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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인도하심 (삼상30:1-10)

본문

지난 주에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생각해보았던 것은 다윗이 시글락으로 돌아왔을 때 모든 성은 불사름을 당했고 처자식들은 다 사로잡혀 가는 뼈아픈 상황을 접하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에서 다윗이 더욱더 곤궁에 처하는 것은 그를 목숨을 걸고 추종했던 사람들조차도 이제는 다윗을 죽이려고 돌아서고 배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와같은 아주 군급한 자리에까지 빠진 상황이 지난 주에 다룬 상황입니다.
지난 주에는 우리가 그런 상황을 보면서, 왜 다윗이 그와같은 상황에 빠졌는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 관심 있게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기를 원치 않았고 자기 스스로 자기를 보호하려고 했던 다윗의 자기의뢰가 결과적으로 이와같은 위기에, 뼈아픈 상처에, 실패의 자리에 빠지게 하였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이와같은 상황 가운데서 다윗이 어떠한 모습을 다시 보여주는가를, 우리가 이미 몇 차례 걸쳐서 다뤄본 주제입니다만, 다시한번 이 주제를 다루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다윗이 굉장히 군급한 자리에 빠졌습니다.
이제는 자기를 추종하던 사람들까지도 결과적으로는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그와같은 자리에 빠졌습니다. 다윗의 추종자들은 이 슬픔의 자리에 빠졌을 때,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보다는 그 문제의 책임을 누구에게 전가할 것인가에 더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이란 그런 것입니다. 지금 이런 상황이라고 하면,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그들이 땅을 치고 대성통곡만 하고 앉아 있어서는 아니 되지요. 그리고 그 일의 책임을 다윗에게 묻고만 앉아 있을 때가 아니지요. 그런 반응 밖에 나타낼 수 없습니까 지금 처자식의 죽은 시체는 없어요. 보니, 분명히 잡혀 갔어요.
그렇다면 우리가 일반적 상식으로 생각할 때, 우리에게 어떤 반응이 나타나겠습니까 빨리 쫓아가야지요. 지금 울고 앉아 있을 시간이 어디 있어요 빨리 뒤쫓아야지요. 몇 사람이 죽었을망정 몇 사람이라도 살아 있는 사람을 구해내기 위해서 빨리 뒤따라 가야 되는데,여기 보니까 정반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남자들이 푹 퍼져 앉아서는 대성통곡을 하고 있습니다.
울다가 울다가 더이상 울 기력이 없을 정도가 되니,이제는 시선을 다윗에게 돌리며,다윗 때문에 이런 일을 당했다고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다윗 때문에 도망다니다가 여기까지 왔고, 다윗 때문에 아기스왕에게 갔다 와 보니 이렇게 당했다고 생각합니다. 다윗이 아말렉을 치자고 해서 쳤다가 이렇게 앙갚음을 당한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이 원인이 바로 다윗이라는 것을 깨닫고 다윗을 죽이자고 나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이 절망을 하면 말이죠,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가 절망적 상황에 빠져보면 평소에는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상식적인 일조차도 생각이 나지를 않습니다. 그때는 절망이라고 하는 그 자체가 내 사고와 감정과 의지와 그리고 나의 모든 인격까지도 무너뜨리고 맙니다. 그래서 사람이 절망을 하면 자살도 하고 아주 극악해지며,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인생을 살아가게 되며, 인생을 포기하기까지 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절망적인 상황에 직면할 때 이 절망적 상황에서 그냥 가만 있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윤리.도덕적으로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다윗은 이렇게 아주 절망적인 상황에 가서야, 주변의 사람들조차 자기를 쳐서 죽이려고 하는 이와같은 절망적 상황에 가서야 번뜩 깨달은 것입니다. 지금 자기를 추종하던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겠다고 나서기 전까지는 다윗도 함께 울 기력이 없을 정도로 울고 앉아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절망이 그의 평소의 인격과 모든 생각을 다 죽여버렸단 말입니다.
