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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 머물러 있어라 (왕상19:1-4,8-15,갈3:23-29,눅9: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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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에 참석할 때마다 느끼는 것도 많고 배우는 것도 많습니다. 이번에도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습니다. 여러 강사들로부터 듣고 배운 그 다양한 견해와 지식이, 앞으로 저의 목회에 큰 도움이 되 리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강사님들의 주장이나 이론이 다 한결같지 않습니다. 어떤 부분에서 있어서는 서로 반대되는 주장을 하기도 하고, 그리고 어떤 것은 강사마다 서로 다르게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충현교회 신성종 목사님은 말씀하기를, 목회자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운동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당신 자신은 볼링을 하고 있노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날에 강사로 초 빙된 새벽교회 이승영 목사는, 목회자가 열심히 목회를 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건강을 책임져 주실 텐데, 왜 목회자들이 쓸데없이 건강에 신경 쓰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에 대한 평가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흔히 주변에서 겪는 일입니다만, 똑같은 사람을 놓고서도 사람마다 서로 다르게 말할 때가 많습니다. 강의가 끝난 후에 목사님들이 이야기하기를, 한 강사에 대해서 그 느낌을 서로 다르게 말하는 것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은 어떤 사물이나 사건에 대해서 그 사람의 숫자만큼 이나 사람마다 아주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결국 사람의 판단이 얼마나 부정확한지를 드러내 주고 있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누가복음 9장 18절 이하의 말씀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 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고 물으셨습니다.
이에 대한 대답은, "
ㄱ.세례 요한
ㄴ.엘리야
ㄷ.옛 예언자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 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제자들을 대표하는 베드로는 "
ㄹ.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라고 정확하게 말했습니다. 아무튼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서도 이와 같이 여러 가지로 말하고 평가했던 것입니다. 너무나 놀라운 기적을 수없이 일으켰고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직접 보여 주었건만, 사람들은 서로 다르게 판단을 했던 것 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소리는 이처럼 정확하지 않습니다. 도대체 어떤 말에 귀를 기울이고 또 어떤 사람의 말을 따라야 할지 구분이 안될 때가 많 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의 말에 따라 그 마음과 행 동이 영향을 받아서, 때로는 괴로워하고 좌절하며 혹은 기뻐하며 즐거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 세상을 주관하시고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굳건 히 믿노라고 하면서도, 우리는 사람들의 말에 쉽게 좌우되고 있습니다. 엘리야와 같은 대예언자도, 한 여자가 한 말에 그만 낙심이 되어서 죽어 버리겠다고 하나님께 엄포를 놨으니, 우리네 보통 사람이야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우리 인간은 생명의 소리는 잘 듣지를 못합니다. 그 대신 죽음의 소 리에는 귀가 여립니다. 좋은 소리, 복이 되는 소리, 삶을 발전시키고 향 상시키는 영혼의 소리에는 귀가 어둡습니다. 들어도 잘 깨닫지를 못합니다. 무슨 일에 있어서든지, 사람들의 말은 여러 갈래여서 결코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수없이 경험하면서도, 또다시 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말에 그만 마음을 빼앗긴 채, 불안해하거나 속상해 할 때가 많습니다. 죽이고 말겠다는 이세벨의 말을 듣고 엘리야는 한참 동안 방황을 해 야 했습니다. 그러나 네가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제 정신을 차리는 엘리야입니다. 자신의 본분이 무엇이며, 누가 그의 생명을 지키는 분이신지를 깨닫게 된 엘리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1.주의 음성보다는 세상 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세상 소리에 파묻혀서 아예 주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의 삶을 더욱 비참하게 하고 수치스럽게 하는 말들이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진리의 말씀,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는 말은 참으로 듣기가 힘든 세상입니다. 아니지요 진리의 말씀은 지금도 외쳐지고 있습니다. 꼭 훌륭한 사람 의 입을 통해서 그 진리가 외쳐지는 것만은 아닙니다. 아주 하찮은 사람 의 입술을 통해서, 또는 어린아이의 입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진리 말씀은 들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디 그런 말에 귀를 잘 기울이던가요 어림도 없는 소리입니다. 자기보다 훌륭한 사람이 이 세상에는 없기 때문에, 도통 귀를 기울이 려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이상스럽게도 너와 나를 더욱 저질스럽게 하고 혼란에 빠뜨리는 말에는 무척 신경을 쓰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 결과, 자신의 본분을 잊고 엉뚱한 일에 매달리다가 살 소망까지 잃어버리는 경우가 생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세벨이 엘리야에게 "너를 꼭 죽이겠다. 너를 죽이지 못하면 신들이 내리는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겠다"고 하면서 최후 통첩을 보내 왔을 때에, 엘리야는 두려워 목숨을 건지려고 급히 도망을 했던 것입니다. 엘리야는 광야 길로 해서 며칠간 부지런히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도 망가는 자신의 신세가 얼마나 처량하고 불쌍했던지, 차라리 죽었으면 좋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나 왜 내가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나 내가 이제까지 주를 위해서 살아왔는데, 어째서 이런 시달림을 받아야 하나"하는 생각으로, 그는 죽기를 자청했던 것입니다.
