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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한 갈대라도 희망이 있습니다 (사42:3)

본문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한 주간도 승리하게 하신 주님께 감사를 드리며 상한 갈대와 같이 지친 영혼과 육신에 오늘 주시는 신령한 만나를 통해서 영육간에 새힘을 얻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갈대의 상징적 의미 갈대는 불안전한 존재입니다. 갈대는 바람만 불어도 흔들리는 자기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고 다스리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세상에 보이는 것으로만 사는 자들을 향하여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마태복음11:7)고 하셨던 것입니다. 갈대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금식하여 지친 육신의 연약한 모습을 보고 “그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이사야58:6)고 했습니다. 갈대는 비천한 존재입니다. 갈대는 보잘것없는 비천한 존재로서 육지의 마른 땅에는 자랄 수 없고 그렇다가 물에서 자라지도 않고 언제나 습기가 많은 하숫가에서 자라는 것으로서(출애굽기2:5) 물이 없으면 살 수 없는 목초입니다.(욥기8:11)
2. 갈대의 용도 성한 갈대는 간혹 갈상자나(출애굽기2:3, 이사야18:1) 측량을 위한 자나(요한계시록11:1, 21:16) 채찍으로(마태복음27:30, 마가복음15:19)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갈대는 나무로 보기에는 너무도 연약하고 그렇다고 풀이나 채소로 보기에는 너무도 억센 정체가 어중간은 목초입니다. 그러나 상한 갈대는 아무 곳에도 쓰일 곳이 없습니다. 낙엽이나 쓰레기나 오물처럼 밖에 버리어질 무가치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한 갈대를 하나님은 꺾지 않으신 것입니다. 여기 주님의 놀라운 은총과 자비와 긍휼의 손길이 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오늘 이 사랑을 충만히 받아서 우리의 인생이 새롭게 변화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 간음하다가 현장에 잡힌 여인은 상한 갈대입니다.
1.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요한복음8:1-11) 모세의 법을 어긴 여인은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한 여인입니다. 그녀는 백주에 간음하다가 잡혀서니 육신의 정욕대로 살아온 여인입니다. 그러니 모세의 법대로 성밖에 버림을 받아 돌에 맞아 죽을 인생입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잡혀 끌려 왔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유대 사회에 존경과 신뢰를 받는 지도자들입니다. 이들에게 간음하다가 잡혔으니 유대사회에서 완전히 버림을 받은 여인입니다. 어른과 아이들에게 돌을 맞을 여인입니다. 그녀를 향하여 남녀노소를 무론 하고 수많은 무리들이 돌을 쥐고 던지려고 하니 그녀는 이웃들과 민중들에게 버림을 받은 여인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다행한 것은 이 여인이 율법의 집행자 대제사장에게로 끌려가지 않고 복음의 주님 앞으로 끌려 왔다는 것입니다.
2. 주님 앞에 끌려 온 여인 주님은 땅에 글을 쓰셨습니다. 주님은 분노한 무리들을 향하여 말하지 않고 땅에 엎드려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모세의 율법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돌판에 새겨졌으나 주님의 복음은 쉽게 지워지고 잊어질 땅에 기록한 것입니다. 주님은 이 사건을 영원히 기억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분노한 군중들의 재촉하심에 주님은 일어나셔서 말씀하시기를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모세의 율법을 사랑의 법으로 감싸서 새계명을 주셨던 것입니다. 저들도 다 성전에서 속죄제와 속건제를 드렸던 죄인들입니다. 양심에 가책을 받은 무리들은 죄 많은 어른으로부터 어린 아이에 이르기까지 다 물러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주님은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요한복음8:10)고 아무도 없음을 아신 주님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율법은 잡아서 끌고 와서 돌로 치려고 하나 복음은 풀어서 나아가 다시 자유케 하는 새소망을 주십니다.
3. 그리스도 안에서 새생활 그 여인이 그 이후로 어떻게 살았는지 성경은 그녀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와 같이 상한 갈대처럼 눌린 인생들에게 주님의 복음을 증거하면서 진리로 자유함을 얻은 그 감격으로 평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상한 갈대라도 주님을 만나면 이러한 새소망을 얻게 됩니다.
둘째/ 아비집을 나간 탕자는 상한 갈대입니다.
1. 아비집을 나간 탕자(누가복음15:11-32) 아비집을 멀리 떠난 탕자는 아비의 가르침과 훈계가 싫어서 아비집을 떠나기로 작정하고 자신의 분깃을 받아 먼 나라로 떠났습니다. 아비의 훈계가 싫어서 집을 나간 아들은 불행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멀리하는 인생은 불행합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시편73:28)고 했습니다. 먼 나라로 간 탕자는 허랑하고 방탕했습니다. 아들의 신분을 망각하여 세상 향락을 즐기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더럽히고 욕되게 했으며 아버지의 재산을 다 탕진했습니다. 결국 주려 죽게 되었으며 그래서 남에게 붙여 사는 기생이 되었고 나중에 돼지 인생으로 절락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모습입니다.
