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 받는 기도 (왕하20,1-7)
본문
사람은 누구나 병들 수 있습니다. 엘리사도 죽을 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병드는 것은 아담이 죄를 지어 죽음에 이르게 된 과정을 통과하는 것이기 때문에 죽음 자체가 병이요 죽게하는 것이 병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예외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히스기야 왕도 죽을 병에 걸리게 되어서 사형선고를 받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이르기를 내 영혼을 받아달라고 기도하지 아니하고 평소에 생활한 것을 기억하시고 한 번 살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생명을 15년간 더 연장하여 주셨습니다. 그는 기도하기를 “(사38:16) 주여 사람의 사는 것이 이에 있고 내 심령의 생명도 온전히 거기있사오니 원컨대 나를 치료하시며 나를 살려주옵소서 ” 하였습니다. 살려달라고 기도하면서 그가 평소에 생활한 것을 주께 아뢰면서 기도하였습니다. 이는 평소의 생활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1절에 "그 때에"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그 때라고 함은 앗수르 군대가 쳐들어 왔을 때 히스기야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앗수르 군대 18만 5천명을 하룻밤 사이에 다 송장으로 만든 바로 그때를 가리킵니다.(왕하 19:35)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히스기야가 왕이 된지 14년째가 되는 해로써 그의 나이 39세가 되던 해를 말합니다.
39세이면 이제 한창 일할 나이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가 병이 들었습니다. 그것도 죽을 병에 걸렸습니다. 지난 번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고 앗수르왕에게 돌린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성전에 있는 모든 기명들 즉 금으로 만든 귀중품들을 앗수르 왕에게 뇌물로 받친 일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금으로 도금한 것까지 다 벗겨서 앗수르에게 받쳤다.(왕하 18:13-16) 아마 이때의 일들로 인하여 히스기야의 심신이 매우괴로운 상태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앗수르 군대 18 만오천명이 유대를 치기 위하여 내려 왔을 때히스기야의 심신은 극도로 피곤해 있었을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마음은 하나님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앗수르를 따를 것인가 하는 것 때문에 더 많은 과로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갈등의 때에 히스기야는 과감하게 앗수르를 버리고 전능자 하나님을 선택했습니다. 19장 35절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에서 군사 18 만 오천을 친지라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보니다 송장이 되었더라" 히스기야가 하나님을 선택한 결과는 이렇게 엄청난 승리를 안겨다주었습니다. 그 엄청난 승리를 경험하는 바로 그때에 병이 든 것이다. 우리들도 감당하기 힘든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그 일을 근근히 다 하고나면 긴장감이 확 풀리면서 몸살같은 것이 옵니다. 여기 히스기야도 큰 일을 막상 승리로 끝내고 나니 긴장이 풀리면서 큰 병을 얻게된 것 같습니다. 그 얻은 병이 예사 병이 아니라 죽을 수 밖에 없는 큰 병이였습니다. 본문 1절에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저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처치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의사의 진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생명을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주위에 죽을 큰 병에 걸린 사람들이 많습니다.다. 그 병든 사람들의 보호자는 그가 죽을 병에 걸린 것을 알지만 환자에게는 충격이 될까봐 알리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의 경우는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말씀하시었습니다. "너는 집을 처치하라" 고 하시었습니다. 집을 처치하라는 말이 무었일까요 아직 히스기야에겐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럼 무었을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자세한 말씀은 없으나 짐작컨대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대하여 헌신적인 삶을 살기는 살았으나 그는 자신의 죽음 준비는 미쳐 하지를 못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39 세라는 젊음이 죽음을 준비치 못하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에게 준비를 요구하시었습니다. 또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고 하시었습니다. 죽는다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 앉을 것인데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는 말을 덧 붙였으니 히스기야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히스기야의 전 생애를 살펴보든지 또 본문의 여러 구절들을 살펴 보아도 히스기야가 죽을 만한 큰 병이 들 이유를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히스기야를 향하여 "너는 죽고 살지 못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충격적인 선언 ! 이 절망적인 선언 ! 이는 히스기야만을 향한 선언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다 들어야 하는 선언인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충격적인 절망적인 말씀 앞에서 히스기야는 좌절하지 않고 여호와께 기도로 아뢰었습니다.
