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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곁의 가지 (창49:22-26)

본문

요셉은 출중했다. 이스라엘은 열 두 족장은 야곱의 아들들로서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다. 그들 모두가 세상 모든 백성들과 비교가 않되는 축복을 누렸다. 그 중에서도 요셉은 축복 위의 축복을 받았다. 노예 생활 을 하거나 감옥에 떨어지더라도 그는 항상 찬란했다. 자기만 훌륭한게 아 니라 모두에게 도움을 주었다. 구약의 그리스도 같은 존재였다. 그야말로 샘 곁의 가지였다. 물이 부족한 팔레스틴에서는 나무들이 쉽게 말라 죽었다. 비가 오면 풀이 무성했다가 가물면 모두 말라버린다. 아예 광야에는 나무가 되지 않았다. 나무가 있다는 것은 거기 샘이 있다는 증거이다. 확실한 샘 곁에 심기운다는 것은 나무로서 대단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생명의 원천이 있으니 아무 걱정할 것이 없다. 우리는 요셉이 될 수도 그 주위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세상 사람들은 팔자가 좋아야 샘 곁에서 태어난다. 하지만 신자는 저절로 생명의 원천이 하나님 곁에 심기운다. 영적 법칙대로만 한다면 효력이 나타난다. 말씀을 믿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성경은 말한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1:17) 이것이 샘가에 심기운 사람이 사는 방법이다.
1. 이끄시는대로 요셉은 하나님 옆에 머문다 요셉의 성공은 여기 있다. 그는 다른 형제들처럼 하지 않았다. 형들 은 세상 일에 관심이 많았다. 몰려다니고 우의를 다지며 세상의 보통 젊 은이들처럼 살았다. 이것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신자는 다른 면이 있다. 하나님 교훈으로 가르침을 받는다는 점이다. 요셉이 그런 사람이었다. 세상 식으로 생각하는게 아니라 말씀을 통해 세상을 보았다. 요셉은 야곱으로부터 오는 모든 은혜로운 약속들을 항상 가슴에 품 고 있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축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 셨다. 그의 후손들은 그 약속 안에 머물어 있어야 했다.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신다. 약속을 받은 사람은 여럿이다. 하지만 그 약속의 성취 를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을 믿기 때문이다. 요셉은 그 말씀의 성취를 믿음으로 바라보았다. 그래서 자신이 축복 의 근원이 됨을 믿고 살았다. 하나님의 약속은 그의 마음에 비석처럼 깊 이 새겨지고 그로부터 생명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 약속은 요셉의 일상생활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요셉은 그 약속의 성취를 준비하 며 매일을 살았다. 그의 생각과 말과 행동은 그 약속의 성취 과정이었다. 우리의 삶을 여기 비추어 보자.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부름을 받아 나왔다. 하나님의 축복 안에 들어온 것이다. 교회에 소속된 사람들은 이 스라엘의 족장 수준으로는 축복을 받았다. 하지만 여기 머물어서는 안된다. 축복의 근원이 되어 자신과 모두를 유익하게 하려는 야심은 없는가 바랄만한 일이다. 이런 야심은 많이 가질수록 더 훌륭한 것이다. 요셉은 꿈꾸는 사람으로 불리웠다. 그의 상황은 그가 꾸는 꿈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열두 형제 중에 열한 번째였다. 그리고 배다른 형들 에게 미움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인도하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이 잠재 의식에까지 축적되었기에 자주 꿈을 꾸 었다. 부모까지도 그에게 감사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그의 장래였다. 이것을 단지 심리적인 현상으로 보아 넘기면 않된다. 그의 꿈은 단지 욕망을 보여주는게 아니다. 더 깊은 곳 영의 좌소에서 나왔다. 모든 꿈이 다 영의 활동은 아니다. 그러나 때때로 영의 활동은 꿈으로도 보여진다. 그리고 영이 보여준 꿈은 그 사람의 잠재의식이 움직여 나가는 방향을 보여준다. 그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그 일은 반드시 실현된다. 요셉의 일생 중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이것이다. 그가 샘곁에 심긴 나무라는 점이다. 이 샘은 하나님이시다. 우주의 능력의 근원에 그가 뿌 리를 박은 것이다. 우리가 따라야 할 가장 필요한 일이 바로 여기 보인다. 하나님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느끼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 삶의 모든 일에서 그가 생명과 능력을 공급하고 있음을 믿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요셉 이상의 축복을 누릴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요셉이 본을 보여주었고 모든 축복의 사람들이 그렇게 따라했다. 우리가 교회의 일원이 된 것은 선택된 것이다. 이스라엘로 선택된 것과 같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보통 신자들보다 더 확실하게 약속을 잡는 것이다. 무 슨 행동을 먼저 요구하는게 아니다. 약속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
