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방주 (창6:13-22)
본문
중국의 고전 한비자(韓非子)에는 수주대토(守株待兎)라는 고사가 전 해집니다. 송나라 사람이 어느 때에 부지런히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그 밭 옆 에는 큰 나무 한 그르가 서 있었는데 그곳에서 토끼 한마리가 갑자기 뛰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그만 그 나무에 부딛혀 죽고 말 았습니다. 그 덕택으로 농부는 힘 안들이고 그날 저녁 반찬을 얻은 것 입니다. 그래서 그 농부는 생각하기를 비지땀 흘리며 일할 필요 없이 그 나무 그르터기 옆에 앉아 있기만 하면 투끼가 뛰어 나올 것이고 그 리고 뛰어나온 토끼는 그 나무에 부딛혀 죽게 될 것이다. 그려면 그것 을 내가 다른 사람보다 먼저 가져다 먹는다 생각만 해도 기쁜 좋은 일 이었습니다. 그 수 밖에 없지.하며 농부는 그 후부터 농사일을 집어 던지고 날마다 밭 두덩에 앉아 토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단(Q) 토끼는 두번다시 그곳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농부는 날이면 날마다 그곳에서 기다렸고 그때마다 헛탕만 쳤습니다. 그때문에 농부의 농토는 잡초 투성이가 되버린 황무지로 변해 버렀다는 중국의 고사(古事) 입니다. 땀흘리지 아니하고서 열매를 얻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더욱 어떠 한 희생 없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다는 것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해산의 고통이 없이 분만이 이루어질 수 없으며 십자가 없이 부활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이 세상에 인생을 내신 것을 한탄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 중에 인생을 만드신 일 만큼은 후회하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의 자녀들과 짝하여 그 죄악이 극에 달하여 하나님께서 더 이상 보고만 계실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악이 관영한 인간 세상을 심판하시고자 하셨습니다. 그 심 판의 방법을 하나님은 물로 택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의로우신 하나님이시기에 의인을 찾으셔서 악인과 함께 멸하시지는 않으십니다. 그때 당대의 의인으로 불리우던 노아를 돌아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 노아에게 하나님의 심판의 계획을 계시하 여 주셨습니다. 노아로 하여금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방주를 짖도록 일러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악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일꾼인 노아 의 말을 듣고 방주로 들어오는 자는 하나님의 물의 심판을 멸해 주시 기로 약속을 주셨습니다. 악인이 있는 곳에는 멸망과 심판이 따라 오 지만 의인이 있는 곳에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노아는 방주를 짖는 데만 장장 120년을 산에서 보낸 것입니다. 방주는 세상에 던져진 심판에서 살려줄 하나님의 구원의 집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의 표시였습니다. 하나님은 진노의 하나님 만이 아니 라 진노의 피할 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믿고 돌 아서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홍수로 세상을 멸망 시키려고 하 시지만 한 쪽에서는 구원하시기 위해 방주를 예비해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마찬가지 입니다. 세상의 심판을 준비하시지만 다른 한편에 구원의 방주를 마련해 놓으시고서 함께 역사하신다는 사 실입니다.
1.방주는 창세기 6장에서 노아로 하여금 그의 손으로 짖게 하셨다는 사실에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멸망을 노아에게 먼저 일러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 서 세상의 멸망을 일러준 바로 노아 그 사람으로 하여금 새상을 구월 할 방주를 짖도록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십자가의 구원을 일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이 구원의 도리를 먼져 깨달은 우리로 하여금 그 구원의 도 리를 전할 방주를 짖게 하시는 것입니다. 남의 손을 빌어 짖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구원을 얻은 자기 백성으로 하여금 손수 짖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그 자신으로 하여금 그 구원의 역사 를 위해서 땀흘리도록 하나님은 명령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 만들 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들었으면 우리가 깨달았다고 하면 이제 나가서 땀흘리며 그 깨달은 대로 살아야 합니다. 심판을 대비하 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아직 아들이 없었을 때에 아브라함은 이방 여인 애굽 여 인인 하갈에게서 낳은 이스마엘을 자신의 후사를 이을 자녀로 생각하 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속의 자녀는 하갈에게서 낳은 자식이 아 니라 하나님의 약속으로 결혼한 사라의 자녀라고 말씀해 주시고 후에 이삭을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약속의 자녀를 찾고 계십니다. 바로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의 자녀를 찾으셔서 그들로 하여금 심판 을 향하여 어리석게 달려가는 인생들을 구원할 방주를 짖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2.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말씀해 주실 때 "너를 위해 지 으라," 고 하셨습니다. 방주는 바로 노아 자신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행위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구원과 온 가족의 생명이 달린 바로 자 신의 일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귀중히 여기는 것도 바로 우리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인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를 알아야 합니다. 교회를 위해서라기 보다 그것은 곧 우리 자신의 일을 위해서입니다. 우리들이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는 일은 곧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방주는 하나님을 위해 지으라고 명령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바로 노 아 너 자신과 가정을 위해 지으라는 것입니다. 방주를 짖는 일은 곧 노아 자신의 구원을 위한 길이었던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일도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한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빌립보 감옥에서 바울과 실라는 밤중에 감옥에 서 이제는 매맞은 몸, 욱신거리고 아픈 일이 더 많은 한 밤중에 오히 려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때에 옥문이 열리고 감옥이 흔 들리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간수장은 죄수들이 도망친줄 알 고 그는 자신이 받을 형벌을 두려워하여 자결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때 에 바울과 실라는 간수장에게 권면합니다. 간수장이 이제는 바울에게 묻습니다.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이때의 바울의 권고가 무엇이었습니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 주 예수를 믿는 일이 무엇입니까 믿는 일은 곧 교회를 위하는 일이 아닙니다. 일차적인 일은 믿는 자신을 위한 길이라는 것입니다. 자신과 가족이 구원을 얻는 길입니다. 누구를 위해 믿어주는 것이 아 닙니다. 교회나 목사를 위해 교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성도 여러분 자신을 위해 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믿는 일은 교회를 위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도를 위한 일도 아니었 습니다. 그것은 곧 그 자신을 위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을 지키고 교회에 예배시 헌금을 드리는 일은 곧 그 자 신을 위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누군가를 위하여 믿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자기 자신을 위한 일입니다.
