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주야의 비 (창7:1-24,마24:29-30)
본문
엘니뇨(El Nino)현상 이라고 해서 지구촌 곳곳에 기상이변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남아메리카 열대지방의 서해안을 따라 바닷물이 따뜻해서 일어나는 엘리뇨 현상은 세계 곳곳에서 살인적인 무더위와 홍수로 인간들에게 많은 재앙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며칠 전에도 인도에서는 무더위로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고, 중국에서는 홍수로 몇 백 명의 사람들이 죽고, 수십만의 사람들은 집과 농토를 잃은 모습을 TV 화면을 통해 볼 수 있었습니다. 비록 지구의 어느 곳에 집중적인 비가 내려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기도 하고, 많은 것을 잃게 되는데, 노아시대의 홍수가 당시의 인류와 지구에게 끼친 영향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도 6월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기상 현상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장마입니다. 장마 기간 중에 집중호우로 인하여 대단한 피해를 입게 하기도합니다. 그리고 그 피해는 인간에게는 물론 주변 환경의 피해도 적지 않으며, 그 기간도 오랜 동안 계속되어 복구에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들어갑니다. 제가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강경이라는 곳도 가끔 홍수의 피해를 입는 곳이었습니다. 중학교 시절에는 비가 많이 내리면 금강 상류지역에서 떠내려오는 참외와 수박을 보았습니다. 1987년으로 기억되는 여름에는 그 지역에 많은 비가 내려 큰 피해를 보았는데 금강 둑이 무너지자 주변의 많은 농경지들이 완전히 침수되어 수확을 전혀 하지 못한 곳이 많았습니다. 논에 밀려든 토사를 걷어내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수고가 필요했습니다. 당시 침수 우려가 있는 강경 읍내의 주민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소방서 차량들의 싸이렌 소리가 요란했었고, 저는 온 종일 가게에 있던 물품들을 안전한 곳에 옮기느라 땀을 흘리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강경 주변의 많은 농토들이 홍수로 범람하여 마치 넓은 바다를 바라보는 듯 하였습니다. 그때, 황산대교 위에 서서 물의 위력에 무참히 짓밟힌 모습을 보면서 두려운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여러분은 노아의 홍수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낱 소설과 같은 이야기로 여기십니까 아니면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니까 그대로 믿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인간 세상을 향한 무서운 심판이었던 대홍수 사건은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오늘은 창세기 7장을 중심으로 대홍수 사건을 통해 말씀하시는 인간의 죄에 대한 철저한 하나님의 심판을 살펴보고,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 가운데에서도 구원과 새로운 약속이 있었음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방주로 들어가라(1-5) 밤낮 40일을 비가 내렸습니다. 큰비가 시작되는 그날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창 7:11-12)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라는 말은 '깊음'이라는 말이 '지하수의 근원'을 가리키므로 땅에서 물이 솟아났다는 것이고 샘들이 터졌다는 표현을 보면 당시에 엄청난 물이 위, 아래 구분 없이 사방에서 쏟아지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하늘의 창들이 열려 비가 쏟아졌다는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댐의 열린 갑문을 통해 물이 갑자기 쏟아져 내리듯 엄청난 양의 비가 한꺼번에 땅에 쏟아졌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들은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이 있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시던 둘째 날, 하나님께서는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누었습니다. 궁창 위의 물은 지구를 둘러싸고 있으면서 마치 온실 효과와 같은 역할을 하여 지구 위의 생물들로 하여금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여 모든 생물들이 땅위에 충만케 하였습니다(창 1:6-8).
