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땅의 언약 (창9:1)
본문
창세기 9장 내용 개요 1-7절;새 땅에 내리신 하나님의 복된 언약 8-17절;복된 언약에 대한 증거 18-19절;노아의 후손이 번창함 20-27절;언약의 담지자인 노아를 비웃은 함의 범죄;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불신 28-29절;노아의 죽음 창조명령의 갱신 1절'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이제 세상은 홍수로 인하여 황폐하여졌고 홍수 이전의 세상과는 판이하게 달라졌습니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는 그 식구들과 함께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 멸망의 홍수로 부터 구원해 주셨음에 대하여 매우 큰 감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또한편으로는 그 엄청난 홍수의 심판에 대하여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도 매우 컸을 것입니다. 그리고 홍수로 말미암아 그들은 기가 꺾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감사와 두려움이 섞인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의 앞날에 대하여 생각했을 것입니다. 과연 이렇게 황폐해 버린 세상에서 어떻게 자기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살 수 있을 것인지를 생각해 보았을 때 그들은 막연한 두려움에 사로잡혔을 것입니다. 첫번째의 어려움은 식량문제였습니다. 홍수 이전의 땅의 풍성함을 더이상 볼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두번째의 어려움은 두려움이었습니다. 폐허가 된 세상을 바라볼 때 어찌 두려움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어떤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전혀 생각해 주시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들을 항상 기억하고 계십니다. 노아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난 후에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복된 언약을 해 주셨습니다. 8:22절'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즉, 홍수로 말미암아 격변한 세상에 하나님께서 일정한 질서를 허락하시고 생물이 살아갈 수 있도록 보존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아들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1절)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창조시에 하셨던 말씀의 반복입니다. 처음 세상을 창조하시고서도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1:28)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 창조시에 땅을 향하여 약속하셨던 말씀이 지금 홍수 후의 폐허가 된 세계에서도 여전히 계속되리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향하여 가지신 변함 없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땅은 저주받아 심판을 당할 수 밖에 없었지만 하나님의 세상을 향하여 가지신 하나님나라를 세우시려는 구원의 경륜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홍수 후의 세상에서도 하나님은 동일한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처음 창조시에 하셨던 복된 언약과 지금 노아에게 하신 말씀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처음 창조시의 상황과 지금 노아의 상황이 다르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처음 창조시의 세상에는 두려움이 없었는데 지금 홍수 후에는 두려움이 생겼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두려움에서 풀려나도록 모든 생물이 사람에게 두려워 하며 무서워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2절'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 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웠음이라 우리는 사나운 짐승들이 간혹 사람들에게 맹렬하게 달려들어 물어뜯는 경우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런 사나운 짐승들을 억제시키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이 짐승들에 의해 멸망을 당하였을 것입니다. 처음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을 당시에는 이러한 짐승들도 세상나라의 통치권을 위임맡은 아담(왕)에게 복종하였습니다. 아담이 하나님께 복종하므로(자발적) 창조의 질서가 유지되었고 사람의 생명이 바르게 보존되었으나 아담의 범죄후로 사람은 자존하는 질서에 서게 되므로 하나님의 통치질서에서 떠나 버렸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질서는 자존하는 질서로 변해버렸고 결국 모든 피조물은 서로 적대관계에 서게 되었습니다.
사람끼리도 그렇거니와 짐승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것은 인류의 범죄가 가져온 무서운 일이었습니다. 이제 홍수 후의 질서 역시 마찬가지 결과였습니다. 더군다나 홍수로 말미암아 자연의 질서는 격변하였고 부족한 먹이문제로 인하여 그리고 모두가 서로 적대관계에 선 질서속에서 사람은 그 생존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런 세계에서 인류의 생존을 가능하게 하실려고 모든 짐승에게 사람을 두려워 하는 본성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인류를 이 땅에 생존 가능하도록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려는 뜻이며 타락한 세상을 구속하기 위한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인의 후손을 통하여 창조세계에 발생한 죄를 제거하고 새인류를 생산하시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려고 작정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세상에서 노아의 가족들을 구원하시고 파괴된 세상에서 서로가 적대관계에 선 질서속에서 인류를 보존하는 섭리를 약속하신 것입니다. 처음 창조된 세상에 아담을 만물의 통치자로 세우신 하나님께서 타락한 질서 속에서도 인류의 통치권이 어느정도 빛을 내도록 하시므로 사나운 짐승들이라 할지라도 사람을 두려워하게 하신 것입니다. 짐승들의 사람을 향한 두려움 때문에 감히 범접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사람은 짐승들의 그런 복종을 통해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장래에 모든 피조 세계를 다스리므로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루어 드리게 될 그날을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비록 아담의 범죄로 완전한 통치질서가 파괴되었지만 이런 새로운 질서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속경륜에 대한 뜻을 생각하게 하신 것입니다.
