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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으로 육신을 지배하자 (롬7:14-25)

본문

예수 믿는 사람들중에 그 어느 누구라도 예수 잘믿고 싶어하지 잘 안믿고 싶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 어느 누구라도 믿음으로 살고 싶어 하지 믿음으로 살기 싫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 어느 누구라도 영적인 체험을 하며,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체험하며 살고 싶어하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기 싫은 사람 한사람도 없을 것이다. 과연 그렇습니까 여러분들은 예수 잘 믿고 싶지요 여러분들도 믿음으로 살고 싶지요 여러분들도 하나님을 체험하며, 영적인 은혜가운데 거하고 싶지요 목사인 저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고 싶은데, 그렇게 살려고 하는데 왜 그것이 안돼지요 왜 그렇게는 살지 못하고, 맨날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하고, 원하지 않는 자리에 가 있고, 내가 원하지 않는 모습들에 빠져 있는가
1.사람들의 원함 아마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주일 지키고 지키지 않고 살면서 믿음의 양심의 가책을 받으며 살기 싫어할 것이다.
그런데 주일을 온전히 지키고 싶은데 안지켜지는 것을 어떻게 하겠느냐고 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기도생활 하고 싶어서 하려고 하는데도 기도가 안되는 것을 어떻게 하느냐고 할 것이다. 나도 예배 안빠지고 꼬박 꼬박 참여하여 하나님께도 점수따고, 목사님과 다른 사람들에게도 점수를 따고 싶은데 누가 예배에 빠지고 싶어서 빠지나 그렇게 안되는 것을 어떻게 하느냐고 할 것이다. 나도 예배시간 늦지 않고 일찍와서 준비하고 싶은데
그런데 내 생각과 원함과는 상관없이 일이 그렇게 되어지고, 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밖에 안된다고 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사실 그렇다. 누가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러나 나도 하고 싶은데 이 육신이 안따라 줄뿐이고,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되는 것을 말이다. 우리가 하나님이 아닌 이상 어떻게 꼭 그렇게 하나님처럼 완벽하게, 다 하면서 그럴수 있습니까 그렇죠 또 그렇다고 나 자신도 그렇게 떠떠 미지근하게 하기는 싫고, 하고는 싶은데 그것이 잘 되지 않으니까 얼마나 답답 하신가 이런 모습들은 여러분과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그런다. 오늘 본문에 보면 사도 바울같은 위대한 신앙의 사람, 믿음의 사람도 그런 갈등과 고민과 아픔 속에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을 본다.
19절-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악을 행한다. 그래서 22-23절-나는 믿음으로 살고 싶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하고 싶은데
그런데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이런 마음과는 상관 없이 내 육신이 편하고 좋은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이 두가지가 서로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24절-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곤고하다’ =는 말은 괴롭다, 힘들어 죽겠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 내랴고 그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에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라고 하는 것은 거저 되는대로 살아야 하겠다는 이런 나약한 마음의 자세에서 갖는 마음은 아니다. 나는 하려고 해도 안되니까 거저 포기해 버리고 육신이 이끄는대로 자기를 맡겨 놓고, 좋은게 좋은 것이 아니냐라는 그런 포기의 마음도 아니다. 비록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그 선을 행하지 못하게 하고 악을 하게 하는 이런 일이 있지만,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악을 행하지 않고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을 나아가는데 힘은 들지만, 괴롭지만, 아픔이 있지만, 잘 안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악을 행하는 곳으로 나아가지 않고, 어떻게 하든지 선을 행하는 일들을 해야 하겠다는 바울의 몸부림이요, 영적인 싸움이다.
