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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 손을 들자 (대하6:29-30)

본문

예레미야애가 2장 19절에 "주를 향하여 손을 들지어다"라는 말씀이 기록 되어 있습니다. 육신적인 차원에서 손을 든다고 하는 것은 많은 의미가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는줄 압니다. 회의석상에서는 손을 드는 사람에게 발언권이 주어지게 됩니다. 치열한 전쟁마당에서도 적군이지만 손을 들게 되면, 더이상 공격을 한다든가 총을 쏘지 않는 것이 상식적인 것 아니겠습니까 뿐만아니라 국제법에 따라 포 로들은 보호를 받게 되게끔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손을 드는 일은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임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영적인 의미에서 손을 들어야 되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으 시고 무엇보다도 영적인 면에서 손을 들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우리는 누구보다도 하나님께 손을 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하나님께 손을 든다고 하는 것은 항복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자기 자신을 포기한다고 하는 의미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이 손을 들때까지 가만히 지켜 보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중국에 한 지도자가 제자들을 데리고 수영을 하러 갔습니다. 제자 중에는 선수라 할 수 있는 수영 잘 하는 제자가 한 사람 있었답니다. 물놀이를 하던 중 한 제자가 빠져서 살려달라고 허우적 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지 도자는 수영 잘하는 제자에게 즉시 구해 줄것을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왠 일인지 그 제자는 꿈쩍하지 않고 물에 빠진 사람만 노려보고 있는 것입니다. 무슨 기회를 포착하려는 듯 말입니다. 물에 빠진 제자는 이제 기진맥진하여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물 속으로 가라앉는 순간 이었습니다. 그때 수영 잘 하는 제자가 비호같이 물 속으로 뛰어들어 구해주며 인공 호흡도 시키고 하여 살려 내더라는 것입니다. 지도자는 의아하게 물었습니다. 구해주려면 진작 구해줄 것이지, 왜 사람을 다 죽이고 또 짠맛 쓴맛 다 보게 한 후 구해 주는지를 묻게 된 것입니다. 제자가 말하기를 "선생님 모르는 말씀 마십시요. 팔팔할때 구해주려 뛰 어들면 우리 둘 다 죽습니다. 살겠다고 저를 꼭 잡으면 제가 아무리 수영 을 잘해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힘이 빠지기를 기다린 것이지요." 하더랍니다. 여러분은 이미 이 이야기를 통하여 중요한 교훈을 오늘의 말씀 서론과 제목만 들어도 깨닫게 되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진정 우리가 하나님께 손을 들때까지 기다리 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손을 들지 않는 한 결코 우리를 도와주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겠습니다.
그러므로 시편 88편 9절에서는 '여호와여 내가 매일 주께 부르며 주를 향하여 나의 두 손을 들었나이다.' 하였는데 이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도움 을 얻고자 매일 주를 향하여 그의 두 손을 들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어떤 면에서 두 손을 들어야 되는 것입니까
첫째, 내 생각과 의지, 그리고 힘으로 할려고 하는 것들을 내려놓고 두 손을 들어야 합니다. 스가랴 4장 6절의 말씀과 같이 '힘으로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는 말씀 그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이 하여야 된다고 하는 사실을 다시금 기억하고 하나님께 "주여! 나의 두 손을 듭니다. 이 두 손을 드는 이유는 나의 힘과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라는 고 백으로 하나님께 두 손을 높이 들도록 합시다. 어떤 사람이 나이 30이 되어서 수영을 배우겠다고 수영장으로 갔답니다 그 사람은 물 위에 뜨기 위해 손과 발을 힘차게 움직였는데,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점점 물 속으로 가라앉기만 했습니다. 그때 수영을 지도하는 선생님이 "이보세요. 하나님께서는 본래 사람이 물에 뜰 수 있도록 하셨단 말입니다. 그러니 손과 발을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보세요. 그리고 손과 발은 전진하는데만 써 보도록 하시요" 하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과연 손과 발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니 몸이 뜨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후 몸을 전진시키는 데만 손과 발을 사용하게 되었을 때 마치 노를 젓는 것 같이 몸이 움직였던 것입니다. 