3절'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 채소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육식을 허락하신 말씀입니다. 그 이전 홍수가 있기 전에는 땅에 먹을 수 있는 채소가 풍성해서 별 문제가 없었는데 이제 홍수로 인하여 세상에 식량문제가 생겼습니다. 격변한 세상의 환경 때문에 당장 연명할 채소가 부족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식구들을 기억하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노아의 후손 가운데서 인류의 구속을 위하여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노아의 식구들을 보존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족한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육식을 허락하셨습니다. 또 하나 육식을 허락하신 일에서 생각할 수 있는 생각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더욱 풍성한 음식물을 제공하신 것입니다. 그저 식량문제의 해결로서 만이 아니라 인류의 문화창달을 위한 힘의 원동력으로서 육식을 허락하시고 그 힘으로 이 창조세계를 개발하도록 하시려는 뜻인 것입니다. 4절'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되는 피채 먹지 말 것이니라 노아에게 주신 약속 가운데 육식을 허락하시면서 그 피는 먹지 말도록 하시므로 아직 생명을 주는 피를 허락하시지 않으시고 앞으로 오실 구속주에게서만 참 생명의 피를 받게 될 것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5,6절'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무릇 사람이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인간에게 육식을 허락하시면서 하나님께서는 그 피채 먹지 말도록 하셨습니다. 짐승을 그 피채 먹는 것은 잔학성을 의미합니다. 잔혹하게도 짐승을 잡아 아직 피가 다 빠져나가기도 전에 즉 완전히 그 짐승에게서 생명이 떠나기도 전에 짐승을 먹는다는 것은 그만큼 잔인한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생명을 내신 하나님을 향한 도전과 반항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곧 인간이 동물의 피를 먹지 않게 하심으로 그 죄성이 더욱 증폭되는 것을 막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에 인간들이 자신들을 절제하지 못하고 감히 동물의 피를 먹기 시작하면 결국에는 인간의 피를 흘리는 일에도 주저하지 않고 행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 아예 짐승을 그 피채 먹지 못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에 짐승의 피를 흘리고 그 피와 함께 짐승을 잡아 먹고서 사람의 피까지 흘리는 잔혹한 행위를 하게될 경우에는 반드시 심판을 내리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심판은 사람들의 손에 의해서도 내려질 것이며 결국은 하나님께서 의로운 심판장이 되셔서 심판을 내리실 것입니다. 사람의 피를 흘렸을 경우에는 반드시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시고서 그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아무리 인간이 부패하고 사악할지라도 그 인간안에 심으신 고귀한 하나님의 형상 때문에 인간을 존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는 자기 형상대로 만드신 사람을 통해서 창조된 만물을 그 본래의 목표대로 회복시키시고 하나님의 그 거룩한 나라에로 나아가도록 하시려고 일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생명을 파괴하고 피를 흘리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위배되는 행위이고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7절'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편만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를 소중히 여기시고 번성할 것을 원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의 생명이 번성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땅에 충만할 것을 원하신 것입니다. 처음 창조에서 인류가 땅에 번성하여 충만하므로 하나님을 순종하는 백성으로 온 땅에 충만할 것을 원하셨던 하나님께서 노아를 통해서도 홍수후의 그 새로운 인류에게도 동일한 뜻을 가지셨음을 보이십니다. 하나님은 창조의 목표를 변함없이 진행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복된 약속을 해주신 배경에는 또 하나 깊은 의도가 숨겨져 있습니다. 즉, 노아의 가족들이 홍수로 말미암아 황폐된 세상에서 새롭게 일을 시작하려 했을 때 그들은 일할 의욕을 상실하고 있어서 도무지 힘이 없었을 것입니다. 즉, 기가 꺾인 상태였던 것입니다. 기가 꺾여있는 노아의 가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땅에서 번성하게 되리라는 약속을 해 주심으로 새로운 희망으로 일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 약속하심이 18절과 19절에 어느정도 실현된 것을 보여 줍니다.
