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합3:16-19)
본문
주전 6세기 경, 하박국 선지자가 살고 있던 시대에 세계 역사의 힘은 새롭게 등장하던 저 갈대아, 곧 바벨론 제국의 영향권으로 옮겨지고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 하박국은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고 하였습니다. 세계의 대세가 바벨론을 힘으로 삼고 그에게 의지하는 역사의 물결을 거슬러 오르면서 자기와 조국 유다의 힘은 하나님이시라고 소리쳤습니다.
I. 힘없는 인생(유다) 지금 하나님의 사람 하박국은 힘없는 자신의 실존 앞에서 엄청난 자기 혼란, 자기 경련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신흥 제국 갈대아(바벨론)를 들어 범죄한 조국 유다를 징치하겠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3장 16절에 .내가 들었으므로. 하는 말입니다. 이것은 하박국의 첫번째 항변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이었습니다(1:1-11, 3:2). 새로운 신흥 제국 바벨론이 유다를 침략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을때,
1 내 창자가 흔들렸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깊은 내심(in most soul), 혹은 가슴, 모태, 영혼 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2 그 하나님의 목소리 때문에 내 입술이 떨렸도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큰 놀람과 슬픔으로 입술이 무슨 말을 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른 것을 가리킵니다.
3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왔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뼈가 썩어지는듯한 고통의 극도를 뜻하는 것입니다.
4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몸은 몸의 하체 부분을 가리킴인데 다리와 발목이 힘이 없어져 몸을 지탱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른 것을 의미합니다. 말하자면 하나님께로부터 바벨론 침략의 소식을 듣고 이러한 엄청난 자기 혼란, 자기 붕괴, 자기 절망, 자기 암흑, 자기 상실의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는 말입니다. 창자는 사람의 내심을 뜻하고, 입술은 사람의 상체 부분을 가리키고, 뼈는 몸 전체를 지탱하는 구심력을 가리키고 다리와 발목은 신체의 하반부를 가리킨다고 생각할 때, 인생 전부가 송두리채 붕괴되고 있는 경지를 만나고 있다고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힘이 없는 상태, 힘이 빠진 상태, 힘을 쓸 수 없는 무기력의 상태, 살았으나 죽은 자와 방불한 상태를 뜻합니다. 17절을 보십시요. 힘없는 상태를 또 다르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무성하지 못한 무화과 나무 같고, 열매 없는 포도 나무 같고, 소출 없는 감람 나무 같고, 먹을 것이 없는 빈 밭 같고, 양이 없는 우리 같고, 소가 없는 외양간 같다 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바벨론의 침략으로 폐허가 되어버릴 조극의 비극을 묘사한 말입니다. 말하자면 완전 황폐의 상태, 죽음의 상태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그의 영감 표현은 자신과 조국 유다가 바벨론의 침략 앞에 힘이 없는 상황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말해서 범죄한 유다는, 범죄한 인생은 사탄의 침노 앞에 힘없는 존재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I. 주는 나의 힘이시라는 확신입니다. 3장 18절에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고 하였습니다. 19절에는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가 죽음의 상태에서 일어나게 되는 자기 비약과 자기 전환의 근거가 바로 주는 나의 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주’는 이 세상의 많은 신들을 나타내는 주(Lord)가 아니라 그와 구별되는 ‘그 주’(the Lord)입니다. 이것은 ‘여호와’라고 이름하는 고유명사의 대용어입니다.
그렇다면 ‘그 주’는 바로 ‘여호와’이십니다. 그분을 가리켜 ‘나의 구원’이라고 불렀습니다. 구약에서 ‘여호와’는 삼위중 제 2위이신 ‘로고스’를 뜻함인데 곧 성육하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는 나의 힘이시다 하는 신약적 예언의 의미를 갖고 있는 말이 됩니다. 중대하고 중대한 것은 힘이 없어, 힘이 빠져, 완전 죽음의 경련에 빠져버린 선지자(유다)가 새로운 용기와 삶의 전환점을 찾고, 붙잡은 것이 바로 주는 나의 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주는 나의 힘이시라! 무슨 의미인가
1. 주는 자신이 영원히 자존하는 힘이시란 뜻입니다. 그는 태초부터 계신 로고스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스스로 계신 생명이시라고 하였습니다(요1:1). 그는 무시무종하고, 영원 자존하신 힘, 그 자체시란 말입니다.
