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의지하라 (대하16:1-14)
본문
우리 한국교회에 많이 알려진 프란시스 쉐퍼 박사는 믿는 자들이나 믿지 않는 자들을 대상으로 우리가 믿는 기독교를 설명하려는 노력을 많이 하였습니다. 특히 철학의 인식론을 바탕으로 하나님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많이 연구하였습니다. 이러한 관점으로 쓴 책들 가운데 거기 계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신"이라는 낱말처럼 무의미하고 추상적인 개념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과연 신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막연히 인간이 존재하리라고 생각하는 개념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분명히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겠습니까 쉐퍼 박사는 그 결론을 하나님은 침묵하시지 않고 항상 말씀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인식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점은 우리의 믿음생활에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타자로 계시지만 침묵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에 인식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구원받은 우리 신자에게 있어서는 침묵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고 교제하고 있습니다. 이 점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아직까지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한 분들이 있다면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을 이 본문을 통하여 배우십시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침묵하시지 않고 말씀하시는 삶의 여러 채널을 통하여 만난 경험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신자라는 이름도 하나님이 존재를 믿고, 그 말씀하신 대로 이루신다는 것을 믿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기보다는 세상과 우리의 지혜를 의지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하여서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서도 많이 경험될 수 있습니다만 성경에도 많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본문을 연구하면서 여호와를 의지하는 일이 왜 중요한 일인지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구약의 역사 가운데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된 이후, 분열된 남쪽 유다의 세 번째 왕인 아사 왕의 행동을 연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의 인물이나 역사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그 인물이나 역사를 통하여 구원에 대한 여러 가지 진리와 그 구원을 얻고 경험하는 문제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연구하려고 하는 아사 왕 때에 일어난 한 사건을 다루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경험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 본문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인식하고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점을 연구하기 위하여 첫 번째로는 이 사건의 발단단계인 아사 왕의 행동, 두 번째로는 전개단계인 하나님의 평가, 세 번째로는 이 사건의 신학적 교훈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사건의 발단:아사의 행동 아사 왕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대에 나라가 분열된 이후 세 번째 왕인데, 르호보암의 손자입니다. 우리 본문에는 아사 왕 통치 36년에 한 사건이 일어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점에 대하여 성경을 자세하게 읽은 분들이라면 연대가 맞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이 본문은 아사 왕 통치 36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나라가 남북으로 나누어진 지 36년째에 일어난 사건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아야 열왕기상 15:33의 말씀과 조화를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은 북쪽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가 라마에 성을 짓는 일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왕국이 분열된 이후 남쪽 유다의 왕인 르호보암과 북쪽의 여로보암 사이에 계속 전쟁이 있었습니다(대하12:15). 그 이후 북쪽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성전이 남쪽 유다 지방인 예루살렘에 있었기 때문에 잦은 왕래가 있었습니다. 여로보암이 이것을 의도적으로 막기 위하여 벧엘과 단에다가 금송아지 상을 만들어 놓고 하나님을 섬기게 하였습니다. 그래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적으로 왕래하였습니다. 바아사는 이러한 왕래를 막기 위하여 라마에 성을 건축하려고 하였습니다. 라마는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의 경계지방에 위치해 있는 지역입니다. 이 지역에 성을 쌓았다는 것은 단순한 왕래를 금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남쪽 유다에 군사적으로도 큰 위협적인 요소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아사 왕은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였을까요 역대하 16:2-3을 보십시오. "아사가 여호와의 전 곳간과 왕궁 곳간의 은금을 취하여 다메섹에 거한 아람 왕 벤하닷에게 보내어 가로되 내 부친과 당신의 부친 사이에와 같이 나와 당신 사이에 약조하자 내가 당신에게 은금을 보내노니 와서 이스라엘 왕 바아사와 세운 약조를 깨뜨려서 저로 나를 떠나게 하라 하매" 이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는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아사 왕은 당시에 북쪽 이스라엘과 아람이 서로 조약을 맺고 있었는데, 그 조약을 파기하고 자기 나라와 조약을 맺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조약을 맺는 조건으로 성전에 있는 금과 왕궁에 있는 금을 주었습니다. 지금 아사 왕이 하고 있는 행동을 오늘날 가장 잘 이해해 줄 수 있는 정치 용어로 바꾸어 설명하면 "외교적 수완을 발휘하여 뇌물을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사 왕은 외교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뇌물을 보내어서 북쪽 이스라엘과 맺은 조약을 파기하게 하고, 대신에 자기와 조약을 맺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아사 왕의 제안에 대하여 아람 왕 벤하닷은 어떻게 응답하였을까요
