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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투 (롬7:14-25)

본문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에 알콜 중독자였던 어떤 그리스도인이 목사관에 찾아온 적이 있었다.그 사람은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지난 3개월 동안 새롭게 시작된 삶의 경이를 체험했다.그러나 그때 그는 깊은 괴로움 가운 데 있었다.그는 이제는 더 이상 못하겠어요 하며 이야기를 꺼냈다. 아무 쓸데 없는 짓입니다.제가 노력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닙니다.저는 노력했습니다.제가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했을 때,저는 마침내 해답 을 발견했다고 믿었습니다.그래서 술을 끊었고,아내와 열여덟 살 먹은 아들과의 관계도 좋아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직장에서도 이전보다 훨씬 나아졌습니다.그 말은 술 때문에 잃을 뻔했던 직장에 계속 다닐 수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제 말씨도 달라졌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란 말입니까 하고 목사님이 물었다.그는 절망의 빛을 띤 목소리로 이야 기를 계속했다.
제가 시도한 모든 방법,모든 일들은 단지 일종의 감정 적인 흥분에 불과했습니다.정말 멋진 3개월이었지요.그러나 지금 생각 해 보니,저는 꾸며낸 이야기와 그때 경험한 모든 것에 도취되어 살았던 것 같습니다.저는 그 기간 동안 여러 차례 제가 구원받은 사실에 감사했 습니다.혼자서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 앞에서도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사건이 터졌습니다.기억하건대,그날은 토요일 이었습니다.저는 세차를 하고 있었고,아들이 그 일을 돕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애는 제대로 일을 못했습니다.그래서 제가 제대로 하라고 일렀 지요.저는 제가 좋은 말로 타일렀다고 생각했습니다.그러나 제 아들은 그렇게 받아들이질 않더군요.사태가 이렇게 되자,제가 그 동안 아들과 맺어 왔던 관계가 파괴되었습니다.그러자 저는 이성을 잃게 되었고,믿기 이전에 했던 거친 말들과 영원히 제게서 사라져 버렸다고 생각했던 모든 버릇들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습니다.제 아내는 아들 편을 들었습니다.아내는 제가 그리스도와 맺은 관계에 대해서 회의적(懷疑的)이었고 ,그래서 아주 냉정한 태도로 저를 책망했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당신이 올바른 체험을 했다고 생각지 않았어요.보세요.당신은 이전과 달라진 점 이 없잖아요.당신이 믿는 기독교가 그런 것이라면,저는 절대로 기독교를 믿지 않겠어요 라고 말입니다.날이 저물기 전에 제 아들 놈은 짐을 꾸려 가지고 결혼한 제 누이 집으로 갔습니다.제 아내는 이혼을 요구했고,저는 집을 나와서 다시 만취한 상태가 되었습니다.어떻게 그리스도께서 저 를 이 지경에 처하도록 내버려두실 수 있다는 말입니까 저는 매우 신실 했고,감정적으로도 충만해 있었는데 말입니다.그래서 당신은 하나님 을 원망하십니까 하고 목사님이 그 사람에게 물었다.예.그렇습니다.당신 생각이 틀렸습니다.당신이 그렇게 행동한 것은 하나님 탓이 아닙니다.
