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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에 대한 믿음 (삼상30:7-25)

본문

우리가 지난 주에는 30장 말씀을 통해서 아주 어려운 환경 가운데 빠졌던 다윗이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하심으로 구원을 받았고, 또 그와 같은 절망적 상황에서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새로운 힘을 얻었던 모습을 보았습니다. 지난 주에 특별히 말씀을 통해서 우리 마음에 강조되었던 것은 아주 절박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이제는 자기의 계획과 자기의 생각과 자기의 명철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구했던 다윗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가 다루었던 문제에 있어, 하나의 딜레머는, 이렇게 절박한 상황에서 우리 성도들이 해야 할 일들 가운데 가장 시급한 것이 과연 하나님께 묻는 것일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꼭 그렇게만 해야 하는가 어떤 행동을 취하지 않고 어떤 방법을 모색하지 않고 막연하게 하나님께만 묻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가 이론상으로는 남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 “아, 그럴 수 있겠다. 그때에는 누가 뭐라해도 하나님께 묻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다.”라고 쉽게 말하지만, 막상 우리의 발등에 불이 떨어지는 그와 같은 아주 긴박하고 시간을 지체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과연 기도만 하고 있을 수 있는가 이러한 문제가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자주 부딪히는 문제입니다. 지난 주에 말씀을 드리면서 무엇을 강조하였습니까 아무리 급해도, 처자식이 다 사로잡혀 가고, 어디로 끌려가서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르는 그와 같은 절박한 상황 가운데서 먼저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이 더 우선이고 더 지혜로운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떤 성도들은 오해를 하실 것입니다. “이제 무슨 문제가 생기든지, 기도만 하면 된다. 내가 어떤 방법을 모색하지 않아도 되고, 노력할 필요도 없고, 신경쓸 필요도 없다. 거저 기도만 하면 된다.”라는 오해로 기도 만능의 잘못된 신앙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이 본문을 통해서 성도들의 바른 신앙생활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알아 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제사장에게 묻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래서 하나님의 응답이 임합니다. 다윗이 묻기로는 “내가 쫓아가면 미치겠습니까”고 묻는데, 하나님께서는 “네가 쫓아가면 그들을 만날 수 있고, 또한 도로 찾을 것이다”고 응답해 주십니다. 그래서 다윗이 추격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어요. 조금전까지만 해도 다윗을 추종하던 육백명의 사람들이 다윗을 돌로 쳐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그것에 초연했습니다. 다시말하면 자기를 돌로 치려는 그 사람들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을 구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응답을 주셨습니다. 이 응답이 임하자, 지금까지 다윗을 돌로 치려했던 그 사람들이 모두 다윗을 따르게 됩니다. 그래서 육백명이 드디어 추격에 나섭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성에 있던 사람들은 아말렉 부족이 다 잡아 갔습니다.
