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기야의 기도 (왕하19:1-37)
본문
우리는 다음 주간 한 주간 동안 "특별 새벽기도회"를 가지려고 합니다. 우리 교회가 여러 차례 이러한 기도회를 하면서 교회의 당면한 문제들과 우리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 그리고 국가적인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우리가 기도회에 참여하여 진지하게 기도할 때 여호와 하나님이 어떻게 응답해 주셨는지를 경험한 성도들이 많이 있고, 우리 교회의 문제들 역시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번에도 우리 성도들이 이러한 영적인 체험들, 하나님과 만나는 신비한 세계에 들어가 보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기도회에 참여함으로 기도의 중요성을 배우고 훈련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독교 서점에 가보면 기도에 관한 이론서나 실제적인 지침서와 간증서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이론서들을 읽을 때 가슴에 기도할 마음이 막 생겨나기 시작하는 것을 경험하곤 합니다. 특히 E. M. 바운즈의 기도의 능력 이나 무명의 그리스도인이 지은 무릎으로 사는 그리스도인 이라는 책을 읽으면 더욱 우리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만듭니다. 기도할 때 세상에서 전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이 주시는 환상의 세계를 보게 되거든요. 기도는 하나님의 임재를 가장 실제적으로 체험하게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위로하시는 하나님, 때로는 전능하신 하나님, 때로는 치료하시는 하나님, 때로는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만나 신비로운 교제를 누리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 조차도 스스로의 노력으로 거룩해 지고 주의 계명을 잘 지켜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럴수록 신앙생활은 종교에 얽매이게 되고 피곤하고 힘들어진다는 것을 아세요 믿음생활도 결국은 하나님의 은혜요 기도와 맞물려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구약에서 기도의 사람 가운데 히스기야의 기도를 연구하면서 "나도 기도하는 일에 시간을 내어야겠다"는 결심들이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연구할 본문의 주제는 기도는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 주제를 좀 더 분명하게 이해하기 위하여 첫 번째로는 히스기야가 기도하게 된 역사적 배경, 두 번째로는 히스기야의 기도내용, 세 번째로는 기도의 결과, 네 번째로는 히스기야의 기도와 우리와의 상관관계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역사적 배경 지난 몇 달 동안 새벽 기도회 시간에 사무엘상하와 열왕기상하를 본문으로 기도회를 하였습니다. 사람이 나오든 나오지 않든 꾸준히 차례대로 합니다. 요즘 열왕기하를 하고 있는데, 그 내용이 너무 재미가 있어서 앞의 일이 어떻게 전개가 될는지 궁금하여 앞에까지 막 읽어버렸습니다. 이 역사서들을 읽다가 세상의 역사는 인간이 만들어가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그 뜻대로 통치하신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된 후에 몇 번의 종교개혁이 있었습니다. 그 종교개혁은 아사, 히스기야, 요시아 왕이 통치하던 시대에 일어납니다. 이 종교개혁이 있을 때마다 나라가 부흥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부흥은 모두 우상 숭배하는 일을 그치고 하나님의 말씀에 돌아올 때였습니다. 그리고 그 부흥의 시대마다 공통적으로 기도하는 일도 같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이 본문에 나오는 히스기야 시대에도 종교개혁 운동과 함께 부흥운동이 함께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특별히 오늘 히스기야 시대에 있었던 한 사건을 중심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히스기야는 기원전 715-685년 어간에 만 29년을 유다를 다스린 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에드윈 딜레의 히브리 왕들의 연대기 참조). 그러나 런던 대학의 명예 교수인 와이즈맨(Donald J. Wiseman)은 기원전 727-698년으로 보고 있습니다. 와이즈맨 교수의 견해가 성경에 근거한 것입니다. 일반적인 연대는 성경의 연대와 차이점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열왕기하 18:9-10의 말씀을 보면 그의 재위 6년에 북쪽 이스라엘이 앗수르의 살만에셀에 의해 멸망을 당한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 사년 곧 이스라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칠년에 앗수르 왕 살만에셀이 사마리아로 올라와서 에워쌌더라. 삼년 후에 그 성이 함락되니 곧 히스기야의 육년이요 이스라엘 왕 호세아의 구년이라. 사마리아가 함락되매" 열왕기상에 나타난 연대기로는 히스기야가 살았던 당시 세계는 모든 일이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변화가 심했던 격동의 시대였습니다. 이 때 앗수르가 세계를 지배하려고 남쪽으로 팽창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 왕 재위 14년, 즉 기원전 701년경에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18만5천명이라는 대군을 이끌고 유다를 침공하여 유다의 여러 성들을 점령하였습니다(왕상19:35; 참고. 사36:1; 37:36). 