이런 싸움을 싸우며, 부단히 선을 행하는 일들을 위하여 나아갔기에 바울이 바울될수 있었고, 오늘날 우리들이 부러워 하는 믿음의 용장으로, 하나님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 복있는 인생이 된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오늘날 우리들도 마찬가지어야 한다. 내가 주일 지키는 것에 있어서 나름대로 하려고 하는데도 잘 되지 않는다고 해서 주일 지키는 것을 포기해 버리고 주일 지키지 않고 그냥 육신이 좋은대로, 환경이 이끄는대로 살아갈수 없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내가 기도를 하고자 해서 할 때에 기도가 안된다고 포기해 버리고 우리가 기도의 줄을 붙잡지 않으면 우리의 영적인 생명은 맨날 그 자리에, 아니 뒤떨어져 나가게 될 수 밖에 없지 않는가 아무리 큰 믿음으로 세워지려고 해도 믿음이 생기지 않고, 오히려 세상이 좋고, 그것이 내 체질에 맞는 것 같다고 해서 우리의 영혼을 육체에 방임을 해서 믿음이 성숙케 되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살아 갈수 없지 않느냐 하는 말이다. 선을 행하고자 할 때(여기서 말하는 선이라는 것은 바로 우리가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모든 것)에 그 선이 행하여 지지 않는다고 해서 안된다고 포기하고 악(육신의 삶의 욕심)을 행하며 살수 없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싸움이 왜 없는가 있다. 선을 행하는 일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 지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악은 가르쳐지 않아도 절로 배우게 되고, 스스로 터득하게 된다. 왜 우리 사람의 본성이 죄로 말미암아 거기에 물들어 있었던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예수를 믿고 거듭났다고 해도 일평생 거기에 죄로 물들어 있고, 육신의 정욕들의 흔적이 있기 때문에 쉽게 하게 되어 있고, 또 그것이 좋게 되어 있다. 그렇지만 선은 그렇지 않다. 아무리 하려고 해도 그것이 잘 되지 않는다.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피땀어린 힘씀과 노력이 있어야 얻어지는 것이다. 왜 그것이 진짜이기 때문이다. 새 생명을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새 생명이 잉태되고, 자란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이 그렇게 쉽게 되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가 무엇이라 말하는가 (히 12: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즉 피 흘리기 까지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이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는 것 거저 쉽게 된줄로 생각하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마태복음 26장37절 이하에 보면 그도 뼈를 깍는 고민과 고통이 있었고, 사람들의 온갖 조롱과 비웃음과 고난을 인간적으로 생각하며 어떻게 해버리고 싶을 정도로 속에서 올라 오는 것이 있었지만 끝까지 참고, 견디었고, 마지막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 진 것이다. 여러분과 저의 구원얻음이 쉽게 이루어진 것으로 착각하지 말라. 예수를 십자가에 메달라 놓은 하나님의 아버지의 심정이 어떠 하셨는가 세 시간동안 하늘에 어두움이 임하였다고 하였다. 그만큼 엄청난 희생의 대가를 지불해서 얻은 구원, 영생임을 알아야 한다. 이 은혜를 알진데 우리가 주님앞에 내 고통을 비하면서 주님과 맞 먹을수 있겠는가 이 은혜를 알진데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그 말씀을 이루는데 있어서 나의 의를 드러내고, 거절할수 있겠는가 여러분! 선을 행하는 것, 구원을 이루는 것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진 것, 이루어 질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반드시 이루어야 할 것이 바로 선, 구원이 아닌가 선을 몇번 하다가 안된다고 포기하고 악을 행하는 일에 쉽게 나를 내어 놓지 말자. 믿음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내 마음과 생각대로, 나름대로 하다가 안된다고 해서 믿음생활을 되는대로, 흘러가는대로 나 자신을 놓지 말자 기도하다가 안된다고, 영적인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반드시 해야할 것을 멈추고 손을 떼뻐리는 사람들이 되지 말자는 것이다.
