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대변자 (삼상3:1-14)
본문
1,사무엘의 소명(3:1-10) 시인 존 밀턴(John Milton)은 “어린 시절은 그 사람의 아버지”라고 말했습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어릴 때 갖고 있던 특성들을 성인이 되어서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에 아무리 큰 변화를 겪었다 하더라도, 그 아이의 개성은 성인이 되어도 그대로 나타나곤 합니다. 우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의 사진들을 보면, 반짝이는 눈과 꽉다문 입에서 중년이 된 현재의 우리의 태도와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비록 먼 길을 지나왔지만, 그래도 우리는 바로 우리 자신인 것입니다. 어린 시절은 사실상 성인이 된 현재 우리의 아버지인 셈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언약 안에서 우리를 다루시는 하나님으로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구원하실 예정인 사람들에게 늘 사랑을 베푸시곤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의 사랑이라는 목적과 섭리적인 돌봅을 잊어버릴 때에도 그는 우리 삶을 위한 계획을 꾸준히 이루고 계십니다. 이 진리의 중심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말씀입니다(롬5:8). 하나님의 바로 그 손길을 어린 사무엘의 성장 과정에서도 분명히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출생과 봉헌을 둘러싼 사건드를 이미 살펴보았습니다(1:1-28) 한나의 노래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왕국에 관한 예언을 희미하게나마 엿볼 수 있으므로, 사무엘이 이 왕국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리라고 예측할 수 있습니다(2:1-10). 그 다음에 경건한 자손인 사무엘과 엘리의 타락한 아들들, 곧 흡니와 비느하스의 대조적인 모습이 나오며 하나님께서 그들과 엘리 가문 전체에 파멸을 선고하셨다는 언급이 나옵니다(2:11-36). 3장에서는 사무엘의 발전 과정의 다음 단계가 전개됩니다, 그호 수 년이 흘렸고, 한나는 사무엘 외에 다른 아들들을 낳았습니다. 이제사무엘이 열두 살쯤 되었을 때입니다. 흡니와 비니하스는 하나님의 전의 명예를 실추시켰으며 하나님을 화나게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가 되어 그들을 멸하셨던 것입니다(4:12-22).
그리고 이 때에,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엘리의 집을 징벌하시기 전에 하나님은 사무엘을 여호와의 참된 선지자로 세우셨습니다. 이래서 사무엘은 하나님의 대변자가 되었습니다.
1,사무엘을 부르신 상황 이 기사는 직선적입니다. 사무엘과 엘리는 매일 장막에서 직무를 수행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그곳 벽 옆에 있는 칸막이 방에서 잠을 잤습니다.(3:1-3). 엘리는 점차 무능력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눈이 점점 어두워가서 잘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그가 쇠퇴해 간다는 암시 이상의 것이 들어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때는 밤늦은 시각이었습니다. 일곱 개의 가지가 달린 큰 촛대, 즉 저녁에 불을 붙여 아침까지 켜 두는 메노라'(출27:21) 아론과 그 아들들로 회막한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간검하게 하라 이는 이스라 엘 자손의 대대로 영원한 규례니라(레24:3)'가 여전히 성소 안에서 타고 있었습니다. 캄캄한 어둠 가운데에서 한 목소리가 올려 나왔습니다. 그 소리는 지성소와 언약궤가 있는 쪽으로 들린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는 곳은 그 곳이었기 때문입닏(3:4). 사무엘은 자기를 부른 사람이 엘리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늙은 제사장에게 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무엘에게 부르지 않았으니 가서 자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 마침내 엘리가 사무엘을 부르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깨달을 때까지 이 일은 두 번 더(모두 합쳐 세 번임) 되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엘리가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게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3:9).
이 때 사무엘은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1)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였다. 삼상3:1)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이것은 그 당시 사람들이 영적으로 타락했음을 암시합니다. 이것은 또한 오늘날에도 적용되는 원리, 즉 교회의 배교는 하나님의 말씀의 결핍을 수반한다는 원리를 지적합니다. 하나님은 실로에 있는 사악한 제사장들로부터 빛을 거두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1세기 이상 계속된 비판적인 학문의 헛된 찌꺼기와 비기독교적인 교리와 윤리의 공허한 자기 기만에 빠져 있던 현대 교회들에서도 이런 일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당시와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종교’가 부족하거나 성직자가 부족한 것은 아닙니다. 사무엘 시대처럼 , 소위 기독교 서방 세계도 타락한 대부분의 개신교회들에서 부흥의 필요성이 더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습니다. 암 8:11)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12)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때문에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의 귀에 잘 들리지 않을 때는 우리는 영적으로 위기를 당했다고 생각하고 심각하게 그 원인을 찾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2)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다.
