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소식의 날 (왕하7:3-9)
본문
우리의 직업이 무엇인가 속이는 직업인가 살리는 직업인가 자 신의 창의력을 발휘하고 그것으로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 생명력을 준다. 좋다. 먹이고 입히고 힘을 주는 직업이 되어야 한다. 늘 그것을 목표로 일을 해야 한다. 너무 이익에만 집착하지 말자. 좀 하나님처럼 느긋하게 사업을 벌려나갈 수 없을까 욕심으로 망하는 사람들. 우리의 진짜 직업은 무엇인가 잠깐 있다가 썩을 우리와 가족들의 육신만을 위한 것인가 다 써보지도 못할 돈을 더 벌기 위해서 내 모 든 삶을 보내고 있는가 아니 진짜 자신에게 유익한 것이 무엇인가를 항상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가 영원히 있는 자신 곧 영혼과 앞으로 받을 썩지 않는 육신에 도움이 되는 직업은 무엇일까 이렇게 되면 우리의 모든 직업은 영혼을 구원하는 도구가 되고 만다. 많은 회교국, 힌두교국에서는 선교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가서 직업을 택해서 살면서 선교를 한다. 여기서 외형적인 직 업은 단지 호구지책일뿐이지 진짜 직업은 선교인 것이다. 이것이 바울 이 택했던 방법이기도 하다. 바로 천막수선의 직업이다. 이렇게 복음이 전파되었다. 이렇게 복음전파자들은 자신의 직업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바울은 자신이 구원한 사람들을 보면 영적으로 낳은 자식이요 자신의 면류관이라 하였다. 그가 "지혜 있는 자는 궁창 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한 자는 별 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 12:3)는 말씀대로 되지 않았던가! 사마리아 성문 앞에 문둥이 몇이 살았다. 이들은 성안에 들어갈 수 없는 이들이었다. 그래서 거기 산 것이다. 어느날 적군이 성을 둘 러쌌다. 포위는 풀릴줄을 몰랐고 절망 속에 사람들은 제자식을 먹었다. 물가는 치솟아 나귀 머리가 은 1Kg에 팔렸다. 왕은 하나님을 죽도 록 원망했다. 그리고 엘리사 선지자를 죽이기 위해서 찾아 다녔다. 엘리사는 예언의 말씀을 대언하였다. "하나님이 너희를 먹일 것이다. 물가는 전보다 더 싸질 것이다. 내일 이 맘 때 그것을 너희가 볼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을 믿으라. 그의 말씀대로 하라. 믿으면 볼 것이다." 그러나 이런 판국에 이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람들은 말했다. "하늘에서 곡식이 쏟아져 들어와도 그건 안될거다." 문둥이들은 생각했다. "어차피 굶어 죽을 몸 죽이면 죽지, 적군에 게 가서 얻어먹자." 그들은 손들고 항복하며 나갔다. 두려워 떨며 적 진에 도달했다. 허나 적이 없었다. 오히려 모든 좋은 것이 있었다. 어 찌된 일인가 무서운 소문이 임해서 모두 도망한 것이다. 하나님이 한 일이다. 문둥이들은 싫컨 먹고 마시고 보물들을 찾아내어 감추었다. 전혀 상상하지 않았던 새 삶이었다. 평생 보도 듣도 못한 보물들 이었다. 이 신나는 장면에서 문둥이들은 말했다. 이 소식을 성안에 알 려야 한다. 그들의 생사가 우리 손에 달렸거늘, 만약 알리지 않으면 그 벌이 우리에게 쏟아질 것이다. 문둥이도 벌인데 영원히 지옥의 문 둥이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알리자. 저들은 굶어죽고 있다. 이 소식을 왕은 믿지 않았다.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러나 몇 사람이 나갔다. 어차피 죽을 판이니까. 그들은 적을 볼 수 없었다. 대신 수십만 대군의 장비, 군량, 소지품을 보았다. 다른 곳에서 빼앗아온 보물들도 널려 있었다. 왕은 성문을 막아 백성들이 못나가게 했다. 그러나 성난 군중에 성문은 떨어지고 군사들은 그 밑에 깔리고 말았다. 문둥이가 어떤 일을 했는가 그들은 생명을 향해서 도전했다. 그 결과로 목숨을 건지고 더 얻었다. 그들이 훌륭해서 머리가 영리해서 아니 축복을 만났기 때문이다. 여기 문둥이들은 우리를 상징한다. 여 기서는 육신적인 은혜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진짜 은혜요 영원한 삶 이다. 생명 자체이신 그리스도를 향해 도전한 결과 얻은 것이다. 그가 주신 것이 생명이요 권능이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 로 우리에게 복주시되"(엡 1:3) 여러가지를 주셨다. 무엇보다도 "우리 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7)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삶은 믿음으로만 누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복을 주셨으니 기뻐하라. 마치 고아처럼 두려워하고 과부처럼 낙담하지 말라. 일어나 서 하나님의 장막을 다니라. 그래서 그 안에 쌓여있는 모든 보화를 찾 으라. 하나님의 복을 누리라. 자신 속에 있는 하나님으로 기뻐하고 그 하나님으로 행복하라. 권능의 삶을 살라. 문둥이들은 그 생명을 성안 사람들과 나누었다. 그들은 자신이 발 견한 것을 나누었다.