2. 주는 존재 세계의 힘이시란 뜻입니다. 곧 창조의 주시란 뜻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피조세계는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다는 사실입니다(요1:3). 존재하는 모든 유형, 무형의 피조물들은 그 어느 하나라도 그의 능력에 의하여 지음받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으시다는 사실입니다.
3. 통치와 보존과 섭리의 힘이시란 뜻입니다. 그에게 창조함을 받은 모든 피조세계는 실로 무비한 힘의 존재들입니다. 엄청난 자연 법칙의 힘들, 자연 세력의 힘들, 유형, 무형의 모든 피조물의 힘들은 실로 불가사의 그 자체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게 나타나는 힘, 보이지 않게 존재하는 힘들., 실로 우리는 힘과 힘들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주님은 그가 창조하신 모든 피조 세계의 힘들을 통치하고, 섭리하고, 조정하고, 보존하는 힘 위에 힘이시란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고 하지 않았던가(롬11:36) 실로 그는 힘의 창조자 곧 힘의 공급자인 동시에 또한 힘의 유지자요, 관리자요, 조성자이십니다. 그가 전능의 능력으로 그가 만든 힘들을 통치하지 않을 땐 우주는 완전 파괴 상태에 들어가고 말 것입니다.
4. 구원의 힘이시란 뜻입니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 이라고 하였습니다(3:18). 이것은 특별 은총의 힘을 가리킵니다. 죄에서의 구원, 사망에서의 구원, 사탄에서의 구원, 영원한 진노의 형벌에서의 구원을 뜻합니다. 여자적인 본문의 의미는 바벨론의 침략에서의 구원을 가리킵니다. 지금 선지자 하박국은 말을 타시고, 바다 곧 큰 물의 파도를 밟으시고, 이스라엘 앞서 행하시던 여호와를 기억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3:15). 이것은 종된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앞서서 친히 홍해를 가르시던 초자연적인 구원 역사를 말합니다(출14:18-19). 그 하나님은 구원의 힘이 되신 여호와라고 확신하였습니다. 그 구원의 하나님의 힘이 지금 자기와 자기 조국을 침략자 바벨론의 힘에서 능히 구원하실 것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고 하였습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고 외친 것입니다. 주님께서 자기와 자신의 백성에게 힘을 주실 때, 그의 발은 사슴 같이 뛸 것이고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할 것이라 고 확신하였습니다. 여기 사슴은 재빠르고 힘찬 활동을 상징하는 동물입니다. 다윗도 그렇게 노래했습니다(시18:3). 나의 발이 사슴같이 뛴다는 말은 약하고, 무능했던 이스라엘이 강하고 굳세게 된다는 힘의 소생, 힘의 재생을 뜻하고 있습니다. 또 나로 나의 높은 곳을 다니게 한다 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벌써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축복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선민이 땅의 높은 곳을 타고 다니게 하겠다고 축복했습니다(신32:13). 이스라엘은 땅의 높은 곳을 밟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신33;29). 땅의 높은 곳 , 나의 높은 곳 이란 무슨 뜻인가 바로 승리자의 세계를 말함 입니다. 그곳은 세상을 내려다보는 위치입니다. 손을 높이 들고 세계를 축복하는 위치입니다. 그것은 바로 신앙 세계의 높은 차원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하던 이스라엘의 경우, 땅의 높은 곳은 바로 시온의 땅, 예루살렘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경우, 바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거룩한 교회 생활입니다. 더 나아가 예루살렘, 유다, 사마리아, 땅끝까지 복음으로 세계를 정복하여 여호와의 깃발을 꽂을 사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결국 하박국은 그의 믿음대로 그 은총의 세계를 체험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가 사슴의 발 같이 뛰고 또 뛸 사람인가 누가 땅의 높은 곳을 밟을 사람인가 누가 하나님이 계획하신 구속사의 무대를 달리고 또 달릴 사람인가 누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세계 선교의 현장을 주름잡을 사람인가 자신은 힘없는 죄인임을 자백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은 원죄와 자범죄로 인하여 영원히 울어도 못다 갚을 지옥의 형벌을 받을 죄인임을 고백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나의 허물을 생각할 때, 나의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고, 뼈가 썩고, 무릎과 다리가 힘을 쓸 수 없는 죄인임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그 때 주가 나의 힘 이 되십니다. 