히스기야는 이 상황에서 산헤립에게 사람을 보내어 더 이상 나라를 침공하지 말아 줄 것을 부탁하고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오늘날로 말하면 외교적인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입니다. 그 때에 앗수르는 히스기야에게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요구하였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금액입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궁전과 성전에 있는 모든 은을 다 모아서 주었고, 심지어 성전의 문과 기둥에 있는 금까지 다 벗겨서 주었습니다(왕하18:14-16). 하지만 앗수르 왕 산헤립은 이것을 다 받고는 대군을 거느리고 다시 쳐들어왔습니다. 나라의 운명은 바람 앞에 등불과 같았습니다. 모든 외교적인 노력이 소용이 없었습니다. 산헤립이 요구한 치욕적인 요구를 수용하였는데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만약에 이러한 상황을 여러분이 맞이하였다면 어떻게 하였을까요 우리의 자녀들의 문제나 직장의 문제, 또한 개인의 운명이 결정되는 중요한 사건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에 어떻게 할까요 근래에 우리 나라는 경제위기 관리체제 아래에서 경제가 큰 어려움 가운데 빠지게 됨으로 많은 중소기업이 부도가 나게 되었습니다. 이 가운데 이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여 자살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해결방법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직접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다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생애에 있어서 어려운 문제들은 항상 만나게 됩니다. 이간이 모든 노력을 다하여도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을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온 천하의 운명을 결정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 때에 히스기야는 이 대군을 앞에 놓고 백성들과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당시에 선지자였던 이사야 선지자도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였을 때 성을 쌓고, 병기와 방패들을 많이 만들어 전쟁에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적절한 사람들을 세워서 온 나라를 전시체제로 운영하였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의지할 것을 호소하였습니다. 기도만 하고 인간이 행해야 할 기본적인 의무를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이 내용이 역대하 32:1-8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세력을 내어 퇴락한 성을 중수하되 망대까지 높이 쌓고, 또 외성을 쌓고 다윗성의 밀로를 견고케 하고, 병기와 방패를 많이 만들고, 군대장관을 세워 백성을 거느리게 하고, 성문 광장 자기에게로 무리를 모으고 말로 위로하여 가로되,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하며 담대히 하고 앗수르 왕과 그 좇는 온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하는 자가 저와 함께 하는 자보다 크니, 저와 함께 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 하는 자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하매 백성이 유다왕 히스기야의 말로 인하여 안심하니라." 그러나 이 때에 앗수르 왕 산헤립은 오늘날 북한이 대남방송을 하듯이 히스기야의 말을 믿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 중에 앗수르 왕 산헤립의 신하 랍사게라는 사람이 히스기야의 말에 속지 말라고 하면서 유대 사람들의 말로 하나님을 모욕하였습니다. 그 내용이 열왕기하 18:19-35에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말의 핵심이 열왕기하 18:28-31에 나타나 있습니다. "랍사게가 드디어 일어서서 유다 방언으로 크게 소리질러 불러 가로되 너희는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을 들으라. 왕의 말씀이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 저가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내지 못하리라. 또한 히스기야가 너희로 여호와를 의뢰하라 함을 듣지 말라. 저가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정녕 우리를 건지실지라. 이 성이 앗수르 왕의 손에 함락되지 않게 하시리라 할지라도 너희는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라. 앗수르 왕의 말씀이 너희는 내게 항복하고 내게로 나아오라. 그리하고 너희는 각각 그 포도와 무화과를 먹고 또한 각각 자기의 우물의 물을 마시라." 특히 열왕기하 18:35에 보면 하나님을 모욕하면서 그들이 정복한 나라들의 신들도 구원하지 못했는데 여호와가 어떻게 구원하겠느냐고 조롱하였습니다. "열국의 모든 신 중에 누가 그 땅을 내 손에서 건졌기에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 하셨느니라." 이 말의 핵심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자기의 손에서 구원해 주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자기에게 투항해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히스기야가 기도한 당시의 역사적인 배경입니다.
