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무슨 열매를 맺을 겁니까 ? (롬6:15-23)
본문
I. "어둠속에서 살아온 젊은날을 속죄하고 이웃에게 사랑과 복음을 전할 때 면 가슴이 벅찹니다." 수원시내 최대 조직폭력단체인 '남문파' 보스였던 허윤석(許允碩.46.옛 이름 허벽)씨가 전도사로 변신,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지난 80년 삼 청교육대에 끌려가기도 했던 허씨가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 신앙생활을 시작한 것은 94년 5월. 지난 89년 당시 수원시내를 떠들석하게 했던 '도자기 강매 사건'에 연류 돼 3년간 도피생활을 하다 결국 구속돼 2년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출소하 면서 처음으로 교회를 찾았다.
이름 앞에 언제나 붙어 다니는 전과 10범이라는 꼬리를 떼고 허씨 스스 로가 교회를 찾게 된데는 아들의 구원을 위해 3년간 단 하루도 빠짐없이 철 야기도를 계속해 주신 어머니의 간절한 사랑이 계기가 됐다. "저를 위해 기도를 마치고 돌아오시다 교통사고를 당해 산소호흡기로 연 명하시면서도 막 출소한 저의 두손을 꼭잡으며 '함께 주님에게 가자'는 마 지막 말씀에통한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후 허씨는 '과거의 허벽이는 죽었다'고 다짐했고 다시 태어나는 의미 로 이름도 바꾸고 수감중 어머니가 넣어준 성경책과 더불어 참 인생의 길을 걷고 있다. 신앙생활 4년째, 지난 1월 수원제일교회 집사가 된 허씨는 한때 뒷골목 에서 자신에게 칼을 들이댔던 폭력배들에게도 사랑을 전하며 새 삶으로 인 도하고 있다. 후배 들이 악의 수렁에서 벗어나기를 기도해온 허씨의 전도는 결실을 맺어 지난해에는 교회로부터 전도 1등상을 받기도 했다. 부인 과 2남 2녀의 가장인 허씨는 현재 조그만 건축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사람은 이렇게 여러가지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허윤석씨가 조직 폭력배가 되어 전과자의 더럽고 추한 열매를 맺을 수도 있고, 또한 죽어가는 자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전도자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도 있듯 이, 우리 인간은 모두가 다 좋은 열매도 맺을 수도 있고, 나쁜 열매도 맺을 수가 있습니다. 사람은 결코 운명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나쁜 사람으로 살다가 나쁜 열매를 맺고 죽고, 어떤 사람은 좋은 사람으로 살다가 좋은 열 매를 맺고 죽으라고 태어날 때 부터 운명지어진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 좋은 열매를 맺을 수도 있고 나쁜 열매를 맺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정말로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그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 를 맺을 수 없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7:16-20) 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우리 인간을 평가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열매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봄이 되어 농부들이 들에 나가 씨를 뿌립니다. 그들은 다 좋은 열매 를 맺기를 바로고 있습니다. 우리가 심고 뿌린 나무와 곡식들이 좋은 열 매를 맺기를 원한다면 우리도 당연히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 들의 모든 나무와 곡식들이 열매를 맺는다면 우리 인생도언젠가는 열매 를 맺지 않겠습니까 그때 우리는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가장 크게 잊어버리고 사는 것은 인생의 열매입니다. 우리가 죽을 때 다 인생의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그 사실을 잊어버 리고 삽니다. 언젠가는 우리도 열매를 맺게된다는 이 무서운 사실을 잊어 버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니 나쁜 열매를 맺는 것이 두려워서 의식 적으로 생각을 안하고 살려고 합니다. 대신 오늘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쾌락, 명예, 영광, 편안함만 구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도 다 귀하지만, 그러나 이러한 것이 결국 어떠한 열 매를 맺게 되는가를 바로 알고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살다가는 내가 어 떠한 열매를 맺게 되는지를 바로 알고 살아가야 합니다. 비록 그것이 지금 당장은 나에게 좋다고 하더라도 후에 나에게 나쁜 열 매를 맺는다면 그것을 과감하게 버려야하지 않겠습니까 나중에 나쁜 열매, 비극적인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그 일을 한다면 어찌 그런 자를 보고 어리석운 자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여기 중앙대학교 학생이 한참 열심히 공부해야 할때, 공부는 하지 않고, 놀러 다니기나하고, 연애나한다면 그런 학생보고 훌륭한 학생이라고 하는 자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지금 당장 아무런 생각도 없이 담배를 피우는 여학생들이 많이 있는데, 그로 인하여 후에 기형아를 낳아서 그의 남은 생 애을 지울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한다면 그런 행동을 하는 여학생들 을 보고 어찌 어리석운 자들이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마찮가지로 우리의 인생이 나중에 열매 맺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지금 당장 편한 세상의 유행을 따라 살아간다면 어찌 그런 자를 보고 훌륭한 자 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내가 살아가는 삶이 장차 어떤 열매를 맺게 되는지를 모르고 산다 면 어찌 그런 인간을 보고 만물의 영장이요, 지혜가 있는 자라고 할 수 있 겠습니까 그래서 오늘은 인생의 열매에 대하여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살펴 보며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II. 본 론
1. 우리는 본래 죄의 종이였다. 사람은 누구의 종이 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종은 그 주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주인에게 순종하지 않는 종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의 종이 되면 하기 싫어도 죄가 시키는 일을 해야 합니다. 쾌락의 종이 되면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쾌락이 시키는 일을 해야 합니다. 한 번 쾌락의 종이 되면 이래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 그 쾌락이 시키는 대로 해서 마약을 하고, 뽄드를 하고, 술을 마시고 합니다.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이 그렇게 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의 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 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죄악의 노예가 된 자들의 비극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우리의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사느냐 하는 것 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주인으로 모시는 주인에 따라 맺는 열매 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죄의 종은 사망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러나 순종의 종은 의에 이르고 영생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렇게 누구의 종이 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보니까 우리는 본래 죄의 종이였습니다. 태 어날 때 부터 죄의 종이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실때는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게 창조한 하나님의 피조물이였습니다.