그 때 죄인된 나는 힘이신 주님을 믿게 되고, 붙잡게 됩니다. 그 때 부요하신 십자가 은총의 새힘이 나를 새롭게 창조해 주시는 축복을 체험하게 됩니다. 주님의 새힘을 받은 자 마다 새로운 역사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낸 역사의 영웅들이 아니었던가 주의 힘을 받은 모세와 그 백성은 홍해를 갈랐습니다. 주의 힘을 받은 여호수아와 그 백성은 여리고를 함락시켜 버렸습니다. 주의 힘을 받은 저 바벨론의 히브리 포로 소년들은 평소보다 7배나 더 뜨거운 풀무불 속에서 살아나왔습니다.
주의 힘을 받은 다니엘은 죽음의 사자굴에서 죽지 않고 살아나와 새로운 페르샤 제국의 재상이 되었습니다. 주의 힘을 받은 엘리야는 그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게 하는 새 역사의 장을 열어주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아예 죽음을 보지 않도록 불수레에 태워 하나님의 나라로 산채로 옯겨 버렸습니다. 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주의 힘을 받은 후 세계 역사를 바꾸어 놓고 마는 선교 1세기를 이루어 놓지 않았던가 주의 힘을 받은 바울은 선교의 신기원을 이루어 놓고 말았습니다. 주의 힘을 받은 초기 기독신자들은 박해 300년의 기나긴 암흑 속에서 카타콤의 문화를 꽃피우는 부요를 누리지 않았던가 확실히 주의 힘을 받은 중세기의 종교 개혁자들은 그 어둠의 중세기를 동트게 하는 그 시대의 횃불이 아니었던가 주의 힘을 받은 영국의 청교도들은 마침내 아메리카 대륙을 개척하여 20세기 요셉의 창고를 만들어 놓지 않았던가 주의 힘을 받은 한국 교회의 선배들은 무당교와 불교와 유교의 가시 바늘에 찔리면서도 용감하게 주 예수만을 구주로 고백하는 붉은 신앙을 남기지 않았던가 주의 힘을 받은 우리의 선배들은 일본 군국주의의 박해와 공산주의의 박해 아래서는 순교적 신앙으로 대처하지 않았던가 주는 나의 힘이십니다. 오직 주님 만이 나의 힘이십니다. 바로 이것은 오늘의 경향인이 체험하고 있는 역사적 현장이 아닌가 주의 힘을 받은 자는 그 마음이, 그 몸이, 그와 그 자손들의 앞날이 사슴의 발같이 뛰고 또 뛰어 갈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도 많은 성전 건축 연보를 짊어지고도 그 마음들이, 그 발들이 사슴같이 높은 곳을 향하여 뛰어가고 있지 않은가 바로 이것은 경향인의 발들이 사슴의 발이 되어 땅의 높은 곳을 뛰고 또 뛰어가는 세계 선교의 무대를 받을 큰 축복의 징조입니다. 땅의 높은 곳은 여호와의 깃발을 꽂는 장소입니다. 땅의 높은 곳은 세계를 축복하는 복음의 제사장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바로 그 사람들을 가리켜 하나님은 행복자라는 새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신33:29)고 하였습니다. 주의 힘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사슴같이 뛰어가는 발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땅의 높은 곳을 발로 밟는 행복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I. 힘없는 인생(유다) 지금 하나님의 사람 하박국은 힘없는 자신의 실존 앞에서 엄청난 자기 혼란, 자기 경련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신흥 제국 갈대아(바벨론)를 들어 범죄한 조국 유다를 징치하겠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3장 16절에 .내가 들었으므로. 하는 말입니다. 이것은 하박국의 첫번째 항변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이었습니다(1:1-11, 3:2). 새로운 신흥 제국 바벨론이 유다를 침략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을때,
1 내 창자가 흔들렸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깊은 내심(in most soul), 혹은 가슴, 모태, 영혼 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2 그 하나님의 목소리 때문에 내 입술이 떨렸도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큰 놀람과 슬픔으로 입술이 무슨 말을 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른 것을 가리킵니다.
