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시작, 유지, 성숙의 비결 (사55:6-13)
본문
“청어 사세요!” 생선 장수가 청어를 한짐 이고 가면서 외쳤습니다. 지나가던 어느 선교사가 물었습니다. “한 마리에 얼마입니까” 한 마리에 천원입니다. 전부 몇 마리죠 스물일곱 마리입니다. 선교사는 스물일곱 마리의 값인 2만 7천원을 주고 생선장수에게 내어 주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청어맛을 봐야겠으니 두 마리만 나에게 주고, 나머지는 도로 이고가면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돈받지 말고 파십시오.” 청어장수는 신이 났습니다. 평생 이렇게 운이 좋은 날은 처음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는 또 다시 목철껏 외쳤습니다. “싱싱한 청어를 돈받지 않고 드립니다!” 그러나 아무리 목이 터져라고 외쳐도 한 사람도 내다보지 않았습니다 공짜로 얻을 수 있었을텐데도 돈을 받지 않고 장사를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도 모든 사람들에게 아무런 대가없이 그저 부르심에 응하기만 하면 구원과 각양 신령한 은사를 거저 주시겠노라 말씀하셨건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청어장수를 외면한 사람들처럼 저마다 다양한 이유를 대며 하나님의 부르심을 외면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본문은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로 시작된 이사야를 통한 하나님의 초대의 말씀에 이어서 이제 이러한 자비로운 하나님의 초대에 응한 자가 마땅히 취해야 할 지혜로운 행동에 대하여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주어진 초대는 곧 구원을 계획하신 하나님의 초대이며, 구원을 성취하신 하나님의 초대입니다. 이러한 신적 초대에 응한 자는 이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께 예배드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곧 신앙의 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신앙, 혹은 신앙 생활은 하나님의 자비로운 초청에 응하여 구원의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항상 따르며 경배하는 생활이라 할 수 있습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이 말씀은 무언가 쾌락과 만족을 찾아 끝없이 방황하는 현대인의 삶을 가장 정확하게 지적하는 말입니다. 오늘 현대인 가운데 목마르지 않은 사람 어디 있습니까 돈에 목말라 하고, 술에 목말라 하고, 사랑에 목말라 하는 것이 우리네 삶의 모습 아닙니까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각기 다른 갈증의 만족을 위해 허덕이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씀 드리자면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참 만족은 없습니다. 본문의 2절을 보십시오. “(사55: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고 했습니다. 돈을 많이 벌면 좋은 사람 버립니다. 술 많이 마시면 건강 버립니다. 마약에 손을 댄 사람 폐인이 되어버립니다.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 영혼의 목마름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겠습니까
1. 하나님께 나아와야 합니다. 본문 말씀은 목마른 자들에게 하나님께 나아오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와야 물도 얻고, 포도주도 얻고, 젖도 얻는다고 합니다. 물은 목을 시원케 하고 포도주는 기쁨을 얻게 하고 젖은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만이 인생의 모든 욕구를 근원적으로 해결하여 주신다는 겁니다. 그러면 왜 이런 결론이 도출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손으로 지음받고 그의 생기에 의해 생령, 즉 살아 있는 영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처음 지어질 때부터 하나님을 의존하며 살 수밖에 없는 존재로 지어졌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그 어떤 것으로도 참 만족과 기쁨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제부터 하나님의 초청에 응하셔서 하나님께로 날마다 나오시기 바랍니다.
2. 성령님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요7:37)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요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이것을 해석하여 “(요7:39)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님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영혼의 모든 갈증이 말끔히 해갈되고 영혼에서 생수의 강이 항상 흘러나기 위해서 우리는 성령님을 받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성령님 충만을 받았던 초대 교회 성도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새 술에 취한 듯이 보였습니다. “(행2:13) 또 어떤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사도 바울은 “(엡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님의 충만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술취한 기쁨은 일시적이요, 또 고통을 망각시키는 힘에 의한 기쁨이지만 성령님은 영혼에 만족을 줍니다. 혹 여러분에게 기쁨이 없습니까 예수 믿는 데도 영혼이 갈하고 허전합니까 성령님 충만을 사모하십시오.
