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앙망하라 (사40:27-31)
본문
루터의 이야기 유명한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하다가 힘에 겨워지기 시작했다. 그 어려운 사업을, 로마 카토릭의 거대한 구조를 성경을 가지고 혼자의 힘으로 도전한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 였다. 낙심이 되었다. 의기 소침해 졌다. “내가 왜 이런 어려운 일을 시작했는가 이렇게 힘들 줄 알았다면 차라리 시작이나 하지 말 것을.” 그는 그만 두고 싶은 유혹이 꿀떡 같았다. (여러분들도 그렇지 않는가 무슨 일을 시작하다 벽에 부딪히면 그런 절망감을 가진다. 나도 목회 하면서 그런 마음을 가져 보았던 때가 있다.
그런데 그게 또 쉽게 되어지지 않더라). 그는 너무 힘들고 지쳐서 개혁하는 일들을 중단하기로 결심하고 그는 쓰러졌다. 그리고 병상에 누워서 ‘이제 나는 더 이상 아무 일도 하지 않겠다’고 결심을 하고 있었다. 그날도 그는 의기 소침한 모습으로밖에 잠시 산보를 하고 돌아 왔는데 자기 아내가 자기를 맞이하는데 갑자기 상복을 입고 자기를 맞이하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루터가 물었다. “아니 여보, 당신 집안에 무슨 일이 생겼소 갑자기 상복은 왠 일이요” 그러자 그의 아내가 말한다. “네, 돌아 가셨습니다.” “아니, 누가 돌아 가셨소” 그의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예, 하나님이 돌아 가셨습니다” “아니 여보,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시오 하나님이 돌아가시다니!” 지혜 있는 그의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 “여보, 하나님이 돌아가시지 않았으면 어찌 그리 당신이 의기소침할 수가 있소 아무래도 당신을 보니 하나님이 돌아 가신게 틀림이 없어요.” 여러분! 이 말씀을 들으면서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혹시 내가 만난 여러 일들로 인하여, 내가 당하는 문제들로 인하여, 내 힘으로 부딪히는 여러 가지 문제와 사건으로 인하여, 내 뜻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인하여, 하나님이 돌아가신 것인냥, 이제는 다 끝났다는 그런 심정으로 마음 아파하며, 괴로워하며, 힘든 나날이 아니 였는지요 오늘 이런 심정을 가지고 나온 여러분이 계시다면 여전히, 변함없이, 그리고 늘 우리와 함께 계셔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붙들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큰 힘을 얻고, 능력을 얻고 돌아가기 바란다. 또한 앞으로 살아가다 루터와 비슷한 상황에 우리가 빠지게 될 때에 그 가운데 살아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능히 이겨 나가는 역사가 일어나기 바란다. 왜 그런가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절망할 일, 힘을 잃을 일, 낙심할 일, 좌절할 일, 실망할 일, 괴로운 일을 많이 만난다. 이런 일들을 만날 때에 일어나는 현상이 조금 전에 말씀을 드렸던 루터와 같은 마음이 들어 안절부절못한다. 이것은 비단 루터만의 문제가 아니다.
1.이스라엘 백성들의 심정(27절) (사40:27)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1이스라엘아 이사야선지가 말한다.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외치는 것을 말한다. 이사야선지가 그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의 생각, 그것이 입으로,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을 볼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런 처지에 빠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사야가 본 이스라엘 백성들의 형편과 사정, 마음의 생각이 어찌 그리 내 모습과, 우리들의 모습과 같은지를 잘 말해 준다.