당신이 잘못한 것이지요.제가 몇 가지 여쭈어 보겠습니다.당신은 이 일이 일어난 후에 성경을 펴서 영적인 가르침을 받으셨습니까 당신은 아내와 아들을 용서하고 다시 화해하려고 시도해 보셨습니가 제 생각으로는 당신은 그렇게 하시지 않았고,더욱더 분노하셨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술까지 다시 드시지 않았습니까 그 다음 날은 주일이었는데, 당신은 교회에 가셔서 성경에 근거한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셨습니까 그 어려운 순간에 당신을 도울 수 있는 어떤 조언을 즉시 받으셨나요저는 기도했습니다라고 그 사람이 말했다.어떻게 기도하셨습니까 저는,제가 제 아들 녀석을 나무란 것은 그 녀석의 게으른 습관을 고치기 위한 것임을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그리고 제 아내로 하여금, 자신이 충성해야 할 사람은 제 아들이 아니라 바로 남편인 저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런 내용의 기도를 드리면서 그 일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셨습니까그 사람은 자신을 변 호하는 투로 대답했다.이것 보세요.저는 그 일이 일어나는 것을 원하 지 않았다는 말입니다.하나님께서는 그런 하찮은 일 정도는 막아 주실 수 있을 만큼 능력이 많은 분이 아니십니까 저는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3 개월 동안 제 생애 가운데 가장 기쁜 날들을 보냈다는 말입니다.
그 목사님은 갈라디아서 5장 16절 말씀을 펴서 읽기 시작했다.내가 이르 노니 너희는 성령님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 라.그런 다음 목사님이 물었다.그 일이 발생한 토요일 오후에 당신 은 성령님을 좇아 행하지 않고 육체를 좇아 행한 것이 사실이지요물론 그리스도는 실패하지 않으신다.그것은 다만 몇 달 동안 제지를 받았던 그 사람의 육체에 속한 성품이 반란을 일으킬 기회를 얻은 것에 불과했다.아 직 그 반란을 감당할 정도로 강해지지 않은 새 성품이 공격을 당하여 넘어 졌던 것이다.그렇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근본적으로는 그 그리스도인이 그 일이 일어나도록 방치한 셈이다.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깨닫기도 전에,그의 옛 성품이 그를 옛 습관의 수렁 속으로 되돌아가게 했던 것이다.한 걸음씩 그는 아담에게 물려받은 그의 옛 자아가 더 깊은 수렁에 빠 지도록 허용했다.분노에서 욕설로 그리고 공격에서 자기 정당화와 자기 연민으로 말이다.그가 그런 비참한 지경에 이르자,그의 육체의 소욕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쉽게 그를 술 취하게 만들었다.만약 그의 새 성품 이 조금이나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써 힘을 얻은 상태였다면,그 불행 한 일련의 상황들을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혹은 그가,그것이 자신의 옛 성품이 만들어 놓은 일종의 돌파구라는 사실을 좀더 일찍 깨달았다면 즉시 그는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했을 것이다.이 에 대해 성령님께서 응답하셨을 것이며,따라서 다시 새 성품이 자신을 지배 하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물론 그가 저지른 마지막 실수는 술 마시는 옛 습관으로 되돌아간 것이다.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자기도 알지 못한 채 성령이 금한 것을 위반한 셈이다.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 라(롬 13:14).
일단 그가 이 마지막 단계에 들어서자,그의 새 생활은 물거품이 되고 만 것이다.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그에게 일어난 일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끝맺게 한 것이 아니라 이전보다 더 능력 있고 새 롭게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그는 하나님께 반항하던 일을 중지하고 가 족들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했다.그의 새 성품이 그를 지배하게 되자, 그는 다시금 지각 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순종과 믿음의 삶을 살게 되었다 .불행히도,그와 같은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특히 젊은 신자 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단의 속임수에 걸려든다.억제당하던 옛 본성들은 돌파구를 찾기 위해 기회를 노린다.그래서 적당한 기회가 오면 옛 본성들이 세력을 잡게 된다.결과적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 보여 주었던 삶의 증거들은 훼손되고,그 사람의 성장은 방 해를 받게 된다.두 성품의 원리에 대한 진리와 그 두 성품이 서로 어떻게 대적하는가를 우리에게 가르치기 위해서,하나님의 성령님께서는 로마서 7 장에서 우리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초자연적인 분석을 통하여 보여 주고 있다.이 특별한 성경 본문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해하고 누리는 데 기초가 되므로 연구하고 암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이 성경 본문은 옛 성 품에 관해서 대략 스무 번 정도 언급하며 새 성품에 관해서도 그만큼 언급 한다.나라는 단어가 모두 합해서 스물일곱 번 나오는데,열여섯 번은 새 성품이 하는 일을 나타내고 나머지 열한 번은 옛 성품이 하는 일을 나 타낸다. ''