2.왜 선을 행하는 일들을 해야 하는가 왜 우리가 잘 안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단히 싸워 기어코 악을 행하지 않고, 선을 행하는 일들을 해야 하는가 로마서 8:6이하를 보자. 6절-육신의 생각은 사망을 가져온다. 여기서 말하는 ‘육신’이라는 말은 믿음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모든 것의 반대되는 모습들. 7절-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8절-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수 없다. 곧 나에게 유익이 없다는 말이다. 13절-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모든 것, 즉 말씀대로 살고, 주일을 지키고, 예배를 드리고, 전도를 하고, 기도하고, 삶 속에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들을 하고자 하는 이런 것들이 잘 안된다고 이런 것을 포기하거나, 무관심하거나, 별로 신경을 쓰지 않거나, 되는대로 살 때 우리들에게 찾아 오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되는 일들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심지어 자신에게 까지 유익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우리가 믿으로 살고, 믿음으로 행하면 어떤가 6절-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 8절-하나님을 기쁘시게 할수 있는 것이요, 13절-영으로 살면 반드시 반드시 산다. 그러니 이제까지는 우리가 하다가 안된다고 그만두고, 포기해버리고, 열심히 식어짐으로 말미암 결국 풍성한 삶을 살지 못하는 이런 모습에서 어떻게 하든지 간에 우리가 육을 이기고, 영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삶을 사는자들이 되자. 지금까지는 우리가 어떠했는가 영이 육에 사로 잡혀 끌려 다녔다. 그래서 영으로 살려고 했던 우리들의 결심-'기도하려는 마음, 믿음으로 긍정적으로 하려고 했던 마음, 사랑의 마음, 영적인 일을 도모하려고 했던 이런 마음들이 육에 눌려서, 육에 이끌려 살아 오지 않았는가 그러니 주일날에도 돈 벌일이나, 누구와 만나는 약속이 있으면 그것 무시하고 돈버는 일에, 사람과 했던 약속을 지키는 일에 우리가 영을 끌고 가지 않았는가 이때 여러분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영은 얼마나 탄식하셨는가를 아는가 얼마나 답답해 하셨는가를 아셨는가 얼마나 안타까워 하셨는가를 아는가 여러분의 속에 있는 성령님이 여러분들을 향하여 ‘너의 썩어 없어질 육신이 영원히 없어지지 않여는 영보다 더 귀하냐, 왜 그렇게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느냐’라는 성령님의 애타는 마음이 있은줄 아는가
그런데 그런 줄도 모르고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영혼을, 새 생명을, 새옷을 입고 세상에 갖가지 더럽고 추한 것으로 구경시키고, 입히고, 먹이우고, 대접을 했는가 마치 산모가 임신을 하고서 태아에게 해로운줄도 모르고 술, 담배를 마구 마시고, 피우는 일들을 서슴없이 하는 것과 같다. 육체에 생명이 혹시 해로울까봐, 않좋게 될까봐, 좋지 않는 영향이 끼쳐질까봐 그렇게 조심하고 함부로 하지 않거든, 하물며 하나님을 내 속에 모신자, 영적 생명을 가진자가 육신이 영을 끌고 다니면서 그렇게 해서 되겠는가
여러분! 분명히 알라. 육신이 영을 끌고 다닐 때 내 속에서 탄식하는 하나님의 아픔이 있다는 것을. 육신이 영을 끌고 다닐 때 내 속에 있는 내 생명이 좋은 영향을 받지 못한다는 것. 우리는 지금까지 육신이 영을 들고 다녔다. 영이 육에 질질 끌려다녔다. 그랬더니 우리의 영의 결국이 무엇인가 우리의 영은 살지 못하고 점점 더 육신속에 파 묻혀 가고, 생명은 잃어갈수 밖에 없지를 않았는가 우리는 불행했고, 즐거움을 몰랐고, 기쁨이 없었다. 마음 한편에서는 이래서는 안되는데, 이러면 안되지, 이러다가는 큰 일나, 하면서도 우리는 육에 끌려 살아왔지 않는가 육신이 병이들면 영적인 것 마저 기력을 잃어 버렸고, 육신의 환경이 힘이 들거나 어려운 환경에 빠지면 내 영도 같이 그 환경에 빠져 버렸다. 육신의 시험이 들면 내 영마저 손해를 보지를 않았는가 그러나 이제는 이 육신에 지지 말자. 육신에 져서 육신대로 살면 우리의 영만 손해를 보지를 않는가 그래서 바울이 로마서 8:12-13에 무엇이라 말하는가 (롬 8: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롬 8:13)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그러니 이제는 우리의 영이 육을 지배하고, 들고 다니고, 이끄는 사람으로 살아가자.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있는 나의 새 생명, 영이 사망의 자리, 멸망의 자리, 불평의 자리에 있는 내 육신을 불끈들어 생명의 자리, 기쁨의 자리, 믿음의 자리로 들고 나오게 하자. 여러분! 비록 내 육신이 병의 자리에 있다 할지라도 영으로 육신을 들고 나올 때 그 육신의 질병도 영에 이끌려 꼼짝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육신이 내 영을 붙잡아 쓰지 못하게 하자. 비록 여러분과 저의 육신이 피곤하고 지친다 할지라도 영으로 피곤과 지친 육신을 사로 잡아 영의 믿음의 자리로 나아갈 때 피곤도 어찌 할수 없을 것을 믿는다. 이것이 내 이야기가 아니고 성경에서 주님이 하신 말씀이다. 요한복음 11장에 나사로의 사건 나사로가 죽은지 나흘이 되었다.
