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성장을 위하여 겸손하라 (삼상3:1-9,벧전2:1-3,마18:1-6)
본문
매주 금요일마다 KBS2 TV에서 방영되고 있는 〈포청천〉이라는 중 국 드라마는, 그 구성이 아주 단순합니다. 극의 내용이 어떻게 진행될까 하고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되는, 국민학생이라도 그 결말을 훤히 내다볼 수 있는, 간단명료한 드라마입니다. 처음부터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시청자는 그것을 알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악인이 혹 득세를 하여도 염려할 필 요 없습니다. 거의 100% 확실하게 범인을 잡아들여서 처단하는 심판관 〈포대인〉이라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 편의 드라마가 끝나기까지 범인은 쉽게 잡히지 않고, 엉뚱하게도 선한 사람이 고난을 당합니다. 차라리 범인이 누군지 시청자가 몰랐다 면 몰라도, 범인이 누군 지를 뻔히 아는 시청자로서는, 선한 사람이 애 매하게 고난을 당할 때마다 안타까워합니다. 하지만, 그리 오래도록 마음을 애태울 필요는 없습니다. 〈포대인〉
이 틀림없이 범인을 잡아내어 아주 시원스럽게 처단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즘에는 볼 수 없는 사형 제도인 작두에다가 머리를 들이밀게 하 고는 범인의 목을 싹둑 잘라 사형을 시킵니다. 그럴 때마다, 시청자는 가슴이 후련해지는 쾌감을 갖게 될 것입니다. 마치 자기 자신이 그 범인에게 오랫동안 괴롭힘을 당한 것으로 착각을 하고 말입니다. 아니면, 지금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원수가 바로 그 범 인과 같은 인물인 것으로 동일시하고, 그런 느낌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이 복잡한 세상에서, 인생살이에 시달리고 있는 많은 사람들 에게, 다른 드라마와는 달리 포청천은 거꾸로 단순한 이분법 논리로 사람 들에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내용이 권선징악적이어서 좀 유 치스럽기는 하지만, 아무 것이나 더 복잡하게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요즘 사람들에게, 이 드라마는 어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인생이 정말 그 드라마처럼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세상에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이 뚜렷이 구분되어 있고, 그 선한 사람 속에 내가 끼여 있어서, 언제 가는 포대인 같은 사람이 나타나서 그 악한 무리를 심판하는 것으로 결말이 나는, 그런 인생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인생은 처음부터 끝까지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으로 구분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심판 받아 멸망 받을 사람 이 따로 있고, 아무렇게나 살아도 구원받아 천국 갈 사람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제까지 신앙생활을 잘하던 사람이 오늘 악마로 변할 수가 있는 것 이고, 지금은 아주 나쁜 짓만 해서 지탄받고 있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 기 새 사람이 되어 칭찬 받으며 살수도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는다는 말은, 그 말이 완성형이 아니고 진행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를 알고 믿는다는 말은, 예수께서 가르치신 진리를 알고 받아들여 그 진리 따라 산다는 말입니다. 곧, 예수께서 말씀하시고 살아가신 그 길이 길이요 진리이며 생명이 됨 을 믿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 길을 가다가 예수를 부인하고 진리를 거부하면, 구원과는 상관이 없게 됩니다. 혹 입으로는 예수를 찾고 있을지라도, 그 행동이 진리와 거리가 멀 때에는, 진정한 의미로 예수를 믿는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정말 예수를 믿는다면, 늘 새롭게 진리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진리 따라 살아가려고 몸부림쳐야 합니다.