로마서 7장-우리 내부의 갈등 '' 로마서 7장 14절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이 구절에서 나란 옛 성품을 가리킨다. 이 말씀은 우리가 선을 행하기 원하면서도 왜 악을 행하게 되는지를 설명 한다.이 말씀은 모든 진실한 신자들의 경험을 기록하고 있다.바울은 놀 라우리 만큼 솔직한 고백으로써 이 주제를 도입했다.그는 숨김없고 적나라하게 자신이 육신에 속해 있고,신령한 율법과는 대조적으로 이 육(肉 )에 속한 성품은 죄로 물들어 있다고 말했다.옛 성품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바울은 자신의 옛 성품이 육 혹은 육신에 속하여 죄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했다.반면에 그의 새 성품은 하나님의 뜻과 그분이 주 신 율법을 기뻐한다.그 결과 그는 상반되는 방향으로 동시에 이끌리고 있는 것이다. '' 로마서 7장 15절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이 구절에서 첫번째로 나오는 나는 옛 성품을 가리키고,그 다음 번의 내가라는 단어는 새 성품을 가리킨다.이 구절은 세 쌍의 대구(對句)로 이루어 져 있다.바울은 자신의 옛 성품이 그로 하여금 행하도록 이끄는 것들이 있는데,그것들을 새 성품이 반대하고 미워한다고 말하고 있다.그러나 어 쨌든 바울은 그런 일들을 행하고 말았다.그는 마치 다음과 같이 말하는 한 여대생과 같다.마치 나의 영적인 삶이 한 편에 비껴서서,내 옛 성 품의 어리석음과 그 행동들을 지켜보고 있는 듯합니다.저는 제자신이 그 러한 일들이 일어나도록 허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바울은 두번째 대구에서 원하는(would)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 단어는 로마서 7장의 여러 구절들에서 소원하는,갈망하는 혹은 하고자 하는 등의 의미로 일곱 번 사용되었다.즉,그 말은 의를 행하고자 원하는 새 성품의 갈망을 묘사한다.바울은 그의 새 성품이 어떤 일을 행하기 원했는데,그의 옛 성품은 그와 반대되는 행동을 취했다 고 말했다.바울은 세번째 대구에서 자신의 새 성품이 실제로 그의 옛 성 품이 취한 행동들을 미워한다고 말했다.그러나 새 성품의 저항에도 불구 하고,그의 옛 성품은 계속해서 그의 새 성품이 미워하는 일들을 범한다. 사려깊은 그리스도인이라면,그의 일상 생활에서 옛 성품이 갖는 엄청난 위력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예수 그리스도께서 궁극적인 승리를 약속 하지 않으셨다면,그 투쟁은 그야말로 우리를 두렵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신자들은 하나님께 감사해야만 한다.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 지 아니하려 함이니(롬 6:6).믿음으로 갈보리의 그리스도와 우리 자신을 일치시킨다면,우리 삶에서 이 진리가 적절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옛 성품을 이미 죽은 것으로 간주하신다는 사 실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
' 로마서 7장 16절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이 구절에서 첫번째의 내가라는 말은 새 성품을 가리키고,두번째의 내가라는 말은 옛 성품을 가리킨다.두 번째의 내가라는 말이 새 성품을 의미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음을 유의 해야 한다.그렇게 해도 이 성경 구절의 의미는 하등의 영향도 받지 않고 달라지지도 않는다.바울은 율법을 살펴보고,그것의 기능이 죄를 규정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며,율법이 요구하는 바가 선한 것이라는 사실 에 동의했다.바울은 로마서 서두에서 율법의 기능이 죄를 규정하는 데 있 다는 사실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 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니라(롬 7:7).따라서 바울의 옛 성품조차 율법이 선하고 합당하다는 사실에 동의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거듭나지 못한 사람이라 할지라도,인간성에 무엇인가 잘못이 있음을 알고 자기 스스로의 율법을 만듦으로써 그 잘못된 것들을 보상하려고 시도한다.즉,도적질,간음,살인과 같은 행위를 금하는 법을 제정하지만,아담에게 속한 육(肉)의 사람은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이 제정한 법을 지킬 수도 없다.신자의 옛 성품 또한 하나님 의 법이 옳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이러한 인정 자체가 하나님의 법에 순 종할 것이라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