1우리도 흔히 세상의 시끄러운 소리에 시달린 나머지,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잠언 12장 18절에 함부로 뱉는 말은 비수가 되지만 슬기로운 사람의 혀는 남의 아픔을 낫게 한다 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는 남의 아픈 마음을 낫게 하는 말보다는 남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는 말들이 횡행하 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말에 신경을 쓰는 당사자에게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 말씀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깨어 있으십시오. 여러분의 원수인 악마 가 으르렁대는 사자처럼 먹이를 찾아 돌아다닙니다 라고 했습니다. 사탄 의 세력은, 할 수만 있으면 믿는 자를 넘어뜨리려고 악한 말을 퍼뜨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말에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들어서 나쁜 말은 아예 귀를 기울이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전해서 유익하지 않은 말은 옮기지 않도 록 힘써야 합니다.
2우리는 세상 소리가 듣기 싫다고, 굴속에 들어가 숨어 지냈으면 하는 유 혹을 받기도 합니다. 굶주려 죽는 줄 알고,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엄살을 떨던 엘리야! 천사가 전해 준 떡과 물을 마시고 깊은 잠에 빠졌던 그 엘리야는 다시 천 사가 깨우는 소리에 일어나, 40일을 걸어서 호렙산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 있는 굴속에 들어가 생활을 하게 됩니다. 성경에서는 단 하룻밤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만, 우리들 중에는 지금 하룻밤이 아니 라 여러 날 동안 굴속에 들어가 숨어 지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두운 굴 속에서 나올 생각을 않고, 세상이 왜 이리 어두운지 모르겠다 고 한탄만 하고 있습니다.
ㄱ.자기 생각이라고 하는 굴속에다가 자신을 가두어 놓고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자기 생각에 계속 묶여 살게 되면, 정신병 에 걸릴 우려가 있습니다.
ㄴ.욕망 때문에, 어두운 굴속에서 나오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밝은 세상이 좋은 줄 알면서도, 그 욕심 때문에 죄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삼풍 사장도 어느 교회 집사라고 하니, 계속 그런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ㄷ.정말 세상이 두려워 굴속에서 나오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슨 말 듣는 것이 지겹다고 하면서, 주의 일을 회피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누가복음 9장 21-22절에서, 예수님 당신 자신이 십자가 에 달려 죽임을 당했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날 것임을 밝히시면서, 누구 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ㄱ.욕망을 버리고
ㄴ.편안한 것들을 다 버리고
ㄷ.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엘리야에게 굴속에서 나오도록 말씀하신 다음,
2.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라고 지시하고 있습니다 그곳은 광야입니다. 광야란 세상을 말합니다. 죽음이 무서워서 굴속에 숨어 지낼 것이 아니라, 일하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지시하신 말씀을 순서대로 정리해 보면서 그 의 미를 찾아보기로 하겠습니다.
1굴속에서 나와 주 앞에 서 있기를 명령했습니다. 열왕기상 19장 11절에서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너는 그 굴속에서 나와 내 앞에 서 있거라 하고 지시했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일, 곧 예배를 뜻합니다. 하나님께 정성 들여 예배하는 일은 그 무슨 일보다 중요합니다. 요한복음 4장 23절을 보면 진실하게 예배하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참 되게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올 터인데 바로 지금이 그 때이다. 아버지 께서는 이렇게 예배하는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고 했습니다. 또한 같은 성경 24절에서도 하나님은 영적인 분이시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참되게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한다 고 했습니다. 진실하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찾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야만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거나 엉뚱한 소리로 잘못 알아들을 염려가 많습니다.
2보십시오. 하나님은 아주 조용한 음성으로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 까
ㄱ.산이 갈라지고 바윗돌이 산산조각이 나는 강한 폭풍이 불었으나, 그 폭풍 속에 주님은 계시지 않았다고 열왕기 기자는 19장 20절에 기록해 놓 고 있습니다.
ㄴ.그 다음에는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그 지진 속에도 주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ㄷ.그리고 불길이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그 불꽃 속에도 주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ㄹ.이 모든 것이 지난 다음에, 엘리야는 고요히 속삭이는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는 요란합니다. 거짓말일수록 더 크게 말합니다. 자신이 없는 말을 할 때에는, 흥분을 하며 입에 거품을 물고 말합니다. 그야말로 폭풍이 불고 지진이 일어나며 불같은 호령을 하지만, 그 속에는 진실이 없습니다. 하기사 빈깡통일수록 소리가 요란한 법입니다. 훌 륭한 인격자일수록 큰소리를 치지 않습니다. 조용히 행동으로 보여주거나 작은 소리로 타이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저는 아직 인격자가 되려면 멀었습니다. 권능이 많으신 하나님이시니, 어쩌면 꽝하고 한마디 할 법한데, 너무나 조용히 말씀하시고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3 너는 왔던 길로 되돌아가 다메섹 광야에 머물러라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기 전에, 엘리야는 하나님께 간절히 호소를 했습니다. "
ㄱ.하나님, 저는 주를 위해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ㄴ.그러나 백성은 주를 버리고 떠났습니다.