그런데 자기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겠다고 하는 이 극악한 상황, 죽느냐 사느냐의 극한 상황에 부딪히니 그에게 스치는 생각이 있단 말입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편안할 때, 좋을 때에는 하나님을 잘 몰라요. 그분 생각을 잘 하지 않아요. 그대신 내 삶에서 곤고하고 누구한테서도 위로를 받을 수 없고, 이제는 내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절박한 심정에 빠졌을 때,그때에야 하나님을 찾는 모습들을 우리는 내게서 또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많이 보게 됩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렸지요. 절망적 상황에 빠졌을 때가 바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입니다. 나는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절망적 상황에 빠졌을 때, 그때는 죽을 때가 아니고 망할 때가 아니고 끝장나는 순간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 역사하시기 시작하는 순간입니다. 하나님 역사의 시작이라고 지난번에 말씀드렸지요.
이렇게 절망적 상황에 빠졌던 다윗이 오늘 본문 6절에 보니, “백성이 각기 자기 자녀들을 위하여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다윗이 크게 군급하였으나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말은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라는 말입니다. 여호와를 힘입는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여호와께서 어떤 힘을 주셨습니까 “다윗아, 다윗아, 놀라지 말아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하는 말씀을 들려주셨습니까 아니지요. 다윗은 분명히 “여호와를 힘입고”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힘입는다는 말은 하나님이 이 순간에 다윗에게 어떤 위로를 주고 어떤 음성을 들려주고 기적을 보여주고 환상을 보여준다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지금 다윗이 하나님을 힘입었다는 말은,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어떤 외형적인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다윗은 “여호와를 힘입고”라 고백합니까 이것은 무슨 말인가 여기서 우리는 이 말의 의미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여기서 여호와를 힘입었다는 말은 “여호와를 의지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찾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이 극악한 상황에서, 절망적인 상황에서 다윗이 하나님을 찾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의지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생각만 해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꼭 어떤 행동을 취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생각만 해도 이것이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으로 은혜입니다. 우리가 어떤 순간에 하나님을 생각한다는 것, 그것보다 더 귀한 것이 없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순간에 하나님을 생각한다는 것은, 그 순간에 하나님이 생각났다는 것은 우리의 인생을 뒤바꾸어 놓을 수도 있는 엄청난 사건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그냥 별 뜻 없이 생각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생각했단 말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니까, 생각나는 게 있어요. 하나님께서 자기가 어렸을 때 하나님의 선지자 사무엘을 통해서 자기 머리에 기름을 부으면서 “너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겠다”고 하시던 그 하나님의 약속이 생각났습니다. 여러분,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때에, 꼭 무엇을 보여주심으로써, 들려주심으로써, 어떤 사건을 통해서 확대해서 보여주심으로써만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한다는 그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은혜요 도우심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그 순간에 하나님이 생각나고 하나님의 말씀이 떠오른다면 이것보다 더 큰 은혜가 없습니다.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로 하여금 내가 너희에게 전한 말씀이 생각나게 하고 깨닫게 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다윗은 이 순간에 하나님을 생각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꼭 여러분을 어떻게 도와주실 것으로 기대하지 마십시오. 지금 이 사건을 보면 이미 하나님께서 아말렉으로 하여금 백성들을 잡아가게 할 때에 한 사람도 죽이지 않고 그대로 사로잡아 가게 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다음 절에 보면 길잡이까지 하나님께서 다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인도해 갈 길잡이까지 하나님께서 다 예비해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다 그 손으로 붙잡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은 특별한 형상을 변화시키거나, 어떤 환상을 보여주거나 아니면 음성을 들려주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냥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생각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꼭 어떤 외적인 은사를 체험하려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는 것은 어떤 사건과 이적과 기사를 보고 의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정말 멋있는 신앙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우선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만드시겠다고 했다.” 그 약속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는 알았습니다.
