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힘을 주소서 (사40:27-31)
본문
지난 주간 만나는 사람마다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십시오' 라는 인사를 주고 받았습니다. 이렇게 누구에게나 복(福) 받기를 기대하면서 새해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누구나 한가지 소망을 가지고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새롭게 마음을 다짐하며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첫 발걸음을 내 디뎠습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보면 몇 날이 못 가서 현실의 장벽들 앞에 사람들은 성 내고, 원망하고, 좌절합니다. 아니 정월 초하룻날부터 벌써 싸운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정치 현실을 보아도 연초부터 서로 싸우며 여야가 모두들 현 실의 장벽이 남에 탓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를 괴롭히는 문제들, 나를 성나게 하는 모든 것들이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내가 그것을 극복해야 할 존재임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싸우고, 증 오하고, 저주합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흔히 보는 장면들입니다. 그러나 신앙인 에게는 나를 성찰(省察)하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지금의 나의 현실의 장벽(障壁) 앞에서 무엇을 보아야 하겠는가 무엇에 기대를 걸고 새 힘을 얻으려고 하는가 자신을 깊이 성찰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현실의 벽(壁) 너머에서 들 려 오는 영 음(靈音)을 들어야 하겠습니다. 사람은 어떤 위기 앞에서도 하늘을 우러러 볼 수 있는 영 안과 영의 귀를 가지고 있는 한,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 어납니다. 그래서 신앙의 힘이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현실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현실의 좌절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실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1. 그러면 무엇이 우리로 새 힘을 얻게 한다고 보십니까 보통 세상의 사람들은 '돈'이 유일한 힘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돈'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교회도 돈이 있어야 한다고들 그런 말을 합니다. 돈의 힘이란 가히 하나님과 맞먹는다고 할 수 있도록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가끔 원망 조로 말하는 사람들을 대하게 됩니다. 가난이 문제라고, 돈이 없어 죽었다고, 돈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모두들 '돈'에다 핑계를 대고, 또 돈만 있었으면 다 했을것이라고 그렇게 말하는 경우들을 종종 봅니다. 얼른 생각하면 아마 이것은 옳은 말이라고도 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몰랐다면 으당 그렇게 생각하면서 사는 것이 옳을 것 입니다.
왜냐하면 현 세상에서 돈만 있으면 보이는 것을 다 가질 수 있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재력이라고 합니다. 재력만 있으면 세상의 감투란 감투 를 다 써 볼 수 있고, 또 여자를 두셋 거느리고 살아도 흠이 되지 않았던 때도 있었습니다. 아마 지금도 나타나지 않아서일 뿐, 은밀히 행해지는 일에서는 마 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 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이 착각(錯覺) 하기 쉬운 것이 있습니다. '돈'이 마치 부도덕하고, 돈이 마치 죄의 온상 인양 그렇게 생각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돈'자체는 죄(罪)도 아니고 부도덕(不道德)한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벌어서(過程) 어떻게 쓰느냐에(目的) 따라서 평가(評價)는 달라지는 것입니다. 만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도덕하게 벌어들인 돈 이라면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도 존경의 대상은 못 될 것입니다. 그러나 가끔 우리 주변에서 감동적인 선행을 보는 것은 힘들게 정당하게 번 돈을 가치 있게 사회를 위하여, 남을 위하여 쓰는 것을 볼 때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럴 때 돈의 가치가 얼마나 귀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도 삼가 탐심을 물리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즉 두 주인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였 습니다. 돈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것, 그것이 잘못이란 것입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들어 우리를 교훈 하였습니다. 어떤 곳에 부자가 있는데 농사 를 잘 지어 풍년이 드니, 많은 곡식을 쌓아 놓을 창고를 더 크게 짓고 거기다 잔뜩 쌓아 놓고는 하는 말이,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 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했다고 그러나 하나님은 이르시 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영혼은 먹고 즐기고 마시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다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문제는 소유에만 가치를 두려는데 있습니다. 그것이 어리석다는 것입니다. '재물'과 '생명'은 무관한 것을 모르고 '돈'만 많이 벌어 놓으면 먹고 즐기며 마시면서 오래 오래 살 수 있는 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잘못된 생각 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착각입니다. 세상에서 그러나 돈으로도 안 되는 것이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죄 영혼의 만족과 영생의 문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죄를 짓고 도 돈으로 해결 할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죄를 가리우는 것이 사함 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죄는 돈으로 사함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영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오늘 밤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네가 벌어 쌓아 놓은 재물이 뉘 것이 되 겠느냐"고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주관자인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것, 그것이 새 힘을 얻는 비결인 것입니다. 죽으면 끝나는 것을 의지하고 살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모두 돈, 돈, 하지만, 돈은 죽을 생명을 살릴 수 없습니다. 돈은 범한 죄를 사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권력을 의지하고 살려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없습니다. 세상에 제일 허무한 것이 권력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에서 물러나는 순간 권력처럼 허무한 것은 없습니다. 돈도 마찬가지입니다. 돈 없어지는 순간 누구도 함께 하려고 아니합니다. 이것이 권력과 돈의 속성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두 거기에다 소망을 두 고 거기에서 새 힘을 얻으려고 합니다. 얼마나 잘못된 생각입니까
그러므로 돈과 권력은 있을 때 바르게 써야 하고 겸손하게 써야 합니다. 그러나 돈과 권력의 속성상 그것을 가지고 있을 때 겸손하기보다는 교만해 지기 쉽습니다. 하나님보다는 그것을 더 의지하고 그것을 힘에 원천으로 삼기 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진정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자기를 의지하게 하려고 적당하게 일용할 양식으로 만족케 하십니다. 그것이 출애굽 과정의 광야에서의 만나의 교훈이었습니다.
