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땅 새 시대, 새 역사를 열어가는 교회 (사43:14-21)
본문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일들에 대해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나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일들 가운데서 성경이 들려주는 음성은 어떤 것인가 이것을 신학적으로는 "원전의 문맥화원칙의 상황화Text의 Context화말씀의 재해석" 여러 가지로 표현합니다. 이것이 알기쉽 게 말해서 바로 설교입니다. 저는 지난 3월 29일 목양교회의 수지 이전 1주년을 맞이해서 오늘과 똑 같은 본문과 제목을 가지고 설교를 한 일이 있습니다. 그 설교 전문이 목양 교회 간행물 푸른풀밭 맑은시내 제4호에 실 려 있습니다. (필요하신 분은 연락 주시면 우송해 드리겠습니다. ☏0331-263-0990 김정태 전도사 담당) 오늘 똑같은 본문과 제목을 가지고 다시 한 번 설교를 하는 이유는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일들, 우리의 상황에 변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변화들입니까 오늘 설교 제목은 목양 교회의 장기 표어입니다. 지난 3월에는 이 표 어가 막 제정되어 정착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정착 되어가고 있습니다. 공감대가 형성되어가고 있습니다. 다음 주일에 오 시면 본당 출입구 앞, 전에 조감도가 붙어 있던 자리에 이 표어가 붙 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성전 신축공사가 시작된 것도 변화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 나라의 경제 형편이 더 심각해지고 있는 것도 변화 가운데 하 나입니다. 이제는 은행들 가운데 문을 닫는 은행들이 나타나게 되었 습니다. 저희같은 기성세대가 경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소박한 생각 가운데 하나가 "은행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 또는 "나라가 망하기 전에는 은행은 망하지 않는다"인데 참 엄청난 일입니다. 이같은 경제 형편에 따라 성도들의 삶도 더욱 고달퍼 지고 있습니다. 설교가 전달되지 않는 18가지 이유 라는 책이 나왔기에 보니까 설교가 전달되지 않는 이유들 가운데 첫 번째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시장에 모인 사람들을 상대로는 클라식 을 연주해서는 안되고 흘러간 대중가요를 불러야 공감대가 형성된 다는 것입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저는 경제적인 문제에 시달리고 있는 성도들을 상대로 너무 오랫동안 클라식을 연주해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주일에는 실직, 사업중단, 이런 문제들에 대한 크리스천의 대응을 주제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의 이와 같은 정황 속에서 예언자 이사야는 본문을 통해 다시 한 번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세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너에게 무엇이냐, 어떤 분이냐"를 묻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여덟 절로 된 길지 않은 내용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하나님에 대한 호칭이 아홉가지로 다양하게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직접적인 표현이 네 가지 있습니다.
1 너희의 구속자(14절)
2이스라엘의 거룩한 자(14절)
3이스라엘의 창조자(15절)
4너희 왕(15절)
다음에는 간접적인 표현이 다섯가지 나옵니다.
1바벨론을 패망하게 할 분(14절 하반절)
2바다 가운데 길을 내고 큰 물 가운데 지름길을 내어 이집트의 군 병을 쓸어 버리신 분(16 절)
3새 일을 행하시는 분(19절)
4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어 그의 백성, 그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하시는 분(19절, 20절:가장 필요한 것을 주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5하나님을 찬양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지으신 분(21절)
이런 호칭들은 일종의 부조리입니다.