1,기도를 들었고 " 히스기야는 이 죽음의 선언 앞에 좌절하지 않았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앗수르의 대군이 유대를 치기 위하여 쳐 내려 왔을 때 하나님의 사람 히스기야가 무었을 했는지를 보았습니다. 19;1절에 '.굵은 베 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19;2절에서는 "궁내대신, 서기관, 제사장, 장로들 모두에게 굵은 베 옷을 입혔다고 했습니다. 자신만 아니라 백성의 지도자 모두에게 회개의 기도를 하게 했습니다. 평소에 기도를 많이 하던 히스기야는 이 번에도 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본문 2절말씀에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히스기야는 벽을 향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의 내용은 3절이다.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더라" 이 것이 히스기야의 기도였다.
1). 진실되게 산 것을 기억하옵소서. 본문 “(왕하20:2)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왕하20:3)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 하였습니다. 이는 평소에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산 것을 기억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즉 진실하게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성도의 본분을 다했으니 그것이 결코 헛되지 않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실하게 사는 사람을 외면하시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환난을 당하여 부르짖으면 반드시 들어주십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인간의 욕구대로 들어주신다는 것은 아닙니다. 언제나 아버지 하나님의 뜻 범위내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진실하게 살았다고 다 히스리야처럼 병고침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에게 병이 있다면 세 가지 종류의 병이 있을 줄 압이다. 죽을 병, 깨달을 병, 영광의 병이 그것입니다. 그 중에 어느 병이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죽을 병에 걸리면 모두가 다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가 병고침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뜻에서 된 것이지만 이면에는 어떤 비밀이 있을 줄 압니다. 아무나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닌 줄 압니다. 그러나 진실하게 산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여 그의 병을 고쳐서 조금 더 살게 하신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우리가 배울 것은 진실하게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2). 전심으로 산 것을 기억하옵소서.
본문 “(왕하20:3)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하였습니다. 이는 진실은 그의 업적을 내세우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다는 신앙의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실과 전심의 신앙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실과 전심의 신앙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모세는 말하기를 “(신30: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 하였습니다. 히스기야는 자기가 전심으로 주 앞에서 행한 것을 자랑으로 하는 말이 아니고 자기의 솔직한 신앙 생활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병이들어 죽는 다는 사형선고를 받고 있는 처지에서 자기의 행위를 자랑하겠습니까. 자랑이 아니고 평소에 그렇게 살았음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즉 평소에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살아왔던 모든 것을 저축해놓은 것을 찾아쓰려는 의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는 열심히 해놓는 것이 유리합니다. 바울 사도는 “(딤전4:15)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고 하였습니다. 기왕에 예수를 믿으려며는 열심을 품고 믿어야 합니다. “(롬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고 하였습니다. 그래야 어려울 때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할 수가 있습니다.
3). 선하게 산 것을 기억하옵소서. 본문 “(왕하20:3)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더라 ” 하였습니다. 그는 간절한 마음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자신의 어려운 문제는 오직 하나님께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평소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열심히 신앙생활 한 것을 고백하면서 울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여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 그의 병은 고침을 받고 그의 육신의 생명을 15년간이나 더 살 수 있는 복을 받았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하게 살며는 언제인가 하나님께서 몇배로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은혜로 15년간이나 더 사는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선하게 살려고 노력을 해야합니다. 렘33;3절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게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였습니다.
시50;15절엔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하리로다" 하였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이여 꼭 한 말씀을 드리고 지나가야 하겠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에게 살지 못하고 죽을 터이니 너는 정리를 하라고 시간을 주고 계시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어떤 말미를 주고 계셨습니다. 뭔가 히스기야가 해야할 일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집을 정리할 시간적 여유를 주고 계시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히스기야가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명이 아깝기 때문이 아니다. 세상에 미련이 있어서도 아니다. 짐머만이란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이 훌륭하게 살려는 소망 보다는 오래 살려는 소망이 더 큰 것처럼 보인다. 사람은 그 소망의 기준으로 평가한다면 충분히 오래 살 수가 없다. 그리고 그의 선행을 기준으로 평가한다면 아직 충분히 오래 살지 못했다. 그리고 그의 악행을 기준으로 평가한다면 너무 오래 살았다." 라고 했다. 히스기야의 기도는 아직 해야할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5절 중반절입니다. ".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하나님께서는 해야할 일이 있는 자의 기도를 듣고 계신다. 지금도.
