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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감사 (합3:17-19)

본문

여러분, 모로코 섬의 성자 다미엔의 감사를 아십니까 저주받은 천형이라고 불리우던 문둥병자들이 하나씩 둘씩 모여들기 시작하여 결국에는 모든 문둥병자들을 집단으로 거주하게 하였던 저주의 섬 모로코에 복음을 가지고 들어갔던 선교사요, 종국에는 자신도 그 문둥병에 걸려 일생을 문둥병과 함께 하였던 근세기 최고의 성자 다미엔의 감사를 아십니까 그는 문둥병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받고 단신으로 모로코 섬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모든 사회와 국가와 종교와 사람들로 부터 소외당하고 외면당해온 문둥병자들은 오히려 철저하게 다미엔을 외면하고 다미엔이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아니합니다. 그의 헌신적인 선교로 그 저주의 섬에 이윽고 한 사람 두 사람의 신자가 생겨나게 되고 서서히 복음이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대다수의 문둥병자들은 복음을 믿으려 하지 아니하고 다미엔의 복음 사역을 거절하고 방해하였습니다. 다미엔은 왜 자신이 전하는 복음을 문둥병자들이 왜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저에게도 저 사람들과 같은 문둥병을 내려 주옵소서.그래서 저도 그 천형의 고통을 함께 누리면서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기도했습니다. 모로코 섬에 들어간지 6년째 되는 어느 아침에 다미엔은 차를 마시기 위해서 물을 끓이게 되었고 그 뜨거운 물이 실수로 자신의 발등에 떨어지게 되는 데 이게 왠 일입니까 그 뜨거운 물이 발등에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뜨거움도 아픔도 감각도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바로 다미엔에게도 그 문둥병이 덥쳐왔던 것이었습니다. 순간 다미엔은 그 자리에 끓어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여러분, 다미엔이 어떤 기도를 드렸겠습니까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제 나도 저 문둥병자들에게 설교할 때에 이제 “여러분.”이라고 하지 아니하고 “우리는.”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당신들 문둥병자가” 아니라 “우리 문둥병자들은.”이라고 설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이 기쁨의 문둥병을 주시오니 정말 감사합니다.” 다미엔은 자신이 문둥병자가 된 것을 감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육신이 그 문둥병으로 인해서 썩어지고 문드러질 때 까지 평생을 모로코에서 살았고, 그가 죽을 때에는 전 모로코 섬의 문둥병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다미엔의 선교 사역은 모든 선교사들의 모범이 되었고, 다미엔의 희생과 선교를 접하고 눈물 아니흘리는 사람이 없고, 그의 위대한 업적은 지금부터 영원히 별처럼 빛날 것입니다. 그 다미엔의 감사의 기도, 문둥병에 걸린 데 대한 감사의 기도, 주님의 뜻을 받아드리며, 그 뜻을 이루는 감사의 기도야 말로 성숙한 감사요, 오늘 우리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따르고 갖추어야 할 감사인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다미엔이 만난 이 현실에서 어떻게 기도하시겠습니까 과연 감사로 기도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성숙한 감사의 원형을 오늘 성경 본문에서 말씀하는 하박국 선지자의 감사의 노래에서 찿을 수 있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감사의 노래를 다시 한번 읽어 드립니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 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 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라” 하박국 선지자의 이 기쁨의 노래는 가장 아름답고 원숙한 신앙의 경지를 보여줍니다. 이 감사의 찬양이야 말로 성숙한 신앙인의 입에서 넘쳐 흐르는 감사요, 우리의 감사 신앙의 본질적인 원형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참으로 언제나 어디서나 무엇을 하든지 모든 일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박국서 전체를 살펴보면 이 하박국 선지자도 처음부터 이런 깨달음을 가지고 감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 땅 위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강포와 간악과 패역과 겁탈과 분쟁들을 보면서 하나님께 원망하고, 부르짖었습니다. 시편 73편 기자가 악인의 형통을 보고 불평을 하나님께 터뜨린 것 같이 “어떻게 공의의 하나님이 계시다면서 악인들은 형통하고 잘되는데 날마다 선을 행하기를 힘쓰고, 회개하는 기도와 순종하는 행위를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징책을 당하는가”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고 하나님께 질문을 합니다.
