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힘을 얻으라 (사40:27-31)
본문
우리에게 많은 일들이 우리 주위에 일어나는데 이 많은 일 중에 마음에 잘 안돼는 수많은 일들이 우리를 낙심하게 하고 우리를 우리에게 힘을 쏙 빼 놓고는 무기력하게 만드는 경우가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무기력과 싸우고 나태와 싸우고 자신과 싸우고 우리에게 많은 마음의 적과 보이는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우리 주위에 있는 수많은 적을 싸워야 하는 이 세상은 하나의 전장과 같은 것을 봅니다. 그러기에 보다 더 강력한 힘을 보유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내가 보유하고 있는 힘은 어떤 것이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복고 그리고 궁극적으로 승리할 힘은 어떤 힘일까를 살펴 봐야 것입니다. 사도행전 12장 중에는 몇 가지 힘이 나타나 있습니다.
첫째로 불의의 힘입니다. 앞으로 주님께 귀히 쓰임 받을 훌륭한 일군인 야고보를 헤롯이 별 이유도 없이 잡아다가 목을 베어 죽였다고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행함에 있어서 세 가지 일을 생각해 봐야 하는데 이것은 먼저 법에 저촉되는가 다음은 마음의 법에 위배되는가 다음은 하나님의 법에 위배되는가를 살펴봐야 합니다. 그러나 헤롯은 이러한 모든 것을 무시하고 자기의 얄팍한 생각으로 하나님의 종을 잡아죽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도 많은 사람이 얄팍한 생각과 이익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을 괴롭히고 있는지 모릅니다.
둘째는 신앙의 힘입니다. 베드로는 지금 처형직전에 있는 사람으로 다른사람 같으면 잠이고 뭐고 앉아 있든 서 있는 정신이 없을 텐 대 베드로는 깁은 잠이 들어 천사가 와서 옆구리를 바로 차야 깨어날 만큼 깁은 잠이 들었는 것을 통하여 믿음의 힘을 짐작하게 됩니다. 행12:7 믿음은 죽음의 공포를 물리치고 어떠한 고난이나 시험의 늪 속에서 편안을 가지고 두려움을 이기게 합니다.
셋째 기도의 힘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베드로의 투옥을 교회가 알고는 그 즉시 그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두 손과 발에 채워 있는 쇠사슬이 풀려 지고 옥문이 열리고 천사의 인도함으로 구원을 받게 됩니다. 본문에 보니까 야곱은 낙심해 있습니다. 기도해도 주님은 듣지 않으시고 원통함을 당해도 주님은 돌아보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사40:27)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이러한 야곱을 향해 성경은 말을 합니다. (사40:28-29)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주님을 바로 알아야 새 힘을 얻습니다. 우리는 본문28절을 통해서 알아야 하는
첫째는 “알지 못하느냐”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바로 알지 못할 경우에 그 사람에게 수많은 부작용이 일어납니다. 이 부작용은 주님을 의심 하는 것이요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요 마음에 안정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요 항상 불안에 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을 바로 알지 못하는 관계로 우리는 그에 따른 손해를 감수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1)주님을 알 때 우리는 주 안에서 참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사40:30-31)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1)주님을 아는 것과 믿음은 일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안다면 우리는 주님을 믿고 의심치 말아야 하고 주님을 의심치 않는다면 우리는 믿음에 굳게 서서 신앙의 힘을 믿고 기도의 힘을 믿어 승리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확실히 보호하시는 주님이 시기 때문입니다. (사41:9) 내가 땅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2)믿음대로 행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와 나와 함께 함으로 우리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자기 부모가 옆에 있으면 무엇이든 두려움이 없이 자신감이 있게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큰 아이가 있다고 해도 이 아이는 자기 부모를 믿으니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확실한 보호와 인도를 믿는 사람은 이일을 할 수 있음을 믿으니까 자신감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3)보복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니 분명하게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자기의 백성이 고난을 당하는 것을 주님은 참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치 자기 부모가 남의 자식에게 얻어맞는 것을 보면 열 불이 나 참을 수가 없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주님이요 우리 하나님이요 우리 왕의 왕이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 굳게 서고 주님을 아는 지식에 굳게 서서 확신에 찬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사41:11)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사41:12)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허무한 것 같이 되리니