2. 아비집으로 돌아온 탕자 돌아가기로 작정한 탕자는 세속의 돼지인생으로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아비집의 품군으로 사는 것이 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비집 대문은 굳게 잠겨 있을 것이고 정문엔 초병이 서 있을 것을 알고 사정을 해서 하루의 품삯이라도 얻어서 주린 배를 채우고자 탕자는 집으로 돌아갑니다. 아직은 상거가 멀어서 아비집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데 아버지는 아들을 보고 달려와서 탕자를 얼싸 안았습니다. 주님은 죄인인 우리를 구하기 위해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달려와서 갈보리에서 우리를 가슴에 품어 주셨던 것입니다. 집으로 들어오자 종들을 불러 목욕을 시켜서는 제일 좋은 옷을 가라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고 이웃을 불러서 잔치했습니다. 탕자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너무도 놀라운 긍휼이요 자비요 은총인 것입니다.
3. 탕자의 새생활 이것이 울법과 복음의 차이입니다. 탕자는 아비의 재산을 다 탕진하고 아버지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아들의 신분을 망각한 죄로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데 이웃을 불러 잔치하고는 새로운 선언을 하기로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누가복음15:24)고 했습니다. 율법적으로는 이미 죽은 아들이지만 복음으로 다시 사신 것입니다. 이제 그가 아비집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겠는가 아들이지만 아버지의 은헤가 너무 놀랍고 커서 품군의 심정으로 일했을 것입니다. 상한 갈대라도 주님의 품으로 돌아오면 새소망을 얻게 됩니다.
셋째/ 주님을 배신한 베드로는 상한 갈대입니다.
1. 주님을 배반한 베드로(요한복음21:1-25) 말고의 귀를 벤 베드로를 향해 주님은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마태복음26:52)고 책망했을 때 베드로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던 것입니다. 낙심이 된 그는 주님이 대제사장의 집으로 끌려 갈 때 주님의 뒤를 멀찍이 따라갔습니다. 가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이젠 우리에게 소망이 없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대제사장 집 뜰에서 하속들에 비자들에게 갈릴리 나사렛 사람으로서 예수의 당이라고 했을 때 그는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다가 나중에는 맹세하고 저주까지 했습니다.(마태복음26:69-74)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이후에는 제자들이 유대인들이 두려워서 예루살렘 어느 집에서 문을 잠그고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그때 주님이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한복음20:19)고 하시고는 “성령님을 받으라”(요한복음20:22)고 했습니다. 그후에는 의심 많은 도마에게 나타나서 그 옆구리에 창자국을 만져 보게 하시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한복음20:27)고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나는 물고기 잡으려 가노라”(요한복음21:3)하고는 주님을 완전히 떠나가 버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떠나 세속으로 나아간 그들에게는 밤새도록 수고했으나 얻어지는 것이 없었습니다.
2. 디베랴를 찾으신 주님 애들아 고기가 있느냐 하시면서 주님은 그 새벽녘에 찾아가신 것입니다. 사명을 떠나가는 길에 고기가 있을 리가 없습니다. 고기를 흩어시는 분도 주님이시고 고기를 모으시는 분도 주님이시요 고기를 그물 안에 몰아 넣는 분도 주님이십니다. 그때 주님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의 순종은 실패한 자신에 대한 최후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더니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았으며 그러나 찢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잡은 고기로 생선을 구워서 밤새도록 주린 제자들을 불러서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고는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시고는 자신을 발견한 베드로는 이전의 만용은 다 사라지고 상한 갈대인 자신을 바로 직시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주님은 자신의 양무리를 치게 하신 것입니다.
3. 성령님 충만한 새생활 새로운 사명을 받은 그는 주님의 마지막 유언적인 부탁을 지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간절히 기도하여 오순절에 성령님을 충만히 받아 복음을 땅끝까지 증거하는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게 된 것입니다. 주님은 상한 갈대라도 절대로 버리지 않으시고 찾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다 상한 갈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 앞에만 나가면 새로운 소망을 얻습니다. 창기와 같은 여인이라도 좋습니다. 아비집을 박차고 나간 탕자라도 좋습니다. 주님을 등지고 세상으로 갔어도 좋습니다. 상한 갈대라도 주님은 절대로 꺾지를 않습니다. 소망 중에서 승리하는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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