18-19절'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비라. 노아의 이 세 아들로 좇아 백성이 온 땅에 퍼지니라. 이제 홍수 후의 새인류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경륜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세계에서 크신 구원을 이루시려고 일을 진행하고 계시는데 노아 홍수로 말미암아 세상의 심판은 필연적임을 나타내실 뿐만 아니라 세상의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를 보이셨습니다. 노아의 가족들이 물 가운데서 구원을 받은 새인류로서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을 인류가 어떻게 번성할 것인지를 예시하고 있습니다. 8-17절'하나님께서 언약에 대한 증거를 세우셔서 언약에 대한 확증을 하게 하셨습니다. 즉, 홍수로 인한 상처가 아물지를 않고 늘 기억에 남아서 공포감이 생기지 않도록 하시려고 노아에게 언약을 주십니다. 이제 다시는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멸하시지 않겠다는 말씀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 언약의 증거로 무지개를 지시하여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받은 노아와 그 가족들은 홍수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희망으로 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비가 갠 다음에 하늘과 땅 사이에 걸린 무지개를 보면서 하나님의 언약을 다시 기억할 수 있도록 언약의 증표를 더하여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오랜 시일이 지나면 잘 잊어버리곤 합니다. 이러한 사람의 연약성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언약을 해 주셨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언약에 대해 의심하여 또 다시 홍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 것을 아시고 무지개를 언약의 증표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무지개를 볼 때마다 하나님의 복된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여 홍수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셨던 것입니다.
18-19절'땅에 번성하라는 약속의 말씀이 어느정도 성취된 것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아주 짧은 기간 동안에 적은 수효의 사람들이 그토록 엄청난 무리가 출생하여 번성했다고 하는 사실과 아주 적은 한 가족이 그토록 엄청나게 많은 민족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이 얼마나 효과적인 것이었는가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백성이 온 땅에 퍼지니라” 즉, 노아의 식구들로 부터 백성을 이루어서 온 땅에 퍼졌다는 것입니다.
20-27절'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세상구속을 위하여 노아와 언약을 맺으시고 그 가족을 다스리게 하셨는데 노아의 경솔한 행동으로 자녀들을 어거하지 못하고 노아가 술취하여 벌거벗었을 때 함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불신의 태도를 나타내게 된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노아에게도 책임이 있지만 그렇게 범죄한 함에게 더욱 큰 죄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약속에 대한 불신의 태도로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노아가 이렇게 술에 취한 일은 그 때 한번 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노아의 무절제한 생활은 자식 함에게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불신이라는 열매로 나타났습니다. 노아의 아들 함은 악하고 비뚤어진 성격을 지녔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함은 자기 아버지의 수치를 즐겼을 뿐만 아니라 자기 형제들에게 이런 수치스러운 일을 자랑처럼 늘어놓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다음으로 부모를 존경해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함은 부모를 공경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것과 같은 일입니다. 부모의 수치를 보고 그것을 즐기고 자기 형제들에게 그와 같은 사실을 자랑처럼 말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얼마나 악한지를 잘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구속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제재를 받고 살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입니다. 제 아무리 특권을 받고 귀한 존재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간섭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그런 악한 행동에 대해서 놀라움과 함께 슬픔을 맛보았습니다. 그리고 곧장 아버지의 수치를 가리워 드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은 여전히 자기 아버지와 형제들을 비웃고 있었습니다. 노아는 깊은 잠에서 술이 깨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된 일의 경과를 알고난 다음 자기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불경한 행위를 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경건한 족장 노아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자녀들의 태도에 따라서 하나님의 예언을 전달하였습니다.