그런데 인류 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는 금단의 열매를 따먹어서 죄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담의 후예인 우리는 죄의 종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죄의 종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는 죄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죄를 짓게 됩니다. 하기 싫어도 죄를 짓게 됩니다.
잘못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죄를 짓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저절로 죄를 짓게 되어 있습니다. 갓 태어난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라도 가만히 내버려 두면 죄를 짓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죄의 종으로 태어났고, 죄는 그에게 자꾸만 죄를 범 하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어린 아이들이 같이 놀다가 자기 것이라고 달라고 화를 내고, 욕을 하고 싸우는 것을 보면, 그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 속에서 죄가 그를 지배하는 것 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죄의 종이 되면 우리는 우리의 몸까지도 죄의 병기로 드려야 합니다. 죄는 우리의 몸까지도 죄악을 위하여 사용합니다. 우리의 이 몸을 부정과 불법을 위하여 사용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이 몸을 가지고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범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 땅에 죄인들을 보면 하나님 주신 이 귀한 몸, 부모님이 물려 주신 이 사랑스런 몸을 가지고 죄를 짓고, 불의 병기로, 불정의 병기로 사 용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이 죄의 종이 되어서 죄를 범하는 것이 처음에는 좋아 보일런지 몰라도, 나중에는 생각하기 조차 부끄럽게됩니다. 큰 후회의 아픔을 가져다 줍니다.
그러므로 죄의 종이 된 자들은 우리 부모님으로 부터 물려 받은 이 귀한 몸을 가지고는 죄의 노예가 되어서 죄를 범하며, 생각조차하기 부끄러운, 그래서 마지막에는 죽음에 이르게 되는 부끄러운 삶을 살 수 밖에 없읍니다.
미국 남북전쟁 초창기에 22살 먹은 젊은 여인이 한 겨울 아침에 신시내 티에 있는 커머셜 병원(Commercial Hospital)에서 죽었다. 그녀는 한때는 매우 아름다운 여인이였다.
그런데 지나치게 아름다움을 추구하다가 창녀 가 되었다. 그녀는 공부를 많이 했고, 예의도 바른 여자였다. 그러나 창녀가 되어 서 그녀의 젊은 날을 부끄럽게 보냈다. 그리고 사회에서 버림받은 여인으 로 친구도 없이 부끄럽게 죽었다.
그런데 그녀가 죽기 전에 한 편의 시를 남겼다. 그 시의 제목은 "아 름다운 눈"(Beautiful Snow)이였다. 그 시가 내셔널 유니온(National Union) 신문사의 편집자에게 넘겨졌고, 그 시는 그녀가 죽은 다음날 내셔널 유니온 신문에 실렸다. 그녀의 시가 신문에 발표되었을때, 아직 그녀의 시신은 장사되지 않고 있었다. 그때 미국의 시인 토마스 부캐넌 리드(Thomas Buchanan Reed)가 이 시에 큰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리드는 그녀의 시신을 담은 관이 마 지막 가는 그 길을 따라 갔다. 그녀가 남기 아름다운 시의 내용 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오 눈 ! 아름다운 눈. 하늘과 땅에 가둔한 눈. 지붕위에서, 거리위에서 만나는 사람의 머리 위에서 춤을 추며 교태롭게 미끄러지듯 날아가는 아름다운 눈 ! 그것은 나쁜 짓을 할 수가 없다. 날아서 아름다운 여인들의 뽈에 키스를 하고 흥겹게 뛰어 노는 자들의입에 달라 붙고, 아름다운 눈, 하늘위에서 내려온 눈 천사와 같이 순결하고, 사랑과 같이 부드러운 눈 ! 나도 한 때 저 눈과 같이 순결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눈 덩이와 같이 타락을 했다. 거리에서 짓밟히는 쓰레기가 되었다. 비웃음을 당하고, 침뱉음을 당하고, 때림을 당하고, 저주를 받고, 무서움 속에 죽어가야 하는 자가 되었다. 나의 영혼을 사는 자들에게 마구 팔았으며 한 입의 빵을 위하여 나의 순결한 영혼을 팔았도다.
