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은 새 창조의 첫날 (사48:1-11)
본문
오늘 본문의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이 "새 일"을 시작하신다는 말씀이다. 그 "새 일"은 "이전 일"이 아니요, "옛적 일"이 아니다. 전에 "예언한 일"이요, 이제 "나타낼 일"이다. 네가 "알지 못하던 일"이요, "은비한 일" 이요, 네가 "듣지 못한 일"이다고 하신다. 이사야 65:17절/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바로 새 창조 사역을 말씀한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는 역사이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지니. 이전 것은 기억되지도, 생각나지 도 않는다고 했다. 이 "새 창조의 역사"는.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죽음과 저주와 멸망이 온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을 버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는 "새 창조 역사"이다. 아담으로 대 표되는 "인간" 뿐만 아니라. 땅도 저주를 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 게 되고(창3:17-18). 모든 피조물들이 허무한데 굴복하게 되었다(롬8:20). 다시 말하면. 아담의 범죄로 망쳐 버린 하나님의 창조 작품. 그래서 하나님은 죄에서 건져내시는 "구속사"의 새 창조 사역을 시작한 것이다. 주일은 바로 이 "새 창조 사역"의 첫째 날이다. 주일 하게 되면. 우리의 예배일이. 주일이냐 안식일이냐 많은 사람들이 주일의 "개념" 을 "예배일"로 접근을 하고 있다. 특히나, 안식교 측의 눈길은 더욱 그러하여. 사탄이 제정한 "주일 제 도"에 동참으로. 사탄의 표를 받는 것. 곧 요한 계시록 13장의 666 의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주일 성수자"는 사탄의 추종자이요, 사탄의 졸개이요, "사 탄의 회"라는 것이다(계2:9, 3:9). 안식일을 지키는 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 어갈 수 있는 자로.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 라(계14:12).고 한다. 주일의 개념은. 안식 후 첫날에 예배 드리는 것. 곧 "예배일"이 아니다. 주일은 새 창조의 "시작의 날"이다. 인류의 조상 아담의 범죄로. 죽음과 저주와 멸망이 왔다. 모든 피조물들이 허무한데 굴복하게 되었다 (롬8:20). 그래서 하나님은 죄에서 인간을 건져내시고, 그로 말미암아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는(롬8:21) "구속사"의 새 창조 사역을 시 작한 것이다. 주일은 바로 이 "새 창조 사역"의 첫째 날이다.
1.옛 창조의 안식일. 창세기 2:2-3절/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 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 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 하셨음이더라/ 이사야 43:18-19절/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 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이사야 65:17절/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옛 창조의 안식일은. 바로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을 창조하신. 옛 창조, 곧 태초에 천지를 6일 만에 창조하시고 제7일에 여호와 하나님이 안식하신 날이다. 이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시고. 당신의 백성으로 하여금. 거룩하게 구별하여 안식일로 지키게 하셨다. 그것이 바로 제4계명이다. 이 안식일 성수는 할례와 더불어 율법을 대표 하는 것이었다. 신약 시대까지도 지켜졌다. 그러나, 이 안식일은 "참 안식"의 그림자이고, 예표이었다. 아담, 하와의 범죄로. 죽음과 저주와 멸망이 왔고, 그래서 하나님의 인류를 구하시려는 "구속사"의 "새 창조"가 시작됨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이 시작된 것이 다(요5:17). 이 옛 창조의 안식일 지킴은. "안식 후 첫날". 예수님의 부활로. 그 막을 내리고. 이제 우리 성도 들은 "안식 후 첫날", "새 창조의 첫날", 곧 "주일"에 속하여. "참 안 식"을 소망하며. "영원한 안식일"을 향해 달려가게 된 것이다. 초대 교회의 예배도 이렇게 "안식 후 첫날"로 그 자리를 바꾸게 된다. 주님이 부활하신 날이 "안식 후 첫날"이요, 주님이 방문을 닫고 있는 제자 들에게 두 번이나 나타나신 날이 "안식 후 첫날"이다. 초대 교회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성령님이 강림하신 오순절도 "안식 후 첫날". 곧 "주일"이다. 사도 바울이 밤이 늦도록 복음을 증거한 날도 "안식 후 첫날"이요(행20:7), 고린도 교회 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헌금을 드린 날도 "안식 후 첫날" 곧 "주일"이 다(고전16:2).
