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명(王命)에 사는 사람들3 (디도1:1-4)
본문
I. 전도(설교)는 왕명(王命) 지고(至高)하신 왕명(王命)을 받은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왕명을 받은 자신을 가리켜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하였습니다(딛 1:1). 그는 무적의 선교사 바울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에게 영생의 소망을 전달하는 왕의 명령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딛 1:2). 그가 받은 왕명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 자신의 영원한 작정 속에 계획되고, 약속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딛 1:2). 마침내 그 명령은 자기 때, 자기 말씀,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성육신으로 나타난 말씀의 전도(κηργματι ) 곧 설교로 나타났습니다. 여기 ‘전도’라고 번역된 말 ‘케루그마’는 선언(proclamation) 곧 설교를 의미합니다(딛 1:3). 바울은 이 전도(설교)는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대로 바울에게 맡기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전도 곧 설교는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영감 속에 여기 ‘명령’이란 말 ‘에피타게(πιταγ )’를 사용하였습니다. 이 단어는 특히 왕의 명령을 뜻하고 있습니다. 절대적이요, 필연적이요, 계획적이요, 목적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왕명(王命)’을 뜻합니다. 그는 이방인에 대한 교회의 사도로서 그의 직무가 하나님의 왕적인 명령, 곧 에피타게(πιταγ )에 의하여 주어졌다고 그 마음에 확신하였습니다. 그것을 다르게 표현할 때 그 왕명은 바로 하나님의 뜻(θηλμα )에 의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1절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 이라고 하였습니다(고후 1:1, 엡 1:1, 골 1:1). 그는 그러한 전도(설교)를 위하여 모태로부터 하나님에 의하여 성별되었다(갈 1:15)고 하였습니다.
그는 왕명에 의한 그의 전도(설교)는 필연적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만약에 그가 이 왕명을 불복하여 복음을 전하지(설교) 않으면 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감할 정도였습니다. 그렇기에 그가 설교하는 것(전도함)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그를 택하였으며, 그 일을 위하여 소명되었고, 또 그 왕명을 위임받은 사람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그렇기에 바울에게 있어서 설교(전도 사역)는 직업이 아니고 사명이었습니다. 사람의 직분이 아니고 하나님께 받은 천직이었습니다. 그것은 장사 행위가 아니고 소명(召命)과 사명(使命) 행위였습니다.
그러므로 강단의 설교자의 메시지는 신적인 명령인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바울의 설교를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고 하였습니다(살전 2:13). 그는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에 의해서 받은 것 곧 왕명에 의한 대언자라고 하였습니다. 이 지고(至高)하신 왕명 앞에서 사는 그는 사람들을 좋게 하고,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는 것이 그의 목적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라면 왕명을 수행하는 왕의 종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갈 1:10). 왕명 외에 다른 소리(복음 외에 다른 복음)를 전하면 누구를 막론하고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갈 1:9). 그는 이 왕명 곧 복음 전파를 가리켜 ‘영광의 비밀’이라고 하였습니다(골 1:27). 그는 이 ‘영광의 비밀’을 위하여 복음의 일꾼(골 1:23) 그리고 교회의 일꾼이 되었다고(골 1:25) 하였습니다. 그 복음의 왕명을 전파하고, 권하고, 가르치는데 힘을 다하여 수고를 한다고 하였습니다.(골 1:28-29). 바울은 전도 곧 설교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이 고난을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교회를 위하여 채운다고 하였습니다(골 1:24).
그렇다면 신약성경에 나타난 왕명(πιταγ )은 바로 전도, 곧 설교라는 사실입니다. 교회는 이 지고(至高)하신 왕명을 수행하는 장소입니다. 그 왕명의 내용은 복음, 곧 기쁜 소식, 만민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눅 2:10). 바로 여기에 존재하는 지상 교회의 의미와 가치와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 지고하신 복음의 왕명은 예루살렘, 유다,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전파되어야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2000년간 지상의 기독교는 이 지고하신 왕명을 수행하는 복음을 전파한 것입니다.