이제 삶을 저주하며, 죽음을 두려워하며, 오 자비의 하나님 나는 이렇게 깊이 타락했습니다. 그러나 나도 한때는 저 아름다운 눈과 같았습니다. 왜 저 눈과 같이 희고 아름다운 여인이 이렇게 부끄럽고, 불쌍한 삶을 살다가 죽어야만 해을까요 그 부모님으로 부터 그렇게 사랑을 받고, 많은 학생들로 부터 선망의 대상이였던 그 여인이 왜 그렇게 부끄럽기 짝이 없는 삶을 살다가 죽었을까요 그녀의 그 아름다운 몸을 죄의 종으로 삼 았기 때문입니다. 죄의 종이 된 우리들의 삶의 열매가 얼마나 부끄럽고, 불행한가를 명심 하시고, 이 죄의 종에서 해방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이 죄의 종이된 자가 마지막에 맺게 되는 열매는 사망입니다. 오늘 말씀은 죄의 종은 사망에 이르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의 종 인 된자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자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죄는 날마다 우리의 목을 조금씩 졸라 죽입니다. 크렛타이라는 목사님이 개를 한 마리 기르고 있었다. 하루는 개의 머 리가 붓기 시작했는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그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얼 마 후엔 개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숨이 차서 그냥 헐레벌떡 하고 있었다. 애들은 개를 무척 사랑했기 때문에 굉장히 슬퍼했다. 개가 죽기 직전 개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발견했다. 아들 하나가 고무줄을 가지고 놀았는데 그만 고무줄을 개의 목에 둘렀다. 고물 줄은 계속해서 목을 조르기 시작했고, 죽음 직전까지 가게 되었다. 죄도 이와 같다. 처음에는 잘 모르나 후에는 죽음을 초래한다. 성경은 말하기를 "죄의 삯은 죽음"이라고 했다. 죄의 종이 된자는 결국 죽 을 수 밖에 없습니다. 아직도 이런 무섭고 부끄러운 죄의 종이 죈 자들이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맺게 될 열매가 부끄럽지 않습니까 여러분 들이 맺게될 죽음의 열매가 두렵지 않습니까
2.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옛 주인인 죄를 몰라내라. 우리가 참으로 행복하고 기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 속에서 우리를 주관하는 우리의 주인인 죄악을 몰아내야합니다. 이것을 몰아내지 않으면 우리는 불행할 수 밖에 없습니다. 비참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추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 다음 장에서 "나의 행하는 것을 내 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함이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라.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고 탄식을 했습니다. 죄악이 우리 속에서 우리를 주관하기 때문에 우리는 죄를 범해서는 안된 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만 그 죄를 범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죄가 우리에게 죄를 범하라고 자꾸만 명령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잘 못된 것을 알면서도 죄를 범해야 합니다. 우리 속에서 우리로 죄를 범하게 하는 우리의 주인인 이 죄를 몰아내야 합니다. 그래야 평안을 얻고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 죄악을 몰아낼 능력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온 인류가 우리 인류를 타락으로 이끌고, 불행하게 만드는 이 죄악의 주인을 몰아내려고 온갓 노력을 다 해 보았지만 다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경찰을 만들어 죄를 몰아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실패했습니다. 지금 이 땅에 경찰이 없어서 죄를 짓습니까 경찰이 없어서 사람들이 부끄 러운 죄악의 수렁에 빠져 들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경찰로 사람들 속에서 주관하는 죄를 몰아 낼 수가 없습니다. 법을 만들어 이 죄악을 몰라 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법을 가지고도 죄악을 몰라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죄악을 몰라내라고 율법 을 주셨지만, 그 율법이 인간의 죄를 몰아내지 못했습니다. 공부를 통해서 죄를 몰아 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공부도 우리의 죄 를 몰아 내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하고, 책을 많이 읽어도 우리 속에서 우리를 주관하는 이 죄악을 몰아 낼 수 없습니다. 이 죄를 몰아내기 위해서는 우리가 죽어야만 합니다.
우리가 종의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죽어야만 합니다. 죽으면 자동적으로 그 종의 상태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죽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로마 황제 발렌시니안(Valentinian)이 죽으면서 다음과 같은 유 명한 말을 남겼다. "내가 평생에 정복한 것 중에 나에게 참 평안을 가져다 준 것은 오직 이 것 뿐이다. 나는 나의 가장 나쁜 적, 즉 내 자신의 죄악된 마음을 지금 정복했다." 로마 황제 발렌시니안은 살아서는 몰아 낼 수 없었던 죄악의 권세를 죽 음으로 몰아 냈습니다. 그러나 죽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죽어서 자유인이 된 다면 그 죽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차라리 살아서 종으로 사는 것이 더 났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우리의 죄의 주인을 몰아 내고 새로운 주인을 모실 수 있는 방법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누군가가 우리의 주인인 죄에게 댓 가를 지불하고 우리 자신을 그 죄에게서 사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대속입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속해 주 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죄를 범함으로 지은 모든 죄의 빚을 자기 자 신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함으로 우리의 모든 죄의 빚을 다 갚아 주셨읍니다. 로마서8:1-4 말씀을 보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 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님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랑 을 받아 들인 자들에게는 더이상 죄악이 그들을 주관할 수 없습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 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의 죄를 정하사 육신을 쫓지 않고 그 영을 쫓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 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의 종이 된 빚을 다 갚아 주셨읍니다. 그래서 우리로 죄의 주인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미국 남북 전쟁당시 뉴욕에 살고 있는 한 농부에게 연합군에 입대하라는 징집 영장이 날라들었다.
