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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에서의 해방이 있다 (롬8:1-4)

본문

해방의 장소가 어디인가 로마서 8장 1절에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 라고 하였다. 죄에서의 해방,율법에서의 해방은 '그리스도 예수 안'이라고 하였다. '그리스도 예수 안'이 바로 성화로 가는 새 길의 기점이다. 새 출발이다. 로마서 8장 1절에 다시 말하기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정죄함이 없다' 고 하였다. 여기 '정죄함'은 재판장의 법적 선포를 가리킴이다. 이 말의 원래 뜻은 '세금' '부채'를 의미한다. 이 본문의 의미는 죄의 삯, 죄의 부채를 의미하고 있다. 범죄자에겐 언제나 부채와 같은 무거운 짐이 있다.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는 우리 모두가 모세의 율법 아래서 유죄 판결을 받아 사망의 값을 지불해야 되는 부채의 독촉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율법 아래 있을 때 죄에 속히우고(7:11), 죄 아래로 팔려가고(7:14), 죄가 우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고(7:15), 죄가 내 속에 주인으로 자리를 잡고 거처하게 되고(7:17), 마침내 사망의 값의 지불을 독촉하기에 이르렀다고 하였다(7:24).
그런데 우리 본문이 말하기를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라고 하였다. '없다'는 말은 강한 부정사이다. 이 말은
1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전죄 상태에서 해방 받았음을 의미한다. 본질적이요, 원리적이요, 궁극적 의미에서 나온 말이다. 마치 로마서 4장 8절처럼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한 사람은 복이 있다'는 말과 같다. 전 인생 영역에서의 해방이다.
2 신자가 더 이상 죄악의 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소극적 의미). 계속되는 회개와 변화의 생활로 은혜 아래 거함을 뜻한다.
3 죄를 향하여 도전하는 말이다(적극적 의미)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송사하리요, 정죄하리요,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이 소망은 죄인들에게 복음이요, 소망이요, 축복이다.
1 사죄와 은혜의 선포이다. 그것은 바로 예수께서 중풍 병자에게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는 선포와 같다. 시몬이 동리의 한 죄있는 여자에게 이르신 말씀처럼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 (눅7:48)함과 같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평안히 가라'고 간음한 현장에서 잡힌 여인에게 선포하던 사죄 선언과 같다(요8:11).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셨다. 이것은 죄인들에게 주님만이 줄 수 있는 복음이다.
2 새 시작, 새 창조의 선포이다. 마가복음 2장 11절에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고 하였다. 그 때 그 중풍병자는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저희가 다 놀라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다고 하였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언제나 새 시작이요, 새 창조요, 새 활력이다. 새로운 환희요, 의욕이요, 만족이요, 안위요, 행복이다. 그 누구도, 어떤 죄인도, 어떤 절망자도, 예수 앞에 와서 절망하고 돌아간 사람은 없다. 그는 언제나 정죄와 사망에서 용서와 해방을 선포하셨다. 복음을 주셨다. 그에게 오는 자를 괴롭게 돌려 보낸 일이 없다. 다시 살 수 있다. 할 수 있다. 소망이 있다. 축복 받을 수 있다고 하는 새 삶을 약속했다.
3 불가항력적 승리의 선포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겐 결코 정죄함이 없다! 그 어떤 죄인도 이 위대한 생명 은총의 선포를 거절할 수 없다. 다만 은혜를 받을 뿐이다. 그 해방을 누릴 뿐이고, 감격할 뿐이다. 삭개오는 이러한 은총 앞에서 자기 인생을 새롭게 출발시키고 말았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 확실한 사죄가 성립되고, 확실한 신분이 보장되고, 확실한 미래가 약속될 뿐이다.
