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울타리를 넘어가지 마시오 (삼상27:1-7)
본문
사람은 누구나 고통을 싫어합니다. 고통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아마 정신이 이상자일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고통의 연속입니다. 모든 인생은-불신자는 물론이고, 신자들조차 고통 속에 살아갑니다. 얼핏 생각하면 하나님이 전능하시고, 사랑의 하나님이라면서 적어도 믿는 신자에게는 고통을 면제해 주는 게 당연하지 않는가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옳지 않은 말입니다. 성경이 이를 증거합니다. 분명히 신자에게도 천국 가기 전까지는 고난이 있다고 . 심지어 더 많다고 . 시34:19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 행14:22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 그렇습니다. 신자의 삶은 따뜻한 온실 속의 안일한 삶이 아니라, 세찬 비바람이 불어대는 광야 속의 고달픈 삶인 것입니다. 다만 그 고통이 무의미한 헛 고생이 아니라, 신자를 더욱 강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연단의 도구입니다.
마치 거친 광물을 용광로에 넣어 빛나는 정금을 만들어 내듯이 . 욥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그러나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연약하기에 고통을 이겨낸다는 게 이만 저만 힘든 게 아닙니다. 특히 그 고통의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어느 정도까지는 고통을 신앙으로 잘 이겨내다가도, 고통이 길어지면 신앙이 흔들리고 고통 앞에 무릎을 꿇고 마는 경우가 생깁니다. 성경에 보면 종종 신앙이 좋은 인물들조차 그런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실패담을 읽으면서 아쉬운 마음을 갖게 됩니다. 좀더 인내했었더라면 . 좀더 큰 믿음으로 극복했었더라면 . 그러면서도 막상 우리 자신의 삶의 현실로 돌아오면 우리 역시 그런 아쉬운 장면을 종종 연출하고 맙니다. 이게 우리의 문제입니다. 짧은 고통은 대개 잘 참아냅니다. 그러다가 그 고통의 시간이 길어지면,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우리의 신앙이 흔들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그런 경우 우리에게 결코 유익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고통의 시간이 길어져도 끝까지 신앙으로 인내하며 이겨내는 게 우리에게 진정한 복이 됩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어쨌든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우리는 긴 고통 중에서도 신앙으로 승리하는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
갑자기 우리 민족에게 몰아닥친 경제위기 한파는 모든 개인과 가정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의 희망과 달리 오랜 고통의 시간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고난이 찾아오는 경우 대개 신앙 부흥의 좋은 기회가 되지만, 한편으로 그 고통의 시간이 길어지면 믿음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혹 신앙이 흔들릴까 염려가 됩니다. 만일
그렇다면 슬픈 일이죠. 이 고통의 시간을 통해 우리를 더욱 단련하시고, 영광과 축복을 준비해 두신 하나님 앞에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쪼록 우리 중에 단 한 명도 이 고통의 시기가 신앙에 긍정적일지언정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영향이 생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오늘 본문에 나타난 다윗의 이야기를 통해 긴 고통 중에 신자가 취할 태도가 과연 무엇인지 함께 살펴봅니다. 부디 이 말씀을 통해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믿음으로 승리하고, 오히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다윗의 월담-그는 긴 고통 중에 하나님의 울타리를 넘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일찌기 이스라엘의 차기 왕으로 선택해 두신 사람입니다. 그는 충성스런 군인이요 신하였지만, 사울왕은 그를 시기하여 계속 핍박하고 심지어 죽이려고 합니다. 하는 수 없이 다윗은 도피 생활을 시작합니다. 어느덧 8년 이상 지났습니다. 그동안 어려운 고비가 많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잘 넘겼습니다. 그리고 다윗도 하나님을 잘 섬기며 말씀을 지키며 의로운 삶을 견지해 왔습니다. 아주 훌륭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심지어 사울왕을 결정적으로 죽일 기회가 몇 번 있었지만 밉든 곱든 어쨌든 하나님이 기름부어 세운 왕이기에 그때마다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고 어려운 중에도 말씀대로 살려는 귀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갈수록 다윗의 마음에 회의가 생겼던 것 같습니다. 사울은 더 거세게 추격하고, 목숨의 위협을 느끼게 됩니다. 더욱이 식솔들(부하들이 600명이니까 딸린 식구 다 합치면 3천여명은 실히 될 겁니다)의 안전과 양식 문제를 생각하면 이만 저만 고민이 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자꾸 어려운 상황만 생각하다 보니까 불현듯 두려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인간적인 궁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궁리 끝에 생각해 낸 묘안이 무엇이었습니까 1절. 이스라엘 국경을 넘어 불레셋 땅을 망명하는 것입니다. 이게 제일 좋은 상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식솔들을 이끌고 블레셋의 아기스왕에게 귀순합니다. 블레셋은 대대로 이스라엘의 원수 나라입니다. 다윗 자신도 과거 골리앗 장군을 비롯해서 많은 블레셋 군사들과 전쟁한 경험도 있습니다.