2. 그러면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겸손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돈'을 의지하고 살 때는 교만해지기 쉽고, 권력을 의지하고 살 때는 안하무인(眼下無人)이 되기 쉽습니다. 그런 것에 소망 을 두고 사는 사람은 하루도 평안(平安)한 날이 없습니다. 항시 불안(不安)하게 살아갑니다. 돈과 권력은 가지면 가질수록 번 민을 일으키게 할지언정 마음에 평안을 주 지는 못합니다.
그러므로 참 신앙 인의 모습은 겸손하게 살아가는데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은 결코 교만해 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새 힘을 하나님께로부터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두 부류의 신앙 인이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아무 것도 없으면서도 교만하게 지내는 사람이 있고, 많은 것을 가지 고도 겸손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가 힘이 있는 사람이라고 보십니까 있어도 없는 것 같이, 알아도 모르는 것 같이, 남을 섬기며 봉사하며 자신을 숨기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어떤 글을 보는 중에 보통 그 사람이 겸손한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방법은 그 사람과 대화를 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고 했습니다. 대화 중에 '내가', 또는 '나' 라는 말을 많이 쓰는 사람은 겸손 한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즉 '내가 했다', '내가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있어서 그 일을 해 냈다'. '내가 가르쳤다'. 등등 수 없이 내 가를 되풀이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요 그런 사람일수록 교만한 사람이란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언제나 말끝마다 내가, 내가 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과는 큰 일을 도모할 수도 없고, 비밀스러운 웅장한 계획도 함께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도 아마 그런 사람에게는 큰 일을 맡기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겸손한 자들과 함께 하시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에게 날마다 새 힘을 주십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독수리처럼 언제나 위로 올라가게 합니다. 아래로 떨어지는 절망(絶望)이란 없습니다.
왜냐하면 새 힘을 하나님께로부터 공급받기 때문입니다. 이솝의 우화중에 개구리의 얘기가 있습니다. 개구리가 어느 날 하늘을 날아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자기는 날개가 없어 날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매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자기가 막대기를 물고 있을테니까 매는 나무를 발로 집어 하늘을 날아 보자 고. 그렇하여 매는 막대기를 문 개구를 발로 움켜잡고 하늘을 날아올랐습니다. 하늘을 날으면서 개구리는 지금껏 보지 못한 아래 세상을 내려다보면서 너무나 신기하여 이러한 생각을 해 낸 자신이 대견해 보였습니다. 마침 자신이 살던 연 못 위를 나를 때, 다른 개구리들이 자기를 쳐다보면서 손을 흔들어 대는 것을 보고는 자기가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내가 하늘을 난다고 하지 않더냐' 하였습니다. 그러는 순간 개구리는 곤두박질 치면서 땅으로 떨어져 결국 배가 터져 죽었 다는 얘기입니다. 성경에서 많은 곳에서 교만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잠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 16:5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 라도 벌을 면치 못하리라" 잠 14:3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는 입술로 스 스로 보전하느니라" 잠 21:4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의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 잠 29:23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모두가 교만하면 패망한다는 말씀이고, 교만하면 따돌림당한다고 했고, 교만하 면 복을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겸손한 자들에게 새 힘을 주어 넉넉히 감당케 한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예수님이 이땅에 오실 때 마구간에서 나셨습니까 왜 만왕의 왕이신 주님께서 나귀새끼를 타시고 입성하시었습니까 왜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들의 손에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어야 했습니까 우리에게 겸손을 보이신 실천적 모델이었기 때문입니다. 새 힘은 자기가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입니다. 자신의 의지력으로 얻는 힘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위로부터 오는 힘은 다함이 없습니다. 죽음까지도 넘어설 수 있는 힘입니다. 어떤 바람이 불어도, 어떤 박해가 와도, 어떤 환경에 접어들어서도 독수리처럼 올라가는 삶입니다. 절망하지 않습니다. 낙망하지 않습니다. 고난의 역풍이 불면 불수록 더 높이 올라갑니다. 독수리 날개치듯 하늘로 향상하는 믿음! 참으로 위대한 힘입니다. 작은 새들은 떨어질까봐 날개짓을 죽을힘을 다해 치지만, 독수리는 바람의 방향을 이용하여 유유히 날고 있습니다. 참으로 바람이 불어야 더 신나가 올라 갑니다. 우리의 신앙이 독수리 날개처럼 세상의 바람이 불면 불수록 더 높이 올 라가는 신앙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실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1. 그러면 무엇이 우리로 새 힘을 얻게 한다고 보십니까 보통 세상의 사람들은 '돈'이 유일한 힘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돈'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교회도 돈이 있어야 한다고들 그런 말을 합니다. 돈의 힘이란 가히 하나님과 맞먹는다고 할 수 있도록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가끔 원망 조로 말하는 사람들을 대하게 됩니다. 가난이 문제라고, 돈이 없어 죽었다고, 돈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모두들 '돈'에다 핑계를 대고, 또 돈만 있었으면 다 했을것이라고 그렇게 말하는 경우들을 종종 봅니다. 얼른 생각하면 아마 이것은 옳은 말이라고도 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몰랐다면 으당 그렇게 생각하면서 사는 것이 옳을 것 입니다.