2어떤 처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내 사정을 몰라준다는 것이다.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시에 곤란에 지경에 빠져 있었다. 주변 국가들로부터 당하는 침략의 고통, 육적으로 당하는 삶의 곤고함, 마음의 원함이 있어서 무엇을 좀 하려고 할 때에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 이런 저런 일들로 인하여 굉장히 힘든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런 가운데 앗수르 나라가 쳐들어오려고 덤비고 있는 이런 상황이 되니 더 괴로운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나님은 나의 형편, 나의 사정, 나의 당하는 일, 나의 원함, 나의 어려운 사정을 몰라준다. 만약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이 이런 우리의 사정을 안다면 그럴 수 없다고 하는 하나님께 향한 불만의 목소리가 커져 가고 있었다. 여러분, 언제 답답한가 상대방이 나의 사정을 알아주지 못하고 잘못 오해하고 있을 때에 참 답답하다. 마음이 괴롭다. 저와 그리고 아내가 목회자로서 주의 일들을 하면서 제일 힘들 때가 있다. 물질이 적거나, 집이 적어서, 아니면 먹지 못해서 아니면 입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믿음으로 바로 해보려 하고, 잘 해보려고 기도하면서 인도해 나가는데, 거기에 어떤 저의가 들어 있거나, 아니면 상대방을 깔아뭉개고 괴롭히려고 그런 일들을 하지 않는데 나타나 보이는 일들이 그렇게 여겨져서 잘못 오해하고 있을 때 참 힘들고 괴롭더라. 여러분들도 그렇지 않겠는가 아내로서 집안의 일들을 나름대로 해 나가는데 밖에서 일하고 들어온 남편이 아내의 사정을 알아주지 못할 때에 얼마나 속상하는가 남편도 역시 밖에 나가 이런 일, 저런 일 다 당하면서 집에 들어오는데 그런 것을 알 주기는커녕 오히려 바가지를 긁게 될 때, 즉 내 사정을 알아주지 못할 때에 얼마나 힘이 빠지는가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정이 이해가 되는가 하나님이 나의 사정을 몰라주는가 보다 하는 마음이 들때에 이들은 코가 석자나 빠진 사람처럼 낙심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내 소원을 이루어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원통한 것은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원하는 소원이 있었다. 그렇게 되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나라가 외세에 침입을 당하지 않고, 안정 가운데 있기를 원하고, 그들이 마음에 소원하는 일, 이루고 싶은 일, 되어야 할 일들이 그들의 생각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럴 만도 한게 그들은 그 어느 나라 사람도 가지지 않는 천지창조의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으로서, 아니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의 백성으로서 어쩌면 그렇게 여기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내 마음의 원함대로 꼭 이루어 주실 거야, 하나님은 그렇게 되게 하실 거야 라는 생각을 갖는 것 당연한지 모른다.
그런데 그런 간절한 마음들을 하나님은 시간이 지나도, 해가 바뀌어도 들어주시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들은 생각하기를 ‘나의 원통한 것을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하는구나’, 아니 ‘하나님을 믿어도 별수 없구나, 변화는커녕, 잘되기는커녕 문제 위에 문제, 괴로움 위에 괴로움을 당하는 구나’ 그래서 그들은 힘을 잃고 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다면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심정을 이스라엘 백성들뿐 아니라 시편의 다윗도 그렇게 여기고 있었다. 시73편에 보면 (시73:1)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시73:2) 나는 거의 실족할 뻔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시73:3)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시73:4)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시73:5)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시73:6)
그러므로 교만이 저희 목걸이요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 (시73:7) 살찜으로 저희 눈이 솟아나며 저희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며 (시73:8) 저희는 능욕하며 악하게 압제하여 말하며 거만히 말하며 (시73:9) 저희 입은 하늘에 두고 저희 혀는 땅에 두루 다니는도다 (시73:10)
그러므로 그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시73:11)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극히 높은 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도다 (시73:12)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 하도다 (시73:13) 내가 내 마음을 정히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시73:14)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 (시73:15)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이렇게 말하리라 하였더면 주의 아들들의 시대를 대하여 궤휼을 행하였으리이다