역대하 16:4-5에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벤하닷이 아사 왕의 말을 듣고 그 군대 장관들을 보내어 이스라엘 두어 성읍을 치되 이욘과 단과 아벨마임과 납달리의 모든 국고성을 쳤더니 바아사가 듣고 라마 건축하는 일을 파하여 그 공역을 그친지라." 뇌물의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아람왕은 아사 왕이 보낸 뇌물을 보고 그 조건을 수락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북쪽 이스라엘의 최북단인 단과 납달리를 이욘과 아벨마임 지역을 공격하였습니다. 여러분! 이 상황을 잘 이스라엘의 지도를 머리에 그리면서 잘 생각해 보십시오. 아람은 이스라엘의 북쪽에 위치해 있었던 나라였는데, 그 나라가 이스라엘의 북쪽 지역에 있는 몇 성읍을 공격하였습니다. 라마는 남쪽 유다와 경계지역에 위치해 있었는데, 북쪽 이스라엘 편에서 보면 최남단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군사를 들이켜서 북쪽으로 가지 않겠습니까 그는 그 나라를 보호하기 위하여 남쪽 유다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라마에 성을 세우는 일을 중단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의 사건을 보면 이러한 상황에서 아사 왕은 어떻게 처신하고 있습니까 역대하 16:6을 보십시오. "아사 왕이 온 유다 무리를 거느리고 바아사가 라마를 건축하던 돌과 재목을 수운하여다가 게바와 미스바를 건축하였더라." 지금 이 시점에서 아사 왕은 아람 왕 벤하닷에게 외교적 수완을 발휘하여 뇌물을 준 결과 바아사가 라마에 건축하려던 성을 쌓는 일을 중단하게 되고, 그 건축자재를 다 얻는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아사 왕의 외교적인 노력으로 아람과 강력한 정치적 동맹을 맺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위험이 사라지고 나라는 든든하게 서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우리가 현재의 국제적인 시각을 가지고 볼 때 아사 왕은 정치력이 있고, 외교적인 수완이 있는 유능한 왕으로 보입니다.
2. 사건의 전개:하나님의 평가
그런데 바로 이 순간에 누가 찾아 왔습니까 정치적으로 성공하였고, 외교적인 성과가 나타났다고 생각하던 바로 그 시점에 누가 찾아왔습니까 역대하 16:7을 보십시오. "그때에 선견자 하나니가 유다 왕 아사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왕이 아람 왕을 의지하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한 고로 아람 왕의 군대가 왕의 손에서 벗어났나이다." 하나님의 선지자 하나니가 찾아와서 아사 왕의 그러한 행동이 옳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였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분명히 아사 왕의 행동이 지혜롭게 보이는데, 왜 하나님은 아사 왕의 행동을 책망하고 있을까요 일반적으로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이 방법을 지혜롭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는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 하나니는 그 이유를 아사 왕이 아람 왕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그 결과 아람이 유다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니 선지자는 아사 왕의 잘못을 지적하기 위하여 과거에 아사가 한 행동을 예를 들었습니다. 역대하 16:8을 보십시오. "구스 사람과 룹 사람의 군대가 크지 아니하며 말과 병거가 심히 많지 아니하더이까 그러나 왕이 여호와를 왕이 여호와를 의지한 고로 여호와께서 왕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구스 사람은 지금의 에디오피아 지역을 말하고, 룹 사람은 리비아 사람을 말합니다. 이들은 남쪽 아프리카의 북단에 위치한 나라들입니다. 이 나라가 대군을 이끌고 유다를 공격한 기사는 역대하 14:8-14에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아사의 군대는 삼십만이고 베냐민 지파 중에서 이십팔만이었습니다(대하14:8). 그러나 구스의 군대는 군사 백만이요 병거가 삼백승이나 되었습니다(대하14:9). 군사력 면에서 서로 비교해 볼 때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때 아사 왕은 어떻게 하였을까요 지금처럼 외교적 채널을 이용하거나 뇌물을 주는 방법을 사용하였습니까 아닙니다. 역대하 14:11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니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컨대 사람으로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이 기도는 참 멋있는 기도입니다. 과거에 아사는 큰 위기 가운데 빠지게 되었을 때 무엇을 하였습니까 그는 전심으로 여호와를 의지하고 기도하였습니다. 그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한 결과 구스의 백만 대군 가운데 살아남은 자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대하14:13). 그는 이 역사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분명하게 체험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때에 하나님의 신이 아사랴에게 임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계속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중요한 규칙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규칙은 역대하 15:2-7에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사는 이 내용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 말씀의 핵심적인 내용은 역대하 15:2에 있습니다. "저가 나가서 아사를 맞아 이르되 아사와 및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들아 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 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저희를 찾으면 저희가 너희의 만난바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저를 버리면 저도 너희를 버리시리라." 