가나안의 아비 함의 범죄에 대한 심판은 아비로서의 노아에게는 큰 슬픔과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그런 사사로운 정에 얽매일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은 노아의 입을 통해 함에게 전달 되었습니다. 함의 악행은 그 아들 가나안에게로 전달되었을 것이고 함과 마찬가지로 가나안도 범죄하였을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의 선고는 함과 함께 가나안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가나안에게 내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25절'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종들의 종이 된다는 것은 히브리인들의 사고방식에 의하면 종 가운데서도 가장 지위가 낮은 계급에 속한 상태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생각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 함의 후손을 어떤 사람들은 아프리카의 흑인들이라고 말을 합니다.
왜냐하면 흑인들이 훨씬 못살고 고통을 많이 받는 것을 보고 그렇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맞는 말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다 아담의 자손이고 노아의 후손입니다. 그리고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 누구라도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을 받으면 다 형제요 자매가 되는 것입니다. 참 복음의 정신안에서 사람은 누구나 평등합니다.
그런데 옛날 미국에 근본주의가 성행할 때 셈족속은 백인이고 함 족속은 흑인이니까 함족속은 셈족속의 노예가 될 것이라고 성경에 예언되어 있으니 흑인들은 백인이 노예로 부려도 괜찮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옛날 미국 사람들이 흑인들을 잡아다가 노예로 부리고도 하등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그렇게 아전인수 격으로 자기들 이해관계에 따라서 맞춰 해석을 하면 문제가 많이 생깁니다. 함이 흑인의 조상이고 셈은 백인의 조상이며 야벳은 황인종의 조상이라고 하는 말은 근거 없는 터무니 없는 말입니다. 그리고 복음의 정신에 의해서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여 종처럼 부리는 것은 잘못임을 알게 됩니다. 자기 아버지의 수치스러운 행위를 즐겁게 여겼던 함의 후손들인 가나안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가나안은 천한 종이 되어서 자기 형제들이나 삼촌들이 낳은 후손들을 섬겨야만 했습니다. 노아의 말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족속은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다가 결국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노아는 축복도 했습니다.
26-27절,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이 축복에서 분명한 것은 셈의 후손은 하나님과 매우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창세기 3:15절의 예언의 말씀처럼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즉, 하나님의 선택한 백성과 사탄의 후손과의 싸움에서 셈의 후손이 하나님의 승리를 성취하게 되었고 언젠가는 그리스도께서도 셈의 후손 중에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노아는 하나님께 야벳에 대한 축복을 한 다음 야벳에게 중요한 역할을 부여하였습니다. 노아는 야벳에게 많은 자녀들이 있을 것과 그의 후손들이 다스리는 자들이 되어 셈의 장막에 거하여 셈의 축복에 동참할 것을 하나님께 구하였습니다. 셈의 축복은 그리스도의 구원에 참여하는 축복인데 이 축복에 동참할 것을 구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세상의 발전은 범죄한 함의 정신에 의하여 지배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정신에 의하여 지배받게 되었습니다. 이런 확실한 사실이 때때로 그렇게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즉, 때때로 악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노아를 통하여 주신 언약의 말씀은 언젠가 그리스도께서 승리자로 나타나셔서 세상을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로 회복하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의 역사는 항상 이 두 편의 싸움으로 이어져 왔고 장래에도 그러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섬기는 경건한 백성과 사탄의 지배를 받는 불경건한 사람들과의 싸움입니다.