(2)주님을 아는 것과 믿음은 같은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믿음 따로 지식 따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진정한 아는 것이 아니고 단지 지식으로 가지고 있는 것 뿐 입니다. 아는 것은 그 지식이 나의 것이 되었을 때 되는 것입니다. 미국인 은 어떻다 하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과 실제로 미국인이 되어 살고 있는 것과는 차이가 아주 많은 것입니다. 2여호와를 앙망 할 때 새 힘을 얻습니다. 31절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 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앙망 하는 의 뜻은 함께 묶다 (꼬아서), 수집하다, (상징적으로) 기대 하다. (함께)모이다. 쳐다보다. 참을성 있게 기다리다.(대 망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1)하는 모든 일을 주님과 세끼 줄을 꼬듯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어렸을 때 벼 집으로 가마니를 만들어 이 가마니에 쌀이나 보리나 무엇이든 담는데 이 것을 우리 집에서 만들었죠 이 가마니를 만들 때 볏짚을 잘 추려서 물을 약간 적시고 가늘게 힘줘서 꼽니다. 이 꼬아진 가느다란 줄을 이용하여 가마니를 만들죠 우리가 주님을 믿고 의지한다고 하면 우리는 마치 새끼줄을 꼬듯 주님과 나는 마치 두가닥으로 새끼줄을 꼬듯 주님과 나 두 줄의 세끼 줄이 되어 하나로 꼬인 하나의 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환전한 하나님의 힘을 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
ㄱ. 나의 모든 분야를 주님과 꼭 함께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ㄴ. 나의 슬픈 일 나쁜 일 어떠한 일이라 할 지라도 두 줄의 새끼줄과 같이 되어 같이 엮어진 하나의 줄이 되십시오.
2)주님을 앙망 하는 자는 귀한 골통품이나 귀중품을 수집하듯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는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여호와를 앙망 한다는 수집하다 하는 뜻이 있으니 우린 이와 같이 진리를 알게 되면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합니다.
ㄱ. 수집하는 것은 잊지 않는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나의 것으로 만들었으면 우리는 이것을 결코 버리거나 죄로 얼룩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죄를 짖는 것은 그 진리를 모르고 지식으로만 안다는 말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ㄴ. 수집하는 것은 그만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여호와를 앙망 하는 자는 주님의 사랑을 받기 위하여 새 힘을 얻기 위하여 항상 힘쓰고 애 쓰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ㄷ. 자신이 자신을 살피고 자신이 부지런하여 신앙의 선배로서의 위치를 얻기 위하여 힘써 신앙 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이 3년에 지나지 않았어도 이 진리를 전파하는데 충분했고 십자가를 지고 구원을 이루시는데 충분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ㄹ.
그러므로 우리는 하루하루를 귀하게 보내고 하루하루를 주님이 주신 의도대로 사용 하는 귀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3)앙망하는 자는 주님을 기대하고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얼마나 희망적일 미래가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의 쓰임 받을 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훌륭히 완수한 후에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상급 주심이 있음을 알고 우리는 상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세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만이 소망이 있고 희망적이고 앞으로의 미래가 보장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한 중에도 기뻐해야 할 사람들이고 항상 기뻐하고 항상 감사하고 항상 즐거워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ㄱ. 우리는 주님께 쓰임 받을 때를 기다리면서 최선을 다해 신앙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학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공부해서 사회와 나라가 필요한 일군이 되는 것이고 거기에 맞춰 공부를 하여 귀하게 쓰임 받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도 이와 같이 교회가 필요로 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필요로 하는 일군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ㄴ. 우리는 사회와 국가가 필요로 한 사람이 될 때 귀한 존재요 행복을 바라 볼 수 있듯이 우리는 주님께 귀한 존재로서 하나님의 영원한 상급과 이 세상에서도 행복이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대 하는 것입니다.
