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을 위해 사는 삶 (삼상19:2-7)
본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러면 내 양을 먹이라”(요 21:17)하신 주께서는 먼저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것”(마 22:39)을 우리에게 당부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일까요 “(마25: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마25:36)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는”삶입니다. 다윗을 심히 사랑하기에 위태로운 지경에서는 요나단이 다윗을 어떻게 도왔는가를 알아보면서 진정한 이웃을 위한 사랑의 삶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피할 길을 열어 주는 것입니다. 사울 왕이 무고한 다윗을 죽이려 하는 것을 안 요나단이 다윗을 은밀한 곳에 숨어 있도록 권고했습니다. 여기서 “은밀한”(아모크)은 깊다“(시92:5) 여호와여 주의 행사가 어찌 그리 크신지요 주의 생각이 심히 깊으시니이다 (시92:6) 우준한 자는 알지 못하며 무지한 자도 이를 깨닫지 못하나이다 ”는 뜻의 “아마크”에서 유래한 말로 우묵하다“(레13:25) 제사장은 진찰할지니 그 색점의 털이 희고 그 자리가 피부보다 우묵하면 이는 화상에서 발한 문둥병인즉 제사장은 그를 부정하다 할 것은 문둥병의 환처가 됨이니라”란 뜻입니다. 또 “숨어 있으라”(하바)는 피하다“(욥27:22) 하나님이 그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쏘시나니 그가 그 손에서 피하려 하여도 못할 것이라”, “갇히다”, 금하다“(욥29:10) 귀인들은 소리를 금하니 그 혀가 입 천장에 붙었었느니라”를 의미합니다.
이는 추적하는 자들이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안전하고 깊은 곳에 피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예수께서 사람들이 율법에 따라 돌로 쳐죽이려던 간음한 여인을 그들의 포악으로부터 피하게 하며 안전하게 보호해 준 것과 유사합니다. “(요8: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요8: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요8:6)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요8:7)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요8:8)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요8:9)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요8: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요8: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 솔로몬 역시 요나단이 죄없이 쫓기는 다윗을 보호한 것과 같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지혜로써 곤경에 처한 가엾은 모자(母子)를 악한 여인과 간계로부터 피하게 하였습니다. “(왕상3:16) 때에 창기 두 계집이 왕에게 와서 그 앞에 서며 (왕상3:17) 한 계집은 말하되 내 주여 나와 이 계집이 한 집에서 사는데 내가 저와 함께 집에 있으며 아이를 낳았더니 (왕상3:18) 나의 해산한 지 삼일에 이 계집도 해산하고 우리가 함께 있었고 우리 둘 외에는 집에 다른 사람이 없었나이다 (왕상3:19)
그런데 밤에 저 계집이 그 아들 위에 누우므로 그 아들이 죽으니 (왕상3:20) 저가 밤중에 일어나서 계집종 나의 잠든 사이에 내 아들을 내 곁에서 가져다가 자기의 품에 뉘이고 자기의 죽은 아들을 내 품에 뉘었나이다 (왕상3:21) 미명에 내가 내 아들을 젖 먹이려고 일어나 본즉 죽었기로 내가 아침에 자세히 보니 내가 낳은 아들이 아니더이다 하매 (왕상3:22) 다른 계집은 이르되 아니라 산 것은 내 아들이요 죽은 것은 네 아들이라 하고 이 계집은 이르되 아니라 죽은 것이 네 아들이요 산 것이 내 아들이라 하매 왕 앞에서 그와 같이 쟁론하는지라 (왕상3:23) 왕이 가로되 이는 말하기를 산 것은 내 아들이요 죽은 것은 네 아들이라 하고 저는 말하기를 아니라 죽은 것이 네 아들이요 산 것이 내 아들이라 하는도다 하고 (왕상3:24) 또 가로되 칼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칼을 왕의 앞으로 가져온 지라 (왕상3:25) 왕이 이르되 산 아들을 둘에 나눠 반은 이에게 주고 반은 저에게 주라 (왕상3:26) 그 산 아들의 어미되는 계집이 그 아들을 위하여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왕께 아뢰어 가로되 청컨대 내 주여 산 아들을 저에게 주시고 아무쪼록 죽이지 마옵소서 하되 한 계집은 말하기를 내것도 되게 말고 네 것도 되게 말고 나누게 하라 하는지라 (왕상3:27) 왕이 대답하여 가로되 산 아들을 저 계집에게 주고 결코 죽이지 말라 저가 그 어미니라 하매 (왕상3:28) 온 이스라엘이 왕의 심리하여 판결함을 듣고 왕을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저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봄이더라” 이렇듯 무고한 자들의 피할 길을 열어 주는 자가 진정 이웃을 위해 사는 자입니다.