예수는 생명이 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부인하면 죽음의 길 을 가게 되는 것이고, 예수를 믿고 따르면 생명의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생명의 길을 계속 가려면, 항상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 울여 합니다. 그래야 영적으로 성숙해지고 온전해져서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예수 를 믿으면 그 순간 하나님 나라에 완전히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고 되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게 되었다면, 그것은 구원의 길에 들어섰다는 말이 지, 구원의 완성이 이루어졌다는 말은 아닙니다. 물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우리의 능력이나 지혜로써가 아닙니다. 진리가 되시는 예수로만 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다 들어갈 때까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야만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되, 열 살에 믿게 되었던지 50세에 믿었 든 지간에, 영적으로는 다 어린아이가 되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를 믿고 살되, 계속 영적으로 자라지 않으면 어린아이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린아이가 엄마의 젖을 사모하며 찾듯이, 계속 말씀을 사모하며 그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먹어야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 선생님은 베드로전서 2장 3절에서 자신의 구원이 완성되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의 젖을 사모하라 고 했습니다.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고 그 말씀 안에서 살아가려고 애써야, 영적으 로 꾸준히 성장하게 되어 하나님 나라 들어가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의 젖을 잘 먹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확실히 구 별됩니다. 말씀을 늘 가까이 하여 그 말씀을 제대로 공급받는 사람은, 해가 갈 수록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 갑니다. 더욱 겸손해지고 교회 일에 열심하 며, 사회 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봉사하게 됩니다. 그 얼굴에도 밝 은 모습으로 그 성숙미가 자연스럽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에 게 포근한 느낌을 줍니다. 또한 말씨에도 그 성숙함이 나타나게 되어, 억지를 쓰지 않아도 그 말에 위엄이 있어서, 아래 사람이 그 말을 거역 할 수 없게끔 합니다. 하지만,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고 연륜만 쌓은 사람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구태여 여기서 그 사실들을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누구나 온전한 인격과 성품을 지니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 송 받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그만 어떻게 하다가 세월만 보내고 영적으 로 성장을 하지 못하여, 자신도 미워하고 다른 사람들도 싫어하는, 잘못 된 신앙인이 되 고 만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들 중에는, 자신이 그렇다 고 여겨서 고민하는 분들이 없지 않아 있을 줄 압니다. 아니, 우리는 모두가 이런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더욱 발전 할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나는 아직도 어리다'고 생각을 해야, 말씀을 사모하면서 새로운 영적 발전을 도모할 수가 있습니다.
1.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영적으로 성장하는 일에 신경 을 쓰지 않고 있습니다. 포청천에서처럼 이미 악인과 선인이 정해져 있어서, 포대인의 명석한 심판만 기다려야 한다면, 우리는 새로운 노력을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 갈 때까지 주 님을 닮아 가야 합니다. 주님 닮는 일을 중단하면, 노력을 하지 않아도 우리는 악마를 닮게 되어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예의 범절은 열심히 가르쳐도 잘 익히지 못하지만, 욕 설은 가르치는 일이 없어도 잘 배우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람들이 처음 예수를 믿게 되어 교회를 다니게 될 때에, 말씀과 기도의 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자연스레 교회에서 못된 것만 배우게 되어 있습니다. 좋은 점은 열심히 노력을 해도 익히기가 힘든 반면, 나 쁜 것은 힘들이지 않아도 배우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겸손을 배워야 할 교회에서 교만만 늘어, 가룟 유다처럼 불 행한 사람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유다가 돈주머니를 맡은 정도로 예수님의 신임을 받던 사람이었지만, 거듭나기를 계속하지 않은 까닭에, 그런 불행을 자초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앞길은 예측 불허입니다. 사울이 바울로 변하는 그런 변화가 있을 수 있고, 유다처럼 타락하여 불행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바울처럼 되기를 원합니다. 아니면, 베드로처럼 예수 를 부인하는 죄를 지었을지라도, 그가 다시 돌아와 주를 위하여 충성한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구약 사무엘상 3장에 나오는 두 인물, 사무엘과 엘리 제사장을 자연스레 비교하면서, 주님이 원하는 인물이 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엘리 제사장과 사무엘은 여러 면에서 비교가 됩니다.
ㄱ.엘리 제사장은 늙고 어두워, 앞을 못 본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무 슨 일을 할 수가 있겠느냐고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비록 나이가 들어 앞을 잘 보지 못한다 할지라도, 기도하는 일만큼은 젊었을 때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러나 엘리 제사장은, 어린 사무엘이 성소에 있는 법궤 옆에서 자 고 있을 때에, 자기는 자신의 침실에서 자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까, 사무엘은 기도하다가 잔 것이고 엘리는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던 것입니다.
ㄴ.3장 1절을 보면, 사무엘이 제사장의 일을 정성껏 수행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엘리 제사장에 대해서는 그런 말이 없습니다. 결국 엘리 제사장은 마지못해 그 직무를 수행한 것이고, 사무엘은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던 것입니다.