오늘 우리가 어느편에 서야 할 것인가를 분명하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홍수 후에 노아는 350년을 살았습니다. 노아가 죽을 때는 950세였습니다. 노아의 생애 동안에도 아들들의 후손은 계속 번창하였습니다. 노아는 아브라함의 출생을 본 후 50년을 더 살다가 죽은 것으로 칼빈은 말합니다. 노아는 살면서 많은 일들을 보았습니다. 어떤 일은 그의 거룩한 가슴을 감당할 수 없는 슬픔으로 메어지게 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후의 역사를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아브라함의 아버지인 데라의 때에 이르러 그들은 셈의 장막에 세워졌던 하나님의 성소를 모두 무너뜨리고 이방의 신들을 세웠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였는데 노아는 이러한 일들을 다 목격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소수의 무리였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섬기는 경건한 무리들이 순수한 신앙을 지키면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쓰라린 아픔을 주는 고통 가운데서도 노아는 하나님께서 장차 큰 구원을 베푸시고 온 백성을 위한 크신 사랑을 나타내실 것을 바라보면서 기쁨으로 눈을 감을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노아의 소망을 실현시키시고 악인들이 판을 치는 죄악 투성이의 세상에서 교회를 설립하시고 보존하셔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내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큰 구원에 부름받아 경건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노아와 같이 하나님이 불러 주셨고 앞으로 세상의 심판 가운데서 영원한 나라의 백성에로 들림받을 축복의 심판으로 나아가게 되었음을 기뻐합니다. 이 큰 구원을 이루어내시고 이루시는 신실한 하나님은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아멘.
처음 창조시에 땅을 향하여 약속하셨던 말씀이 지금 홍수 후의 폐허가 된 세계에서도 여전히 계속되리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향하여 가지신 변함 없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땅은 저주받아 심판을 당할 수 밖에 없었지만 하나님의 세상을 향하여 가지신 하나님나라를 세우시려는 구원의 경륜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홍수 후의 세상에서도 하나님은 동일한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처음 창조시에 하셨던 복된 언약과 지금 노아에게 하신 말씀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처음 창조시의 상황과 지금 노아의 상황이 다르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처음 창조시의 세상에는 두려움이 없었는데 지금 홍수 후에는 두려움이 생겼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두려움에서 풀려나도록 모든 생물이 사람에게 두려워 하며 무서워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2절'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 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웠음이라 우리는 사나운 짐승들이 간혹 사람들에게 맹렬하게 달려들어 물어뜯는 경우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런 사나운 짐승들을 억제시키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이 짐승들에 의해 멸망을 당하였을 것입니다. 처음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을 당시에는 이러한 짐승들도 세상나라의 통치권을 위임맡은 아담(왕)에게 복종하였습니다. 아담이 하나님께 복종하므로(자발적) 창조의 질서가 유지되었고 사람의 생명이 바르게 보존되었으나 아담의 범죄후로 사람은 자존하는 질서에 서게 되므로 하나님의 통치질서에서 떠나 버렸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질서는 자존하는 질서로 변해버렸고 결국 모든 피조물은 서로 적대관계에 서게 되었습니다.
사람끼리도 그렇거니와 짐승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것은 인류의 범죄가 가져온 무서운 일이었습니다. 이제 홍수 후의 질서 역시 마찬가지 결과였습니다. 더군다나 홍수로 말미암아 자연의 질서는 격변하였고 부족한 먹이문제로 인하여 그리고 모두가 서로 적대관계에 선 질서속에서 사람은 그 생존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런 세계에서 인류의 생존을 가능하게 하실려고 모든 짐승에게 사람을 두려워 하는 본성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인류를 이 땅에 생존 가능하도록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려는 뜻이며 타락한 세상을 구속하기 위한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인의 후손을 통하여 창조세계에 발생한 죄를 제거하고 새인류를 생산하시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려고 작정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세상에서 노아의 가족들을 구원하시고 파괴된 세상에서 서로가 적대관계에 선 질서속에서 인류를 보존하는 섭리를 약속하신 것입니다. 처음 창조된 세상에 아담을 만물의 통치자로 세우신 하나님께서 타락한 질서 속에서도 인류의 통치권이 어느정도 빛을 내도록 하시므로 사나운 짐승들이라 할지라도 사람을 두려워하게 하신 것입니다. 짐승들의 사람을 향한 두려움 때문에 감히 범접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사람은 짐승들의 그런 복종을 통해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장래에 모든 피조 세계를 다스리므로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루어 드리게 될 그날을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비록 아담의 범죄로 완전한 통치질서가 파괴되었지만 이런 새로운 질서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속경륜에 대한 뜻을 생각하게 하신 것입니다.
