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자와 약한 자 (삼상17:41-49)
본문
사무엘상 17장은 블레셋 사람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한판 승부를 가리기 위해 진을 치고 공격의 기회를 기다리고 있을 때 일어난 사건을 기록한 말씀입니다.그 당시의 전세가 얼마나 위급했었는가 하는 것은 사울 왕이 직접 전선에 나와 진두 지휘를 하고 있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베들레헴에서 양을 치고 있던 이새의 8형제 중 막내인 다윗이 출전한 형들을 면회하러 갔다가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그것은 블레셋 장군 골리앗이 온갖 욕설을 다 퍼부으면서 이스라엘을 조롱하고 모욕하고 있었지만 이스라엘은 무서워 떨고 있을 뿐 그 누구 한 사람 나서서 대응하거나 싸우려는 사람이 없습니다.그도 그럴 것이 골리앗의 신장은 여섯 규빗 한 뼘이고 갑옷의 무게가 5천 세겔이며 다리에는 놋으로 만든 경갑을 쳤고 어깨에는 놋단창을 메었고 그의 창자루는 베틀채 같고 창날은 철 6백 세겔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키가 여섯 규빗 한 뼘이라는 것은 9피트(270cm)이며 그의 갑옷이 5천 세겔이라는 것은 126파운드(57kg)를 말하고 창날이 6백 세겔이라는 것은 16파운드(7kg)라는 것입니다.한 마디로 그는 거인이었고 그의 목소리는 이스라엘의 진영인 엘리 골짜기를 쩌렁쩌렁 울리고도 남았습니다.골리앗의 거대한 체구와 그 위용에 질린 이스라엘이었기에 그 누구도 나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소년 다윗이 형들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 주기 위해 그 현장을 찾아갔다가 그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다윗이 골리앗을 대항하여 싸우겠다고 나서서 한판 승부를 겨룬 끝에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입니다.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은 큰 자와 작은 자의 대결이었으며 강한 자와 약한 자의 대결이었습니다.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문제시 해야 할 것은 누가 강한 자이며 누가 약한 자인가 하는 점입니다. 객관적 관찰에 의한다면 투구와 갑옷과 단창과 칼과 방패로 무장한 거인 골리앗이 큰 자이며 강한 자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거인이며 큰 자이며 강한 자인 골리앗이 소년 다윗이 던진 조약돌 하나에 맞고 쓰러진 것입니다.강한 자는 골리앗이었지만 이긴 자는 강한 자가 아니라 나이 어린 다윗이었습니다.그러니까 엘라 골짜기의 대결은 약한 자의 승리였으며 작은 자의 승리로 끝이 난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사건을 통하여 참으로 강한 자가 누구이며 참으로 큰 자가 어떤 사람이며 참으로 힘센 자가 어떤 사람인가를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1.누가 강한 자입니까 자기 스스로를 강한 자라고 떵떵거리고 떠벌린다고 해서 강한 자인 것은 아닙니다.강한 자는 강한 힘과 조건을 소유한 사람입니다.그리고 이기는 자입니다.