그리고 둘째로 그는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위기와 역경 가운데 그분이 자기를 지켰고 보호했던 것을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절망적 상황 가운데 빠졌을지라도 먼저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생각하시고,다음으로는 지금까지 여러분들에게 베푸셨던 은혜와 역사를 뒤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분명히 깨달아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지금까지 나를 지키셨고 인도하셨고 은혜를 베푸셨던 것처럼 앞으로도 나를 지키시고 인도하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오늘 다윗을 통해서 두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자기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만드시리라는 미래지향적인 약속을 믿었으며, 또한 동시에 과거에 받았던 은혜를 깊이 깨달았습니다. 지금까지 나를 인도하신 하나님. 현재는 내가 이렇게 위기에 처해 있지만 지금까지 나를 구원하셨던 하나님이 이번에도 나를 구원하실 것이라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다윗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기억하여야 할 것은,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다시한번 정리하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자기의 불순종에 대해서 회개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내 스스로 내 식구들을 보살폈던 것으로 생각했으며, 내 힘으로 보호하였던 것으로 착각해왔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불순종한 것이었구나. 그래서 하나님께 묻지 않고 내 마음 대로 행동한 것이 바로 오늘 이 문제의 원인이로구나.”고 깨닫고 회개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그가 회개했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왜 다윗이 회개했다고 말씀드리느냐면, 그 다음 장면을 보면 그가 회개했다는 것이 행동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약속이 생각나고, 과거에 베푸셨던 은혜가 생각나다보니, 이번에도 분명히 하나님께서 해결하시리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리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며, 용기를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제 상황을 바로 판단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무슨 일을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 말을 타고 군대를 이끌고 죽을 힘을 다해 추격을 해야지요.
그런데 그 다음 행동을 보면, 왜 제가 다윗이 회개하였다고 말씀드렸는지 이해하실 것입니다. 그는 당장 말을 타고 추격하지 않습니다. 오늘 설교의 진짜 주제는 바로 이제부터입니다. 절망적 상황에서 눈을 뜨고 보니까 절망적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요. 그럼 이제 절망적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다윗이 취할 행동 가운데 제일 시급한 행동은 무엇입니까 추격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추격은 하지 않고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제사장을 불러서 묻습니다. 무엇을 묻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묻습니다. 추격을 하면 미치겠는지 못 미치겠는지를 묻습니다. 여러분, 지금 다윗이 이렇게 한가하게 제사장을 불러서 묻고 있을 상황이 아니란 말입니다. 빨리 움직여야 할 상황이에요. 한 순간이라도 빨리 행동으로 옮겨야 할 상황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다윗은 하나님을 깨닫고난 다음에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순간부터는 힘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묻기 시작합니다.
오늘 우리가 좀더 심각하게 생각하여야 할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살아가면서 굉장히 긴급을 요하는 사건들을 종종 만납니다. 아주 급한 일들, 아주 절박한 상황들, 정말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고 출세할 수 없고 돈을 벌 수 없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들을 우리는 종종 만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굉장히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우리 입에서 잘 나오는 말이,“요즘 바빠서요. 목사님, 요즈음 제가 기도해야 된다는 것도 알고요, 예배 참석해야 된다는 것도, 봉사해야 된다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지금 굉장히 바쁩니다. 제사업이 마지막 고비를 넘어가는데 지금은 다른 데 신경쓸 여유가 없습니다. 이 고비만 딱 넘기고 나면 그 다음부터 목사님 말씀하시지 않아도 제가 알아서 잘 할 겁니다.” “목사님, 제가 지금 기반을 닦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 직장에서 진급을 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상황입니다. 지금은 제가 아주 머리가 복잡합니다. 상관 눈치보랴 밑사람 관리하랴 정신이 없습니다. 아주 잘해야 점수 따고 진급을 하는데, 이 고비만 넘기고 나면 제가 조금 시간이 있게 되고 직장에서 제 위치도 있게 되니, 그때 가서 제가 열심히 하겠습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가끔 듣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자주 듣고 있습니다. 