Ⅱ. 왕명에 사는 중국의 교회들 저는 이 시간에 비록 제한된 시간이지만, 현재 우리와 이웃하고 있는 중국에 이 왕명을 좇아 신령한 사명을 다하고 있는 신실한 왕(예수)의 신민들을 생각하고자 합니다.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1949년 이래 지금까지 박해와 고난 속에서 소생 그리고 성장을 하고 있는 선교의 황금 어장입니다. 말하자면 중국의 교회는 다른 곳에서의 기독교와 같이 고난과 부흥의 양면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중국이 공산화되어 서양 선교사들이 중국을 떠날 무렵 중국에는 2만 개소의 교회와 100여만 명에 이르는 세례 교인들이 있었습니다. 저들은 5천 6백 여명의 선교사들과 8천 5백 여명의 중국인 복음 전도자들 그리고 약 3천5백여 명의 전도 부인(Bible Women)과 약 2천백 여명의 중국인 목사들의 지도를 받고 있었습니다. 중국이 공산화된 이후 40년이 훨씬 넘은 오늘 중국의 교인 수는 3천만에서 6천만을 헤아리고, 어떤 통계는 이보다 훨씬 상회하는 1억으로 조심스럽게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1. 모택동 혁명 이전의 중국 교회(1949-1966) 중국이 공산화된 후 교회는 시련기를 맞았습니다. 공산화된 첫 9년 동안(1949-1958) 개신 교회는 이른바 삼자(三者)애국 운동이 조직되면서 삼자 교회(三自敎會)운동을 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삼자 교회(三自敎會)란
1 자치(自治)
2 자양(自養)
3 자전(自傳)을 뜻합니다. 그래서 이른바 외세(서구) 곧 서구제국주의자들로부터 중국의 교회를 단절시켰습니다. 삼자 애국 운동은 1954년에 공식적으로 조직되었는데 집권 중국 공산당의 지시 아래 개신교 신자들에게 당의 종교 정책을 이행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이른바 애국적 종교 조직 단체였습니다. 이런 일로 말미암아 중국 안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의 교회가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그 하나는 이른바 삼자 교회(三自敎會)로서 삼자(三自) 애국 운동에 소속된 공인 교회입니다. 이런 종류의 교회는 정부 산하 종교사무국과 삼자 애국 운동의 엄격한 통제를 받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속한 성직자들은 당의 지시를 따라 6개월 동안 정치 학습을 받고 그후 공장이나 농장에서 자발적으로 무산계급에 속한다는 노동 개조를 받았습니다. 말하자면 이 종류의 교회들은 중국 정부의 공산주의 국가 실현을 위한 한 수단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종류는 이른바 ‘가정 교회(house church)’라 부르는 지하 교회 운동입니다. 이들은 공인된 삼자 교회(三自敎會)는 잘못된 길을 걷는다고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그 결과 저들은 성경이 명하는 신앙 자유와 양심 자유, 포교 자유를 주장하였습니다. 그 결과 저들은 불법 활동 단체로 간주되었고, 체포 대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저들이 체포될 때는 장기간의 투옥이나 강제 노동형에 처해져 버렸습니다. 성경 읽기가 금지 당하고, 성도들의 상호 방문이 금지 당하고, 물론 전도 활동이나 공개적인 설교 행위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신앙 파수 때문에 가족이 흩어짐은 아주 흔한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저들을 ‘반(反)혁명분자의 가족’이라는 낙인이 찍혀 버렸기 때문입니다. 저들에게 있어 교육받을 기회나 자유로운 직장 생활이나 교제는 이미 옛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지상에서 땅굴로 들어가는 ‘비밀 교회’ ‘지하 교회’ ‘가정 교회’ 등의 이른바 초기 로마 박해 시에 나타났던 카타콤(catacombs) 생활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2. 모택동 문화혁명과 교회(1966-1976) 1966년 8월, 이른바 모택동 문화대혁명이 일어났습니다. 모택동 휘하에 전 중공을 휩쓸었던 이른바 홍위병들은 주석의 격려에 고무되어 모택동 어록으로 완전무장되었습니다. 저들은 구(舊)의 이데올로기와 옛 관습, 옛 도덕은 여지없이 타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은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라고 간주되는 모든 관청, 교육기관, 사회 기관을 구조적으로 파괴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문화대혁명의 바람은 종교계에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여러 종류들의 미신 타파, 사찰과 수도원 그리고 교회들이 파괴를 당했습니다. 교회와 신자들의 집은 홍위병들에 의하여 습격을 당했고, 모든 성경과 기독교 서적들을 모아 광장 가운데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그것을 불지르면서 모택동 만세를 불렀습니다. 이때 삼자 애국 운동을 하는 자나 삼자 교회도 절단이 났고 지하 가정 교회 운동을 하는 자들도 없어지는 듯한 지경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중국 전역에 5-10명이 한 그룹을 이루어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과 기도하는 것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 무서운 환난의 와중에도 가정 교회는 조용히 착실하게 성령님의 인도를 받고, 도시와 소읍 그리고 수많은 마을들로 퍼져 갔습니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움직여지는 생명 운동의 호흡이 계속 되었습니다.