솔직히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이, 다윗의 말이 우리의 생각과 같지 않는가 우리의 모습을 읽어볼 수 있지 않는가 하나님을 믿는 나는 괴로움을 당하고, 더 어렵고,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도 없는 사람들은 싸 놓고 살고, 잘되는 것을 볼 때에 어찌 힘을 잃지 않겠는가 저도 목회를 하면서 힘을 잃었던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한숨을 쉬고, 걱정을 하고, 두려워했다. 아니 원망을 하고, 후회를 하였다. 나름대로 주의 일을 해보려고 애를 쓴다. 나도 남들처럼, 아니 남들보다 더 열심히, 바르게 해보려고 이리 뛰어다니고, 저리 뛰어 다닌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좀 잘되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젊은 사람이 세상낙 다버리고 주를 위해 일평생을 드려 쓰임을 받고자 한다면 하나님이 잘되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기대와는 상관없이, 아니 오히려 더 강하게 문제 위에 문제, 사건 위에 사건들이 일어난다. 마음의 원하는 부흥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그런 모습으로 교회가 세워지지 않고 오히려 제자리걸음이다. 아니 후퇴했다고 하는 것이 더 오히려 낳겠다. 들어와도 모자랄 판에 믿었던 사람이, 기대했던 사람들이 이런 사정, 저런 사정으로 빠져나간다. 이런 상황에 빠지게 될 때에 어느 누가 힘을 잃지 않겠는가 이것이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겨진다. 내원대로, 내 생각대로는 되어지지 않지만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그럴 수 없다고 하는 이런 현실적인 문제 앞에 누가 힘을 잃지 않겠는가 저는 매번 이런 일, 저런 일들로, 기대와 원함대로 되어지지 않는 일들을 만날 때마다 실망하고, 낙심하였다.
그런데 놀라웁게도 하나님은 과연 살아 계심을 그때마다 체험을 한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시지 않고 붙들고 계심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기도할 때마다, 그 하나님을 생각 할 때마다 하나님은 자기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 보여주셨다. 그리하여 힘을 얻어 또 다시 일어 나는 것이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리고 내가 힘을 잃고 낙심을 하는 두 가지의 원인을 발견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원인으로 인하여 힘을 잃게 된다.
1나와 다른 사람을 볼 때에 힘을 잃게 된다. 저 사람들은 하는데 왜 나는 안될까 다른 사람들은 되는데 왜 우리들은 안될까 그 사람은 왜 그럴까 꼭 그렇게 해야 하나 즉, 나의 안되는 모습,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안되는 모습이 실망을 가져오게 한다.
2내가 처한 상황을 볼 때에 힘을 잃게 낙심한다. 왜 우리 집은 이럴까 안되는 자기의 상황, 되어지기를 원하는데 되어지지 않음으로 인한 일들을 볼 때에 그렇더라.
2.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일하심(28-29)
그런데 마냥 그럴 수 없지 않는가 힘을 잃고 낙심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 이제 다끝났다고 여겨지는 우리들이 간과한 일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사람은 보고, 자기가 처한 환경은 보았지만 더 중요한 한가지는 보지 못하고 있다. 아니면 의식적으로 그것을 의식하지 않으려 할지도 모른다. (사40: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사40:29) 피곤한 자에 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그런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은 무엇이라 말하는가 “알지 못하느냐, 듣지 못했느냐” 무엇을 하나님 여호와는. 이 말씀이 무엇인가 ‘그러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내라. 실망 마라. 내가 너를 지금까지 역사 하지 않았느냐, 지금까지 살아 온 것이 내힘으로냐, 내 지식으로냐, 내 능으로냐, 아니다. 하나님 여호와다. 내가 너를 위하여 앞으로도 일할 것이다. 너를 위하여 역사 할 것이다.’는 말이다. 사람으로 인하여 힘을 잃고 계신 분, 자신이 처한 불리한, 좋지 않는 상황에 처해 힘을 잃고 있는 여러분, 앞으로 그런 일들 가운데 처할 여러분, 여기에 우리가 힘을 잃지 않고, 힘을 내고 담대히 일어날 근거가 있다. 힘낼 이유가 있다. 무엇인가 여러분과 저에게
1하나님이 있지 아니하냐 그 하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 변하지 않는 분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조석 지변으로 변하지만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시고 그 자리에, 그곳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창조자 하나님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있는 것을 더 좋은 것으로 만드시는 하나님, 역사의 주관자요,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 ㉰무한하신 하나님 그분은 피곤치도, 곤비치도, 명철이 한이 없으시다. 한계가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이다. ㉱주시며, 더하시는 하나님 빼앗아 가시는 분이 아니라, 없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 기어코 있게 하시고, 주시기를 좋아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런 하나님이 나에게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뿐 아니다.