' 로마서 7장 17절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이 구절에서 내가라는 말은 새 성품을 의미한다.바울은 자신의 삶 가운데 죄가 자신을 사로잡을 때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그는 자신이 죄에 사로잡히게 될 때,그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그의 신앙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 있는 치 명적인 원수에게 굴복당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러나 그는 자신의 옛 성품에게 굴복당하는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만일 내버려둔다면,옛 성품은 신자를 파멸에 이르게 한다.게다가 옛 성품은 항상 자신의 탐욕을 채울 기회를 노리고 있다.옛 성품은 그리스도 인의 평안한 삶을 계속하여 훼방하는 거침돌이다.그러면 옛 성품을 어떻 게 다스릴 것인가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26,27절 말씀에서 해답 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 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 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바울은 이 구절에서 자신의 옛 성품이 얼마나 그의 새 성품을 대적하고 있는가를 설명했다.또한 그는 새 성품이 옛 성품을 항복시키기 위해 얼마나 효과적으로 옛 성품을 공격하는지 보여 주기 위해서 운동 경기로부터 또 다른 예를 들고 있다.그런 다음 그는 마치 야생 동물을 훈련시키는 사람이 곰이나 사자를 다스리고 채찍으로 길들이듯이,자신의 몸을 쳐서 복 종케 한다고 말했다.바울은 이와 같이 자신의 옛 성품을 다스리는 방법에 관하여 언급했다.육체의 거친 성향들을 길들이는 채찍은 성령님으로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이다.아마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징계의 칼로 일컬어야 할 것이다.말씀의 속성이 그러하니까 말이다.성경을 연구하면서 새 성품 은 건강하게 성장할 것이고,옛 성품은 그 세력을 상실할 것이다. '
' 로마서 7장 18절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이 구절에서 바울은 한 가지 사실을 반복해서 말했다.그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유 산은 아담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며,아담이 사람들에게 물려 준 육에 속한 성품에는 어떠한 선한 것도 없다는 사실이다.그러나 육에 속한 성품은 이 구절을 얼마나 반박하는지 모른다.옛 성품의 오만함은 잘못된 것을 절대 로 시인하려 들지 않는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육에는 유익함이 없다고 말씀하셨다.만일 그리스도인이 이를 악물고라도 자신의 옛 성품이 항상 자신을 곤경 속으로 몰아넣는다는 사실을 기꺼이 시인한다면,아마도 삶은 훨씬 더 살 만한 것이 될지도 모른다.그러나 오히려 그리스도인은 나는 단지 인간일 뿐이다.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악하지 않다.내가 그렇게 행동한 것은 당연하다.그 상황에서 나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식 으로 자신을 정당화하며,변명의 구실로 자주 이용하는 다른 여러 핑계들 을 댈 것이다.바울은 계속해서,자신의 새 성품이 기꺼이 선을 행하려 하 나 그의 옛 성품은 선을 행하기를 거부한다고 말했다.갈라디아서 5장1 7절 말씀은 바울의 삶 가운데 일어났던 일들을 묘사하고 있다.육체의 소욕은 성령님을 거스리고 성령님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옛 성품은 결코 의(義)와 협력하지 않는다.그것은 새 성품이 지닌 선한 모습을 흉 내낼 수도 있다.그러나 항상 그 자체의 이기적인 면을 추구한다. '
' 로마서 7장 19절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이 구절에서 내가는 새 성품을 의미 한다.반면 악을 행하는 주체는 옛 성품이다.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 을 때에 받은 신령한 성품은 선을 행하기를 원했다.그는 에베소서 2장 10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그러나 바울의 악한 옛 성품은 이 목적을 훼방했고,바울은 문제 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오늘날의 신자들도 자기들에게 악한 옛 성품이 내재해 있다는 사실을 깨 달아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아무런 기쁨도,평화도,만족도 누리지 못한다.로마서 7장 19절 말씀은,죄가 지니는 문제와 그 결과를 사실 그대 로 설명해 주고 있다.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이 죄로 인한 문제로 얼마나 고심해 왔는지 모른다.세상의 여러 종교들은 죄의 문제에 대처하려고 시 도해 왔다.철학 분야에서도 인본주의적인 해답을 제시해 왔으나 결국 실 패로 끝났다.의학계에서도 이 문제에 관한 많은 이론이 나왔지만 역시 성 공하지 못했다.이론 과학과 인류학에서는 이 문제를 인간의 조상이 동물 을 기원으로 하고 있다는 점전투. 영적 전쟁을 영적 승리로에서 기인하는 탓으로 돌렸지만,타당한 증거가 없다.하나님께서는 몇 마디 말씀으로써 그리스도인을 자유케 하는 진리를 계시하셨으니,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