그런데 그의 아내가 죽어서 그는 어린 아이들을 부양해야만 했다. 그의 자녀들에게는 그외에는 부양해 줄 자가 없었다. 그 딱한 소식을 듣고는 동네 결혼하지 않은 청년이 그 집에 와서는 자기 가 대신 군에 입대하겠다고 했다. 어린 아이들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그는 그 제의를 받아 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 마음씨 좋은 젊은이는 군에 입대를 했고, 그리고 첫번째 전투에서 총 에 맞아 전사를 했다. 그 소식을 들은 농부는 전쟁터에 달려가서 그 젊은이의 시신을 집으로 가지고 와서는 교회 공원묘지에 묻어 주었다. 그리고는 비석에다 이렇게 새겨넣었다. "그는 나를 위해 죽었다."(He died for me) 이렇게 예수님 께서 우리가 죽을 죽음을 대신 죽으셔서 우리의 죄값을 지불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죄의 주인으로 부터 구속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바로 이 사랑을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을 그 예수님의 종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아직도 죄의 노예가 되어 부끄럽고, 두려운 열매를 맺는 분들이 있읍니 까 우리를 이 부끄럽고 두려운 죄악의 종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피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아 드리시기바랍니다.
3.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자. 이렇게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고는 우리에게 오셔서 이제 예수님을 따라 가서 예수님과 같이 살자고 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죄의 주 인이 좋다고 그 죄의 종이 되어 사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자유의 길을 가다가 조금 힘들면, 옛날에 애굽에서 종생활하던 것이 더 좋았다고 하면서 다시 애굽으로 돌아 가서 종생활을 하려고 했던 것과 같이, 예수님이 우리를 그 더럽고 부끄럽 고 무서운 죄악의 종에서 우리를 자유하게 해 주셨는데도 여전히 죄의 종이 되어 죄 가운데 살려고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죄의 종이 삶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 가를 잘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죄의 종에 머물러 있지 말고 이제는 죄굴레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의의 종이 되어 주님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의의 종은 의에 이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더럽고 부끄럼움에 이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의로움에 이르게 됩니다. 의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거룩함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리고 이 마지막 열매는 영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연히 의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몸을 가지고 의의 병기로 드릴 수가 있습니다. 이 연약 하고 더러운 몸을 가지고도 의로운 열매를 맺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정말로 받아 들이고, 믿는 다면 우리는 이제 우리의 몸을 의의 병기로 드리고, 의의 종이 되어서 의를 행하며 살아 야 합니다. 오래 전에 한 사람이 노예시장을 방문했다. 한참동안 보고 있던 그는 한 노예에게 다른 사람이 더 이상 경쟁할 수 없을 정도까지 경매값을 올려 불렀다. 값을 치른 후에 그는 그 노예에게 매매증서를 주었다. 그리고 그는 "나는 너를 해방시키기 위하여 너를 샀다"고 말했다. 그 노예는 너무나 감격하여서 그를 떠나기를 거부하고 일생동안 그의 충성스런 하인이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막대한 값을 치루셨다. 우리는 감사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며 살아야 한다.