그런데 지구 위에 저장해 있던 물이 마치 창이 열려 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것처럼 땅에 쏟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늘 위의 물과 지구에 있던 물을 일시에 동원하여 온 땅을 물로 덮고 있습니다. 그때 무서운 하나님의 물의 심판으로부터 제외되었던 사람들은 방주에 들어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들이었습니다.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창 7:1)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비록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하나님의 뜻을 좇은 그들을 하나님의 의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이것을 칭의(稱義)라고 하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은혜로써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얻었으므로 하나님의 칭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롬 5:1-9). 오늘의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인 대홍수 사건을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노아 시대의 홍수는 참으로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이미 120년 전에 경고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일 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방주는 이미 완성되어갔고 하나님께서는 다시 노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보았음이니라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취하며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취하여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케 하라"(창 7:1-2) 120년의 경고 기간을 모든 인간들에게 주셨고, 다시 마지막 일주일을 남겨 놓고 무서운 물의 심판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노아는 어쩌면 더욱 안타까운 심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습니다. 그날이 칠 일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방주로 들어오시오. 여러분 엿새후면 하나님의 무서운 물의 심판이 임합니다. 닷새 남았습니다. 나흘 남았습니다. 노아는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안타까운 심정으로 외쳤지만, 이미 하나님을 잊고 사는 그들이 노아의 경고를 들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길은 노아를 통한 하나님의 경고를 믿고, 방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방주에 들어간 인간은 고작 노아의 일가 8명뿐이었습니다. 노아와 그 아들 셈, 함, 야벳과 노아의 처와 세 자부만 방주에 들어갔습니다(창 7:13). 그들에게만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방주에 들어갔더니(6-16) 하나님의 약속하신 날이 왔습니다. 큰 깊음의 샘이 터지고 하늘이 창들이 열련 지구는 온통 물로 가득하였는데, 노아는 그때 육 백 세가 되었을 때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하신 그대로 모든 들짐승이 그 종류대로, 모든 육축이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모든 새 곧 각양의 새가 그 종류대로, 무릇 기식이 있는 육체가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의 명령하신 말씀대로 방주로 들어가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문을 닫았습니다. "그를 닫아 넣으시니라"는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 가족 생물들이 방주 안으로 들어간 후 그 뒤에서 문을 닫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방주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때가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때가 지나고 나면 더 이상 구원의 기회가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때가 있으므로, 하나님의 구원을 항상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위에 떠다닌 방주(17-20) 40일 동안 내린 비로 인하여 온 세상이 물로 덮였음을 표현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첫째, "물이 더 많아져 땅에 창일 하매 방주가 물위에 떠 다녔으며"(창 7:18)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이 점점 불어나 가득하게 되었다는 것으로, 온 세상을 뒤덮을 때까지 물이 점점 불어나도록 배후에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강한 능력을 나타내는 말씀이기도합니다. 산 위에서 지어진 방주가 물위로 떠 다녔습니다.
둘째, 물이 땅에 더욱 창일 하매 천하에 높은 산이 다 덮였더니(창 7:19)라는 기록입니다. 노아 당시의 대홍수는 일부 지역에만 국한 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전 세계적인 물의 심판이었음을 증거 하는 말씀입니다.
셋째, "물이 불어서 십 오 규빗이 오르매 산들이 덮인지라"(창 7:20) 세상의 모든 산이 덮이고 그중 가장 높은 산도 십 오 규빗(약 7m)이나 아래에 봉우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은 철저했습니다.