이는 공의의 하나님께서 공의를 시행치 않기 때문이라고 불평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될 때를 기다리겠다고 합니다. 그가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질문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답하실는지 알기 위해서 참고 기다리며 바라봅니다. 그리고난 다음에 그가 하나님께서 어떻게 악인에 대하여 보응하시는지를 깨닫고, 하나님의 백성을 지켜 보호하시는지를 깨닫습니다. (합3: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이제 그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어떻게 그 사랑하시는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또 왜 이 땅에 공의가 보이지 않는 여러 가지 갈등되는 현실들이 여전히 있게 되는가를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그 깨달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여 부른 노래가 바로 오늘 본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진정한 감사는 깨달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합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합3: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물론 우리 신앙인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열매와 소산의 풍요로움과 번성함을 인해서 하나님을 찬송하며 감사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눈에 보이는 현실이 그렇지 아니하다 하더라도 하박국은 기뻐하고 감사하리라는 믿음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입은 자들에게는 이 세상의 어떤 것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이미 받은 복으로 인하여서도 얼마든지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감사하여야할 것을 깨닫고, 노래합니다.
무화과 나무의 소산이 없다 하더라도, 포도 나무의 실과를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감람 나무의 기름을 소유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양이 없고 소가 없고 식물이 없다 하더라도 그래도 나는 기뻐하고 감사하리라는 것입니다. 이 가난 속에서의 감사, 역경 속에서의 감사, 부족함 가운데서의 감사, 없는 것 가운데서의 감사, 모자라는 것 가운데서의 감사, 아무 것도 소유하지도 못하는 가운데서도 드릴 수밖에 없는 감사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하박국 선지자의 감사는 우리 신앙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원숙하고 성숙한 감사입니다. 오늘 추수 감사예배를 드리면서 이 성숙한 감사의 신앙을 새롭게 하십시다. 어린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는 과정을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 몸이 자라고 뼈대가 크고 키가 자라는 일을 가리켜 성장한다고 합니다. 반면에 그 마음이 자라고 그 정신이 자라고 그 지능이 자라고 그 인격이 자라는 것을 가리켜 성숙한다고 합니다. 한 사람이 바르게 자란다는 것은 몸이라고 하는 외적인 면이 성장해야 하고, 동시에 내적인 정신과 인격도 성숙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성장과 성숙이 동시적으로 균형을 이루면서 자랄 때에 정상적이고 온전한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몸은 시간과 세월이 흐름에 따라 자연적으로 성장하게 되는 데 그 정신과 인격이 성숙하지 못하게 되면 바로 정신 박약이나 정신 지체아가 되는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월이 흐르고 날이 갈수록 그 신앙도 일취월장하여 자라고 성숙할 때에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신앙으로 비추어질 수 있는 것이지, 만일에 그 믿음의 모습이 구태의연하여 제 모습 제자리만 지키고 있다면 성숙하지 못한 정박아 신앙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가장 기본적인 것이 있다면 바로 감사하는 신앙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언제 어디서나, 모든 일에, 누구에게나 감사하면서 살아가야합니다.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부모님께 감사하고, 형제들 간에 감사하고, 이웃들에게도 감사하면서 살아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좋은 일이 있고 기쁜 일이 있고 보이는 조건이 좋을 때에도 우리 성도들은 우선 먼저 하나님의 은혜인줄 깨닫고, 감사합니다. 그러나 성숙한 신앙인은 어려운 일을 만나고, 슬픈 일을 만나도, 심지어 초상집에 가서도, 슬픔을 당한 가정에서도, 고난과 질병으로 고통받을 때에도 그저 기도할 때는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하면서 기도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감사가 삶과 죽음이하의 것이 아닌, 조건을 초월한 감사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입으로만의 감사, 형식적인 감사, 의식적이고 외식적인 감사, 그저 습관적인 감사, 그리고 자신에게 베풀어진 좋은 일과 기쁜 일과 감사할 일에 대한 감사는 어린 아이의 미숙한 감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온전히 성숙한 감사 신앙만이 우리로 온전한 그리스도의 분량에 이르게 하시고 더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과 응답의 역사를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추수감사예배를 드리는 모든 성도들께서는 이 감사를 깨달아서 온전히 성숙한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 성숙한 감사를 통해서 더 풍성히 베푸시는 하나님의 기적과 응답을 체험하는 성도들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성숙한 감사 신앙을 몇 가지 말씀드립니다.
