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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생명으로 살자 (롬6:1-11)

본문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 곧 다시 살아나는 종교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를 부활의 종교라고 할때 반드시 세가지 내용을 함께 믿어야 합니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지 삼일만에 무덤속에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사도들의 전도(케루쿠마)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님강림후 베드로의 최초의 설교는 주님의 부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너희가 법없는자들의 손을 빌어 못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어 있을 수 없었음이라 (행 2:23-24)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 (행 3:15) 유대교에서 회개하고 개심한 바울의 모든 설교는 주님의 부활에 관한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저를 살리신지라 (행 13:30)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자 가운데서 다 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 라 (행 17:3) 바울은 고전 15장에 기독교의 복음내용 비중을 주님의 부활에 두었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건으로서 기독교의 모든 교리의 기초가 됩니다.
두번째는 세상종말에 주님이 재림하실때 모든 인류가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주의 재림때 성도와 불신자가 다함께 육체적으로 부활하나 목적과 지위는 각기 다릅니다.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하는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하는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아 오리라 (요 5:28-29) 주님의 부활의 공효로 인하여 모든 성도는 생명과 영광의 부활이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성도들을 위한 부활의 첫열매가 되셨습니다. (고전 15:14-18, 20-23) 이때 성도의 부활체는 영체가 되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광체가 되되 주님의 부활체 같이 됩니다. 세번째는 모든 성도가 영적으로 부활한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의 육체적 부활은 과거의 사건이요 주의 재림시 모든 성도들의 육체적 부활 이 미래의 사건이 된다면 성도의 영적 부활은 오늘 바로 현재의 사건이 됩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오늘 현재의 부활 곧 영적인 부활을 모르고 있든지 등한 히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활에 대하여 생각할때 반드시 과거 주님의 부활사건과 미래의 성도들 의 부활 사건과 현재 우리들에게 있는 영적부활을 균형있게 함께 믿어야 합니다. 이 시간 우리는 현재의 부활 곧 영적인 부활에 대해 생각하십시다. 이것이 바로 이 시간의 제목인 새생명으로 살자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는 새생명이 되었습니다. 근본적으로 모든 인류는 아담의 원죄 때문에 허물과 죄로 죽었습니다. (엡 2:1) 영적으로 죽은자 가운데서 하나님의 선택과 부르심을 받은 모든 성도는 그리스도의 부활로 새생명이 되었습니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되고 또 죽은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 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부활로 죽었던 너희를 그와 함께 살리시고 (골 2:12-13) 그러면 우리 성도들이 새생명이 되었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 생명속에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 속에 기억으로 계시는 것이 아니라 존재로 계신다는 것 입니다. 그러면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 생명 속에 어떻게 존재적으로 계시는가 그것은 보혜사 성령님으로 와 계십니다. 주님의 성육신과 육체적 부활은 주님의 본체에 놀라운 변화를 주었습니다. 주님 의 성육신은 성자 하나님의 위격에 인성이 부착되게 되었으며 주님의 육체적 부활 은 성자 하나님의 위격에 영원토록 영광스러운 인성이 함께 하시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인성을 취하신 주님이 보혜사 성령님으로 성도의 생명속에 내재해 계십니다. 지금 우리 생명속에는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 생명과 유기적으 로 연합해 계십니다. 이것을 신비적 연합이라고 말합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 생명 따로 그리스도 따로가 아니라 우리 생명과 주님이 인간의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적 연합을 이루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안에 계신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뇨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고후 13:5)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롬 8:9)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으로. (딤후 1:14) 우리에게 주신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 라 (요일 3:24) 그의 성령님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우리가 그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요일 4:13) 우리는 십자가에 죽어 버린 그리스도를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부활승천 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시는 주님만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 부활하여 우리 각 성도의 생명속에 살아계신 주님을 믿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초월해 계시면서 또 우리 속에 내재해 계십니다.