그 누구도, 그 어떠한 생명도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대적자들이 그분의 진노의 낯을 피해 숨을 곳이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시 139:7-12).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21-24) 하나님의 심판은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진행되었습니다.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육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창 7:21), 120년의 긴 세월동안, 그리고 이미 므두셀라(그가 죽을 때 이루어지이다)를 통한 에녹의
1,00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의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노아를 비웃으며 육체대로 살던 사람들, 그들은 나름대로의 인생의 목표가 있었고, 인생의 가장 가치 있는 일을 정해놓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멸망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사람들도 노아가 산 위에서 방주를 지으며, 하나님의 구원을 외칠 때에, 나름대로의 구원의 길을 말했을 것입니다. 정치가, 종교가, 학자, 경제인들에게도 큰 목소리가 있었을 것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은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하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의 길로 모든 사람들을 이끌고 가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현대인들은 학식이 있고, 덕망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을 신뢰합니다. 때로는 인생의 삶에 대하여 논리 정연하게 말하는 학자나 종교인을 신망합니다. 유명한 정치가나 철학자의 말이 일생의 좌우명이 되고, 그들의 삶을 연구하고 그것을 자기 인생의 최고의 가치로 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하나님의 심판에서 남게 할 수 없습니다. 노아 시대의 모든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노아가 가장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고, 그를 따르면 곧 세상사람들로부터 그와 같은 조롱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을 바라보십시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구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땅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육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셨으되"(21-23상). 그 누구도 하나님의 홍수심판으로부터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살아남은 자가 있었습니다. 23절의 하반절을 보십시오. "홀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 하나님은 이미 말씀하신 대로(6:7,13,17,7:4) 땅위의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셨고(7:21-23), 또한 언약하신 대로(6:18-21)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7명의 사람만을 구원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인간의 죄에 대하여 무섭고 철저하게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현대인들의 의식 속에 있는 죄에 대한 무감각성은 심각합니다. 하나님 앞서의 무서운 죄에 대하여 단지 과오(過誤)니 실수(失手)니 하면서 가볍게 여깁니다. 이러한 풍조는 특히 권력이 높은 사람들이나 많이 가진 자들일수록 심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죄를 합리화시켜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약화시키거나 부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창세기 7장은 이러한 인간들의 악에 대하여 분명히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인간 중심의 삶을 살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는 자들에 대한 심판은 필연적이라는 것입니다. 그 앞에 누구도 예외가 없음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에게는 두 가지의 심판이 있습니다. 한 개인이 세상을 떠나, 즉 육신의 죽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서 그 행한 대로 받는 심판이 있고, 이 세상의 역사의 종말인 전 우주적인 심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세상사람들은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정욕을 좇아 사는 사람들은 오히려 예수를 믿고 주님을 말씀을 좇아 사는 사람들을 조롱하면서, 주의 강림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의 심판이 어디 있느냐 하면서 하나님의 최후 심판을 부정하고 있습니다(벧후 3:3-4). 그러나 심판은 분명히 있습니다. 히브리서 9:27에서 "한 번 죽은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는 말씀은 모든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게 될 것이라는 심판의 필연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고린도후서 5:10에서는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은 구별 없이 누구나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심판의 보편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있을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은 전 우주적인 심판입니다. 그날은 참으로 무서운 날입니다. 성경에는 그날에 대하여 여러 곳에서 증언하고 있습니다(마 24:29-30,40;막 13:24-24;벧후 3:10-12).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날 것입니다. 또한 하늘의 권능이 흔들리고, 땅의 모든 족속들이 자신들의 죄 때문에 통곡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염려하지 마십시오. 세상 사람들에게는 그날이 심판의 날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구원의 날이요, 큰 능력과 영광 중에 구름 타고 오시는 심판주 예수님을 바라보며 맞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이미 약속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구원을 지키는 것은 더욱 힘쓰는 것입니다. 더욱 힘써서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는 것입니다(벧후 1:5-7). 그리고 더욱 힘써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실족치 않는 것이요, 안전한 구원입니다(벧후 1:10). 더욱 힘써 행하는 자에게 이렇게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벧후 1:11). 이 약속이 오늘 우리와의 약속입니다.
오늘은 창세기 7장을 중심으로 대홍수 사건을 통해 말씀하시는 인간의 죄에 대한 철저한 하나님의 심판을 살펴보고,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 가운데에서도 구원과 새로운 약속이 있었음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방주로 들어가라(1-5) 밤낮 40일을 비가 내렸습니다. 큰비가 시작되는 그날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창 7:11-12)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라는 말은 '깊음'이라는 말이 '지하수의 근원'을 가리키므로 땅에서 물이 솟아났다는 것이고 샘들이 터졌다는 표현을 보면 당시에 엄청난 물이 위, 아래 구분 없이 사방에서 쏟아지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하늘의 창들이 열려 비가 쏟아졌다는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댐의 열린 갑문을 통해 물이 갑자기 쏟아져 내리듯 엄청난 양의 비가 한꺼번에 땅에 쏟아졌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들은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이 있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시던 둘째 날, 하나님께서는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누었습니다. 궁창 위의 물은 지구를 둘러싸고 있으면서 마치 온실 효과와 같은 역할을 하여 지구 위의 생물들로 하여금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여 모든 생물들이 땅위에 충만케 하였습니다(창 1:6-8).