아기스왕은 아마도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반체제 인사가 되었으니까, 또한 적지 않은 사병들을 거느리고 있으니까, 망명을 받아주면 여러모로 이익이 될 것으로 생각한 듯 합니다. 실제로 다윗이 블레셋에 어느 정도 병력을 제공하고 그 댓가로 '시글락'이란 성읍을 제공받았습니다. 일단 겉보기에는 평안한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울이 더 이상 추격하지 않고, 양식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윗의 생애 몇 가지 중요한 실수 중 하나였습니다. 왜 단지 국경을 넘어 이방땅으로 간 사실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영적 배경이 문제입니다. 지금까지도 어려움이 많았지만 하나님이 다 지켜주셨습니다. 다윗 개인의 힘으로 이겨낸 게 아닙니다. 즉 하나님의 울타리 안에서 보호를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된 겁니까
1 하나님의 울타리에서 그 마음이 벗어난 것입니다. 월담한 겁니다. 하나님보다 자신의 생각을 믿었습니다. 1절 "내가 . 내가 ." 하나님보다 이방왕의 힘과 능력을 믿었습니다. 이미 그 마음의 무게 중심은 세상으로 이동한 것입니다. 그의 믿음이 흔들리고 말았습니다.
2 하나님 말씀의 선을 벗어난 것입니다. 삼상22:5 모압에 도피했을때 갓 선지자가 권면한 말. "이 요새(모압)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왜 그랬나요 다윗은 아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입니다.
그런데 국경을 넘어 이방 땅으로 가서 이방 세력에 빌붙어 사는 것은 모양도 좋지 않고,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택했는데 어련히 보호하실까봐 . 이방인들과 손을 잡다 보면 아무래도 타협하고 범죄하게 됩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말씀을 어기면 곤란합니다. 사실 그에게 이런 긴 고난을 주신 것은 어디까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백성을 신앙으로 다스릴 만한 굳센 믿음으로 단련시키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난이 길어지자 하나님의 말씀의 선을 넘어서고 말았습니다.
'2' 그 결과-그에게 더 큰 고통의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다윗은 잠시 평안하게 살 수 있었지만, 이내 더 큰 고통과 마주치게 됩니다. 갈수록 태산입니다. 이제 다윗은 귀순한 사람이므로 아기스왕에게 잘 보여야 됩니다.
그런데 아기스 왕은 불신자인데다가 이스라엘의 원수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자꾸 죄를 짓게 됩니다. 코가 꿴 셈이죠.
1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삼상27:8-12 가끔 외족을 침노하면서 이스라엘을 침노한 것처럼 거짓말을 합니다. 아기스 왕의 환심을 사느라 .
2 이스라엘 침략 전쟁에 징발됩니다. 삼상28:1, 29:1-2 여러분, 상상해 보십시오. 다윗이 심적으로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장차 왕이 될 사람이 동족을 향해 칼을 들이댄다고 생각할 때 얼마나 기기 막힌 일입니까 고통스러운 것은 물론이고, 이제 그의 장래는 끝장날 판국입니다. 사울왕에게 핍박받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이 찾아온 것입니다. 다행히 다윗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로 겨우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삼상29:3 이하. 블레셋 방백들이 아기스왕에게 항의합니다. 무얼 믿고 다윗을 데려가냐고 . 만일 칼을 거꾸로 들이대면 어떻게 할 거냐고 . 결국 빠지게 됩니다. 얼마나 다행인지!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꼭 필요하기 때문에 비상 섭리를 하신 것입니다. 안타깝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한 일입니다. 인간은 실수하지만 하나님의 일을 그르치지 않기 위해 하나님이 보호해 주십니다. 건져 주십니다. 이래서 우리가 구원과 승리를 확신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실수해도 하나님을 우리를 끝까지 도우십니다. 포기하지 않습니다. 요10:28-29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성도의 견인)(아들을 십자가에 내 주신 하나님이 아까와서라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 돌이키는 과정 속에 징계가 있습니다.