그리고 아말렉은 사막에 살고 있기 때문에 어느 방향으로 갔는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여기서 추격한다는 말은 무작정 뒤쫓아간다는 말이지요. 방향을 미리 설정하고 추격을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사막을 들어가서 보니, 사람들이 모두 힘이 빠집니다. 조금 전까지만해도 기력이 다하도록 울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힘이 없지요. 뜨거운 햇볕 아래 사막에서 모두 다 지쳐 버립니다. 그리고 조금 가다가 오아시스를 만나게 되고 그들은 물을 마시고는 다 퍼져 버립니다. 더이상 갈 기력이 없습니다. 처자식들이 잡혀간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손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 버렸습니다. 육백명 가운데 이백명이 이렇게 나가떨어졌습니다. 다시말하면 전력의 삼분의 일이 손실된 것입니다. 나머지 삼분의 이도 지금 처자식을 살려야 되겠다는 일념으로 죽을 힘을 다해 쫓아갈 뿐이지 이미 다 지쳐 버린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이백명은 그 시냇가에 남겨두고 사백명만 데리고 추격을 계속합니다. 이렇게 추격을 하다 보니, 사막에 어떤 소년 하나가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 소년을 데려다가 물과 음식을 먹이고 정신을 차리게 한 다음 묻습니다. “너는 어디에서 왔느냐” “나는 아말렉 사람의 종입니다.” “네가 왜 여기 있느냐” “내가 병이 드니까 주인이 버리고 갔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말하기를 “네가 우리의 길잡이가 되어라. 그 아말렉 사람들이 어디로 갔으며, 그 동네가 어느 곳인지 네가 알 것이니 나를 인도하여라.”고 합니다. 아말렉 종이 다시 말하기를 “당신이 내 생명을 살려 준다고 보장을 해 주십시오. 그리고 아말렉을 만났을 때 나를 돌려보내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십시오.” 이에 다윗은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고는 그 아말렉 종을 앞세우고 아말렉 동네를 찾아갑니다. 가서 보니 이 사람들은 승리에 도취되어 잔치를 베풀고 놀고 있습니다. 그들이 취해서 잠이 든 새벽에 다윗의 사백명의 군대가 이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기 시작합니다. 그 다음날 해질 때까지 진멸하니, 아말렉 가운데 사백명의 소년들만 도망을 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잡혀 갔던 식구들을 모두 다시 찾았고, 더 많은 재물을 탈취하여 돌아옵니다. 돌아오다가 그 브솔 시냇가 남겨졌던 이백명을 만납니다. 그들이 나와서 문안하고 다윗도 문안합니다. 그때 같이 갔던 사백명의 사람들 가운데 일부가 말하기를, “저 사람들은 우리가 탈취해온 이 물건을 나눠 가질 자격이 없다. 저들은 도중에 탈락한 사람들이다. 그러니 저들의 처자식만 돌려 주자.”고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우리가 빼앗은 것은 우리의 힘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셨고 우리를 보호해 주심으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우리가 찾은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함께 나누어 가져야 한다.”고 하였으며, 그것이 이스라엘의 규례가 되었다고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이 본문을 통해 지난 주에 이어 계속해서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주에 6-8절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용기를 얻었던 다윗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인도하심을 구했던 다윗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다윗도 보았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후의 다윗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것을 깨달은 다음 과연 어떤 자세를 취하여야 되는지를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먼저 하나님께 응답을 구했던 다윗은 하나님의 응답을 보았습니다. “구하라 주실것이오, 찾으라 찾을 것이오, 두드리라 열릴 것이다.”는 하나님의 말씀과 같이, 구하는 이에게 넘치도록 풍성히 더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도 성도들이 위급한 상황과 절박한 상황에서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사람 의지하지 않고 만군의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을 통해서, 기도하는 묵상을 통하여, 환경을 통하여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먼저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분은 영(靈)이십니다. 