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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아 야곱아 (사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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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칠 전에 강원도 산골에서 목회하고 있는 친구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지금을 교회를 지었지만 처음 개척할 때 40여호 되는 첩첩 산골에 천막을 치고 교회 세웠는데 주민들이 뭐하는 사람이냐고 묻길래 전도사라고 대답을 했답니다.그 말을 듣더니 아주 반가워하며 볼 때마다 도사님이라고 부르며 잘 대해 주더랍니다.뭐가 좀 이상하다 싶어서 물어 보니 그들 마을에 풍수지리를 보며 운명 감정도 하며 도를 닦는 도사들이 가끔 오기도 하는데 그런 도사로 생각하더 랍니다.사명으로 목회하고 있지만 워낙 산골이라 사람들도 억세고 주민이나 교인들도 미신과 토속신앙이 워낙 강해서 여러 가지로 애를 먹고 있답니다.수고하고 애쓴 과정들을 들으면서 저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아울러 특별히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게 느낀 것은 하나님께서 저희 교회에 정말 좋은 성도님들을 서로 만나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말씀을 붙들고 한 주간 한 주간을 살려고 애쓰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집사님들과 먼 거리에서도 교회를 위하여 기쁨으로 봉사 헌신하는 여러 형제자매들을 볼 때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세상의 그 어떤 사람들보다 행복하고 축복된 삶이 믿음 생활입니다.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시려고 부르셨습니다.물론 이렇게 물을 수도 있습니다. “어려운 고난을 당해도 행복하다는 말입니까”.그렇습니다.우리 믿는 사람은 고난 중에도 감사하며 만족할 수 있습니다.요셉은 종으로 팔려 가고 누명을 썼어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여러분 스테반을 보십시요. 그는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그는 웃으며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바울은 감옥 속에서도 기쁨의 찬송을 불렀습니다.믿음이 없는 불신자들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우리가 무엇 때문에 고난 중에도 기뻐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것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를 믿기 때문입니다.그래서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고 했습니다.바꿔 말하면 어떤 상황을 만나든지 우리 행복한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하나님의 인도와 함께 하심을 믿는 고난이든 역경이든 무엇이 문제 될 것이 있느냐라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음 생활을 하면서 행복감과 기쁨을 가질 때가 언제입니까.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때입니다.아무것도 아닌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때 행복감과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의 본문을 통하여 이러한 은혜를 깨닫게 해 주는 행복한 말씀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1.야곱이라고 부르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사야 40-55은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포로로 잡혀가서 비통과 슬픔에 잠겨 있는 백성들을 위한 위로와 구원의 메시지입니다.그들은 비록 우상 숭배를 비롯한 많은 죄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고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여전히 그들과 함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백성들에게 “야곱”이라고 불렀습니다.여러분 야곱은 언제 있었던 사람입니까.야곱은 1500여전 자신들의 조상입니다.야곱은 어떤 사람입니까.그 이름의 뜻 그대로 속이는자 사기꾼 입니다.팥죽으로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이고 도망한 사람입니다.인간적이며 자신의 꾀를 의지하며 살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야곱이라고 불렀습니다.41:14에는 지렁이 같은 야곱이라고 불렀습니다.그들은 하나님을 속이고 우상 숭배했던 그들은 마치 지렁이 같이 보잘것없고 사기꾼인 야곱같은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야곱이라고 부르신 것이 왜 은혜가 된다는 것입니까. 그것은 야곱인줄을 아시면서 그들을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공의로우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찾아가셔야 합니까.당연히 노아나 에녹같이 의롭고 거룩하고 순결한 사람을 찾고 만나는 것이 옳지 않습니까.그러나 하나님은 바벨론 강가에서 슬퍼하는 그들을 야곱이라 부르시며 찿아 오셨습니다.예를 들면 만일 집을 나간 아들을 미워 한다면 어디서 무엇을 하든 찾지 않을 것입니다.그러나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불효한 자식이지만 찾아가 그 이름을 부르는 것과 마찬 가지 입니다. 오늘 여러분 중 야곱이 아닌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우리는 모두 야곱과 같이 나를 위해서라면 남을 속이는 본성을 지닌 사람들입니다.하나님보다 나 자신의 계산과 꾀를 의지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불순종하고 내 마음대로 방탕하며 살던 죄인입니다.그러나 하나님은 야곱과 같은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찾아오신 것입니다.나를 부르셔서 오늘 이 자리에 앉게 하신 것입니다.