다른 데서 듣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성도님들한테서 듣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주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귀를 기울여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정리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습니까 믿는다는 것은 그분에게 동의한다는 것이고 의뢰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는다면 그분에게 의뢰하여야지요. 내 인생을 맡겨야지요. 부부가 서로 믿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인생을 서로 맡기는 것 아닙니까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데에 있어서 어느 부분까지는 의지하고 어느 부분은 의지하지 못하는지에 대해 이 시간 주의 음성을 들으시길 바랍니다. 오늘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조금 여유가 있을 때에는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기도합니다. “앞으로 보름 후에 이 일을 처리해야 되는데요, 하나님 이것 좀 도와주세요. 하나님께 맡깁니다. 하나님 책임져주세요. 하나님께서 직접 책임져주실 줄 믿습니다.” 라고 기도합니다. 앞으로 보름이 남았습니다. 그리고 보름 동안 열심히 기도합니다. 점점 그 날이 닥아옵니다. 열흘이 남았어요. 닷새가 남았어요. 사흘이 남았어요. 내일이면 그 문제가 해결이 되어야 하는데 아직도 해결이 되지 않고 있어요. 그때부터는 무릎 꿇고 기도할 마음이 없어집니다. 이때부터는 꿇고 있던 무릎이 떨리기 시작합니다. 들석들석하고 옮겨지는 거지요. 내일이면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데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으니 기도만 하고 앉아 있을 수 없잖아요 그러니까 이제는 움직여야죠. 전화 다이얼도 돌리고 사람도 찾아가보고. 다윗이 처한 상황을 보십시오. 지금 그가 이런 긴박한 상황에 하나님께 묻고 있을 시간적 여유가 없단 말입니다. 이렇게 긴박한 상황에 하나님께 묻고 앉아 있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인가를 우리는 실감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되니 이제 우리 눈에는 하나님께 묻는 것조차 미련한 방법으로 비치기 시작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문제는 굉장히 애매합니다. 그렇지요
그렇다면 하나님께 맡기고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되느냐 아니에요. 따라해주시기 바랍니다.“하나님께 맡기기 위해서는 굉장한 용기가 필요하다.” 여러분,하나님께 맡기는 것처럼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일도 없습니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예를 들어 돈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할만한 어떤 재력 있는 사람을 찾아가 부탁을 합니다. 그 사람이 자기의 힘을 다해 도와주겠다고 합니다. 그런 대답을 들었을 때 여러분은 조급하겠습니까 조급해 하지 않죠. 염려합니까, 안 합니까 하지 않죠. 왜죠 그에게 그만한 재력이 있다는 것을 믿으니까 그렇죠. 그리고 그 사람이 해주겠다고 했으니까 그렇죠. 그 사람의 재력과 말을 믿기 때문에 더 이상 다른 데에 알아보지 않고 그 사람이 해결해줄 때까지 기다리고 있지요. 그리고 이제는 걱정을 하지 않지요.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시며 여러분의 침 삼키는 것까지 다 감찰하시고, 종일 주무시지도 아니하고 여러분을 보호하고 인도하시지요. 그분은 여러분의 생명을 가져가실 수도 있고 더 연장시켜주실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준 재능과 물질과 모든 환경을 불어버릴 수도 있고 더해주실 수도 있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여러분은 믿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실제 생활은 어떻습니까 어떤 믿을만한 사람이 약속한 것은 그대로 믿고 앉아 있을 수 있지만, 하나님께 맡기고는 좌불안석이 되어 바쁘게 움직일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의 모습. 오늘 우리는 다시한번 주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맡긴다고 하는 것은 나태가 아닙니다. 그것은 무사안일도 아닙니다. 그것은 무방비도 아닙니다. 무책임도 아닙니다.하나님을 믿고 전적으로 그분에게 맡긴다고 하는 것처럼 어려운 게 없어요. 맡긴다고 하는 게 무책임한 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게 무식한 것도 아닙니다. 운명론도 아닙니다. 하나님께 맡긴다고 하는 것이야말로 사람이 취할 수 있는 태도 가운데 가장 어려운 태도입니다. 다윗은 이 긴박한 상황 가운데 정말 시간을 쪼개고 쪼개도 아까운 이 상황에서 하나님의 전권자인 대제사장에게 묻습니다. 그가 지금까지 자기 마음 대로 자기 계획 대로 자기 방법 대로 문제를 해결하려다가 실패한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이제는 정말 하나님께 전적으로 자기를 의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현실의 문제를 당할 때마다 참으로 당혹하게 됩니다. 목사인 저부터도 갈등이 생기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정말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은,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지배하시고 오늘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사람의 모든 환경을 움직이시는 절대주권자이심을 믿고, 또한 그분에게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이 사람을 찾아가서 말을 하고 부탁을 해서 해결하는 것보다 더 정확하고 더 나은 해결방법이라는 사실을 믿고 끝까지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맡길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런 질문이 나옵니다. “그것은 너무 무책임한 행동이 아니냐 내가 그래도 무엇인가를 하면서 부탁을 해야지 무조건 하나님께 맡깁니다 하고 가만 있으면 될 문제가 아니지 않느냐” 맡긴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또한 이것처럼 적극적인 행동이 없습니다. 기독교인의 믿음은 무사안일의 믿음이 아닙니다. 적극적인 신앙입니다. 이것은 분명 적극적인 것입니다. 그분을 향해 마음을 돌이키지 않고 끝까지 지키고 있다는 것처럼 적극적이고 철저한 의뢰의 모습이 없습니다.