그 사람은 30년 동안을 물과 싸웠지만 결코 몸이 뜨지 않았었던 것이었 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투쟁을 멈추지 아니하면 결코 하나님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의지의 손, 투쟁의 발 이 모든 것을 주님께 가만히 맡기도록 하 십시요. 가만히,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지혜를 얻을 때가 주님이 역사할 때 입니다. 주님께서는 포도나무의 비유를 통하여 가지된 우리들이 저절로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사실과 줄기가 되시는 주님께 붙어있지 아니하면 말라져 불에 태워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니 가지된 우리들은 당연히 우리의 생각과 힘과 의지를 버리고 주님 을 의지해야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람의 생각과 의지로 가득찼던 대표적인 인물을 우리는 생각할 때 야곱 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야곱은 20년 동아나 자신의 꾀와 의지로 살면서 어느정도 성공한 듯 보 였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얍복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지와 꾀를 하나님께 항복시켜야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도뼈를 부러뜨렸다는 것은 그의 가장 강한 자아가 깨어졌다고 하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환도뼈에 대하여 한 사람이 의사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의사가 말하기 를 "환도뼈는 가장 강한 뼈입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떼어낼 수 없는 뼈이지요." 하더랍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가장 의지가 깨어지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웨슬레 목사님은 어렸을 적부터 대단히 유별난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학창시절에 신성회 를 조직하여 매우 규칙적이고, 금욕적인 생활을 해왔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열정과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그의 신앙심은 가히 바리새인들을 능가하면 했지 결코 못할 것이 없을만큼 열심 이었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에 이끌려 북미 조지아주로 선교사가 되 어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웨슬레는 선교사로서 큰 실패를 경험하고 지치고 피곤한 심령이 되어 영국으로 건너와 그의 복음 전도자로서의 일을 끝맺으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자격이 없는 자이구나' 생각하며 포기의 상태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러한 웨슬레를 하나님은 찾아 오셨습니다. 자아가 깨질대로 깨진 웨슬레에게 하나님은 찾아와 주셔서 도와주신 것 입니다. 1738년 5월 24일 오후 8시 45분경에 웨슬레는 성령님의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시간이야말로 지금까지 인간적인 힘과 열심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살아왔던 웨슬리의 모든 것이 깨어지며 하나님의 힘을 받게 된 것 입니다. 웨슬레의 사역은 대단한 역사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의 설교를 듣는 이들이 애통하고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사역에는 많은 하나님의 역사가 따르게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하나님께 두 손을 높이 들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 항복하도록 합시다. 두 손을 드는 자에게만 하나님은 그 연약한 손을 붙잡아 주시며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나의 힘으로 될 수 없음을 날마다 고백하면서 주님을 의지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머리털 하나도 희게 할 수 없으며, 우리 가 염려한다고 해서 키를 한 자 자라게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그 길을 계획할지라도 여호와께서는 그 발걸음을 인도하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앉고 서는 것도 주장하신다 하였습니다. 이와같은 사 실은 우리의 힘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내용이 아니겠습니 까
그러므로 하나님께 오직 두 손을 들고 맡길 수 있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축원하는 것입니다.