2,네 눈물을 보았노라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즐겨 불렀던 복음 성가에 영문밖의 길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거기 보면 이런 대목이 인상적이다. "눈물 없이 못가는 길 피 없이도 못가는 길 ."이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갈보리의 길은 눈물의 길이였습니다. 우리들의 길이 바로 갈보리의 길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자주 자주 눈물을 흘리시었습니다. 히스기에게는 죽음이라는 문제도 큰 것이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하나님께서 정리를 하라고 하신 그 일을 하기 위하여 기도 했습니다. 3절 하반절에 ".심히 통곡하더라"고 했다. 통곡의 기도, 눈물의 기도를 했다. 눈물은 히스기야의 간절한 마음의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눈물이 이상한 쪽으로 매말라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작 울어야 할 자리에서는 울지 않고 울지 말아야 할 자리에선 곧 잘 울고 있는 우리들이 아닙니까 형제를 대할 때 우리들의 눈에 눈물이 없습니다. 남의 허물을 볼때 우리들의 눈에 눈물이 없습니다.
왜 우리들의 기도엔 눈물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기도엔 전적으로 우리들의 마음을 싣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5절 중반절에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히스기야의 눈물이 하나님께 보여 졌습니다.
3, 3일 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 가겠고 " 히스기야의 기도가 하나님의 귀에 들려 졌습니다. 히스기야의 눈물이 하나님의 눈에 보여졌습니다. 이 말은 히스기야의 눈물의 간절한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 졌다는 말입니다. 5절 하반절에서 ". 네가 삼일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 가겠고" 여호와의 전에 올라 가겠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히스기야에게 건강이 필요한 이유는 그가 성전에 올라가는 일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오래 오래 살아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믿습니까 여러분들은 왜 오래 살아야 한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히스기야의 경우는 하나님의 집인 성전에 올라 가기 위함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이여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는 것도 다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기 위함인것입니다. 여호와를 위하여 뭔가를 하기 위하여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일하기 위하여 우리가 있는 것이다. 6절을 다 같이 읽자. "내가 네 날을 십 오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네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그렇습니다. 히스기야의 눈물의 기도가 응답이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하시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의 종 다윗을 위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 하나님께 보답하여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많은 은혜를 주셨지만 특히 그가 병들었을 때에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의 특별하신 복을 받아 죽을 몸이 15년 간이나 더 살게 된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들도 히스기야 왕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는 역사가 나타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위한 일로 기도합시다. 눈물을 흘립시다. 예수님을 위한 일로 기도합시다. 눈물을 흘립시다. 히스기야처럼 응답받는 기도의 사람들이 다 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 !
39세이면 이제 한창 일할 나이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가 병이 들었습니다. 그것도 죽을 병에 걸렸습니다. 지난 번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고 앗수르왕에게 돌린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성전에 있는 모든 기명들 즉 금으로 만든 귀중품들을 앗수르 왕에게 뇌물로 받친 일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금으로 도금한 것까지 다 벗겨서 앗수르에게 받쳤다.(왕하 18:13-16) 아마 이때의 일들로 인하여 히스기야의 심신이 매우괴로운 상태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앗수르 군대 18 만오천명이 유대를 치기 위하여 내려 왔을 때히스기야의 심신은 극도로 피곤해 있었을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마음은 하나님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앗수르를 따를 것인가 하는 것 때문에 더 많은 과로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갈등의 때에 히스기야는 과감하게 앗수르를 버리고 전능자 하나님을 선택했습니다. 19장 35절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에서 군사 18 만 오천을 친지라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보니다 송장이 되었더라" 히스기야가 하나님을 선택한 결과는 이렇게 엄청난 승리를 안겨다주었습니다. 그 엄청난 승리를 경험하는 바로 그때에 병이 든 것이다. 우리들도 감당하기 힘든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그 일을 근근히 다 하고나면 긴장감이 확 풀리면서 몸살같은 것이 옵니다. 여기 히스기야도 큰 일을 막상 승리로 끝내고 나니 긴장이 풀리면서 큰 병을 얻게된 것 같습니다. 그 얻은 병이 예사 병이 아니라 죽을 수 밖에 없는 큰 병이였습니다. 본문 1절에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저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처치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의사의 진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생명을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주위에 죽을 큰 병에 걸린 사람들이 많습니다.다. 