이 내용은 만일 여호와를 찾으면 여호와께서 만나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겠지만, 여호와를 버리면 여호와께서도 버리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아사 왕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나라의 구조를 완전하게 개혁하였습니다. 그 개혁의 역사가 역대하 15장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다의 역사에서 몇 번의 종교개혁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요시아, 히스기야, 여호사밧의 종교개혁입니다. 이 아사의 종교개혁은 이 개혁운동 가운데 첫 번째 개혁이었습니다(대하15:8-14). 이 개혁의 결과로 아사 왕 35년까지 전쟁이 없었습니다(대하15:19). 이것이 기도의 결과입니다. 그는 기도를 통하여 역사 현장에서 생생하게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체험하였습니다. 이러한 과거의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하나니 선지자는 아사 왕의 잘못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그는 과거 역사에서 경험하고 만난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세상을 의지하였고, 그의 수완을 의지하였습니다.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고 이방의 나라인 아람 왕을 의지한 아사에게 하나니 선지자는 보편적인 규칙을 다시 설명해 주었습니다. 역대하 16:9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로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할 것인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여기에서 우리의 믿음생활에서 보여주는 보편적인 규칙은 여호와께서 온 세상을 감찰하시되,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에게 능력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전심으로"라는 말은 우리 마음 전부, 마음 전체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부분은 하나님을 향하고, 부분은 세상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전체, 삶 전부를 주님께 의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온 마음으로 여호와를 찾고 찾으면 하나님께서 능력을 베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생애에 있어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일까요 여호와를 찾고 의지하는 문제가 아닐까요
그런데 하나니 선지자가 아사 왕에게 이러한 보편적이고도 중요한 규칙을 가르쳐 주셨는데, 아사는 어떻게 응답하고 있습니까 "제가 하나님 앞에 범죄하였습니다. 지금이라도 회개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역대하 16:10의 말씀을 보십시오. "아사가 노하여 선견자를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그 날에 크게 노하였음이며 그 때에 아사가 또 몇 백성을 학대하였더라." 그는 그의 잘못을 지적하는 선지자를 그가 가지고 있는 권력으로 감옥에 보내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을 학대하였습니다. 이 본문을 볼 때 아사 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선지자를 감옥으로 보내자 아마 일부 백성들이 데모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부정에 대하여 항거하는 백성들은 그는 잔인하게 학대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눈이 멀어 있으면 언제든지 이러한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과거에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한 자라고 할지라도 언제든지 이러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역사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선지자 하나니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전하였는데도 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왕이 된지 삼십구년에 발에 병이 들어 아주 심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말씀을 전하여도 듣지 않았기 때문에 환경을 통하여 깨닫게 하셨습니다. 이 일은 고통을 통하여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그 상황을 깨닫지 못하고 의사에게 구하였습니다. 역대하 16:12을 보십시오. "아사가 왕이 된지 삼십구년에 그 발이 병들어 심히 중하나 병이 있을 때에 저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 여기서 이 본문을 오해하여 의사를 찾는 것이 무조건 잘못된 것으로 이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병을 얻게 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여러 방편들을 주셨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의사들의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이 점을 절대로 무시하면 안됩니다. 하지만 의사를 찾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점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습니까 우리가 육신의 문제에 문제가 있을 때 의사의 도움을 받는 일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께 구하면 도와주신다는 사실이 전제가 되어 있습니다. 신약성경 가운데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여 기도하라"(약5:14)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것은 육신의 질병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치료해 주신다는 약속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사왕은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사 왕은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세상적인 방법에만 의존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하나니를 통하여 말씀하시고, 그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육신의 질병을 통하여서도 말씀하셨는데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생명을 불러가셨습니다.