2. 히스기야의 기도내용 이러한 역사에서 히스기야는 앗수르왕 산헤립의 말을 듣고 히스기야는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면서 당시의 선지자 중에 한 사람이었던 이사야 선지자에게 사람을 보내어 그 상황을 설명하였습니다. 그는 지금의 상황에서 우리가 가진 자원으로는 어떻게 해 볼 힘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해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왕하19:3-5). 이 이야기를 들은 이사야 선지자는 놀라운 예언의 말씀을 주었습니다. 열왕기하 19:6-7을 보십시오. "이사야가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의 주에게 이렇게 고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앗수르 왕의 신복에게 들은 바 나를 능욕하는 말은 인하여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한 영을 저희 속에 두어 저로 풍문을 듣고 그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고, 또 본국에서 저로 칼로 죽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이사야의 이 예언의 말씀대로 구스왕 디르하가(Tirhakah)가 풍문으로 쳐들어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왕하19:9). 그는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앗수르 왕 산헤립은 다시 글을 써서 히스기야에게 보내었습니다. 열왕기하 19:10-12을 보십시오. "너희는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이같이 말하여 이르기를 너의 의뢰하는 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앗수르 왕에게 붙이지 않겠다는 말에 속지 말라. 앗수르의 열왕이 열방에 행한 바 진멸한 일을 네가 들었나니 네가 어찌 구원을 얻겠느냐 내 열조가 멸하신 열방 곧 고산과 하란과 레셉과 스발와임 성의 왕과 헤나와 아와의 왕들이 다 어디 잇느냐 하라 하니라." 그는 앗수르가 여러 나라를 정복한 일을 언급하면서 그 나라들이 섬기는 신들이 구원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정복한 나라들의 이름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이 의미는 역시 유다도 자기의 손에서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편지를 받은 히스기야는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서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놓고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히스기야의 기도내용이 열왕기하 19:15-19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 앞에서 기도하여 가로되 '그룹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조성하셨나이다.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옵소서. 산헤립이 사신 하나님을 훼방하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 여호와여 앗수르 열왕이 과연 열방과 그 땅을 황폐케 하고 또 그 신들을 불에 던졌사오니 이는 저희가 신이 아니요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 곧 나무와 돌뿐이므로 멸하였나이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이제 우리를 그 손에서 그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만국이 주 여호와는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하니라." 이 기도를 보면 기도의 일정한 형식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지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지금 당면한 역사적 현실을 아뢰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하나님께서 그 상황에서 구원해 주시도록 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 역시 이러한 형식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지를 알고 고백하는 신앙고백을 한 다음에 거기에 대한 감사와 찬양을 드리고, 그 다음에 우리의 필요를 구하는 것이 일반적인 기도의 형식입니다. 히스기야의 기도의 핵심적인 내용은 온 천하 만국이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된 신이심을 알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른 나라들의 신들처럼 나무와 돌로 만든 죽은 신이 아니라 살아계셔서 역사를 통치하시는 참된 신이심을 증명해 달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 상황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3. 기도의 결과 그러면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셨을까요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만날 때 교회당에 앞드려 기도하는 사람을 보면 어떠한 모습으로 비칩니까 히스기야가 처한 상황처럼 우리가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히스기야가 한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하셨는지를 보면서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지를 배우십시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한 천사를 보내어 18만5천이나 되는 대군을 전멸시켰습니다. 우리는 한 천사가 어떻게 이 대군을 전멸시켰는지 알지 못합니다. 유명한 구약 역사학자인 존 브라이트(John Bright)는 그의 유명한 책 이스라엘의 역사 라는 책에서 역사가 헤로도투스(Herodotus)의 문헌을 인용하여 쥐로 인하여 생기는 페스트로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은 현대에서도 많이 입증될 수 있는 일입니다. 페스트나 전염병, 또는 음식물로 인하여 집단 식중독으로 이렇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는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히스기야와 나라를 산헤립의 군대에서 구원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뿐만 아니라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것처럼 앗수르 왕 산헤립이 그 고국으로 돌아가서 그의 부하에 의해 살해를 당하였습니다(왕하19:37). 이렇게 하심으로 하나님을 모욕하는 사람들을 심판하시고 그 예언의 말씀대로 이루신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이 기도의 능력입니다. 이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지를 분명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분명한 것은 기도를 통하여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였다는 것입니다.