하나님이었다. 마치 그들의 보화가 한량 없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도 그러하다. 하나님의 보화는 나누면 나눌수록 커진다. 사랑과 권능과 기쁨 곧 하나님의 것은 나룰수록 많아진다. 하나님을 나누라. 사람들로 교회당을 채우라. 생명이 넘칠 것이다. 이번 터키를 여행하면서 놀랐다. 소아시아는 넓었다.우리나라의 4-5배 넓은 땅, 왜 그리 추운지. 바람은 너무나 거셌다. 차를 타고서 며칠을 달려서 겨우 횡단을 했다. 바울의 발걸음을 따라 걸었다. 그는 에베소에서 빌립보에서 추운 감옥에 있었다. 거기 제우스신이 탄생한 산이 있었고 거기 아데미 신전이 있었다. 각가지 귀신들이 들끓었다. 바울은 문둥이의 사명을 다한 것이다. 그는 말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갘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뻔 하였으니 유대인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았으며 세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 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 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 짓 형제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기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고후 11:23-)
이런 곤경이. 이런 팔자가. 이것이 웬 삶인가! 이것이 말처럼 쉽 게 되는가 억지로 한다면 일찍 죽을 것이다. 억지로 한다면 아마도 전도자의 얼굴이 가장 찌그러지고 어두울 것이다. 그러나 신자들은 이 것이 고통스럽지 않다. 오히려 기쁘다. 매맞고 욕먹어도. 맛본 사람만 이 안다. 그 알 수 없는 힘이 어디에서부터 오는가 우리나라 초기의 전도자들은 많이 굶었다. 너무도 추웠던 평안도 함경도의 산길. 전도자들의 글을 읽으면서 그 영웅스런 삶에 감회가 깊었다.
걷고 있는 소의 뒤를 따라가며 소똥 속에 콩을 골라 씻어 먹는다. 그러면서 터덜 터덜 눈덮힌 길을 걸었다. 순사들에게 잡혀서 죽 도록 맞는다. 그러면 다시 일어나서 또 복음을 전하러 나간다. 신학교 일학년 때 전도 여행을 한 달간 해보았다. 그때처럼 하나님이 더 확실하게 함께 하시는 경험이 없었다. 누구나 다 그런 일을 할 필요는 없다. 바울처럼 인생을 포기하면서 갈 필요는 없다. 억지로 그런 환경을 만들지말라. 차라리 현재 있는 자리에서 그렇게 하라. 주 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에게 사랑을 나누어주어라. 그리하면 바울처럼 자랑스럽게 말하게 되리라.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 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7-8) 이것이 전도자들의 고백이다. 이 문둥이가 우리, 사람들의 생명을 쥔 먼저 믿은 우리다. 원수들 은 패퇴했고 보물은 쌓여있다. 이 보물을 나누라. 그리스도를 나누라. 나눌수록 그의 축복이 확실하게 경험될 것이요 전할수록 더욱더 확신 속에 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날이 복될 것이다. 이 삶을 나누는 우리의 나날이 곧 아름다운 소식의 날들이어라. 이웃에게 전할 말을 생각하라. 그들에게 말하라. 그러면 자신이 믿는 것이 분명해질 것이다. 자신이 누리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경험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생각하라. 그들을 교회에 끌고 오는게 아니다. 유혹해서 데려다 놓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생명을 넣어주는 것이다. 우리가 받았고 누리고 경험하는 그리스도를 주는 것이다. 복음 전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직업이다. 지금 가진 우리 직업은 단지 진짜 직업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 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할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라. 내가 내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 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고후9:16)