그러나 그분은 오늘도 살아계셔서 우리에게 은혜와 능력을 베푸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 구해서 응답 받지 못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을 구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얼굴을 외면하신 역사가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분에게 구하지 않는 데에 있습니다. 야고보서에 보면,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않음이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이 주시려고 하는 은혜와 복을 누리지 못하는가 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구하지 않음이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지도하심을 바라지 않고 내 마음 대로 내 인생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아서, 또는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 우리의 인생을 책임져 주시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분 앞에 내 인생을 맡기지 않으며 구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것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그럴 때 여러분께도 다윗에게 응답하셨던 하나님께서 오늘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어떤 내용이었습니까 “쫓아가라. 그러면 만날 것이고 도로 다 찾을 것이다.” 따라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면 구하는 것보다 더 넘치도록 후히 주신다.” 다윗은 무엇을 기도했습니까 쫓아가면 만날 수 있겠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만날 뿐만 아니라 도로 다 찾을 것이라고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보십시오. 구하는 것보다 더 넘치도록 후히 주시지 않습니까 오늘도 이 하나님께서 우리 곁에 계십니다. 오늘도 그분은 구하는 자들에게 응답하시려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계시록에 보면, 성도들이 기도할 때에 천사들을 보내어, 그 천사들이 그 기도를 금그릇에 담아 향료와 함께 섞어서 하나님 보좌 앞에 놓으니까 하나님께서는 향료와 함께 그 기도를 흠향하시고 들으시고 응답하시더라 했습니다. 오늘도 성도들이 기도할 때에 하나님은 천사들을 보내어 그 기도를 금그릇에 담아 오게 하시고 흠향하시듯 기쁘게 받아 응답하십니다. 이렇게 다윗은 응답을 받고 추격을 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기도는 그 자체가 일이 아니라 일하기 전의 준비라는 사실입니다. 일하기 전에 기도로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은 무엇인가 이러한 것들을 먼저 묻고난 다음에 그 일을 위해 나아가야 합니다. 천년만년 기도만 하고 있으면, 하나님의 뜻을 훤히 깨닫고서도 앉아만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변화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이 변화되셨지요. 엘리야와 모세가 나타났어요. 부활한 모습, 이 다음 천국 가서 살 모습을 보여 주셨어요. 베드로가 그 모습에 감격하여, “주여, 여기다 초막 셋을, 하나는 주님을 위해, 하나는 엘리야를 위해, 하나는 모세를 위해 짓고, 여기서 삽시다.”고 말하자, 주님께서 말씀하시길, “베드로야, 내려가자. 할 일이 많다. 저 산 아래 동네에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하고 아직도 이 영광스러움을 모르는, 이 복된 천국을 깨닫지 못하는 수많은 죄인들이 있지 않느냐. 내려가서 일해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 영광을 보여 주신 까닭은 그 영광을 바라보고 살아라고, 그 하나님의 응답을 깨닫고 추구하고 그 응답을 이루라고 보여 주신 것이지 깨닫고 앉아 있으라고 보여 주신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뒤쫓아가기 시작합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하는 일에는, 조금전까지만 해도 돌로 자기를 치려고 했던 악한 사람들도 다 순종을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는 하나님이 책임을 지십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일에는 원수들의 마음까지도 변화시켜서 그 일을 돕도록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응답하신 일에 대해서는, 그것이 나의 환경으로는 불가능한 일일지라도, 믿고 따라가야 합니다. 다윗이 말씀을 믿고 뒤따를 때에 육백명 가운데 한명도 낙오자 없이 다 추종을 합니다. 일이 잘 되어서 추격을 시작하긴 했는데, 방향감각이 없어서 지치고 피곤하여져서 결국 의심이 생깁니다. 과연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여기서 이백명이 더이상 못 가겠다고 낙오가 됩니다. 이것이 중요한 점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 말을 기록하였는가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사명을 깨닫고 있습니다.