2. 억울한 자를 돌보아 주는 것입니다. 사단은 무죄한 욥을 환난 속에 밀어 넣었습니다. “(욥1:6)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왔는지라 (욥1:7)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왔나이다 (욥1:8)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욥1:9)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욥1:10)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 (욥1:11)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욥1:12)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단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여기서 “무죄한”(니키)은 개끗하다“(창20:5) 그가 나더러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는 뜻의 “나카”에서 유래된 말로 “명백한”, “ 흠없는”을 의미합니다. 또 “흘리다”(야라드)는 엎드러지다“(슥11:2) 너 잣나무여 곡할지어다 백향목이 넘어졌고 아름다운 나무가 훼멸되었도다 바산의 상수리나무여 곡할지어다 무성한 삼림이 엎드러졌도다”, 빠지다“(사14:19) 오직 너는 자기 무덤에서 내어쫓겼으니 가증한 나무가지 같고 칼에 찔려 돌구덩이에 빠진 주검에 둘러싸였으니 밟힌 시체와 같도다”로서 기본 의미는 “떨어지다”입니다. 이를 종합해 보면 명백하게 허물이나 죄가 없는 사람을 자신의 이기적인 이익을 위해 죄에 빠지게 하고, 협박을 해서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일은 돈없고 힘없는 자들이 뇌물로 인해 마으미 굽어진 사람에 의해 자주 당하는 일입니다. “(잠17:23) 악인은 사람의 품에서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느니라”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하는 것도 자기를 위한 이기적인 마음때문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협력하여 악이 성행하는 이 시대에 공법(公法)이 물같이, 정의가 하수같이 흐르게 해서 요나단처럼 억울한 자들을 돌보아야만 합니다.
3. 주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인도하니”(보)는 “나아오다”‘(대상12:23) 싸움을 예비한 군대 장관들이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로 나아와서 여호와의 말씀대로 사울의 나라를 저에게 돌리고자 하였으니 그 수효가 이러하였더라”, 덮어주다“(왕상1:1) 다윗왕이 나이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로서 기본 의미는 “받자”입니다. 이처럼 요나단은 다윗을 위기에서 구해 주었을 뿐 아니라 사울 왕에게 다시 데려옴으로써 화해를 시켰습니다. 이웃을 위해 사는 자들은 이처럼 원수된 자를 화해시키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특히 성도는 하나님과 원수되어 영원히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자를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가 있는 교회로 인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는 회개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아무리 주홍빛같은 죄라 할지라도 흰 눈과 같이, 양털과 같이 희게 해주시는 주께로 죄로 인해 피곤한 자를 데리고 나아오는 것을 말합니다. “(사1:18) 여호와께서 말씀하기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불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고 하시는 주께로 이웃을 인도하는 것은 다윗을 다시 사울의 신하로 있게 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되는 큰 기쁨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은 시시각각 변하지만 주님은 한 번 선택해서 나아오게 한 자를 다시 버리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 이웃을 위해 사는 잔치상을 벌여놓은 왕의 명령으로 길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선인이나 악인을 가리지 않고 데려오는 종과 같이 열심히 전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22:9)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마22:10)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 .” 그렇기에 이 사명을 잘 감당하는 자가 곧 진정으로 이웃을 위하는 자입니다. 예수께서 이웃의 고통과 아픔에 동참하는 자들을 “(마25:34)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이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아버지께 복 받을 사람입니까 악인들은 “언제 우리가 돌보지 않았습니까(마 25:44)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지극히 작은 자를 돌보고 피할 길을 열어주고 주께로 인도하는 것이 바로 주의 사랑을 전하는 자임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도 참된 이웃을 찾아보기 힘든 이 시대에 요나단과 같이 이웃을 위해 사랑의 손길을 줄 수 있는 성숙한 성도로서의 미덕을 지녀야겠습니다.