그러므로 가서 직업을 택해서 살면서 선교를 한다. 여기서 외형적인 직 업은 단지 호구지책일뿐이지 진짜 직업은 선교인 것이다. 이것이 바울 이 택했던 방법이기도 하다. 바로 천막수선의 직업이다. 이렇게 복음이 전파되었다. 이렇게 복음전파자들은 자신의 직업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바울은 자신이 구원한 사람들을 보면 영적으로 낳은 자식이요 자신의 면류관이라 하였다. 그가 "지혜 있는 자는 궁창 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한 자는 별 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 12:3)는 말씀대로 되지 않았던가! 사마리아 성문 앞에 문둥이 몇이 살았다. 이들은 성안에 들어갈 수 없는 이들이었다. 그래서 거기 산 것이다. 어느날 적군이 성을 둘 러쌌다. 포위는 풀릴줄을 몰랐고 절망 속에 사람들은 제자식을 먹었다. 물가는 치솟아 나귀 머리가 은 1Kg에 팔렸다. 왕은 하나님을 죽도 록 원망했다. 그리고 엘리사 선지자를 죽이기 위해서 찾아 다녔다. 엘리사는 예언의 말씀을 대언하였다. "하나님이 너희를 먹일 것이다. 물가는 전보다 더 싸질 것이다. 내일 이 맘 때 그것을 너희가 볼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을 믿으라. 그의 말씀대로 하라. 믿으면 볼 것이다." 그러나 이런 판국에 이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람들은 말했다. "하늘에서 곡식이 쏟아져 들어와도 그건 안될거다." 문둥이들은 생각했다. "어차피 굶어 죽을 몸 죽이면 죽지, 적군에 게 가서 얻어먹자." 그들은 손들고 항복하며 나갔다. 두려워 떨며 적 진에 도달했다. 허나 적이 없었다. 오히려 모든 좋은 것이 있었다. 어 찌된 일인가 무서운 소문이 임해서 모두 도망한 것이다. 하나님이 한 일이다. 문둥이들은 싫컨 먹고 마시고 보물들을 찾아내어 감추었다. 전혀 상상하지 않았던 새 삶이었다. 평생 보도 듣도 못한 보물들 이었다. 이 신나는 장면에서 문둥이들은 말했다. 이 소식을 성안에 알 려야 한다. 그들의 생사가 우리 손에 달렸거늘, 만약 알리지 않으면 그 벌이 우리에게 쏟아질 것이다. 문둥이도 벌인데 영원히 지옥의 문 둥이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알리자. 저들은 굶어죽고 있다. 이 소식을 왕은 믿지 않았다.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러나 몇 사람이 나갔다. 어차피 죽을 판이니까. 그들은 적을 볼 수 없었다. 대신 수십만 대군의 장비, 군량, 소지품을 보았다. 다른 곳에서 빼앗아온 보물들도 널려 있었다. 왕은 성문을 막아 백성들이 못나가게 했다. 그러나 성난 군중에 성문은 떨어지고 군사들은 그 밑에 깔리고 말았다. 문둥이가 어떤 일을 했는가 그들은 생명을 향해서 도전했다. 그 결과로 목숨을 건지고 더 얻었다. 그들이 훌륭해서 머리가 영리해서 아니 축복을 만났기 때문이다. 여기 문둥이들은 우리를 상징한다. 여 기서는 육신적인 은혜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진짜 은혜요 영원한 삶 이다. 생명 자체이신 그리스도를 향해 도전한 결과 얻은 것이다. 그가 주신 것이 생명이요 권능이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 로 우리에게 복주시되"(엡 1:3) 여러가지를 주셨다. 무엇보다도 "우리 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7)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삶은 믿음으로만 누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복을 주셨으니 기뻐하라. 마치 고아처럼 두려워하고 과부처럼 낙담하지 말라. 일어나 서 하나님의 장막을 다니라. 그래서 그 안에 쌓여있는 모든 보화를 찾 으라. 하나님의 복을 누리라. 자신 속에 있는 하나님으로 기뻐하고 그 하나님으로 행복하라. 권능의 삶을 살라. 문둥이들은 그 생명을 성안 사람들과 나누었다. 그들은 자신이 발 견한 것을 나누었다.