ㄷ.하나님의 음성을 사무엘은 들었으나, 엘리 제사장은 듣지 못했습니다. 하기사 엘리 제사장은 기도하는 한나를 보고도 술취한 여자로 볼 정 도로, 그의 영적인 감각은 무디어 있었습니다. 자식들이 타락하여 거룩 한 성소에서 비행을 저질러도, 어떻게 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아버지였 습니다. 평소에 사무엘은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의 음성 듣기를 소원했을 것 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몇 가지 교훈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1주의 직분 맡은 자이면서도, 은혜 받지 않은 사람처럼 살고 있 다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엘리가 제사장이 되기까지는, 나 름대로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룩한 직분까지 담당하 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은혜의 생활을 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겉늙었기 때 문입니다. 가룟 유다는 주님의 음성을 계속 귀 기울여 듣지를 않고, 자 기 판단에 따라 행동을 했다가 불행하게 되었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물론 육신 적으로도 늙었기도 하지만, 그 심령이 늙어 있었습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겉사람은 늙어질지라도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 했는데, 엘리 제사장은 속과 겉이 다 늙어 버리고 말았 습니다. 어떤 사람은 육신이 다 늙지도 않아서, 그 심령이 바싹 늙어 버린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도대체가 새 살이 돋아날 기미가 보이 지 않습니다. 새로운 변화가 전혀 일어날 기운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늙었다고 해서 말씀과 기도의 생활을 게을리 하고 있기 때문 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는 모든 것을 잘 알고 있다고 하면서, 새로운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교만을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상 영적으 로는 아직도 어린아이 티를 벗지 못하고 있으면서, 애늙은이 행세를 하 고 있는 꼴입니다.
2그런 사람은 그 관심이 하늘에 있지 않고 땅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을 열심히 좇아 다니면서도, "하늘나라에서 누가 제일 위대한가"고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건성 들었던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높아져서 섬김을 받는 곳이 아니고, 낮아져서 겸손히 섬기는 자의 세계라는 것을 누누이 들었으면서도, 그 들은 제자들끼리 서로 누가 더 높은가 하고 비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정말 딱한 일이지요. 지금도 어떤 교회에서는 서열을 따지고 계급을 찾고 있는 비극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회를 오래 다니면 다닐수록 말씀을 더 많이 배우게 되니, 더욱 겸손해져서 섬기는 생활을 해야 할 터 인데,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 현실입니다.
3그 결과, 어떻게 되겠습니까
ㄱ.마태복음에서처럼, 서로 더 누가 높으며 더 위대하냐고 비교하면 서 다투는 일이 생기고
ㄴ.베드로전서에 나오는 말씀처럼, 남을 깎아 내리려 모함을 하고 흉 보며, 시기 비방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튼 저를 비롯해서 누구든지 믿는 형제를 비방하거나 헐뜯게 되 면, 그것은 마귀가 시켜서 하는 짓임을 알아야 합니다. 마귀가 시켜서 하는 짓이지만, 그 책임은 본인이 감당해야 함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ㄷ.엘리 제사장은 끝내 회개를 하지 않음으 로 해서, 두 아들이 비 명횡사한 후에 고개가 부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2.하나님은, 말씀을 사모하면서 주의 일에 힘쓰는 자에게, 늘 새로 운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시편 25편 9절에 보면, 겸손한 자를 옳은 길로 인도하시며, 그들에 게 당신의 길을 가르치신다 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도 불 수 있듯이, 하나님께로부터 옳은 길로 인도함을 받고 그 길을 배우려면 겸손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ㄱ.갓난아이가 젖을 사모하듯이, 주를 사모하며 기다려야 합니다(벧 전2:3).
ㄴ.그리고,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낮추어야 합니다(마18:4).
1그러면, 하나님께서 새로운 말씀을 들려주셔서, 우리의 영적 성장을 위하여 도와주실 것입니다. 주의 백성인 성도들에게는, 어쩌니 저쩌니 해도 주의 말씀을 늘 새 롭게 공급받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적으로 굶주리게 되 어,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게끔 영적인 기력이 쇠약해집니다. 그러나 말씀을 새롭게 공급받게 되면, 어린아이가 젖을 먹고 무럭무 럭 성장하듯이 믿음이 쑥쑥 자라게 됩니다. 그래서 믿음의 일을 즐겁게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2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애쓰는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물론 말씀의 은혜를 입게 될 때에는 모든 일이 다 은혜롭게 됩니다. 그러나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힘쓰게 되면, 신비한 체험 까지도 경험하게 됩니다. 비정상적인 방법이 아닙니다. 지극히 정상적인 생활 속에서 하나님 의 역사를 발견하게 되고, 늘 접해 오던 일이지만 그 일을 통하여새삼 새로운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까, 말씀 안에서 사는 사람은 생활 그 자체가 은혜를 체험하 게 되어 있으나, 말씀을 멀리하거나 떠난 사람은 생활 그 구조 자체가 불평 과 원망스러운 일들을 겪게끔 되어 있습니다.
