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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세계에 간섭하시는 하나님 (삼상17:41-49)

본문

유명한 역사학자인 아놀드 토인비의 저서 '역사의 연구'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역사는 지배적 소수와 창조적 소수에 의해 지배된다. 지배 적 소수가 역사를 지배할 때는 절망이요 창조적 소수가 지배할 때는 희망적 이다." 그런가 하면 노만 빈센트 필 박사는 인생을 뜻하는 'L
IFE'의 단어분 석을 통해 첫글자 'L'과 끝글자 'E'를 배면 'IF' 즉 '만일'의 단어가 된다 고 합니다. 이는 곧 인생이란 만일의 삶으로, 앞으로 어떠한 일이 생길지 알수 없는 불확실한 존재라는 것을 우리에게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놀드 토인비가 생각하는 것처럼 인간역사의 주체가 인간이 아니 요 노반 빈센트필박사가 말한 것처럼 인생이 그렇게 불확실한 존재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역사와 인간의 생명은 천지만물과 인간을 지으신 한님이 그 주체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사무엘서는 바로 하나님이 역사의 주체이심을 전55장을 통해 우리에게 나타내 줍니다.
첫재,하나님은 크고 작은 인간역사를 주장하시고 통 치하시며 적극적으로 개입하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최상의 유 익을 위해서 일하십니다.
셋째, 하나님은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지도자를 세우십니다.
넷째, 하나님은 예언자의 음성으로나 다른 어떤 방법 으로든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말씀을 하십니다. 이와같이 인간의 역사로부터 자연계이 이르는 모든 삼라만상은 하나님의 세미한 손길과 주권 하에 되 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본문의 사무엘서를 통해 조명되는 약 150년 동안의 시간은 사사시대 말기 부터 다윗왕의 말기에 이르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 동안 역사의 중요한 세 사람, 사무엘과 사울, 다윗이 등장합니다. 사무엘서는 바로 이 세사람의 출 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150년의 역사 속에 일어난 사건과 일들을 통해 한 사람, 한사람의 생애 속에 간섭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주권과 생각, 계획의 손길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인간의 면에서 한 인간의 위대성을 보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 을 사용하여 역사의 통치자로 세우시고, 영적인 지도자와 왕으로 세워 세상 의 모든 인간의 역사의 수레바퀴를 움직여 나가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주권 적 사역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다윗이라는 사람을 선택하셔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시기가지, 또 일평생 살아가는 동안 어떻게 다윗의 생활에 역사하시고 계시는가를 보여줌으로, 20세기의 말엽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생활과 환경 을 통해서 하나님은 어떻게 한 사람 한사람을 움직여가고 계시는지 그 원리 에 대해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선택원리 사무엘상 16장에 보면 어느날 하나님은 선지자 사무엘에게 "내가 이미 사 울을 버려 이스라엘을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 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기름을 뿔에 채워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 아들 중에서 한 왕을 예선하였음이 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기름뿔에 기름을 채워가지고서 이새의 집에 갔습니다. 이새의 맏아들 엘리압을 보았을때 사무엘은 그의 용 모가 준수하여 신장이 출중함에 그에게 기름을 부을려고 하였습니다. 그러 자 하나님께서는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말씀하시며 막으셨습니다. 이새의 일곱 아들이 사무엘 앞에 다 나왔으나 어 느 하나도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지 못했습니다. 마지막 여덞번째 아들인 아 작고 어린 다윗이 사무엘 앞에 나왔을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이 사건은 하나님의 선택의 원리를 잘 보여줍니다. 또 여러분이 무엇을 어 떻게 선택해야 될것인가 선택의 기준을 바로 제시해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을 택하여 쓰십니다. 사무엘도 예측하지 못했으며 다윗 자신도 예측하지 못한 다윗을 선택하여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중심을 보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란 선택의 연속입니다. 하루의 일과만 생각해도 무슨 옷을 입을까 부터 시작해서 무엇을 하고 먹고 무엇을 할까 많은 선택의 순간에 놓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갈 동안 누구와 결혼할 것인가 어느 학교 무슨과를 택할 것인가 어떤 직장을 택할 것인가 많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누구를 무엇을 선택하기 이전에 먼저 인간의 시각이 아닌 하나님의 시각에 입각해서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한 님의 선택원리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선택할 때 사회적 명망과 지식이 많고 돈이 많은 바리새인이나 서기관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당시 가장 보잘 것 없고, 전 혀 생각의 대상이 되지 않았던 어부들과 세리 중에서 선택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21세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교회는 많은 변화를 일 으킬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21세기를 준비할 때 전혀 예상하지 아 않았떤 다윗과 같은 사람들이 일어나 하나님의 일을 할 것입니다. 영적인 시각으로 사람과 사물을 보시기 바랍니다.하나님의 선택기준은 사람의 선택 기준과 다른 것입니다.