그 병든 사람들의 보호자는 그가 죽을 병에 걸린 것을 알지만 환자에게는 충격이 될까봐 알리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의 경우는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말씀하시었습니다. "너는 집을 처치하라" 고 하시었습니다. 집을 처치하라는 말이 무었일까요 아직 히스기야에겐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럼 무었을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자세한 말씀은 없으나 짐작컨대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대하여 헌신적인 삶을 살기는 살았으나 그는 자신의 죽음 준비는 미쳐 하지를 못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39 세라는 젊음이 죽음을 준비치 못하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에게 준비를 요구하시었습니다. 또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고 하시었습니다. 죽는다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 앉을 것인데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는 말을 덧 붙였으니 히스기야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히스기야의 전 생애를 살펴보든지 또 본문의 여러 구절들을 살펴 보아도 히스기야가 죽을 만한 큰 병이 들 이유를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히스기야를 향하여 "너는 죽고 살지 못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충격적인 선언 ! 이 절망적인 선언 ! 이는 히스기야만을 향한 선언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다 들어야 하는 선언인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충격적인 절망적인 말씀 앞에서 히스기야는 좌절하지 않고 여호와께 기도로 아뢰었습니다.
1,기도를 들었고 " 히스기야는 이 죽음의 선언 앞에 좌절하지 않았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앗수르의 대군이 유대를 치기 위하여 쳐 내려 왔을 때 하나님의 사람 히스기야가 무었을 했는지를 보았습니다. 19;1절에 '.굵은 베 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19;2절에서는 "궁내대신, 서기관, 제사장, 장로들 모두에게 굵은 베 옷을 입혔다고 했습니다. 자신만 아니라 백성의 지도자 모두에게 회개의 기도를 하게 했습니다. 평소에 기도를 많이 하던 히스기야는 이 번에도 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본문 2절말씀에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히스기야는 벽을 향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의 내용은 3절이다.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더라" 이 것이 히스기야의 기도였다.
1). 진실되게 산 것을 기억하옵소서. 본문 “(왕하20:2)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왕하20:3)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 하였습니다. 이는 평소에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산 것을 기억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즉 진실하게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성도의 본분을 다했으니 그것이 결코 헛되지 않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실하게 사는 사람을 외면하시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환난을 당하여 부르짖으면 반드시 들어주십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인간의 욕구대로 들어주신다는 것은 아닙니다. 언제나 아버지 하나님의 뜻 범위내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진실하게 살았다고 다 히스리야처럼 병고침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에게 병이 있다면 세 가지 종류의 병이 있을 줄 압이다. 죽을 병, 깨달을 병, 영광의 병이 그것입니다. 그 중에 어느 병이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죽을 병에 걸리면 모두가 다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가 병고침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뜻에서 된 것이지만 이면에는 어떤 비밀이 있을 줄 압니다. 아무나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닌 줄 압니다. 그러나 진실하게 산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여 그의 병을 고쳐서 조금 더 살게 하신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우리가 배울 것은 진실하게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2). 전심으로 산 것을 기억하옵소서.
본문 “(왕하20:3)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하였습니다. 이는 진실은 그의 업적을 내세우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다는 신앙의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실과 전심의 신앙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실과 전심의 신앙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모세는 말하기를 “(신30: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 하였습니다. 히스기야는 자기가 전심으로 주 앞에서 행한 것을 자랑으로 하는 말이 아니고 자기의 솔직한 신앙 생활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병이들어 죽는 다는 사형선고를 받고 있는 처지에서 자기의 행위를 자랑하겠습니까. 자랑이 아니고 평소에 그렇게 살았음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즉 평소에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살아왔던 모든 것을 저축해놓은 것을 찾아쓰려는 의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는 열심히 해놓는 것이 유리합니다. 바울 사도는 “(딤전4:15)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고 하였습니다. 기왕에 예수를 믿으려며는 열심을 품고 믿어야 합니다. “(롬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고 하였습니다. 그래야 어려울 때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할 수가 있습니다.