' 로마서 7장 20절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이 구절에서 첫번째의 내가는 옛 성품을 일컫고,두번째의 내가는 새 성품을 가리킨다.그는 자신의 새 성품에는 흠과 잘못이 없고,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義)를 이룬다는 사실을 인정했다.또한 그는 자기 안에 있는 탐욕스럽고 육욕에 치우친 육(肉)의 성품이 죄를 지을 수 있고,때때로 이 죄악이 행동으로 나타나서 악한 일을 범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 로마서 7장 21절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 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이 구절에서 내가라는 말과 나에게의 나란 말은 모두 새 성품을 의미한다.신자의 몸에는 옛 성품과 새 성품이 함께 거한다.그 두 성품은 서로를 무자비하게 대 적하고 있다.두 성품은 결코 같은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결코 똑같은 의 사 결정을 내리는 법이 없다.바울의 새 성품은 선한 일을 하기 원했지만 ,그의 마음과 감정에 잠재해 있는 것은 옛 성품의 악한 생각과 감정들이 었던 것이다.바울에게 해당되었던 일이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옛 성품은,악을 행하는 사단에 의해서 유혹받기를 기뻐하는 우리의 강 력한 원수이다.새 성품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를 즐긴다.따라서 위의 성경 구절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을 나타내고 있다. '
' 로마서 7장 22절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이 구절의 내 속 사람은 새 성품을 가리킨다.바울은 이 말씀에서 자 기 자신 속의 이러한 갈등은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에 시작되었다고 밝혔다.
왜냐하면 불신자는 속 사람으로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지 않기 때문이다.바울은 14절에서 율법은 신령하다고 밝힌 바 있다.율법은 사람에게 결코 불합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그러나 육에 속한 옛 성품은 그 율법이 육신적인 차원에 제대로 적용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바울은 22절에서 옛 성품의 행위들과는 대조적으로 그의 새 성품은 하나님의 법 을 즐거워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다.새 성품은 자발적으로 율법이 명하는 바를 수용하고 행동으로 옮긴다.따라서 새 성품은 율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사실상 새 성품은 율법을 필요로 하지 않을 뿐만 아 니라 율법의 지배하에 있지도 않다.사랑과 은혜가 순종하도록 동기를 부 여하는 힘이 된다.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 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롬 6:15).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 므로 우리가 영(靈)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儀文)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롬 7:6).신약성경에서 신자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계명은 사랑이다.사랑의 법은,오늘날의 신자에게 실제로 십계명 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요구한다.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무엇보다도 우선해서 하나님께 헌신할 것이다.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님 을 사랑한다면,그는 그분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않을 것이다.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의 부모를 사랑한다면,그는 부모님을 공경할 것이다.이 웃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이웃을 해치지 않을 것이다.사랑의 법을 실천 하는 사람이라면,다른 사람의 배우자와 부정한 일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며,도적질하지 않을 것이며,다른 이들에게 거짓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은 타인의 소유를 탐하지 않을 것이다.