이제는 내가 산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것이라 (갈 2:20)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것도 유익함이라 (빌 2:21)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안에 계신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고후 13:5)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와서 영원히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요 14:18) 모든 사람은 죽어서 기억속에서 남게 됩니다. 타종교의 교주들도 모두 죽어서 일반 사람들과 다를바 없이 기억속에서만 남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는 피조물이요 죄인인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인성이 죽 으셨다가 살아나셔서 지금 우리들의 생명속에 영원히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어버린 예수를 우리들의 기억속에 믿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 셔서 우리 각 사람의 생명속에서 역사하시는 생명의 주를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에게 중대한 문제는 지금 우리들이 새생명으로 살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우리들의 생활속에서 새생명의 생활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신 다음 주님의 제자들의 생활에는 놀라운 변화가 생겼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죽어 무덤속에 계시는 동안 제자들은 모든 일들이 끝장이 난줄 을 알고 두려워 하며 실망낙담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후에 저들의 생활에 놀 라운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 변화가 최초로 예루살렘 교회요 제 1세기 사도시대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그 무엇보다도 사도바울의 변화는 주님이 부활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는 결의를 했던 당시 산헤드린 공회원이었기에 예수님을 죽인 법적인 책임자였으며 그후에 스테반을 죽이는 일에 총책임자였고, (행 7:58) 예루살렘 교회를 잔멸한 책임자였습니다. (행 8:3) 뿐만 아니라 외국에 있는 교회까지 핍박했던 자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고 살기가 등등하여 (행 9:1)라고 했습니다. (행 9:13, 22:4, 19, 26:10-11) 바울 자신도 교회를 잔해 했다고 했습니다. (고전 15:9, 갈 1:13, 딤전 1:13) 바울은 교회에 대하여 훼방자 핍박자 포행자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바울이 자기가 죽인 예수를 주님으로 섬기고 자신을 주님의 종이 라고 부르면서 그가 그때까지 누렸던 기득권층의 모든 특권을 포기하고 30년간 고난의 사도사역을 하다가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사도바울의 심령속에 함께 하실때 그는 부활의 권능으로 새생명의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새생명이 되었습니다. (롬 6:4) 우리는 분명히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엡 2:15, 4:23-24, 골 3:10) 우리는 분명히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이 되었으며 새로 지으심을 받은자(갈 6:15)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영의 새로운 자가 되었습니다. (롬 7:6)
그러므로 우리가 행해야 할 일은 새생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새생명으로 사는 곳에는 분명히 놀라운 변화가 생깁니다. 그 변화가 개인적인 변화요 사회적인 변화입니다. 영적으로 죽어 버린 송장과 같은 곳에서는 생명의 역 사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생명이 있는 곳에는 도덕적 변화가 일어납니다. 지금 우리들이 힘써야 할 일은 새생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새생명으로 생활을 바르게 사는 것입니다.
새생명의 생활은 가장 도덕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본래 일 반종교의 목적은 물질적 번영과 현세적인 축복을 추구하는 것으로 흉과 화를 피하 고 길과 복을 추구하는 기복주의 신앙입니다. 이런 기복주의 신앙은 다분히 미신적 이며 이기주의입니다.
그런데 새생명을 살아야할 그리스도인들까지 일반종교가 추구하는 것을 추구하 기때문에 도덕적이며 영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한국은 5,000년 역사중에서 최초로 개혁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30년 군사정부가 개혁을 말하였으나 그것은 인기없고 정통성 없는 그들이 국민 들의 마음을 사기 위한 말장난에 불과 했습니다. 그 증거로는 개혁된 것은 하나도 없고, 부정부패로만 가득했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문민정부가 개혁을 시도했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것은 개혁운동의 기초는 반드시 기독교 신앙이어야 한다는 것 입니다. 기독교의 놀라운 윤리이상만이 정치와 사회개혁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이 큽니다. 우리 기독교와 성도들이 정부가 지향하는 개혁운동의 밑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일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며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부활의 새생명으 로 사는 것입니다. 4만교회와
1,200만 성도가 부활의 새생명으로 산다면 우리들의 개혁운동은 성공할 것입니다. 가장 작은것 부터 바르게 사는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주님의 명령에 절대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누구보다도 부활의 새생명으로 살았던 사람은 사도바울입니다. 새생명의 삶은그리스도의 삶입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삶을 살게 될때 놀라운 변화가 생깁니다.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삶을 살게 될때 죄악을 이기는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삶을 살때 사탄적인 문화와 구조악을 이길수 있으며 땅에 것에 집착하지 않고 위에 것을 사모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의 삶에 힘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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