2그 하나님이 주신 구원이 있지 아니하냐 그 무엇으로 살수 없는 구원, 그 무엇으로 이룰 수도 없는 구원을 얻지 않았는가 돈으로 안되는 것, 힘으로도 안되는 것, 능으로도 안되는 것, 영생을 얻은 자 아니냐. 오늘 당장 죽도라도 하나님의 품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가 아니냐는 것이다. 뿐 아니라 우리가 힘낼 근거가 무엇인가
3내세의 소망이 있이 않느냐 이 땅에서 죽음으로 끝날 존재가 아니라 영원한 내세를 약속하며 그분이 주시는 천국의 살 소망이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이것을 생각한다면 힘낼 충분한 근거가 된다. 아니 이것을 생각하면 힘이 솟아난다.
3.힘있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한다면(30-31) 여러분! 힘을 내며 능력 있게 살기 원하시는가 그럴려면 내 앞에 있는 사람이나, 내가 만난 일들만 바라보지 말라. 물론 그것을 아니볼수 있다. 본다. 그러나 우리들이 그 자리에서 빨리 빠져 나올 수 있으려면 그 사람을 주장하시고, 그 환경과 일들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바라 보라. 그것이 30-31절의 말씀이다. (사40: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사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를 누구를요 세상에 힘있고, 능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어떤 분이신데요 그는 힘을 주시고, 능력으로 더하시고, 생명의 주관자시요, 문제의 해결자 이신 하나님을 앙망(仰望)하라 앙망하라는 것은 바라보라는 말이다. 그러나 더 깊은 의미가 있다. 우리가 힘을 낼 수 있으려면 여호와를 앙망해야 하는데 그 앙망한다는 말은
1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을 믿어라. 이것이 역사요, 이것이 사실이었다.
2하나님이 하실 것을 믿어라 (슥4:6)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슥4:7)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어 놓을 때 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그렇다. 사람으로는 안되지만 하나님으로는 하신다. 그것을 믿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이루어진다. 결론 문제 있는가 실망할 일이 있는가 무엇인가 마음대로, 원대로 이루어지지 않는가 답답한가 어렵고, 힘든 일이 쌓여 있는가 어찌할바 알지 못하겠는가 이제 더 이상 못하겠다고 여겨지는 것이 있는가 포기하지 말라. 힘내라. 우리에게는 영원하신 하나님, 창조자 하나님, 무한하신 하나님, 잘되기를 원하시며, 주시며 더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가 그 하나님을 앙망하라. 주님을 바라보자. 힘을 잃은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너무 힘이 들어 누워 죽기를 구하였다. 차라리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실 바에야 데리고나 가라고 울부짖었다. 그는 기도의 능력, 기도의 응답을 체험한 사람이기도 하다. 주의 일에 열심과 헌신을 다하였다. 그런 그가 어쩔 수 없이 다가오는 마음의 무거운 짐, 환경의 부닥치는 여러 일들로 인하여 낙심하고 좌절하고 있었다. 그는 생각하기를 사람들도 나를 버리고, 하나님도 나를 버리시구나 여겼다. 그러나 그 사람이 하나님도 필요 없다고, 믿음도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살아서 그와 함께 있었고, 그를 붙들고 있었고, 그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는 이제는 끝이다라고 여기는 그 순간에 언제나, 여전히 변함없이 그를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바라보고 일어나 다시 은혜의 길로 들어선다. 바로 이 사람이 왕상 19장의 엘리야 이다. 