왜냐하면 현 세상에서 돈만 있으면 보이는 것을 다 가질 수 있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재력이라고 합니다. 재력만 있으면 세상의 감투란 감투 를 다 써 볼 수 있고, 또 여자를 두셋 거느리고 살아도 흠이 되지 않았던 때도 있었습니다. 아마 지금도 나타나지 않아서일 뿐, 은밀히 행해지는 일에서는 마 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 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이 착각(錯覺) 하기 쉬운 것이 있습니다. '돈'이 마치 부도덕하고, 돈이 마치 죄의 온상 인양 그렇게 생각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돈'자체는 죄(罪)도 아니고 부도덕(不道德)한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벌어서(過程) 어떻게 쓰느냐에(目的) 따라서 평가(評價)는 달라지는 것입니다. 만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도덕하게 벌어들인 돈 이라면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도 존경의 대상은 못 될 것입니다. 그러나 가끔 우리 주변에서 감동적인 선행을 보는 것은 힘들게 정당하게 번 돈을 가치 있게 사회를 위하여, 남을 위하여 쓰는 것을 볼 때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럴 때 돈의 가치가 얼마나 귀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도 삼가 탐심을 물리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즉 두 주인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였 습니다. 돈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것, 그것이 잘못이란 것입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들어 우리를 교훈 하였습니다. 어떤 곳에 부자가 있는데 농사 를 잘 지어 풍년이 드니, 많은 곡식을 쌓아 놓을 창고를 더 크게 짓고 거기다 잔뜩 쌓아 놓고는 하는 말이,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 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했다고 그러나 하나님은 이르시 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영혼은 먹고 즐기고 마시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다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문제는 소유에만 가치를 두려는데 있습니다. 그것이 어리석다는 것입니다. '재물'과 '생명'은 무관한 것을 모르고 '돈'만 많이 벌어 놓으면 먹고 즐기며 마시면서 오래 오래 살 수 있는 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잘못된 생각 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착각입니다. 세상에서 그러나 돈으로도 안 되는 것이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죄 영혼의 만족과 영생의 문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죄를 짓고 도 돈으로 해결 할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죄를 가리우는 것이 사함 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죄는 돈으로 사함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영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오늘 밤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네가 벌어 쌓아 놓은 재물이 뉘 것이 되 겠느냐"고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주관자인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것, 그것이 새 힘을 얻는 비결인 것입니다. 죽으면 끝나는 것을 의지하고 살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모두 돈, 돈, 하지만, 돈은 죽을 생명을 살릴 수 없습니다. 돈은 범한 죄를 사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권력을 의지하고 살려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없습니다. 세상에 제일 허무한 것이 권력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에서 물러나는 순간 권력처럼 허무한 것은 없습니다. 돈도 마찬가지입니다. 돈 없어지는 순간 누구도 함께 하려고 아니합니다. 이것이 권력과 돈의 속성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두 거기에다 소망을 두 고 거기에서 새 힘을 얻으려고 합니다. 얼마나 잘못된 생각입니까
그러므로 돈과 권력은 있을 때 바르게 써야 하고 겸손하게 써야 합니다. 그러나 돈과 권력의 속성상 그것을 가지고 있을 때 겸손하기보다는 교만해 지기 쉽습니다. 하나님보다는 그것을 더 의지하고 그것을 힘에 원천으로 삼기 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진정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자기를 의지하게 하려고 적당하게 일용할 양식으로 만족케 하십니다. 그것이 출애굽 과정의 광야에서의 만나의 교훈이었습니다.