2.하나님의 사역원리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요1:1)" 이 말씀을 그 유명한 명작 파우스트에 달리 해석하여 쓰고자 했던 문호 괴테는 많은 고심을 하였습니다. 그는 많 은 고심 끝에 "태초에 Tart(행동)가 있었다"라고 해석하고는 흡족해 하였습니다. 즉 태초에 이미 하나님께서 행동하고 있었다. 사역하고 있었다는 것 입니다. 그러면 태초부터 있은 하나님의 사역원리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적은 것으 로 큰 것을 감당하는 사역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겨우 열일곱살 난 어린 다 윗을 통하여 그 당시 최대의 용사 골리앗을 이겼습니다.시냇가에 굴러다니는 볼품없는 돌 한개로 최신 무기를 능가하는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남자 오천명을 먹이고도 열두광주리를 남기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역원리 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적은 것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벽돌 한장 한장이 견고히 쌓여야만 큰 건물이 튼튼이 서있는 것처럼 적은 것의 중요함을 알아 야 합니다. 최근에 부실공사의 결과들이 바로 적은 것을 무시했기 때문에 자초된 결과들입니다. 불신앙이란 바로 적은 것을 무시하는 데 부터 시작됩니다. 기독교는 큰 것 으로 큰 것을 이루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2장에서 믿는 적은 무리들을 위해 위로의 말씀을 하십니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그 나라는 하늘나라입니다.두려움에 떠는 적은 무리에게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를 통째로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마음 속에 간질하고 있다면 세상의 돈과 명예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의 강함보다 강하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갔던 열두명의 정탐꾼 중 열명은 자신들의 적은 것 을 무시했습니다. 그들은 용사고 우리들은 메뚜기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자기를 무시하는 것은 곧 자기의 형상대 로 지으신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동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보고 보잘것 없었 다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작고 보잘것 없는 자를 통해 큰 역사를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의 사고원리 골리앗을 죽이고 돌아온 다윗에게 예루살렘 여자들은 말합니다. "다윗이 죽인자는 만만이요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라" 이 소리를 들은 사울은 그 때부터 그를 죽이려고 주목합니다. 기회를 찾습니다. 사울왕의 궤계속에 다 윗은 그때부터 삼십년 동안을 산과 들로 피신하며 숨어 살아야 했습니다. 상급을 받아야 마땅한 그가 시련아닌 시련을 삼십년 이상 겪어야 했던 것입니다. 왜 이런 시련을 당해야만 했습니까 거기에는 하나님의 생각이 있기 때문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신앙과 인격을 보다 더 고상하고 좋은 믿음과 신앙으로 만들기 위하여 연단하고자 시련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 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사48:10)" 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무슨 문제가 있다면 분명 그 문제 속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선교를 떠난 한 선교사가 사람들이 시냇가를 건너갈 때마다 돌을 짊어지고 갔다가 돌아올때 또 그 돌을 짊어지고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 도 이상해서 물살도 쎈대 왜 사람들이 저러는가 무척 궁금해 자신도 그대 로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돌을 짊어지고 가니까 돌의 무게로 인해 그렇게 쎈 물살속에도 끄덕없이 건너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좀 힘든 십자가도 주님이 짊어주신 것 짊어지고 가면 세상적으로 떠내려 가지 않습니다. 그 십자가를 괴로워만 하지 말고, 하나님의 깊으신 감당할 줄 알아야 합니다.하나님은 시련을 통해 우리들을 금보다 더 귀하게 만드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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