3.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본문 2절 하반절 말씀을 보면 “(사55:2)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사노라면 아무리 밥을 많이 먹어도 속이 허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흔히 “기름진 것”을 먹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본분의 이 말씀은 바로 이러한 경우를 두고 하신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분의 영혼에 “기름진 것”이 되고 주린 영혼에게 만족이 된다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시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시1:3)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읽고 묵상하는 것은 나무가 그 뿌리를 시냇가에 뻗은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에겐 공허감이 있을 수 없습니다. 부실함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는 이렇게 노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63:5)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내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내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시63:5)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내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내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시63:6)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밤중에 주를 묵상할 때에 하오리니 (시63:7)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거이 부르리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 생활을 하면서도 공허하고 심한 갈증을 느낄 때가 있습니까 혹 돈을 벌고 명예를 얻어도 마음 한구석이 허전합니까 우리 영혼이 사는 길은 하나님을 찾아 만나는 길밖에 없음을 기억하십시오. 성령님 충만을 받아야 갈한 영혼이 만족을 얻고 소성케 됨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지속적으로 읽고 묵상할 때 영혼의 골수가 윤택게 되어 참 기쁨을 누릴 수 있음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가운데는 성숙한 신앙을 소유한 사람이 있는 반면에 처음 신앙의 길에 들어선 사람도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신앙의 단계를 살펴봄으로써 자신의 신앙이 어느 단계에 있는지를 점검하며 더욱 성숙한 신앙을 향해 나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1. 신앙의 시작-하나님을 찾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찾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사55: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는 말씀 가운데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찾다”라는 히브리어 “다라쉬”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조심하여 찾다”, “구하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특별히 이 단어가 하나님을 찾는 것에 대해 사용될 때는 성도의 신적 지식과 충고, 통찰력을 추구하여 어떤 특별한 문제에 관해 문의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창25:22) 아이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가로되 이같으면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즉 지금까지는 범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죄인의 신분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 몰랐으며 매사에 그를 찾지도 않았지만, 이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지며 신앙의길에 들어선 사람은 하나님을 강력하게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신4:29)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그를 구하면 만나리라 (욥5:8) 나 같으면 하나님께 구하고 내일을 하나님께 의탁하리라 특별히 하나님께 나아오려는 사람은 “만날 기회를 타서 만날 만한 때에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시32:6) 이로 인하여 무릇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저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만날 기회를 한 번 놓치면 언제 또 기회가 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초대를 받은 자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자비로운 초대에 즉각적으로 기꺼이 응답하여 하나님을 찾아 만나야 합니다. (마 25:1-13 신랑을 맏으로 간 열처녀의 비유)
2. 신앙의 유지-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유지됩니다. 하나님을 찾아서 만남으로 신앙을 시작한 사람은 이제 그 신앙을 항상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불러야 합니다. 본문에도 보면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부르다의 히브리어 “카라”라는 말은 어떤 응답을 얻기 위한 강력한 욕구를 가지고 간절히 부른다는 뜻입니다. 특별히 본문에서 이 단어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경우에 사용된 것으로 기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공간의 지배를 받지 않으시는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하나님은 늘 우리의 주변 가까운 곳에 계십니다. (시139:7)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시139: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시139: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시139:10)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그러나 영적인 눈이 어두워진 자들은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가까이 계신 하나님을 알고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것뿐입니다. 기도하는 자는 가까이 계셔서 택한 자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항상 느낍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이 어디 계신지 도무지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가끔 신앙 생활을 하다가 낙심하여 그 길에서 떠나는 자들을 보게 됩니다. 그들이 떠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가까이 계신 하나님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기도함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사람은 어떠한 어려운 환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을 유지합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우리의 신앙을 유지해 주는 지렛대라 할 수 있습니다.