2.새 창조의 역사 본문 6-8절/ 네가 이미 들었으니 이것을 다 보라 너희가 선전치 아니하 겠느뇨 이제부터 내가 새 일 곧 네가 알지 못하던 은비한 일 을 네게 보이노니 이 일들은 이제 창조된 것이요 옛적 것이 아니라 오늘 이전에는 네가 듣지 못하였느니라 그렇지 않았더 면 네가 말하기를 내가 이미 알았노라 하였으리라 네가 과연 듣지도 못하였고 알지도 못하였으며 네 귀가 옛적부터 열리지 못하였었나니 이는 네가 궤휼하고 궤휼하여 모태에서부터 패 역한 자라 칭함을 입은 줄을 내가 알았음이라/ 이사야 65:17절/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요한 계시록 21:1절/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위의 말씀에서 보는 대로. 새 하늘과 새 땅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아닌 전혀 새로운 창조 사역 이다. 영원한 천국이요, 참된 안식이 있는 곳이다. 이사야서의 예언이 그 대로 성취된 모습을 요한 계시록이 보여 주고 있다. 이 "새 하늘, 새 땅" 의 성취가 바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이요, 영원한 안식이다. 곧 여호수아 가 주지 못한 안식이다.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신 참 안식이다(히4:8). 이 참 안식을 위해 여호와 하나님은 "새 일"을 시작한 것이다. 그 "새 일"은 바로 "인류의 구속사"를 말씀하고 있다. 지금까지 없었던. 곧 처음 하늘과 처음 땅에 속한 일이 아닌. 전혀 새로운 일이다.
이사야 42:9절/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었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고하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이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 이사야 43:18절/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본문 6-7절/ 네가 이미 들었으니 이것을 다 보라 너희가 선전치 아니하 겠느뇨 이제부터 내가 새 일 곧 네가 알지 못하던 은비한 일 을 네게 보이노니 이 일들은 이제 창조된 것이요 옛적 것이 아니라 오늘 이전에는 네가 듣지 못하였느니라 그렇지 않았더 면 네가 말하기를 내가 이미 알았노라 하였으리라/ 이 "새 일"은. "이전 일"이 아니요, "옛적 일"이 아니다. 전에 "예언한 일"이요, 이제 "나 타낼 일"이다. 네가 "알지 못하던 일"이요, "은비한 일"이요, 네가 "듣지 못한 일"이다.라고 하신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아버지께서 맡기신 일을 하기 위함이었고, 주님은 이 일을 "다 이루었다". 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 "인류의 구속"을 완성하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는 장소적인 "새 창조 의 사역"을 하신다면. 예수님은 그 장소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이룩 하신 것이다. 곧 "구속의 길"이다(요14:6) 요한복음 17:4-5절/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 전 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 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4:34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요한복음 9:4절/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 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주님은 "아버지의 일"을 맡으셨고, 이것은 아버지의 뜻이었다. 그 일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었다. 밤이 오기 전에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어 드리기 위해 낮이 가기 전에 "보내신 이의 일" 을 하신 것이다.
요한복음 5:17절/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이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말씀으로. 안식일에 베데스다 못 가의 38년된 병자를 고친 사건에서. 유대인들의 시비와 관련된 말씀이다. 나음을 입은 병자를 향해. 38년된 앉은뱅이가 나아서 기쁨으로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을 보고.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정죄를 한다(요5:10). 또 주님을 향해.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하여 핍박한다(요5:16). 그때 주님이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안식일에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그것을 구별하시는데. 주님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주님은 지금 자신이 "구원자"이심을 나 타내 보이시는 것이다. 38년된 앉은뱅이에게 "참 안식"이 무엇인가.를 가 르쳐 주고 있다. 율법의 조문을 쫓아. 자리를 들고 가지 않는 것이. 그 38년된 병자에게는 결코 "참 안식"이 될 수가 없다. 더구나 그 안식일 지킴이. 그 병자에게 "구원"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38년된 앉은뱅이가 자 리를 들고 일어나 가는 것이. 바로 그에게는 "구원"이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바로 주님의 일하심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시는 말씀이다. "참 안식"을 주는 것이다. 이 일은 "안식일의 주인"이신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마12:8). 요한복음 6:27-29절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 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 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 니라 하시니/ 이제 주님은 자신의 이 일을. 자신을 믿고 따른 자들에게.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맡기신다.