3. 이 본문의 신학적 교훈 그러면 이 사건을 통하여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전달해 주려는 것일까요 우리는 오늘 구약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나타난 한 사건을 살펴본 바가 있습니다. 이 사건은 무엇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일까요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구원에 대한 진리와 구원을 얻는 방법에 대하여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특히 이 본문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지속적으로 구원을 경험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구원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함을 받은 우리 역시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이미 받은 구원을 계속적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서 연구한 바가 있습니다만 아사는 유다의 왕으로서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을 때 어떤 은혜를 주시는지 이미 과거 역사에서 경험한 바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경험을 통하여 그는 계속하여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그의 권력구조가 안정되자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그의 능력과 세상을 의지하였습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의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아사 왕의 행동이 지혜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의 시각에서 볼 때 이것이 지혜로운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지혜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그것은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 표현은 잠언서에서 말하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솔로몬은 성경의 지혜서라고 불려지고 있는 잠언 1:7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에 있어서 알아야 할 지혜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언어학, 수학, 과학, 사회, 정치, 그리고 경제, 일반상식에 대하여 필요한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이들 가운데 요즘 가장 관심을 끄는 것 가운데 하나가 외국어 습득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영어입니다. 그래서 초등학교의 교과과정 안에도 영어를 가르치고 각종 어학 프로그램이 오늘날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사실 언어학은 중요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 이 세상에 속한 기술과 지식을 알고자 한다면 외국어를 습득해야 합니다. 여러 가지 언어로 씌어진 여러 글을 통해 세상을 사는 지혜를 배울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속한 지식을 알게 하는 언어학보다 더 중요한 지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사는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음으로 하나님께서 그의 생애에 계속 전쟁이 그치지 않게 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동일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열왕기상 15:16, 32을 보면 이 사건 이후의 기록이 이렇게 나타나 있습니다. "아사와 이스라엘 왕 바아사 사이에 일생에 전쟁이 있으니라." 이 사건에서 여호와를 의지하는 일은 참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배우십시오. 과거에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 나라의 종교개혁을 단행한 위대한 왕이었다고 할지라도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을 때 실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호와를 끝까지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말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오늘 역대하 14장부터 중요한 부분을 읽었습니다만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지한다는 가장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의미입니다. 아사 왕은 처음에 어려운 문제가 닥치면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가 기도할 때 구스의 100만 대군도 이기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의 지혜와 능력을 의지하거나 아람의 군대를 의지할 때 그는 고통 가운데 거하게 되고, 그의 생명까지 잃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특별한 시대를 살면서 실직의 아픔을 당할 수도 있고,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부부간의 문제나 부모와 자녀간에 심각한 마찰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장래의 진로 문제로 인하여 심각한 위기 상황에 놓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원치 않는 질병으로 고통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때에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을 위하여 많은 시간을 보내어 보십시오.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의 특징은 돈과 권력을 의지합니다. 그러나 돈을 의지하면 돈이 해줄 수 있는 일만 할 수 있고, 인맥을 의지하여 이 사람 저 사람 찾아다니며 줄을 서고 뇌물을 바치면 그 사람의 한계 내에서만 부분적으로만 해줄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일을 통하여 오히려 초라한 자신의 모습만 발견할 뿐입니다. 그러나 기도를 의지하면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연구한 본문 역대하 16: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신다"는 보편적인 규칙을 기억하십시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어떤 문제를 만나든지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어떤 문제를 만날 때 당황하지 마십시오. 어려운 일을 만나면 "내가 과거에 만난 하나님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구나."라고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이 일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은혜를 경험하게 하는 기회구나."라고 생각하고 기도하십시오. 전심으로 여호와를 의지하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바로 그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서론에서 프란시스 쉐퍼 박사의 말을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만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초월자로 계셔서 우리 눈에 확인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침묵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 본문에서 연구한 것처럼 하나님은 분명히 존재하시고 온 세상을 감찰하시며 전심으로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에게 능력을 베풀어주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를 의지하십시오. 기도하는 일에 시간을 보내어 보십시오. 이것이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경험하는 방법입니다. 여호와의 능력이 어떤 방법으로 전달되는지 우리 성도들이 꼭 경험해 보기를 원합니다.