1)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믿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45절에서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고 했습니다.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을 대표합니다.대통령이 보내는 편지에는 대통령의 서명이 있습니다.그 서명은 곧 대통령의 권한과 권위를 상징하기 때문에 대통령의 뜻이나 생각을 전달하기에 충분한 것입니다.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이름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실재와 실체를 믿는 것입니다.다윗은 하나님의 실체를 본 일은 없었지만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습니다.그리고 그 이름을 믿었습니다. 시편 20:7에서 다윗은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라고 했고 시편 118:10의 시인도 “열방이 나를 에워쌌으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희를 끊으리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소년 다윗에게는 하나님의 이름을 믿는 신앙이 있었습니다.본문 46절에서 다윗은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다”고 했습니다.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믿는 사람은 강한 사람입니다.우리가 구원받는 것도 주의 이름을 부르고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주의 이름을 부르고 믿으면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그 능력을 공급받기 때문에 강한 힘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2)승리를 확신하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32절에서 무서워 떨고 있는 사울 왕에게 “그를 인하여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고 했으며 37절에서는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은즉 나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라고 했고 46절에서는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라고 했습니다.다윗은 싸우기 전에 이미 승리를 확신하고 선언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믿음입니다.싸우기도 전에 벌써 패배를 생각하고 포로되는 것을 생각하고 죽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미 지고 만 것입니다.다윗은 골리앗과 직접 대결하기 전에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그 목을 베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리적인 힘보다는 정신력이 더 강합니다.물리적인 힘은 정신적인 힘을 당해 낼 수도 이길 수도 없습니다.그러나 영적인 힘,신앙의 힘은 물리적인 힘이나 정신적인 힘보다 더 강합니다.신앙의 힘은 그 어떤 것도 당해 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세계를 제패했던 로마도 신앙의 힘은 제패하지 못하고 결국 손을 들고 말았습니다.예수 안에서 우리는 늘 승리할 수 있으며 승리하고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예수는 질병도 사람도 죽음도 이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사람인 우리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8:37에서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리라”고 했고 고린도전서 15:57에서는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라고 했습니다.하나님의 승리를 믿는 사람이 강한 사람입니다.
3)전쟁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믿는 사람이 강한 사람입니다. 47절에서 다윗은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이 말 속에는 이 전쟁이 골리앗과 이스라엘의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과 골리앗의 싸움이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싸움이라면 승산이 없습니다.그러나 블레셋과 하나님의 싸움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라면 상대거리도 되지 않습니다.그러나 골리앗과 하나님의 싸움이라면 문제가 되질 않습니다.시편 46:9에서 시인은 “저가 땅 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전쟁을 쉬게 한다는 것은 이기게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내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내것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지키고 내가 보호하고 내가 관리해야 합니다.그러나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믿고 맡기면 하나님이 지키시고 관리하시고 보호해 주십니다.우리가 진실로 평안하고 안전한 삶을 살려면 하나님께 맡기면 됩니다.내가 움켜쥐고 있는 한 나는 약자이지만 하나님께 맡기면 강자가 됩니다.
2.누가 약한 자입니까 큰소리 치고 떵떵거렸던 골리앗이 약한 자입니다.이유는 무명 소년이 던진 조약돌이 이마에 박혀 쓰러져 죽었기 때문입니다.
1)헛된 우상을 섬기는 자가 약한 자입니다. 43절을 보면 골리앗이 그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했다고 했습니다.이스라엘은 유일신이신 하나님을 섬겼지만 블레셋은 신들,즉 다신(多神)을 섬겼습니다.다신은 곧 잡신입니다.그리고 잡신은 곧 우상입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갈대아 우르에 살고 있던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 제조업으로 돈을 모은 사람이었다고 합니다.아들인 아브라함으로서는 늘 그것이 마음에 걸렸을 것입니다.어느 날 아버지가 외출한 틈을 타 아브라함이 우상을 모조리 박살내 버렸습니다.그리고 먹다 남은 음식을 박살내 버린 우상들 사이사이에 뿌려 두었습니다.외출했다 돌아온 데라가 깜짝 놀라 아브라함을 불러 그 연유를 따졌습니다.그러나 아브라함은 시치미를 떼고 우상들이 시장할까봐 음식을 가져다 주었더니 서로 먼저 먹겠다고 싸움이 벌어져 치고 박는 바람에 이렇게 되었다고 대답하자,데라가 호통을 치면서 우상이 어떻게 음식을 먹을 수 있으며 치고 박는 싸움을 할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그 말을 듣고 아브라함이 먹지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우상은 왜 만들어 파느냐고 따졌다는 것입니다.우상 종교는 약합니다.뿌리가 없습니다.그래서 종교 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것입니다.골리앗은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큰소리는 쳤으나 사실은 약자였습니다.