2. 모든 역경은 요셉을 키우는 도구이다 요셉이 하나님의 꿈을 가지고 살았다고 순경만 펼쳐진게 아니다. 그 에게 닥친 곤란은 정도가 지나친 것이다. 참으로 그의 삶은 하나님의 힘 으로 모든 어려움을 얼마나 아름답게 극복하느냐의 시험장과 같았다. 모 진 역경 속에 그의 모습은 더욱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장군은 전쟁이 와야 하고 영웅은 혼란이 있어야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본문은 말한다.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그를 쏘며 그를 군박하 였으나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보통 사람 들이라면 이미 쓰러졌을 상황에서도 여전히 그 힘을 잃지 않을뿐 아니라 극복하고 일어선다는 말이다. 그 끝없는 힘의 근원은 어디인가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능력의 샘에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배다른 형들은 요셉을 미워했다. 그가 형제 중에 매사에 뛰어났기 때 문이다. 결과적으로 악한 대우를 받는다. 형들이 작당하여 노예로 팔아넘 긴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 믿는다고 잘 되겠는가! 요셉은 고향을 떠나서 10년간 노예생활을 하였다. 다시 사탄은 그에게 공격을 가해 누명 을 씌어 감옥에 던진다. 거기서 무기수로 4년을 보내게 된다. 자 여기서 요셉의 마음을 들여다 보자. 저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신세타령하지 않았다. 그것은 역경에 져서 노예가 되는 일이다. 자기 상황을 불평하는 것은 그것을 극복 못하고 있다는 고백이다. 다른 사람들 이 원인이라고 생각해 미워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마음이 약해지고 자 기 연민에 빠져도 그렇다. 모두가 상황의 노예되는 자세이다. 역경에 대처하는 요셉의 자세는 지배자의 것이다. 아무도 원망하지 않는다. 형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변명하지도 신세 타령도 않는다. 열등감 과 자포자기에 빠지지도 않는다. 자기를 공격한 그 상황을 자기 속에 받 아들여 기정 사실화 하지 않는다. 몸이 노예라고 마음도 노예가 되는게 아니다. 요셉은 자기에게 주신 하나님의 꿈을 확인해 마음을 채운다. 그것이 승리자의 입장을 만든다. 영국에서 발행되는 '사고의 과학'이 란 잡지 편집장이 이야기다. 그는 2차대전 중에 자기 집 가까이에서 벌어 진 공중전을 보았다. 독일과 영국의 전투기들이 뒤엉켜 싸우고 있었다. 그중에 한 영국 전투기가 불길에 싸여 숲속에 추락했다. 달려가 보니 무 참히 부숴진채 타고 있는 잔해에서 놀랍게도 조종사가 걸어나왔다. 그가 말했다. "추락하는 순간, 의식이 분명했습니다. 불안감은 전혀 없었습니다. 떨어지면 뭔가 제 내부에서 변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절대로 다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자기 의식으로 상황을 극복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의식이 고양된 상태를 유지한다면 우리 영혼은 엄청 난 힘을 발하게 된다. 그리고 상황을 바꾸는 힘을 발하게 된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왕의 분노를 샀다. 성경 다니엘서 3장 이야기다. 그들은 묶이워 용광로 속에 던져진다. 그들을 지켜보던 왕이 말한다.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 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하나님의 아들과 같도다." 이 네 번째는 우리 속 에 내재되어 어떤 역경에서도 구하시는 하나님의 존재가 아닌가. 능력의 샘에 뿌리를 내린 가지는 그 생명의 물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그 생명수는 그 나무를 번영하게 만든다. 이 샘에 뿌리내린 신자가 할 일은 그 생명의 사고를 마음 가득히 채우는 일이다. 그리하여 믿음의 사 고가 지배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사고를 통해서 일하신다. 그러 면 불이건 물이건 더 이상 역경이 아니라 영광의 상황이 된다.