4)여호와를 앙망 하는 자는 주님께로 모이는 자입니다. 새 힘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주님께로 모이는 자여야 합니다. 입으로만 주님께로 오고 자기 마음으로 만 오고 자기 몸은 주님께 멀리 있다면 이 사람은 행위가 뒤따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과 몸이 함께 주님께로 모이는 자여야 합니다.
ㄱ. 주님의 예배에 모여야 합니다. 옛날과 다른 것은 옛날에는 어디에 집회가 있다고 소문만 나면 열일 뒤로하고 찾아가서 집회에 참석하는데 지금은 본 교회 집회에 참석하려 들지 않고 모이기 힘쓰지 않으려 합니다.
ㄴ. 기도하는데 마음과 몸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실제적인 신앙인의 삶입니다. 이것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우리는 많은 것을 감수해야 합니다. 모든 이와 화목 하라는 말씀에 저촉을 받게 될 것이고 기도해도 별 힘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5) 새 힘을 얻고자 하는 자는 주님을 바라 봐야 합니다. 세상에는 너무도 많은 유혹 거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이 약한 관계로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에서의 모든 삶이 주님만을 바라본 삶이여야 합니다. 다시 말해 주님만을 의지하는 삶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되지 못했고 세상의 어떤 것에 더 정신을 팔린다면 이 사람은 그만큼 주님께 귀한 존재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ㄱ.
그러므로 가치관을 어디에 두느냐 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나라와 그 영광에 두는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ㄴ. 세상과 조금 떨어진 삶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너무 붙어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세상에 붙어 있으면 주님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노력으로 다 해결할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으로 다 해결하고 말게 되면 하나님 설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6)주님의 나라와 그 영광을 위해 참고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세 힘을 얻으려면 우리는 참고 기다리는 사람되어야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기다림이 없다면 우리는 인내성이 없는 사람이라 말을 하고 이러한 사람은 믿음이 약하다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고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ㄱ. 우리는 고난 당하는 것에서 참고 기다리는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자기에게 당하는 고난을 참고 인내하지 못하면 이 사람은 주님께 그만큼 많은 고난을 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 속에서도 감사와 기쁨을 하고 있는 사람이 된다면 이러한 사람에게는 시험이나 연단이 필요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3이와 같은 자는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고 걸어가도 피곤치 않는다고 합니다. 독수리는 새들의 왕이라 합니다. 주님을 의지하고 앙망 하는 자는 새 힘을 주시는데 마치 독수리와 같은 힘을 주신 답니다. 독수리는 우리가 아는 데로 새들의 왕이오, 이 새는 함께 무리를 지어 다니는 새이며, 강한 부리와 발톱이 있습니다그리고 독수리는 높이 올라가 밑을 내려다보는 것이 특징으로 알고 있고, 독수리는 눈이 좋은 것을 상상 할 수 있습니다. 높은 곳에서 아주 작은 쥐나 병아리들도 잘 살필 수가 있으니까요
(1)주님의 백성이 되어 모든 성도와 함께 거하게 하십니다. 성도는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인정받은 사람은 모든 이에게 인정을 받는 것이고 모든 이와 함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자는 힘이 있습니다. 혼자 있는 것보다 무리를 지어 있는 것은 힘있고 강한 것입니다.
(2)주님은 이와 같은 자에게 권능을 주십니다. 마치 독수리가 발톱과 부리가 강력하고 힘있어서 큰 짐승도 물고 날아가듯이 성도들도 작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권능을 행하는 것입니다.
(3)모든 일을 구별 할 줄 알게 됩니다. 영 분별의 은사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자는 모든 일에 확실한 것을 알게 됩니다. 세상에 있는 일이나 교회의 일도 다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자는 실수하지 않게 됩니다. 실수한다고 할 지라도 이것은 다 가리워져 버립니다. 또 악한영 분별이 분명하게 됩니다.
(4)독수리가 왕이듯이 성도들도 귀한 존재로 만들어 주십니다 인간의약한 것을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주님의 특기입니다. 바울은 눈이 약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위하여 3번이나 기도했습니다.