3절'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 채소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육식을 허락하신 말씀입니다. 그 이전 홍수가 있기 전에는 땅에 먹을 수 있는 채소가 풍성해서 별 문제가 없었는데 이제 홍수로 인하여 세상에 식량문제가 생겼습니다. 격변한 세상의 환경 때문에 당장 연명할 채소가 부족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식구들을 기억하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노아의 후손 가운데서 인류의 구속을 위하여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노아의 식구들을 보존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족한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육식을 허락하셨습니다. 또 하나 육식을 허락하신 일에서 생각할 수 있는 생각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더욱 풍성한 음식물을 제공하신 것입니다. 그저 식량문제의 해결로서 만이 아니라 인류의 문화창달을 위한 힘의 원동력으로서 육식을 허락하시고 그 힘으로 이 창조세계를 개발하도록 하시려는 뜻인 것입니다. 4절'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되는 피채 먹지 말 것이니라 노아에게 주신 약속 가운데 육식을 허락하시면서 그 피는 먹지 말도록 하시므로 아직 생명을 주는 피를 허락하시지 않으시고 앞으로 오실 구속주에게서만 참 생명의 피를 받게 될 것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5,6절'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무릇 사람이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인간에게 육식을 허락하시면서 하나님께서는 그 피채 먹지 말도록 하셨습니다. 짐승을 그 피채 먹는 것은 잔학성을 의미합니다. 잔혹하게도 짐승을 잡아 아직 피가 다 빠져나가기도 전에 즉 완전히 그 짐승에게서 생명이 떠나기도 전에 짐승을 먹는다는 것은 그만큼 잔인한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생명을 내신 하나님을 향한 도전과 반항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곧 인간이 동물의 피를 먹지 않게 하심으로 그 죄성이 더욱 증폭되는 것을 막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에 인간들이 자신들을 절제하지 못하고 감히 동물의 피를 먹기 시작하면 결국에는 인간의 피를 흘리는 일에도 주저하지 않고 행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 아예 짐승을 그 피채 먹지 못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에 짐승의 피를 흘리고 그 피와 함께 짐승을 잡아 먹고서 사람의 피까지 흘리는 잔혹한 행위를 하게될 경우에는 반드시 심판을 내리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심판은 사람들의 손에 의해서도 내려질 것이며 결국은 하나님께서 의로운 심판장이 되셔서 심판을 내리실 것입니다. 사람의 피를 흘렸을 경우에는 반드시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시고서 그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아무리 인간이 부패하고 사악할지라도 그 인간안에 심으신 고귀한 하나님의 형상 때문에 인간을 존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는 자기 형상대로 만드신 사람을 통해서 창조된 만물을 그 본래의 목표대로 회복시키시고 하나님의 그 거룩한 나라에로 나아가도록 하시려고 일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생명을 파괴하고 피를 흘리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위배되는 행위이고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7절'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편만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를 소중히 여기시고 번성할 것을 원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의 생명이 번성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땅에 충만할 것을 원하신 것입니다. 처음 창조에서 인류가 땅에 번성하여 충만하므로 하나님을 순종하는 백성으로 온 땅에 충만할 것을 원하셨던 하나님께서 노아를 통해서도 홍수후의 그 새로운 인류에게도 동일한 뜻을 가지셨음을 보이십니다. 하나님은 창조의 목표를 변함없이 진행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복된 약속을 해주신 배경에는 또 하나 깊은 의도가 숨겨져 있습니다. 즉, 노아의 가족들이 홍수로 말미암아 황폐된 세상에서 새롭게 일을 시작하려 했을 때 그들은 일할 의욕을 상실하고 있어서 도무지 힘이 없었을 것입니다. 즉, 기가 꺾인 상태였던 것입니다. 기가 꺾여있는 노아의 가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땅에서 번성하게 되리라는 약속을 해 주심으로 새로운 희망으로 일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 약속하심이 18절과 19절에 어느정도 실현된 것을 보여 줍니다.