둘째 세상적인 우리의 사고방식과 생활을 놓고 손을 들어야 되는 것 입니다. 탕자가 세상을 따르고 즐기다가 지칠대로 지쳐서 결국 세상을 포기하고 아버지께로 돌아왔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들이 세상의 쾌락이나 욕심, 명예심, 자랑등을 다 내려놓고 두 손을 하나님께 든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문제인지 모릅니다. "세상 쾌락을 즐겨 봤으나 고통 뿐이었다네"라는 복음성가 가사처럼 많 은 사람들은 달콤한 세상을 따라 가다가 세상에 짓눌리고 지쳐서 그 후에 세상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두 손을 드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솔로몬은 세상의 모든 것을 가졌고 누려 보았습니다. 세상에서 솔로몬처럼 세상적인 것을 많이 취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결론은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도다"라는 결론 뿐이었습니다. 그 헛되고 헛된 것을 더이상 움켜잡지 말고 주님께 손을 들도록 해야 합니다. 죤 번연은 세상을 포기하고 주님께 손을 든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 인지 자신의 살점이 떼어져 나가는 것 만큼이나 고통스러운 것으로 그의 저서 천로역정을 통해 기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웨슬레와 같이 하나님과 손을 잡고 일할 사람을 찾 고 있지만 우리 인생들이 세상 가운데 머물러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손을 잡을 수 없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는 말씀과 같이 세상에 대하여 두 손을 들지 아니하면 켤코 주님과 하나될 수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물질, 명예, 쾌락. 이러한 것이 도대체 여러분에게 무엇이란 말입니까! 이 세상이 여러분을 행복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떠났고"라는 사도바울의 탄식과 같이 세상을 버리지 못하면 주님과 분리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 때묻은 우리의 손을 이제 주님께 온전히 들도록 합시다. 주님이 주시는 즐거움, 주님 안에 있는 보화는 세상것과 능히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님만이 우리를 세상에 대하여 손을 들도록 도와주십니다. 어거스틴은 이 세상에 대하여 두 손을 들기 위하여 "주여 어느 때까지니 이까 어느 때까지니이까!" 이렇게 절규하며 기도하던 중 은혜를 받고 완전 히 새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를 지금까지 괴롭혔던 세상이 끊어지게 된 것이지요. 우리 정말 지혜 로운 자가 되어 잠시 지나는 세상에 붙잡히지 않도록 두 손을 주님께 높이 들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셋째 환난 가운데서 두 손을 드는 지혜가 있어야 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각각 자기의 마음에 재앙과 고통을 깨닫고 이 전 을 향하여 손을 펴고 무슨 기도나 간구를 하거든 주는 계신 곳에서 들으시 며"라고 소개되었는데, 우리는 환난날에 두 손을 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주님 도와주소서'하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중국에서 신학공부를 하던 조화철 목사님이 등록금이 없어서 철야하며 기도하던 중 감리교 초대 총리사(감독)였던 양주삼 총리사가 환상중에 보 이더랍니다. 기도를 끝내니 용기가 나서 찾아가 보았더니 등록금 뿐아니 라 양복과 두루마기에 용돈까지 주었다는 것이지요. 환난때에 두 손을 하나님께 들어야지 인간적인 방법으로 나아가면 더 큰 어려움만 당하게 됩니다. 히스기야 임금은 앗수르 대군이 쳐들어와 하나님과 자신을 모욕하여 백성들과 군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함락 직전에 있게 되었을때 성전에 들 어가 하나님께 두 손을 들었습니다. 그리하였을 때 앗수르의 수십만 대군이 하룻밤 사이에 자중지난으로 죽 게 되었습니다. 환난때 두 손을 든다는 것은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강력한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어느 한인 교회가 크게 부흥이 되어 교회를 짓기 위해 야산을 사 게 되었답니다. 막상 사놓고 보니 산을 깎아 흙을 버리는데도 비용이 들 고 많은 중장비를 동원하는데도 예산이 많이 소요 되더라는 것입니다. 도저히 교회를 지을 수 없는 형편이었는데, 한 집사님이 "믿으면 산이 옮겨진다고 했는데 기도합시다."하고 제안하여 온 교우들이 저 산을 좀 옮 겨 주어서 교회를 지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했답니다. 며칠 후 한 중년의 신사가 목사님을 찾아와서 자기는 어느 회사의 사장 인데 이번에 늪지대를 싸게 샀다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저 산의 흙을 팔 라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이 무심히 "글쎄요!" 했더니 가격을 더 달라는 줄 알고 처음보다 배로 주겠다고 하더랍니다. 그러더니 자기들이 중장비 를 동원해서 산을 깎고 흙값도 치루고 하여 흙을 팔아서 교회를 아주 잘 짓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어려움이 지금 있으신가요. 사람의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마십시요. 그 환난 가운데서 두 손을 듦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신앙에 도 유익이 되고 하나님께서도 해결해 주시므로 영광을 받으실 수 있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환난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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