3.방주는 의로운 자가 지어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는 바로 의로운 자를 통해서 역 사하십니다. 성전은 재물이나 권력에 의존해서 짖는 것이 아니라는 것 을 하나님은 노아의 일을 통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를 찾으셔 서 자신의 섭리를 이행하도록 일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들도 노 아같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도록 사명을 받을 수 있는 신앙과 인격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에루살렘 성전은 아름다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 입성하시고 곧바로 성전의 돌 하나도 돌 위에 놓이지 아니하고 다 무너져 내리리라고 선언을 하셨습니다. 온 세상을 구원하 시려고 선택한 이스라엘이 지은 하나님의 유일한 성전이 왜 하나님의 아들에 의해서 거부를 당해야 했을까요
첫째, 그 당시의 예루살렘 성전은 헤롯왕이 지었기 때문입니다. 헤 롯은 약속있는 자손이 아니라 에서의 후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 의 자녀가 지은 성전이라야 기쁘게 받으시는 것입니다. 권력과 돈의 힘에 의존하여 지어진 그 어떤 성전도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무너질수 밖에 없습니다. 신앙적인 차원에서 건립되지 아 니한 성전은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를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이 받으시지 아니한 성전은 언제라도 무너질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교회를 세상의 권력이나 세상의 제물에만 의존한 다면 이는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들의 땀과 희 생이 들어있는 성전을 짖게 될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고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이 보고 계신 예루살렘 성전은 그 성전이 지어질 때에 그 동기가 순수하지 못했습니다. 헤롯왕이 자신의 정권을 잡고 유지하 기 위하여 이스라엘의 난동을 막고자 정책적으로 지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어지지 아니하고 다른 이기적인 목적이 들어 있 을 때에 하나님이 받아들이실이가 만무한 것입니다. 세째로 하나님의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인데 이스라엘 백성은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겉은 회로 잘 칠해져 있지만 내 부는 썩어가는 무덤과 같다고 주님은 책망하셨습니다. 성전은 성전으로서 거룩한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거룩 한 목적이 없어질때 하나님은 그 성전을 돌 위에 돌 하나 남기지 않으 시고 진노하셨던 것입니다. 결론
1.성전은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의 방주입니다. 그러기에 귀중히 여기고 인류 소망과 내일이 미래가 교회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믿어야 할 것입니다.
2.성전은 우리에게 생명을 살리고 재산을 지켜주는 축복의 방주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성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하게 지어져 야 합니다.