우리 강성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은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말씀을 통해서 이 시대적 사명을 깨닫고 있으며, 우리는 기도하는 가운데 이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깨닫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명을 감당해 나가기를 사모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일을 위해서 열심히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사명을 깨닫고 시대적 사명을 깨닫고 이 일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된다고 나아가지만 일년 이년이 지나면서 그 어떠한 결과들이 우리 눈 앞에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않을 때 우리들의 마음에 의심이 생깁니다. 우리의 환경을 보면, 이 시대적 사명을 감당할 그릇이 없습니다. 인물도 없습니다. 그만한 인원도 없습니다. 그만한 경제적 능력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만한 일꾼과 물질과 능력을 주실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과 함께 어떤 사람이라도 한 사람 복을 받고, 어떤 성도가 은혜를 받고,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이 나타나고, 물질의 복을 받는 모습이 구체적으로 나타나면 “야, 과연 그렇구나. 하나님의 응답이 그대로 나타나는구나.” 하는 믿음이 생기겠는데, 그렇지 않고 일년 이년 삼년이 지나 6주년이 됨에도 불구하고 우리 눈에는 가시적으로 이 시대적 사명을 감당할만한 믿음의 사람이 눈에 띄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있는 그 사업을 감당할 물질적 복을 받은 성도도 우리 눈에는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 마음에는 의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이 일을 위해서 기도해왔습니다. 기도하며 부르짖어 왔습니다. 그래도 구체적으로 나타나질 않을 때 우리는 힘이 들어서 지쳐 버립니다. 낙심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의 사명 뿐 아니라 여러분의 가정에도 받은 사명이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개인적으로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응답이 있지 않습니까 그 응답을 붙잡고 믿음으로 나아갈 때에, 그 응답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가시적으로 눈에 띄지 않는 상황들이 도래합니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는 한 사람 두 사람 낙오자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나는 아닌가봐, 내 남편, 내 가정, 우리 교회는 아닌가봐, 하는 낙오자가 나옴으로 인해서 열심히 뛰던 사람들까지도 지쳐 버립니다. 그러나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도 자신의 약속을 일점이라도 변함없이 그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 주변의 낙심하는 자들로 인해서 분위기가 흐려지고 우리의 마음 속에 의심과 좌절이 물밀듯 밀려오더라도 그래도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길 없는 사막을 뛰쳐나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신앙생활 속에서 이러한 경우들을 종종 봅니다.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에서 멋있는 인물들을 참 많이 만납니다. 그 가운데 한 분이 엘리야입니다. 엘리야는 참승리를 맛보았으나 또 철저하게 인간의 모습으로 낙심하여 도망치던 사람이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우리와 똑 같을 수 있겠습니까 엘리야도 우리와 성정이 똑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우리와 같이 약하고 의심하며 도망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 저가 믿고 기도하니 삼년 육개월 동안 내리지 않던 비가 내렸습니다. 야고보서에 믿고 기도하라고 강조하실 때에 그 말씀을 하셨습니다. 엘리야를 보십시오. 삼년 육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으니, 그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비를 주시겠습니까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갈멜 산상에서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비를 주옵소서.” 그곳에 아합왕을 비롯하여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엘리야 하나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엘리야가 먼저 선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비를 주신다.“ 그래 놓고서는 기도를 합니다. 왕을 비롯하여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삼년 육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엘리야의 말을 듣고 그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기도하고난 다음 종을 보냅니다. “야,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저 바닷가에 구름이 있나 없나 보아라.” 종이 갔다 와서 하는 말이 “구름이 안 보입니다.” 엘리야가 다시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무릎 사이에다 머리를 쳐박고 기도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정말 간절히 구했습니다. 그리고 또 종을 보냅니다. “구름이 있나 없나 보아라.” “없습니다.” 이것이 몇 차례 반복되었습니까 여섯 차례나 반복되었습니다. 저 같으면 여섯 차례까지도 못 했을 거에요. 한 세 차례 해 보고 그래도 구름이 없다 하면 의심을 하기 시작했을 거에요. 엘리야가 지금 백성들에게 뭐라고 했습니까 비가 온다고 했지요.
그런데 구름도 안 보이니 어떡합니까 제가 여러분들한테 “하나님께서 강성교회를 통해서 이렇게 역사하시고 싶어하십니다. 오늘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이 이것입니다.”라고 선포해 놓고서 기도합니다.
그러나 응답이 없어요. 눈에 보이는 것도 없습니다. 모두 낙심하며 떠납니다. 이러한 모습을 볼 때 제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날마다 제가 하는 말이 “10주년 때 두고 봐라,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통해서 어떻게 일하시는가.” 그러나 시간은 유수와 같이 흘러 벌써 6주년이 되었어요. 6년 동안 나타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그마만한 인물이 되고, 또 재력을 가진 사람이 없어요. 만나는 사람마다 오히려 목사가 신경을 써 줘야 될 사람들 뿐이에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선언해 놨는데 안 된단 말이에요. 그러면 뭐가 찾아오나요 이거 내가 잘못 응답 받았나 하는 의심이 생깁니다. 여러분,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 가정의 문제를 놓고도 적용을 하세요. 여러분 개인 개인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응답을 놓고도 적용해 보세요. 엘리야는 여섯 차례나 가도록 응답이 없어요. 대단합니다. 혼자서 기도하다가 그랬다면 문제가 없어요. 그러나 지금 상황은 왕과 모든 백성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선언해 놓고난 다음 하는 기도입니다.
