 아느냐 나는 너를 위하여 죽어 주었단다. 하시면서 나는 네가 그 고난을 견딜 줄 알았다” 하더랍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중에 하신 말씀을 통하여 말씀을 생각하며 은혜 받겠습니다.
'1'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예수께서 지상의 구원 사역을 마치고자 하는 시점에서 이제 마지막 관문인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하심과 승천하심의 관문중 이제 십자가에 못을 박는 이 백성들 로마 군인과 유대인들의 죄악을 용서하시기를 간구 하는 기도입니다. (눅23:34)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나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 쌔”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행위가 무엇인지를 모르면서 마구잡이로 행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이 죄마저도 주님은 용서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1)예수님은 온 인류가 다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바로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까지 용서하시고 주님은 한 사람이라도 멸망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비록 예수님 당신을 십자가에 못박은 그 사람들까지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는 그 사람들까지 용서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2)예수님은 끝없는 사랑을 인간에게 배 푸십니다. 예수님은 그러기에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합니다. 주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버리고 욕하고 침 뱉고 뺨을 치고 조롱과 멸시를 행하는데도 주님은 용서를 하십니다. 이것은 성령님의 강한 임제 안에서나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주님의 고난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고 사탄이 어찌 할 수 없는 하나님의 나라 거대한 일 입니다.
(3)서로가 남을 용서하고 이해하고 사랑으로 감싸야 합니다. 남을 용서하는 것은 주님의 용서함을 받은 사람들의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이 우리를 용서한 사실을 우리가 믿고 주님의 용서함을 받은 사람들은 남을 용서하고 이해하고 서로가 사랑으로 감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을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를 나의 사건으로 만들지 못한 사람이라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남을 용서하고 안하고는 이러한 차원에서 보면 너무나도 중요한 것입니다.
'2'너와 내가 낙원에 있으리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계시는데 많은 사람이 조롱합니다. 당신이 구세주 아니오 당신이 선지자 아니오 당신이 수많은 사람을 구원하지 않았소 그러니 당신도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 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장면을 보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예수님으 조롱하고 핍박을 했던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형을 당하고 있는 강도들도 지금 조롱합니다. (눅23: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눅23: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그러나 한 강도는 그 중에 지나온 과거를 돌아 봤고 지금 조롱을 당하고 있는 예수님을 생각 해 봤습니다. 그 결과 자기 자신의 수많은 잘못된 과거가 드러났고 예수님은 정 반대로 의롭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을 발견하고 의로운 예수님의 행위를 통하여 주님의 나라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의롭고 누구보다도 정직한 예수님이 잠잠함을 통하여 주님의 신적인 능력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자신의 분명한 모습을 발견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신앙이 주어지는 것이고 성장이라는 난 말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자기를 분명히 알고 자기를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 성공이 찾아 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에 있는 사람에게도 세상 적인 성공이 찾아오고 신앙인 에게는 주님 앞에 쓰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자기 자신을 찾고 발견하고자 하는 사람을 주님은 찾으시고 쓰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이 강도에게 말씀하십니다.(눅23:42)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라고 말씀 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세 번째 주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면서 하신 말씀은 예수님을 낳아 주신 마리아를 부르면서 하신 말씀인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성경에보면 (요19: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26)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은 예수님의 효심을 말씀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자여 라고 하는 말씀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러한 좀 약한 뜻이 아니라 이스라엘에서 어머님에게 최상의 존칭어입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의 해야 할 일 중에 부모를 주 안에서 공경하는것이 가장 귀중한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몸소 섬김의 본을 보여 부모를 섬기게 하였고 자기 부모를 제자들에게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 하는 것입니다. '
4'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시고 하나님 되시기도 하신 예수님을 인간의 죄로 인하여 죽임에 버려두셨고 사망에 빠져 죽을 인생을 대신하여 죽어 주셔야 했기 때문에 주님이 이 고난을 피하게 해 달라는 기도는 듣지를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버림을 당해야 할 버림당함을 주님이 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확실히 버림당하심을 알리고 주님께서도 버림당하심을 지금 하나님 아버지께 호소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마27:46)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버림을 당하심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사귐을 하게 됐습니다. '
5' 내가 목마르다. 예수께서는 구약의 성경의 완성자 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통하여 모든 예언이 이뤄집니다.