왜냐하면 이사야가 이 말씀을 선포할 때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에 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이른 바 택한 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 하나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분, 무능한 분, 바벨론이 섬기는 잡신들 보다도 힘이 약한 분, 인간의 비극과 탄식과 고통을 외면하는 분으로 묘사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야는 아름답고 장엄한 단어들로 하나님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나라에 있어서도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우리의 소원인 통일도 이뤄주지 않는 그래서 다시 잠수정 침투사건 도 겪게하는 무기력한, 어떤 면에서는 심술궂은 하나님, 경제적으로 축복하시는척 하다가 일순간에 거둬가 버리시는 변덕쟁 이라고 해야 실감이 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바로 이 때에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해야합니다. 우리의 구원자, 우리의 어려움을 물리쳐줄 분, 거룩한 분, 창조자, 왕 으로 고백해야합니다. 한 가정에서 가장이 실직 당했을 때 주부가 "당신은 무능한 분, 다른 사람들은 퇴출 당하지 않고 그래도 자리를 유지하는데 왜 당신만 왜 밀려났느냐 나가서 도적질이라도 해서 우리를 먹여 살려라"하면 그 가장,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니 가장(家長)이 문제가 아니라 그 가정 (家庭)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럴 때야말로 "여보 당신을 사랑해요. 힘 내세요. 당신, 그렇지 않아 도 당신 자신의 일을 해 보고 싶어하지 않았어요 위기가 기회라고 하지 않아요 나는 당신이 지금 겪는 일을 잘 극복하리라고 믿어요" 이런 격려가 필요한 때가 아닙니까 목양교회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이 시대의 병폐인 집단 이기주의 하나 해결하지 못하고 이른바 부름 받은 성도들의 모임이라는 교회를 이 빈 들판으로 내몰아 임시 조립 식 건물 속에서 설흔일곱 번째의 생일을 맞게하는 무능한 분입니까 그렇게 말하고 싶은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바로 이 때 우리는 하나님을 목양교회의 구속자, 창조 자, 왕, 과거에 목양교회를 위해 위대한 일을 하신 분, 목양교회에 새 땅을 주시고 새 시대에 새 역사를 열어가도록 하시는 분, 목양교회를 위해 새 일을 행하실 분,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하기 위해서 37년 전 에 목양교회를 세우신 분으로 고백해야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입니까 간절한 기도제목을 가지고 오래 기도해도 들어주시지 않는 벙어리 하나님입니까 사도행전 16장에는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옥중에서 하나님을 찬미한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에 오고 싶어하지를 않았습니다. 아시아쪽으로 가고 싶 어했습니다. 그러다가 성령님의 인도에 순종해서 마게도냐 첫 성인 빌 립보에 와서 열심히 전도했는데 겪는 일이 못을 찢기고 맞고 갇히고 착고에 채이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순종의 결과가 고통, 칭찬 대신에 이 곤욕, 그러니까 그 상황은 바울과 실라에게 있어서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가장 부조리하고 원망스럽게 느껴질 수 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하나님의 존재여부조차가 의심스러워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보게 실라, 우리가 속았구먼! 있지도 않은 하나님을 전하고 다녔네 그려! 내일 아침이 되면 우리가 심문을 받을텐데 말이야, 그 때 우리 가 잘못했다고 하자구! 있지도 않은 하나님 전한다고 소란만 피운 것 을 사과하자구!' 하기 쉬운 형편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우리도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하나님은 목양교회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인도자가 되시고 한 분 한 분을 위해서 큰 일을 행하시는 분임을 고백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둘째, "과거지향적이지 말라, 과거에 집착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18절, "너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이전 일, 옛적 일은 구체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 어내고 홍해를 가르신 일입니다. 큰 일이지요. 놀라운 일이지요. 