어떤 사람이 도시구제선교회 회장으로 40년간 봉사를 계속했다. 그래서 한번은 어떤 사름이 그 회장에게 "왜 그렇게 더럽고, 지저분하고, 불경 스럽고, 술주정뱅인 버림받은 자들을 위하여 일을 하는데 그의 일생을 바치 느냐 " 물었다. 그러자 그 회장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여 주신 그 사랑의 작은 부분을 다른 사람들에게 돌려 주고 있는 것입니다"하 고 대답을 했다. 그가 젊었을때, 그는 술주정뱅이였다. 그는 어느날 칠레 고추를 넣 고, 기계로 저민 고기와 강남콩을 넣고 끓인 멕시코 음식을 한 그릇 얻어 먹기 위하여 그 선교센타를 찾아 갔다. 거기에서 그는 그리스도는 죄인들 을 구원할 수 있다는 설교를 들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그의 구세주 로 받아 들이기 위하여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비록 그의 머리는 술로 혼란에 빠져 있었지만, 그는 그의 어께서 무거 운 짐이 들려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날 그는 변화된 사람이 되었다. 잠시 후에 그는 그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찾는 중에 그는 하나님 이 그를 아직까지 빈민굴에서 뒹굴고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라고 자기를 빈 민굴로 보내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구속자의 사랑의 힘이 그로 하 여금40년간 그의 힘든 선교의 일을 계속하게 했습니다. 우리도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죄의 종에서 해방되어 의 의 종이 되었다면 우리의 몸을 온전히 주님을 위한 의의 병기로 드려야합니다. 주님만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대속의 은혜를 받아들이고 이제 오직 주님만을 위하여 사는 성도 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름 앞에 언제나 붙어 다니는 전과 10범이라는 꼬리를 떼고 허씨 스스 로가 교회를 찾게 된데는 아들의 구원을 위해 3년간 단 하루도 빠짐없이 철 야기도를 계속해 주신 어머니의 간절한 사랑이 계기가 됐다. "저를 위해 기도를 마치고 돌아오시다 교통사고를 당해 산소호흡기로 연 명하시면서도 막 출소한 저의 두손을 꼭잡으며 '함께 주님에게 가자'는 마 지막 말씀에통한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후 허씨는 '과거의 허벽이는 죽었다'고 다짐했고 다시 태어나는 의미 로 이름도 바꾸고 수감중 어머니가 넣어준 성경책과 더불어 참 인생의 길을 걷고 있다. 신앙생활 4년째, 지난 1월 수원제일교회 집사가 된 허씨는 한때 뒷골목 에서 자신에게 칼을 들이댔던 폭력배들에게도 사랑을 전하며 새 삶으로 인 도하고 있다. 후배 들이 악의 수렁에서 벗어나기를 기도해온 허씨의 전도는 결실을 맺어 지난해에는 교회로부터 전도 1등상을 받기도 했다. 부인 과 2남 2녀의 가장인 허씨는 현재 조그만 건축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사람은 이렇게 여러가지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허윤석씨가 조직 폭력배가 되어 전과자의 더럽고 추한 열매를 맺을 수도 있고, 또한 죽어가는 자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전도자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도 있듯 이, 우리 인간은 모두가 다 좋은 열매도 맺을 수도 있고, 나쁜 열매도 맺을 수가 있습니다. 사람은 결코 운명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나쁜 사람으로 살다가 나쁜 열매를 맺고 죽고, 어떤 사람은 좋은 사람으로 살다가 좋은 열 매를 맺고 죽으라고 태어날 때 부터 운명지어진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 좋은 열매를 맺을 수도 있고 나쁜 열매를 맺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정말로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그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 를 맺을 수 없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7:16-20) 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우리 인간을 평가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열매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봄이 되어 농부들이 들에 나가 씨를 뿌립니다. 그들은 다 좋은 열매 를 맺기를 바로고 있습니다. 우리가 심고 뿌린 나무와 곡식들이 좋은 열 매를 맺기를 원한다면 우리도 당연히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 들의 모든 나무와 곡식들이 열매를 맺는다면 우리 인생도언젠가는 열매 를 맺지 않겠습니까 그때 우리는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가장 크게 잊어버리고 사는 것은 인생의 열매입니다. 우리가 죽을 때 다 인생의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그 사실을 잊어버 리고 삽니다. 언젠가는 우리도 열매를 맺게된다는 이 무서운 사실을 잊어 버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니 나쁜 열매를 맺는 것이 두려워서 의식 적으로 생각을 안하고 살려고 합니다. 대신 오늘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쾌락, 명예, 영광, 편안함만 구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도 다 귀하지만, 그러나 이러한 것이 결국 어떠한 열 매를 맺게 되는가를 바로 알고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살다가는 내가 어 떠한 열매를 맺게 되는지를 바로 알고 살아가야 합니다. 비록 그것이 지금 당장은 나에게 좋다고 하더라도 후에 나에게 나쁜 열 매를 맺는다면 그것을 과감하게 버려야하지 않겠습니까 나중에 나쁜 열매, 비극적인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그 일을 한다면 어찌 그런 자를 보고 어리석운 자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여기 중앙대학교 학생이 한참 열심히 공부해야 할때, 공부는 하지 않고, 놀러 다니기나하고, 연애나한다면 그런 학생보고 훌륭한 학생이라고 하는 자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지금 당장 아무런 생각도 없이 담배를 피우는 여학생들이 많이 있는데, 그로 인하여 후에 기형아를 낳아서 그의 남은 생 애을 지울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한다면 그런 행동을 하는 여학생들 을 보고 어찌 어리석운 자들이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마찮가지로 우리의 인생이 나중에 열매 맺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지금 당장 편한 세상의 유행을 따라 살아간다면 어찌 그런 자를 보고 훌륭한 자 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내가 살아가는 삶이 장차 어떤 열매를 맺게 되는지를 모르고 산다 면 어찌 그런 인간을 보고 만물의 영장이요, 지혜가 있는 자라고 할 수 있 겠습니까 그래서 오늘은 인생의 열매에 대하여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살펴 보며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II. 본 론
1. 우리는 본래 죄의 종이였다. 사람은 누구의 종이 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종은 그 주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주인에게 순종하지 않는 종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의 종이 되면 하기 싫어도 죄가 시키는 일을 해야 합니다. 쾌락의 종이 되면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쾌락이 시키는 일을 해야 합니다. 한 번 쾌락의 종이 되면 이래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 그 쾌락이 시키는 대로 해서 마약을 하고, 뽄드를 하고, 술을 마시고 합니다.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이 그렇게 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의 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 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죄악의 노예가 된 자들의 비극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우리의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사느냐 하는 것 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주인으로 모시는 주인에 따라 맺는 열매 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죄의 종은 사망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러나 순종의 종은 의에 이르고 영생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렇게 누구의 종이 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보니까 우리는 본래 죄의 종이였습니다. 태 어날 때 부터 죄의 종이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실때는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게 창조한 하나님의 피조물이였습니다.