3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왔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뼈가 썩어지는듯한 고통의 극도를 뜻하는 것입니다.
4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몸은 몸의 하체 부분을 가리킴인데 다리와 발목이 힘이 없어져 몸을 지탱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른 것을 의미합니다. 말하자면 하나님께로부터 바벨론 침략의 소식을 듣고 이러한 엄청난 자기 혼란, 자기 붕괴, 자기 절망, 자기 암흑, 자기 상실의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는 말입니다. 창자는 사람의 내심을 뜻하고, 입술은 사람의 상체 부분을 가리키고, 뼈는 몸 전체를 지탱하는 구심력을 가리키고 다리와 발목은 신체의 하반부를 가리킨다고 생각할 때, 인생 전부가 송두리채 붕괴되고 있는 경지를 만나고 있다고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힘이 없는 상태, 힘이 빠진 상태, 힘을 쓸 수 없는 무기력의 상태, 살았으나 죽은 자와 방불한 상태를 뜻합니다. 17절을 보십시요. 힘없는 상태를 또 다르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무성하지 못한 무화과 나무 같고, 열매 없는 포도 나무 같고, 소출 없는 감람 나무 같고, 먹을 것이 없는 빈 밭 같고, 양이 없는 우리 같고, 소가 없는 외양간 같다 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바벨론의 침략으로 폐허가 되어버릴 조극의 비극을 묘사한 말입니다. 말하자면 완전 황폐의 상태, 죽음의 상태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그의 영감 표현은 자신과 조국 유다가 바벨론의 침략 앞에 힘이 없는 상황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말해서 범죄한 유다는, 범죄한 인생은 사탄의 침노 앞에 힘없는 존재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I. 주는 나의 힘이시라는 확신입니다. 3장 18절에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고 하였습니다. 19절에는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가 죽음의 상태에서 일어나게 되는 자기 비약과 자기 전환의 근거가 바로 주는 나의 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주’는 이 세상의 많은 신들을 나타내는 주(Lord)가 아니라 그와 구별되는 ‘그 주’(the Lord)입니다. 이것은 ‘여호와’라고 이름하는 고유명사의 대용어입니다.
그렇다면 ‘그 주’는 바로 ‘여호와’이십니다. 그분을 가리켜 ‘나의 구원’이라고 불렀습니다. 구약에서 ‘여호와’는 삼위중 제 2위이신 ‘로고스’를 뜻함인데 곧 성육하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는 나의 힘이시다 하는 신약적 예언의 의미를 갖고 있는 말이 됩니다. 중대하고 중대한 것은 힘이 없어, 힘이 빠져, 완전 죽음의 경련에 빠져버린 선지자(유다)가 새로운 용기와 삶의 전환점을 찾고, 붙잡은 것이 바로 주는 나의 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주는 나의 힘이시라! 무슨 의미인가
1. 주는 자신이 영원히 자존하는 힘이시란 뜻입니다. 그는 태초부터 계신 로고스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스스로 계신 생명이시라고 하였습니다(요1:1). 그는 무시무종하고, 영원 자존하신 힘, 그 자체시란 말입니다.