3 시글락이 침노를 당해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삼상30:1 이하. 3일 만에 돌아오니까 난리가 났습니다. 아말렉이 노략질을 했습니다. 다 불태우고, 여인들을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 잘망 중의 절망입니다. 4절. 모두 다 울 기력이 없도록 울었습니다. 6절. 부하들이 흥분해서 다윗을 돌로 치려고 대듭니다. 하나님의 징계였습니다. 히12: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니라" 어렵다고 힘들다고 하나님의 울타리를 넘어가면 편할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더 큰 고통이 옵니다. 결국 보호해 주시고, 그 큰 고통의 위기에서 건져주시지만 문제는 징계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결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닙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3'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긴 고통의 시간이 닥쳐와도 결코 하나님의 울타리를 넘지 말아야 합니다.(월담 금지)
1 어려울수록 하나님께 피해야 합니다. 어린 아이가 무서울 때면 어떻게 하죠 엄마 품에 와락 안깁니다. 가장 안전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하나님 품 안입니다. 육본 방카가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유일한 피난처입니다. 돈을 피난처 삼는 자가 있습니다. 권세를 피난처 삼는 자가 있습니다. 예' 대통령 인수위-줄 대는 사람들이 문지방 닳도록 드나 든다고 합니다. 시11:1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이 어찜인고" 시91:2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2 인내하며 하나님께 꼭 붙어 있어야 합니다. 예' 폭풍주의보-배는 정박해서 부두에 꼭 붙어 있어야 합니다. 예' 마14:28-31 주님 바라 보고 바다 위로 가던 베드로가 바람 보고빠졌습니다. 갈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늘 깨어 기도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의 말씀대로 의로운 삶을 지켜야 합니다. 고전4:6 " .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 ." 기왕에 고난받는 것 의를 지킵시다. 말씀을 어기고 월담하다 징계 받고 고통을 받기보다 차라리 말씀대로 살다가 고난받는게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 앞에 떳떳하쟎아요 하나님이 또 얼마나 기뻐하시며 크게 축복하시겠습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려울 때일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안전합니다. 나도 살고 모두 삽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걱정하고 염려할 것은 우리이 의를 지키고, 말씀을 지켜야 되는데, 그래야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실텐데, 혹시 우리가 어렵다는 핑계로 말씀과 의의 선을 넘어가지나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예' 링컨-남북 전쟁 당시-부관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 주실까요나는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 있지 않은지 그게 걱정일세."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의 금을 넘어가지만 않으면 두려울 게 없습니다. 하나님은 분명 우리 편에 되어 주실 것입니다. 승리는 우리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울타리 안에 있는 자에겐 결코 실패가 없습니다. 승리만 있습니다. 두려워 말고 우리의 믿음을 굳게 지켜 나아갑시다! 존 칼빈 "인생의 행복은 하나님 사랑의 울타리 안에서 사는 데 있다." 윈스턴 처어칠 수상-2차 대전 당시 영국민들에게 연설 "우리가 두려워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 외엔 없습니다."(We have nothing to fear but fear.)
마치 거친 광물을 용광로에 넣어 빛나는 정금을 만들어 내듯이 . 욥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그러나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연약하기에 고통을 이겨낸다는 게 이만 저만 힘든 게 아닙니다. 특히 그 고통의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어느 정도까지는 고통을 신앙으로 잘 이겨내다가도, 고통이 길어지면 신앙이 흔들리고 고통 앞에 무릎을 꿇고 마는 경우가 생깁니다. 성경에 보면 종종 신앙이 좋은 인물들조차 그런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실패담을 읽으면서 아쉬운 마음을 갖게 됩니다. 좀더 인내했었더라면 . 좀더 큰 믿음으로 극복했었더라면 . 그러면서도 막상 우리 자신의 삶의 현실로 돌아오면 우리 역시 그런 아쉬운 장면을 종종 연출하고 맙니다. 이게 우리의 문제입니다. 짧은 고통은 대개 잘 참아냅니다. 그러다가 그 고통의 시간이 길어지면,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우리의 신앙이 흔들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그런 경우 우리에게 결코 유익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고통의 시간이 길어져도 끝까지 신앙으로 인내하며 이겨내는 게 우리에게 진정한 복이 됩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어쨌든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우리는 긴 고통 중에서도 신앙으로 승리하는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