1. 피할 길을 열어 주는 것입니다. 사울 왕이 무고한 다윗을 죽이려 하는 것을 안 요나단이 다윗을 은밀한 곳에 숨어 있도록 권고했습니다. 여기서 “은밀한”(아모크)은 깊다“(시92:5) 여호와여 주의 행사가 어찌 그리 크신지요 주의 생각이 심히 깊으시니이다 (시92:6) 우준한 자는 알지 못하며 무지한 자도 이를 깨닫지 못하나이다 ”는 뜻의 “아마크”에서 유래한 말로 우묵하다“(레13:25) 제사장은 진찰할지니 그 색점의 털이 희고 그 자리가 피부보다 우묵하면 이는 화상에서 발한 문둥병인즉 제사장은 그를 부정하다 할 것은 문둥병의 환처가 됨이니라”란 뜻입니다. 또 “숨어 있으라”(하바)는 피하다“(욥27:22) 하나님이 그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쏘시나니 그가 그 손에서 피하려 하여도 못할 것이라”, “갇히다”, 금하다“(욥29:10) 귀인들은 소리를 금하니 그 혀가 입 천장에 붙었었느니라”를 의미합니다.
이는 추적하는 자들이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안전하고 깊은 곳에 피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예수께서 사람들이 율법에 따라 돌로 쳐죽이려던 간음한 여인을 그들의 포악으로부터 피하게 하며 안전하게 보호해 준 것과 유사합니다. “(요8: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요8: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요8:6)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요8:7)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요8:8)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요8:9)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요8: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요8: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 솔로몬 역시 요나단이 죄없이 쫓기는 다윗을 보호한 것과 같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지혜로써 곤경에 처한 가엾은 모자(母子)를 악한 여인과 간계로부터 피하게 하였습니다. “(왕상3:16) 때에 창기 두 계집이 왕에게 와서 그 앞에 서며 (왕상3:17) 한 계집은 말하되 내 주여 나와 이 계집이 한 집에서 사는데 내가 저와 함께 집에 있으며 아이를 낳았더니 (왕상3:18) 나의 해산한 지 삼일에 이 계집도 해산하고 우리가 함께 있었고 우리 둘 외에는 집에 다른 사람이 없었나이다 (왕상3:19)
그런데 밤에 저 계집이 그 아들 위에 누우므로 그 아들이 죽으니 (왕상3:20) 저가 밤중에 일어나서 계집종 나의 잠든 사이에 내 아들을 내 곁에서 가져다가 자기의 품에 뉘이고 자기의 죽은 아들을 내 품에 뉘었나이다 (왕상3:21) 미명에 내가 내 아들을 젖 먹이려고 일어나 본즉 죽었기로 내가 아침에 자세히 보니 내가 낳은 아들이 아니더이다 하매 (왕상3:22) 다른 계집은 이르되 아니라 산 것은 내 아들이요 죽은 것은 네 아들이라 하고 이 계집은 이르되 아니라 죽은 것이 네 아들이요 산 것이 내 아들이라 하매 왕 앞에서 그와 같이 쟁론하는지라 (왕상3:23) 왕이 가로되 이는 말하기를 산 것은 내 아들이요 죽은 것은 네 아들이라 하고 저는 말하기를 아니라 죽은 것이 네 아들이요 산 것이 내 아들이라 하는도다 하고 (왕상3:24) 또 가로되 칼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칼을 왕의 앞으로 가져온 지라 (왕상3:25) 왕이 이르되 산 아들을 둘에 나눠 반은 이에게 주고 반은 저에게 주라 (왕상3:26) 그 산 아들의 어미되는 계집이 그 아들을 위하여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왕께 아뢰어 가로되 청컨대 내 주여 산 아들을 저에게 주시고 아무쪼록 죽이지 마옵소서 하되 한 계집은 말하기를 내것도 되게 말고 네 것도 되게 말고 나누게 하라 하는지라 (왕상3:27) 왕이 대답하여 가로되 산 아들을 저 계집에게 주고 결코 죽이지 말라 저가 그 어미니라 하매 (왕상3:28) 온 이스라엘이 왕의 심리하여 판결함을 듣고 왕을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저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봄이더라” 이렇듯 무고한 자들의 피할 길을 열어 주는 자가 진정 이웃을 위해 사는 자입니다.