2. 주는 존재 세계의 힘이시란 뜻입니다. 곧 창조의 주시란 뜻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피조세계는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다는 사실입니다(요1:3). 존재하는 모든 유형, 무형의 피조물들은 그 어느 하나라도 그의 능력에 의하여 지음받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으시다는 사실입니다.
3. 통치와 보존과 섭리의 힘이시란 뜻입니다. 그에게 창조함을 받은 모든 피조세계는 실로 무비한 힘의 존재들입니다. 엄청난 자연 법칙의 힘들, 자연 세력의 힘들, 유형, 무형의 모든 피조물의 힘들은 실로 불가사의 그 자체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게 나타나는 힘, 보이지 않게 존재하는 힘들., 실로 우리는 힘과 힘들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주님은 그가 창조하신 모든 피조 세계의 힘들을 통치하고, 섭리하고, 조정하고, 보존하는 힘 위에 힘이시란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고 하지 않았던가(롬11:36) 실로 그는 힘의 창조자 곧 힘의 공급자인 동시에 또한 힘의 유지자요, 관리자요, 조성자이십니다. 그가 전능의 능력으로 그가 만든 힘들을 통치하지 않을 땐 우주는 완전 파괴 상태에 들어가고 말 것입니다.
4. 구원의 힘이시란 뜻입니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 이라고 하였습니다(3:18). 이것은 특별 은총의 힘을 가리킵니다. 죄에서의 구원, 사망에서의 구원, 사탄에서의 구원, 영원한 진노의 형벌에서의 구원을 뜻합니다. 여자적인 본문의 의미는 바벨론의 침략에서의 구원을 가리킵니다. 지금 선지자 하박국은 말을 타시고, 바다 곧 큰 물의 파도를 밟으시고, 이스라엘 앞서 행하시던 여호와를 기억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3:15). 이것은 종된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앞서서 친히 홍해를 가르시던 초자연적인 구원 역사를 말합니다(출14:18-19). 그 하나님은 구원의 힘이 되신 여호와라고 확신하였습니다. 그 구원의 하나님의 힘이 지금 자기와 자기 조국을 침략자 바벨론의 힘에서 능히 구원하실 것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고 하였습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고 외친 것입니다. 주님께서 자기와 자신의 백성에게 힘을 주실 때, 그의 발은 사슴 같이 뛸 것이고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할 것이라 고 확신하였습니다. 여기 사슴은 재빠르고 힘찬 활동을 상징하는 동물입니다. 다윗도 그렇게 노래했습니다(시18:3). 나의 발이 사슴같이 뛴다는 말은 약하고, 무능했던 이스라엘이 강하고 굳세게 된다는 힘의 소생, 힘의 재생을 뜻하고 있습니다. 또 나로 나의 높은 곳을 다니게 한다 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벌써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축복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선민이 땅의 높은 곳을 타고 다니게 하겠다고 축복했습니다(신32:13). 이스라엘은 땅의 높은 곳을 밟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신33;29). 땅의 높은 곳 , 나의 높은 곳 이란 무슨 뜻인가 바로 승리자의 세계를 말함 입니다. 그곳은 세상을 내려다보는 위치입니다. 손을 높이 들고 세계를 축복하는 위치입니다. 그것은 바로 신앙 세계의 높은 차원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하던 이스라엘의 경우, 땅의 높은 곳은 바로 시온의 땅, 예루살렘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경우, 바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거룩한 교회 생활입니다. 