3. 신앙의 성숙-하나님의 섭리하심을 인정함으로 성숙합니다. (사55:8)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사55:9)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하나님의 생각과 길이 인간이 그것과 다르다는 이사야의 선언은, 곧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이 인간의 삶을 섭리하시는 방법을 시간과 공간의 한계 속에서 생활하는 인간이 도저히 알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역사의 주관자되신 하나님은 때로 우리의 소망과 계획을 좌절시키십니다. “(삼하12:15) 나단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우리아의 처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를 여호와께서 치시매 심히 앓는지라 (삼하12:16)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 (삼하12:17) 그 집의 늙은 자들이 곁에 이르러 다윗을 일으키려 하되 왕이 듣지 아니하고 저희로 더불어 먹지도 아니하더라 (삼하12:18) 이레만에 그 아이가 죽으니라 그러나 다윗의 신복들이 아이의 죽은 것을 왕에게 고하기를 두려워하니 이는 저희가 말하기를 아이가 살았을 때에 우리가 말하여도 왕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셨나니 어뗬게 그 아이의 죽은 것을 고할 수 있으랴 왕이 훼상하시리로다 함이라 ” “(행16:6) 성령님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행16: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행16:8)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행16: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행16:10)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 또한 우리의 재산을 옮기시며, 또 가장 가까운 사람을 데려가시기도 합니다. 이런 일들은 전혀 원하지 않았던 일들이며 우리의 생각과 방법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난 후 우리는 그것이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선하고 은혜로우신 최선의 섭리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시57:2) 내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 ”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하지만 그 당시에 우리는 하나님의 그같은 섭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해서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신앙의 길에서 벗어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과 길은 우리의 것보다 더 높아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많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럴 때 고난 가운데서도 우리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인정하며 거기에 자신을 맡기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우리의 길들을 열어가시고 우리를 더 성숙한 신앙인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이란 “(히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며”, 그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또한 신앙은 영원히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러한 구원의 신앙은 하나님을 찾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여러분은 과연 하나님을 찾았습니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바로 알고 있습니까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신앙은 계속해서 유지, 성장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이 퇴보하지 않기 위해 항상 기도로써 하나님과 대화합시다. 그리고 겸허히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함으로써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숙한 신앙으로 나아갑시다.
그렇다면 우리 영혼의 목마름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겠습니까
1. 하나님께 나아와야 합니다. 본문 말씀은 목마른 자들에게 하나님께 나아오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와야 물도 얻고, 포도주도 얻고, 젖도 얻는다고 합니다. 물은 목을 시원케 하고 포도주는 기쁨을 얻게 하고 젖은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만이 인생의 모든 욕구를 근원적으로 해결하여 주신다는 겁니다. 그러면 왜 이런 결론이 도출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손으로 지음받고 그의 생기에 의해 생령, 즉 살아 있는 영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처음 지어질 때부터 하나님을 의존하며 살 수밖에 없는 존재로 지어졌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그 어떤 것으로도 참 만족과 기쁨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제부터 하나님의 초청에 응하셔서 하나님께로 날마다 나오시기 바랍니다.
2. 성령님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요7:37)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요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이것을 해석하여 “(요7:39)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님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영혼의 모든 갈증이 말끔히 해갈되고 영혼에서 생수의 강이 항상 흘러나기 위해서 우리는 성령님을 받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성령님 충만을 받았던 초대 교회 성도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새 술에 취한 듯이 보였습니다. “(행2:13) 또 어떤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사도 바울은 “(엡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님의 충만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술취한 기쁨은 일시적이요, 또 고통을 망각시키는 힘에 의한 기쁨이지만 성령님은 영혼에 만족을 줍니다. 혹 여러분에게 기쁨이 없습니까 예수 믿는 데도 영혼이 갈하고 허전합니까 성령님 충만을 사모하십시오.
3.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본문 2절 하반절 말씀을 보면 “(사55:2)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사노라면 아무리 밥을 많이 먹어도 속이 허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흔히 “기름진 것”을 먹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본분의 이 말씀은 바로 이러한 경우를 두고 하신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분의 영혼에 “기름진 것”이 되고 주린 영혼에게 만족이 된다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시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시1:3)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읽고 묵상하는 것은 나무가 그 뿌리를 시냇가에 뻗은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에겐 공허감이 있을 수 없습니다. 부실함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는 이렇게 노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63:5)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내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내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시63:5)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내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내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시63:6)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밤중에 주를 묵상할 때에 하오리니 (시63:7)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거이 부르리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 생활을 하면서도 공허하고 심한 갈증을 느낄 때가 있습니까 혹 돈을 벌고 명예를 얻어도 마음 한구석이 허전합니까 우리 영혼이 사는 길은 하나님을 찾아 만나는 길밖에 없음을 기억하십시오. 성령님 충만을 받아야 갈한 영혼이 만족을 얻고 소성케 됨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지속적으로 읽고 묵상할 때 영혼의 골수가 윤택게 되어 참 기쁨을 누릴 수 있음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가운데는 성숙한 신앙을 소유한 사람이 있는 반면에 처음 신앙의 길에 들어선 사람도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신앙의 단계를 살펴봄으로써 자신의 신앙이 어느 단계에 있는지를 점검하며 더욱 성숙한 신앙을 향해 나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1. 