2. 억울한 자를 돌보아 주는 것입니다. 사단은 무죄한 욥을 환난 속에 밀어 넣었습니다. “(욥1:6)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왔는지라 (욥1:7)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왔나이다 (욥1:8)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욥1:9)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욥1:10)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 (욥1:11)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욥1:12)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단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여기서 “무죄한”(니키)은 개끗하다“(창20:5) 그가 나더러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는 뜻의 “나카”에서 유래된 말로 “명백한”, “ 흠없는”을 의미합니다. 또 “흘리다”(야라드)는 엎드러지다“(슥11:2) 너 잣나무여 곡할지어다 백향목이 넘어졌고 아름다운 나무가 훼멸되었도다 바산의 상수리나무여 곡할지어다 무성한 삼림이 엎드러졌도다”, 빠지다“(사14:19) 오직 너는 자기 무덤에서 내어쫓겼으니 가증한 나무가지 같고 칼에 찔려 돌구덩이에 빠진 주검에 둘러싸였으니 밟힌 시체와 같도다”로서 기본 의미는 “떨어지다”입니다. 이를 종합해 보면 명백하게 허물이나 죄가 없는 사람을 자신의 이기적인 이익을 위해 죄에 빠지게 하고, 협박을 해서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일은 돈없고 힘없는 자들이 뇌물로 인해 마으미 굽어진 사람에 의해 자주 당하는 일입니다. “(잠17:23) 악인은 사람의 품에서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느니라”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하는 것도 자기를 위한 이기적인 마음때문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협력하여 악이 성행하는 이 시대에 공법(公法)이 물같이, 정의가 하수같이 흐르게 해서 요나단처럼 억울한 자들을 돌보아야만 합니다.
3. 주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인도하니”(보)는 “나아오다”‘(대상12:23) 싸움을 예비한 군대 장관들이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로 나아와서 여호와의 말씀대로 사울의 나라를 저에게 돌리고자 하였으니 그 수효가 이러하였더라”, 덮어주다“(왕상1:1) 다윗왕이 나이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로서 기본 의미는 “받자”입니다. 이처럼 요나단은 다윗을 위기에서 구해 주었을 뿐 아니라 사울 왕에게 다시 데려옴으로써 화해를 시켰습니다. 이웃을 위해 사는 자들은 이처럼 원수된 자를 화해시키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특히 성도는 하나님과 원수되어 영원히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자를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가 있는 교회로 인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는 회개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아무리 주홍빛같은 죄라 할지라도 흰 눈과 같이, 양털과 같이 희게 해주시는 주께로 죄로 인해 피곤한 자를 데리고 나아오는 것을 말합니다. “(사1:18) 여호와께서 말씀하기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불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고 하시는 주께로 이웃을 인도하는 것은 다윗을 다시 사울의 신하로 있게 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되는 큰 기쁨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은 시시각각 변하지만 주님은 한 번 선택해서 나아오게 한 자를 다시 버리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 이웃을 위해 사는 잔치상을 벌여놓은 왕의 명령으로 길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선인이나 악인을 가리지 않고 데려오는 종과 같이 열심히 전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22:9)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마22:10)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 .” 그렇기에 이 사명을 잘 감당하는 자가 곧 진정으로 이웃을 위하는 자입니다. 예수께서 이웃의 고통과 아픔에 동참하는 자들을 “(마25:34)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이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아버지께 복 받을 사람입니까 악인들은 “언제 우리가 돌보지 않았습니까(마 25:44)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지극히 작은 자를 돌보고 피할 길을 열어주고 주께로 인도하는 것이 바로 주의 사랑을 전하는 자임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도 참된 이웃을 찾아보기 힘든 이 시대에 요나단과 같이 이웃을 위해 사랑의 손길을 줄 수 있는 성숙한 성도로서의 미덕을 지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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