2) 누가 해방했나 해방의 정체가 누구인가 로마서 8장 2절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님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고 하였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님의 법'이 우리를 정죄에서 해방 시켰다고 하였다. 생명의 성령님의 법 을 새 번역에는 '생명을 주시는 성령님의 능력'이라고 하였다. 벵겔(Bengel)은 고린도후서 3장 3절에 나타난 말씀을 좇아 '마음의 비에 새긴 복음'이라 했다. 모세의 율법은 돌비에 새겼으나 복음은 마음의 심비에 새겼다고 하였다. 고린도후서 3장 6절에 영은 살리는 것 이라고 하였다.
빈센트(Vincent)는 말하기를 '생명의 성령님'은 바로 '예수의 영'을 말함이다라고 하였다. 예수 자신이 생명이다. 예수 생명의 힘, 기운, 능력을 말함이다. 그것은 '진리의 영'(요14:17)이요, '진리의 성령님'이시다(요15:26). 이것은 모세의 율법의 힘과 반대이다. 정죄하는 논리의 힘이 아니라 생명을 주는 힘. 살리는 힘, 일으키고 움직이며, 뛰게하는 생명의 원리를 말함이다. 요한복음 6장 63절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고 하였다. 고린도전서 15장 45절에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다 고 하였다. 고린도후서 3장 6절에 '영은 살리는 것이요, 의문은 죽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고린도후서 3장 17절에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 자유함이 있느니라 고 하였다. 로마서 8장 6절에도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하였다. 로마서 8장 10절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인하여 산 것이라 고 하였다. 신자라도 범죄한 육신은 한 번 죽음을 당한다. 그러나 영은 이미 부활 하여 자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로마서 8장 11절에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고 하였다. 결코 '생명의 성령님의 법'은 '절대하신 생명을 주시는 영'을 일컬음이다. '예수의 영이 생명의 성령님의 법'이다.
그 예수의 생명이 우리 영도 살린다 (첫째 부활) 우리 죽은 몸도 영생체로 살릴 것이다(둘째 부활).
그렇다면 '생명의 성령님의 법'은 위대한 새 창조의 능력이다. 무비의 창조이다. 예수 자신은 생명인 동시에 생명을 주시는 능력의 신이시다. 바로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의 능력'이 정죄에서, 사망에서, 영벌에서 우리를 살리셨다.
3) 어디에서 해방했나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했다. 로마서 8장 2절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님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니라 고 하였다 죄와 사망의 법 이 무엇인가 이것은 '생명의 성령님의 법'과 정반대되는 법이다. 곧 죽이는 법이다. 죄와 죄의 결과로서 오는 사망의 원리, 사망의 법칙을 가리킨다. 그것은 율법과 결탁하고 있다. 오늘 죄된 피조 세계는 이 두 법의 대결이다. '생명의 성령님의 법'과 '죄와 사망의 법'의 대결이다. '법'이란 원리, 절대치를 가리킨다. '생명의 성령님의 법'과 '죄와 사망의 법'은 서로가 절대적이다. 두 절대자는 존재할 수 없다. 두 영웅이 존재할 수 없음과 같다.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다. 반대로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고 하였다. 사망과 영생이 대결하고 있다. 로마서 6장 15절에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다 고 하였다. 바울은 한 사람의 범죄로 사망을 가져왔고, 또한 사람의 의의 행동(예수 대속 공로)은 많은 사람에게 생명을 가져왔다고 하였다.
로마서 6장 20절-21절에는 죄와 은혜를 비교하고 있다. 죄는 사망의 결과요, 은혜는 생명의 결과라고 하였다. 로마서 6장 14절에도 '죄와 은혜'를 대조 시키고 있다. 바울은 로마서 7장 중에서 자기 속에 죄의 법과 선의 법, 곧 사망과 생명이 대결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고 부르짖고 있었다. 나중에 그는 갈라디아 교회를 향하여 부탁하기를 이제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고 하였다. '죄의 법'으로 자기를 괴롭게 말라고 한 것이다. 곧 이행득구의 의(義) 곧 율법주의로 자기를 괴롭게 말라고 하였다. 이제자기 몸에는 예수의 흔적, 곧 십자가의 표적, 생명의 표적, 구원의 표적, 사랑의 표적, 용서의 표적, 영생의 표적, 은혜의 표적, 축복의 표적을 가졌다고 하였다. 모든 인류는 '죄와 사망의 법'에 묶이었고, 속박되었고, 사망의 언도를 받았다. 그것은 율법의 언도였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님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했다고 하였다.