그런데 인류 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는 금단의 열매를 따먹어서 죄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담의 후예인 우리는 죄의 종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죄의 종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는 죄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죄를 짓게 됩니다. 하기 싫어도 죄를 짓게 됩니다.
잘못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죄를 짓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저절로 죄를 짓게 되어 있습니다. 갓 태어난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라도 가만히 내버려 두면 죄를 짓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죄의 종으로 태어났고, 죄는 그에게 자꾸만 죄를 범 하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어린 아이들이 같이 놀다가 자기 것이라고 달라고 화를 내고, 욕을 하고 싸우는 것을 보면, 그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 속에서 죄가 그를 지배하는 것 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죄의 종이 되면 우리는 우리의 몸까지도 죄의 병기로 드려야 합니다. 죄는 우리의 몸까지도 죄악을 위하여 사용합니다. 우리의 이 몸을 부정과 불법을 위하여 사용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이 몸을 가지고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범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 땅에 죄인들을 보면 하나님 주신 이 귀한 몸, 부모님이 물려 주신 이 사랑스런 몸을 가지고 죄를 짓고, 불의 병기로, 불정의 병기로 사 용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이 죄의 종이 되어서 죄를 범하는 것이 처음에는 좋아 보일런지 몰라도, 나중에는 생각하기 조차 부끄럽게됩니다. 큰 후회의 아픔을 가져다 줍니다.
그러므로 죄의 종이 된 자들은 우리 부모님으로 부터 물려 받은 이 귀한 몸을 가지고는 죄의 노예가 되어서 죄를 범하며, 생각조차하기 부끄러운, 그래서 마지막에는 죽음에 이르게 되는 부끄러운 삶을 살 수 밖에 없읍니다.
미국 남북전쟁 초창기에 22살 먹은 젊은 여인이 한 겨울 아침에 신시내 티에 있는 커머셜 병원(Commercial Hospital)에서 죽었다. 그녀는 한때는 매우 아름다운 여인이였다.
그런데 지나치게 아름다움을 추구하다가 창녀 가 되었다. 그녀는 공부를 많이 했고, 예의도 바른 여자였다. 그러나 창녀가 되어 서 그녀의 젊은 날을 부끄럽게 보냈다. 그리고 사회에서 버림받은 여인으 로 친구도 없이 부끄럽게 죽었다.
그런데 그녀가 죽기 전에 한 편의 시를 남겼다. 그 시의 제목은 "아 름다운 눈"(Beautiful Snow)이였다. 그 시가 내셔널 유니온(National Union) 신문사의 편집자에게 넘겨졌고, 그 시는 그녀가 죽은 다음날 내셔널 유니온 신문에 실렸다. 그녀의 시가 신문에 발표되었을때, 아직 그녀의 시신은 장사되지 않고 있었다. 그때 미국의 시인 토마스 부캐넌 리드(Thomas Buchanan Reed)가 이 시에 큰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리드는 그녀의 시신을 담은 관이 마 지막 가는 그 길을 따라 갔다. 그녀가 남기 아름다운 시의 내용 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오 눈 ! 아름다운 눈. 하늘과 땅에 가둔한 눈. 지붕위에서, 거리위에서 만나는 사람의 머리 위에서 춤을 추며 교태롭게 미끄러지듯 날아가는 아름다운 눈 ! 그것은 나쁜 짓을 할 수가 없다. 날아서 아름다운 여인들의 뽈에 키스를 하고 흥겹게 뛰어 노는 자들의입에 달라 붙고, 아름다운 눈, 하늘위에서 내려온 눈 천사와 같이 순결하고, 사랑과 같이 부드러운 눈 ! 나도 한 때 저 눈과 같이 순결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눈 덩이와 같이 타락을 했다. 거리에서 짓밟히는 쓰레기가 되었다. 비웃음을 당하고, 침뱉음을 당하고, 때림을 당하고, 저주를 받고, 무서움 속에 죽어가야 하는 자가 되었다. 나의 영혼을 사는 자들에게 마구 팔았으며 한 입의 빵을 위하여 나의 순결한 영혼을 팔았도다.