그런데 지구 위에 저장해 있던 물이 마치 창이 열려 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것처럼 땅에 쏟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늘 위의 물과 지구에 있던 물을 일시에 동원하여 온 땅을 물로 덮고 있습니다. 그때 무서운 하나님의 물의 심판으로부터 제외되었던 사람들은 방주에 들어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들이었습니다.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창 7:1)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비록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하나님의 뜻을 좇은 그들을 하나님의 의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이것을 칭의(稱義)라고 하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은혜로써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얻었으므로 하나님의 칭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롬 5:1-9). 오늘의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인 대홍수 사건을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노아 시대의 홍수는 참으로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이미 120년 전에 경고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일 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방주는 이미 완성되어갔고 하나님께서는 다시 노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보았음이니라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취하며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취하여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케 하라"(창 7:1-2) 120년의 경고 기간을 모든 인간들에게 주셨고, 다시 마지막 일주일을 남겨 놓고 무서운 물의 심판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노아는 어쩌면 더욱 안타까운 심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습니다. 그날이 칠 일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방주로 들어오시오. 여러분 엿새후면 하나님의 무서운 물의 심판이 임합니다. 닷새 남았습니다. 나흘 남았습니다. 노아는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안타까운 심정으로 외쳤지만, 이미 하나님을 잊고 사는 그들이 노아의 경고를 들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길은 노아를 통한 하나님의 경고를 믿고, 방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방주에 들어간 인간은 고작 노아의 일가 8명뿐이었습니다. 노아와 그 아들 셈, 함, 야벳과 노아의 처와 세 자부만 방주에 들어갔습니다(창 7:13). 그들에게만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방주에 들어갔더니(6-16) 하나님의 약속하신 날이 왔습니다. 큰 깊음의 샘이 터지고 하늘이 창들이 열련 지구는 온통 물로 가득하였는데, 노아는 그때 육 백 세가 되었을 때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하신 그대로 모든 들짐승이 그 종류대로, 모든 육축이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모든 새 곧 각양의 새가 그 종류대로, 무릇 기식이 있는 육체가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의 명령하신 말씀대로 방주로 들어가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문을 닫았습니다. "그를 닫아 넣으시니라"는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 가족 생물들이 방주 안으로 들어간 후 그 뒤에서 문을 닫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방주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때가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때가 지나고 나면 더 이상 구원의 기회가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때가 있으므로, 하나님의 구원을 항상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위에 떠다닌 방주(17-20) 40일 동안 내린 비로 인하여 온 세상이 물로 덮였음을 표현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첫째, "물이 더 많아져 땅에 창일 하매 방주가 물위에 떠 다녔으며"(창 7:18)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이 점점 불어나 가득하게 되었다는 것으로, 온 세상을 뒤덮을 때까지 물이 점점 불어나도록 배후에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강한 능력을 나타내는 말씀이기도합니다. 산 위에서 지어진 방주가 물위로 떠 다녔습니다.
둘째, 물이 땅에 더욱 창일 하매 천하에 높은 산이 다 덮였더니(창 7:19)라는 기록입니다. 노아 당시의 대홍수는 일부 지역에만 국한 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전 세계적인 물의 심판이었음을 증거 하는 말씀입니다.
셋째, "물이 불어서 십 오 규빗이 오르매 산들이 덮인지라"(창 7:20) 세상의 모든 산이 덮이고 그중 가장 높은 산도 십 오 규빗(약 7m)이나 아래에 봉우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은 철저했습니다.