더 나아가 예루살렘, 유다, 사마리아, 땅끝까지 복음으로 세계를 정복하여 여호와의 깃발을 꽂을 사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결국 하박국은 그의 믿음대로 그 은총의 세계를 체험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가 사슴의 발 같이 뛰고 또 뛸 사람인가 누가 땅의 높은 곳을 밟을 사람인가 누가 하나님이 계획하신 구속사의 무대를 달리고 또 달릴 사람인가 누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세계 선교의 현장을 주름잡을 사람인가 자신은 힘없는 죄인임을 자백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은 원죄와 자범죄로 인하여 영원히 울어도 못다 갚을 지옥의 형벌을 받을 죄인임을 고백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나의 허물을 생각할 때, 나의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고, 뼈가 썩고, 무릎과 다리가 힘을 쓸 수 없는 죄인임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그 때 주가 나의 힘 이 되십니다. 그 때 죄인된 나는 힘이신 주님을 믿게 되고, 붙잡게 됩니다. 그 때 부요하신 십자가 은총의 새힘이 나를 새롭게 창조해 주시는 축복을 체험하게 됩니다. 주님의 새힘을 받은 자 마다 새로운 역사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낸 역사의 영웅들이 아니었던가 주의 힘을 받은 모세와 그 백성은 홍해를 갈랐습니다. 주의 힘을 받은 여호수아와 그 백성은 여리고를 함락시켜 버렸습니다. 주의 힘을 받은 저 바벨론의 히브리 포로 소년들은 평소보다 7배나 더 뜨거운 풀무불 속에서 살아나왔습니다.
주의 힘을 받은 다니엘은 죽음의 사자굴에서 죽지 않고 살아나와 새로운 페르샤 제국의 재상이 되었습니다. 주의 힘을 받은 엘리야는 그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게 하는 새 역사의 장을 열어주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아예 죽음을 보지 않도록 불수레에 태워 하나님의 나라로 산채로 옯겨 버렸습니다. 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주의 힘을 받은 후 세계 역사를 바꾸어 놓고 마는 선교 1세기를 이루어 놓지 않았던가 주의 힘을 받은 바울은 선교의 신기원을 이루어 놓고 말았습니다. 주의 힘을 받은 초기 기독신자들은 박해 300년의 기나긴 암흑 속에서 카타콤의 문화를 꽃피우는 부요를 누리지 않았던가 확실히 주의 힘을 받은 중세기의 종교 개혁자들은 그 어둠의 중세기를 동트게 하는 그 시대의 횃불이 아니었던가 주의 힘을 받은 영국의 청교도들은 마침내 아메리카 대륙을 개척하여 20세기 요셉의 창고를 만들어 놓지 않았던가 주의 힘을 받은 한국 교회의 선배들은 무당교와 불교와 유교의 가시 바늘에 찔리면서도 용감하게 주 예수만을 구주로 고백하는 붉은 신앙을 남기지 않았던가 주의 힘을 받은 우리의 선배들은 일본 군국주의의 박해와 공산주의의 박해 아래서는 순교적 신앙으로 대처하지 않았던가 주는 나의 힘이십니다. 오직 주님 만이 나의 힘이십니다. 바로 이것은 오늘의 경향인이 체험하고 있는 역사적 현장이 아닌가 주의 힘을 받은 자는 그 마음이, 그 몸이, 그와 그 자손들의 앞날이 사슴의 발같이 뛰고 또 뛰어 갈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도 많은 성전 건축 연보를 짊어지고도 그 마음들이, 그 발들이 사슴같이 높은 곳을 향하여 뛰어가고 있지 않은가 바로 이것은 경향인의 발들이 사슴의 발이 되어 땅의 높은 곳을 뛰고 또 뛰어가는 세계 선교의 무대를 받을 큰 축복의 징조입니다. 땅의 높은 곳은 여호와의 깃발을 꽂는 장소입니다. 땅의 높은 곳은 세계를 축복하는 복음의 제사장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바로 그 사람들을 가리켜 하나님은 행복자라는 새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신33:29)고 하였습니다. 주의 힘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사슴같이 뛰어가는 발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땅의 높은 곳을 발로 밟는 행복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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