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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따르고 있으나, 옛 사람 그대로다 (사43:14-21,빌3:4-14,요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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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상에, 어떤 사람이 "나는 그야말로 어디 흠잡을 데 가 없는 진짜 한국인"이라고 하면서, "전통적인 양반 중에서 도 최고의 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전주(全州) 이씨(李氏) 왕 손으로 태어났다"고 자랑을 한다면, 손가락질 받기에 꼭 알맞 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존경하는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 3장 4절 이하에서, 이런 자랑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자신은 '순수한 유 대인의 혈통을 이어받아, 오랜 전통의 베냐민 지파에서 태어 났으며, 태어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행했다'는 것입니다. 그 렇기 때문에, 자신은 '어디 한 군데도 흠잡을 데가 없는 진짜 유대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는 유대인으로서 지켜야 할 '유대교 모든 율법과 관습'을 철저하게 지켰다고 말합니다. 그는, 교리에 가 장 엄격했던, 바리새파 회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모든 규 칙과 규정을 빠짐없이 지키려고 온 힘을 쏟았다고, 바울은 말 합니다. 그러니, 그런 면에서는, 자신은 '빠질 데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율법을 잘 지켜서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 자신이야말로 '구원받기에 충분한 사람'이라고, 바울은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바로 알고 믿게 된 다음부터는, 그 모든 것 을 쓰레기처럼 버리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제는, 좀더 의로 운 사람이 되려고 하거나,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으려는 생각을 집어치우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을 신실하게 믿을 때에,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갖게 되고, 그래서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누가복음 15장 '탕자의 비유'에서, 두 아들 의 모습을 비교함으로써, 교훈을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큰아들은, '그동안 아버지를 위해서 한 일이 많다'고 하는, '자기 공로' 의식 때문에,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불 평과 불만을 갖고 살았습니다. 반면에, 작은아들은, 자신이 지 은 죄를 깨닫고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아들이 아닌 품꾼이 되려는 생각으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를 친아들로 받아주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작은아들은 아버 지의 크신 사랑을 충분히 깨달을 수가 있었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죄 짓지 않고는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죄는 깨닫지 못하고, 자기가 잘한 것만 생각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큰아들처럼, 불평과 불만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큰 죄든 작은 죄든지 간 에, 그 지은 죄를 깨닫고 회개할 수 있어야,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깨닫게 되고, 그래야만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인, 요한복음 12장 1-8절 말씀 속에서도, 두 인 물의 비교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예수의 제자인 '가룟 유 다'와, 나사로의 동생인 '마리아'입니다. 가룟 유다는, 회계(會計)를 맡을 정도로, 신임받는 제자였 습니다. 그러나, 차츰 그 마음에는, 교만이 싹트기 시작했고, 돈을 훔쳐내는 도둑질까지 행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마음에서는,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고 하는, 감격이나 기쁨이 사 라진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오히려, 사사건건 비판을 일삼고 불평을 하는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한편 마리아는, 자기 오빠 나사로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일로 인하여, 기쁨과 감격에 차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기 오 라버니를 다시 살려주신 예수님께 대하여, 참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 은혜를 어떻게 보답할까 생각 하던 중에, 나드 향유를 예수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 로 그 발을 닦아드렸던 것입니다. 나드 향유 한 근은, 노동자의 일년 품삯에 해당합니다. 그 녀 자신이, 그 향유가 얼마나 값지고 귀한 것인 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향유는, 바로 그녀 자신의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빠의 생명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그녀는, 오빠의 생명을 구원해주신 예수님께 대하여, 그 감사 한 마음을, 그런 식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가 이것을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그가 내 세우는 명분은, 그럴싸했습니다. '그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 을 돕지, 왜 낭비하느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유다가 가난한 사람을 생각해서 한 말이 아니라고, 요한복음 기자는 지적합니다. 그는, 돈을 자주 훔쳐내는 도둑놈이었습니다.