그 누구도, 그 어떠한 생명도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대적자들이 그분의 진노의 낯을 피해 숨을 곳이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시 139:7-12).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21-24) 하나님의 심판은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진행되었습니다.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육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창 7:21), 120년의 긴 세월동안, 그리고 이미 므두셀라(그가 죽을 때 이루어지이다)를 통한 에녹의
1,00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의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노아를 비웃으며 육체대로 살던 사람들, 그들은 나름대로의 인생의 목표가 있었고, 인생의 가장 가치 있는 일을 정해놓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멸망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사람들도 노아가 산 위에서 방주를 지으며, 하나님의 구원을 외칠 때에, 나름대로의 구원의 길을 말했을 것입니다. 정치가, 종교가, 학자, 경제인들에게도 큰 목소리가 있었을 것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은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하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의 길로 모든 사람들을 이끌고 가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현대인들은 학식이 있고, 덕망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을 신뢰합니다. 때로는 인생의 삶에 대하여 논리 정연하게 말하는 학자나 종교인을 신망합니다. 유명한 정치가나 철학자의 말이 일생의 좌우명이 되고, 그들의 삶을 연구하고 그것을 자기 인생의 최고의 가치로 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하나님의 심판에서 남게 할 수 없습니다. 노아 시대의 모든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노아가 가장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고, 그를 따르면 곧 세상사람들로부터 그와 같은 조롱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을 바라보십시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구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땅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육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셨으되"(21-23상). 그 누구도 하나님의 홍수심판으로부터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살아남은 자가 있었습니다. 23절의 하반절을 보십시오. "홀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 하나님은 이미 말씀하신 대로(6:7,13,17,7:4) 땅위의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셨고(7:21-23), 또한 언약하신 대로(6:18-21)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7명의 사람만을 구원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인간의 죄에 대하여 무섭고 철저하게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현대인들의 의식 속에 있는 죄에 대한 무감각성은 심각합니다. 하나님 앞서의 무서운 죄에 대하여 단지 과오(過誤)니 실수(失手)니 하면서 가볍게 여깁니다. 이러한 풍조는 특히 권력이 높은 사람들이나 많이 가진 자들일수록 심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죄를 합리화시켜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약화시키거나 부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창세기 7장은 이러한 인간들의 악에 대하여 분명히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인간 중심의 삶을 살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는 자들에 대한 심판은 필연적이라는 것입니다. 그 앞에 누구도 예외가 없음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에게는 두 가지의 심판이 있습니다. 한 개인이 세상을 떠나, 즉 육신의 죽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서 그 행한 대로 받는 심판이 있고, 이 세상의 역사의 종말인 전 우주적인 심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세상사람들은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정욕을 좇아 사는 사람들은 오히려 예수를 믿고 주님을 말씀을 좇아 사는 사람들을 조롱하면서, 주의 강림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의 심판이 어디 있느냐 하면서 하나님의 최후 심판을 부정하고 있습니다(벧후 3:3-4). 그러나 심판은 분명히 있습니다. 히브리서 9:27에서 "한 번 죽은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는 말씀은 모든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게 될 것이라는 심판의 필연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고린도후서 5:10에서는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은 구별 없이 누구나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심판의 보편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있을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은 전 우주적인 심판입니다. 그날은 참으로 무서운 날입니다. 성경에는 그날에 대하여 여러 곳에서 증언하고 있습니다(마 24:29-30,40;막 13:24-24;벧후 3:10-12).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날 것입니다. 또한 하늘의 권능이 흔들리고, 땅의 모든 족속들이 자신들의 죄 때문에 통곡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염려하지 마십시오. 세상 사람들에게는 그날이 심판의 날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구원의 날이요, 큰 능력과 영광 중에 구름 타고 오시는 심판주 예수님을 바라보며 맞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이미 약속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구원을 지키는 것은 더욱 힘쓰는 것입니다. 더욱 힘써서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는 것입니다(벧후 1:5-7). 그리고 더욱 힘써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실족치 않는 것이요, 안전한 구원입니다(벧후 1:10). 더욱 힘써 행하는 자에게 이렇게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벧후 1:11). 이 약속이 오늘 우리와의 약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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