이 점은 우리의 믿음생활에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타자로 계시지만 침묵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에 인식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구원받은 우리 신자에게 있어서는 침묵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고 교제하고 있습니다. 이 점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아직까지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한 분들이 있다면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을 이 본문을 통하여 배우십시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침묵하시지 않고 말씀하시는 삶의 여러 채널을 통하여 만난 경험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신자라는 이름도 하나님이 존재를 믿고, 그 말씀하신 대로 이루신다는 것을 믿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기보다는 세상과 우리의 지혜를 의지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하여서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서도 많이 경험될 수 있습니다만 성경에도 많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본문을 연구하면서 여호와를 의지하는 일이 왜 중요한 일인지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구약의 역사 가운데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된 이후, 분열된 남쪽 유다의 세 번째 왕인 아사 왕의 행동을 연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의 인물이나 역사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그 인물이나 역사를 통하여 구원에 대한 여러 가지 진리와 그 구원을 얻고 경험하는 문제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연구하려고 하는 아사 왕 때에 일어난 한 사건을 다루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경험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 본문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인식하고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점을 연구하기 위하여 첫 번째로는 이 사건의 발단단계인 아사 왕의 행동, 두 번째로는 전개단계인 하나님의 평가, 세 번째로는 이 사건의 신학적 교훈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사건의 발단:아사의 행동 아사 왕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대에 나라가 분열된 이후 세 번째 왕인데, 르호보암의 손자입니다. 우리 본문에는 아사 왕 통치 36년에 한 사건이 일어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점에 대하여 성경을 자세하게 읽은 분들이라면 연대가 맞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이 본문은 아사 왕 통치 36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나라가 남북으로 나누어진 지 36년째에 일어난 사건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아야 열왕기상 15:33의 말씀과 조화를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은 북쪽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가 라마에 성을 짓는 일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왕국이 분열된 이후 남쪽 유다의 왕인 르호보암과 북쪽의 여로보암 사이에 계속 전쟁이 있었습니다(대하12:15). 그 이후 북쪽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성전이 남쪽 유다 지방인 예루살렘에 있었기 때문에 잦은 왕래가 있었습니다. 여로보암이 이것을 의도적으로 막기 위하여 벧엘과 단에다가 금송아지 상을 만들어 놓고 하나님을 섬기게 하였습니다. 그래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적으로 왕래하였습니다. 바아사는 이러한 왕래를 막기 위하여 라마에 성을 건축하려고 하였습니다. 라마는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의 경계지방에 위치해 있는 지역입니다. 이 지역에 성을 쌓았다는 것은 단순한 왕래를 금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남쪽 유다에 군사적으로도 큰 위협적인 요소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아사 왕은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였을까요 역대하 16:2-3을 보십시오. "아사가 여호와의 전 곳간과 왕궁 곳간의 은금을 취하여 다메섹에 거한 아람 왕 벤하닷에게 보내어 가로되 내 부친과 당신의 부친 사이에와 같이 나와 당신 사이에 약조하자 내가 당신에게 은금을 보내노니 와서 이스라엘 왕 바아사와 세운 약조를 깨뜨려서 저로 나를 떠나게 하라 하매" 이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는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아사 왕은 당시에 북쪽 이스라엘과 아람이 서로 조약을 맺고 있었는데, 그 조약을 파기하고 자기 나라와 조약을 맺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조약을 맺는 조건으로 성전에 있는 금과 왕궁에 있는 금을 주었습니다. 지금 아사 왕이 하고 있는 행동을 오늘날 가장 잘 이해해 줄 수 있는 정치 용어로 바꾸어 설명하면 "외교적 수완을 발휘하여 뇌물을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사 왕은 외교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뇌물을 보내어서 북쪽 이스라엘과 맺은 조약을 파기하게 하고, 대신에 자기와 조약을 맺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아사 왕의 제안에 대하여 아람 왕 벤하닷은 어떻게 응답하였을까요