(1)주님은 구약의 모든 예언을 이뤄 놓으셨습니다. 성경 말씀의 권위는 일점 일획이라도 변함이 없기 때문에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예언한 모든 말씀도 하나도 빠짐 없이 다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아주 작은 부분까지 다 이루시기 위하여 성경에 예언되어진 대로 말씀하시고 행동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요19:28) “이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흘리심으로 갈증이 나신 것입니다. 주님은 성도들의 영혼의 갈증남을 잘 아시고 계십니다. 우리의 갈 급한 심령을 사랑하셔서 주님의 사랑과 은혜로 우리는 갈 급한 심령의 갈증을 다 해결해 주십니다. '6'다 이루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에 하신 말씀은 다 이루었다 입니다. 이 말씀이야말로 이 땅에 오신 목적의 완성이고 구원 사역의 완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 감사히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요19:29)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우리의 죄를 사 하시고 사망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엄청난 고난을 통하여 주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구원 사역이 완성된 것을 알고 주님의 그 값진 보혈로 우리는 세상을 이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탄을 이기게 된 것입니다. 주님의 다 이루었다 하는 이 말씀은 성도에게 희망이 되며 성도에게 신앙 인의 삶을 살 진정한 이유가되는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주님의 보혈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보혈을 날마다 생각하며 우리의 어려움을 처해 있을 때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참고 인내해야 하는 것입니다.
(2)주님의 다 이뤄 놓으심은 우리는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쉬운 종교는 없습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받고 주님을 주님으로 믿기만 하면 주님은 우리를 완전히 책임져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믿는 믿음이 분명 하기를 원하고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 인의 삶을 사는 것은 믿음의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에서입니다. 믿음은 그 믿음의 모양에 따라 행동이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를 믿는다면 이 믿음이 그 사람의 행동과 생각이 완전히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이 분명한 사람은 행위로 나타남을 알 수 있습니다. 행위는 아닌데 말로만 믿는다면 이것은 믿음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생활 속에서 주님이 나의 주님으로 인정한다면 주님의 인도하심을 확실히 믿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분명한 믿음을 소유한 사람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다 이루었다 하는 말씀은 우리에게 가장 귀중하고 값진 것이 되기에 충분한 주님의 말씀이시고 너무나도 많은 고난을 당하신 주님의 값진 선물입니다. (요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7'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예수께서 마지막 말씀을 하시고 저절로 죽으신 것이 아니라 주님이 스스로가 죽으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죽으셨다는 것만 알지 스스로 버리신 것을 생각치 않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목숨을 버릴 권이 있고 취할 권이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요한 복음에 (요10:1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처음부터 이 길을 가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고 이 일만을 위하여 살으셨고 이일만을 완성하시고 이 땅에 아무 일도 하시지 않으시고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로 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주님은 아버지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눅23: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1)이 말씀은 우리는 영혼을 주님 손에 부탁해야 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영혼이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가게 되고 주님의 도우심을 통하여 이 세상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있을 때에도 주님의 손에 내 영혼을 부탁해야 합니다. 그 다음 우리는 죽음이 임박하여 있을 때 주님께 나의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나이다 하고 기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살아 있으나 죽을 준비를 해 둬야 합니다. 이 죽을 준비는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오 그 다음은 주님을 향해 기도 하는 것인데 바로 나의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나이다. 이 기도는 나의 인생을 주께 맡기나이다. 하는 기도와 같습니다. 나의 영혼을 맡김은 곹 나의 영혼을 주관하시는 주님께 나의 인생을 맞깁니다. 하는 말과 같은 말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날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어 주신 이 사실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날을 잊지 말고 주님의 고난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고난들은 미래의 소망을 위한 고난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고난이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위한고난 이라면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면서 참고 인내하기를 복음을 위하여 비록 전도함에 힘들고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나의 성질을 다 죽이고 나의 잘못된 고집을 다 죽이고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수고와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수많은 신학자인 사람들은 예수님을 신학적으로 정확하게 규명하기 위하여 많은 연구와 연구를 거듭 하면서 얻어낸 결과는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과 동등 되신 하나님이오 예수님은 신격에 있어서 하나님과 동등 되심을 말했습니다. 성삼위 중 2위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 이 땅의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이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인하여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요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라고 말씀을 한 것입니다. 이사야에보면 예수님에관하여 잘 말해 주고 있는데 (사53:4-7)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 라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살이 찢기고 피가 나고 머리에는 가시로 관을 쓰셨는데도 마치 양이 덜을 깍는목자들 앞에 잠잠함 같이 잠잠했다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고통이 뒤따르고 수많은 어려움이 지금 임하고 찢어지는 고통이 임하고 지옥의 고통을 맛보면서도 주님은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사명을 완수하시고 자기 백성을 위하여 죽어 주시기 위하여 수많은 그 고통을 참고 인내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주님 앞에만큼은 아무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어느 집사님이 남편에게 너무도 매를 맞고 집에서 쫓겨나기가 일수고 돈도 잘 벌어다 주지 않고 너무도 힘들게 함으로 한 번을 교회로 쫓겨나 철야 아닌 철야하면서 기도하며 주님께 하소연을 했답니다. 하나님 너무 힘들어요 너무 힘들어요 하며 한잠 기도했답니다. 그랬더니 주님은 나타나 위로를 하시면서 “사랑하는 딸아 그렇게 힘이 드느냐 너는 십자가의 고통이 무엇인지 아느냐 나는 너를 위하여 죽어 주었단다. 하시면서 나는 네가 그 고난을 견딜 줄 알았다” 하더랍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중에 하신 말씀을 통하여 말씀을 생각하며 은혜 받겠습니다.