2. 그러면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겸손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돈'을 의지하고 살 때는 교만해지기 쉽고, 권력을 의지하고 살 때는 안하무인(眼下無人)이 되기 쉽습니다. 그런 것에 소망 을 두고 사는 사람은 하루도 평안(平安)한 날이 없습니다. 항시 불안(不安)하게 살아갑니다. 돈과 권력은 가지면 가질수록 번 민을 일으키게 할지언정 마음에 평안을 주 지는 못합니다.
그러므로 참 신앙 인의 모습은 겸손하게 살아가는데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은 결코 교만해 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새 힘을 하나님께로부터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두 부류의 신앙 인이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아무 것도 없으면서도 교만하게 지내는 사람이 있고, 많은 것을 가지 고도 겸손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가 힘이 있는 사람이라고 보십니까 있어도 없는 것 같이, 알아도 모르는 것 같이, 남을 섬기며 봉사하며 자신을 숨기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어떤 글을 보는 중에 보통 그 사람이 겸손한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방법은 그 사람과 대화를 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고 했습니다. 대화 중에 '내가', 또는 '나' 라는 말을 많이 쓰는 사람은 겸손 한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즉 '내가 했다', '내가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있어서 그 일을 해 냈다'. '내가 가르쳤다'. 등등 수 없이 내 가를 되풀이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요 그런 사람일수록 교만한 사람이란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언제나 말끝마다 내가, 내가 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과는 큰 일을 도모할 수도 없고, 비밀스러운 웅장한 계획도 함께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도 아마 그런 사람에게는 큰 일을 맡기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겸손한 자들과 함께 하시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에게 날마다 새 힘을 주십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독수리처럼 언제나 위로 올라가게 합니다. 아래로 떨어지는 절망(絶望)이란 없습니다.
왜냐하면 새 힘을 하나님께로부터 공급받기 때문입니다. 이솝의 우화중에 개구리의 얘기가 있습니다. 개구리가 어느 날 하늘을 날아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자기는 날개가 없어 날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매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자기가 막대기를 물고 있을테니까 매는 나무를 발로 집어 하늘을 날아 보자 고. 그렇하여 매는 막대기를 문 개구를 발로 움켜잡고 하늘을 날아올랐습니다. 하늘을 날으면서 개구리는 지금껏 보지 못한 아래 세상을 내려다보면서 너무나 신기하여 이러한 생각을 해 낸 자신이 대견해 보였습니다. 마침 자신이 살던 연 못 위를 나를 때, 다른 개구리들이 자기를 쳐다보면서 손을 흔들어 대는 것을 보고는 자기가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내가 하늘을 난다고 하지 않더냐' 하였습니다. 그러는 순간 개구리는 곤두박질 치면서 땅으로 떨어져 결국 배가 터져 죽었 다는 얘기입니다. 성경에서 많은 곳에서 교만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잠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 16:5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 라도 벌을 면치 못하리라" 잠 14:3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는 입술로 스 스로 보전하느니라" 잠 21:4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의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 잠 29:23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모두가 교만하면 패망한다는 말씀이고, 교만하면 따돌림당한다고 했고, 교만하 면 복을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겸손한 자들에게 새 힘을 주어 넉넉히 감당케 한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예수님이 이땅에 오실 때 마구간에서 나셨습니까 왜 만왕의 왕이신 주님께서 나귀새끼를 타시고 입성하시었습니까 왜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들의 손에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어야 했습니까 우리에게 겸손을 보이신 실천적 모델이었기 때문입니다. 새 힘은 자기가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입니다. 자신의 의지력으로 얻는 힘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위로부터 오는 힘은 다함이 없습니다. 죽음까지도 넘어설 수 있는 힘입니다. 어떤 바람이 불어도, 어떤 박해가 와도, 어떤 환경에 접어들어서도 독수리처럼 올라가는 삶입니다. 절망하지 않습니다. 낙망하지 않습니다. 고난의 역풍이 불면 불수록 더 높이 올라갑니다. 독수리 날개치듯 하늘로 향상하는 믿음! 참으로 위대한 힘입니다. 작은 새들은 떨어질까봐 날개짓을 죽을힘을 다해 치지만, 독수리는 바람의 방향을 이용하여 유유히 날고 있습니다. 참으로 바람이 불어야 더 신나가 올라 갑니다. 우리의 신앙이 독수리 날개처럼 세상의 바람이 불면 불수록 더 높이 올 라가는 신앙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