4) 해방의 근거(무엇이 해방했나 ; 8:1-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정죄함이 없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님의 법' 때문이다. 생명의 성령님의 법이 무엇인가 생명을 주시는 예수의 영이다. 이러한 생명의 성령님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였다.
그렇다면 '생명의 성령님의 법' 안에 무엇이 있는가 생명의 성령님의 법의 실체가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이다. 3-4절 앞에 '
왜냐하면'이라는 이유 접속사가 나온다.
1 율법은 해방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하였다. 8장 3절에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이라고 하였다. '율법'은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율법 자체가 힘이 없고, 연약하고, 약해서가 아니다. 율법은 정죄의 기능 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연약' 곧 '죄로 타락한 인간 본질' 때문에 율법은 우리를 해방시킬 수 없다. 결코 율법은 죄로 연약한 우리를 사죄하거나 용서하거나 죄에서 풀어 놓을 수가 없다. 오히려 율법은 우리의 연약을 정죄하고, 사망을 언도하는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2 하나님만이 해방의 근거가 된다고 하였다. 로마서 8장 3절에 .하나님은 하시나니. 라고 하였다. 어떻게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가 그는 '생명의 성령님의 법'으로 하시기 때문이다. '생명의 성령님의 법'의 내용이 무엇인가 왜 하나님만 해방의 근거가 되는가 ㉠ 자기의 아들을 보내셨기 때문이다(성육의 하나님). 로마서 8장 3절에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주사,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라고 한 말이다. 이것은 '성육의 사실'을 나타낸 말이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 고 하였다. 로마서 8장 32절에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 라고 하였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게 했다 고 하였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고 하였다. 요한복음 1장 18절에는 예수의 화육강세를 가리켜 .아버지의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다 고 하였다. 요한1서 4장 10절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고 하였다. '자기의 아들',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다.
그가 바로 '생명의 성령님의 법'인 것이다. ㉡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셨기 때문이다. 로마서 8장 3절 중에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라고 하였다. 이는 성육신하신 예수의 '신분'을 가리키는 말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비하의 신분, 낮아지신 신분을 가리킨다. 바로 빌립보서 2장 7절대로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셨다는 사실이다. 고린도후서 8장 9절대로 본래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는 율법 아래 오시고, 율법대로 사시고, 율법의 요구에 응하셔서 사망의 값을 지불하셨다 ㉢ 죄를 인하여 보내셨기 때문이다. 로마서 8장 3절 중에 .곧 죄를 인하여. 라고 하였다. 이는 '성육의 목적'을 가리키는 말이다. 죄 때문에 보내졌다는 사실이다. 히브리서 2장 17절에는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됨은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고 하였다. 그래서 마가복음 10장 45절에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오셨다고 하였다. 죄의 그 속가는 죄에 대한 사망의 값을 지불함이다. 바로 '예수' 이름의 뜻이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 인 것이다(마1:21).