2.우리를 부르시고 말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것이 우리에게 은혜입니다.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너를 조성하신 이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우리를 부르신 주체가 하나님이십니다. 당시 유대 주변 국가에는 수많은 우상들이 있었습니다.수많은 사람들은 바벨론을 비롯하여 애굽에 이르기까지 많고 많은 우상들을 섬기며 그 우상들이 자기를 구원해 줄 것으로 믿고 있었습니다.해,달,별,심지어 각종 동물의 형상까지도 만들어 섬기고 있었습니다.그러나 하나님은 오직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나타나셨습니다.그들에게만 참 하나님이 되신 것입니다.만약 하나님께서 그들을 만나주지 않으셨다면 그들도 우상을 숭배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 십니까.야곱과 이스라엘을 조성하시고 만드신 창조주이신 유일한 하나님이십니다.다른 모든 우상들은 피조물입니다.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자신을 계시하시고 그들에게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어릴때 이런 기억이 있습니다.저희 고향 뒷산에 언젠가 조그만 한 암자가 생겼습니다.사람들이 자주 오가 길래 친구들과 호기심에 몰래 들어가 옅 본 일이 있습니다.큰 바위 밑에 온통 촛불을 켜 놓고 있었습니다.초 농이 바위 위를 덮고 있었습니다.괴상하고 무서운 모습을한 그림들이 벽마다 붙어 있었습니다.사람들이 그 곳에 계속해서 절을 합니다.누가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까.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은 독수리,물고기까지 숭배한다고 합니다.아직도 인도에서는 소를 숭배하고 있습니다.이웃나라 일본을 하고 우상이 많아서 전도하기가 그렇게 어렵다고 합니다.제가 아는 목사님께서 여호와 증인에 빠진 사람을 구해 내려고 한 달간 성경 공부를 하며 애썼지만 실패했답니다.결론적으로 하는 말이 미혹의 영에 잡혀서 이제 더 이상 사람의 힘으로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양을 가장한 이리 같은 종교들이 많은 사람들을 부르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를 하나님께서 부르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모르고 그것들이 전부 인양 섬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여러분 우리가 창조주이신 참 하나님을 만난 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보잘것 없는 나를 찾아오신 그 분이 창조자이신 하나님인 것이 은혜입니다
3.나를 구속해 주신 것이 은혜입니다.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라고 하셨습니다.여기서 구속하였다는 말은 애굽땅 포로된 생활에서 건져내신 사건을 의미합니다.그 때에 그들은 희망도 꿈도 없이 노동만 하다가 죽어야 하는 비참한 운명이었습니다.하나님은 모세를 보내서 그들을 구원해 내셨던 것입니다. 그들이 애굽에서 나오기 전 날밤 누가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습니까.어린 양이 죽었습니다.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름으로 죽음을 면했던 것입니다.그로 말미암아 애급에서 나오는 구속함을 입은 것입니다. 어린양은 누구십니까.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벧전1:18-19에는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점없고 흠없는 어린양 같은 보배로운 피로한 것이니라”.2:24절에는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사단의 포로가 되어 죄악 속에서 헤메던 사람들입니다.그러나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우리를 구속해 내셨습니다.우리가 어떤 의가 있어서가 아닙니다.오늘 여러분 중에 구원받을 만한 어떤 자격이 있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아무 조건 없이 무조건 우리를 부르시고 용서하시고 천국의 소망을 갖게 하셨습니다. 지난 주간에 안양에 있는 목사님을 만날 일이 있어서 교회에 갔는데 좀 늦게 오시기에 피아노에서 찬양을 불렀는데 전에부터 알던 찬양이었지만 새삼 은혜가 되었습니다. 내 평생 살아온 길이라는 찬양입니다.“나 같은 뭇난 인간 주께서 구하시려 하늘의 영광 보좌 모두다 버리시고 천하디 천한 종의 형상을 입으셨네 아 아 주의 사랑 어디에 견주리까”우리1-3절까지 다같이 불러 보십시다.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는 아무 자격이 없습니다.우리 주위에 우리보다 많이 배우고 더 훌륭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그럼에도 하나님은 나를 택하셨습니다.여러분 아무나 믿음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내 아버지께서 내게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도 우리를 구속하신 주님의 은혜를 찬양합시다.
4.하나님께서 우리를 지명하여 부르신 것이 은혜입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라고 하였습니다.하나님께서 지명하여 불렀다는 말씀 속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많은 사람들 중에 오직 너만을 사랑하며 너에게만 관심이 있다라는 의미입니다.여러분 노아 시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까.그러나 하나님은 오직 노아에게만 관심이 있었습니다.하나님께서 구원하시려고 이미 지명하셨기 때문입니다.삼상16장을 보면 이새에게 8아들이 있었습니다.사무엘이 왕을 세우려 갔을 때 16;1에 보면 “내가 그 아들 중에서 한 왕을 예선하였음이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하나님은 이미 다윗을 왕으로 지명하시고 그에게만 관심이 있었지 7명의 형에게는 관심이 없었습니다.그래서 결국 다윗은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게 된 것입니다.이와같은 관심을 우리에게 가지시는 것입니다.
