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의 아내 사랑 (호3:1-5)
본문
호세아서는 가정을 살리는 진리와 나라를 살리는 진리를 동시에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깊으신 사랑을 배워야 함과 동시에 교회의 사명도 배워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호세아서는 우리에게 중요한 성경입니다.
1. 하나님의 사랑은 선택의 사랑입니다. 호세아서 1:2에 보면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자 디불라임의 딸 고멜을 택하여 아내를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호세아는 그 말씀에 순종하여 고멜을 아내로 삼았습니다. 이것은 선택의 사랑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5:6,,8,10을 보면 우리가 연약했을 때,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구속의 제물로 주심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셨다고 하셨습니다.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원수임에도 불구하고 인류를 사랑하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 쪽에서 선택하신 사랑입니다. 인간 편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될 아무 근거가 없음에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해 주셨습니다. 그러한 선택의 사랑을 호세아에게 실천하도록 명령하신 것입니다. 고멜은 음란한 여자로서 호세아의 사랑을 받을 만한 아무 근거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세아가 그를 아내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현대를 사는 젊은이들은 많이 배웠습니다. 얼굴도 많이 가꿉니다. 남녀간에 불문하고 직업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지식도 많고, 아는 상식도 많고 얼굴도 예쁘고 경제적인 자립력도 강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부부가 되고 가정을 이루었음에도, 이혼율이 해마다 늘어가는 것이 문제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선택의 사랑이 아니라 심판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부부가 되어 결혼할 때는 여러 모로 심판을 받고 합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사실이 발견되면 실망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현대 가정이 위기에 직면하는 근본 원인입니다. 현대 가정이 제대로 되려면 선택의 사랑으로 부부를 골라야 합니다. 상대방의 부족과 연약한 부분을 분명히 발견하고 그것이 나와의 만남을 통해서 치유가 되고 보완이 되어서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서로 만날 때 그 가정이 좋아지고 발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부족을 미리 아시면서도 그것을 구원하시고 치유하셔서 영광에 이르게 하실 것을 미리 작정하셔서 부르신 것입니다. 이것이 선택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특급 인간을 고르시는 심판의 사랑이 아니라 부족하고 연약하고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선택하셔서 부르신 구속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호세아는 실천한 것입니다. 이 시간에 이 사랑을 우리에게도 실천하라고 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그 사랑은 선택의 사랑입니다. (요 13:35)
2. 하나님의 사랑은 구속의 사랑입니다. 고멜은 호세아의 선택을 받고 호세아의 아내가 되어 삼남매를 낳았습니다. 이스르엘, 로루하마, 로암미 이 세 남매를 낳고도 옛 구습을 버리지 못하고 집을 나가 음란의 길을 걷다가 팔려진 노예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그를 다시 사랑하고 집으로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호세아는 은 열다섯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고멜을 사고 집으로 데려 오면서 위로하고 권면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속의 사랑을 실천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죄인을 내 버리시지 않으시고 구원하시는 사랑입니다. 병든 자를 내 버리시지 않으시고 치유하시는 사랑입니다. 구속의 사랑입니다. 그러한 사랑을 호세아에게 실천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구속의 사랑이 아니라 욕심의 사랑입니다. 자기의 사욕을 취하는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욕에 어긋난 것은 냉정하게 버립니다. 자기의 만족을 채우지 못하는 사람이라 해서 부부간에 이혼하는 현대인들이라면 호세아는 고멜을 절대로 바라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를 위하여 막대한 돈을 드리면서 다시 집으로 되돌아오게 한다는 것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호세아는 고멜을 위해 막대한 재산을 드리고 그를 집으로 데려 왔습니다. 구속의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 앞에 절하는 민족이 되고 말았습니다. 높은 산에 제단을 꾸미고 아름다운 산에 집회소를 만들어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곡식으로 제물을 만들어 놓고, 섬겼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음란하게 지냈습니다. 그 때문에 나라는 망하게 되었고, 백성들은 앗스루인들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심판의 사랑이 필요했던 것이 아닙니다. 완전한 모습을 좋아하시는 하나님이 필요했던 것이 아닙니다. 병든 몸을 치유해 주시고, 연약한 것을 고쳐 주시며, 갚지 못한 빚을 갚아 주시는 구속의 사랑이 필요했습니다. 우리는 건강한 사람들이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살림살이에 피곤하고, 자녀들을 낳아 키우다 보니 이제는 몸이 많이 쇠약해진 제 아내를 발견합니다. 이제 내 아내에게 필요한 것은 미인도 아니고, 건강한 사람도 아니고, 부잣집 딸도 아니라 병들고 연약한 아내를 치료하고 보살피는 구 속의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남편과 아내는 구속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3. 하나님의 사랑은 영화롭게 하시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고멜을 데려 온 호세아는 호세아 3:3에서 이렇게 속삭입니다.