3. 모택동 이후의 교회(1976-1980) 1976년 모택동이 사망하고 이른바 4인방이 체포되면서 중국은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1976년부터 1980년 기간 동안 모택동의 후계자로 지목된 화국봉의 통치를 거쳐 강력한 개혁자인 등소평 통치로 이어졌습니다. 그때부터 중국은 안정을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1979년 8월에는 다시 삼자 애국 운동의 재개와 함께 삼자 교회 운동이 재개되었고, 1979년부터 1980년의 짧은 어간에 가정 교회 운동은 전례 없는 자유와 포교의 축복을 입었습니다. 이때는 중국 당국이 잠깐 교회에 대한 관심을 늦추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4. 새 지도부의 4개(四個)견지주의와 삼정(三定)정책과 기독교 1980년 12월 화국봉 실각후 중국 공산당의 새 지도부는 중앙집권적 계획과 통제를 회복하기 위하여 1977년 이래로 중지되어 온 학교와 직장 단위의 정치 학습을 재개하였습니다. 새 지도부는
1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모택동 사상 견지
2 인민 민주주의적 독재 즉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견지
3 중국 공산당 지도의 견지
4 사회주의 노선의 견지라는 4대 견지를 헌법(1982년)과 12차 전국 대표 대회에서(198
2. 9.)와 후속적인 종교 정책에 그대로 반영하였습니다. 그 결과 1981년 삼자 애국 운동과 삼자 교회 운동이 조직 강화되어 그와 함께 가정 교회에 대한 탄압이 노골화되었습니다. 특별히 1982년 3월 31일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는 ‘19호 문건’으로 알려진 종교 정책에 관한 문서를 발표했는데 그것이 이른바 ‘삼정(三定)정책’입니다.
첫째, 기독교인들은 오직 삼자 애국 운동에 의해 지정된 교회들에서만 예배할 수 있다.
둘째, 오직 삼자 애국 운동에 의해 지정된 성직자들만이 설교할 수 있다.
셋째, 오직 지정된 시간에만 활동할 수 있다는 삼정(三定)입니다. 이로 인하여 가정 교회는 새로운 영적 갈등과 고난 속에 들어가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후 가정 교회 멤버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 캠페인이 일어났고, 가정 교회들의 모임은 해산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가정 교회의 순회 설교자들은 체포의 대상이 되었고, 잡힐 때는 재판없이
1, 2년간 구류되고 또 어떤 경우는 사회질서 혼란 조성이란 죄목으로 5년형을, 혹은 반혁명분자라는 이름으로 15년형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환난은 지금도 계속이 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가정 교회는 7대 선교전략을 수립하였습니다.
1 듣는 사람에게 중생을 목표하고 설교할 것
2 십자가의 길을 걸을 것
3 삼자 애국 운동을 세상 권세로 여길 것
4 복음 전파의 목적으로 교회를 세울 것 5 어린 교회들을 성경과 영적 생활 훈련으로 양육할 것 6 설립된 교회들 간에 영적 교제를 발전시킬 것 7 개척적인 복음 운동으로 복음이 들어 가지 않은 곳에 파고 들어 갈 것 등의 선교전략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가정 교회들이 다 이를 준수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많은 가정 교회들이 박해를 못 이겨 삼자 교회로 옮긴 경우도 있습니다.
5. 다른 길을 걷는 두 교회 지금 중공의 공인 교회 곧 삼자 교회에는 이른바 ‘애국 서약’이 있습니다.
1 기독교인들은 중국 공산당의 4개 견지(四個堅持)를 지지한다.