시편 37편 3절에서 9절까지의 말씀을 보면,“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이 말씀은 다윗이 자기의 일생을 통해 고백한 시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생각으로는 참 미련한 방법 같은데, 다윗은 고백하기를,“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땅에 살면서 하나님의 성실하심으로 음식을 삼으라.”고 한단 말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성실히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책임지시겠다고 약속하신 것 그것으로 먹을 식량을 삼으라 그말이지요. 그러면서 또 말하기를,“여호와를 찾으라. 하나님을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주시리라.”고 합니다. 5절에 보면,“너희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길을 우리가 가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이루시고 우리의 의를 빛같이 나타내며 우리의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고 우리를 높이시리라는 것입니다. 또 7절이 중요한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이 부분에서 우리가 날마다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우리가 참으로 이것을 제대로 실행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 맡긴다고 결심하고는 기도하지요. 그 제목을 놓고 한참을 기도하지요. 그러다가 안 이루어지면 그만 나가 떨어지고 맙니다. 그 다음에는 불평하고 앉았습니다. 누가 어떻고, 남편이 어떻고, 아내가 어떻고, 자식이 어떻고.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참아 기다리라.” 우리는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께 맡겨버렸다면 그분이 해결하실 걸 믿고 기다릴 줄 알아야지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재력있는 사람의 말은 믿으면서 어찌 하나님의 말씀은 못 믿느냐 말입니다 시편 62편 1절에서 2절을 보면,“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크게 요동치 아니하리로다.”고 다윗은 고백합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이제 다윗은 자기의 마음을 말과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이 생겼다는 말입니다. 5절과 6절에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도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고 다시한번 고백합니다.
8절에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9절에서 11절에,“진실로 천한 자도 헛되고 높은 자도 거짓되니 저울에 달면 들려 입김보다 경하리로다. 포학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 치심치 말지어다. 하나님이 한두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고 고백합니다. 우리 인간은 무엇을 의지합니까 천한 자도 헛되고 높은 자도 거짓되다고 그랬어요. 권력을 의지하면 그 권력이 망할 때 같이 망합니다. 그것들은 진정한 의지의 대상이 될 수 없어요. 그 다음에 무엇을 하지 말라고 합니까 포학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라고 그랬습니다. 그 다음에 재물이 늘어도 거기 치심치 말지어다고 하였습니다. 재물이는다 해도 거기 마음을 치우치지 말라는 말입니다. 마음을 거기 두지 말라 그말입니다. “하나님이 한두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오늘 우리는 권력 앞에 가서, 물질 앞에 가서 전부 다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그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사람을 찾아다니고 높은 사람 능력있는 사람 힘있는 사람 영향력있는 사람을 찾아다니지요.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의지하지 말라. 그것은 다 헛된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사야서 26장 3절에서 7절을 보면,“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높은 데 거하는 자를 낮추시며 솟은 성을 헐어 땅에 엎으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셨도다. 발이 그것을 밟으리니 곧 빈궁한 자의 발과 곤핍한 자의 걸음이리로다.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케 하시도다.”고 하셨습니다. 주께서 무엇이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신다고요 심지가 견고한 자, 마음의 의지가 견고한 자를 지키신다고 그랬죠 왜죠 “그가 주를 의뢰함이여.” 여러분, 이 말씀을 잘 보세요.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평강에 평강으로 인도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심지가 견고한 자, 끝까지 하나님을 붙들고 마음이 나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셨지요 헬라어의 염려라는 단어는 두 말의 합성어입니다. 마음이라는 단어와 나뉘어지다라는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마음이 나뉘어질 때 염려가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향한 마음,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 하나님을 믿는 마음, 이 마음의 심지가 끝까지 견고한 자, 그 사람에게는 평강이 임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4절에서 5절까지를 보면,“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높은 데 거하는 자를 낮추시며 솟은 성을 헐어 땅에 엎으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셨도다.” 높은 데 거하는 자와 솟은 성이란 무슨 말입니까 명예.권력.부귀가 있는 사람들, 영향력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을 말하지요. 그러나 그들도 하나님이 엎으시면 다 엎어지는 것입니다. 