그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하셨다. 바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참 안식"을 주시는 자로 믿는 것이다. 곧 자신이 이룩하신 "구속의 길"을 따라 "참 안식" 에 들어가라.는 것이다. 새 창조의 역사를 완성하시어. 성도들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을 주 시는 것이다. "참 안식"을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 이요, 우리 성도들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구속의 길"은 이미 이루어져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 곧 "새 창조의 역사"를 마 치시면. 바로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된다. 이사야 41:4절/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태초부터 만대를 명정하였느냐 나 여호와라 태초에도 나요 나중 있 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태초부터 만대를 명정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계획하신 대로. 명하신 때가 차면. 정확하게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신 것처럼(갈4:4) 또 때가 차면. "새 하늘"과 "새 땅"이 오고.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불타 없어지게 된다. 벧후3:6-7절/ 이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 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노아 시대에 세상이 홍수로 심판을 받은 것처럼. 주님의 재림의 때에. 경건치 않은 자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에.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불타 없어진다.
3.참 안식일 요한 계시록 21:3-7절/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 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 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 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바로 "참 안식"이요, 우리 성도가 소망하는 천국이다.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어.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고,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이 모든 눈물을 씻기기는 그곳. 바로 "처음 것"이 다 지나가고 없다. "다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생명수 샘물로. 값없이 주 리니. "이기는 자". 곧 "참 안식"에 들어가도록 힘쓰는 자. 그들이 유업을 얻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영원히 영광에 사는 것이다. 우리 성도들을 향하여. "참 안식"에 들어가도록 힘쓰라.고 하신다. 히브리서 4:10-11절/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 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 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 성도가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일"은. 바로 "참 안식"에 들어가도록 힘쓰는 일이다. 이 "참 안식"에 들어가면.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바로 영원한 안식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여호수아가 주지 못한 안식. 이 "참 안식"에 들어가도록 힘쓰는 일. 바로 하나님의 "새 창조 사역"에 동참하는 일이다. 이 "새 창조의 사역"은 하나님이 예수님께 맡기셨고,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셨다". 그래서 우리 성도는 "옛 창조의 안식"이 아닌 "새 창조의 안식"을 소망 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옛 창조의 안식일"에 머무는 자가 아니라 "새 창조의 안식일"을 향해 힘써 소망 중에 달려가는 자이다. "참 안식"에 들어 가는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새 창조의
첫째 날" 곧 "주일"에 속해 있는 자이다. 결코 "옛 창조의 안식일"에 머물러 있는 자가 아니다. 결코 우리 성도들은 여호수아가 주는 "옛 창조의 안식일"에 머물 러 있을 수 없다. "새 창조"의 "참 안식일"이 이루어지면. 바로 그 "참 안식일"은 영원, 영원, 영원 무궁한 날이다.
그러므로 "새 창조의 세계"에는. "안식 후 첫날"이 있을 수 없다. "옛 창조"의 "안식 후 첫날"은 있을 수 있지만. "새 창조"의 "참 안식 후 첫날"은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영원의 시간대"의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 이 "태초"에서부터 "시간 역사"가 시작되었 고, 이제 "참 안식일" 이루어지면. "시간 역사"는 끝이 나고, 다시금 영 원 무궁한 "영원의 시간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창세기 1:14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새 창조의 안식일"은. "옛 창조의 안식일"과 같은 태양에 의해 이루어지는 "하루"가 아니다. 영원, 영원, 영원 무궁한 "하루"이다. 하나님의 "하루"이요, 영원한 "하루" 이다. 다시 말해서 "시간 역사"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루"가 아니다. 요한 계시록 21:23-25절/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 로 들어오리라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옛 창조"의 "하루". 곧 태양에 의해 이루어지는 "시간 역사" 속의 "하루"는 "낮"과 "밤"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새 창조"의 "하루"는 영원, 영원하다. 하나님 의 영광이 해를 대신하니. 거기는 "밤"이 없다. 어두움이 없고. 빛이다. 영원히, 영원히 밝게 빛나는 "낮" 뿐이다. 이 "새 창조"의 "참 안식"을. 성도들의 소망에서 빼앗으려는 자들이 있다."옛 창조"의 "안식"에 머물게 하려는 자들이 있다. 여호수아가 준 안식에 머물게 하려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참 안식"을 주지 못했다. "참 안식"의 그림자이 요, "참 안식"의 증거자일 뿐이다.