1. 감사하는 자가 부요한 자임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한 자들은 복이 있다.천국이 저들의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뜻은 가난한 사람들이 더 하나님께 가까울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가난한 사람들은 삶의 여건이 어렵고 나날들의 경제가 쪼들리기는 하지만 하나님께 대한 믿음은 더욱 뜨겁고 그만큼 간절할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부자들은 그 몸과 마음이 자신의 부를 의지하기 때문에 하나님 의지하려는 믿음이 적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의지할 곳이 오직 하나님 밖에 없기 때문에 순전하고 큰 믿음으로 삽니다. 오늘 하박국의 감사는 가난한 자의 감사입니다. 아무런 가진 것이 없고 또 가질 것도 없는 가난한 몸과 가난한 살림과 가난한 마음의 감사인 것입니다. 성경을 보세요. 이 가난함은 그 손과 주머니와 금고와 창고에 아무 것도 소유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기뻐하며 감사하였습니다. 오늘 우리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의 심령과 입술에 이 가난한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비록 가진 것이 없고 가질 것도 없다할지라도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십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이라고 겸손한 감사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부요하다고 겸손한 감사를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감사하라는 말씀은 가난하거나 부요하거나 어떤 경우에도 감사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이라도 그 가난 때문에 꼭 주님을 찾는 것은 아니고, 원망 불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때에 주님을 찾는 마음 문을 열기가 쉬운 것입니다. 자기에게 아무 것도 없을지라도 감사할 수 있다면 그는 모든 것을 가진 부요한 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천하를 다 가졌다해도 감사가 없고, 불만하는 사람은 참으로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감사하는 사람은 어떤 가난한 현실에서도 천국생활하고, 불만하는 그 사람은 어떤 부요한 현실에도 지옥생활을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가난한 데 대해서도 감사를 드립시다. 비록 나 가진 것이 없고 가질 것도 없다고 할지라도, 그리고 모든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아니하고, 주머니가 텅텅 비었다고 할지라도, 여유도 없고 소득이 없다 할지라도 감사하십시다. 이 가난한 감사는 하나님 앞에서 가장 성숙한 감사입니다. 가난한 감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가난을 하나님 나라의 풍요와 부요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비록 가난하지만 감사로 그 가난의 비워있는 자리를 채울 때에 우리 하나님께서도 그 가난의 빈 자리를 신령하고 기름진 은혜와 축복으로 가득히 채워주실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셔서 여러분의 삶이 부요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원하는 것은 하박국 선지자와 같이 비록 아무 것도 없고 가질 것이 없다고 할지라도 감사하고, 감사할 수 있는 가난한 감사로서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공급받으시는 성숙한 감사 신앙인들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성숙한 감사는 여호와로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선지자가 모든 것을 잃은 그 비참하리 만큼 가난한 가운데도 감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오직 여호와로 인하여 드리는 감사와 기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므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약속을 선포하시고 이행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신구약 성경에는 수천가지의 약속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입니다. 우리가 어떤 현실에서도 두려워떨지 않을 수 있고, 오히려 담대하며, 감사하며 기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이 약속의 말씀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은 얼마나 변덕이 많고 유한합니까 그러나 우리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이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도, 우리를 지켜 보호하신다는 그 약속도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그 구원의 약속도 변함이 없습니다. 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 기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하나님께서 오늘도 살아 계시고 역사하셔서 나를 구원하시고, 나와 함께 하시니 이 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고 이 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겠습니까 세상에 우리에게 이 능력의 하나님보다 더 든든한 보호자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 사랑의 하나님보다 더 우리를 사랑하시는 자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지금 절망의 현실에 있지는 않습니까 시편 23편 기자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주께서 함께하심을 인하여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 하나님 한 분을 목자 삼은 것으로 부족함이 없고, 그 은혜의 잔이 넘친다고 했습니다. 이 하나님의 살아계시고 우리와 함께 하심을 인하여 즐거워하는 그 즐거움과 기쁨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그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음을 기뻐하였습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기뻐합니다. 이것이 성숙한 감사입니다. 우리를 영원 멸망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의 만난 현실에서 구원해 주실 것도 약속했습니다. 이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감사, 이 감사야 말로 성숙한 감사입니다. 이 감사는 오직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감사이며 하나님만 바라보는 감사이며 하나님께만 드리는 감사입니다. 내게 베푸신 구원의 역사를 돌이키면서 드리는 감사인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를 자각할 줄 알고 그 하나님의 은혜를 헤아릴 줄 아는 감사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체험한 사람의 감사입니다.