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행음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좇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고 했습니다. 고멜의 영화는 다시 호세아의 집으로 돌아와 호세아의 사랑 받는 아내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삼남매를 사랑하며 어머니의 위치에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제자리에 되돌아오는 것이 그가 영화롭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8:30에 보면 하나님은 미리 아시고, 미리 아신 자를 미리 정하시고, 미리 정하신 자를 부르시고, 부르신 자를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자를 영화롭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세상을 창조하시고, 완전한 인간을 창조하셔서 에덴 동산에서 안식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에덴 동산에는 병원도 없고, 감옥도 없었습니다. 건강하고 거룩하게 사는 안식의 동산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죄를 범하는 순간에 자연에서는 독소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땅에서는 가시덤불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거짓되기 시작했고, 인간의 몸에는 병들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생태계에는 먹이사슬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 세상을 구속하셔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을 회복하여 영화롭게 하려고 오늘도 일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실패한 것을 그대로 두시는 분이 아니라, 구속하시고 부흥시키셔서 영화롭게 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을 주님으로 모셨기 때문에 호세아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자신도 실천하도록 요구받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요구에 순종하여 호세아도 영화롭게 하는 사랑으로 고멜을 영접했습니다. 고멜은 영화로운 곳에 다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성도 여러분, 호세아의 아내 사랑은 하나님의 인류 사랑의 그림자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우리에게도 요구하시고 계십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심판의 사랑이 아니라 선택의 사랑입니다. 포기의 사랑이 아니라 구 속의 사랑입니다. 진노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영화롭게 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사랑을 우리도 실천할 때에 가정은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교회는 부흥되는 것입니다. 나라는 번영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평화로워지는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의 구속의 사랑으로만 이룩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
1. 하나님의 사랑은 선택의 사랑입니다. 호세아서 1:2에 보면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자 디불라임의 딸 고멜을 택하여 아내를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호세아는 그 말씀에 순종하여 고멜을 아내로 삼았습니다. 이것은 선택의 사랑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5:6,,8,10을 보면 우리가 연약했을 때,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구속의 제물로 주심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셨다고 하셨습니다.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원수임에도 불구하고 인류를 사랑하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 쪽에서 선택하신 사랑입니다. 인간 편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될 아무 근거가 없음에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해 주셨습니다. 그러한 선택의 사랑을 호세아에게 실천하도록 명령하신 것입니다. 고멜은 음란한 여자로서 호세아의 사랑을 받을 만한 아무 근거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세아가 그를 아내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현대를 사는 젊은이들은 많이 배웠습니다. 얼굴도 많이 가꿉니다. 남녀간에 불문하고 직업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지식도 많고, 아는 상식도 많고 얼굴도 예쁘고 경제적인 자립력도 강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부부가 되고 가정을 이루었음에도, 이혼율이 해마다 늘어가는 것이 문제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선택의 사랑이 아니라 심판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부부가 되어 결혼할 때는 여러 모로 심판을 받고 합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사실이 발견되면 실망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현대 가정이 위기에 직면하는 근본 원인입니다. 현대 가정이 제대로 되려면 선택의 사랑으로 부부를 골라야 합니다. 상대방의 부족과 연약한 부분을 분명히 발견하고 그것이 나와의 만남을 통해서 치유가 되고 보완이 되어서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서로 만날 때 그 가정이 좋아지고 발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부족을 미리 아시면서도 그것을 구원하시고 치유하셔서 영광에 이르게 하실 것을 미리 작정하셔서 부르신 것입니다. 이것이 선택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특급 인간을 고르시는 심판의 사랑이 아니라 부족하고 연약하고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선택하셔서 부르신 구속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호세아는 실천한 것입니다. 이 시간에 이 사랑을 우리에게도 실천하라고 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그 사랑은 선택의 사랑입니다. (요 13:35)