여러분 중에 사람들이 나를 버린 것 같은 마음 때문에 외로워하며 힘든 이가 있는가 여러분 중에 하나님도 나에게 역사 하지 않고 버리셨는가 보다 하는 이가 있는가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그리고 내일도 우리의 그 자리에서 여전히 나를 붙들고 계심을 믿어라. 그리고 그가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힘내라. 아무개야 힘내라. 너에게 내가 있지 아니하냐, 내가 너를 붙들 마, 내가 너를 사랑하마. 힘내라. 여호와를 앙망하라. 독수리 날개침같이 올라갈 것이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주 여호와를 앙망 하는자 새 힘을 새 힘을 얻으리로다
그런데 그게 또 쉽게 되어지지 않더라). 그는 너무 힘들고 지쳐서 개혁하는 일들을 중단하기로 결심하고 그는 쓰러졌다. 그리고 병상에 누워서 ‘이제 나는 더 이상 아무 일도 하지 않겠다’고 결심을 하고 있었다. 그날도 그는 의기 소침한 모습으로밖에 잠시 산보를 하고 돌아 왔는데 자기 아내가 자기를 맞이하는데 갑자기 상복을 입고 자기를 맞이하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루터가 물었다. “아니 여보, 당신 집안에 무슨 일이 생겼소 갑자기 상복은 왠 일이요” 그러자 그의 아내가 말한다. “네, 돌아 가셨습니다.” “아니, 누가 돌아 가셨소” 그의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예, 하나님이 돌아 가셨습니다” “아니 여보,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시오 하나님이 돌아가시다니!” 지혜 있는 그의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 “여보, 하나님이 돌아가시지 않았으면 어찌 그리 당신이 의기소침할 수가 있소 아무래도 당신을 보니 하나님이 돌아 가신게 틀림이 없어요.” 여러분! 이 말씀을 들으면서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혹시 내가 만난 여러 일들로 인하여, 내가 당하는 문제들로 인하여, 내 힘으로 부딪히는 여러 가지 문제와 사건으로 인하여, 내 뜻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인하여, 하나님이 돌아가신 것인냥, 이제는 다 끝났다는 그런 심정으로 마음 아파하며, 괴로워하며, 힘든 나날이 아니 였는지요 오늘 이런 심정을 가지고 나온 여러분이 계시다면 여전히, 변함없이, 그리고 늘 우리와 함께 계셔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붙들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큰 힘을 얻고, 능력을 얻고 돌아가기 바란다. 또한 앞으로 살아가다 루터와 비슷한 상황에 우리가 빠지게 될 때에 그 가운데 살아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능히 이겨 나가는 역사가 일어나기 바란다. 왜 그런가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절망할 일, 힘을 잃을 일, 낙심할 일, 좌절할 일, 실망할 일, 괴로운 일을 많이 만난다. 이런 일들을 만날 때에 일어나는 현상이 조금 전에 말씀을 드렸던 루터와 같은 마음이 들어 안절부절못한다. 이것은 비단 루터만의 문제가 아니다.
1.이스라엘 백성들의 심정(27절) (사40:27)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1이스라엘아 이사야선지가 말한다.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외치는 것을 말한다. 이사야선지가 그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의 생각, 그것이 입으로,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을 볼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런 처지에 빠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사야가 본 이스라엘 백성들의 형편과 사정, 마음의 생각이 어찌 그리 내 모습과, 우리들의 모습과 같은지를 잘 말해 준다.