3.자신을 낮춤으로써 더욱 온전케 되는 길을 가야 합니다. 자신이 부족한 줄 알고 더욱 온전케 되기를 힘쓰면 은혜스러운 생활 을 하게 되고, 자기가 다 된 줄 알고 교만한 마음을 품게 되면 불행을 당할 염려가 많습니다. 온전케 되려면,
1세상보다는 주께 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많은 연륜을 쌓았으 면, 교인들이나 사회 사람들에게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존경받게 되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얼마나 더 높은 지위에 올라 무슨 큰 권한을 행사하게 될 것이냐에 관심을 갖게 되면, 타락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하나님나라에는 이 세상 아무 것도 갖고 갈 수가 없습니다. 오로지 우리의 성숙한 믿음과 선한 행실만이 하늘나라에서 빛나게 될 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자세로 살게 되면, 이 세상에서도 칭찬과 존경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은, 좀더 성숙한 믿음과 온전한 성품을 지 닐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가 귀하게 여겨야 할 것들입니다.
2말씀을 정성스럽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그 말씀대로 살 기 위하여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말씀을 멀리해서는 안 됩니다. 아주 바쁜 일이 있어도 그 일을 중단하고, 말씀 듣기 위하여 달려오는 열의가 있어야 그 믿음이 온전케 됩니다. 이러한 자세와 태도를 가져야만, 사탄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엘리 제사장은 신앙 생활에 게으름을 피우다가, 두 아들을 전쟁에서 잃었고 자신은 목이 부러져 죽었으며, 며느리는 아이를 낳다고 죽고 마는 불행을 겪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무엘처럼, 신앙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그 무엇보다 열심을 내야 할 일이 신앙입니다.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게 되면 당장에는 별 이익이 없으나, 아주 값지고 소중한 것들을 자신의 내부 속에 쌓아 가 게 됩니다. 사실은 우리 인간 누구나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지금 세상 것에 눈이 어두어서 보지 못하고 세상 소리에 너무 귀기울이다 보니 듣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18장 3절에서 부탁하셨듯이, 우리는 죄에서 돌아 서서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어린아이처럼 무 릎을 꿇고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으면 세상 어디에서도 무릎을 꿇은 일이 없을 것이나,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을 줄 모르면 세상에서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무릎을 꿇는 수치를 겪어야 할 것입니다. 아무쪼록 하나님 앞에 겸손함으로써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가는 저 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 틀림없이 범인을 잡아내어 아주 시원스럽게 처단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즘에는 볼 수 없는 사형 제도인 작두에다가 머리를 들이밀게 하 고는 범인의 목을 싹둑 잘라 사형을 시킵니다. 그럴 때마다, 시청자는 가슴이 후련해지는 쾌감을 갖게 될 것입니다. 마치 자기 자신이 그 범인에게 오랫동안 괴롭힘을 당한 것으로 착각을 하고 말입니다. 아니면, 지금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원수가 바로 그 범 인과 같은 인물인 것으로 동일시하고, 그런 느낌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이 복잡한 세상에서, 인생살이에 시달리고 있는 많은 사람들 에게, 다른 드라마와는 달리 포청천은 거꾸로 단순한 이분법 논리로 사람 들에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내용이 권선징악적이어서 좀 유 치스럽기는 하지만, 아무 것이나 더 복잡하게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요즘 사람들에게, 이 드라마는 어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인생이 정말 그 드라마처럼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세상에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이 뚜렷이 구분되어 있고, 그 선한 사람 속에 내가 끼여 있어서, 언제 가는 포대인 같은 사람이 나타나서 그 악한 무리를 심판하는 것으로 결말이 나는, 그런 인생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인생은 처음부터 끝까지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으로 구분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심판 받아 멸망 받을 사람 이 따로 있고, 아무렇게나 살아도 구원받아 천국 갈 사람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제까지 신앙생활을 잘하던 사람이 오늘 악마로 변할 수가 있는 것 이고, 지금은 아주 나쁜 짓만 해서 지탄받고 있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 기 새 사람이 되어 칭찬 받으며 살수도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는다는 말은, 그 말이 완성형이 아니고 진행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를 알고 믿는다는 말은, 예수께서 가르치신 진리를 알고 받아들여 그 진리 따라 산다는 말입니다. 곧, 예수께서 말씀하시고 살아가신 그 길이 길이요 진리이며 생명이 됨 을 믿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 길을 가다가 예수를 부인하고 진리를 거부하면, 구원과는 상관이 없게 됩니다. 혹 입으로는 예수를 찾고 있을지라도, 그 행동이 진리와 거리가 멀 때에는, 진정한 의미로 예수를 믿는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정말 예수를 믿는다면, 늘 새롭게 진리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진리 따라 살아가려고 몸부림쳐야 합니다.
