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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로우신 하나님 (사54:7-8)

본문

인간은 종교적인 동물입니다. 그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종교가 없던 시대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어느 곳을 막론하고 종교가 없던 곳도 없었습니다. 이런 사실은 인간의 삶의 발자취를 연구해 온 문화 인류학자들에 의해 확인된 바가 있습니다. 그래서 문화 인류학에서는 인간을 homo religionis 즉 종교적 인간이라 부릅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미래의 충격"이라는 책에서 다가오는 21세기는 첨단 정보화 시대가 될 것이라고 내다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재미있는 것은 최첨단 과학시대, 최첨단 정보화시대인 21세기에도 종교는 건재할 것이고, 오히려 종교가 다양한 양상으로 발전해 갈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이런 문화 인류학자들이나 미래학자들의 주장을 빌리지 않더라도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다른 생명체에는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 인간 안에 드리워있다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인간을 특별히 생각하시고, 인간도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이 하나님의 형상이 변질됐습니다. 제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환경파괴로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야 할 연어들이 갈 길을 잃고 엉뚱한 곳을 방황하는 것처럼, 더듬이가 잘린 개미가 가고자하는 곳을 제대로 찾지 못하는 것처럼 인간이 하나님께 제대로 나아갈 수 없게 됐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예 하나님 없다고 떠들어댑니다.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이 아예 멀어버린 것입니다. 영적인 시각장애자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이라고 믿고 따릅니다. 나름대로 종교를 세워서 신을 만들고, 그 신을 경배합니다. 영적인 눈이 삐뚤어진 것입니다. 영적인 사시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지도 모른 채 믿는다고 호들갑을 떱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바로 미신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영적인 눈에 무엇인가가 낀 사람들입니다. 백내장, 녹내장처럼 영적인 눈에 병이든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로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해서는 곤란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믿어도 않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잘못 알고 믿어서도 않됩니다. 하나님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잘 믿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 어떤 분이신 가를 자세하게 가르쳐줍니다. 신학자들은 이런 성경의 가르침을 간략하게 두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본성입니다. 하나님 홀로 드러내시는 특성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은 영이시다'라든가, '하나님은 유일하시다'와 같은 것이 하나님의 본성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나셨을 때 나타나는 하나님의 특성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의로우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다.'와 같은 것들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이런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매우 중요한 내용이 나타납니다. 바로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그 내용을 보다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큰 긍휼로 본문 7절에 보면 "큰 긍휼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큰 긍휼로 대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긍휼이라는 말은 라하밈입니다. 이 말은 자궁을 뜻하는 레헴에서 왔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긍휼을 말할 때 그들의 생명을 잉태하고 보호하여 출산하는 어머니의 자궁을 연상했습니다. 갓난아이가 어머니 뱃속에서 나올 때 예외 없이 웁니다. 그것도 크게 웁니다. 의사들은 갓난아이가 처음 공기를 호흡하기 위해서 운다고 설명합니다. 틀림없는 말입니다.
그런데 심리학자들은 다른 해석을 내 놓고 있습니다. 아이는 어머니 자궁 속에 있을 때 어머니의 맥박소리, 어머니의 심장 고동 소리를 탯줄을 통해 듣고 느끼고 10달 동안 지내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탯줄이 끊기고 그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면서 불안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생 최초로 느끼는 불안 때문에 아이가 운다는 것입니다. 일리가 있는 설명입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맥박 소리를 다시 들려주면 불안한 마음을 떨쳐버리게 된답니다. 놀랍게도 갓난아이는 어머니의 젖을 먹으면서 다시 어머니 심장고동소리를 듣게 됩니다. 젖을 먹어 배고픔을 해소해서 좋기도 하지만 더 좋은 것은 어머니 자궁 속에서 늘 듣던 그 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어서 정서적으로 안정을 되찾게 되어 좋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코넬대학의 소크 박사는 원숭이가 젖을 먹이는 것을 관찰해서 그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42마리의 젖먹이는 원숭이를 관찰했는데 놀랍게도 40마리가 왼쪽 가슴에 안고 젖을 먹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왼쪽 젖이 크고 오른 쪽 젖이 작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심장이 왼쪽 젖가슴에 위치하기 때문에 심장 고동소리를 가장 효과적으로 들려주기 위한 무의식적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런 결과는 사람에게서도 똑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기에 모성애가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자궁을 떠나 불안해서 울고 있는 자식을 불쌍히 여깁니다. 그래서 그 자식을 품에 안고 다시 심장 고동소리를 들려줍니다. 그리고 젖을 먹입니다. 레헴이란 말 즉 긍휼이란 말은 바로 이런 상황하에서 만들어진 말입니다. 즉 어머니가 울고 있는 자식을 불쌍히 여기듯이 하나님께서 울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을 레헴 즉 긍휼이라 했습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울며 하나님 앞에 나오는 자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 예를 성경에서 여러 가지를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자기 죄를 깨닫고 자복하고 통회하는 사람을 긍휼히 여기십니다. 잠 28:13을 보면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말씀했습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한 뒤에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받고 나서 죄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눈물로 통회했습니다. 시6:6을 보면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밥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 짓고 그 죄 때문에 괴로워하고 가슴아파하고 눈물짓는 다윗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 죄를 다 용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 때문에 가슴아파하며 눈물을 흘릴 때 우리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죄가 생각나면, 지은 죄가 떠오르면 긍휼히 여기시는 주님을 바라보시고 바로 눈물로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안타깝게 도움을 청하는 사람을 긍휼히 여기십니다. 눅 18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여리고에서 한 소경을 고쳐주시는 기사가 나옵니다. 한 소경이 길가에 앉아서 구걸하다가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나사렛 예수가 지나가신다는 것입니다. 다짜고짜 큰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른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조용히 하라고 꾸짖고 가로막았습니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더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주님의 긍휼 하심을 입었고, 고침을 받아 보게 되었습니다. 나 혼자 풀기 어려운 문제,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 때문에 고민하십니까 이 소경처럼 소리를 지르십시오. 주 여호와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께서 우리를 고치시고, 주께서 우리 문제를 풀어주시고, 주께서 우리의 막힌 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십니다. 막 6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피곤하셔서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한적한 곳을 찾으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배타고 가시는 것을 보고 달려서 배보다 먼저 그곳에 도착했습니다. 막6:34를 보면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당시 정치 지도자들에게 수탈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영적으로 무시를 당하고 무거운 율법의 짐으로 억압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의지할 곳 없고, 기댈 곳이 없어 예수를 찾아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소망 뒤로하고, 세상 즐거움을 뒤로하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 그들을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십니다. 무겁고 힘겨운 삶의 짐 때문에 고달프십니까 괴롭고 고통스러워 죽고 싶을 때가 있으십니까 주님께로 나오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긍휼히 여기십니다.