그러나 거기 매달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앞으로 더 큰 일, 더 새로운 일을 행할 것을 기대하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바벨론 포로생활 에서 해방될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지난 37년 동안 목양교회를 위해 놀라운 일들을 많이 하 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에게 놀라운 일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매달리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더 큰 일을 바라보라 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과 만나서 이야기할 때 대화 중에 그 사람이 어떤 성격의 사람인가 파악하기 위해서 신경을 쓰게 됩니다. 우선 "나"라는 말을 많이 쓰는 사람은 위험한 사람입니다. 상담학에 서도 10분 안에 "나"라는 말이 몇 번 나오면 그 사람은 이런 심리상태를 가진 인물이고 하는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 역사에서 "나"라는 말을 제일 많이 쓴 사람은 히틀러로 기록되어 있고 두 번째가 무쏠 리니입니다. 히틀러의 연설에는 53 단어에 한 번씩, 무쏠리니는 83 단 어에 1번씩 "나"가 나옵니다. "우리"라는 말을 많이 써야합니다. 이것을 "We feeling"이라고 하는 데 "We feeling" 은 현대가 가지고 있는 병폐들을 치료하는 약이 되 어 줍니다. 신앙간증을 심사할 기회가 종종 주어지는데 간증을 할 때 "내가 무엇 을 하고…" 이런 식의 간증은 점수를 많이 받지 못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통해 이런 일을 하시고…" 이것이 간증의 기본구조가 되어야합니다. 과거의 일에 열을 올리는 사람도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미래 의 일을 많이 이야기하는 사람이 손잡고 일해볼만한 사람입니다. 저는 서울의 한 곳, 용산에서 50여 년을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그곳의 예전 모습이 눈에 훤합니다. 혹시 여러분, 삼각지 용산전화국 뒤에 원불교 서울본부라는 간판을 붙인 절이 하나 있는 것을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이 바로 625 때 서울이 인민군에게 함락된 날인데 그 절은 그 때 인민재판 하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도 밤중에 그 절 앞을 지날 때에는 오싹해지지요. 어렸을 때 받은 충격은 평생을 지배하지 않습니까 아이들과 함께 산책을 나가고 그럴 때 그 거리의 옛날 모습을 이야 기해 줄 때가 많습니다. 지금 용산 전자상가는 예전에 미나리밭이었습니다. 미나리꽝이라고 하지요. 어렸을 때는 "미나리 강"이라고 불렀는데 그것이 아니고 "미 나리꽝"이었습니다. 미나리는 검은 개펄에서 잘 자라지 않습니까 겨 울에 날씨가 따뜻해서 얼음이 좀 녹은 날 거기서 썰매 타다가 넘어 지면 옷이 엉망진창이 되어서 어머니에게 야단을 많이 맞지요. 누구 나 과거 이야기를 할 때는 신이 납니다. 그런 이야기를 신이 나서 해 주다가 '아니지, 아이들에게 이렇게 과거의 일들만 이야기 해 주면 아 이들의 가치관 형성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되지!" 하게 됩니다. 얼른 화제를 바꾸게 됩니다. "여기에 교회가 하나 세워지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현대 과학과 신앙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 모습으로 잘 비쳐질텐데… 그리고 직장인 선교 같은 것을 활성화 시킬 수 있 고 그 부근에는 용산역이 있어서 매일 새벽 보충대로 가는 장병이 수백 명씩 들리고 창녀촌도 하나 있어서 특수선교 활동도 잘 할 수 있을텐데…" 이상하게 삼각지에서 이촌동 사이에는 한강로 1가, 2가, 3가, 용산동, 서부 이촌동, 동이 여럿인데 감리교회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이야기로 바꿉니다. "내가 왕년에는…우리 집에 금송아지 있었어!" 하는 분은 오늘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현실에 대한 절망을 은연 중 에 말하는 것이 됩니다. 오늘 자기에게 주어진 현실을 겸허하게 인정하는 분에게 미래가 열 립니다. 요즘 취업하기 어렵다고 하면서도 "눈높이를 낮추면 일자리가 보인 다"하는 말도 자주 하지 않습니까 조금 전에 말씀드렸습니다만 18절의 "이전 일예전 일"은 출애굽과 홍해를 건넌 일입니다. 천 번, 만 번을 이야기해도 신이 나는 일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출애굽과 홍해 도해보다 더 위대한 일 을 기대하라! 어떤 미술가에게 기자가 물었습니다. "선생님의 작품 가운데 가장 걸 작이라고 할 수 잇는 작품은 무엇입니까 그 작품은 어디에 있습니 까" 미술가는 대답했습니다. "내 생애 최고의 걸작은 내 머리속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목양교회에게 하실 일, 여러분 개인개인에게 하실 가장 좋 은 일은 지금까지 하신 일 가운데 있지 않고 앞에 있습니다. 과거에 집착하지 마시고 앞에 있는 그 것을 바라보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셋째, 우리들이 기대할 수 있는 것 이상의 것을 기대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장래를 주관하십니다. 