1하나님의 계시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지지 않았음을 의미.
2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계시에 지극히 무관심했음을 의미. 이러한 부정적인 측면은 오히려 새로운 영적인 지도자 사무엘을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는 이유로 충분했다. 우리 앞에 나타나는 여러가지 부정적인 현상들을 바라보고 우리는 좌절하거나 낙망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부정적인 상황 가운데서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2,하나님의 말씀 삼상3:3)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4)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1)하나님의 말씀을 누가 듣는가
1하나님께서 사역하시는 방법은 우리 인간과는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 그렇게 영적으로 암울하고 어두운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은 제사장이나 사람이 인정하는 훌륭한 자에게 나타나지 아니하고, 인간의 생각으로는 전혀 예상밖에 어린아이 사무엘에게 나타난 것이다.
2하나님께서는 약한자를 택하셔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분이다. 고전1:27)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3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음에 있어서 인간적인 어떤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도리어 연약하고 어린아이와 같은 순순한 마음을 들어 높이 쓰시는 분이심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2)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들을 것인가
1하나님의 말씀을 객관적으로 살펴야 한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과 같은 권위를 가지는 하나님의 계시가 가능한가그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개인적이고 주관적으로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나,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통용되는 객관적인 말씀으로 인정받는 것은 오늘날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시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계시록으로 완성되었기 때문에 또 다른 계시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꿈이나, 어떤 환상을 통하여 들었다면 그것을 객관적인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어긋남이 없는지 살피고,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남이 없다 할지라도 주관적으로 인정해야지 그것을 객관화시켜서 모든 사람에게 통용시키는 것은 바른 일이 아니다. 행17:11)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12)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2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는 응답이 필요하다. 삼상3:10)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가로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을 통하여서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일을 통하여 들을 때에 그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대한 반응을 보여야 한다, 하나님께서 세번씩이나 사무엘을 부르시며 응답하기를 기다렸다가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라고 응답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확실한 말씀을 주셨다.
3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 있고 듣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에게 주어진다. 같은 주파수의 두 종은 한 종만 쳐도 울리듯이 하나님의 주파수에 우리의 영적인 귀의 주파수를 맞추어야 한다. 즉 영적으로 항상 깨어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여러 경로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
3,하나님의 부르심 하나님의 부르심은 일방적이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불러 바울되게 하실 때에도, 고기 잡는 어부 베드로를 불러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실 때에도, 오늘 우리를 불러 하나님의 귀하신 직분을 맡기실 때에도 그러하셨듯이 하나님께서 일군 삼으시려고 부르실 때에는 우리의 주관적 형편에 따라서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뜻에 의하여 부르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부르심에 교만해 하거나, 실망해 하거나 할 것이 아니라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2,하나님의 말씀/ 엘리 집에 대한 심판의 경고(3:11-14)
1,심판의 내용 / 엘리 가문의 몰락(삼상2:27-36) 삼상3:11)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이 경고는 귀가 울릴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으로 일어날 것이며 그것은 실제적으로
1엘리의 두 아들이 한날에 전쟁터에서 죽고,(4:11,17)
2그 소식을 들은 엘리는 의자에서 넘어져서 목뼈가 부러져 죽고,(4:18)
3엘리의 며느리가 해산하다가 죽은 사실로 실현된다.(4:19-22)
2,심판의 이유 삼상3:13)내가 그 집을 영영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이른 것은 그의 아는 죄악을 인함이니 이는 그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그의 아는 죄악을 인함이라. 즉,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함이라는 것이다. 엘리는 죄를 모르는 사람은 아니었다. 또 그 아들들의 행위를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왜 그는 알고 있는 죄를 해결하지 못하였는가
1)그러한 그의 행위의 근거가 되는 그의 마음은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지게 하느냐”(삼상2:29) 라는 말씀과 같이 아들을 하나님보다 귀하게 여기는 마음 때문이었다. 하나님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것이 있으면 죄를 해결하지 못한다.