이제 삶을 저주하며, 죽음을 두려워하며, 오 자비의 하나님 나는 이렇게 깊이 타락했습니다. 그러나 나도 한때는 저 아름다운 눈과 같았습니다. 왜 저 눈과 같이 희고 아름다운 여인이 이렇게 부끄럽고, 불쌍한 삶을 살다가 죽어야만 해을까요 그 부모님으로 부터 그렇게 사랑을 받고, 많은 학생들로 부터 선망의 대상이였던 그 여인이 왜 그렇게 부끄럽기 짝이 없는 삶을 살다가 죽었을까요 그녀의 그 아름다운 몸을 죄의 종으로 삼 았기 때문입니다. 죄의 종이 된 우리들의 삶의 열매가 얼마나 부끄럽고, 불행한가를 명심 하시고, 이 죄의 종에서 해방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이 죄의 종이된 자가 마지막에 맺게 되는 열매는 사망입니다. 오늘 말씀은 죄의 종은 사망에 이르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의 종 인 된자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자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죄는 날마다 우리의 목을 조금씩 졸라 죽입니다. 크렛타이라는 목사님이 개를 한 마리 기르고 있었다. 하루는 개의 머 리가 붓기 시작했는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그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얼 마 후엔 개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숨이 차서 그냥 헐레벌떡 하고 있었다. 애들은 개를 무척 사랑했기 때문에 굉장히 슬퍼했다. 개가 죽기 직전 개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발견했다. 아들 하나가 고무줄을 가지고 놀았는데 그만 고무줄을 개의 목에 둘렀다. 고물 줄은 계속해서 목을 조르기 시작했고, 죽음 직전까지 가게 되었다. 죄도 이와 같다. 처음에는 잘 모르나 후에는 죽음을 초래한다. 성경은 말하기를 "죄의 삯은 죽음"이라고 했다. 죄의 종이 된자는 결국 죽 을 수 밖에 없습니다. 아직도 이런 무섭고 부끄러운 죄의 종이 죈 자들이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맺게 될 열매가 부끄럽지 않습니까 여러분 들이 맺게될 죽음의 열매가 두렵지 않습니까
2.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옛 주인인 죄를 몰라내라. 우리가 참으로 행복하고 기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 속에서 우리를 주관하는 우리의 주인인 죄악을 몰아내야합니다. 이것을 몰아내지 않으면 우리는 불행할 수 밖에 없습니다. 비참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추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 다음 장에서 "나의 행하는 것을 내 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함이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라.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고 탄식을 했습니다. 죄악이 우리 속에서 우리를 주관하기 때문에 우리는 죄를 범해서는 안된 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만 그 죄를 범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죄가 우리에게 죄를 범하라고 자꾸만 명령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잘 못된 것을 알면서도 죄를 범해야 합니다. 우리 속에서 우리로 죄를 범하게 하는 우리의 주인인 이 죄를 몰아내야 합니다. 그래야 평안을 얻고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 죄악을 몰아낼 능력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온 인류가 우리 인류를 타락으로 이끌고, 불행하게 만드는 이 죄악의 주인을 몰아내려고 온갓 노력을 다 해 보았지만 다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경찰을 만들어 죄를 몰아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실패했습니다. 지금 이 땅에 경찰이 없어서 죄를 짓습니까 경찰이 없어서 사람들이 부끄 러운 죄악의 수렁에 빠져 들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경찰로 사람들 속에서 주관하는 죄를 몰아 낼 수가 없습니다. 법을 만들어 이 죄악을 몰라 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법을 가지고도 죄악을 몰라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죄악을 몰라내라고 율법 을 주셨지만, 그 율법이 인간의 죄를 몰아내지 못했습니다. 공부를 통해서 죄를 몰아 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공부도 우리의 죄 를 몰아 내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하고, 책을 많이 읽어도 우리 속에서 우리를 주관하는 이 죄악을 몰아 낼 수 없습니다. 이 죄를 몰아내기 위해서는 우리가 죽어야만 합니다.
우리가 종의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죽어야만 합니다. 죽으면 자동적으로 그 종의 상태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죽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로마 황제 발렌시니안(Valentinian)이 죽으면서 다음과 같은 유 명한 말을 남겼다. "내가 평생에 정복한 것 중에 나에게 참 평안을 가져다 준 것은 오직 이 것 뿐이다. 나는 나의 가장 나쁜 적, 즉 내 자신의 죄악된 마음을 지금 정복했다." 로마 황제 발렌시니안은 살아서는 몰아 낼 수 없었던 죄악의 권세를 죽 음으로 몰아 냈습니다. 그러나 죽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죽어서 자유인이 된 다면 그 죽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차라리 살아서 종으로 사는 것이 더 났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우리의 죄의 주인을 몰아 내고 새로운 주인을 모실 수 있는 방법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누군가가 우리의 주인인 죄에게 댓 가를 지불하고 우리 자신을 그 죄에게서 사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대속입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속해 주 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죄를 범함으로 지은 모든 죄의 빚을 자기 자 신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함으로 우리의 모든 죄의 빚을 다 갚아 주셨읍니다. 로마서8:1-4 말씀을 보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 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님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랑 을 받아 들인 자들에게는 더이상 죄악이 그들을 주관할 수 없습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 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의 죄를 정하사 육신을 쫓지 않고 그 영을 쫓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 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의 종이 된 빚을 다 갚아 주셨읍니다. 그래서 우리로 죄의 주인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미국 남북 전쟁당시 뉴욕에 살고 있는 한 농부에게 연합군에 입대하라는 징집 영장이 날라들었다.