그러므로 예수는 죄인의 구주이다. 기독교의 생명은 죄인을 찾아 구원하는 일이다. ㉣ 육신의 죄를 정하셨기 때문이다. 로마서 8장 3절에 .육신에 죄를 정하사. 라고 하였다. 곧 십자가의 정죄를 가리킨다. 예수 십자가는 우리의 어떤 교육이나 계몽이나 민족주의나 철학적 교양의 사상을 표시함이 아니고 생활의 악세사리도 아니다. 그 십자가는 사죄의 표식이다. 생명의 표식이다. 구원의 표식이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의 연약한 것과 주님의 십자가만을 자랑한다고 하였다. 우리는 지금 중대한 영감의 단어들이 반복되고 있음에 유의하자. 하나님께서 '생명의 성령님의 법'으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는 일을 하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죄를 인하여. ,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 육신의 죄를 정했다 고 하였다. 이것은 성자 예수의 성육의 사실, 성육의 신분, 성육의 목적을 알려주고 있다. 말하자면 '생명의 성령님의 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이라는 사실이다. '오시고, 사시고, 죽으신' 사건이다. 그렇게 그가 육신이 되셔야 될 이유는
1 인생이 율법 아래 정죄 되었기 때문이요
2 육신이 되지 않고는 인생의 죄의 값을 지불할 수 없기 때문이요,
3 율법의 요구를 성취시켜 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극치로운 독생자 예수의 수난의 십자가와 부활의 영광이 '생명의 성령님의 법'의 요소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생명의 성령님의 법'이란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 사랑의 실체는 '예수' 곧 구원이다. 그 구원의 실체가 대속의 십자가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은 어떠한 것인가 7
1 그는 우리의 죄 때문에 세상에 오셨다 율법 아래 오셨다. 오실 때 사람으로 오셨다. 사람으로 오실 때 죄있는 자의 모양으로 오셨다. 죄 있는 자의 모습처럼 사셨다. 그에게는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으셨다. 사람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없었다. 창조주가 피조물의 형상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셨다. 만물의 주인이 만물의 종이 되고 섬기려고 세상에 오셨다. 광명한 곳에 광명의 본체시요, 독생자인 그 분이 어둠의 세상에 도성인신 하셨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어 인간이 밟는 땅을 밟으셨고, 죄인과 함께 거처하셨고, 죄인과 함께 잡수셨다. 죄인의 친구요, 선생이요, 의사였다.
2 그는 세상에서 배척을 당하셨다. 가인이 범죄한 뒤에 하나님께서 '너는 땅에서 피하여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고 하시더니, 그 아들 예수가 범죄자 처럼 세상에서 피하여 유리하는 자가 되셨다.
3 그는 세상에서 배척을 당하셨다. 그는 나사렛에서 배척을 당하셨다. 그는 사마리아 성을 통과하실 때 거절을 당하셨다.
4 그는 주리셨다. 자신이 생명의 떡이었지만, 시장하여 주리셨다. 그래서 무화과 나무의 열매를 구하셨다. 그러나 무화과는 주님의 시장을 채워주지 못했다.
5 그는 목말라 하셨다. 그는 자신이 생수요, 생수의 근원이었지만 목말라 하셨다. 그는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에게 물을 요구하셨다. 십자가에서 내가 목마르다고 하셨다. 생명의 떡이신 주님이 시장하고 목마르심으로, 생명의 사역을 시작하시고, 목마르심으로 생수의 사역을 완성하셨다.
6 그는 배척을 당하셨다. 그는 제자들에게 배척을 당하셨다. 자기 백성에게 배척을 당하셨고, 이방인들에게 배척을 당하셨다. 이것은 그가 세상에서 당하시던 고통과 아픔 중에 가장 큰 아픔이요, 고통이였다. 더욱이 사랑하던 제자들과 동족인 자기 백성들에게 그러하였다. 쥴리어스 시이저(Julius Caesar)가 암살을 당할 때 배신한 자기의 친구 부르트스를 보고 하는 말이 "브르트스 너 마져도."라고 탄식하였다. 주님은 가룟 유다에게 "친구여(형제), 네가 할 일을 속히 하라"고 하셨다. "너는 차라리 나지 않았더면 좋을 뻔하였도다"고, 그의 제자의 배신 앞에 고통을 나타내셨다. 그는 마침내 모든 제자들에게 배신과 배은과 배약과 배척을 당하셨다.