'1'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예수께서 지상의 구원 사역을 마치고자 하는 시점에서 이제 마지막 관문인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하심과 승천하심의 관문중 이제 십자가에 못을 박는 이 백성들 로마 군인과 유대인들의 죄악을 용서하시기를 간구 하는 기도입니다. (눅23:34)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나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 쌔”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행위가 무엇인지를 모르면서 마구잡이로 행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이 죄마저도 주님은 용서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1)예수님은 온 인류가 다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바로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까지 용서하시고 주님은 한 사람이라도 멸망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비록 예수님 당신을 십자가에 못박은 그 사람들까지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는 그 사람들까지 용서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2)예수님은 끝없는 사랑을 인간에게 배 푸십니다. 예수님은 그러기에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합니다. 주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버리고 욕하고 침 뱉고 뺨을 치고 조롱과 멸시를 행하는데도 주님은 용서를 하십니다. 이것은 성령님의 강한 임제 안에서나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주님의 고난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고 사탄이 어찌 할 수 없는 하나님의 나라 거대한 일 입니다.
(3)서로가 남을 용서하고 이해하고 사랑으로 감싸야 합니다. 남을 용서하는 것은 주님의 용서함을 받은 사람들의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이 우리를 용서한 사실을 우리가 믿고 주님의 용서함을 받은 사람들은 남을 용서하고 이해하고 서로가 사랑으로 감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을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를 나의 사건으로 만들지 못한 사람이라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남을 용서하고 안하고는 이러한 차원에서 보면 너무나도 중요한 것입니다.
'2'너와 내가 낙원에 있으리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계시는데 많은 사람이 조롱합니다. 당신이 구세주 아니오 당신이 선지자 아니오 당신이 수많은 사람을 구원하지 않았소 그러니 당신도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 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장면을 보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예수님으 조롱하고 핍박을 했던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형을 당하고 있는 강도들도 지금 조롱합니다. (눅23: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눅23: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그러나 한 강도는 그 중에 지나온 과거를 돌아 봤고 지금 조롱을 당하고 있는 예수님을 생각 해 봤습니다. 그 결과 자기 자신의 수많은 잘못된 과거가 드러났고 예수님은 정 반대로 의롭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을 발견하고 의로운 예수님의 행위를 통하여 주님의 나라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의롭고 누구보다도 정직한 예수님이 잠잠함을 통하여 주님의 신적인 능력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자신의 분명한 모습을 발견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신앙이 주어지는 것이고 성장이라는 난 말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자기를 분명히 알고 자기를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 성공이 찾아 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에 있는 사람에게도 세상 적인 성공이 찾아오고 신앙인 에게는 주님 앞에 쓰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자기 자신을 찾고 발견하고자 하는 사람을 주님은 찾으시고 쓰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이 강도에게 말씀하십니다.(눅23:42)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라고 말씀 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세 번째 주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면서 하신 말씀은 예수님을 낳아 주신 마리아를 부르면서 하신 말씀인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성경에보면 (요19: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26)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은 예수님의 효심을 말씀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자여 라고 하는 말씀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러한 좀 약한 뜻이 아니라 이스라엘에서 어머님에게 최상의 존칭어입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의 해야 할 일 중에 부모를 주 안에서 공경하는것이 가장 귀중한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몸소 섬김의 본을 보여 부모를 섬기게 하였고 자기 부모를 제자들에게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 하는 것입니다. '
4'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시고 하나님 되시기도 하신 예수님을 인간의 죄로 인하여 죽임에 버려두셨고 사망에 빠져 죽을 인생을 대신하여 죽어 주셔야 했기 때문에 주님이 이 고난을 피하게 해 달라는 기도는 듣지를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버림을 당해야 할 버림당함을 주님이 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확실히 버림당하심을 알리고 주님께서도 버림당하심을 지금 하나님 아버지께 호소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마27:46)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버림을 당하심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사귐을 하게 됐습니다. '
5' 내가 목마르다. 예수께서는 구약의 성경의 완성자 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통하여 모든 예언이 이뤄집니다.