2어떤 처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내 사정을 몰라준다는 것이다.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시에 곤란에 지경에 빠져 있었다. 주변 국가들로부터 당하는 침략의 고통, 육적으로 당하는 삶의 곤고함, 마음의 원함이 있어서 무엇을 좀 하려고 할 때에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 이런 저런 일들로 인하여 굉장히 힘든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런 가운데 앗수르 나라가 쳐들어오려고 덤비고 있는 이런 상황이 되니 더 괴로운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나님은 나의 형편, 나의 사정, 나의 당하는 일, 나의 원함, 나의 어려운 사정을 몰라준다. 만약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이 이런 우리의 사정을 안다면 그럴 수 없다고 하는 하나님께 향한 불만의 목소리가 커져 가고 있었다. 여러분, 언제 답답한가 상대방이 나의 사정을 알아주지 못하고 잘못 오해하고 있을 때에 참 답답하다. 마음이 괴롭다. 저와 그리고 아내가 목회자로서 주의 일들을 하면서 제일 힘들 때가 있다. 물질이 적거나, 집이 적어서, 아니면 먹지 못해서 아니면 입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믿음으로 바로 해보려 하고, 잘 해보려고 기도하면서 인도해 나가는데, 거기에 어떤 저의가 들어 있거나, 아니면 상대방을 깔아뭉개고 괴롭히려고 그런 일들을 하지 않는데 나타나 보이는 일들이 그렇게 여겨져서 잘못 오해하고 있을 때 참 힘들고 괴롭더라. 여러분들도 그렇지 않겠는가 아내로서 집안의 일들을 나름대로 해 나가는데 밖에서 일하고 들어온 남편이 아내의 사정을 알아주지 못할 때에 얼마나 속상하는가 남편도 역시 밖에 나가 이런 일, 저런 일 다 당하면서 집에 들어오는데 그런 것을 알 주기는커녕 오히려 바가지를 긁게 될 때, 즉 내 사정을 알아주지 못할 때에 얼마나 힘이 빠지는가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정이 이해가 되는가 하나님이 나의 사정을 몰라주는가 보다 하는 마음이 들때에 이들은 코가 석자나 빠진 사람처럼 낙심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내 소원을 이루어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원통한 것은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원하는 소원이 있었다. 그렇게 되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나라가 외세에 침입을 당하지 않고, 안정 가운데 있기를 원하고, 그들이 마음에 소원하는 일, 이루고 싶은 일, 되어야 할 일들이 그들의 생각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럴 만도 한게 그들은 그 어느 나라 사람도 가지지 않는 천지창조의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으로서, 아니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의 백성으로서 어쩌면 그렇게 여기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내 마음의 원함대로 꼭 이루어 주실 거야, 하나님은 그렇게 되게 하실 거야 라는 생각을 갖는 것 당연한지 모른다.
그런데 그런 간절한 마음들을 하나님은 시간이 지나도, 해가 바뀌어도 들어주시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들은 생각하기를 ‘나의 원통한 것을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하는구나’, 아니 ‘하나님을 믿어도 별수 없구나, 변화는커녕, 잘되기는커녕 문제 위에 문제, 괴로움 위에 괴로움을 당하는 구나’ 그래서 그들은 힘을 잃고 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다면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심정을 이스라엘 백성들뿐 아니라 시편의 다윗도 그렇게 여기고 있었다. 시73편에 보면 (시73:1)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시73:2) 나는 거의 실족할 뻔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시73:3)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시73:4)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시73:5)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시73:6)
그러므로 교만이 저희 목걸이요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 (시73:7) 살찜으로 저희 눈이 솟아나며 저희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며 (시73:8) 저희는 능욕하며 악하게 압제하여 말하며 거만히 말하며 (시73:9) 저희 입은 하늘에 두고 저희 혀는 땅에 두루 다니는도다 (시73:10)
그러므로 그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시73:11)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극히 높은 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도다 (시73:12)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 하도다 (시73:13) 내가 내 마음을 정히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시73:14)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 (시73:15)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이렇게 말하리라 하였더면 주의 아들들의 시대를 대하여 궤휼을 행하였으리이다
솔직히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이, 다윗의 말이 우리의 생각과 같지 않는가 우리의 모습을 읽어볼 수 있지 않는가 하나님을 믿는 나는 괴로움을 당하고, 더 어렵고,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도 없는 사람들은 싸 놓고 살고, 잘되는 것을 볼 때에 어찌 힘을 잃지 않겠는가 저도 목회를 하면서 힘을 잃었던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한숨을 쉬고, 걱정을 하고, 두려워했다. 아니 원망을 하고, 후회를 하였다. 나름대로 주의 일을 해보려고 애를 쓴다. 나도 남들처럼, 아니 남들보다 더 열심히, 바르게 해보려고 이리 뛰어다니고, 저리 뛰어 다닌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좀 잘되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젊은 사람이 세상낙 다버리고 주를 위해 일평생을 드려 쓰임을 받고자 한다면 하나님이 잘되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기대와는 상관없이, 아니 오히려 더 강하게 문제 위에 문제, 사건 위에 사건들이 일어난다. 마음의 원하는 부흥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그런 모습으로 교회가 세워지지 않고 오히려 제자리걸음이다. 아니 후퇴했다고 하는 것이 더 오히려 낳겠다. 들어와도 모자랄 판에 믿었던 사람이, 기대했던 사람들이 이런 사정, 저런 사정으로 빠져나간다. 이런 상황에 빠지게 될 때에 어느 누가 힘을 잃지 않겠는가 이것이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겨진다. 내원대로, 내 생각대로는 되어지지 않지만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그럴 수 없다고 하는 이런 현실적인 문제 앞에 누가 힘을 잃지 않겠는가 저는 매번 이런 일, 저런 일들로, 기대와 원함대로 되어지지 않는 일들을 만날 때마다 실망하고, 낙심하였다.