7 그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눈물과 땀과 피흘리는 고통을 감수하셨다. 그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자기의 영혼을 속건제로 드리면서 아파하셨다. 그는 골고다에서 육신까지 제물로 드리면서 피와 물을 쏟으셨다. 비유컨데 겟세마네 동산에서는 영적인 피를, 골고다의 동산에서는 육신의 피와 물을 쏟으셨다.
8 그는 결박을 당하셨다. 그는 우리로 하여금 죄와 사망의 결박에서 풀어 놓아 다니게 하기 위하여 무죄하신 당신이 결박을 당하셨다. 안나스의 심문, 가야바의 법정 심문, 빌라도, 헤롯 왕, 다시 빌라도 앞으로 불법적인 윤회 재판을 받으면서 고통을 당하셨다. 그는 채찍에 매를 맞고, 상처를 더하셨다. 주님이 맞은 채찍은 최고형의 죄수들에게 가하는 극형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시기 위하여 홍포를 입으셨다. 그는 우리에게 왕권의 홀을 주시기 위하여 홍포를 입으셨다. 그는 우리에게 금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을 씌워 주기 위하여 가시로 만든 면류관을 쓰셨다. 그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버림을 당하지 않기 위하여 침뱉음을 당하셨다. 뺨을 맞으시고, 조롱과 학대와 멸시와 냉대를 당하셨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도 그 입을 열지 않고,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소처럼 잠잠히 그 입을 열지 아니하셨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었다.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 그는 마침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해가 빛을 잃고, 성소의 휘장이 찢어지고, 자던 성도의 무덤이 열렸다. 그의 죽음은 우리에게 생명의 빛을 가져오고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새로운 길을 여시고 우리 부활의 산 보증이 된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그는 십자가에서 대속 사역을 성취하고 말았다. 그래서 요한복음 19장 30절에 내가 다 이루었다 고 하였다. 이는 율법 성취의 개가였다. 구원 성취의 개가였다. 바로 이 사건이 하나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그 아들을 육신에 죄를 정하사 대신 십자가에 죽게하신 것이다. 이것이 '생명의 성령님의 법'의 본질이다. ㉤ 육신이 되신 결과 로마서 8장 4절에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라 고 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육신이 되신 결과는 세 가지이다.
첫째, 우리가 육신을 좇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우리 옛사람의 종착이었다(롬6:6-7; 갈5:24). 옛길의 마지막이었고 사망의 길을 행함이 중지된 것이다.
둘째, 영을 좇게 했다. 이것은 새 사람의 출발이었다. 새 길의 시작이었다. 새로운 목적이요, 방향이요, 새 가치를 추구함이다. 빛을 향함이다. 생명을 향함이다. 세째,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였다. 곧, 사망의 값이 지불되었다는 사실이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풀려나오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생명의 성령님의 법'이,
1 우리에게 칭의의 은혜를 입혀 주었다.
2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게 했다.
3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왕같은 족속과 제사장이 되게 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님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했다. 달리다굼!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막9:21-43).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눅7:11-17). 나사로야! 나오라고 불렀다(요11:17-44). 확실한 '죄와 사망의 법'에서 '생명의 성령님의 법'이 우리를 해방하신 해방의 명령이 아닌가 지금 우리는 영적 부활(
첫째 부활)의 영을 받았다. 마지막날에 이 위대한 부활 생명의 호출을 받을 것이다(
둘째 부활).
그러므로 성화로 가는 길은 율법의 옛길이 아니다. 새 길이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님의 법' 곧 십자가의 길이다.
(3) 사망에서의 해방이다(8:5-13).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정죄에서의 해방이 있다(8:1-4). 그것은 성화로 가는 길, 곧 새 길이었다. 8장 5-13절은 죄의 결과인 사망에서의 해방을 알려주고 있다.
