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의 신앙 (롬8:31-39)
본문
사람들이 청교도(Puritan)란 말은 많이 듣고 있으면서도, 막상 청교도가 무엇이냐고 물을 때는 아는 바가 별로 없기 때문에 당황하게 됩니다. 퓨리터니즘(Puritanism)은 1558년 엘리자베드는 영국의 여왕으로 즉위한 후, 여왕의 국교정책에 반대하는 칼빈주의자들의 신앙적 저항에서 생겨난 일종의 종교정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공회의 재흥을 도모한 엘리자베드 여왕은 1563년 '39개조'를 제정 반포하였는데, 이것은 앵글리카니즘(Anglicanism) 신조의 기본이 되었습니다. 비록 '39개조'에는 칼빈주의적 요소가 많이 들어있지만, 엘리자베드는 ‘최고의 통치자’로서 자신이 영국국교(성공회)의 통치자로 자리를 굳혔다. 이러한 종교정책은 로마교회측의 도전을 받았고, 동시에 열성적인 청교도의 도전도 받게 되었습니다. 청교도의 사상은 제네바의 칼빈주의의 영향 아래 형성되었습니다. 청교도의 주장은 대개 7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주권주의
2) 성경의 절대권위
3) 설교는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
4) 교회의 순결(생활의 순결성)
5) 엄격한 도덕성
6) 시민의 자유와 평등주의 사상
7) 일관성 있는 신앙교육
이 모든 정신을 총집합해서 어떤 사람은 ‘퓨리터니즘’이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믿음의 순결을 유지하며 교회를 하나의 영적 공동체로 승화시켜 국가와 사회를 그 위에 건설한다는 이념”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청교도의 이러한 정신과 이념을 바탕으로 하여 건설된 나라가 바로 미국입니다.
1. 하나님의 절대주권주의 하나님의 절대주권주의란 역사의 모든 주권이 오로지 하나님께만 있으므로 인간이 할 수 있는 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요리문답 제1문에 명시된 대로 사람의 제일된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있다면 우리는 최소한 두 가지 사실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첫째, 내가 믿는 이 교리가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하지 않아야 할 것이요,
둘째 우리 믿는 자가 모든 사람의 눈 앞에서 눈에 띠도록 성스러운 생활을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밀러는 청교도들에 대해 아주 당당하게 말하기를 “청교도들은 결코 수척한 몸매에 검은 모자를 쓰고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인정을 받도록 당당하고 성스럽게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청교도의 생활신조인 것입니다. 직장생활에서는 근면하고 청렴하고 정의롭고 진실하며 인정 있게 살아야 합니다. 가정생활에서도 아내는 남편에게 가장 좋은 아내가 되어야 하고, 남편도 아내에게 가장 좋은 남편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부모는 자녀에게 제일 좋은 부모가 되어야 하며 자녀도 부모에게 제일 좋은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청교도들은 일등 시민, 일등 직장인, 일등 아내, 일등 남편, 일등 부모, 일등 자녀, 일들 학생이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청교도들이 부부싸움을 했다거나 청교도들이 가정파탄을 했다거나, 청교도들이 사회를 망치게 했다거나, 남의 돈을 떼어먹고 도망쳤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저들은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이 세상에서 모욕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모두가 정직했고 근면했으며 청렴하고 신용이 있었습니다.
2. 성경의 절대권위 청교도들의 마음의 중심에는 항상 꺼지지 않는 마음의 등불이 있었습니다. 청교도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도의 생활을 지배하고 성도의 생활을 훈련시키고 성도의 생활을 수정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청교도들은 성경 말씀을 믿을 뿐만 아니라 성경대로 살았고 성경대로 믿었고 성경대로 전파했습니다. 클래머 감독은 “성경책은 가장 값비싼 진주요, 지구상에 남아 있는 가장 거룩한 우물이요, 틀림없이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격찬했습니다.