역대하 16:4-5에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벤하닷이 아사 왕의 말을 듣고 그 군대 장관들을 보내어 이스라엘 두어 성읍을 치되 이욘과 단과 아벨마임과 납달리의 모든 국고성을 쳤더니 바아사가 듣고 라마 건축하는 일을 파하여 그 공역을 그친지라." 뇌물의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아람왕은 아사 왕이 보낸 뇌물을 보고 그 조건을 수락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북쪽 이스라엘의 최북단인 단과 납달리를 이욘과 아벨마임 지역을 공격하였습니다. 여러분! 이 상황을 잘 이스라엘의 지도를 머리에 그리면서 잘 생각해 보십시오. 아람은 이스라엘의 북쪽에 위치해 있었던 나라였는데, 그 나라가 이스라엘의 북쪽 지역에 있는 몇 성읍을 공격하였습니다. 라마는 남쪽 유다와 경계지역에 위치해 있었는데, 북쪽 이스라엘 편에서 보면 최남단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군사를 들이켜서 북쪽으로 가지 않겠습니까 그는 그 나라를 보호하기 위하여 남쪽 유다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라마에 성을 세우는 일을 중단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의 사건을 보면 이러한 상황에서 아사 왕은 어떻게 처신하고 있습니까 역대하 16:6을 보십시오. "아사 왕이 온 유다 무리를 거느리고 바아사가 라마를 건축하던 돌과 재목을 수운하여다가 게바와 미스바를 건축하였더라." 지금 이 시점에서 아사 왕은 아람 왕 벤하닷에게 외교적 수완을 발휘하여 뇌물을 준 결과 바아사가 라마에 건축하려던 성을 쌓는 일을 중단하게 되고, 그 건축자재를 다 얻는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아사 왕의 외교적인 노력으로 아람과 강력한 정치적 동맹을 맺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위험이 사라지고 나라는 든든하게 서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우리가 현재의 국제적인 시각을 가지고 볼 때 아사 왕은 정치력이 있고, 외교적인 수완이 있는 유능한 왕으로 보입니다.
2. 사건의 전개:하나님의 평가
그런데 바로 이 순간에 누가 찾아 왔습니까 정치적으로 성공하였고, 외교적인 성과가 나타났다고 생각하던 바로 그 시점에 누가 찾아왔습니까 역대하 16:7을 보십시오. "그때에 선견자 하나니가 유다 왕 아사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왕이 아람 왕을 의지하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한 고로 아람 왕의 군대가 왕의 손에서 벗어났나이다." 하나님의 선지자 하나니가 찾아와서 아사 왕의 그러한 행동이 옳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였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분명히 아사 왕의 행동이 지혜롭게 보이는데, 왜 하나님은 아사 왕의 행동을 책망하고 있을까요 일반적으로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이 방법을 지혜롭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는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 하나니는 그 이유를 아사 왕이 아람 왕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그 결과 아람이 유다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니 선지자는 아사 왕의 잘못을 지적하기 위하여 과거에 아사가 한 행동을 예를 들었습니다. 역대하 16:8을 보십시오. "구스 사람과 룹 사람의 군대가 크지 아니하며 말과 병거가 심히 많지 아니하더이까 그러나 왕이 여호와를 왕이 여호와를 의지한 고로 여호와께서 왕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구스 사람은 지금의 에디오피아 지역을 말하고, 룹 사람은 리비아 사람을 말합니다. 이들은 남쪽 아프리카의 북단에 위치한 나라들입니다. 이 나라가 대군을 이끌고 유다를 공격한 기사는 역대하 14:8-14에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아사의 군대는 삼십만이고 베냐민 지파 중에서 이십팔만이었습니다(대하14:8). 그러나 구스의 군대는 군사 백만이요 병거가 삼백승이나 되었습니다(대하14:9). 군사력 면에서 서로 비교해 볼 때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때 아사 왕은 어떻게 하였을까요 지금처럼 외교적 채널을 이용하거나 뇌물을 주는 방법을 사용하였습니까 아닙니다. 역대하 14:11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니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컨대 사람으로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이 기도는 참 멋있는 기도입니다. 과거에 아사는 큰 위기 가운데 빠지게 되었을 때 무엇을 하였습니까 그는 전심으로 여호와를 의지하고 기도하였습니다. 그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한 결과 구스의 백만 대군 가운데 살아남은 자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대하14:13). 그는 이 역사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분명하게 체험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때에 하나님의 신이 아사랴에게 임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계속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중요한 규칙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규칙은 역대하 15:2-7에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사는 이 내용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 말씀의 핵심적인 내용은 역대하 15:2에 있습니다. "저가 나가서 아사를 맞아 이르되 아사와 및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들아 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 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저희를 찾으면 저희가 너희의 만난바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저를 버리면 저도 너희를 버리시리라." 이 내용은 만일 여호와를 찾으면 여호와께서 만나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겠지만, 여호와를 버리면 여호와께서도 버리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아사 왕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나라의 구조를 완전하게 개혁하였습니다. 