1) 육신과 영이다 중대한 것은 부분에서 언급되는 '육신'이란 말과 '영'이란 말을 바로 이해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읽은 8장 5-13절의 부분에서 육신이란 말이 13번이나 반복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 부분에서 '육신'이란 말을 바로 이해해야 한다(8:3-13). 육신은, 몸(body)과는 구별되는 말이다. 살과 뼈의 지체들로 조직된 몸과는 구별되는 말이다. 여기에 육신은 여러가지로 쓰여지고 있다. 골격과 구분된 부드러운 살을 의미할 때가 있다. 부활 후에 주님은 제자들에게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눅24:39)고 한 경우이다.
㉠ 영혼과 구분된 몸을 가리킬 때도 쓰였다. 로마서 2장 28절에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고 한 경우이다. 이런 경우 '육신'이란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를 뜻한다.
㉡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완전하심에 반하는 '인간의 연약성'을 의미하기도 하였다. 이사야 40장 6절-7절에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고 한 경우이다. 하나님의 영원성에 비한 인간의 유한성이다. 하나님의 불변성에 비한 인간의 가치성이다. 하나님의 완전성에 비하여, 인간의 불완전성, 하나님의 거룩성에 비하여, 인간의 불거룩성 등을 나타내는 말이다.
㉢ 내부와 구별된 인간의 외적 조건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고린도전서 1장 25-29절에 나타난 내용들이다.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 능한 자, 문벌 좋은 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세상에서 미련한 사람, 약한 자, 천한 자, 멸시 받는 자, 없는 자 등을 가리킬 때 아무 '육체'라도 사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는 경우이다.
㉣ 성결과 구별되는 죄악성을 의미하는 경우이다. 갈라디아서 5장 19-20절에 나타난 현저한 육체의 일들을 총칭하는 경우이다. 곧, '육신의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나 원수 맺는 것, 시기, 분냄, 당 짓는 것, 거짓, 분리이다. 말하자면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삶, 곧 불신앙과 어둠의 삶을 총칭하는 말이다. 사람은 세상에서 육신에 감싸여 있다. 가장 귀하다고 하는 영혼까지도 육체 안에 거한다. 육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주택과 음식과 의복을 가져야 한다. 만일 육신을 도모하는 환경이 나쁘면 인생은 일시라도 살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육신은 단순한 조직체로서의 '몸'이 아닌 인간의 도덕성, 육욕 전부를 총칭하는 말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1 육(肉)이 영(靈)화한 것이다. 육신의 주인인 곧, 지배자인 영이 노예로 전락된 사실을 뜻한다. 육신이 목적이 되고 영이 수단이 되어버린 상태를 가리킨다. 영의 요구대로 육신이 움직이지 않고, 육신의 요구대로 영이 움직이는 상태를 뜻한다. 생의 모든 목적과 욕구와 방향이 자기 중심, 자기 만족, 자기 의지, 자기 판단대로 움직이는 역리적 상태를 뜻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역행하는 삶이다. 만물은 인생의 것이고, 인생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다(고전3:21-23). 이것은 창조 질서요, 축복의 질서요, 승리이다. '육신'이란 이 질서가 전혀 거꾸로 되어버린 상태를 말함이다. 순리대로 요구하지 아니하고, 순리대로 생각하지 아니하고, 순리대로 만족하지 아니하고, 역리대로 생각하고, 역리대로 말하고, 역리대로 행동하고, 역리대로 만족하는 타락한 인간의 죄악의 심성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불신앙은 육신이다. 불법은 육신이다. 행하지 않음은 육신이다. 투쟁은 육신이다. 질투는 육신이다. 교만은 육신이다. 분쟁과 시기와 살인은 육신이다. 미워함은 육신이다. 당 짓는 것, 수근수근하는 것은 육신이다. 불효는 육신이고, 우애 없음은 육신이다.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은 육신이다. 형제의 허물을 용서하지 못함은 육신이다. 자기의 의로움만을 주장함은 육신이다. 내일 죽으리니 오늘 먹고 마시고 즐기자 하는 현실주의는 육신이다. 하나님의 존재와 창조와 섭리를 모름은 육신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보신 육신은 창기와 세리와 죄인들이 아니라 서기관이었고, 바리새인들이었고, 제사장들이었다. 그래서 주님은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육신'이란 육이 영화하고, 영이 육화한 타락의 질서를 가리키는 것이다. 인간의 죄악성, 타락성, 불결성을 가리킴이다.