어느정도로 엎어시느냐면, 솟은 성을 허물어서 빈궁한 자들이 다 짓밟고 다니는 진토로 만들겠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면 오늘도 그 주권을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 높은 자를 낮추실 수도 있고 낮은 자를 높일 수도 있고 높은 성을 허물 수도 있고 세울 수도 있는 그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려고 할 때, 어떻게 의지하여야만 하는가 이사야서 26장에서는 심지가 견고하라고 그랬습니다. 하나님께 일단 맡기고 나아가면 끝까지 맡기고 나아가라는 말이지요. 가다가 상황보고 거저 마음이 나뉘어져서 염려하고 걱정하고 좌절하고 뒤돌아서고 하는 그런 마음에 무슨 평강이 있을 것이며,무슨 응답이 임하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잠언 3장 5-8절에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 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는 말씀이 있지요. 하나님을 의뢰하는 데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의뢰하라 그리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중요한 것은 6절이에요.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하나님께 맡기는 문제가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지요. 모든 일을 다 하나님께 맡기라,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는 말이지요. 범사를 그 분께 맡기고 의지하고 그 분에게 물어보란 말입니다. 네 마음 대로 하지 말라. 그러면 그분이 책임을 지고 네 길을 인도하시리라는 말입니다. 저는 어디 가서 설교할 때마다 잠언 3장 1-10절 말씀을 인생성공의 5대 비결이라고 들려드립니다. 성공적 삶을 사는 다섯가지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장수의 복, 사람과 하나님으로부터 귀중하게 여김 받는 인덕의 복, 하나님이 지도해주시는 복, 지혜로움의 복, 풍부한 물질의 복, 이 다섯가지 복이 여기 다 들어 있습니다. 장수해야지요. 사람이 나를 귀중히 여겨줘야지요. 하나남이 내 길을 책임져주셔야지요. 세상에서 대통령이 책임져준다고만 해도 그 인생 더 바랄 것이 없을 정도로 환하잖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신다는 겁니다. 그리고 또 지혜로와야 하고 물질이 있어야지요. 아무리 지혜롭고 오래 살아도 물질이 없으면 그 인생이 풍요롭지 못하지요. 물질이 있어야지요. 다섯가지 복이 다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 말씀 대로 사는 것이 제일 큰 복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해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의지할 때 어느정도 의지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긴박한 상황, 내가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그런 상황까지도 하나님께 맡기고 있어야 되는가 다시한번 따라해주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무책임이 아니라 철저히 문제해결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내 생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니 그것이 잘 됩니까 먼저 하나님께 묻고 그 다음에 그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서 움직여야지요. 바쁘니까 안 한단 말이죠. 급하니까 그렇게 하지 못한단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바쁠수록 절망적일수록 기도가 최선이오 최고요 완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묻는다는 것은 미런한 것이 아니에요. 다시한번 따라해주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일이 아니라 일을 위한 준비다.” 기도해서 받은 은혜, 깨달은 은혜 대로 순종하며 살아야지요. 그러나 오늘 문제로 삼고 있는 사람은, 또한 오늘 본문이 다루고 있는 사람은, 기도를 하다가 문제가 되는 사람이 아니라, 기도하지 않고 급하다고 자기 마음 대로 자기 생각 대로 행동에 옮기는,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이 모두 지금까지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냉정하게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되는지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미련한 짓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소극적 방법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무책임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는 것은 적극적인 일이며 책임 있는 일이고 또한 완전한 것이고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오늘도 여러분 마음이 급하다고 하여 바쁘다고 해서 하나님께 무릎 꿇는 생활을 버리지 마시고,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는 생활을 버리지 마시기를 바라며, 또한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들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시고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여러분 삶의 지표를 삼으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여러분의 직장생활과 사업과 가정생활을 영위하시며, 다윗이 궁극적으로 다시 회복하는 복을 받은 것처럼 여러분도 결국은 다시 회복하는 놀라운 은혜가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맡긴다고 고백한 적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정말 진심으로 믿고 온전히 맡겨본 적이 얼마나 있었습니까 하나님께 맡겼다가도 상황이 호전되지 않으면 그때에는 내 방법 대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동분서주했던 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하나님께 묻기도 전에 우리가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추진하기 위하여 바쁘게 움직였던 삶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래서 그 결과가 실패였고 궁핍이었고 망신이었고 초라함이었던 경험을 우리가 얼마나 많이 겪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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