그 개혁의 역사가 역대하 15장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다의 역사에서 몇 번의 종교개혁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요시아, 히스기야, 여호사밧의 종교개혁입니다. 이 아사의 종교개혁은 이 개혁운동 가운데 첫 번째 개혁이었습니다(대하15:8-14). 이 개혁의 결과로 아사 왕 35년까지 전쟁이 없었습니다(대하15:19). 이것이 기도의 결과입니다. 그는 기도를 통하여 역사 현장에서 생생하게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체험하였습니다. 이러한 과거의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하나니 선지자는 아사 왕의 잘못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그는 과거 역사에서 경험하고 만난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세상을 의지하였고, 그의 수완을 의지하였습니다.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고 이방의 나라인 아람 왕을 의지한 아사에게 하나니 선지자는 보편적인 규칙을 다시 설명해 주었습니다. 역대하 16:9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로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할 것인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여기에서 우리의 믿음생활에서 보여주는 보편적인 규칙은 여호와께서 온 세상을 감찰하시되,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에게 능력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전심으로"라는 말은 우리 마음 전부, 마음 전체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부분은 하나님을 향하고, 부분은 세상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전체, 삶 전부를 주님께 의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온 마음으로 여호와를 찾고 찾으면 하나님께서 능력을 베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생애에 있어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일까요 여호와를 찾고 의지하는 문제가 아닐까요
그런데 하나니 선지자가 아사 왕에게 이러한 보편적이고도 중요한 규칙을 가르쳐 주셨는데, 아사는 어떻게 응답하고 있습니까 "제가 하나님 앞에 범죄하였습니다. 지금이라도 회개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역대하 16:10의 말씀을 보십시오. "아사가 노하여 선견자를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그 날에 크게 노하였음이며 그 때에 아사가 또 몇 백성을 학대하였더라." 그는 그의 잘못을 지적하는 선지자를 그가 가지고 있는 권력으로 감옥에 보내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을 학대하였습니다. 이 본문을 볼 때 아사 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선지자를 감옥으로 보내자 아마 일부 백성들이 데모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부정에 대하여 항거하는 백성들은 그는 잔인하게 학대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눈이 멀어 있으면 언제든지 이러한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과거에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한 자라고 할지라도 언제든지 이러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역사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선지자 하나니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전하였는데도 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왕이 된지 삼십구년에 발에 병이 들어 아주 심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말씀을 전하여도 듣지 않았기 때문에 환경을 통하여 깨닫게 하셨습니다. 이 일은 고통을 통하여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그 상황을 깨닫지 못하고 의사에게 구하였습니다. 역대하 16:12을 보십시오. "아사가 왕이 된지 삼십구년에 그 발이 병들어 심히 중하나 병이 있을 때에 저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 여기서 이 본문을 오해하여 의사를 찾는 것이 무조건 잘못된 것으로 이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병을 얻게 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여러 방편들을 주셨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의사들의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이 점을 절대로 무시하면 안됩니다. 하지만 의사를 찾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점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습니까 우리가 육신의 문제에 문제가 있을 때 의사의 도움을 받는 일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께 구하면 도와주신다는 사실이 전제가 되어 있습니다. 신약성경 가운데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여 기도하라"(약5:14)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것은 육신의 질병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치료해 주신다는 약속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사왕은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사 왕은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세상적인 방법에만 의존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하나니를 통하여 말씀하시고, 그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육신의 질병을 통하여서도 말씀하셨는데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생명을 불러가셨습니다.