4. 히스기야의 기도와 우리 우리는 오늘 히스기야가 기도하게 된 역사적인 배경과 그 상황에서 어떻게 기도하였으며, 그 기도에 대하여 어떻게 응답하셨는지의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내용을 보면서 기도할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기도의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 절대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기도하는 일에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해외선교부"(Overseas Missionary Fellowship)의 고문으로 일하고 있는 오스왈드 센더스(J. O. Sanders) 목사님은 그가 쓴 영적지도력 이라는 책에서 기도를 훈련하기 위하여 시간을 내어야 한다는 점을 이렇게 강조하였습니다. "다른 어떤 기술처럼 기도의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서도 시간을 가져야 하고, 기도의 중요성에 대한 우리의 생각만큼 많은 시간을 할당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항상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하여는 시간을 찾으려고 궁리한다. 대부분의 경우 기도하는데 너무 짧은 시간을 보내는 이유 중의 하나는 꽉 짜여진 많은 다른 일들 때문이다." 우리가 기도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다면 이 기도에 능숙해 지기 위해서 훈련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새벽에 자주 한적한 곳을 찾으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앞서간 우리 믿음의 조상들도 거의 새벽 시간을 기도하는 일에 보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하루에 세 시간을 기도하는 일에 보내었다고 하는 것은 잘 알려진 일입니다. 그 세 시간 중에 아침 시간에 두 시간을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만약에 내가 매일 아침 두 시간을 기도하지 않으면 그날은 사탄이 나의 하루를 지배해 버릴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하는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하루 세 시간을 기도하는 일에 보내지 않으면 도저히 다른 일을 하나도 할 수 없다."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오히려 바쁘다는 이유로 기도하지 않지 않습니까 우리는 바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있을수록 기도하는 일에 더많은 시간을 보내어야 합니다. 그러면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는 이론을 아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히스기야처럼 기도하는 일에 시간을 보낼 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버어마(미얀마)의 선교사였던 아도니람 저드슨은 기도하는 일을 위하여 하루에 일곱 차례식 기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것은 기도가 신자의 생활에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러한 믿음의 선진들에게 대한 이야기를 듣고 용기를 얻기보다는 오히려 우리는 할 수 없다고 실망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자신의 부족을 자책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기도로 나아갈 때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시는 성령님이 우리의 기도를 도우실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기도로 나아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기도생활은 연습이 필요합니다. 이번에 우리 교회에서 하는 "특별새벽기도회"를 통하여 기도를 연습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기회로 삼으십시오. 그러면 왜 앞서간 믿음의 조상들이 기도하기를 그렇게 힘썼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가장 실제적이고 직접적인 방법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위로하시는 하나님, 때로는 전능하신 하나님, 때로는 치료하시는 하나님, 때로는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만나 신비로운 교제를 누리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 조차도 스스로의 노력으로 거룩해 지고 주의 계명을 잘 지켜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럴수록 신앙생활은 종교에 얽매이게 되고 피곤하고 힘들어진다는 것을 아세요 믿음생활도 결국은 하나님의 은혜요 기도와 맞물려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구약에서 기도의 사람 가운데 히스기야의 기도를 연구하면서 "나도 기도하는 일에 시간을 내어야겠다"는 결심들이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연구할 본문의 주제는 기도는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 주제를 좀 더 분명하게 이해하기 위하여 첫 번째로는 히스기야가 기도하게 된 역사적 배경, 두 번째로는 히스기야의 기도내용, 세 번째로는 기도의 결과, 네 번째로는 히스기야의 기도와 우리와의 상관관계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역사적 배경 지난 몇 달 동안 새벽 기도회 시간에 사무엘상하와 열왕기상하를 본문으로 기도회를 하였습니다. 사람이 나오든 나오지 않든 꾸준히 차례대로 합니다. 요즘 열왕기하를 하고 있는데, 그 내용이 너무 재미가 있어서 앞의 일이 어떻게 전개가 될는지 궁금하여 앞에까지 막 읽어버렸습니다. 이 역사서들을 읽다가 세상의 역사는 인간이 만들어가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그 뜻대로 통치하신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된 후에 몇 번의 종교개혁이 있었습니다. 그 종교개혁은 아사, 히스기야, 요시아 왕이 통치하던 시대에 일어납니다. 이 종교개혁이 있을 때마다 나라가 부흥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부흥은 모두 우상 숭배하는 일을 그치고 하나님의 말씀에 돌아올 때였습니다. 