예수는 생명이 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부인하면 죽음의 길 을 가게 되는 것이고, 예수를 믿고 따르면 생명의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생명의 길을 계속 가려면, 항상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 울여 합니다. 그래야 영적으로 성숙해지고 온전해져서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예수 를 믿으면 그 순간 하나님 나라에 완전히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고 되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게 되었다면, 그것은 구원의 길에 들어섰다는 말이 지, 구원의 완성이 이루어졌다는 말은 아닙니다. 물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우리의 능력이나 지혜로써가 아닙니다. 진리가 되시는 예수로만 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다 들어갈 때까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야만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되, 열 살에 믿게 되었던지 50세에 믿었 든 지간에, 영적으로는 다 어린아이가 되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를 믿고 살되, 계속 영적으로 자라지 않으면 어린아이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린아이가 엄마의 젖을 사모하며 찾듯이, 계속 말씀을 사모하며 그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먹어야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 선생님은 베드로전서 2장 3절에서 자신의 구원이 완성되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의 젖을 사모하라 고 했습니다.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고 그 말씀 안에서 살아가려고 애써야, 영적으 로 꾸준히 성장하게 되어 하나님 나라 들어가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의 젖을 잘 먹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확실히 구 별됩니다. 말씀을 늘 가까이 하여 그 말씀을 제대로 공급받는 사람은, 해가 갈 수록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 갑니다. 더욱 겸손해지고 교회 일에 열심하 며, 사회 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봉사하게 됩니다. 그 얼굴에도 밝 은 모습으로 그 성숙미가 자연스럽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에 게 포근한 느낌을 줍니다. 또한 말씨에도 그 성숙함이 나타나게 되어, 억지를 쓰지 않아도 그 말에 위엄이 있어서, 아래 사람이 그 말을 거역 할 수 없게끔 합니다. 하지만,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고 연륜만 쌓은 사람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구태여 여기서 그 사실들을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누구나 온전한 인격과 성품을 지니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 송 받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그만 어떻게 하다가 세월만 보내고 영적으 로 성장을 하지 못하여, 자신도 미워하고 다른 사람들도 싫어하는, 잘못 된 신앙인이 되 고 만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들 중에는, 자신이 그렇다 고 여겨서 고민하는 분들이 없지 않아 있을 줄 압니다. 아니, 우리는 모두가 이런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더욱 발전 할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나는 아직도 어리다'고 생각을 해야, 말씀을 사모하면서 새로운 영적 발전을 도모할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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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영적으로 성장하는 일에 신경 을 쓰지 않고 있습니다. 포청천에서처럼 이미 악인과 선인이 정해져 있어서, 포대인의 명석한 심판만 기다려야 한다면, 우리는 새로운 노력을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 갈 때까지 주 님을 닮아 가야 합니다. 주님 닮는 일을 중단하면, 노력을 하지 않아도 우리는 악마를 닮게 되어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예의 범절은 열심히 가르쳐도 잘 익히지 못하지만, 욕 설은 가르치는 일이 없어도 잘 배우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람들이 처음 예수를 믿게 되어 교회를 다니게 될 때에, 말씀과 기도의 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자연스레 교회에서 못된 것만 배우게 되어 있습니다. 좋은 점은 열심히 노력을 해도 익히기가 힘든 반면, 나 쁜 것은 힘들이지 않아도 배우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겸손을 배워야 할 교회에서 교만만 늘어, 가룟 유다처럼 불 행한 사람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유다가 돈주머니를 맡은 정도로 예수님의 신임을 받던 사람이었지만, 거듭나기를 계속하지 않은 까닭에, 그런 불행을 자초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앞길은 예측 불허입니다. 사울이 바울로 변하는 그런 변화가 있을 수 있고, 유다처럼 타락하여 불행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바울처럼 되기를 원합니다. 아니면, 베드로처럼 예수 를 부인하는 죄를 지었을지라도, 그가 다시 돌아와 주를 위하여 충성한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구약 사무엘상 3장에 나오는 두 인물, 사무엘과 엘리 제사장을 자연스레 비교하면서, 주님이 원하는 인물이 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엘리 제사장과 사무엘은 여러 면에서 비교가 됩니다.