2 기독교인들은 정치와 교육 그리고 가족 계획에 간섭해서는 안된다.
3 기독교인들은 18세 이하의 사람들에게는 전도하거나 세례를 주지 않는다. 그들은 병자를 위해 기도하거나 귀신을 내쫓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
4 기독교인들은 국가의 모든 법률과 정책들을 따를 것이며 외국으로부터 오는 경제 원조와 문서(책) 그리고 성경을 포함한 모든 외국 교회들의 침투에 단호히 저항할 것이다. 5 교회들은 삼정 정책(지정된 장소, 지정된 사람, 지정된 시간)을 실천할 것이다. 그런가 하면 가정 교회들도 특징있는 공통적인 수칙이 있습니다.
1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고 성령님의 능력으로 사역들을 수행한다.
2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그들 교회의 지도력과 권위 구조를 인정한다.
3 우리는 정기적으로 예배를 드리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와 성찬을 거행한다.
4 우리는 제자들을 가르치며 교회를 훈련시킨다. 5 우리는 말과 생활을 통하여 구성원들로 하여금 박해자들에게도 그리스도를 증거하도록 격려하고 훈련시킨다. 6 우리는 복음을 전하고 새신자들에게 세례를 주며 그들이 훌륭한 예수의 제자가 되도록 가르친다. 7 우리는 구제사업과 하나님의 나라(천국)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보인다. 가정 교회는 이러한 가정 교회 운동의 수칙들을 통하여 환난 중에도 크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구를 조직하고, 그 교구가 다섯에서 열 개에 도달하면 지방 협의회가 조직되어 장로교 조직의 노회와 유사한 활동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조직된 ‘지방 협의회’는
1 교리 문제를 해결하고
2 선교 개척 사역들을 관장, 조정하며
3 복음 전도자들과 목회자들의 기초 훈련을 제공하고
4 투옥된 목회자들과 그 가족들을 돌보는 교회의 전반적인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중국 정부는 삼자(자치, 자양, 자전)정책 그리고 삼정(지정된 장소, 지정된 사람, 지정된 시간에서만 예배)정책 위에 삼대 과업을 내세워서 가정 교회 운동을 제지하고 있습니다. 1996년 발표된 삼대 과업은
1 종교 시설의 등록
2 종교 관련 공안 문제 해결(종교청+경찰청)
3 젊고 애국적인 정부 소속 성직자 배출 등을 발표하였습니다. 이는 기성 교회 추종자들을 없애는 적극적 수단이었습니다. 만약에 저들이 발각되면 반(反)중국인으로 몰아 구류와 벌금을 부과하고, 지도자에 대해서는 징역형을 선고하고 재산까지 몰수하는 상태입니다. 이렇게 두 길이 분명합니다. 넓은 길, 좁은 길입니다. 가기가 쉽고 찾는 이가 많은 삼자 교회가 가는 길이 있습니다. 현재까지 이 류에 속하는 전체 교회 수는 4000개소, 등록된 집회 장소의 수는 16,500개소로 알려졌으나 실상은 그 이상이라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반면에 가기가 힘들고 찾는 이가 적은 십자가의 좁은 길을 걷는 무리들도, 실상 그 수가 부지기수라 할 만큼 대단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중국은 지구의 한가운데서 21세기 세계 제일의 패권국가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증가일로에 있는 기독교회들과 단체들을 공산주의 국가 건설의 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삼자 교회에 속한 지도자들은 하나님이 공산주의를 허락해서 저들이 예수 믿게 된 것을 감사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삼자 애국 운동 위원회, 삼자 교회, 삼정 정책, 삼대 과업 등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악용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진정 예수 그리스도의 왕되심을 믿고 그 왕명에 따라 십자가의 참된 길을 추구하는 깨어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전 중국 땅에 산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중국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영전(靈戰)은 종말을 향한 세계 선교 운동에 중요한 사인(sign)이 될 것입니다. 