벧후3:3-14절/ 먼저 이것을 알찌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 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 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참 안식"을 주실. 주의 강림을 기롱하는 자들이다.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은 거짓이다".고 기롱한다.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바로 "옛 창조의 안식"에 머물게 하려는. 기롱이다. "새 창조"의 "참 안식" 을 소망하는. 성도들의 가슴속에서. 소망을 빼앗으려는 자들이다. 벧후3:10-14절/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 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 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 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 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 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그러나 주의 날은 온다. 도적같이 온다. 그 날에는 하늘이 떠나가고, 체질이 불타 없어진다. 모든 일이 드러난다. 기롱하는 자들의 말에 전혀 상관을 않고. "만대를 명정"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하십니다.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 이 뜨거운 불에 녹아질지라도.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 보도다.
그러므로, 이런 소망을 가진 자는.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 라.고 하십니다. 힘쓰라. 평강 가운데 나타나기를 힘쓰라.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히4:11)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눅13:24) 그러기 위해.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2:15)고 하십니다. 이 힘쓰는 일은. "옛 창조"의 "안식일"에 머물러 있는 자는. 그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힘쓰는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새 창조"의 첫날에 있는 자, 곧 "주일" 에 속한 자라야. "참 안식일"을 바라보며. 달려가는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참 안식일"이 도적같이 오기 전에. 우리 성도가 할 일을 제시해 주는 물음입니다. 참으로 내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할까요.
1.옛 창조의 안식일. 창세기 2:2-3절/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 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 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 하셨음이더라/ 이사야 43:18-19절/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 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이사야 65:17절/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옛 창조의 안식일은. 바로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을 창조하신. 옛 창조, 곧 태초에 천지를 6일 만에 창조하시고 제7일에 여호와 하나님이 안식하신 날이다. 이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시고. 당신의 백성으로 하여금. 거룩하게 구별하여 안식일로 지키게 하셨다. 그것이 바로 제4계명이다. 이 안식일 성수는 할례와 더불어 율법을 대표 하는 것이었다. 신약 시대까지도 지켜졌다. 그러나, 이 안식일은 "참 안식"의 그림자이고, 예표이었다. 아담, 하와의 범죄로. 죽음과 저주와 멸망이 왔고, 그래서 하나님의 인류를 구하시려는 "구속사"의 "새 창조"가 시작됨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이 시작된 것이 다(요5:17). 이 옛 창조의 안식일 지킴은. "안식 후 첫날". 예수님의 부활로. 그 막을 내리고. 이제 우리 성도 들은 "안식 후 첫날", "새 창조의 첫날", 곧 "주일"에 속하여. "참 안 식"을 소망하며. "영원한 안식일"을 향해 달려가게 된 것이다. 초대 교회의 예배도 이렇게 "안식 후 첫날"로 그 자리를 바꾸게 된다. 주님이 부활하신 날이 "안식 후 첫날"이요, 주님이 방문을 닫고 있는 제자 들에게 두 번이나 나타나신 날이 "안식 후 첫날"이다. 초대 교회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성령님이 강림하신 오순절도 "안식 후 첫날". 곧 "주일"이다. 사도 바울이 밤이 늦도록 복음을 증거한 날도 "안식 후 첫날"이요(행20:7), 고린도 교회 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헌금을 드린 날도 "안식 후 첫날" 곧 "주일"이 다(고전16:2).
2.새 창조의 역사 본문 6-8절/ 네가 이미 들었으니 이것을 다 보라 너희가 선전치 아니하 겠느뇨 이제부터 내가 새 일 곧 네가 알지 못하던 은비한 일 을 네게 보이노니 이 일들은 이제 창조된 것이요 옛적 것이 아니라 오늘 이전에는 네가 듣지 못하였느니라 그렇지 않았더 면 네가 말하기를 내가 이미 알았노라 하였으리라 네가 과연 듣지도 못하였고 알지도 못하였으며 네 귀가 옛적부터 열리지 못하였었나니 이는 네가 궤휼하고 궤휼하여 모태에서부터 패 역한 자라 칭함을 입은 줄을 내가 알았음이라/ 이사야 65:17절/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요한 계시록 21:1절/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위의 말씀에서 보는 대로. 새 하늘과 새 땅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아닌 전혀 새로운 창조 사역 이다. 영원한 천국이요, 참된 안식이 있는 곳이다. 이사야서의 예언이 그 대로 성취된 모습을 요한 계시록이 보여 주고 있다. 이 "새 하늘, 새 땅" 의 성취가 바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이요, 영원한 안식이다. 곧 여호수아 가 주지 못한 안식이다.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신 참 안식이다(히4:8). 이 참 안식을 위해 여호와 하나님은 "새 일"을 시작한 것이다. 그 "새 일"은 바로 "인류의 구속사"를 말씀하고 있다. 지금까지 없었던. 곧 처음 하늘과 처음 땅에 속한 일이 아닌. 전혀 새로운 일이다.