그리고 그 부흥의 시대마다 공통적으로 기도하는 일도 같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이 본문에 나오는 히스기야 시대에도 종교개혁 운동과 함께 부흥운동이 함께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특별히 오늘 히스기야 시대에 있었던 한 사건을 중심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히스기야는 기원전 715-685년 어간에 만 29년을 유다를 다스린 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에드윈 딜레의 히브리 왕들의 연대기 참조). 그러나 런던 대학의 명예 교수인 와이즈맨(Donald J. Wiseman)은 기원전 727-698년으로 보고 있습니다. 와이즈맨 교수의 견해가 성경에 근거한 것입니다. 일반적인 연대는 성경의 연대와 차이점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열왕기하 18:9-10의 말씀을 보면 그의 재위 6년에 북쪽 이스라엘이 앗수르의 살만에셀에 의해 멸망을 당한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 사년 곧 이스라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칠년에 앗수르 왕 살만에셀이 사마리아로 올라와서 에워쌌더라. 삼년 후에 그 성이 함락되니 곧 히스기야의 육년이요 이스라엘 왕 호세아의 구년이라. 사마리아가 함락되매" 열왕기상에 나타난 연대기로는 히스기야가 살았던 당시 세계는 모든 일이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변화가 심했던 격동의 시대였습니다. 이 때 앗수르가 세계를 지배하려고 남쪽으로 팽창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 왕 재위 14년, 즉 기원전 701년경에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18만5천명이라는 대군을 이끌고 유다를 침공하여 유다의 여러 성들을 점령하였습니다(왕상19:35; 참고. 사36:1; 37:36). 히스기야는 이 상황에서 산헤립에게 사람을 보내어 더 이상 나라를 침공하지 말아 줄 것을 부탁하고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오늘날로 말하면 외교적인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입니다. 그 때에 앗수르는 히스기야에게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요구하였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금액입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궁전과 성전에 있는 모든 은을 다 모아서 주었고, 심지어 성전의 문과 기둥에 있는 금까지 다 벗겨서 주었습니다(왕하18:14-16). 하지만 앗수르 왕 산헤립은 이것을 다 받고는 대군을 거느리고 다시 쳐들어왔습니다. 나라의 운명은 바람 앞에 등불과 같았습니다. 모든 외교적인 노력이 소용이 없었습니다. 산헤립이 요구한 치욕적인 요구를 수용하였는데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만약에 이러한 상황을 여러분이 맞이하였다면 어떻게 하였을까요 우리의 자녀들의 문제나 직장의 문제, 또한 개인의 운명이 결정되는 중요한 사건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에 어떻게 할까요 근래에 우리 나라는 경제위기 관리체제 아래에서 경제가 큰 어려움 가운데 빠지게 됨으로 많은 중소기업이 부도가 나게 되었습니다. 이 가운데 이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여 자살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해결방법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직접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다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생애에 있어서 어려운 문제들은 항상 만나게 됩니다. 이간이 모든 노력을 다하여도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을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온 천하의 운명을 결정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 때에 히스기야는 이 대군을 앞에 놓고 백성들과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당시에 선지자였던 이사야 선지자도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였을 때 성을 쌓고, 병기와 방패들을 많이 만들어 전쟁에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적절한 사람들을 세워서 온 나라를 전시체제로 운영하였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의지할 것을 호소하였습니다. 기도만 하고 인간이 행해야 할 기본적인 의무를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이 내용이 역대하 32:1-8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세력을 내어 퇴락한 성을 중수하되 망대까지 높이 쌓고, 또 외성을 쌓고 다윗성의 밀로를 견고케 하고, 병기와 방패를 많이 만들고, 군대장관을 세워 백성을 거느리게 하고, 성문 광장 자기에게로 무리를 모으고 말로 위로하여 가로되,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하며 담대히 하고 앗수르 왕과 그 좇는 온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하는 자가 저와 함께 하는 자보다 크니, 저와 함께 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 하는 자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하매 백성이 유다왕 히스기야의 말로 인하여 안심하니라." 그러나 이 때에 앗수르 왕 산헤립은 오늘날 북한이 대남방송을 하듯이 히스기야의 말을 믿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 중에 앗수르 왕 산헤립의 신하 랍사게라는 사람이 히스기야의 말에 속지 말라고 하면서 유대 사람들의 말로 하나님을 모욕하였습니다. 그 내용이 열왕기하 18:19-35에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말의 핵심이 열왕기하 18:28-31에 나타나 있습니다. "랍사게가 드디어 일어서서 유다 방언으로 크게 소리질러 불러 가로되 너희는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을 들으라. 왕의 말씀이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 저가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내지 못하리라. 