왕이신 그리스도의 왕명(王命)에 의해 살 것인가 아니면 사탄에 의한 인명(人命)에 의해서 살 것인가 한국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물으심에 확실하고 분명한 답을 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일제 36년간의 탄압에서 이것을 체득한 일이 있습니다. 지금 북한에도 예수의 왕명(王命)을 따라 사는 진리의 백성들이 상존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에피타게(πιταγ )! 명령! 어느 왕의 명령에 따를 것인가 이 세상 임금(요 16:11)의 명령에 따라 살 것인가 예수 왕명(계 17:14)에 따라 살 것인가 누구의 충신이 될 것인가 누구를 교회의 주(主)로, 왕으로 모실 것인가 사탄인가, 그리스도인가 우리는 예기되는 세계적인 환난 앞에 자기 갈 길을, 자기 살길을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바울 그리고 역사상의 참된 그리스도의 교회는 예수의 에피타게(명령)와 함께 살았습니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었습니다. 그 이유는 사나 죽으나 이미 그리스도인은 주의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롬 14:8). 하늘이 반(半) 시 동안 고요한 어간을 맞은 한국 교회는 이 잠정적인 평화시대를 우리 날들의 최고로 여겨 왕명(王命) 수행(복음 운동)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는 왕명에 의한 그의 전도(설교)는 필연적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만약에 그가 이 왕명을 불복하여 복음을 전하지(설교) 않으면 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감할 정도였습니다. 그렇기에 그가 설교하는 것(전도함)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그를 택하였으며, 그 일을 위하여 소명되었고, 또 그 왕명을 위임받은 사람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그렇기에 바울에게 있어서 설교(전도 사역)는 직업이 아니고 사명이었습니다. 사람의 직분이 아니고 하나님께 받은 천직이었습니다. 그것은 장사 행위가 아니고 소명(召命)과 사명(使命) 행위였습니다.
그러므로 강단의 설교자의 메시지는 신적인 명령인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바울의 설교를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고 하였습니다(살전 2:13). 그는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에 의해서 받은 것 곧 왕명에 의한 대언자라고 하였습니다. 이 지고(至高)하신 왕명 앞에서 사는 그는 사람들을 좋게 하고,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는 것이 그의 목적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라면 왕명을 수행하는 왕의 종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갈 1:10). 왕명 외에 다른 소리(복음 외에 다른 복음)를 전하면 누구를 막론하고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갈 1:9). 그는 이 왕명 곧 복음 전파를 가리켜 ‘영광의 비밀’이라고 하였습니다(골 1:27). 그는 이 ‘영광의 비밀’을 위하여 복음의 일꾼(골 1:23) 그리고 교회의 일꾼이 되었다고(골 1:25) 하였습니다. 그 복음의 왕명을 전파하고, 권하고, 가르치는데 힘을 다하여 수고를 한다고 하였습니다.(골 1:28-29). 바울은 전도 곧 설교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이 고난을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교회를 위하여 채운다고 하였습니다(골 1:24).
그렇다면 신약성경에 나타난 왕명(πιταγ )은 바로 전도, 곧 설교라는 사실입니다. 교회는 이 지고(至高)하신 왕명을 수행하는 장소입니다. 그 왕명의 내용은 복음, 곧 기쁜 소식, 만민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눅 2:10). 바로 여기에 존재하는 지상 교회의 의미와 가치와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 지고하신 복음의 왕명은 예루살렘, 유다,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전파되어야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2000년간 지상의 기독교는 이 지고하신 왕명을 수행하는 복음을 전파한 것입니다.