2)교만한 자가 약한 자입니다. 36절을 보면 골리앗은 하나님을 모욕했고 42절을 보면 다윗을 조롱하고 저주했습니다.언제나 자신을 과대 평가하는 사람들은 남을 업신여기고 멸시합니다.그러나 교만한 사람을 주님은 멀리 하시고 도와주지 않기 때문에 교만에 빠지는 그 순간부터 그는 약자로 전락하며 고독한 자로 전락하게 되는 것입니다.그리고 멸망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3)자기 힘을 믿는 자가 약한 자입니다. 45절을 보면 그는 칼과 단창만을 의지했다고 했습니다.그는 자신의 덩지 큰 것,전신 갑주 입은 것,많은 사람이 대장군이라고 치켜 세우는 것만을 내세우고 자랑하고 의지했습니다.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고 자신을 과대 평가하고 교만에 젖어 있던 골리앗은 엘라 골짜기에 쓰러졌습니다.소년 다윗이 던진 조약돌 하나에 이마가 터져 쓰러진 것입니다.40절을 보면 다윗이 매끄러운 돌 다윗을 골라 가지고 골리앗을 향해 나갔습니다.물매에 돌을 끼워 던졌을 때 9피트 거구 골리앗이 쓰러진 그 장면은 그야말로 장관이었을 것입니다. 그 장면은 작은 자가 큰 자를 이기는 장면이었고 약한 자가 강한 자를 쓰러뜨리는 장면이었습니다.그리고 하나님의 권능이 다윗을 통해 폭발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그것은 조약돌 4개가 남았다는 사실입니다.하나님의 승리는 항상 여유 만만합니다.겨우 가까스로 이기는 싸움이 아니라 바울이 말한 대로 “넉넉히 이기는” 싸움인 것입니다. 주경가 매튜 헨리는 “그날 엘라 골짜기에 있었던 다윗의 승리는 사탄과 모든 어두움의 세력에 대한 다윗 자손 예수의 승리의 예표였다”고 말했습니다.이스라엘은 생기를 되찾아 총공격을 시작했고 블레셋은 혼비 백산하여 줄행랑을 쳤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약한 자가 아닙니다.하나님께 인정받은 사람은 작은 자가 아닙니다.그러나 제아무리 강하고 많이 소유했고 큰 자라고 자처해도 하나님을 떠나면 그 순간 엘라 골짜기에 쓰러졌던 골리앗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참으로 강한 자는 하나님이 지키는 사람입니다.참으로 큰 자는 하나님께 소속된 사람입니다.참으로 안전한 사람은 하나님이 보호하는 사람입니다.참으로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 안에 사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에 참으로 강한 존재입니다.아멘.
그의 키가 여섯 규빗 한 뼘이라는 것은 9피트(270cm)이며 그의 갑옷이 5천 세겔이라는 것은 126파운드(57kg)를 말하고 창날이 6백 세겔이라는 것은 16파운드(7kg)라는 것입니다.한 마디로 그는 거인이었고 그의 목소리는 이스라엘의 진영인 엘리 골짜기를 쩌렁쩌렁 울리고도 남았습니다.골리앗의 거대한 체구와 그 위용에 질린 이스라엘이었기에 그 누구도 나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소년 다윗이 형들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 주기 위해 그 현장을 찾아갔다가 그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다윗이 골리앗을 대항하여 싸우겠다고 나서서 한판 승부를 겨룬 끝에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입니다.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은 큰 자와 작은 자의 대결이었으며 강한 자와 약한 자의 대결이었습니다.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문제시 해야 할 것은 누가 강한 자이며 누가 약한 자인가 하는 점입니다. 객관적 관찰에 의한다면 투구와 갑옷과 단창과 칼과 방패로 무장한 거인 골리앗이 큰 자이며 강한 자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거인이며 큰 자이며 강한 자인 골리앗이 소년 다윗이 던진 조약돌 하나에 맞고 쓰러진 것입니다.강한 자는 골리앗이었지만 이긴 자는 강한 자가 아니라 나이 어린 다윗이었습니다.그러니까 엘라 골짜기의 대결은 약한 자의 승리였으며 작은 자의 승리로 끝이 난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사건을 통하여 참으로 강한 자가 누구이며 참으로 큰 자가 어떤 사람이며 참으로 힘센 자가 어떤 사람인가를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1.누가 강한 자입니까 자기 스스로를 강한 자라고 떵떵거리고 떠벌린다고 해서 강한 자인 것은 아닙니다.강한 자는 강한 힘과 조건을 소유한 사람입니다.그리고 이기는 자입니다.