갑자기 우리 민족에게 몰아닥친 경제위기 한파는 모든 개인과 가정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의 희망과 달리 오랜 고통의 시간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고난이 찾아오는 경우 대개 신앙 부흥의 좋은 기회가 되지만, 한편으로 그 고통의 시간이 길어지면 믿음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혹 신앙이 흔들릴까 염려가 됩니다. 만일
그렇다면 슬픈 일이죠. 이 고통의 시간을 통해 우리를 더욱 단련하시고, 영광과 축복을 준비해 두신 하나님 앞에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쪼록 우리 중에 단 한 명도 이 고통의 시기가 신앙에 긍정적일지언정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영향이 생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오늘 본문에 나타난 다윗의 이야기를 통해 긴 고통 중에 신자가 취할 태도가 과연 무엇인지 함께 살펴봅니다. 부디 이 말씀을 통해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믿음으로 승리하고, 오히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다윗의 월담-그는 긴 고통 중에 하나님의 울타리를 넘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일찌기 이스라엘의 차기 왕으로 선택해 두신 사람입니다. 그는 충성스런 군인이요 신하였지만, 사울왕은 그를 시기하여 계속 핍박하고 심지어 죽이려고 합니다. 하는 수 없이 다윗은 도피 생활을 시작합니다. 어느덧 8년 이상 지났습니다. 그동안 어려운 고비가 많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잘 넘겼습니다. 그리고 다윗도 하나님을 잘 섬기며 말씀을 지키며 의로운 삶을 견지해 왔습니다. 아주 훌륭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심지어 사울왕을 결정적으로 죽일 기회가 몇 번 있었지만 밉든 곱든 어쨌든 하나님이 기름부어 세운 왕이기에 그때마다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고 어려운 중에도 말씀대로 살려는 귀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갈수록 다윗의 마음에 회의가 생겼던 것 같습니다. 사울은 더 거세게 추격하고, 목숨의 위협을 느끼게 됩니다. 더욱이 식솔들(부하들이 600명이니까 딸린 식구 다 합치면 3천여명은 실히 될 겁니다)의 안전과 양식 문제를 생각하면 이만 저만 고민이 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자꾸 어려운 상황만 생각하다 보니까 불현듯 두려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인간적인 궁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궁리 끝에 생각해 낸 묘안이 무엇이었습니까 1절. 이스라엘 국경을 넘어 불레셋 땅을 망명하는 것입니다. 이게 제일 좋은 상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식솔들을 이끌고 블레셋의 아기스왕에게 귀순합니다. 블레셋은 대대로 이스라엘의 원수 나라입니다. 다윗 자신도 과거 골리앗 장군을 비롯해서 많은 블레셋 군사들과 전쟁한 경험도 있습니다.
아기스왕은 아마도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반체제 인사가 되었으니까, 또한 적지 않은 사병들을 거느리고 있으니까, 망명을 받아주면 여러모로 이익이 될 것으로 생각한 듯 합니다. 실제로 다윗이 블레셋에 어느 정도 병력을 제공하고 그 댓가로 '시글락'이란 성읍을 제공받았습니다. 일단 겉보기에는 평안한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울이 더 이상 추격하지 않고, 양식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윗의 생애 몇 가지 중요한 실수 중 하나였습니다. 왜 단지 국경을 넘어 이방땅으로 간 사실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영적 배경이 문제입니다. 지금까지도 어려움이 많았지만 하나님이 다 지켜주셨습니다. 다윗 개인의 힘으로 이겨낸 게 아닙니다. 즉 하나님의 울타리 안에서 보호를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된 겁니까
1 하나님의 울타리에서 그 마음이 벗어난 것입니다. 월담한 겁니다. 하나님보다 자신의 생각을 믿었습니다. 1절 "내가 . 내가 ." 하나님보다 이방왕의 힘과 능력을 믿었습니다. 이미 그 마음의 무게 중심은 세상으로 이동한 것입니다. 그의 믿음이 흔들리고 말았습니다.
2 하나님 말씀의 선을 벗어난 것입니다. 삼상22:5 모압에 도피했을때 갓 선지자가 권면한 말. "이 요새(모압)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왜 그랬나요 다윗은 아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입니다.
그런데 국경을 넘어 이방 땅으로 가서 이방 세력에 빌붙어 사는 것은 모양도 좋지 않고,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택했는데 어련히 보호하실까봐 . 이방인들과 손을 잡다 보면 아무래도 타협하고 범죄하게 됩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말씀을 어기면 곤란합니다. 사실 그에게 이런 긴 고난을 주신 것은 어디까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백성을 신앙으로 다스릴 만한 굳센 믿음으로 단련시키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난이 길어지자 하나님의 말씀의 선을 넘어서고 말았습니다.
'2' 그 결과-그에게 더 큰 고통의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다윗은 잠시 평안하게 살 수 있었지만, 이내 더 큰 고통과 마주치게 됩니다. 갈수록 태산입니다. 이제 다윗은 귀순한 사람이므로 아기스왕에게 잘 보여야 됩니다.
그런데 아기스 왕은 불신자인데다가 이스라엘의 원수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자꾸 죄를 짓게 됩니다. 코가 꿴 셈이죠.