그런데 그의 아내가 죽어서 그는 어린 아이들을 부양해야만 했다. 그의 자녀들에게는 그외에는 부양해 줄 자가 없었다. 그 딱한 소식을 듣고는 동네 결혼하지 않은 청년이 그 집에 와서는 자기 가 대신 군에 입대하겠다고 했다. 어린 아이들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그는 그 제의를 받아 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 마음씨 좋은 젊은이는 군에 입대를 했고, 그리고 첫번째 전투에서 총 에 맞아 전사를 했다. 그 소식을 들은 농부는 전쟁터에 달려가서 그 젊은이의 시신을 집으로 가지고 와서는 교회 공원묘지에 묻어 주었다. 그리고는 비석에다 이렇게 새겨넣었다. "그는 나를 위해 죽었다."(He died for me) 이렇게 예수님 께서 우리가 죽을 죽음을 대신 죽으셔서 우리의 죄값을 지불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죄의 주인으로 부터 구속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바로 이 사랑을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을 그 예수님의 종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아직도 죄의 노예가 되어 부끄럽고, 두려운 열매를 맺는 분들이 있읍니 까 우리를 이 부끄럽고 두려운 죄악의 종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피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아 드리시기바랍니다.
3.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자. 이렇게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고는 우리에게 오셔서 이제 예수님을 따라 가서 예수님과 같이 살자고 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죄의 주 인이 좋다고 그 죄의 종이 되어 사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자유의 길을 가다가 조금 힘들면, 옛날에 애굽에서 종생활하던 것이 더 좋았다고 하면서 다시 애굽으로 돌아 가서 종생활을 하려고 했던 것과 같이, 예수님이 우리를 그 더럽고 부끄럽 고 무서운 죄악의 종에서 우리를 자유하게 해 주셨는데도 여전히 죄의 종이 되어 죄 가운데 살려고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죄의 종이 삶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 가를 잘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죄의 종에 머물러 있지 말고 이제는 죄굴레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의의 종이 되어 주님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의의 종은 의에 이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더럽고 부끄럼움에 이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의로움에 이르게 됩니다. 의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거룩함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리고 이 마지막 열매는 영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연히 의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몸을 가지고 의의 병기로 드릴 수가 있습니다. 이 연약 하고 더러운 몸을 가지고도 의로운 열매를 맺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정말로 받아 들이고, 믿는 다면 우리는 이제 우리의 몸을 의의 병기로 드리고, 의의 종이 되어서 의를 행하며 살아 야 합니다. 오래 전에 한 사람이 노예시장을 방문했다. 한참동안 보고 있던 그는 한 노예에게 다른 사람이 더 이상 경쟁할 수 없을 정도까지 경매값을 올려 불렀다. 값을 치른 후에 그는 그 노예에게 매매증서를 주었다. 그리고 그는 "나는 너를 해방시키기 위하여 너를 샀다"고 말했다. 그 노예는 너무나 감격하여서 그를 떠나기를 거부하고 일생동안 그의 충성스런 하인이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막대한 값을 치루셨다. 우리는 감사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며 살아야 한다.
어떤 사람이 도시구제선교회 회장으로 40년간 봉사를 계속했다. 그래서 한번은 어떤 사름이 그 회장에게 "왜 그렇게 더럽고, 지저분하고, 불경 스럽고, 술주정뱅인 버림받은 자들을 위하여 일을 하는데 그의 일생을 바치 느냐 " 물었다. 그러자 그 회장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여 주신 그 사랑의 작은 부분을 다른 사람들에게 돌려 주고 있는 것입니다"하 고 대답을 했다. 그가 젊었을때, 그는 술주정뱅이였다. 그는 어느날 칠레 고추를 넣 고, 기계로 저민 고기와 강남콩을 넣고 끓인 멕시코 음식을 한 그릇 얻어 먹기 위하여 그 선교센타를 찾아 갔다. 거기에서 그는 그리스도는 죄인들 을 구원할 수 있다는 설교를 들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그의 구세주 로 받아 들이기 위하여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비록 그의 머리는 술로 혼란에 빠져 있었지만, 그는 그의 어께서 무거 운 짐이 들려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날 그는 변화된 사람이 되었다. 잠시 후에 그는 그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찾는 중에 그는 하나님 이 그를 아직까지 빈민굴에서 뒹굴고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라고 자기를 빈 민굴로 보내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구속자의 사랑의 힘이 그로 하 여금40년간 그의 힘든 선교의 일을 계속하게 했습니다. 우리도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죄의 종에서 해방되어 의 의 종이 되었다면 우리의 몸을 온전히 주님을 위한 의의 병기로 드려야합니다. 주님만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대속의 은혜를 받아들이고 이제 오직 주님만을 위하여 사는 성도 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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