Ⅱ. 왕명에 사는 중국의 교회들 저는 이 시간에 비록 제한된 시간이지만, 현재 우리와 이웃하고 있는 중국에 이 왕명을 좇아 신령한 사명을 다하고 있는 신실한 왕(예수)의 신민들을 생각하고자 합니다.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1949년 이래 지금까지 박해와 고난 속에서 소생 그리고 성장을 하고 있는 선교의 황금 어장입니다. 말하자면 중국의 교회는 다른 곳에서의 기독교와 같이 고난과 부흥의 양면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중국이 공산화되어 서양 선교사들이 중국을 떠날 무렵 중국에는 2만 개소의 교회와 100여만 명에 이르는 세례 교인들이 있었습니다. 저들은 5천 6백 여명의 선교사들과 8천 5백 여명의 중국인 복음 전도자들 그리고 약 3천5백여 명의 전도 부인(Bible Women)과 약 2천백 여명의 중국인 목사들의 지도를 받고 있었습니다. 중국이 공산화된 이후 40년이 훨씬 넘은 오늘 중국의 교인 수는 3천만에서 6천만을 헤아리고, 어떤 통계는 이보다 훨씬 상회하는 1억으로 조심스럽게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1. 모택동 혁명 이전의 중국 교회(1949-1966) 중국이 공산화된 후 교회는 시련기를 맞았습니다. 공산화된 첫 9년 동안(1949-1958) 개신 교회는 이른바 삼자(三者)애국 운동이 조직되면서 삼자 교회(三自敎會)운동을 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삼자 교회(三自敎會)란
1 자치(自治)
2 자양(自養)
3 자전(自傳)을 뜻합니다. 그래서 이른바 외세(서구) 곧 서구제국주의자들로부터 중국의 교회를 단절시켰습니다. 삼자 애국 운동은 1954년에 공식적으로 조직되었는데 집권 중국 공산당의 지시 아래 개신교 신자들에게 당의 종교 정책을 이행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이른바 애국적 종교 조직 단체였습니다. 이런 일로 말미암아 중국 안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의 교회가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그 하나는 이른바 삼자 교회(三自敎會)로서 삼자(三自) 애국 운동에 소속된 공인 교회입니다. 이런 종류의 교회는 정부 산하 종교사무국과 삼자 애국 운동의 엄격한 통제를 받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속한 성직자들은 당의 지시를 따라 6개월 동안 정치 학습을 받고 그후 공장이나 농장에서 자발적으로 무산계급에 속한다는 노동 개조를 받았습니다. 말하자면 이 종류의 교회들은 중국 정부의 공산주의 국가 실현을 위한 한 수단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종류는 이른바 ‘가정 교회(house church)’라 부르는 지하 교회 운동입니다. 이들은 공인된 삼자 교회(三自敎會)는 잘못된 길을 걷는다고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그 결과 저들은 성경이 명하는 신앙 자유와 양심 자유, 포교 자유를 주장하였습니다. 그 결과 저들은 불법 활동 단체로 간주되었고, 체포 대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저들이 체포될 때는 장기간의 투옥이나 강제 노동형에 처해져 버렸습니다. 성경 읽기가 금지 당하고, 성도들의 상호 방문이 금지 당하고, 물론 전도 활동이나 공개적인 설교 행위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신앙 파수 때문에 가족이 흩어짐은 아주 흔한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저들을 ‘반(反)혁명분자의 가족’이라는 낙인이 찍혀 버렸기 때문입니다. 저들에게 있어 교육받을 기회나 자유로운 직장 생활이나 교제는 이미 옛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지상에서 땅굴로 들어가는 ‘비밀 교회’ ‘지하 교회’ ‘가정 교회’ 등의 이른바 초기 로마 박해 시에 나타났던 카타콤(catacombs) 생활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2. 모택동 문화혁명과 교회(1966-1976) 1966년 8월, 이른바 모택동 문화대혁명이 일어났습니다. 모택동 휘하에 전 중공을 휩쓸었던 이른바 홍위병들은 주석의 격려에 고무되어 모택동 어록으로 완전무장되었습니다. 저들은 구(舊)의 이데올로기와 옛 관습, 옛 도덕은 여지없이 타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은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라고 간주되는 모든 관청, 교육기관, 사회 기관을 구조적으로 파괴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문화대혁명의 바람은 종교계에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여러 종류들의 미신 타파, 사찰과 수도원 그리고 교회들이 파괴를 당했습니다. 교회와 신자들의 집은 홍위병들에 의하여 습격을 당했고, 모든 성경과 기독교 서적들을 모아 광장 가운데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그것을 불지르면서 모택동 만세를 불렀습니다. 이때 삼자 애국 운동을 하는 자나 삼자 교회도 절단이 났고 지하 가정 교회 운동을 하는 자들도 없어지는 듯한 지경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중국 전역에 5-10명이 한 그룹을 이루어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과 기도하는 것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 무서운 환난의 와중에도 가정 교회는 조용히 착실하게 성령님의 인도를 받고, 도시와 소읍 그리고 수많은 마을들로 퍼져 갔습니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움직여지는 생명 운동의 호흡이 계속 되었습니다.