3. 요셉의 가지는 세상을 유익하게 한다 약속대로 전능자는 함께 일하셨다. 다시 말하노니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요셉이 가진 믿음의 사고였다. 이 안에 하나님은 위대한 꿈을 부으셨다. 사고의 그릇이 준비 안되면 하나님은 축복을 담을 수 없다. 세상적인 눈으로 볼 때는 전혀 확율이 없는 이야기다. 그러나 수억분의 일의 확율 이 몇 백번 곱해져도 하나님에게는 오직 단 한가지 확율일뿐이었다. "그가 네가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여기 말할 수 있는 모든 복은 다 언급 이 되고 있다. 이 말씀을 사고에 채우라. 모든 아름다운 생각으로 마음을 채우라. 아무런 그림자도 거기 남기지 말라. 전능자가 복을 주신다면 세상의 아무 것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뿌리가 우주의 생명샘에 있다. 그렇게 함으로 이 복은 더욱 커진다. 우리의 생각하는 것보다 하나님 이 주실 축복은 비교가 안되게 큰 것이다. 우리가 경험한 그 어떤 것보다 더 큰 것을 생각하도록 사고를 최대한 넓히라. "네 아비의 축복이 내 부 여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 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요셉의 가지는 담을 넘어서 한없이 뻗어나갔다. 그의 지배는 팔레스 틴이 아니었다. 이집트 전역이었고 곧이어 전세계였다. 그는 구원자였다. 그의 지혜와 사랑과 통치력으로 모든 사람들은 그의 그늘에서 쉬었다. 그 를 찔렀던 원수들, 그를 팔았던 형들, 그를 감옥에 넣었던 시위대장을 포 함한 모든 사람들이 그의 은혜를 받았다. 참으로 그는 예수의 예표였다. 이것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한 사람의 모습이다. 수 천년 전의 이 사람이 우리에게 이처럼 감동을 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평범한 나무라도 샘 곁에 심기우면 한 없이 클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의 지혜와 사랑과 능력은 가히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들은 인간 요 셉이 만든게 아니다. 하나님이 그의 속에서 한없이 공급하신 것이다. 이제 그것들을 제공한 하나님의 샘은 더욱 크게 자랄 또 다른 요셉 을 찾는다. 그 그늘 아래서 모두가 안식하고 모두가 새생명을 얻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몸을 통해서 하나님의 지상 삶을 살고 싶어하신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몸 속에서 그렇게 하신 것처럼. 우리가 이 믿음의 법, 곧 마음을 하나님의 생명으로 늘 채우고 살기만 하면 된다. 이 법칙을 따르라. 그 능력은 절대적이다. 믿을 수 있다.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하나님의 존재와 그 사랑을 느껴보라.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을 내 사고와 감정에 받아들이라. 그 생각으로 하나님과 늘 교제를 끊지 말 라. 이것이 바로 복음적인 기도생활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힘으로 어 떠한 문제라도 극복할 수 있다. 그의 탁월한 능력을 자각하며 일어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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