(1)주님은 구약의 모든 예언을 이뤄 놓으셨습니다. 성경 말씀의 권위는 일점 일획이라도 변함이 없기 때문에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예언한 모든 말씀도 하나도 빠짐 없이 다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아주 작은 부분까지 다 이루시기 위하여 성경에 예언되어진 대로 말씀하시고 행동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요19:28) “이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흘리심으로 갈증이 나신 것입니다. 주님은 성도들의 영혼의 갈증남을 잘 아시고 계십니다. 우리의 갈 급한 심령을 사랑하셔서 주님의 사랑과 은혜로 우리는 갈 급한 심령의 갈증을 다 해결해 주십니다. '6'다 이루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에 하신 말씀은 다 이루었다 입니다. 이 말씀이야말로 이 땅에 오신 목적의 완성이고 구원 사역의 완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 감사히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요19:29)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우리의 죄를 사 하시고 사망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엄청난 고난을 통하여 주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구원 사역이 완성된 것을 알고 주님의 그 값진 보혈로 우리는 세상을 이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탄을 이기게 된 것입니다. 주님의 다 이루었다 하는 이 말씀은 성도에게 희망이 되며 성도에게 신앙 인의 삶을 살 진정한 이유가되는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주님의 보혈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보혈을 날마다 생각하며 우리의 어려움을 처해 있을 때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참고 인내해야 하는 것입니다.
(2)주님의 다 이뤄 놓으심은 우리는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쉬운 종교는 없습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받고 주님을 주님으로 믿기만 하면 주님은 우리를 완전히 책임져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믿는 믿음이 분명 하기를 원하고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 인의 삶을 사는 것은 믿음의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에서입니다. 믿음은 그 믿음의 모양에 따라 행동이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를 믿는다면 이 믿음이 그 사람의 행동과 생각이 완전히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이 분명한 사람은 행위로 나타남을 알 수 있습니다. 행위는 아닌데 말로만 믿는다면 이것은 믿음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생활 속에서 주님이 나의 주님으로 인정한다면 주님의 인도하심을 확실히 믿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분명한 믿음을 소유한 사람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다 이루었다 하는 말씀은 우리에게 가장 귀중하고 값진 것이 되기에 충분한 주님의 말씀이시고 너무나도 많은 고난을 당하신 주님의 값진 선물입니다. (요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7'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예수께서 마지막 말씀을 하시고 저절로 죽으신 것이 아니라 주님이 스스로가 죽으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죽으셨다는 것만 알지 스스로 버리신 것을 생각치 않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목숨을 버릴 권이 있고 취할 권이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요한 복음에 (요10:1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처음부터 이 길을 가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고 이 일만을 위하여 살으셨고 이일만을 완성하시고 이 땅에 아무 일도 하시지 않으시고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로 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주님은 아버지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눅23: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1)이 말씀은 우리는 영혼을 주님 손에 부탁해야 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영혼이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가게 되고 주님의 도우심을 통하여 이 세상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있을 때에도 주님의 손에 내 영혼을 부탁해야 합니다. 그 다음 우리는 죽음이 임박하여 있을 때 주님께 나의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나이다 하고 기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살아 있으나 죽을 준비를 해 둬야 합니다. 이 죽을 준비는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오 그 다음은 주님을 향해 기도 하는 것인데 바로 나의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나이다. 이 기도는 나의 인생을 주께 맡기나이다. 하는 기도와 같습니다. 나의 영혼을 맡김은 곹 나의 영혼을 주관하시는 주님께 나의 인생을 맞깁니다. 하는 말과 같은 말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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