2)또 문제는 그러한 죄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금하는 결단력이 부족한 것이었다. 회개란 “죄를 슬퍼하고 돌아서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죄를 슬퍼하기는 했으나, 결단하여 그 죄를 해결하는 결단력이 부족했다. 우리는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죄인 줄을 알면서도 다시 죄를 방관하거나 죄를 짓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죄를 후회하며 슬퍼하는 마음은 있으나 과감히 결단하여 돌아서는 결단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때문에 죄를 청산하기 위해서 성경은 아래와 같은 결단력을 요구한다. 막 9:43)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45)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그리고 우리가 그의 사랑이라는 목적과 섭리적인 돌봅을 잊어버릴 때에도 그는 우리 삶을 위한 계획을 꾸준히 이루고 계십니다. 이 진리의 중심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말씀입니다(롬5:8). 하나님의 바로 그 손길을 어린 사무엘의 성장 과정에서도 분명히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출생과 봉헌을 둘러싼 사건드를 이미 살펴보았습니다(1:1-28) 한나의 노래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왕국에 관한 예언을 희미하게나마 엿볼 수 있으므로, 사무엘이 이 왕국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리라고 예측할 수 있습니다(2:1-10). 그 다음에 경건한 자손인 사무엘과 엘리의 타락한 아들들, 곧 흡니와 비느하스의 대조적인 모습이 나오며 하나님께서 그들과 엘리 가문 전체에 파멸을 선고하셨다는 언급이 나옵니다(2:11-36). 3장에서는 사무엘의 발전 과정의 다음 단계가 전개됩니다, 그호 수 년이 흘렸고, 한나는 사무엘 외에 다른 아들들을 낳았습니다. 이제사무엘이 열두 살쯤 되었을 때입니다. 흡니와 비니하스는 하나님의 전의 명예를 실추시켰으며 하나님을 화나게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가 되어 그들을 멸하셨던 것입니다(4:12-22).
그리고 이 때에,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엘리의 집을 징벌하시기 전에 하나님은 사무엘을 여호와의 참된 선지자로 세우셨습니다. 이래서 사무엘은 하나님의 대변자가 되었습니다.
1,사무엘을 부르신 상황 이 기사는 직선적입니다. 사무엘과 엘리는 매일 장막에서 직무를 수행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그곳 벽 옆에 있는 칸막이 방에서 잠을 잤습니다.(3:1-3). 엘리는 점차 무능력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눈이 점점 어두워가서 잘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그가 쇠퇴해 간다는 암시 이상의 것이 들어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때는 밤늦은 시각이었습니다. 일곱 개의 가지가 달린 큰 촛대, 즉 저녁에 불을 붙여 아침까지 켜 두는 메노라'(출27:21) 아론과 그 아들들로 회막한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간검하게 하라 이는 이스라 엘 자손의 대대로 영원한 규례니라(레24:3)'가 여전히 성소 안에서 타고 있었습니다. 캄캄한 어둠 가운데에서 한 목소리가 올려 나왔습니다. 그 소리는 지성소와 언약궤가 있는 쪽으로 들린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는 곳은 그 곳이었기 때문입닏(3:4). 사무엘은 자기를 부른 사람이 엘리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늙은 제사장에게 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무엘에게 부르지 않았으니 가서 자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 마침내 엘리가 사무엘을 부르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깨달을 때까지 이 일은 두 번 더(모두 합쳐 세 번임) 되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엘리가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게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3:9).
이 때 사무엘은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1)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였다. 삼상3:1)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이것은 그 당시 사람들이 영적으로 타락했음을 암시합니다. 이것은 또한 오늘날에도 적용되는 원리, 즉 교회의 배교는 하나님의 말씀의 결핍을 수반한다는 원리를 지적합니다. 하나님은 실로에 있는 사악한 제사장들로부터 빛을 거두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1세기 이상 계속된 비판적인 학문의 헛된 찌꺼기와 비기독교적인 교리와 윤리의 공허한 자기 기만에 빠져 있던 현대 교회들에서도 이런 일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당시와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종교’가 부족하거나 성직자가 부족한 것은 아닙니다. 사무엘 시대처럼 , 소위 기독교 서방 세계도 타락한 대부분의 개신교회들에서 부흥의 필요성이 더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습니다. 암 8:11)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12)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때문에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의 귀에 잘 들리지 않을 때는 우리는 영적으로 위기를 당했다고 생각하고 심각하게 그 원인을 찾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2)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다.
1하나님의 계시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지지 않았음을 의미.