하나님이었다. 마치 그들의 보화가 한량 없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도 그러하다. 하나님의 보화는 나누면 나눌수록 커진다. 사랑과 권능과 기쁨 곧 하나님의 것은 나룰수록 많아진다. 하나님을 나누라. 사람들로 교회당을 채우라. 생명이 넘칠 것이다. 이번 터키를 여행하면서 놀랐다. 소아시아는 넓었다.우리나라의 4-5배 넓은 땅, 왜 그리 추운지. 바람은 너무나 거셌다. 차를 타고서 며칠을 달려서 겨우 횡단을 했다. 바울의 발걸음을 따라 걸었다. 그는 에베소에서 빌립보에서 추운 감옥에 있었다. 거기 제우스신이 탄생한 산이 있었고 거기 아데미 신전이 있었다. 각가지 귀신들이 들끓었다. 바울은 문둥이의 사명을 다한 것이다. 그는 말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갘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뻔 하였으니 유대인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았으며 세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 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 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 짓 형제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기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고후 11:23-)
이런 곤경이. 이런 팔자가. 이것이 웬 삶인가! 이것이 말처럼 쉽 게 되는가 억지로 한다면 일찍 죽을 것이다. 억지로 한다면 아마도 전도자의 얼굴이 가장 찌그러지고 어두울 것이다. 그러나 신자들은 이 것이 고통스럽지 않다. 오히려 기쁘다. 매맞고 욕먹어도. 맛본 사람만 이 안다. 그 알 수 없는 힘이 어디에서부터 오는가 우리나라 초기의 전도자들은 많이 굶었다. 너무도 추웠던 평안도 함경도의 산길. 전도자들의 글을 읽으면서 그 영웅스런 삶에 감회가 깊었다.
걷고 있는 소의 뒤를 따라가며 소똥 속에 콩을 골라 씻어 먹는다. 그러면서 터덜 터덜 눈덮힌 길을 걸었다. 순사들에게 잡혀서 죽 도록 맞는다. 그러면 다시 일어나서 또 복음을 전하러 나간다. 신학교 일학년 때 전도 여행을 한 달간 해보았다. 그때처럼 하나님이 더 확실하게 함께 하시는 경험이 없었다. 누구나 다 그런 일을 할 필요는 없다. 바울처럼 인생을 포기하면서 갈 필요는 없다. 억지로 그런 환경을 만들지말라. 차라리 현재 있는 자리에서 그렇게 하라. 주 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에게 사랑을 나누어주어라. 그리하면 바울처럼 자랑스럽게 말하게 되리라.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 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7-8) 이것이 전도자들의 고백이다. 이 문둥이가 우리, 사람들의 생명을 쥔 먼저 믿은 우리다. 원수들 은 패퇴했고 보물은 쌓여있다. 이 보물을 나누라. 그리스도를 나누라. 나눌수록 그의 축복이 확실하게 경험될 것이요 전할수록 더욱더 확신 속에 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날이 복될 것이다. 이 삶을 나누는 우리의 나날이 곧 아름다운 소식의 날들이어라. 이웃에게 전할 말을 생각하라. 그들에게 말하라. 그러면 자신이 믿는 것이 분명해질 것이다. 자신이 누리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경험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생각하라. 그들을 교회에 끌고 오는게 아니다. 유혹해서 데려다 놓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생명을 넣어주는 것이다. 우리가 받았고 누리고 경험하는 그리스도를 주는 것이다. 복음 전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직업이다. 지금 가진 우리 직업은 단지 진짜 직업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 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할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라. 내가 내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 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고후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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