18-19절'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비라. 노아의 이 세 아들로 좇아 백성이 온 땅에 퍼지니라. 이제 홍수 후의 새인류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경륜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세계에서 크신 구원을 이루시려고 일을 진행하고 계시는데 노아 홍수로 말미암아 세상의 심판은 필연적임을 나타내실 뿐만 아니라 세상의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를 보이셨습니다. 노아의 가족들이 물 가운데서 구원을 받은 새인류로서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을 인류가 어떻게 번성할 것인지를 예시하고 있습니다. 8-17절'하나님께서 언약에 대한 증거를 세우셔서 언약에 대한 확증을 하게 하셨습니다. 즉, 홍수로 인한 상처가 아물지를 않고 늘 기억에 남아서 공포감이 생기지 않도록 하시려고 노아에게 언약을 주십니다. 이제 다시는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멸하시지 않겠다는 말씀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 언약의 증거로 무지개를 지시하여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받은 노아와 그 가족들은 홍수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희망으로 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비가 갠 다음에 하늘과 땅 사이에 걸린 무지개를 보면서 하나님의 언약을 다시 기억할 수 있도록 언약의 증표를 더하여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오랜 시일이 지나면 잘 잊어버리곤 합니다. 이러한 사람의 연약성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언약을 해 주셨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언약에 대해 의심하여 또 다시 홍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 것을 아시고 무지개를 언약의 증표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무지개를 볼 때마다 하나님의 복된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여 홍수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셨던 것입니다.
18-19절'땅에 번성하라는 약속의 말씀이 어느정도 성취된 것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아주 짧은 기간 동안에 적은 수효의 사람들이 그토록 엄청난 무리가 출생하여 번성했다고 하는 사실과 아주 적은 한 가족이 그토록 엄청나게 많은 민족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이 얼마나 효과적인 것이었는가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백성이 온 땅에 퍼지니라” 즉, 노아의 식구들로 부터 백성을 이루어서 온 땅에 퍼졌다는 것입니다.
20-27절'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세상구속을 위하여 노아와 언약을 맺으시고 그 가족을 다스리게 하셨는데 노아의 경솔한 행동으로 자녀들을 어거하지 못하고 노아가 술취하여 벌거벗었을 때 함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불신의 태도를 나타내게 된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노아에게도 책임이 있지만 그렇게 범죄한 함에게 더욱 큰 죄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약속에 대한 불신의 태도로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노아가 이렇게 술에 취한 일은 그 때 한번 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노아의 무절제한 생활은 자식 함에게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불신이라는 열매로 나타났습니다. 노아의 아들 함은 악하고 비뚤어진 성격을 지녔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함은 자기 아버지의 수치를 즐겼을 뿐만 아니라 자기 형제들에게 이런 수치스러운 일을 자랑처럼 늘어놓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다음으로 부모를 존경해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함은 부모를 공경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것과 같은 일입니다. 부모의 수치를 보고 그것을 즐기고 자기 형제들에게 그와 같은 사실을 자랑처럼 말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얼마나 악한지를 잘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구속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제재를 받고 살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입니다. 제 아무리 특권을 받고 귀한 존재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간섭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그런 악한 행동에 대해서 놀라움과 함께 슬픔을 맛보았습니다. 그리고 곧장 아버지의 수치를 가리워 드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은 여전히 자기 아버지와 형제들을 비웃고 있었습니다. 노아는 깊은 잠에서 술이 깨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된 일의 경과를 알고난 다음 자기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불경한 행위를 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경건한 족장 노아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자녀들의 태도에 따라서 하나님의 예언을 전달하였습니다.
가나안의 아비 함의 범죄에 대한 심판은 아비로서의 노아에게는 큰 슬픔과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그런 사사로운 정에 얽매일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은 노아의 입을 통해 함에게 전달 되었습니다. 함의 악행은 그 아들 가나안에게로 전달되었을 것이고 함과 마찬가지로 가나안도 범죄하였을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의 선고는 함과 함께 가나안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가나안에게 내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25절'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종들의 종이 된다는 것은 히브리인들의 사고방식에 의하면 종 가운데서도 가장 지위가 낮은 계급에 속한 상태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생각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 함의 후손을 어떤 사람들은 아프리카의 흑인들이라고 말을 합니다.
왜냐하면 흑인들이 훨씬 못살고 고통을 많이 받는 것을 보고 그렇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맞는 말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다 아담의 자손이고 노아의 후손입니다. 그리고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 누구라도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을 받으면 다 형제요 자매가 되는 것입니다. 참 복음의 정신안에서 사람은 누구나 평등합니다.