이사야 42:9절/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었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고하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이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 이사야 43:18절/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본문 6-7절/ 네가 이미 들었으니 이것을 다 보라 너희가 선전치 아니하 겠느뇨 이제부터 내가 새 일 곧 네가 알지 못하던 은비한 일 을 네게 보이노니 이 일들은 이제 창조된 것이요 옛적 것이 아니라 오늘 이전에는 네가 듣지 못하였느니라 그렇지 않았더 면 네가 말하기를 내가 이미 알았노라 하였으리라/ 이 "새 일"은. "이전 일"이 아니요, "옛적 일"이 아니다. 전에 "예언한 일"이요, 이제 "나 타낼 일"이다. 네가 "알지 못하던 일"이요, "은비한 일"이요, 네가 "듣지 못한 일"이다.라고 하신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아버지께서 맡기신 일을 하기 위함이었고, 주님은 이 일을 "다 이루었다". 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 "인류의 구속"을 완성하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는 장소적인 "새 창조 의 사역"을 하신다면. 예수님은 그 장소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이룩 하신 것이다. 곧 "구속의 길"이다(요14:6) 요한복음 17:4-5절/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 전 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 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4:34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요한복음 9:4절/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 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주님은 "아버지의 일"을 맡으셨고, 이것은 아버지의 뜻이었다. 그 일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었다. 밤이 오기 전에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어 드리기 위해 낮이 가기 전에 "보내신 이의 일" 을 하신 것이다.
요한복음 5:17절/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이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말씀으로. 안식일에 베데스다 못 가의 38년된 병자를 고친 사건에서. 유대인들의 시비와 관련된 말씀이다. 나음을 입은 병자를 향해. 38년된 앉은뱅이가 나아서 기쁨으로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을 보고.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정죄를 한다(요5:10). 또 주님을 향해.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하여 핍박한다(요5:16). 그때 주님이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안식일에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그것을 구별하시는데. 주님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주님은 지금 자신이 "구원자"이심을 나 타내 보이시는 것이다. 38년된 앉은뱅이에게 "참 안식"이 무엇인가.를 가 르쳐 주고 있다. 율법의 조문을 쫓아. 자리를 들고 가지 않는 것이. 그 38년된 병자에게는 결코 "참 안식"이 될 수가 없다. 더구나 그 안식일 지킴이. 그 병자에게 "구원"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38년된 앉은뱅이가 자 리를 들고 일어나 가는 것이. 바로 그에게는 "구원"이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바로 주님의 일하심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시는 말씀이다. "참 안식"을 주는 것이다. 이 일은 "안식일의 주인"이신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마12:8). 요한복음 6:27-29절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 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 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 니라 하시니/ 이제 주님은 자신의 이 일을. 자신을 믿고 따른 자들에게.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맡기신다.
그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하셨다. 바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참 안식"을 주시는 자로 믿는 것이다. 곧 자신이 이룩하신 "구속의 길"을 따라 "참 안식" 에 들어가라.는 것이다. 새 창조의 역사를 완성하시어. 성도들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을 주 시는 것이다. "참 안식"을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 이요, 우리 성도들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구속의 길"은 이미 이루어져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 곧 "새 창조의 역사"를 마 치시면. 바로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된다. 이사야 41:4절/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태초부터 만대를 명정하였느냐 나 여호와라 태초에도 나요 나중 있 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태초부터 만대를 명정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계획하신 대로. 명하신 때가 차면. 정확하게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신 것처럼(갈4:4) 또 때가 차면. "새 하늘"과 "새 땅"이 오고.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불타 없어지게 된다. 벧후3:6-7절/ 이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 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노아 시대에 세상이 홍수로 심판을 받은 것처럼. 주님의 재림의 때에. 경건치 않은 자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에.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불타 없어진다.