3. 설교는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 청교도들은 설교는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이라고 생각하여 설교의 중요성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리하여 예배의 중심에 설교가 있었고, 헌금,광고,찬양 등의 순서도 제외되었습니다. 설교는 보통 1시간 정도로 길었으나 회중들은 그 설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았습니다. 그들은 결코 설교자의 지식이나 경험이나 설교자가 가지고 있는 은사 같은 것에 대한 기대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설교자들은 모두 높은 학문적 수준을 가지고 있었지만 인간적 은사를 늘 스스로 억제하였습니다. 크리소스톰, 조나단 에드워즈, 챨스 스펄젼, 존 칼빈, 존 웨슬리 등 유명한 설교자들은 설교하는 중에 자신들의 은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방해할까봐 늘 조심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는 디모데후서 4:4의 말씀처럼,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고 있습니다. 설교란 설교자의 지식,경험,은사,제스처, 예화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고 그 속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고넬료는 욥바 시몬의 집에 있는 베드로를 자기 집에 청하여, 베드로에게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것을 듣고자 하여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행 10:25). 청교도들의 설교 듣는 태도는 매우 엄숙했습니다. 심지어 칼빈이 제네바에서 교회를 지도할 때는 예배 때 웃었다고 처벌하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설교 중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는다는 숭고한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4. 교회의 순결(생활의 순결성) 청교도의 생활의 순결성은 가장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청교도 생활의 순결성은 청교도라는 배(메이플라우어 호)의 열쇠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순결함을 개인과 가정과 교회와 학교 그리고 정부를 세우는 기본적 이상으로 삼았습니다. 이와 같은 청교도들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고 세워진 교회가 바로 한국교회입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선교초기 때부터 금연, 금주, 축첩, 도박, 고리대금, 미신철폐 등을 강조했고 교파마다 절제운동을 전개했습니다. 교회의 출석을 독려했고 주일을 범할 때는 가혹하게 다스렸으며, 주일에는 오락,산보,여행 심지어는 설교준비까지도 금하였습니다.
5. 엄격한 도덕성 청교도들은 너무나 양심적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놀림을 당하는 일은 있을지라도, 남에게 불신 당하는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남을 속인다든지 정당하지 못한 일을 한다든지 부당한 상거래를 한다든지 그런 일들은 결코 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에 기독교가 속히 전파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청교도의 높은 도덕성과 한국민족의 특징이 서로 상통했기 때문입니다. 신 개념이 서로 통했고, 권선징악의 개념이 통한 점,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화목하며 부부간에 화락하고 이웃간에 진실하다는 점이 서로 통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민족의 삼강오륜으로 잘 다듬어진 도덕성이 청교도의 도덕성과 서로 잘 통했기 때문에 한국에 기독교가 속히 전파될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훌륭해도 진실,정직,순결,청결,겸손,양심 등이 통하지 않으면 통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6. 시민의 자유와 평등주의 사상 청교도들은 여러 계층, 여러 계파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그들은 1620년 11월 11일 체결한 '메이플라우어 협약'에 의해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 앞에서 만민평등의 원리를 선포하고 타인의 인격을 존중했습니다. 그 '메이플라우어 협약'의 원리가 미국의 독립선언과 헌법정신의 기초가 되었다고 합니다. 링컨이 말한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이라는 민주주의의 3대 원리는 본래 청교도들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역사가들에 의하면 칼빈주의를 믿는 나라 치고 한 나라도 공산화된 나라가 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공산주의는 천주교를 믿는 나라나 희랍정교회를 신봉하는 나라에서 일어났다고 합니다. 지금도 천주교인이 많은 프랑스나 이탈리아에는 많은 공산당원이 있습니다. 그러나 청교도와 칼빈주의에서는 철저하게 만민평등주의를 행하고 있기 때문에 반동이나 혁명이 필요 없습니다.
7. 일관성 있는 신앙교육 미국은 평등의 나라, 기회의 나라, 교육의 나라입니다. 청교도들은 1642년에 최초로 메사츄세츠 주에서 의무교육령을 통과시켰고 정부에서 관비로 전 인구를 교육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한때는 성경 교육이 국민의 모든 교육의 기초를 이루었습니다. 청교도들이 세운 초기의 모든 고등교육기관은 목회자를 양성한 대학이었습니다. 하버드 대학교(1936년 설립)는 목회자를 양성했습니다. 그 외에 예일 대학교, 프린스톤 대학교, 컬럼비아 대학교, 브라운 대학교 등도 기독교 대학이었고, 그 대학의 총장과 학장은 모두 성직자였습니다. 한국의 연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숭실대학교, 한남대학교, 계명대학교도 모두 기독교정신의 대학입니다. 위에서 살펴본 바대로 다각적인 면에서 성경에 기초를 두고 철저하게 개혁주의적 정신으로 지고한 목표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국민의 2/3가 칼빈주의자였습니다. 그러나 18세기 말엽부터 인본주의적 계몽주의 사상이 미 대륙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청교도의 주장들이 하나씩 하나씩 무너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도 아직 전부는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제기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 모두 이 땅에 하나님의 주권이 다시 서도록 기도합시다. 우리 한국민이 이 땅에 제2의 청교도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너희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 아멘.