그런데 놀라웁게도 하나님은 과연 살아 계심을 그때마다 체험을 한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시지 않고 붙들고 계심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기도할 때마다, 그 하나님을 생각 할 때마다 하나님은 자기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 보여주셨다. 그리하여 힘을 얻어 또 다시 일어 나는 것이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리고 내가 힘을 잃고 낙심을 하는 두 가지의 원인을 발견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원인으로 인하여 힘을 잃게 된다.
1나와 다른 사람을 볼 때에 힘을 잃게 된다. 저 사람들은 하는데 왜 나는 안될까 다른 사람들은 되는데 왜 우리들은 안될까 그 사람은 왜 그럴까 꼭 그렇게 해야 하나 즉, 나의 안되는 모습,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안되는 모습이 실망을 가져오게 한다.
2내가 처한 상황을 볼 때에 힘을 잃게 낙심한다. 왜 우리 집은 이럴까 안되는 자기의 상황, 되어지기를 원하는데 되어지지 않음으로 인한 일들을 볼 때에 그렇더라.
2.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일하심(28-29)
그런데 마냥 그럴 수 없지 않는가 힘을 잃고 낙심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 이제 다끝났다고 여겨지는 우리들이 간과한 일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사람은 보고, 자기가 처한 환경은 보았지만 더 중요한 한가지는 보지 못하고 있다. 아니면 의식적으로 그것을 의식하지 않으려 할지도 모른다. (사40: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사40:29) 피곤한 자에 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그런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은 무엇이라 말하는가 “알지 못하느냐, 듣지 못했느냐” 무엇을 하나님 여호와는. 이 말씀이 무엇인가 ‘그러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내라. 실망 마라. 내가 너를 지금까지 역사 하지 않았느냐, 지금까지 살아 온 것이 내힘으로냐, 내 지식으로냐, 내 능으로냐, 아니다. 하나님 여호와다. 내가 너를 위하여 앞으로도 일할 것이다. 너를 위하여 역사 할 것이다.’는 말이다. 사람으로 인하여 힘을 잃고 계신 분, 자신이 처한 불리한, 좋지 않는 상황에 처해 힘을 잃고 있는 여러분, 앞으로 그런 일들 가운데 처할 여러분, 여기에 우리가 힘을 잃지 않고, 힘을 내고 담대히 일어날 근거가 있다. 힘낼 이유가 있다. 무엇인가 여러분과 저에게
1하나님이 있지 아니하냐 그 하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 변하지 않는 분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조석 지변으로 변하지만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시고 그 자리에, 그곳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창조자 하나님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있는 것을 더 좋은 것으로 만드시는 하나님, 역사의 주관자요,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 ㉰무한하신 하나님 그분은 피곤치도, 곤비치도, 명철이 한이 없으시다. 한계가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이다. ㉱주시며, 더하시는 하나님 빼앗아 가시는 분이 아니라, 없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 기어코 있게 하시고, 주시기를 좋아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런 하나님이 나에게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뿐 아니다.