2 성신 없는 사람이 육신이다. 그것을 가리켜 '육체'라고 하였다. 창세기 2장 7절에 하나님은 첫사람의 코에 '생기'를 넣었다. 그러나 창세기 6장에 와서 보니 하나님의 영이 사람들과 함께 하지 아니하므로 사람들이 모두 육체가 되어버렸다 고 하였다(창6:3). 그 육체를 가리켜 '네피림' 곧 거인이라고 하였다. 용사라고 하였다. 죄악의 용사, 불의의 거인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저들은 모두 육신 위주로 사고하고, 말하고, 행동했다. 하나님의 신이 없는 사람은 육신이다. 그 사람을 가리켜 '살았으나 죽었다'고 하였다. 육신의 호흡은 있으나, 하나님과 관계하는 신령한 영지 작용이 죽었다는 사실이다.
3 육이 중심된 사람이다. 인본주의 생활 철학이다. 곧 자기 위주의 사람이다. 자기의 주인이 자기이다. 자기 외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다. 육체적 삶을 뜻한다. 육체의 인생관, 우주관, 역사관을 가진 사람들이다. 육(肉) 본위의 생활 원리를 설정한 자들이다. 그래서 우리 본문에 육신의 일을 생각하고. 라고 하였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생각하고 라는 말에서 생각하고는
1 이해하고(고전13:11),
2 의견에 일치하고(롬11:3),
3 판단하고,
4 사모하고, 5 마음을 추구함을 뜻한다. 전인생을 거기에 목적한다. 육신 제일주의, 육신 목적주의 대로 인생을 살아간다고 하였다. 말하자면 '육신'이란 '불신앙의 삶' 자체를 뜻함이다. 반면에 8장 15절에 주의 영 을 받은 자이다. '영'이란 무엇인가 프뉴마라고 하였다. 이 본문 중에 육신이란 말과 함께 대조적으로 영이란 말이 반복되고 있다. 8장 4절에 '그 영' 8장 5절에 '영의 일' 8장 6절에 '영의 생각' 8장 9절에 '하나님의 영' 8장 9절에 '영에 있다' 8장 9절에 '그리스도의 영' 8장 10절에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라' 8장 11절에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8장 11절에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8장 13절에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8장 14절에 '하나님의 영' 8장 16절에 '성령님' 8장 16절에 '우리 영' 등으로 가득차게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 나타난 영이란, 성부 하나님의 영(창조의 영), 성자 예수의 영(구속의 영), 성령님(보혜사)을 뜻함이다. 그 영을 받은 자를 가리켜 '신자'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이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하나님의 영으로 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한 성령님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 하였다.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한다. 창조의 목적과 질서대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말하고, 행동한다.
그렇다면 '육신과 영'의 대결이다. 육신은 죄와 사망의 법에 매여 있다. '영'은 '생명의 성령님의 법'이다. '생명의 성령님의 법'에 매여 있다. '생명의 성령님의 법'은 영이다. 그 영이 죄와 사망의 법에 종노릇한 '육신'을 해방했다.
2) 육신을 좇는 자이다 (8:7-8). '육신'이란 육이 연약한 것이라고 하였다. 성신 없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영이 중심이 아닌, 육이 중심이 된 사람, 곧 인본주의자라고 하였다. '좇는다'는 말은 삶의 향방을 정하는 것을 뜻함이다. 자기의 삶의 목적을 설정하고, 그리로 향하는 것을 뜻함이다. 전인격이 육신주의로 움직인다. 인본적 생활 철학을 말한다.