(고후12:8-10)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9)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바울은 자기의 약한 것을 찾아내어 감사했던 것입니다. 주님은 약한 것을 들어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는 주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약하고 힘이 없다고 할 지라도 주님을 믿고 앙망 하면 주님은 귀한 존재로 만들어 주십니다. (고전1: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고전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전1: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전1:29)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11: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후12:5)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이 무기력과 싸우고 나태와 싸우고 자신과 싸우고 우리에게 많은 마음의 적과 보이는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우리 주위에 있는 수많은 적을 싸워야 하는 이 세상은 하나의 전장과 같은 것을 봅니다. 그러기에 보다 더 강력한 힘을 보유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내가 보유하고 있는 힘은 어떤 것이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복고 그리고 궁극적으로 승리할 힘은 어떤 힘일까를 살펴 봐야 것입니다. 사도행전 12장 중에는 몇 가지 힘이 나타나 있습니다.
첫째로 불의의 힘입니다. 앞으로 주님께 귀히 쓰임 받을 훌륭한 일군인 야고보를 헤롯이 별 이유도 없이 잡아다가 목을 베어 죽였다고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행함에 있어서 세 가지 일을 생각해 봐야 하는데 이것은 먼저 법에 저촉되는가 다음은 마음의 법에 위배되는가 다음은 하나님의 법에 위배되는가를 살펴봐야 합니다. 그러나 헤롯은 이러한 모든 것을 무시하고 자기의 얄팍한 생각으로 하나님의 종을 잡아죽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도 많은 사람이 얄팍한 생각과 이익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을 괴롭히고 있는지 모릅니다.
둘째는 신앙의 힘입니다. 베드로는 지금 처형직전에 있는 사람으로 다른사람 같으면 잠이고 뭐고 앉아 있든 서 있는 정신이 없을 텐 대 베드로는 깁은 잠이 들어 천사가 와서 옆구리를 바로 차야 깨어날 만큼 깁은 잠이 들었는 것을 통하여 믿음의 힘을 짐작하게 됩니다. 행12:7 믿음은 죽음의 공포를 물리치고 어떠한 고난이나 시험의 늪 속에서 편안을 가지고 두려움을 이기게 합니다.
셋째 기도의 힘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베드로의 투옥을 교회가 알고는 그 즉시 그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두 손과 발에 채워 있는 쇠사슬이 풀려 지고 옥문이 열리고 천사의 인도함으로 구원을 받게 됩니다. 본문에 보니까 야곱은 낙심해 있습니다. 기도해도 주님은 듣지 않으시고 원통함을 당해도 주님은 돌아보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사40:27)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이러한 야곱을 향해 성경은 말을 합니다. (사40:28-29)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주님을 바로 알아야 새 힘을 얻습니다. 우리는 본문28절을 통해서 알아야 하는
첫째는 “알지 못하느냐”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바로 알지 못할 경우에 그 사람에게 수많은 부작용이 일어납니다. 이 부작용은 주님을 의심 하는 것이요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요 마음에 안정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요 항상 불안에 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을 바로 알지 못하는 관계로 우리는 그에 따른 손해를 감수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1)주님을 알 때 우리는 주 안에서 참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사40:30-31)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1)주님을 아는 것과 믿음은 일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안다면 우리는 주님을 믿고 의심치 말아야 하고 주님을 의심치 않는다면 우리는 믿음에 굳게 서서 신앙의 힘을 믿고 기도의 힘을 믿어 승리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확실히 보호하시는 주님이 시기 때문입니다. (사41:9) 내가 땅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2)믿음대로 행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와 나와 함께 함으로 우리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자기 부모가 옆에 있으면 무엇이든 두려움이 없이 자신감이 있게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큰 아이가 있다고 해도 이 아이는 자기 부모를 믿으니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확실한 보호와 인도를 믿는 사람은 이일을 할 수 있음을 믿으니까 자신감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3)보복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니 분명하게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자기의 백성이 고난을 당하는 것을 주님은 참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치 자기 부모가 남의 자식에게 얻어맞는 것을 보면 열 불이 나 참을 수가 없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주님이요 우리 하나님이요 우리 왕의 왕이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 굳게 서고 주님을 아는 지식에 굳게 서서 확신에 찬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사41:11)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사41:12)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허무한 것 같이 되리니