3.참 안식일 요한 계시록 21:3-7절/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 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 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 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바로 "참 안식"이요, 우리 성도가 소망하는 천국이다.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어.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고,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이 모든 눈물을 씻기기는 그곳. 바로 "처음 것"이 다 지나가고 없다. "다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생명수 샘물로. 값없이 주 리니. "이기는 자". 곧 "참 안식"에 들어가도록 힘쓰는 자. 그들이 유업을 얻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영원히 영광에 사는 것이다. 우리 성도들을 향하여. "참 안식"에 들어가도록 힘쓰라.고 하신다. 히브리서 4:10-11절/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 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 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 성도가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일"은. 바로 "참 안식"에 들어가도록 힘쓰는 일이다. 이 "참 안식"에 들어가면.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바로 영원한 안식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여호수아가 주지 못한 안식. 이 "참 안식"에 들어가도록 힘쓰는 일. 바로 하나님의 "새 창조 사역"에 동참하는 일이다. 이 "새 창조의 사역"은 하나님이 예수님께 맡기셨고,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셨다". 그래서 우리 성도는 "옛 창조의 안식"이 아닌 "새 창조의 안식"을 소망 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옛 창조의 안식일"에 머무는 자가 아니라 "새 창조의 안식일"을 향해 힘써 소망 중에 달려가는 자이다. "참 안식"에 들어 가는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새 창조의
첫째 날" 곧 "주일"에 속해 있는 자이다. 결코 "옛 창조의 안식일"에 머물러 있는 자가 아니다. 결코 우리 성도들은 여호수아가 주는 "옛 창조의 안식일"에 머물 러 있을 수 없다. "새 창조"의 "참 안식일"이 이루어지면. 바로 그 "참 안식일"은 영원, 영원, 영원 무궁한 날이다.
그러므로 "새 창조의 세계"에는. "안식 후 첫날"이 있을 수 없다. "옛 창조"의 "안식 후 첫날"은 있을 수 있지만. "새 창조"의 "참 안식 후 첫날"은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영원의 시간대"의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 이 "태초"에서부터 "시간 역사"가 시작되었 고, 이제 "참 안식일" 이루어지면. "시간 역사"는 끝이 나고, 다시금 영 원 무궁한 "영원의 시간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창세기 1:14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새 창조의 안식일"은. "옛 창조의 안식일"과 같은 태양에 의해 이루어지는 "하루"가 아니다. 영원, 영원, 영원 무궁한 "하루"이다. 하나님의 "하루"이요, 영원한 "하루" 이다. 다시 말해서 "시간 역사"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루"가 아니다. 요한 계시록 21:23-25절/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 로 들어오리라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옛 창조"의 "하루". 곧 태양에 의해 이루어지는 "시간 역사" 속의 "하루"는 "낮"과 "밤"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새 창조"의 "하루"는 영원, 영원하다. 하나님 의 영광이 해를 대신하니. 거기는 "밤"이 없다. 어두움이 없고. 빛이다. 영원히, 영원히 밝게 빛나는 "낮" 뿐이다. 이 "새 창조"의 "참 안식"을. 성도들의 소망에서 빼앗으려는 자들이 있다."옛 창조"의 "안식"에 머물게 하려는 자들이 있다. 여호수아가 준 안식에 머물게 하려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참 안식"을 주지 못했다. "참 안식"의 그림자이 요, "참 안식"의 증거자일 뿐이다.
벧후3:3-14절/ 먼저 이것을 알찌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 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 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참 안식"을 주실. 주의 강림을 기롱하는 자들이다.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은 거짓이다".고 기롱한다.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바로 "옛 창조의 안식"에 머물게 하려는. 기롱이다. "새 창조"의 "참 안식" 을 소망하는. 성도들의 가슴속에서. 소망을 빼앗으려는 자들이다. 벧후3:10-14절/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 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 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 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 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 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그러나 주의 날은 온다. 도적같이 온다. 그 날에는 하늘이 떠나가고, 체질이 불타 없어진다. 모든 일이 드러난다. 기롱하는 자들의 말에 전혀 상관을 않고. "만대를 명정"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하십니다.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 이 뜨거운 불에 녹아질지라도.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 보도다.
그러므로, 이런 소망을 가진 자는.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 라.고 하십니다. 힘쓰라. 평강 가운데 나타나기를 힘쓰라.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히4:11)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눅13:24) 그러기 위해.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2:15)고 하십니다. 이 힘쓰는 일은. "옛 창조"의 "안식일"에 머물러 있는 자는. 그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힘쓰는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새 창조"의 첫날에 있는 자, 곧 "주일" 에 속한 자라야. "참 안식일"을 바라보며. 달려가는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참 안식일"이 도적같이 오기 전에. 우리 성도가 할 일을 제시해 주는 물음입니다. 참으로 내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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