신앙의 시작-하나님을 찾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찾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사55: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는 말씀 가운데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찾다”라는 히브리어 “다라쉬”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조심하여 찾다”, “구하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특별히 이 단어가 하나님을 찾는 것에 대해 사용될 때는 성도의 신적 지식과 충고, 통찰력을 추구하여 어떤 특별한 문제에 관해 문의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창25:22) 아이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가로되 이같으면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즉 지금까지는 범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죄인의 신분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 몰랐으며 매사에 그를 찾지도 않았지만, 이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지며 신앙의길에 들어선 사람은 하나님을 강력하게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신4:29)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그를 구하면 만나리라 (욥5:8) 나 같으면 하나님께 구하고 내일을 하나님께 의탁하리라 특별히 하나님께 나아오려는 사람은 “만날 기회를 타서 만날 만한 때에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시32:6) 이로 인하여 무릇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저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만날 기회를 한 번 놓치면 언제 또 기회가 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초대를 받은 자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자비로운 초대에 즉각적으로 기꺼이 응답하여 하나님을 찾아 만나야 합니다. (마 25:1-13 신랑을 맏으로 간 열처녀의 비유)
2. 신앙의 유지-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유지됩니다. 하나님을 찾아서 만남으로 신앙을 시작한 사람은 이제 그 신앙을 항상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불러야 합니다. 본문에도 보면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부르다의 히브리어 “카라”라는 말은 어떤 응답을 얻기 위한 강력한 욕구를 가지고 간절히 부른다는 뜻입니다. 특별히 본문에서 이 단어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경우에 사용된 것으로 기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공간의 지배를 받지 않으시는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하나님은 늘 우리의 주변 가까운 곳에 계십니다. (시139:7)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시139: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시139: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시139:10)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그러나 영적인 눈이 어두워진 자들은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가까이 계신 하나님을 알고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것뿐입니다. 기도하는 자는 가까이 계셔서 택한 자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항상 느낍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이 어디 계신지 도무지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가끔 신앙 생활을 하다가 낙심하여 그 길에서 떠나는 자들을 보게 됩니다. 그들이 떠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가까이 계신 하나님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기도함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사람은 어떠한 어려운 환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을 유지합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우리의 신앙을 유지해 주는 지렛대라 할 수 있습니다.
3. 신앙의 성숙-하나님의 섭리하심을 인정함으로 성숙합니다. (사55:8)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사55:9)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하나님의 생각과 길이 인간이 그것과 다르다는 이사야의 선언은, 곧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이 인간의 삶을 섭리하시는 방법을 시간과 공간의 한계 속에서 생활하는 인간이 도저히 알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역사의 주관자되신 하나님은 때로 우리의 소망과 계획을 좌절시키십니다. “(삼하12:15) 나단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우리아의 처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를 여호와께서 치시매 심히 앓는지라 (삼하12:16)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 (삼하12:17) 그 집의 늙은 자들이 곁에 이르러 다윗을 일으키려 하되 왕이 듣지 아니하고 저희로 더불어 먹지도 아니하더라 (삼하12:18) 이레만에 그 아이가 죽으니라 그러나 다윗의 신복들이 아이의 죽은 것을 왕에게 고하기를 두려워하니 이는 저희가 말하기를 아이가 살았을 때에 우리가 말하여도 왕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셨나니 어뗬게 그 아이의 죽은 것을 고할 수 있으랴 왕이 훼상하시리로다 함이라 ” “(행16:6) 성령님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행16: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행16:8)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행16: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행16:10)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 또한 우리의 재산을 옮기시며, 또 가장 가까운 사람을 데려가시기도 합니다. 이런 일들은 전혀 원하지 않았던 일들이며 우리의 생각과 방법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난 후 우리는 그것이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선하고 은혜로우신 최선의 섭리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시57:2) 내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 ”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하지만 그 당시에 우리는 하나님의 그같은 섭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해서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신앙의 길에서 벗어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과 길은 우리의 것보다 더 높아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많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럴 때 고난 가운데서도 우리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인정하며 거기에 자신을 맡기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우리의 길들을 열어가시고 우리를 더 성숙한 신앙인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이란 “(히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며”, 그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또한 신앙은 영원히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러한 구원의 신앙은 하나님을 찾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여러분은 과연 하나님을 찾았습니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바로 알고 있습니까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신앙은 계속해서 유지, 성장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이 퇴보하지 않기 위해 항상 기도로써 하나님과 대화합시다. 그리고 겸허히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함으로써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숙한 신앙으로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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