또한 히스기야가 너희로 여호와를 의뢰하라 함을 듣지 말라. 저가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정녕 우리를 건지실지라. 이 성이 앗수르 왕의 손에 함락되지 않게 하시리라 할지라도 너희는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라. 앗수르 왕의 말씀이 너희는 내게 항복하고 내게로 나아오라. 그리하고 너희는 각각 그 포도와 무화과를 먹고 또한 각각 자기의 우물의 물을 마시라." 특히 열왕기하 18:35에 보면 하나님을 모욕하면서 그들이 정복한 나라들의 신들도 구원하지 못했는데 여호와가 어떻게 구원하겠느냐고 조롱하였습니다. "열국의 모든 신 중에 누가 그 땅을 내 손에서 건졌기에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 하셨느니라." 이 말의 핵심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자기의 손에서 구원해 주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자기에게 투항해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히스기야가 기도한 당시의 역사적인 배경입니다.
2. 히스기야의 기도내용 이러한 역사에서 히스기야는 앗수르왕 산헤립의 말을 듣고 히스기야는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면서 당시의 선지자 중에 한 사람이었던 이사야 선지자에게 사람을 보내어 그 상황을 설명하였습니다. 그는 지금의 상황에서 우리가 가진 자원으로는 어떻게 해 볼 힘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해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왕하19:3-5). 이 이야기를 들은 이사야 선지자는 놀라운 예언의 말씀을 주었습니다. 열왕기하 19:6-7을 보십시오. "이사야가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의 주에게 이렇게 고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앗수르 왕의 신복에게 들은 바 나를 능욕하는 말은 인하여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한 영을 저희 속에 두어 저로 풍문을 듣고 그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고, 또 본국에서 저로 칼로 죽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이사야의 이 예언의 말씀대로 구스왕 디르하가(Tirhakah)가 풍문으로 쳐들어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왕하19:9). 그는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앗수르 왕 산헤립은 다시 글을 써서 히스기야에게 보내었습니다. 열왕기하 19:10-12을 보십시오. "너희는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이같이 말하여 이르기를 너의 의뢰하는 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앗수르 왕에게 붙이지 않겠다는 말에 속지 말라. 앗수르의 열왕이 열방에 행한 바 진멸한 일을 네가 들었나니 네가 어찌 구원을 얻겠느냐 내 열조가 멸하신 열방 곧 고산과 하란과 레셉과 스발와임 성의 왕과 헤나와 아와의 왕들이 다 어디 잇느냐 하라 하니라." 그는 앗수르가 여러 나라를 정복한 일을 언급하면서 그 나라들이 섬기는 신들이 구원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정복한 나라들의 이름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이 의미는 역시 유다도 자기의 손에서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편지를 받은 히스기야는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서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놓고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히스기야의 기도내용이 열왕기하 19:15-19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 앞에서 기도하여 가로되 '그룹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조성하셨나이다.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옵소서. 산헤립이 사신 하나님을 훼방하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 여호와여 앗수르 열왕이 과연 열방과 그 땅을 황폐케 하고 또 그 신들을 불에 던졌사오니 이는 저희가 신이 아니요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 곧 나무와 돌뿐이므로 멸하였나이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이제 우리를 그 손에서 그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만국이 주 여호와는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하니라." 이 기도를 보면 기도의 일정한 형식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지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지금 당면한 역사적 현실을 아뢰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하나님께서 그 상황에서 구원해 주시도록 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 역시 이러한 형식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지를 알고 고백하는 신앙고백을 한 다음에 거기에 대한 감사와 찬양을 드리고, 그 다음에 우리의 필요를 구하는 것이 일반적인 기도의 형식입니다. 히스기야의 기도의 핵심적인 내용은 온 천하 만국이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된 신이심을 알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른 나라들의 신들처럼 나무와 돌로 만든 죽은 신이 아니라 살아계셔서 역사를 통치하시는 참된 신이심을 증명해 달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 상황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3. 