이사야서 41장 21절에서 23절 까지를 보면 우상은 장래사(將來事), 후래사(後來事)를 말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머니즘의 영향으로 우리 나라에서는 사주를 보고 점을 치고 하는 데 그런 것들은 사람을 어떤 틀 안에 집어 넣으려고 합니다. 운명주 의자로 만듭니다. 그런 것에 잡히면 개인의 생애와 역사에 발전을 기 대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앞날을 새롭게, 놀랍게, 창조적으로, 이전보다 더 좋게, 그리고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일로 이끄십니다. 요즘 우리가 경제적인 어려움들을 겪으면서 다시 한 번 느끼는 것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힘입니다. 세계 경제가 미국에 이해서 조정되고 길들여진다는 것을 여기 저기서 발견하게 되지요. "미국의 경제가 쇠 멸하는 날이 올 것이다" 하기는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사야 당시 "바벨론이 망한다"하기는 그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바 벨론은 세계를 다스리는 제국이었습니다.
그런데 14절을 보세요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으로 자기들의 연락(파티)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 가게 하리라", 아주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자유롭게 해석하는 분들은 "그것은 바벨론이 망한 다음에 이사야서, 오늘 본문이 들어 있는 부분은 제2 이사야서라고 하는데요, 제2 이사야서가 기록되었기 때문이야!" 하는데 너무나 메마른 해석이 지요. 하나님은 사람이 기대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해 주십니다. 소련이 무너지리라고 누가 예측했습니까 김일성이 4년 전에 그렇게 죽으리라고 누가 예측했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 나라를 위해서, 우리 교회를 위해 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좋은 것, 놀라운 것을 행해 주신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그리고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기대가 없으면 목양교회는 이 벌판의 조립식 건물 생활을 이기 기 어렵습니다. 이런 기대가 없으면 우리 나라는 경제위기의 이 터널 출구에 이르기 전에 질식할 것입니다. 이런 기대가 없으면 우리들 하나하나는, 그리고 우리의 가정은 현재 의 질곡을 이기기 못하고 파탄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내가 생각하는 것, 내 이성의 한계를 넘어서 나와 교회와 이 민족을 축복하는 분이라는 사실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확인하시 기 바랍니다. 저는 석달 전에 같은 본문 같은 제목을 가지고 설교하면서 21절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려 하려 함이니 라"에서 "이 백성" 대신에 자기 이름을 넣어볼 것을 권했습니다. "아무개는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려 하려 함 이니라" 그리고 "목양교회"를 넣어 볼 것을 권했습니다. 목양교회 창립 37주년을 감사드리는 이 아침에 다시 한 번 이 말씀 에 목양교회를 넣어 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목양교회는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려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을 찬미하는 찬양을 새롭게 부르는 여러분과 저, 그리고 컴퓨 터를 통해 이 설교를 대하는 모든 분들, 또한 목양교회가 되기를 목 양교회 설립 37주년을 감사 드리는 이 아침에 목양교회의 머리이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너에게 무엇이냐, 어떤 분이냐"를 묻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여덟 절로 된 길지 않은 내용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하나님에 대한 호칭이 아홉가지로 다양하게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직접적인 표현이 네 가지 있습니다.
1 너희의 구속자(14절)
2이스라엘의 거룩한 자(14절)
3이스라엘의 창조자(15절)
4너희 왕(15절)
다음에는 간접적인 표현이 다섯가지 나옵니다.
1바벨론을 패망하게 할 분(14절 하반절)
2바다 가운데 길을 내고 큰 물 가운데 지름길을 내어 이집트의 군 병을 쓸어 버리신 분(16 절)
3새 일을 행하시는 분(19절)
4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어 그의 백성, 그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하시는 분(19절, 20절:가장 필요한 것을 주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5하나님을 찬양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지으신 분(21절)
이런 호칭들은 일종의 부조리입니다.