(2)주님을 아는 것과 믿음은 같은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믿음 따로 지식 따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진정한 아는 것이 아니고 단지 지식으로 가지고 있는 것 뿐 입니다. 아는 것은 그 지식이 나의 것이 되었을 때 되는 것입니다. 미국인 은 어떻다 하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과 실제로 미국인이 되어 살고 있는 것과는 차이가 아주 많은 것입니다. 2여호와를 앙망 할 때 새 힘을 얻습니다. 31절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 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앙망 하는 의 뜻은 함께 묶다 (꼬아서), 수집하다, (상징적으로) 기대 하다. (함께)모이다. 쳐다보다. 참을성 있게 기다리다.(대 망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1)하는 모든 일을 주님과 세끼 줄을 꼬듯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어렸을 때 벼 집으로 가마니를 만들어 이 가마니에 쌀이나 보리나 무엇이든 담는데 이 것을 우리 집에서 만들었죠 이 가마니를 만들 때 볏짚을 잘 추려서 물을 약간 적시고 가늘게 힘줘서 꼽니다. 이 꼬아진 가느다란 줄을 이용하여 가마니를 만들죠 우리가 주님을 믿고 의지한다고 하면 우리는 마치 새끼줄을 꼬듯 주님과 나는 마치 두가닥으로 새끼줄을 꼬듯 주님과 나 두 줄의 세끼 줄이 되어 하나로 꼬인 하나의 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환전한 하나님의 힘을 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
ㄱ. 나의 모든 분야를 주님과 꼭 함께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ㄴ. 나의 슬픈 일 나쁜 일 어떠한 일이라 할 지라도 두 줄의 새끼줄과 같이 되어 같이 엮어진 하나의 줄이 되십시오.
2)주님을 앙망 하는 자는 귀한 골통품이나 귀중품을 수집하듯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는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여호와를 앙망 한다는 수집하다 하는 뜻이 있으니 우린 이와 같이 진리를 알게 되면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합니다.
ㄱ. 수집하는 것은 잊지 않는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나의 것으로 만들었으면 우리는 이것을 결코 버리거나 죄로 얼룩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죄를 짖는 것은 그 진리를 모르고 지식으로만 안다는 말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ㄴ. 수집하는 것은 그만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여호와를 앙망 하는 자는 주님의 사랑을 받기 위하여 새 힘을 얻기 위하여 항상 힘쓰고 애 쓰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ㄷ. 자신이 자신을 살피고 자신이 부지런하여 신앙의 선배로서의 위치를 얻기 위하여 힘써 신앙 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이 3년에 지나지 않았어도 이 진리를 전파하는데 충분했고 십자가를 지고 구원을 이루시는데 충분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ㄹ.
그러므로 우리는 하루하루를 귀하게 보내고 하루하루를 주님이 주신 의도대로 사용 하는 귀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3)앙망하는 자는 주님을 기대하고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얼마나 희망적일 미래가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의 쓰임 받을 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훌륭히 완수한 후에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상급 주심이 있음을 알고 우리는 상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세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만이 소망이 있고 희망적이고 앞으로의 미래가 보장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한 중에도 기뻐해야 할 사람들이고 항상 기뻐하고 항상 감사하고 항상 즐거워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ㄱ. 우리는 주님께 쓰임 받을 때를 기다리면서 최선을 다해 신앙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학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공부해서 사회와 나라가 필요한 일군이 되는 것이고 거기에 맞춰 공부를 하여 귀하게 쓰임 받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도 이와 같이 교회가 필요로 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필요로 하는 일군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ㄴ. 우리는 사회와 국가가 필요로 한 사람이 될 때 귀한 존재요 행복을 바라 볼 수 있듯이 우리는 주님께 귀한 존재로서 하나님의 영원한 상급과 이 세상에서도 행복이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대 하는 것입니다.
4)여호와를 앙망 하는 자는 주님께로 모이는 자입니다. 새 힘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주님께로 모이는 자여야 합니다. 입으로만 주님께로 오고 자기 마음으로 만 오고 자기 몸은 주님께 멀리 있다면 이 사람은 행위가 뒤따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과 몸이 함께 주님께로 모이는 자여야 합니다.