4.성전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으로 지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만 잘 살 자고 짖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만민의 기도하는 하나님의 사랑의가 집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1.방주는 창세기 6장에서 노아로 하여금 그의 손으로 짖게 하셨다는 사실에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멸망을 노아에게 먼저 일러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 서 세상의 멸망을 일러준 바로 노아 그 사람으로 하여금 새상을 구월 할 방주를 짖도록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십자가의 구원을 일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이 구원의 도리를 먼져 깨달은 우리로 하여금 그 구원의 도 리를 전할 방주를 짖게 하시는 것입니다. 남의 손을 빌어 짖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구원을 얻은 자기 백성으로 하여금 손수 짖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그 자신으로 하여금 그 구원의 역사 를 위해서 땀흘리도록 하나님은 명령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 만들 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들었으면 우리가 깨달았다고 하면 이제 나가서 땀흘리며 그 깨달은 대로 살아야 합니다. 심판을 대비하 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아직 아들이 없었을 때에 아브라함은 이방 여인 애굽 여 인인 하갈에게서 낳은 이스마엘을 자신의 후사를 이을 자녀로 생각하 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속의 자녀는 하갈에게서 낳은 자식이 아 니라 하나님의 약속으로 결혼한 사라의 자녀라고 말씀해 주시고 후에 이삭을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약속의 자녀를 찾고 계십니다. 바로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의 자녀를 찾으셔서 그들로 하여금 심판 을 향하여 어리석게 달려가는 인생들을 구원할 방주를 짖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2.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말씀해 주실 때 "너를 위해 지 으라," 고 하셨습니다. 방주는 바로 노아 자신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행위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구원과 온 가족의 생명이 달린 바로 자 신의 일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귀중히 여기는 것도 바로 우리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인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를 알아야 합니다. 교회를 위해서라기 보다 그것은 곧 우리 자신의 일을 위해서입니다. 우리들이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는 일은 곧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방주는 하나님을 위해 지으라고 명령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바로 노 아 너 자신과 가정을 위해 지으라는 것입니다. 방주를 짖는 일은 곧 노아 자신의 구원을 위한 길이었던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일도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한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빌립보 감옥에서 바울과 실라는 밤중에 감옥에 서 이제는 매맞은 몸, 욱신거리고 아픈 일이 더 많은 한 밤중에 오히 려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때에 옥문이 열리고 감옥이 흔 들리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간수장은 죄수들이 도망친줄 알 고 그는 자신이 받을 형벌을 두려워하여 자결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때 에 바울과 실라는 간수장에게 권면합니다. 간수장이 이제는 바울에게 묻습니다.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이때의 바울의 권고가 무엇이었습니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 주 예수를 믿는 일이 무엇입니까 믿는 일은 곧 교회를 위하는 일이 아닙니다. 일차적인 일은 믿는 자신을 위한 길이라는 것입니다. 자신과 가족이 구원을 얻는 길입니다. 누구를 위해 믿어주는 것이 아 닙니다. 교회나 목사를 위해 교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성도 여러분 자신을 위해 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믿는 일은 교회를 위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도를 위한 일도 아니었 습니다. 그것은 곧 그 자신을 위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을 지키고 교회에 예배시 헌금을 드리는 일은 곧 그 자 신을 위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누군가를 위하여 믿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자기 자신을 위한 일입니다.
3.방주는 의로운 자가 지어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는 바로 의로운 자를 통해서 역 사하십니다. 성전은 재물이나 권력에 의존해서 짖는 것이 아니라는 것 을 하나님은 노아의 일을 통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를 찾으셔 서 자신의 섭리를 이행하도록 일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들도 노 아같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도록 사명을 받을 수 있는 신앙과 인격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에루살렘 성전은 아름다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 입성하시고 곧바로 성전의 돌 하나도 돌 위에 놓이지 아니하고 다 무너져 내리리라고 선언을 하셨습니다. 온 세상을 구원하 시려고 선택한 이스라엘이 지은 하나님의 유일한 성전이 왜 하나님의 아들에 의해서 거부를 당해야 했을까요
첫째, 그 당시의 예루살렘 성전은 헤롯왕이 지었기 때문입니다. 헤 롯은 약속있는 자손이 아니라 에서의 후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 의 자녀가 지은 성전이라야 기쁘게 받으시는 것입니다. 권력과 돈의 힘에 의존하여 지어진 그 어떤 성전도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무너질수 밖에 없습니다. 신앙적인 차원에서 건립되지 아 니한 성전은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를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이 받으시지 아니한 성전은 언제라도 무너질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교회를 세상의 권력이나 세상의 제물에만 의존한 다면 이는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들의 땀과 희 생이 들어있는 성전을 짖게 될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고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이 보고 계신 예루살렘 성전은 그 성전이 지어질 때에 그 동기가 순수하지 못했습니다. 헤롯왕이 자신의 정권을 잡고 유지하 기 위하여 이스라엘의 난동을 막고자 정책적으로 지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어지지 아니하고 다른 이기적인 목적이 들어 있 을 때에 하나님이 받아들이실이가 만무한 것입니다. 세째로 하나님의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인데 이스라엘 백성은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겉은 회로 잘 칠해져 있지만 내 부는 썩어가는 무덤과 같다고 주님은 책망하셨습니다. 성전은 성전으로서 거룩한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거룩 한 목적이 없어질때 하나님은 그 성전을 돌 위에 돌 하나 남기지 않으 시고 진노하셨던 것입니다. 결론
1.성전은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의 방주입니다. 그러기에 귀중히 여기고 인류 소망과 내일이 미래가 교회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믿어야 할 것입니다.
2.성전은 우리에게 생명을 살리고 재산을 지켜주는 축복의 방주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성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하게 지어져 야 합니다.
4.성전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으로 지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만 잘 살 자고 짖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만민의 기도하는 하나님의 사랑의가 집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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