3. 모택동 이후의 교회(1976-1980) 1976년 모택동이 사망하고 이른바 4인방이 체포되면서 중국은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1976년부터 1980년 기간 동안 모택동의 후계자로 지목된 화국봉의 통치를 거쳐 강력한 개혁자인 등소평 통치로 이어졌습니다. 그때부터 중국은 안정을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1979년 8월에는 다시 삼자 애국 운동의 재개와 함께 삼자 교회 운동이 재개되었고, 1979년부터 1980년의 짧은 어간에 가정 교회 운동은 전례 없는 자유와 포교의 축복을 입었습니다. 이때는 중국 당국이 잠깐 교회에 대한 관심을 늦추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4. 새 지도부의 4개(四個)견지주의와 삼정(三定)정책과 기독교 1980년 12월 화국봉 실각후 중국 공산당의 새 지도부는 중앙집권적 계획과 통제를 회복하기 위하여 1977년 이래로 중지되어 온 학교와 직장 단위의 정치 학습을 재개하였습니다. 새 지도부는
1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모택동 사상 견지
2 인민 민주주의적 독재 즉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견지
3 중국 공산당 지도의 견지
4 사회주의 노선의 견지라는 4대 견지를 헌법(1982년)과 12차 전국 대표 대회에서(198
2. 9.)와 후속적인 종교 정책에 그대로 반영하였습니다. 그 결과 1981년 삼자 애국 운동과 삼자 교회 운동이 조직 강화되어 그와 함께 가정 교회에 대한 탄압이 노골화되었습니다. 특별히 1982년 3월 31일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는 ‘19호 문건’으로 알려진 종교 정책에 관한 문서를 발표했는데 그것이 이른바 ‘삼정(三定)정책’입니다.
첫째, 기독교인들은 오직 삼자 애국 운동에 의해 지정된 교회들에서만 예배할 수 있다.
둘째, 오직 삼자 애국 운동에 의해 지정된 성직자들만이 설교할 수 있다.
셋째, 오직 지정된 시간에만 활동할 수 있다는 삼정(三定)입니다. 이로 인하여 가정 교회는 새로운 영적 갈등과 고난 속에 들어가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후 가정 교회 멤버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 캠페인이 일어났고, 가정 교회들의 모임은 해산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가정 교회의 순회 설교자들은 체포의 대상이 되었고, 잡힐 때는 재판없이
1, 2년간 구류되고 또 어떤 경우는 사회질서 혼란 조성이란 죄목으로 5년형을, 혹은 반혁명분자라는 이름으로 15년형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환난은 지금도 계속이 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가정 교회는 7대 선교전략을 수립하였습니다.
1 듣는 사람에게 중생을 목표하고 설교할 것
2 십자가의 길을 걸을 것
3 삼자 애국 운동을 세상 권세로 여길 것
4 복음 전파의 목적으로 교회를 세울 것 5 어린 교회들을 성경과 영적 생활 훈련으로 양육할 것 6 설립된 교회들 간에 영적 교제를 발전시킬 것 7 개척적인 복음 운동으로 복음이 들어 가지 않은 곳에 파고 들어 갈 것 등의 선교전략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가정 교회들이 다 이를 준수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많은 가정 교회들이 박해를 못 이겨 삼자 교회로 옮긴 경우도 있습니다.
5. 다른 길을 걷는 두 교회 지금 중공의 공인 교회 곧 삼자 교회에는 이른바 ‘애국 서약’이 있습니다.
1 기독교인들은 중국 공산당의 4개 견지(四個堅持)를 지지한다.
2 기독교인들은 정치와 교육 그리고 가족 계획에 간섭해서는 안된다.
3 기독교인들은 18세 이하의 사람들에게는 전도하거나 세례를 주지 않는다. 그들은 병자를 위해 기도하거나 귀신을 내쫓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
4 기독교인들은 국가의 모든 법률과 정책들을 따를 것이며 외국으로부터 오는 경제 원조와 문서(책) 그리고 성경을 포함한 모든 외국 교회들의 침투에 단호히 저항할 것이다. 5 교회들은 삼정 정책(지정된 장소, 지정된 사람, 지정된 시간)을 실천할 것이다. 그런가 하면 가정 교회들도 특징있는 공통적인 수칙이 있습니다.
1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고 성령님의 능력으로 사역들을 수행한다.
2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그들 교회의 지도력과 권위 구조를 인정한다.
3 우리는 정기적으로 예배를 드리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와 성찬을 거행한다.