1)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주권주의
2) 성경의 절대권위
3) 설교는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
4) 교회의 순결(생활의 순결성)
5) 엄격한 도덕성
6) 시민의 자유와 평등주의 사상
7) 일관성 있는 신앙교육
이 모든 정신을 총집합해서 어떤 사람은 ‘퓨리터니즘’이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믿음의 순결을 유지하며 교회를 하나의 영적 공동체로 승화시켜 국가와 사회를 그 위에 건설한다는 이념”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청교도의 이러한 정신과 이념을 바탕으로 하여 건설된 나라가 바로 미국입니다.
1. 하나님의 절대주권주의 하나님의 절대주권주의란 역사의 모든 주권이 오로지 하나님께만 있으므로 인간이 할 수 있는 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요리문답 제1문에 명시된 대로 사람의 제일된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있다면 우리는 최소한 두 가지 사실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첫째, 내가 믿는 이 교리가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하지 않아야 할 것이요,
둘째 우리 믿는 자가 모든 사람의 눈 앞에서 눈에 띠도록 성스러운 생활을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밀러는 청교도들에 대해 아주 당당하게 말하기를 “청교도들은 결코 수척한 몸매에 검은 모자를 쓰고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인정을 받도록 당당하고 성스럽게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청교도의 생활신조인 것입니다. 직장생활에서는 근면하고 청렴하고 정의롭고 진실하며 인정 있게 살아야 합니다. 가정생활에서도 아내는 남편에게 가장 좋은 아내가 되어야 하고, 남편도 아내에게 가장 좋은 남편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부모는 자녀에게 제일 좋은 부모가 되어야 하며 자녀도 부모에게 제일 좋은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청교도들은 일등 시민, 일등 직장인, 일등 아내, 일등 남편, 일등 부모, 일등 자녀, 일들 학생이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청교도들이 부부싸움을 했다거나 청교도들이 가정파탄을 했다거나, 청교도들이 사회를 망치게 했다거나, 남의 돈을 떼어먹고 도망쳤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저들은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이 세상에서 모욕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모두가 정직했고 근면했으며 청렴하고 신용이 있었습니다.
2. 성경의 절대권위 청교도들의 마음의 중심에는 항상 꺼지지 않는 마음의 등불이 있었습니다. 청교도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도의 생활을 지배하고 성도의 생활을 훈련시키고 성도의 생활을 수정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청교도들은 성경 말씀을 믿을 뿐만 아니라 성경대로 살았고 성경대로 믿었고 성경대로 전파했습니다. 클래머 감독은 “성경책은 가장 값비싼 진주요, 지구상에 남아 있는 가장 거룩한 우물이요, 틀림없이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격찬했습니다.