ㄱ.엘리 제사장은 늙고 어두워, 앞을 못 본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무 슨 일을 할 수가 있겠느냐고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비록 나이가 들어 앞을 잘 보지 못한다 할지라도, 기도하는 일만큼은 젊었을 때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러나 엘리 제사장은, 어린 사무엘이 성소에 있는 법궤 옆에서 자 고 있을 때에, 자기는 자신의 침실에서 자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까, 사무엘은 기도하다가 잔 것이고 엘리는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던 것입니다.
ㄴ.3장 1절을 보면, 사무엘이 제사장의 일을 정성껏 수행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엘리 제사장에 대해서는 그런 말이 없습니다. 결국 엘리 제사장은 마지못해 그 직무를 수행한 것이고, 사무엘은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던 것입니다.
ㄷ.하나님의 음성을 사무엘은 들었으나, 엘리 제사장은 듣지 못했습니다. 하기사 엘리 제사장은 기도하는 한나를 보고도 술취한 여자로 볼 정 도로, 그의 영적인 감각은 무디어 있었습니다. 자식들이 타락하여 거룩 한 성소에서 비행을 저질러도, 어떻게 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아버지였 습니다. 평소에 사무엘은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의 음성 듣기를 소원했을 것 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몇 가지 교훈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1주의 직분 맡은 자이면서도, 은혜 받지 않은 사람처럼 살고 있 다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엘리가 제사장이 되기까지는, 나 름대로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룩한 직분까지 담당하 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은혜의 생활을 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겉늙었기 때 문입니다. 가룟 유다는 주님의 음성을 계속 귀 기울여 듣지를 않고, 자 기 판단에 따라 행동을 했다가 불행하게 되었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물론 육신 적으로도 늙었기도 하지만, 그 심령이 늙어 있었습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겉사람은 늙어질지라도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 했는데, 엘리 제사장은 속과 겉이 다 늙어 버리고 말았 습니다. 어떤 사람은 육신이 다 늙지도 않아서, 그 심령이 바싹 늙어 버린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도대체가 새 살이 돋아날 기미가 보이 지 않습니다. 새로운 변화가 전혀 일어날 기운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늙었다고 해서 말씀과 기도의 생활을 게을리 하고 있기 때문 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는 모든 것을 잘 알고 있다고 하면서, 새로운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교만을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상 영적으 로는 아직도 어린아이 티를 벗지 못하고 있으면서, 애늙은이 행세를 하 고 있는 꼴입니다.
2그런 사람은 그 관심이 하늘에 있지 않고 땅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을 열심히 좇아 다니면서도, "하늘나라에서 누가 제일 위대한가"고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건성 들었던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높아져서 섬김을 받는 곳이 아니고, 낮아져서 겸손히 섬기는 자의 세계라는 것을 누누이 들었으면서도, 그 들은 제자들끼리 서로 누가 더 높은가 하고 비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정말 딱한 일이지요. 지금도 어떤 교회에서는 서열을 따지고 계급을 찾고 있는 비극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회를 오래 다니면 다닐수록 말씀을 더 많이 배우게 되니, 더욱 겸손해져서 섬기는 생활을 해야 할 터 인데,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 현실입니다.
3그 결과, 어떻게 되겠습니까
ㄱ.마태복음에서처럼, 서로 더 누가 높으며 더 위대하냐고 비교하면 서 다투는 일이 생기고
ㄴ.베드로전서에 나오는 말씀처럼, 남을 깎아 내리려 모함을 하고 흉 보며, 시기 비방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튼 저를 비롯해서 누구든지 믿는 형제를 비방하거나 헐뜯게 되 면, 그것은 마귀가 시켜서 하는 짓임을 알아야 합니다. 마귀가 시켜서 하는 짓이지만, 그 책임은 본인이 감당해야 함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ㄷ.엘리 제사장은 끝내 회개를 하지 않음으 로 해서, 두 아들이 비 명횡사한 후에 고개가 부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2.하나님은, 말씀을 사모하면서 주의 일에 힘쓰는 자에게, 늘 새로 운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시편 25편 9절에 보면, 겸손한 자를 옳은 길로 인도하시며, 그들에 게 당신의 길을 가르치신다 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도 불 수 있듯이, 하나님께로부터 옳은 길로 인도함을 받고 그 길을 배우려면 겸손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ㄱ.갓난아이가 젖을 사모하듯이, 주를 사모하며 기다려야 합니다(벧 전2:3).