그러므로 이 감사는 온전히 성숙한 감사인 것입니다. 왜 하나님으로 인하여 감사합니까 바로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기 때문입니다. 죄악과 영벌의 노예살이 하던 애굽 땅에서 우리를 이끌어 내시고 어린 양의 보혈로서 구속하사 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가나안 복지에 이르게 하시는 구원의 하나님의 역사와 은혜로 인하여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감격하며 노래해야 합니다. 그 구원의 역사를 바라보면서 찬양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무사히 홍해 바다를 육지 처럼 건너게 되고 그 바닷길로 애굽의 바로와 마병들이 추격해 왔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 이스라엘이 바다를 건넌 후에 불기둥 구름 기둥으로 애굽의 마병을 바다 가운데 두셨고 다시 동풍을 불게 하사 바로의 전차들을 다 바다 속으로 수장시켜 버렸습니다. 이 황홀하고 엄청나고 장엄하고 신비한 기적의 사건이 눈 앞에 이루어진 것을 보고 이스라엘의 한 소리 꾼이 노래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노래를 한 사람 한 사람이 따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노래는 점점 퍼져 나가게 되고 온 이스라엘은 구원의 하나님을 노래하고 춤추며 악기를 연주하며 감격과 감동에 가슴이 벅차서 그 기쁨을 이기지 못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소리를 높히고 구원의 하나님을 기뻐하며 찬양하였습니다. 율법서와 시가서와 예언서에 기록하는 이 감사의 노래들은 그렇게 전해진 감사의 찬송입니다. 이 구원의 감사를 세 편만 읽어 드립니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히리로다.” (출애굽기 15:1-2 )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저희가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할 성을 찿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름으로 그 영혼이 속에서 피곤하였도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할 성에 이르게 하셨도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찌로다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시편 107:1-9 )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 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 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라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하박국 3:17-19 ) 오늘 우리에게 어떠한 감사의 노래가 있습니까 무엇으로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추억하면서 추수 감사드릴 때에 감사의 조건이 무엇입니까 이 선지자의 감사가 우리의 감사일 수 있어야 합니다. 나를 구원하시고 나를 이끌어 주시고 나를 살려 주시고 나를 높은 곳에 세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뻐하며 노래하며 감사하여야 할 것입니다. 나를 택하사 구원의 백성으로 삼으신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십시다 십자가의 의로 거룩한 백성으로 세우신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십시다 그 모든 시험과 역경에서 이끌어 내셨던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십시다 질병과 낙심과 좌절 가운데서 구원하셨던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십시다 내 가정에 보배로운 자녀들을 주시고 길러주신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십시다
일할 수 있는 건강과 직업과 산업을 주신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십시다 믿음의 터 우리들의 교회와 성도들을 주신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십시다 주님의 사역자들과 목회자들을 주신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십시다 비록 지금 세상적으로 감사하기 어려울찌라도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십시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 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 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하십시다 결실과 축복의 계절에 오직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하며 기뻐하며 찬송하며 감사하십시다. 우리 속에 예언자의 가난한 감사로 가득히 채웁시다. 지금 현재 우리의 환경과 처지와 입장이 어떠하든지 간에 감사하십시다. 감사는 하나님의 축복을 여는 문이며 하나님의 은혜는 감사의 문을 통해서 들어옵니다. ‘축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오고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라고 하는 이 말씀을 꼭 기억하십시다. 슬픔 가운데 있다 하더라도, 환란 가운데 처했다 할찌라도, 엄청난 손해를 보고 어찌할 바 모른다 할찌라도, 육신의 질고로 아픔을 견디어 내기 힘들다고 할찌라도, 내 가족과 이웃과 자신에게 죽음이 다가왔다 할찌라도, 하나님을 신롸합시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기뻐하며 찬송하며 감사하십시다. 하박국의 감사의 찬송이 오늘 추수 감사예배를 드리고 감사의 제물을 드리는 우리 온 성도들의 기쁨과 찬송과 감사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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