1)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믿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45절에서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고 했습니다.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을 대표합니다.대통령이 보내는 편지에는 대통령의 서명이 있습니다.그 서명은 곧 대통령의 권한과 권위를 상징하기 때문에 대통령의 뜻이나 생각을 전달하기에 충분한 것입니다.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이름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실재와 실체를 믿는 것입니다.다윗은 하나님의 실체를 본 일은 없었지만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습니다.그리고 그 이름을 믿었습니다. 시편 20:7에서 다윗은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라고 했고 시편 118:10의 시인도 “열방이 나를 에워쌌으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희를 끊으리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소년 다윗에게는 하나님의 이름을 믿는 신앙이 있었습니다.본문 46절에서 다윗은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다”고 했습니다.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믿는 사람은 강한 사람입니다.우리가 구원받는 것도 주의 이름을 부르고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주의 이름을 부르고 믿으면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그 능력을 공급받기 때문에 강한 힘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2)승리를 확신하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32절에서 무서워 떨고 있는 사울 왕에게 “그를 인하여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고 했으며 37절에서는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은즉 나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라고 했고 46절에서는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라고 했습니다.다윗은 싸우기 전에 이미 승리를 확신하고 선언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믿음입니다.싸우기도 전에 벌써 패배를 생각하고 포로되는 것을 생각하고 죽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미 지고 만 것입니다.다윗은 골리앗과 직접 대결하기 전에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그 목을 베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리적인 힘보다는 정신력이 더 강합니다.물리적인 힘은 정신적인 힘을 당해 낼 수도 이길 수도 없습니다.그러나 영적인 힘,신앙의 힘은 물리적인 힘이나 정신적인 힘보다 더 강합니다.신앙의 힘은 그 어떤 것도 당해 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세계를 제패했던 로마도 신앙의 힘은 제패하지 못하고 결국 손을 들고 말았습니다.예수 안에서 우리는 늘 승리할 수 있으며 승리하고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예수는 질병도 사람도 죽음도 이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사람인 우리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8:37에서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리라”고 했고 고린도전서 15:57에서는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라고 했습니다.하나님의 승리를 믿는 사람이 강한 사람입니다.
3)전쟁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믿는 사람이 강한 사람입니다. 47절에서 다윗은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이 말 속에는 이 전쟁이 골리앗과 이스라엘의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과 골리앗의 싸움이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싸움이라면 승산이 없습니다.그러나 블레셋과 하나님의 싸움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라면 상대거리도 되지 않습니다.그러나 골리앗과 하나님의 싸움이라면 문제가 되질 않습니다.시편 46:9에서 시인은 “저가 땅 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전쟁을 쉬게 한다는 것은 이기게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내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내것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지키고 내가 보호하고 내가 관리해야 합니다.그러나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믿고 맡기면 하나님이 지키시고 관리하시고 보호해 주십니다.우리가 진실로 평안하고 안전한 삶을 살려면 하나님께 맡기면 됩니다.내가 움켜쥐고 있는 한 나는 약자이지만 하나님께 맡기면 강자가 됩니다.
2.누가 약한 자입니까 큰소리 치고 떵떵거렸던 골리앗이 약한 자입니다.이유는 무명 소년이 던진 조약돌이 이마에 박혀 쓰러져 죽었기 때문입니다.