ㄴ.그리고,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낮추어야 합니다(마18:4).
1그러면, 하나님께서 새로운 말씀을 들려주셔서, 우리의 영적 성장을 위하여 도와주실 것입니다. 주의 백성인 성도들에게는, 어쩌니 저쩌니 해도 주의 말씀을 늘 새 롭게 공급받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적으로 굶주리게 되 어,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게끔 영적인 기력이 쇠약해집니다. 그러나 말씀을 새롭게 공급받게 되면, 어린아이가 젖을 먹고 무럭무 럭 성장하듯이 믿음이 쑥쑥 자라게 됩니다. 그래서 믿음의 일을 즐겁게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2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애쓰는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물론 말씀의 은혜를 입게 될 때에는 모든 일이 다 은혜롭게 됩니다. 그러나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힘쓰게 되면, 신비한 체험 까지도 경험하게 됩니다. 비정상적인 방법이 아닙니다. 지극히 정상적인 생활 속에서 하나님 의 역사를 발견하게 되고, 늘 접해 오던 일이지만 그 일을 통하여새삼 새로운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까, 말씀 안에서 사는 사람은 생활 그 자체가 은혜를 체험하 게 되어 있으나, 말씀을 멀리하거나 떠난 사람은 생활 그 구조 자체가 불평 과 원망스러운 일들을 겪게끔 되어 있습니다.
3.자신을 낮춤으로써 더욱 온전케 되는 길을 가야 합니다. 자신이 부족한 줄 알고 더욱 온전케 되기를 힘쓰면 은혜스러운 생활 을 하게 되고, 자기가 다 된 줄 알고 교만한 마음을 품게 되면 불행을 당할 염려가 많습니다. 온전케 되려면,
1세상보다는 주께 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많은 연륜을 쌓았으 면, 교인들이나 사회 사람들에게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존경받게 되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얼마나 더 높은 지위에 올라 무슨 큰 권한을 행사하게 될 것이냐에 관심을 갖게 되면, 타락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하나님나라에는 이 세상 아무 것도 갖고 갈 수가 없습니다. 오로지 우리의 성숙한 믿음과 선한 행실만이 하늘나라에서 빛나게 될 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자세로 살게 되면, 이 세상에서도 칭찬과 존경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은, 좀더 성숙한 믿음과 온전한 성품을 지 닐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가 귀하게 여겨야 할 것들입니다.
2말씀을 정성스럽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그 말씀대로 살 기 위하여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말씀을 멀리해서는 안 됩니다. 아주 바쁜 일이 있어도 그 일을 중단하고, 말씀 듣기 위하여 달려오는 열의가 있어야 그 믿음이 온전케 됩니다. 이러한 자세와 태도를 가져야만, 사탄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엘리 제사장은 신앙 생활에 게으름을 피우다가, 두 아들을 전쟁에서 잃었고 자신은 목이 부러져 죽었으며, 며느리는 아이를 낳다고 죽고 마는 불행을 겪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무엘처럼, 신앙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그 무엇보다 열심을 내야 할 일이 신앙입니다.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게 되면 당장에는 별 이익이 없으나, 아주 값지고 소중한 것들을 자신의 내부 속에 쌓아 가 게 됩니다. 사실은 우리 인간 누구나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지금 세상 것에 눈이 어두어서 보지 못하고 세상 소리에 너무 귀기울이다 보니 듣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18장 3절에서 부탁하셨듯이, 우리는 죄에서 돌아 서서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어린아이처럼 무 릎을 꿇고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으면 세상 어디에서도 무릎을 꿇은 일이 없을 것이나,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을 줄 모르면 세상에서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무릎을 꿇는 수치를 겪어야 할 것입니다. 아무쪼록 하나님 앞에 겸손함으로써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가는 저 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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