그런데 응답이 없으니 얼마나 다급하겠습니까 일곱번째 종이 올라갔다 오더니 “주인님, 저 바닷가에 손바닥만한 구름 하나가 떴습니다.” 그러니깐 엘리야가 더 이상 기도하지 않고 일어서며 하는 말이, “왕이여, 빨리 마차를 급히 몰아 성으로 피하십시오. 비가 쏟아집니다.”고 합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구름이 크게 몰려온다면 “왕이여, 비가 올 징조가 보이니 갑시다.”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손바닥만한 구름 하나를 보고 더 이상 기도도 하지 않고 하는 말이, “왕이여, 마차를 급히 모소서. 비를 만날까 하나이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에 대하여는 손바닥만한 구름을 보아도 그대로 뛰기 시작하는 사람.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 사람들이 낙오됨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자기 갈 길을, 방향 없는 그 길을 가는 다윗의 모습. 이것이 바로 오늘 이 시대에 저와 여러분께 요구되고 있는 믿음의 사람의 모습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무작정 뛰게 하시지 않습니다. 무작정 가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믿음을 요구하실 뿐입니다. 믿음을 요구하신 다음, 우리에게 믿음만 있으면, 그 다음 단계는 그 믿음에 화답하시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엘리야가 뛰기 시작하니까, 손바닥만한 구름이 검은 먹구름으로 변해서 소나기로 쏟아지는 놀라운 발전의 과정이 하나님의 역사로 일어납니다.
다윗이 낙오되는 사람들을 두고 믿음을 가지고 광야길을 나갈 때에 사람 없는 사막에서 한 사람을 만나는데 그 사람은 다름아닌 애굽 사람으로서 아말렉의 종이 되었던 사람입니다. 아마 저 같으면 갈길도 바쁜데 그냥 지나쳤을 겁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을 물을 먹이고 떡을 먹여서 정신차릴 때까지 간호를 하고 앉아 있었으니, 이건 앞뒤가 맞질 않아요.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서 다윗은 그 사람을 지나쳐 버리지 않고 쓰러져 있는 소년을 데려다가 먹이고 마시우고 회복될 때까지 기다립니다. 무엇을 봅니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있다는 겁니다. 그를 회복시키고 나니깐 아니나 다를까 그는 아말렉의 종이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자, 병이 드니까 주인이 버렸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앞뒤가 또 안 맞아요. 왜요 다윗이 데려다가 물 먹이고 음식 먹이니까 깨어났습니다. 그럼 이 사람이 치명적으로 병든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주인이 볼 때에는 이 녀석은 더 이상 쓸모 없는 놈이라 판단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 시대에는 노예라고 하면 재산입니다. 재산을 그냥 버립니까 쓸모 없다고 인정되니까 버린 것이지요. 그러나 다윗의 손에 오니 바로 회복되었습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앞에서부터 앞뒤가 안 맞고 있습니다. 앞뒤가 안 맞고 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우연히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을 인도하시기 위해서 한 사람을 길잡이로 세우신 사건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볼 때에는 우연이지요. 운이 좋고 재수가 좋아서. 믿는 우리들 입에서도 이런 말을 하는데, 제발 좀 현실을 직시하십시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그 은혜를 무시하시지 마십시오. 그래서 다윗은 갔습니다. 도로 다 찾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따라오지 못했던 이백명의 사람들이 브솔 시냇가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말렉이 다른 마을을 점령하고 그 다음 시글락을 점령해서 끌고 왔기 때문에 많은 재물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지금 다 가지고 오고 있어요. 사람들이 말하기를, “저 사람들은 이것을 나누어 가질 수 없다. 우리는 목숨 걸고 쫓아갔는데, 저 사람들은 자기들 피곤하다고 남아있던 사람들이니 처자식만 돌려 주어도 감지덕지해야 한다. 우리가 뺏은 탈취물까지 같이 나누어 가질 자격이 없다.”고 합니다. 이에 다윗은 말합니다. “우리가 뺏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것이니 저들도 우리와 똑같이 나누어 가져야 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이 사실을 마음에 깊이 새겨야만 합니다. 