결국, 오늘의 이 말씀은, 생명을 귀중히 여기는 사람과, 물 질을 귀중히 여기는 사람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둘 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었지만, 하나는 그 마음이 땅에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의 마음은 하늘에 있었습니다. 하늘에 관심을 두 고 사는 사람의 마음에는 감사와 감격이 있었고, 땅에 관심을 두고 사는 사람의 마음에는 욕심과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가 세상에서 자랑하던 모든 것들을, 쓰레기처럼 버렸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알게 된 것이 너무나 존귀해서, 다른 것은 다 무가치하게 여겨졌다는 것입니다. 이 제는, 세상 것을 얻기 위해 애쓰지 않고, '참으로 예수를 아는 일'에 모든 소망을 걸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 믿는 믿음이 어떠하냐'에 따라서, 그 인생 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가룟 유다가 어떻게 인생을 마쳤는지 가룟 유다처럼, 세상 욕심을 이겨내 지 못하거나, 어떤 인간적인 노력으로써 행복을 얻으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할 경우, 우리 중에서도 가룟 유다처럼 될 사람이 없지 않아 있을 것입니다. 주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하나님 손에 달렸으니, 그 '명령에 먼저 순종하는 것'이 옳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신 사건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이 세상 것에 대한 관심보다, 하나님의 뜻을 찾아 행하는 일이, 그 무 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 무엇보다 먼저 행할 일은,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 들이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도록 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화목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예수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서, 세상 모든 것을 쓰레기로 여길 수가 있게 되었는지요 아니면, 여전히 세상 재미에 푹 빠져서 살아가고 있는지요 그렇지 않으면, 세상 걱정 때문에, 예수 에 대한 흥미나 관심이 없어졌는지요
1.옛 모습 그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를 알기 이전과 이후의 삶이, 별 차이가 없습니다. 가 룟 유다처럼, 여전히 돈에 대한 욕심이 강합니다. 바울이 예수를 믿기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자기 의에 빠져서, 겸손도 사라졌고 구원의 기쁨도 없습니다. 대전 어느 큰 교회 목사님의 글이, 교계 어느 잡지에 실려 있었습니다. 목회 전반에 대한, 자신의 형편과 입장을 밝힌 글이었습니다. 20년 전에 개척한 교회가, 이제는 장년 출석이 3천5백 명, 주일학교 1천명, 장로가 32명, 권사가 1백90명, 집 사가 1천3백 명이라고 합니다. 무척 놀라운 성장입니다. 정말, 자랑할 만한 수치입니다. 오늘,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혹시나 그 수치가, 예수보다 더 귀한 가치로 여겨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염려 때 문입니다. 분명히, 그 교회 성장 요인 중에는, 우리가 본받고 따라가야 할 좋은 점이 많습니다. 하지만, 복음의 본질은, 그 외양(外樣)에 있지 아니하고, 그 내용(內容)에 있습니다. 그 크기나 수치는, 결코 내세울 일이 아닙니다. 혹, 사실이 그렇더라도, 거기에 매여있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우리들이 항상 추구해야 하는 것은, 예수님처럼 사는 것이어야 합니다. 사실, 예수님이 내세울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제자들도, 주께서 십자가에 달리는 순간에는, 다 도망가고 없었습니다. 주께서 살리시고 고쳐준 사람들도, 나중에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쳤습니다. 예수님 생전에 남을 일이라곤, 십자가에 달리신 것밖에 없습니다. 그에 비해서, 오늘의 교회들은 자랑할 것이 많습니다. 교인 숫자나 성전 크기, 그리고 재정과 선교 사업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있어야 할 '십자가의 희생'은 찾아보기가 힘들 다고, 사려 깊은 교회 지도자들은 말합니다. 물론, 이 말은 바 로, 저 자신과 우리 교회가 들어야 할 소리입니다.
1그것은, 우리가 세상을 더 사랑하며 의지하고 있기 때문 입니다. 해마다 이때쯤이면, 우리는 '예수와 십자가'를 열심히 부르 짖고 있지만, 지금 우리는 '십자가의 능력'보다는 '돈의 힘'을 더 의지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예수를 안 이후, 모두 무가치 하게 여겨져 다 버렸다고 하는 것들을, 우리는 애지중지 아끼 고 있습니다.