2그 하나님이 주신 구원이 있지 아니하냐 그 무엇으로 살수 없는 구원, 그 무엇으로 이룰 수도 없는 구원을 얻지 않았는가 돈으로 안되는 것, 힘으로도 안되는 것, 능으로도 안되는 것, 영생을 얻은 자 아니냐. 오늘 당장 죽도라도 하나님의 품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가 아니냐는 것이다. 뿐 아니라 우리가 힘낼 근거가 무엇인가
3내세의 소망이 있이 않느냐 이 땅에서 죽음으로 끝날 존재가 아니라 영원한 내세를 약속하며 그분이 주시는 천국의 살 소망이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이것을 생각한다면 힘낼 충분한 근거가 된다. 아니 이것을 생각하면 힘이 솟아난다.
3.힘있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한다면(30-31) 여러분! 힘을 내며 능력 있게 살기 원하시는가 그럴려면 내 앞에 있는 사람이나, 내가 만난 일들만 바라보지 말라. 물론 그것을 아니볼수 있다. 본다. 그러나 우리들이 그 자리에서 빨리 빠져 나올 수 있으려면 그 사람을 주장하시고, 그 환경과 일들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바라 보라. 그것이 30-31절의 말씀이다. (사40: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사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를 누구를요 세상에 힘있고, 능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어떤 분이신데요 그는 힘을 주시고, 능력으로 더하시고, 생명의 주관자시요, 문제의 해결자 이신 하나님을 앙망(仰望)하라 앙망하라는 것은 바라보라는 말이다. 그러나 더 깊은 의미가 있다. 우리가 힘을 낼 수 있으려면 여호와를 앙망해야 하는데 그 앙망한다는 말은
1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을 믿어라. 이것이 역사요, 이것이 사실이었다.
2하나님이 하실 것을 믿어라 (슥4:6)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슥4:7)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어 놓을 때 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그렇다. 사람으로는 안되지만 하나님으로는 하신다. 그것을 믿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이루어진다. 결론 문제 있는가 실망할 일이 있는가 무엇인가 마음대로, 원대로 이루어지지 않는가 답답한가 어렵고, 힘든 일이 쌓여 있는가 어찌할바 알지 못하겠는가 이제 더 이상 못하겠다고 여겨지는 것이 있는가 포기하지 말라. 힘내라. 우리에게는 영원하신 하나님, 창조자 하나님, 무한하신 하나님, 잘되기를 원하시며, 주시며 더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가 그 하나님을 앙망하라. 주님을 바라보자. 힘을 잃은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너무 힘이 들어 누워 죽기를 구하였다. 차라리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실 바에야 데리고나 가라고 울부짖었다. 그는 기도의 능력, 기도의 응답을 체험한 사람이기도 하다. 주의 일에 열심과 헌신을 다하였다. 그런 그가 어쩔 수 없이 다가오는 마음의 무거운 짐, 환경의 부닥치는 여러 일들로 인하여 낙심하고 좌절하고 있었다. 그는 생각하기를 사람들도 나를 버리고, 하나님도 나를 버리시구나 여겼다. 그러나 그 사람이 하나님도 필요 없다고, 믿음도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살아서 그와 함께 있었고, 그를 붙들고 있었고, 그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는 이제는 끝이다라고 여기는 그 순간에 언제나, 여전히 변함없이 그를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바라보고 일어나 다시 은혜의 길로 들어선다. 바로 이 사람이 왕상 19장의 엘리야 이다. 여러분 중에 사람들이 나를 버린 것 같은 마음 때문에 외로워하며 힘든 이가 있는가 여러분 중에 하나님도 나에게 역사 하지 않고 버리셨는가 보다 하는 이가 있는가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그리고 내일도 우리의 그 자리에서 여전히 나를 붙들고 계심을 믿어라. 그리고 그가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힘내라. 아무개야 힘내라. 너에게 내가 있지 아니하냐, 내가 너를 붙들 마, 내가 너를 사랑하마. 힘내라. 여호와를 앙망하라. 독수리 날개침같이 올라갈 것이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주 여호와를 앙망 하는자 새 힘을 새 힘을 얻으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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