왜냐하면 이사야가 이 말씀을 선포할 때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에 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이른 바 택한 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 하나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분, 무능한 분, 바벨론이 섬기는 잡신들 보다도 힘이 약한 분, 인간의 비극과 탄식과 고통을 외면하는 분으로 묘사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야는 아름답고 장엄한 단어들로 하나님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나라에 있어서도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우리의 소원인 통일도 이뤄주지 않는 그래서 다시 잠수정 침투사건 도 겪게하는 무기력한, 어떤 면에서는 심술궂은 하나님, 경제적으로 축복하시는척 하다가 일순간에 거둬가 버리시는 변덕쟁 이라고 해야 실감이 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바로 이 때에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해야합니다. 우리의 구원자, 우리의 어려움을 물리쳐줄 분, 거룩한 분, 창조자, 왕 으로 고백해야합니다. 한 가정에서 가장이 실직 당했을 때 주부가 "당신은 무능한 분, 다른 사람들은 퇴출 당하지 않고 그래도 자리를 유지하는데 왜 당신만 왜 밀려났느냐 나가서 도적질이라도 해서 우리를 먹여 살려라"하면 그 가장,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니 가장(家長)이 문제가 아니라 그 가정 (家庭)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럴 때야말로 "여보 당신을 사랑해요. 힘 내세요. 당신, 그렇지 않아 도 당신 자신의 일을 해 보고 싶어하지 않았어요 위기가 기회라고 하지 않아요 나는 당신이 지금 겪는 일을 잘 극복하리라고 믿어요" 이런 격려가 필요한 때가 아닙니까 목양교회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이 시대의 병폐인 집단 이기주의 하나 해결하지 못하고 이른바 부름 받은 성도들의 모임이라는 교회를 이 빈 들판으로 내몰아 임시 조립 식 건물 속에서 설흔일곱 번째의 생일을 맞게하는 무능한 분입니까 그렇게 말하고 싶은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바로 이 때 우리는 하나님을 목양교회의 구속자, 창조 자, 왕, 과거에 목양교회를 위해 위대한 일을 하신 분, 목양교회에 새 땅을 주시고 새 시대에 새 역사를 열어가도록 하시는 분, 목양교회를 위해 새 일을 행하실 분,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하기 위해서 37년 전 에 목양교회를 세우신 분으로 고백해야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입니까 간절한 기도제목을 가지고 오래 기도해도 들어주시지 않는 벙어리 하나님입니까 사도행전 16장에는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옥중에서 하나님을 찬미한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에 오고 싶어하지를 않았습니다. 아시아쪽으로 가고 싶 어했습니다. 그러다가 성령님의 인도에 순종해서 마게도냐 첫 성인 빌 립보에 와서 열심히 전도했는데 겪는 일이 못을 찢기고 맞고 갇히고 착고에 채이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순종의 결과가 고통, 칭찬 대신에 이 곤욕, 그러니까 그 상황은 바울과 실라에게 있어서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가장 부조리하고 원망스럽게 느껴질 수 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하나님의 존재여부조차가 의심스러워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보게 실라, 우리가 속았구먼! 있지도 않은 하나님을 전하고 다녔네 그려! 내일 아침이 되면 우리가 심문을 받을텐데 말이야, 그 때 우리 가 잘못했다고 하자구! 있지도 않은 하나님 전한다고 소란만 피운 것 을 사과하자구!' 하기 쉬운 형편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우리도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하나님은 목양교회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인도자가 되시고 한 분 한 분을 위해서 큰 일을 행하시는 분임을 고백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둘째, "과거지향적이지 말라, 과거에 집착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18절, "너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이전 일, 옛적 일은 구체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 어내고 홍해를 가르신 일입니다. 