그런데 옛날 미국에 근본주의가 성행할 때 셈족속은 백인이고 함 족속은 흑인이니까 함족속은 셈족속의 노예가 될 것이라고 성경에 예언되어 있으니 흑인들은 백인이 노예로 부려도 괜찮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옛날 미국 사람들이 흑인들을 잡아다가 노예로 부리고도 하등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그렇게 아전인수 격으로 자기들 이해관계에 따라서 맞춰 해석을 하면 문제가 많이 생깁니다. 함이 흑인의 조상이고 셈은 백인의 조상이며 야벳은 황인종의 조상이라고 하는 말은 근거 없는 터무니 없는 말입니다. 그리고 복음의 정신에 의해서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여 종처럼 부리는 것은 잘못임을 알게 됩니다. 자기 아버지의 수치스러운 행위를 즐겁게 여겼던 함의 후손들인 가나안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가나안은 천한 종이 되어서 자기 형제들이나 삼촌들이 낳은 후손들을 섬겨야만 했습니다. 노아의 말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족속은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다가 결국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노아는 축복도 했습니다.
26-27절,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이 축복에서 분명한 것은 셈의 후손은 하나님과 매우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창세기 3:15절의 예언의 말씀처럼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즉, 하나님의 선택한 백성과 사탄의 후손과의 싸움에서 셈의 후손이 하나님의 승리를 성취하게 되었고 언젠가는 그리스도께서도 셈의 후손 중에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노아는 하나님께 야벳에 대한 축복을 한 다음 야벳에게 중요한 역할을 부여하였습니다. 노아는 야벳에게 많은 자녀들이 있을 것과 그의 후손들이 다스리는 자들이 되어 셈의 장막에 거하여 셈의 축복에 동참할 것을 하나님께 구하였습니다. 셈의 축복은 그리스도의 구원에 참여하는 축복인데 이 축복에 동참할 것을 구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세상의 발전은 범죄한 함의 정신에 의하여 지배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정신에 의하여 지배받게 되었습니다. 이런 확실한 사실이 때때로 그렇게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즉, 때때로 악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노아를 통하여 주신 언약의 말씀은 언젠가 그리스도께서 승리자로 나타나셔서 세상을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로 회복하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의 역사는 항상 이 두 편의 싸움으로 이어져 왔고 장래에도 그러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섬기는 경건한 백성과 사탄의 지배를 받는 불경건한 사람들과의 싸움입니다.
오늘 우리가 어느편에 서야 할 것인가를 분명하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홍수 후에 노아는 350년을 살았습니다. 노아가 죽을 때는 950세였습니다. 노아의 생애 동안에도 아들들의 후손은 계속 번창하였습니다. 노아는 아브라함의 출생을 본 후 50년을 더 살다가 죽은 것으로 칼빈은 말합니다. 노아는 살면서 많은 일들을 보았습니다. 어떤 일은 그의 거룩한 가슴을 감당할 수 없는 슬픔으로 메어지게 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후의 역사를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아브라함의 아버지인 데라의 때에 이르러 그들은 셈의 장막에 세워졌던 하나님의 성소를 모두 무너뜨리고 이방의 신들을 세웠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였는데 노아는 이러한 일들을 다 목격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소수의 무리였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섬기는 경건한 무리들이 순수한 신앙을 지키면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쓰라린 아픔을 주는 고통 가운데서도 노아는 하나님께서 장차 큰 구원을 베푸시고 온 백성을 위한 크신 사랑을 나타내실 것을 바라보면서 기쁨으로 눈을 감을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노아의 소망을 실현시키시고 악인들이 판을 치는 죄악 투성이의 세상에서 교회를 설립하시고 보존하셔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내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큰 구원에 부름받아 경건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노아와 같이 하나님이 불러 주셨고 앞으로 세상의 심판 가운데서 영원한 나라의 백성에로 들림받을 축복의 심판으로 나아가게 되었음을 기뻐합니다. 이 큰 구원을 이루어내시고 이루시는 신실한 하나님은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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