3). 선하게 산 것을 기억하옵소서. 본문 “(왕하20:3)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더라 ” 하였습니다. 그는 간절한 마음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자신의 어려운 문제는 오직 하나님께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평소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열심히 신앙생활 한 것을 고백하면서 울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여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 그의 병은 고침을 받고 그의 육신의 생명을 15년간이나 더 살 수 있는 복을 받았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하게 살며는 언제인가 하나님께서 몇배로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은혜로 15년간이나 더 사는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선하게 살려고 노력을 해야합니다. 렘33;3절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게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였습니다.
시50;15절엔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하리로다" 하였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이여 꼭 한 말씀을 드리고 지나가야 하겠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에게 살지 못하고 죽을 터이니 너는 정리를 하라고 시간을 주고 계시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어떤 말미를 주고 계셨습니다. 뭔가 히스기야가 해야할 일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집을 정리할 시간적 여유를 주고 계시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히스기야가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명이 아깝기 때문이 아니다. 세상에 미련이 있어서도 아니다. 짐머만이란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이 훌륭하게 살려는 소망 보다는 오래 살려는 소망이 더 큰 것처럼 보인다. 사람은 그 소망의 기준으로 평가한다면 충분히 오래 살 수가 없다. 그리고 그의 선행을 기준으로 평가한다면 아직 충분히 오래 살지 못했다. 그리고 그의 악행을 기준으로 평가한다면 너무 오래 살았다." 라고 했다. 히스기야의 기도는 아직 해야할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5절 중반절입니다. ".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하나님께서는 해야할 일이 있는 자의 기도를 듣고 계신다. 지금도.
2,네 눈물을 보았노라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즐겨 불렀던 복음 성가에 영문밖의 길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거기 보면 이런 대목이 인상적이다. "눈물 없이 못가는 길 피 없이도 못가는 길 ."이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갈보리의 길은 눈물의 길이였습니다. 우리들의 길이 바로 갈보리의 길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자주 자주 눈물을 흘리시었습니다. 히스기에게는 죽음이라는 문제도 큰 것이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하나님께서 정리를 하라고 하신 그 일을 하기 위하여 기도 했습니다. 3절 하반절에 ".심히 통곡하더라"고 했다. 통곡의 기도, 눈물의 기도를 했다. 눈물은 히스기야의 간절한 마음의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눈물이 이상한 쪽으로 매말라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작 울어야 할 자리에서는 울지 않고 울지 말아야 할 자리에선 곧 잘 울고 있는 우리들이 아닙니까 형제를 대할 때 우리들의 눈에 눈물이 없습니다. 남의 허물을 볼때 우리들의 눈에 눈물이 없습니다.
왜 우리들의 기도엔 눈물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기도엔 전적으로 우리들의 마음을 싣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5절 중반절에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히스기야의 눈물이 하나님께 보여 졌습니다.
3, 3일 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 가겠고 " 히스기야의 기도가 하나님의 귀에 들려 졌습니다. 히스기야의 눈물이 하나님의 눈에 보여졌습니다. 이 말은 히스기야의 눈물의 간절한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 졌다는 말입니다. 5절 하반절에서 ". 네가 삼일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 가겠고" 여호와의 전에 올라 가겠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히스기야에게 건강이 필요한 이유는 그가 성전에 올라가는 일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오래 오래 살아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믿습니까 여러분들은 왜 오래 살아야 한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히스기야의 경우는 하나님의 집인 성전에 올라 가기 위함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이여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는 것도 다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기 위함인것입니다. 여호와를 위하여 뭔가를 하기 위하여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일하기 위하여 우리가 있는 것이다. 6절을 다 같이 읽자. "내가 네 날을 십 오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네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그렇습니다. 히스기야의 눈물의 기도가 응답이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하시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의 종 다윗을 위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 하나님께 보답하여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많은 은혜를 주셨지만 특히 그가 병들었을 때에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의 특별하신 복을 받아 죽을 몸이 15년 간이나 더 살게 된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들도 히스기야 왕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는 역사가 나타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위한 일로 기도합시다. 눈물을 흘립시다. 예수님을 위한 일로 기도합시다. 눈물을 흘립시다. 히스기야처럼 응답받는 기도의 사람들이 다 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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