1)헛된 우상을 섬기는 자가 약한 자입니다. 43절을 보면 골리앗이 그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했다고 했습니다.이스라엘은 유일신이신 하나님을 섬겼지만 블레셋은 신들,즉 다신(多神)을 섬겼습니다.다신은 곧 잡신입니다.그리고 잡신은 곧 우상입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갈대아 우르에 살고 있던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 제조업으로 돈을 모은 사람이었다고 합니다.아들인 아브라함으로서는 늘 그것이 마음에 걸렸을 것입니다.어느 날 아버지가 외출한 틈을 타 아브라함이 우상을 모조리 박살내 버렸습니다.그리고 먹다 남은 음식을 박살내 버린 우상들 사이사이에 뿌려 두었습니다.외출했다 돌아온 데라가 깜짝 놀라 아브라함을 불러 그 연유를 따졌습니다.그러나 아브라함은 시치미를 떼고 우상들이 시장할까봐 음식을 가져다 주었더니 서로 먼저 먹겠다고 싸움이 벌어져 치고 박는 바람에 이렇게 되었다고 대답하자,데라가 호통을 치면서 우상이 어떻게 음식을 먹을 수 있으며 치고 박는 싸움을 할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그 말을 듣고 아브라함이 먹지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우상은 왜 만들어 파느냐고 따졌다는 것입니다.우상 종교는 약합니다.뿌리가 없습니다.그래서 종교 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것입니다.골리앗은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큰소리는 쳤으나 사실은 약자였습니다.
2)교만한 자가 약한 자입니다. 36절을 보면 골리앗은 하나님을 모욕했고 42절을 보면 다윗을 조롱하고 저주했습니다.언제나 자신을 과대 평가하는 사람들은 남을 업신여기고 멸시합니다.그러나 교만한 사람을 주님은 멀리 하시고 도와주지 않기 때문에 교만에 빠지는 그 순간부터 그는 약자로 전락하며 고독한 자로 전락하게 되는 것입니다.그리고 멸망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3)자기 힘을 믿는 자가 약한 자입니다. 45절을 보면 그는 칼과 단창만을 의지했다고 했습니다.그는 자신의 덩지 큰 것,전신 갑주 입은 것,많은 사람이 대장군이라고 치켜 세우는 것만을 내세우고 자랑하고 의지했습니다.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고 자신을 과대 평가하고 교만에 젖어 있던 골리앗은 엘라 골짜기에 쓰러졌습니다.소년 다윗이 던진 조약돌 하나에 이마가 터져 쓰러진 것입니다.40절을 보면 다윗이 매끄러운 돌 다윗을 골라 가지고 골리앗을 향해 나갔습니다.물매에 돌을 끼워 던졌을 때 9피트 거구 골리앗이 쓰러진 그 장면은 그야말로 장관이었을 것입니다. 그 장면은 작은 자가 큰 자를 이기는 장면이었고 약한 자가 강한 자를 쓰러뜨리는 장면이었습니다.그리고 하나님의 권능이 다윗을 통해 폭발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그것은 조약돌 4개가 남았다는 사실입니다.하나님의 승리는 항상 여유 만만합니다.겨우 가까스로 이기는 싸움이 아니라 바울이 말한 대로 “넉넉히 이기는” 싸움인 것입니다. 주경가 매튜 헨리는 “그날 엘라 골짜기에 있었던 다윗의 승리는 사탄과 모든 어두움의 세력에 대한 다윗 자손 예수의 승리의 예표였다”고 말했습니다.이스라엘은 생기를 되찾아 총공격을 시작했고 블레셋은 혼비 백산하여 줄행랑을 쳤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약한 자가 아닙니다.하나님께 인정받은 사람은 작은 자가 아닙니다.그러나 제아무리 강하고 많이 소유했고 큰 자라고 자처해도 하나님을 떠나면 그 순간 엘라 골짜기에 쓰러졌던 골리앗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참으로 강한 자는 하나님이 지키는 사람입니다.참으로 큰 자는 하나님께 소속된 사람입니다.참으로 안전한 사람은 하나님이 보호하는 사람입니다.참으로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 안에 사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에 참으로 강한 존재입니다.아멘.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