3. 설교는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 청교도들은 설교는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이라고 생각하여 설교의 중요성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리하여 예배의 중심에 설교가 있었고, 헌금,광고,찬양 등의 순서도 제외되었습니다. 설교는 보통 1시간 정도로 길었으나 회중들은 그 설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았습니다. 그들은 결코 설교자의 지식이나 경험이나 설교자가 가지고 있는 은사 같은 것에 대한 기대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설교자들은 모두 높은 학문적 수준을 가지고 있었지만 인간적 은사를 늘 스스로 억제하였습니다. 크리소스톰, 조나단 에드워즈, 챨스 스펄젼, 존 칼빈, 존 웨슬리 등 유명한 설교자들은 설교하는 중에 자신들의 은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방해할까봐 늘 조심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는 디모데후서 4:4의 말씀처럼,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고 있습니다. 설교란 설교자의 지식,경험,은사,제스처, 예화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고 그 속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고넬료는 욥바 시몬의 집에 있는 베드로를 자기 집에 청하여, 베드로에게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것을 듣고자 하여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행 10:25). 청교도들의 설교 듣는 태도는 매우 엄숙했습니다. 심지어 칼빈이 제네바에서 교회를 지도할 때는 예배 때 웃었다고 처벌하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설교 중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는다는 숭고한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4. 교회의 순결(생활의 순결성) 청교도의 생활의 순결성은 가장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청교도 생활의 순결성은 청교도라는 배(메이플라우어 호)의 열쇠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순결함을 개인과 가정과 교회와 학교 그리고 정부를 세우는 기본적 이상으로 삼았습니다. 이와 같은 청교도들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고 세워진 교회가 바로 한국교회입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선교초기 때부터 금연, 금주, 축첩, 도박, 고리대금, 미신철폐 등을 강조했고 교파마다 절제운동을 전개했습니다. 교회의 출석을 독려했고 주일을 범할 때는 가혹하게 다스렸으며, 주일에는 오락,산보,여행 심지어는 설교준비까지도 금하였습니다.
5. 엄격한 도덕성 청교도들은 너무나 양심적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놀림을 당하는 일은 있을지라도, 남에게 불신 당하는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남을 속인다든지 정당하지 못한 일을 한다든지 부당한 상거래를 한다든지 그런 일들은 결코 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에 기독교가 속히 전파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청교도의 높은 도덕성과 한국민족의 특징이 서로 상통했기 때문입니다. 신 개념이 서로 통했고, 권선징악의 개념이 통한 점,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화목하며 부부간에 화락하고 이웃간에 진실하다는 점이 서로 통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민족의 삼강오륜으로 잘 다듬어진 도덕성이 청교도의 도덕성과 서로 잘 통했기 때문에 한국에 기독교가 속히 전파될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훌륭해도 진실,정직,순결,청결,겸손,양심 등이 통하지 않으면 통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6. 시민의 자유와 평등주의 사상 청교도들은 여러 계층, 여러 계파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그들은 1620년 11월 11일 체결한 '메이플라우어 협약'에 의해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 앞에서 만민평등의 원리를 선포하고 타인의 인격을 존중했습니다. 그 '메이플라우어 협약'의 원리가 미국의 독립선언과 헌법정신의 기초가 되었다고 합니다. 링컨이 말한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이라는 민주주의의 3대 원리는 본래 청교도들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역사가들에 의하면 칼빈주의를 믿는 나라 치고 한 나라도 공산화된 나라가 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공산주의는 천주교를 믿는 나라나 희랍정교회를 신봉하는 나라에서 일어났다고 합니다. 지금도 천주교인이 많은 프랑스나 이탈리아에는 많은 공산당원이 있습니다. 그러나 청교도와 칼빈주의에서는 철저하게 만민평등주의를 행하고 있기 때문에 반동이나 혁명이 필요 없습니다.
7. 일관성 있는 신앙교육 미국은 평등의 나라, 기회의 나라, 교육의 나라입니다. 청교도들은 1642년에 최초로 메사츄세츠 주에서 의무교육령을 통과시켰고 정부에서 관비로 전 인구를 교육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한때는 성경 교육이 국민의 모든 교육의 기초를 이루었습니다. 청교도들이 세운 초기의 모든 고등교육기관은 목회자를 양성한 대학이었습니다. 하버드 대학교(1936년 설립)는 목회자를 양성했습니다. 그 외에 예일 대학교, 프린스톤 대학교, 컬럼비아 대학교, 브라운 대학교 등도 기독교 대학이었고, 그 대학의 총장과 학장은 모두 성직자였습니다. 한국의 연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숭실대학교, 한남대학교, 계명대학교도 모두 기독교정신의 대학입니다. 위에서 살펴본 바대로 다각적인 면에서 성경에 기초를 두고 철저하게 개혁주의적 정신으로 지고한 목표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국민의 2/3가 칼빈주의자였습니다. 그러나 18세기 말엽부터 인본주의적 계몽주의 사상이 미 대륙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청교도의 주장들이 하나씩 하나씩 무너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도 아직 전부는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제기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 모두 이 땅에 하나님의 주권이 다시 서도록 기도합시다. 우리 한국민이 이 땅에 제2의 청교도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너희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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