속 사람 은 사랑의 법을 즐거워한다.사랑의 법이 성취될 때,사랑은 전능하신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님을 향하여 더욱 확대된다.또한 사랑은 자신의 배우자,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자매들,이웃들 그리고 원수에게까지 그 힘을 발하게 된다. '' 로마서 7장 23절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 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바울은 자신의 속 사람이 율법을 사랑하고 그것을 따른다는 사실을 알 았지만,자신의 옛 성품은 율법을 거스리고 반대하며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법에 순종한다는 사실을 밝혔다.즉,옛 성품이 따르는 법은 육신의 소 욕을 만족시키는 것이다.옛 성품은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하고 사단의 법 만을 안다.새 성품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사단의 법을 거부한다. 옛 성품과 새 성품 사이의 투쟁은 신자가 죽을 때까지 그치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신자가 승리를 확신할 수 있는 근거는 옛 성품이 무엇을 행하든지 그리스도께서 새 성품을 죄없고 흠 없고 티 없이 하실 것이라고 분명히 약 속하셨기 때문이다.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요일 3:9).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 5:18). '' 로마서 7장 24절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 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이 구절에서 나는 옛 성품을 의미한다.바울은 여기서 살인자들을 처벌하는 로마의 관습을 언급했는지도 모른다.그 당시 로마에서는 살해당한 사람의 몸과 살인자의 등을 맞대고 두 사람의 팔과 팔,다리와 다리를 묶어 살해당한 이의 썩어가는 시체가 살인자의 몸 에 회저(懷疽)를 일으켜 살인자마저 사망에 이르게 했다.바울은 마치 자기 자신을 썩어 가는 성품에 묶인 자로 보았다.그래서 그는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 내랴하고 탄식했던 것이다.우리의 좋고 싫음 에 상관없이 우리는 옛 성품을 지니고 살아 갈 수밖에 없다.우리는 물론 영적으로 해방되었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 죄의 짐을 지니고 있다.바울이 그리스도로 인하여,또한 그분께서 죄와 사망의 법에 관련하 여 행하셨던 일들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린 사실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님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2). '' 로마서 7장 25절우리 주(主)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이 구절에서 내 자신은 새 성품을 언급한다. 이 구절 역시 바울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경험에 비추어 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그 이유는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 하나님의 법을 섬길 수 없기 때문이다.이제 바울은 결론을 내리고 있다.비록 신자가 혼란한 상태에 처할 수도 있지만,그의 거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평안이다.그는 성령님 의 감동으로 로마서 8장 1절에서 다음과 같이 찬양했다.
그러므로 이 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결론 이 성경 구절은 신실한 그리스도인에게 얼마나 놀라운 답변을 제시하고 있는가 이것은 해방의 소식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자유케 하셨기 때문이다.그러나 아직 최상의 상태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장차 그 놀라운 날이 오면,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시는 가운데 옛 성품은 더 이상 신자를 위협하지 못할 것이다.육(肉)에 속한 모든 성품들이 사라질 것이다.죄에 대해서도 더 이상 유혹받지 않을 것이다.우리는 그때에 영광 스러운 몸을 입고 천국 시민이 된 완전한 기쁨을 맛볼 것이다.이 성경 말씀에 우리는 단지 할렐루야! 아멘!으로 응답하지 않을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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