3. 이 본문의 신학적 교훈 그러면 이 사건을 통하여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전달해 주려는 것일까요 우리는 오늘 구약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나타난 한 사건을 살펴본 바가 있습니다. 이 사건은 무엇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일까요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구원에 대한 진리와 구원을 얻는 방법에 대하여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특히 이 본문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지속적으로 구원을 경험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구원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함을 받은 우리 역시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이미 받은 구원을 계속적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서 연구한 바가 있습니다만 아사는 유다의 왕으로서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을 때 어떤 은혜를 주시는지 이미 과거 역사에서 경험한 바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경험을 통하여 그는 계속하여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그의 권력구조가 안정되자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그의 능력과 세상을 의지하였습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의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아사 왕의 행동이 지혜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의 시각에서 볼 때 이것이 지혜로운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지혜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그것은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 표현은 잠언서에서 말하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솔로몬은 성경의 지혜서라고 불려지고 있는 잠언 1:7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에 있어서 알아야 할 지혜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언어학, 수학, 과학, 사회, 정치, 그리고 경제, 일반상식에 대하여 필요한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이들 가운데 요즘 가장 관심을 끄는 것 가운데 하나가 외국어 습득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영어입니다. 그래서 초등학교의 교과과정 안에도 영어를 가르치고 각종 어학 프로그램이 오늘날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사실 언어학은 중요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 이 세상에 속한 기술과 지식을 알고자 한다면 외국어를 습득해야 합니다. 여러 가지 언어로 씌어진 여러 글을 통해 세상을 사는 지혜를 배울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속한 지식을 알게 하는 언어학보다 더 중요한 지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사는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음으로 하나님께서 그의 생애에 계속 전쟁이 그치지 않게 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동일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열왕기상 15:16, 32을 보면 이 사건 이후의 기록이 이렇게 나타나 있습니다. "아사와 이스라엘 왕 바아사 사이에 일생에 전쟁이 있으니라." 이 사건에서 여호와를 의지하는 일은 참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배우십시오. 과거에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 나라의 종교개혁을 단행한 위대한 왕이었다고 할지라도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을 때 실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호와를 끝까지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말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오늘 역대하 14장부터 중요한 부분을 읽었습니다만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지한다는 가장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의미입니다. 아사 왕은 처음에 어려운 문제가 닥치면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가 기도할 때 구스의 100만 대군도 이기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의 지혜와 능력을 의지하거나 아람의 군대를 의지할 때 그는 고통 가운데 거하게 되고, 그의 생명까지 잃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특별한 시대를 살면서 실직의 아픔을 당할 수도 있고,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부부간의 문제나 부모와 자녀간에 심각한 마찰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장래의 진로 문제로 인하여 심각한 위기 상황에 놓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원치 않는 질병으로 고통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때에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을 위하여 많은 시간을 보내어 보십시오.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의 특징은 돈과 권력을 의지합니다. 그러나 돈을 의지하면 돈이 해줄 수 있는 일만 할 수 있고, 인맥을 의지하여 이 사람 저 사람 찾아다니며 줄을 서고 뇌물을 바치면 그 사람의 한계 내에서만 부분적으로만 해줄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일을 통하여 오히려 초라한 자신의 모습만 발견할 뿐입니다. 그러나 기도를 의지하면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연구한 본문 역대하 16: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신다"는 보편적인 규칙을 기억하십시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어떤 문제를 만나든지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어떤 문제를 만날 때 당황하지 마십시오. 어려운 일을 만나면 "내가 과거에 만난 하나님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구나."라고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이 일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은혜를 경험하게 하는 기회구나."라고 생각하고 기도하십시오. 전심으로 여호와를 의지하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바로 그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서론에서 프란시스 쉐퍼 박사의 말을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만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초월자로 계셔서 우리 눈에 확인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침묵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 본문에서 연구한 것처럼 하나님은 분명히 존재하시고 온 세상을 감찰하시며 전심으로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에게 능력을 베풀어주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를 의지하십시오. 기도하는 일에 시간을 보내어 보십시오. 이것이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경험하는 방법입니다. 여호와의 능력이 어떤 방법으로 전달되는지 우리 성도들이 꼭 경험해 보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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