큰 일이지요. 놀라운 일이지요. 그러나 거기 매달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앞으로 더 큰 일, 더 새로운 일을 행할 것을 기대하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바벨론 포로생활 에서 해방될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지난 37년 동안 목양교회를 위해 놀라운 일들을 많이 하 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에게 놀라운 일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매달리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더 큰 일을 바라보라 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과 만나서 이야기할 때 대화 중에 그 사람이 어떤 성격의 사람인가 파악하기 위해서 신경을 쓰게 됩니다. 우선 "나"라는 말을 많이 쓰는 사람은 위험한 사람입니다. 상담학에 서도 10분 안에 "나"라는 말이 몇 번 나오면 그 사람은 이런 심리상태를 가진 인물이고 하는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 역사에서 "나"라는 말을 제일 많이 쓴 사람은 히틀러로 기록되어 있고 두 번째가 무쏠 리니입니다. 히틀러의 연설에는 53 단어에 한 번씩, 무쏠리니는 83 단 어에 1번씩 "나"가 나옵니다. "우리"라는 말을 많이 써야합니다. 이것을 "We feeling"이라고 하는 데 "We feeling" 은 현대가 가지고 있는 병폐들을 치료하는 약이 되 어 줍니다. 신앙간증을 심사할 기회가 종종 주어지는데 간증을 할 때 "내가 무엇 을 하고…" 이런 식의 간증은 점수를 많이 받지 못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통해 이런 일을 하시고…" 이것이 간증의 기본구조가 되어야합니다. 과거의 일에 열을 올리는 사람도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미래 의 일을 많이 이야기하는 사람이 손잡고 일해볼만한 사람입니다. 저는 서울의 한 곳, 용산에서 50여 년을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그곳의 예전 모습이 눈에 훤합니다. 혹시 여러분, 삼각지 용산전화국 뒤에 원불교 서울본부라는 간판을 붙인 절이 하나 있는 것을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이 바로 625 때 서울이 인민군에게 함락된 날인데 그 절은 그 때 인민재판 하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도 밤중에 그 절 앞을 지날 때에는 오싹해지지요. 어렸을 때 받은 충격은 평생을 지배하지 않습니까 아이들과 함께 산책을 나가고 그럴 때 그 거리의 옛날 모습을 이야 기해 줄 때가 많습니다. 지금 용산 전자상가는 예전에 미나리밭이었습니다. 미나리꽝이라고 하지요. 어렸을 때는 "미나리 강"이라고 불렀는데 그것이 아니고 "미 나리꽝"이었습니다. 미나리는 검은 개펄에서 잘 자라지 않습니까 겨 울에 날씨가 따뜻해서 얼음이 좀 녹은 날 거기서 썰매 타다가 넘어 지면 옷이 엉망진창이 되어서 어머니에게 야단을 많이 맞지요. 누구 나 과거 이야기를 할 때는 신이 납니다. 그런 이야기를 신이 나서 해 주다가 '아니지, 아이들에게 이렇게 과거의 일들만 이야기 해 주면 아 이들의 가치관 형성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되지!" 하게 됩니다. 얼른 화제를 바꾸게 됩니다. "여기에 교회가 하나 세워지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현대 과학과 신앙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 모습으로 잘 비쳐질텐데… 그리고 직장인 선교 같은 것을 활성화 시킬 수 있 고 그 부근에는 용산역이 있어서 매일 새벽 보충대로 가는 장병이 수백 명씩 들리고 창녀촌도 하나 있어서 특수선교 활동도 잘 할 수 있을텐데…" 이상하게 삼각지에서 이촌동 사이에는 한강로 1가, 2가, 3가, 용산동, 서부 이촌동, 동이 여럿인데 감리교회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이야기로 바꿉니다. "내가 왕년에는…우리 집에 금송아지 있었어!" 하는 분은 오늘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현실에 대한 절망을 은연 중 에 말하는 것이 됩니다. 오늘 자기에게 주어진 현실을 겸허하게 인정하는 분에게 미래가 열 립니다. 요즘 취업하기 어렵다고 하면서도 "눈높이를 낮추면 일자리가 보인 다"하는 말도 자주 하지 않습니까 조금 전에 말씀드렸습니다만 18절의 "이전 일예전 일"은 출애굽과 홍해를 건넌 일입니다. 천 번, 만 번을 이야기해도 신이 나는 일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출애굽과 홍해 도해보다 더 위대한 일 을 기대하라! 