1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삼상27:8-12 가끔 외족을 침노하면서 이스라엘을 침노한 것처럼 거짓말을 합니다. 아기스 왕의 환심을 사느라 .
2 이스라엘 침략 전쟁에 징발됩니다. 삼상28:1, 29:1-2 여러분, 상상해 보십시오. 다윗이 심적으로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장차 왕이 될 사람이 동족을 향해 칼을 들이댄다고 생각할 때 얼마나 기기 막힌 일입니까 고통스러운 것은 물론이고, 이제 그의 장래는 끝장날 판국입니다. 사울왕에게 핍박받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이 찾아온 것입니다. 다행히 다윗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로 겨우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삼상29:3 이하. 블레셋 방백들이 아기스왕에게 항의합니다. 무얼 믿고 다윗을 데려가냐고 . 만일 칼을 거꾸로 들이대면 어떻게 할 거냐고 . 결국 빠지게 됩니다. 얼마나 다행인지!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꼭 필요하기 때문에 비상 섭리를 하신 것입니다. 안타깝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한 일입니다. 인간은 실수하지만 하나님의 일을 그르치지 않기 위해 하나님이 보호해 주십니다. 건져 주십니다. 이래서 우리가 구원과 승리를 확신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실수해도 하나님을 우리를 끝까지 도우십니다. 포기하지 않습니다. 요10:28-29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성도의 견인)(아들을 십자가에 내 주신 하나님이 아까와서라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 돌이키는 과정 속에 징계가 있습니다.
3 시글락이 침노를 당해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삼상30:1 이하. 3일 만에 돌아오니까 난리가 났습니다. 아말렉이 노략질을 했습니다. 다 불태우고, 여인들을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 잘망 중의 절망입니다. 4절. 모두 다 울 기력이 없도록 울었습니다. 6절. 부하들이 흥분해서 다윗을 돌로 치려고 대듭니다. 하나님의 징계였습니다. 히12: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니라" 어렵다고 힘들다고 하나님의 울타리를 넘어가면 편할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더 큰 고통이 옵니다. 결국 보호해 주시고, 그 큰 고통의 위기에서 건져주시지만 문제는 징계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결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닙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3'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긴 고통의 시간이 닥쳐와도 결코 하나님의 울타리를 넘지 말아야 합니다.(월담 금지)
1 어려울수록 하나님께 피해야 합니다. 어린 아이가 무서울 때면 어떻게 하죠 엄마 품에 와락 안깁니다. 가장 안전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하나님 품 안입니다. 육본 방카가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유일한 피난처입니다. 돈을 피난처 삼는 자가 있습니다. 권세를 피난처 삼는 자가 있습니다. 예' 대통령 인수위-줄 대는 사람들이 문지방 닳도록 드나 든다고 합니다. 시11:1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이 어찜인고" 시91:2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2 인내하며 하나님께 꼭 붙어 있어야 합니다. 예' 폭풍주의보-배는 정박해서 부두에 꼭 붙어 있어야 합니다. 예' 마14:28-31 주님 바라 보고 바다 위로 가던 베드로가 바람 보고빠졌습니다. 갈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늘 깨어 기도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의 말씀대로 의로운 삶을 지켜야 합니다. 고전4:6 " .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 ." 기왕에 고난받는 것 의를 지킵시다. 말씀을 어기고 월담하다 징계 받고 고통을 받기보다 차라리 말씀대로 살다가 고난받는게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 앞에 떳떳하쟎아요 하나님이 또 얼마나 기뻐하시며 크게 축복하시겠습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려울 때일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안전합니다. 나도 살고 모두 삽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걱정하고 염려할 것은 우리이 의를 지키고, 말씀을 지켜야 되는데, 그래야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실텐데, 혹시 우리가 어렵다는 핑계로 말씀과 의의 선을 넘어가지나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예' 링컨-남북 전쟁 당시-부관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 주실까요나는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 있지 않은지 그게 걱정일세."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의 금을 넘어가지만 않으면 두려울 게 없습니다. 하나님은 분명 우리 편에 되어 주실 것입니다. 승리는 우리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울타리 안에 있는 자에겐 결코 실패가 없습니다. 승리만 있습니다. 두려워 말고 우리의 믿음을 굳게 지켜 나아갑시다! 존 칼빈 "인생의 행복은 하나님 사랑의 울타리 안에서 사는 데 있다." 윈스턴 처어칠 수상-2차 대전 당시 영국민들에게 연설 "우리가 두려워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 외엔 없습니다."(We have nothing to fear but f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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