우리는 같은 응답을 받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같이 노력하는 성도들이며 형제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일을 위해서 전력질주할 때에, 믿음을 가지고 나아갈 때, 우리에게도 낙오자는 생깁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낙오자를 멸시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 그들은 믿음이 연약하기 때문에 의심하는 것이고, 믿음이 약하기 때문에 지쳐서 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무시하고 멸시할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이해하고 위로하며 붙잡아줘야 할 대상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복을 받았을 때 그것은 내가 차지한 것들이 아님을 동시에 발견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백하기를 “내가 다른 사도들보다 더 많이 수고한 것은 주의 은혜라”고 했습니다. 나의 나된 것은 주의 은혜며, 오늘 내가 누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복임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자신의 재산인 줄로 착각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복을 받았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한 형제들과 함께 나누라고 주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눔의 형제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은혜를 주셨습니까 그 은혜는 여러분만 가지고 좋아할 것이 아니고, 여러분만 만족해 할 것이 아니라, 오늘도 은혜를 받지 못하는 다른 성도들에게 나눠줘야 할 은혜라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께 물질의 복을 주셨습니까 그것을 가지고 혼자 잘 먹고 잘 쓰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 연약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청지기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의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에게 맡겨 관리하게 하는 것이라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저와 여러분께 주시는 말씀을 정리합시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십시오. 그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답답할 때, 갈 길을 알지 못할 때, 어려울 때,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무슨 일을 추진하려고 할 때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며 무엇을 원하시는지 물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받은 응답에 대해서는 환경이 그 응답과 맞지 않는다 할지라도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나아가는 과정에 여러가지 어려움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눈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들이 계속 전개되고, 받은 응답에 의심이 생기기 시작하며 받은 응답을 추진해 나가기에는 너무나 벅찬 상황이 닥칠 것입니다. 그리고 지쳐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때는 절망할 때가 아니라 새로운 힘을 얻어 더 한걸음 나아갈 때입니다. 이렇게 나설 때에 눈앞이 보이지 않던 절망적 상황 가운데서 빛이 비취기 시작합니다. 거기서 쓰러지면 실패합니다. 아무리 응답을 받았다 할지라도 그 자리에 머물러 버리면 응답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좌절하고, 옆 사람들이 낙심하고, 여러분 스스로도 지쳐 쓰러질 때, 마음에 의심이 생길 때, 주저앉지 마시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십시오. 분명히 아말렉 노예였던 소년을 다윗에게 붙여 주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도 인도하실 길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결단코 그냥 내버려두시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한 걸음 더 나아가십시오. 한 고비 더 넘기십시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오늘도 저와 여러분에게 “내가 너희를 깨닫게 하지 않았느냐 너희에게 응답을 주지 않았느냐 네가 그것을 믿느냐 믿는다면 환경때문에 낙심하지 말라. 의심하지 말라. 막연하고 불가능한 것 같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아라. 믿음으로 다시한번 나아가 보아라. 그 앞에 길이 있다.”고 말씀하시며, 또한 그것을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도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이 은혜를 받기를 격려하시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마음에 의심이 있습니까 지쳐 있습니까 다시한번 무릎을 꿇고 힘을 구하십시오. 다시한번 떨쳐 일어나십시오. 나가십시오. 여러분 앞길에 주님의 인도하시는 손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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