둘째는 끝까지 지키고 보호하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한번 지명하여 부르신 사람은 끝까지 지키십니다.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습니다.많은 이방나라 사람들이 볼 때는 그들이 조롱 거리였습니다.그러나 역사가 흐르면서 바벨론도 앗수르도 로마도 다 망했습니다.세계 역사상 단일 민족으로서 이스라엘과 같이한 민족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나라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우리를 이 세상끝날까지 함께 하며 지키시기 위해서입니다.43;2에서는 네가 불 가운데든 물 가운데든 어디를 가든지 너를 지키신다고 하셨습니다.
셋째는 우리에게 주실 축복이 준비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우리를 지명하여 부르셨습니까.창12장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지명하여 부르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하나님은 우리를 지명하여 부르신 것은 우리를 복의 근원으로 삼으시기 위함입니다.우리의 인생을 행복하고 복되게 만들어 주시려고 부르셨습니다.저는 지금껏 예수 믿고 불행하게 되었다는 소리는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행복이란 외부의 조건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진정한 행복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주님은 우리 마음 가운데서 행복을 창조해 주십니다.어떤 어려운 현실 가운데에서도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오직 여러분을 지명하여 부르셨습니다.우리는 하나님께 요청하고 부탁한 적이 없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은혜로 우리를 지명하여 부르신 것입니다.
5.우리를 하나님의 것으로 삼아 주신 것이 은혜입니다. “너는 내 것이라”라고 하셨습니다.이스라엘 백성이 성전에서 부르는 가장 대표적이 노래가 어떤 노래입니까.시100편입니다.“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라”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방 나라가 이스라엘 백성을 침략한 것도 하나님의 섭리 아래서 징계의 도구로서 쓰신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우리를 대해 주십니다.요1:12에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이 주신 것입니다. 전도 세미나에서 이런 간증을 들은 일이 있습니다.며느리가 교회에 간다고 지독하게 핍박을 하며 미신을 섬기던 시어머니가 계셨답니다.그 며느리가 전도하기 위해서 어머니에게는 알리지 않고 구역 식구들과 목사님을 초대했습니다.
가서 앉자마자 정중히 인사를 하고 준비한 선물을 주면서 함께 잠깐만 예배드리자고 하니 엉겁결에 그만함께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목사님께서 우상 숭배는 하나님께 죄라고 하시면서 벌떡일어나 방안에 붙은 부적과 실타레같은 것들을 다 뜯어냈습니다.그러니까 그 할머니가 그것 건드리면 귀신이 노해서 그 자리에서 죽는다고 큰일났다고 합니다.그래서 목사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부적 떼내어도 아무 일이 안 생기면 귀신보다 하나님이 힘이 더 세니까 예수 믿겠냐고 물으니 아무말도 안하고 고개만 끄떡거렸습니다. 그 일로 인해서 결국은 신앙을 갖게 되었고 며느리 못지않게 충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그 할머님은 과거에 사탄과 귀신의 소유였습니다.일평생을 종으로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소유가 되어 축복의 남은 생애를 살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도 역시 하나님의 은혜이며 축복인 것입니다. 지금 한신 대학에 계시며 저를 가르쳤던 상담학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자신이 힘들 때는 기차를 타고 고향을 찾아간답니다.끼니를 거르면서 노동을 하며 학비를 벌던 학창시절의 흔적을 더듬어 보면서 생각하기를 “내가 과거에는 이렇게 어려웠었는데,아무런 희망도 없었는데,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는데 지금은 그 보잘것없던 나를 하나님께서 이렇게 변화시켜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며 새로운 기쁨과 영적인 행복감에 젖어서 다시 돌아오곤 한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요10:10에 “인자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케하려 함이라”라고 하셨습니다.여러분은 주님께서 안겨 주시는 이 풍성한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까. 바울이 항상 기뻐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었습니까.이 한마디의 고백이 그의 비결입니다.“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헤로라”그는 늘 내가 지금 숨을 쉬며 사는 것까지 하나님의 은혜라 생각하며 살았습니다.“아무것도 아닌 나에게 주님은 왜 이렇게 많은 은혜 주셨습니까”이것이 그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은혜를 주셨습니다.지렁이 같은 야곱인 우리를 외면치 않으시고 찾아오셨습니다.나를 만나 주신 그 분은 천지를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그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우리의 죄값을 담당하게 하시고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이 일은 어쩌다 우연이 아닙니다.오래 전부터 계획하시고 나를 지명하셨습니다.주목하셨습니다.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우리가 이런 축복을 입을 만한 무슨 자격이 있단 말입니까.무슨 조건이 있단 말입니까.무슨 의로운 일을 했단 말입니까.우리는 이유를 모릅니다.생각해 보십시다.다른 사람이 아무도 모르는 허물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습니까. 단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만 고백할 뿐입니다.오늘도 이 은혜를 우리 가슴에 부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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