1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생각한다고 했다. 8장 5절에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생각하고. 라고 하였다. 전 인생의 욕구와 목적이 육신 위주라는 뜻이다. 육신주의의 생활 철학을 뜻한다. 육신 본위의 삶을 뜻한다. 모든 것을 육신대로 이해하고, 판단하고, 사모하고, 추구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인용하면' 육으로 난 것은 육이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는 자이다.
2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라고 하였다. 8장 6절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라고 하였다. 이것은 암흑, 무기력, 절망의 상태를 뜻함이다. 이것은
1 신자라는 이름만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3장 1절처럼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것이다 라고 함과 같다.
2 범죄한 영혼은 살았으나 실제로 죽은 것과 같은 것이다(겔18:20).
3 일락을 좋아하는 자가 살았으나 실상은 죽은 것과 같다(딤전5:16). 육신의 시작이 사망이요, 진행이 사망이요, 마지막이 사망인 것이다. '사망'이란 하나님과 분리되는 상태를 뜻함이다.
3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8장 7절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라고 하였다. 이것이 육신의 본질이다. 속성이요, 본성이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를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고 하였다. 육신은 본질적으로 죄의 지배를 받는 것이 그 특징이다. 그것은 바로 사탄의 지배를 받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복음 8장 44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고 하였다.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는 그러했다. 아담에게 주어진 인간의 자유 의지가 사탄의 유혹에 의하여 침노를 당하였다. 그 결과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에 빠져 타락을 하였다. 육신은 하나님을 대적한다.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대적한다. 그것은 육신의 본성이요, 기능이다. 결국 하나님과 원수된 육신은 패망하고 말 것이다.
4 육신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 8장 8절에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고 하였다. '육신에 있는 자' 바로 육욕 속에 안거하는 자를 뜻함이다. 죄에 안거하는 자이다.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세세토록 그를 즐거워함에 있다. 그러나 육신과 육신의 생각은 이 목적에 이를 수 없다. 그 이유는,
ⓐ 자기 삶의 목적이 자신이기 때문이다. 자기를 위하여 먹고, 자기를 위하여 마시고, 자기를 위하여 살기 때문이다. 전혀 자율주의 만능이다.
ⓑ 그에게는 하나님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창조나, 통치나, 섭리가 없다. 하나님의 구속 은총이 없다. 그는 무신론자요, 유물론자요, 우상 숭배자요, 실제로 무종교주의자이기 때문이다.
ⓒ 그는 궁극적으로 불신자이기 때문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고 하였다(히11:6).
ⓓ 육은 언제나 하나님과 하나님의 구속 운동을 배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에게 신뢰와 소망은 없다. 이유는 구속 은총이 없기 때문이다.
ⓔ 철두철미하게 현실주의요, 육체주의이기 때문이다.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하는 사상 뿐이기 때문이다.
5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고 만다고 하였다. 8장 12-13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 고 하였다.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는다'고 하였다. 필연적인 암흑이요, 절망이요, 심판이다. 반드시 죽는다고 하였다. 이것이 육신이 도착하는 마지막 종점이다. 왜 반드시 죽는가 ㉠ 그는 성령님 없는 자이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님은 없는 자니라 고 하였다(유1:19). 이단자는 육이요, 육신이란 사실이다. ㉡ 그리스도 없는 자이기 때문이다. 로마서 8장 9절에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고 하였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자는 영생 없는 자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의 마지막은 필연적인 사망이다.
㉢ 성령님을 거스리는 자이기 때문이다. 갈라디아서 5장 16-17절에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님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님을 거스리고 성령님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의 너희 원하는 것을 못하게 하느니라 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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