어떤 미술가에게 기자가 물었습니다. "선생님의 작품 가운데 가장 걸 작이라고 할 수 잇는 작품은 무엇입니까 그 작품은 어디에 있습니 까" 미술가는 대답했습니다. "내 생애 최고의 걸작은 내 머리속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목양교회에게 하실 일, 여러분 개인개인에게 하실 가장 좋 은 일은 지금까지 하신 일 가운데 있지 않고 앞에 있습니다. 과거에 집착하지 마시고 앞에 있는 그 것을 바라보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셋째, 우리들이 기대할 수 있는 것 이상의 것을 기대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장래를 주관하십니다. 이사야서 41장 21절에서 23절 까지를 보면 우상은 장래사(將來事), 후래사(後來事)를 말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머니즘의 영향으로 우리 나라에서는 사주를 보고 점을 치고 하는 데 그런 것들은 사람을 어떤 틀 안에 집어 넣으려고 합니다. 운명주 의자로 만듭니다. 그런 것에 잡히면 개인의 생애와 역사에 발전을 기 대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앞날을 새롭게, 놀랍게, 창조적으로, 이전보다 더 좋게, 그리고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일로 이끄십니다. 요즘 우리가 경제적인 어려움들을 겪으면서 다시 한 번 느끼는 것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힘입니다. 세계 경제가 미국에 이해서 조정되고 길들여진다는 것을 여기 저기서 발견하게 되지요. "미국의 경제가 쇠 멸하는 날이 올 것이다" 하기는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사야 당시 "바벨론이 망한다"하기는 그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바 벨론은 세계를 다스리는 제국이었습니다.
그런데 14절을 보세요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으로 자기들의 연락(파티)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 가게 하리라", 아주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자유롭게 해석하는 분들은 "그것은 바벨론이 망한 다음에 이사야서, 오늘 본문이 들어 있는 부분은 제2 이사야서라고 하는데요, 제2 이사야서가 기록되었기 때문이야!" 하는데 너무나 메마른 해석이 지요. 하나님은 사람이 기대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해 주십니다. 소련이 무너지리라고 누가 예측했습니까 김일성이 4년 전에 그렇게 죽으리라고 누가 예측했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 나라를 위해서, 우리 교회를 위해 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좋은 것, 놀라운 것을 행해 주신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그리고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기대가 없으면 목양교회는 이 벌판의 조립식 건물 생활을 이기 기 어렵습니다. 이런 기대가 없으면 우리 나라는 경제위기의 이 터널 출구에 이르기 전에 질식할 것입니다. 이런 기대가 없으면 우리들 하나하나는, 그리고 우리의 가정은 현재 의 질곡을 이기기 못하고 파탄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내가 생각하는 것, 내 이성의 한계를 넘어서 나와 교회와 이 민족을 축복하는 분이라는 사실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확인하시 기 바랍니다. 저는 석달 전에 같은 본문 같은 제목을 가지고 설교하면서 21절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려 하려 함이니 라"에서 "이 백성" 대신에 자기 이름을 넣어볼 것을 권했습니다. "아무개는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려 하려 함 이니라" 그리고 "목양교회"를 넣어 볼 것을 권했습니다. 목양교회 창립 37주년을 감사드리는 이 아침에 다시 한 번 이 말씀 에 목양교회를 넣어 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목양교회는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려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을 찬미하는 찬양을 새롭게 부르는 여러분과 저, 그리고 컴퓨 터를 통해 이 설교를 대하는 모든 분들, 또한 목양교회가 되기를 목 양교회 설립 37주년을 감사 드리는 이 아침에 목양교회의 머리이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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