기도의 결과 그러면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셨을까요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만날 때 교회당에 앞드려 기도하는 사람을 보면 어떠한 모습으로 비칩니까 히스기야가 처한 상황처럼 우리가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히스기야가 한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하셨는지를 보면서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지를 배우십시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한 천사를 보내어 18만5천이나 되는 대군을 전멸시켰습니다. 우리는 한 천사가 어떻게 이 대군을 전멸시켰는지 알지 못합니다. 유명한 구약 역사학자인 존 브라이트(John Bright)는 그의 유명한 책 이스라엘의 역사 라는 책에서 역사가 헤로도투스(Herodotus)의 문헌을 인용하여 쥐로 인하여 생기는 페스트로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은 현대에서도 많이 입증될 수 있는 일입니다. 페스트나 전염병, 또는 음식물로 인하여 집단 식중독으로 이렇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는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히스기야와 나라를 산헤립의 군대에서 구원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뿐만 아니라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것처럼 앗수르 왕 산헤립이 그 고국으로 돌아가서 그의 부하에 의해 살해를 당하였습니다(왕하19:37). 이렇게 하심으로 하나님을 모욕하는 사람들을 심판하시고 그 예언의 말씀대로 이루신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이 기도의 능력입니다. 이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지를 분명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분명한 것은 기도를 통하여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였다는 것입니다.
4. 히스기야의 기도와 우리 우리는 오늘 히스기야가 기도하게 된 역사적인 배경과 그 상황에서 어떻게 기도하였으며, 그 기도에 대하여 어떻게 응답하셨는지의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내용을 보면서 기도할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기도의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 절대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기도하는 일에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해외선교부"(Overseas Missionary Fellowship)의 고문으로 일하고 있는 오스왈드 센더스(J. O. Sanders) 목사님은 그가 쓴 영적지도력 이라는 책에서 기도를 훈련하기 위하여 시간을 내어야 한다는 점을 이렇게 강조하였습니다. "다른 어떤 기술처럼 기도의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서도 시간을 가져야 하고, 기도의 중요성에 대한 우리의 생각만큼 많은 시간을 할당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항상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하여는 시간을 찾으려고 궁리한다. 대부분의 경우 기도하는데 너무 짧은 시간을 보내는 이유 중의 하나는 꽉 짜여진 많은 다른 일들 때문이다." 우리가 기도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다면 이 기도에 능숙해 지기 위해서 훈련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새벽에 자주 한적한 곳을 찾으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앞서간 우리 믿음의 조상들도 거의 새벽 시간을 기도하는 일에 보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하루에 세 시간을 기도하는 일에 보내었다고 하는 것은 잘 알려진 일입니다. 그 세 시간 중에 아침 시간에 두 시간을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만약에 내가 매일 아침 두 시간을 기도하지 않으면 그날은 사탄이 나의 하루를 지배해 버릴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하는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하루 세 시간을 기도하는 일에 보내지 않으면 도저히 다른 일을 하나도 할 수 없다."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오히려 바쁘다는 이유로 기도하지 않지 않습니까 우리는 바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있을수록 기도하는 일에 더많은 시간을 보내어야 합니다. 그러면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는 이론을 아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히스기야처럼 기도하는 일에 시간을 보낼 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버어마(미얀마)의 선교사였던 아도니람 저드슨은 기도하는 일을 위하여 하루에 일곱 차례식 기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것은 기도가 신자의 생활에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러한 믿음의 선진들에게 대한 이야기를 듣고 용기를 얻기보다는 오히려 우리는 할 수 없다고 실망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자신의 부족을 자책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기도로 나아갈 때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시는 성령님이 우리의 기도를 도우실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기도로 나아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기도생활은 연습이 필요합니다. 이번에 우리 교회에서 하는 "특별새벽기도회"를 통하여 기도를 연습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기회로 삼으십시오. 그러면 왜 앞서간 믿음의 조상들이 기도하기를 그렇게 힘썼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가장 실제적이고 직접적인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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