2예수를 자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썩어질 것들을 더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단 소리를 듣는, 서울의 모모 교회들도, 교인이 몇 만 명 씩 모인다고, 그 숫자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그 교회 들도 그 성장 요인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 게,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어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그 조상들 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어떻게 탈출하게 되었는지, 그 사실 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역사적 사실'에만 얽매 여 있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곧 이스라엘 백성을 바 벨론에서 해방시키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옛날 이야기만 하지 말고, 다시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출애굽 사건을 옛날 이야 기로만 알고, 지금의 신세를 한탄할 것이 아니라, 오늘도 함 께 하셔서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무엇을 찬양하고 있습니까 오늘도,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입니까 아니면, 결 국은 썩어져 없어질 세상 것들입니까 우리가 진정, 자랑하고 찬양해야 할 '십자가의 능력'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요, 우리 믿는 성도가 삶의 현장에서 실천 해야 하는 '실제사건'이어야 합니다.
3그러나, 그 기쁨과 찬양은 사라지고, 슬픈 탄식만이 우렁 차게 들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생 해법(解法)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방법을 따르지 않고, 여전히 옛날 방식 대로만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새롭게 살아야 합니다. 물론, 그 이전에, 사람이 새롭게 되 어야 합니다. 바울처럼, 그 동안 귀중하게 여겼던 것들을, 쓰 레기와 같이 여겨서 모두 내버리고, 예수 아는 것을 귀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새로운 기쁨과 감격 속에서, 주님께 헌신하며 찬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은, 나를 위하라고 내가 만든 새 백성이다. 그러니, 그들 이 나를 찬양할 것(사43:21)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서, 그 뜻을 따를 때에는, 사람은 '세상의 모든 것'을 가치 있게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보다 세상 것을 먼저 구하게 될 때에는, 그 모든 것을 헛 되이 사용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사람을 타락하게 하는 것입니다.
1그런고로, 우리는 세상의 무가치한 것들을 멀리하고, 주 님만 가까이 해야 합니다.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는, 예수께서 죽은 오빠를 살려냈을 때에, 무엇을 귀중하게 여겨야 할 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값진 나드 향유를 예수님 발에 부어드릴 수가 있 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녀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행한 것이지만, 그 마음에 예수를 알게 된 기쁨과 감격이 충만했기 에, 그렇게 행할 수가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우리 마음에, 이 기쁨과 감격이 없으면, 주님 뜻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 귀와 바꿀 수 없네 라고, 노래만 할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주 예수를, 이 세상보다 더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2그러기 위해서는, 예수 안에서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만이 우리를 새롭게 하실 수가 있습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은,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 라엘 백성을, 새롭게 지으셨다고 했습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작은아들이 새 인생을 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아버지의 사랑을 믿고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죄를 알기 때문에, 아들 된 자격조차 버렸습니다. 우리도 마 찬가지입니다. 세상 자랑하던 것들과, 지위 권세를 다 버리고, 겸손한 자세로 주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 심령을 새롭게 하십니다. 그리고, 새 인생을 살도록, 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새롭게 되는 일은, 하루 이틀에 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3그래야만, 날마다 새로운 감격과 기쁨속에서, 주를 찬양 하며 살 수가 있습니다. 어제의 그 감격도 잊어서는 안되겠지만, 오늘은 새로운 감 격을 맛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 게 약속하시기를, 사막에 생명의 강줄기가 흘러가도록 하겠 다(사43:19)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고향 가는 길에, 그 물을 마시도록 하겠다(사43:20)는 것입니다. 우리도, 천국 가는 길에서, 이 생명수를 마실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그 생명수란, '하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이 물 을 마실 수 있어야, 새로운 기쁨과 감격을 맛볼 수가 있는 것 입니다. 그래야, 새 힘을 얻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을 찬양하 며 영광 돌리는 복된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룟 유다와 같은, 그런 인생을 살 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처럼, 늘 감격 에 겨운 마음으로, 헌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늘 주를 찬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무쪼록, 우리를 구원하여 새 인생을 살게 하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의 사랑을 늘 기억하고, 그 은혜에 보답하는, 새 인생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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