ㄷ.그리고 제단은 허물어졌습니다.
ㄹ.뿐만 아니라, 예언자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ㅁ.이제는 저만 홀로 남아 주님을 섬기고 있는데, 저마저 잡아죽이려고 해서 이렇게 도망온 것입니다"라고 하면서, 하소연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광야, 곧 세상에 가서 어떻게 하라고요
ㄱ.욕망과 편안함을 버린 후,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ㄴ.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길은 죽는 길입니다. 내 명예를 드높이고 내 자존심을 살릴 수 있는 길이 아니라, 오히려 주를 위해서 고난을 당할 수밖에 없는 길입니다.
4주를 따라 사는 자에게, 하나님은 부활을 약속하셨습니다. 누가복음 9장 24절에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람은 구원받을 것 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자기 목숨을 보존하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각오하고
3.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도록 해야 합니다 죽기가 그리 쉬운 것은 아니로되, 죽는 길이 사는 길임을 기도와 말씀을 통하여 확신하게 된다면, 죽는 것도 그렇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브라우닝이라는 사람은 말하기를 "죽을 때까지는 삶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무엇이 진정한 삶인지, 그리고 어떻게 해 야 영원한 삶을 살 수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진리를 따르는 것이 사는 것이며, 진리 따라 살게 될 때에 영원한 삶이 주어진다는 것을, 예수 를 믿는 우리는 기본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1그런고로, 우리는 진리가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세상 소리를 전혀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이런 말 저런 말을 많이 듣게 됩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너와 나에게 유익이 되는 말만 골라서, 깊이 기도하면서 생각해 본 다음에 마음에 담도 록 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좋은 소리 같지만, 나중에는 아주 큰 손해를 입 히는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2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려는 노력이 있어야, 진리의 말씀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21절에 보면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은 빛이 있는 데로 나아간다 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한 일이 모두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한 일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된다 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리를 따라 살려고 하는 사람은 빛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 게 되는 것입니다. 어둠이 깃든 동굴 속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 에 얽매여 어둠 속에서만 헤메이지 않습니다. 더욱 밝은 빛이 있는 진리의 세계로 날마다 더 가까이 나아갑니다. 이것 보십시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진리 편에 선 사람은 내 말을 귀 담아 듣는다 고 했습니다.
3하지만, 진리의 길에는 아픔이 있습니다. 고난이 따르는 것입니다. 다른 누가 진리대로 사는 것을 방해해서 고난인 경우도 있으나, 특히 더 큰 고난을 가져오며 장애가 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엘리야가 이세벨이 두려워서 도망간 것은 틀림없으나, 사실상 이세벨의 칼날이 그의 목을 치기 전에, 엘리야가 스스로 먼저 죽고자 했던 것입니다. 누가 오늘 우리를 괴롭히고 있습니까 어느 누가 우리를 고난에 빠뜨리 고 있습니까 주의 뜻대로 살려고 하다가 당하는 고난은 피할 필요가 없습니다. 문제는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고난에 처하게 하는 데 있습니다. 이 고난은 결코 바람직한 고난이 아닙니다. 엘리야가 비록 주의 말씀을 전하다가 이세벨에게 죽임을 당한다 할지라 도, 그 죽음의 고난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살려주시 고 영화롭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굴속에 숨어 지내다가 죽어지면, 그 죽음은 비참한 고난에 속하는 것입니다. 아름답지 못한 삶으로 끝맺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물론 진리 따라 바르게 살다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다 들어가기를 원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렇다면, 정확하지 못한 세상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 듣지 말고, 하나님 말씀 듣기를 사모하십시오. 비록 진리 따라 사는 길이 힘들지라도, 영원한 복락이 약속된 길이니,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애써야 합니다. 키에르케골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연애 편지"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연애 편지는 단순한 문자가 아닙니다. 그 속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애인의 편지를 받을 때, 가슴이 뛰고 기뻐 어쩔 줄을 모 르고 용기를 얻게 될 것이며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행복해집니다. 사랑의 편지는 피차의 마음을 묶고, 그 모습을 보지 못해도 보게 하 며, 그 음성을 듣지 못해도 듣게 하고 그 마음을 알고 느끼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연애 편지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진리의 길로,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려는, 하나님의 사랑이 담긴 연애 편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 따라 세상에 나아가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세상 사람의 말에 좌우되는 죽음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 진리 말씀 따라 사는 생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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