영원한 자비로 본문 8절을 보면 "영원한 자비로"라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영원한 자비로 대해주신다는 말입니다. 히브리어로 이 자비라는 말은 '헤세드'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헤세드란 말은 변함이 없는 사랑을 말합니다. 이 헤세드라 하면 선지자 호세아를 생각하게 됩니다. 호세아는 하나님께서 음탕한 여인 고멜과 결혼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결혼하여 세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고멜은 결혼 전에 사랑하던 사람을 잊지 못하고 집을 나갑니다. 호세아가 돌아 오라 간청하지만 들은 척도 않습니다. 급기야 고멜은 창녀가 돼버렸습니다. 호세아가 찾아갔습니다. 속전을 내고 고멜을 되찾아옵니다. 호세아서는 하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헤세드 사랑을 가장 잘 나타내 줍니다. 하나님은 한 번 택한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그가 하나님을 실망시켰더라도 사랑하십니다. 그가 하나님을 외면하고 저버렸더라도 사랑하십니다. 그가 하나님을 배반했더라도 사랑하십니다. 미국 중서부에 살고 있던 지미라는 청년이 살인죄로 체포됐습니다. 재판 날이 다가오자 판사가 지미의 어머니를 만나 부탁했습니다. "부인! 아들을 설득해 주십시오. 아들이 살인을 했다고 인정하라고 해 주십시오.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지만 증거가 너무도 완벽합니다. 빠져 나올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부인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습니다. "판사님! 아무리 그래도 우리 아이가 죄를 짓지 않았다면 그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그 아이를 믿습니다." 그러나 재판 결과는 지미는 사형이었습니다. 사형이 집행되던 날 아침 목사님이 지미를 만났습니다. 지미는 고개를 떨구고 입을 열었습니다. "목사님! 사실입니다. 제가 죽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합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사실 제가 범죄를 시인하지 못했던 것은 어머님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님이 실망하실까 봐 제 죄를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어머님을 속이고 떠나는 것이 더 두렵습니다. 이제 어머님께 사실 그대로 말씀해 주십시오." 목사님이 급하게 부인을 만났습니다. 사실 그대로 알려주었습니다. 너무 충격을 받은 부인은 한 동안 말을 못하고 눈물만 흘렸습니다. 잠시 시간이 흐른 뒤에 부인이 말문을 열었습니다. "목사님, 부탁이 있습니다. 아들이 죽기 전에 꼭 전해 주십시오. 이 엄마는 그래도 우리 지미를 사랑한다고. 그래도 사랑한다고."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래도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 하시고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아직도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이제라도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얼마 동안 떠나 있었습니까 신앙생활을 얼마 동안 쉬었습니까 기도를 쉬고, 봉사를 쉬고, 찬양을 쉬고, 교회 출석을 쉬었습니까 괜찮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십시오. 하나님은 그래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죄를 범했습니까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한 채 모르고 죄를 범했습니까 죄인 줄 알고도 한 때 실수로 죄를 범했습니까 주저하지 마십시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십시오. 하나님은 그래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치 않았습니까 말씀대로 살지 못했고, 예수의 사람답게 살지 못했습니까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모습입니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십시오. 하나님은 그래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우리도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를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본받아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비가 이 세상 속에 널리 퍼지기를 바라십니다. 한 방울의 파란 잉크가 물이 담긴 컵 속에 떨어지면, 서서히 그 컵 속의 물을 파랗게 물들이듯이 이 세상을 하나님의 자비로 가득 채워지기를 바라십니다. 우선 주변에 어려움을 당한 분들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경제위기시대를 맞아 최선을 다했으나 어쩔 수 없이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함께 아픔을 나눠주시고, 사랑을 나눠주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못되게 한 사람들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며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본문에 의하면 그 긍휼 하심이 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누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긍휼 하심이 크십니다. 본문에 보면 영원한 자비라고 했습니다. 자비하심이 끝이 없고, 영원토록 지속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이 놀라운 자비하심이 여러분에게 늘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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