ㄱ. 주님의 예배에 모여야 합니다. 옛날과 다른 것은 옛날에는 어디에 집회가 있다고 소문만 나면 열일 뒤로하고 찾아가서 집회에 참석하는데 지금은 본 교회 집회에 참석하려 들지 않고 모이기 힘쓰지 않으려 합니다.
ㄴ. 기도하는데 마음과 몸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실제적인 신앙인의 삶입니다. 이것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우리는 많은 것을 감수해야 합니다. 모든 이와 화목 하라는 말씀에 저촉을 받게 될 것이고 기도해도 별 힘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5) 새 힘을 얻고자 하는 자는 주님을 바라 봐야 합니다. 세상에는 너무도 많은 유혹 거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이 약한 관계로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에서의 모든 삶이 주님만을 바라본 삶이여야 합니다. 다시 말해 주님만을 의지하는 삶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되지 못했고 세상의 어떤 것에 더 정신을 팔린다면 이 사람은 그만큼 주님께 귀한 존재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ㄱ.
그러므로 가치관을 어디에 두느냐 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나라와 그 영광에 두는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ㄴ. 세상과 조금 떨어진 삶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너무 붙어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세상에 붙어 있으면 주님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노력으로 다 해결할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으로 다 해결하고 말게 되면 하나님 설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6)주님의 나라와 그 영광을 위해 참고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세 힘을 얻으려면 우리는 참고 기다리는 사람되어야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기다림이 없다면 우리는 인내성이 없는 사람이라 말을 하고 이러한 사람은 믿음이 약하다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고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ㄱ. 우리는 고난 당하는 것에서 참고 기다리는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자기에게 당하는 고난을 참고 인내하지 못하면 이 사람은 주님께 그만큼 많은 고난을 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 속에서도 감사와 기쁨을 하고 있는 사람이 된다면 이러한 사람에게는 시험이나 연단이 필요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3이와 같은 자는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고 걸어가도 피곤치 않는다고 합니다. 독수리는 새들의 왕이라 합니다. 주님을 의지하고 앙망 하는 자는 새 힘을 주시는데 마치 독수리와 같은 힘을 주신 답니다. 독수리는 우리가 아는 데로 새들의 왕이오, 이 새는 함께 무리를 지어 다니는 새이며, 강한 부리와 발톱이 있습니다그리고 독수리는 높이 올라가 밑을 내려다보는 것이 특징으로 알고 있고, 독수리는 눈이 좋은 것을 상상 할 수 있습니다. 높은 곳에서 아주 작은 쥐나 병아리들도 잘 살필 수가 있으니까요
(1)주님의 백성이 되어 모든 성도와 함께 거하게 하십니다. 성도는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인정받은 사람은 모든 이에게 인정을 받는 것이고 모든 이와 함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자는 힘이 있습니다. 혼자 있는 것보다 무리를 지어 있는 것은 힘있고 강한 것입니다.
(2)주님은 이와 같은 자에게 권능을 주십니다. 마치 독수리가 발톱과 부리가 강력하고 힘있어서 큰 짐승도 물고 날아가듯이 성도들도 작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권능을 행하는 것입니다.
(3)모든 일을 구별 할 줄 알게 됩니다. 영 분별의 은사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자는 모든 일에 확실한 것을 알게 됩니다. 세상에 있는 일이나 교회의 일도 다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자는 실수하지 않게 됩니다. 실수한다고 할 지라도 이것은 다 가리워져 버립니다. 또 악한영 분별이 분명하게 됩니다.
(4)독수리가 왕이듯이 성도들도 귀한 존재로 만들어 주십니다 인간의약한 것을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주님의 특기입니다. 바울은 눈이 약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위하여 3번이나 기도했습니다.
(고후12:8-10)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9)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바울은 자기의 약한 것을 찾아내어 감사했던 것입니다. 주님은 약한 것을 들어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는 주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약하고 힘이 없다고 할 지라도 주님을 믿고 앙망 하면 주님은 귀한 존재로 만들어 주십니다. (고전1: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고전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전1: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전1:29)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11: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후12:5)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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