2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계시에 지극히 무관심했음을 의미. 이러한 부정적인 측면은 오히려 새로운 영적인 지도자 사무엘을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는 이유로 충분했다. 우리 앞에 나타나는 여러가지 부정적인 현상들을 바라보고 우리는 좌절하거나 낙망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부정적인 상황 가운데서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2,하나님의 말씀 삼상3:3)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4)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1)하나님의 말씀을 누가 듣는가
1하나님께서 사역하시는 방법은 우리 인간과는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 그렇게 영적으로 암울하고 어두운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은 제사장이나 사람이 인정하는 훌륭한 자에게 나타나지 아니하고, 인간의 생각으로는 전혀 예상밖에 어린아이 사무엘에게 나타난 것이다.
2하나님께서는 약한자를 택하셔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분이다. 고전1:27)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3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음에 있어서 인간적인 어떤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도리어 연약하고 어린아이와 같은 순순한 마음을 들어 높이 쓰시는 분이심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2)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들을 것인가
1하나님의 말씀을 객관적으로 살펴야 한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과 같은 권위를 가지는 하나님의 계시가 가능한가그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개인적이고 주관적으로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나,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통용되는 객관적인 말씀으로 인정받는 것은 오늘날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시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계시록으로 완성되었기 때문에 또 다른 계시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꿈이나, 어떤 환상을 통하여 들었다면 그것을 객관적인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어긋남이 없는지 살피고,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남이 없다 할지라도 주관적으로 인정해야지 그것을 객관화시켜서 모든 사람에게 통용시키는 것은 바른 일이 아니다. 행17:11)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12)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2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는 응답이 필요하다. 삼상3:10)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가로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을 통하여서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일을 통하여 들을 때에 그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대한 반응을 보여야 한다, 하나님께서 세번씩이나 사무엘을 부르시며 응답하기를 기다렸다가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라고 응답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확실한 말씀을 주셨다.
3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 있고 듣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에게 주어진다. 같은 주파수의 두 종은 한 종만 쳐도 울리듯이 하나님의 주파수에 우리의 영적인 귀의 주파수를 맞추어야 한다. 즉 영적으로 항상 깨어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여러 경로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
3,하나님의 부르심 하나님의 부르심은 일방적이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불러 바울되게 하실 때에도, 고기 잡는 어부 베드로를 불러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실 때에도, 오늘 우리를 불러 하나님의 귀하신 직분을 맡기실 때에도 그러하셨듯이 하나님께서 일군 삼으시려고 부르실 때에는 우리의 주관적 형편에 따라서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뜻에 의하여 부르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부르심에 교만해 하거나, 실망해 하거나 할 것이 아니라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2,하나님의 말씀/ 엘리 집에 대한 심판의 경고(3:11-14)
1,심판의 내용 / 엘리 가문의 몰락(삼상2:27-36) 삼상3:11)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이 경고는 귀가 울릴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으로 일어날 것이며 그것은 실제적으로
1엘리의 두 아들이 한날에 전쟁터에서 죽고,(4:11,17)
2그 소식을 들은 엘리는 의자에서 넘어져서 목뼈가 부러져 죽고,(4:18)
3엘리의 며느리가 해산하다가 죽은 사실로 실현된다.(4:19-22)
2,심판의 이유 삼상3:13)내가 그 집을 영영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이른 것은 그의 아는 죄악을 인함이니 이는 그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그의 아는 죄악을 인함이라. 즉,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함이라는 것이다. 엘리는 죄를 모르는 사람은 아니었다. 또 그 아들들의 행위를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왜 그는 알고 있는 죄를 해결하지 못하였는가
1)그러한 그의 행위의 근거가 되는 그의 마음은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지게 하느냐”(삼상2:29) 라는 말씀과 같이 아들을 하나님보다 귀하게 여기는 마음 때문이었다. 하나님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것이 있으면 죄를 해결하지 못한다.
2)또 문제는 그러한 죄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금하는 결단력이 부족한 것이었다. 회개란 “죄를 슬퍼하고 돌아서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죄를 슬퍼하기는 했으나, 결단하여 그 죄를 해결하는 결단력이 부족했다. 우리는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죄인 줄을 알면서도 다시 죄를 방관하거나 죄를 짓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죄를 후회하며 슬퍼하는 마음은 있으나 과감히 결단하여 돌아서는 결단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때문에 죄를 청산하기 위해서 성경은 아래와 같은 결단력을 요구한다. 막 9:43)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45)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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