2. 하나님의 사랑은 구속의 사랑입니다. 고멜은 호세아의 선택을 받고 호세아의 아내가 되어 삼남매를 낳았습니다. 이스르엘, 로루하마, 로암미 이 세 남매를 낳고도 옛 구습을 버리지 못하고 집을 나가 음란의 길을 걷다가 팔려진 노예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그를 다시 사랑하고 집으로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호세아는 은 열다섯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고멜을 사고 집으로 데려 오면서 위로하고 권면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속의 사랑을 실천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죄인을 내 버리시지 않으시고 구원하시는 사랑입니다. 병든 자를 내 버리시지 않으시고 치유하시는 사랑입니다. 구속의 사랑입니다. 그러한 사랑을 호세아에게 실천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구속의 사랑이 아니라 욕심의 사랑입니다. 자기의 사욕을 취하는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욕에 어긋난 것은 냉정하게 버립니다. 자기의 만족을 채우지 못하는 사람이라 해서 부부간에 이혼하는 현대인들이라면 호세아는 고멜을 절대로 바라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를 위하여 막대한 돈을 드리면서 다시 집으로 되돌아오게 한다는 것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호세아는 고멜을 위해 막대한 재산을 드리고 그를 집으로 데려 왔습니다. 구속의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 앞에 절하는 민족이 되고 말았습니다. 높은 산에 제단을 꾸미고 아름다운 산에 집회소를 만들어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곡식으로 제물을 만들어 놓고, 섬겼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음란하게 지냈습니다. 그 때문에 나라는 망하게 되었고, 백성들은 앗스루인들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심판의 사랑이 필요했던 것이 아닙니다. 완전한 모습을 좋아하시는 하나님이 필요했던 것이 아닙니다. 병든 몸을 치유해 주시고, 연약한 것을 고쳐 주시며, 갚지 못한 빚을 갚아 주시는 구속의 사랑이 필요했습니다. 우리는 건강한 사람들이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살림살이에 피곤하고, 자녀들을 낳아 키우다 보니 이제는 몸이 많이 쇠약해진 제 아내를 발견합니다. 이제 내 아내에게 필요한 것은 미인도 아니고, 건강한 사람도 아니고, 부잣집 딸도 아니라 병들고 연약한 아내를 치료하고 보살피는 구 속의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남편과 아내는 구속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3. 하나님의 사랑은 영화롭게 하시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고멜을 데려 온 호세아는 호세아 3:3에서 이렇게 속삭입니다.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행음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좇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고 했습니다. 고멜의 영화는 다시 호세아의 집으로 돌아와 호세아의 사랑 받는 아내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삼남매를 사랑하며 어머니의 위치에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제자리에 되돌아오는 것이 그가 영화롭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8:30에 보면 하나님은 미리 아시고, 미리 아신 자를 미리 정하시고, 미리 정하신 자를 부르시고, 부르신 자를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자를 영화롭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세상을 창조하시고, 완전한 인간을 창조하셔서 에덴 동산에서 안식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에덴 동산에는 병원도 없고, 감옥도 없었습니다. 건강하고 거룩하게 사는 안식의 동산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죄를 범하는 순간에 자연에서는 독소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땅에서는 가시덤불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거짓되기 시작했고, 인간의 몸에는 병들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생태계에는 먹이사슬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 세상을 구속하셔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을 회복하여 영화롭게 하려고 오늘도 일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실패한 것을 그대로 두시는 분이 아니라, 구속하시고 부흥시키셔서 영화롭게 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을 주님으로 모셨기 때문에 호세아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자신도 실천하도록 요구받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요구에 순종하여 호세아도 영화롭게 하는 사랑으로 고멜을 영접했습니다. 고멜은 영화로운 곳에 다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성도 여러분, 호세아의 아내 사랑은 하나님의 인류 사랑의 그림자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우리에게도 요구하시고 계십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심판의 사랑이 아니라 선택의 사랑입니다. 포기의 사랑이 아니라 구 속의 사랑입니다. 진노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영화롭게 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사랑을 우리도 실천할 때에 가정은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교회는 부흥되는 것입니다. 나라는 번영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평화로워지는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의 구속의 사랑으로만 이룩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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