4 우리는 제자들을 가르치며 교회를 훈련시킨다. 5 우리는 말과 생활을 통하여 구성원들로 하여금 박해자들에게도 그리스도를 증거하도록 격려하고 훈련시킨다. 6 우리는 복음을 전하고 새신자들에게 세례를 주며 그들이 훌륭한 예수의 제자가 되도록 가르친다. 7 우리는 구제사업과 하나님의 나라(천국)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보인다. 가정 교회는 이러한 가정 교회 운동의 수칙들을 통하여 환난 중에도 크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구를 조직하고, 그 교구가 다섯에서 열 개에 도달하면 지방 협의회가 조직되어 장로교 조직의 노회와 유사한 활동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조직된 ‘지방 협의회’는
1 교리 문제를 해결하고
2 선교 개척 사역들을 관장, 조정하며
3 복음 전도자들과 목회자들의 기초 훈련을 제공하고
4 투옥된 목회자들과 그 가족들을 돌보는 교회의 전반적인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중국 정부는 삼자(자치, 자양, 자전)정책 그리고 삼정(지정된 장소, 지정된 사람, 지정된 시간에서만 예배)정책 위에 삼대 과업을 내세워서 가정 교회 운동을 제지하고 있습니다. 1996년 발표된 삼대 과업은
1 종교 시설의 등록
2 종교 관련 공안 문제 해결(종교청+경찰청)
3 젊고 애국적인 정부 소속 성직자 배출 등을 발표하였습니다. 이는 기성 교회 추종자들을 없애는 적극적 수단이었습니다. 만약에 저들이 발각되면 반(反)중국인으로 몰아 구류와 벌금을 부과하고, 지도자에 대해서는 징역형을 선고하고 재산까지 몰수하는 상태입니다. 이렇게 두 길이 분명합니다. 넓은 길, 좁은 길입니다. 가기가 쉽고 찾는 이가 많은 삼자 교회가 가는 길이 있습니다. 현재까지 이 류에 속하는 전체 교회 수는 4000개소, 등록된 집회 장소의 수는 16,500개소로 알려졌으나 실상은 그 이상이라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반면에 가기가 힘들고 찾는 이가 적은 십자가의 좁은 길을 걷는 무리들도, 실상 그 수가 부지기수라 할 만큼 대단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중국은 지구의 한가운데서 21세기 세계 제일의 패권국가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증가일로에 있는 기독교회들과 단체들을 공산주의 국가 건설의 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삼자 교회에 속한 지도자들은 하나님이 공산주의를 허락해서 저들이 예수 믿게 된 것을 감사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삼자 애국 운동 위원회, 삼자 교회, 삼정 정책, 삼대 과업 등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악용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진정 예수 그리스도의 왕되심을 믿고 그 왕명에 따라 십자가의 참된 길을 추구하는 깨어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전 중국 땅에 산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중국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영전(靈戰)은 종말을 향한 세계 선교 운동에 중요한 사인(sign)이 될 것입니다. 왕이신 그리스도의 왕명(王命)에 의해 살 것인가 아니면 사탄에 의한 인명(人命)에 의해서 살 것인가 한국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물으심에 확실하고 분명한 답을 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일제 36년간의 탄압에서 이것을 체득한 일이 있습니다. 지금 북한에도 예수의 왕명(王命)을 따라 사는 진리의 백성들이 상존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에피타게(πιταγ )! 명령! 어느 왕의 명령에 따를 것인가 이 세상 임금(요 16:11)의 명령에 따라 살 것인가 예수 왕명(계 17:14)에 따라 살 것인가 누구의 충신이 될 것인가 누구를 교회의 주(主)로, 왕으로 모실 것인가 사탄인가, 그리스도인가 우리는 예기되는 세계적인 환난 앞에 자기 갈 길을, 자기 살길을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바울 그리고 역사상의 참된 그리스도의 교회는 예수의 에피타게(명령)와 함께 살았습니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었습니다. 그 이유는 사나 죽으나 이미 그리스도인은 주의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롬 14:8). 하늘이 반(半) 시 동안 고요한 어간을 맞은 한국 교회는 이 잠정적인 평화시대를 우리 날들의 최고로 여겨 왕명(王命) 수행(복음 운동)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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