그런데 나사로의 무덤앞에 선 예수님은 죽어 썩은 냄새가 나는 나사로의 영을 향하여 외친다. (요 11: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그랬더니 (요 11: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 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나사로의 육신이 아무리 죽어 썩어 냄새나는 시체였지만 생명을 불어 넣으시는 주님이 나사로의 육신속에 다시 생명, 영을 불어 넣을 때에 그 영이 육을 들고 나오지 않는가 여러분! 여러분과 저도 이 영으로 병든 육신을 병에서 들고 건강으로 들고 나오는자 되자. 여러분과 저도 이 영으로 문제 덩어리의 환경에서 육신을 들고 나오는자 되자. 오늘 본문으로 다시 돌아 가서, 사도 바울은 이 영과 육이 그의 속에서 싸우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치 않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악은 행하도다. 당연합니다. (갈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님을 거스리고 성령님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 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영은 육을 거스리고, 육은 영을 거스리게 되어 있다.
그런데 만약에 우리의 영을 거스리는 육을 좆아 행하면 영은 반드시 죽게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영이 육을 거스리게 해서 영이 육을 끌고 다니고, 지배하게 해서 나를 사망의 자리로 나아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 멸망의 자리로 나아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
3.과연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의 영이 육을 끌고, 다스리며, 지배하는, 나의 영이 육을 들고 다니 게 할 수 있는가
1롬7:25-8:2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가능하다. 바울이 육이 영을 들고 다니지 않고, 영이 육을 들고 다니도록 육과, 영과의 싸움에서 이길수 있었던 것은 오직 육을 끌고 다니는 죄의 법, 사망의 법을 이기신 주님으로 말미암을 때, 그래서 그가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에 죄와 사망의 법이 영을 끌고 다니지 못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안에 있고, 어떻게 하든지 그 주님을 붙들고 의지하려고 할 때에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님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 육이 여러분의 영을 들고 다녀서 여러분이 현세와 내세에 불행한 삶으로 살지 않기를 원하시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다는 말은 무슨 일을 하든 예수를 자꾸 생각하고, 의지하고, 내가 살길은 주님밖에 없다는 믿음으로 나가는 것을 말한다. 무슨 일이 있던 주님이 원하시는 일들을 하고자 하고, 그것을 위하여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2갈5:16,18 성령님을 쫓아 행하여야 한다. (갈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님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 5:18) 너희가 만일 성령님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쫓는다’라는 말은 우리가 ‘따라간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성령님이 나를 점령하여서, 다스리는 상태를 말한다. 성령님이 내 마음을 점령하게 해서, 성령님이 내 마음과 생각과 말과 행동과 삶을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 그 좋은 예가 사도행전 2장의 사건이다. 성령님이 120명의 사람들을 점령을 할 때에 어떤 현상들이 일어나는가 (행 2:4) 저희가 다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님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 작하니라 여기서 말하는 방언 사도들이 각지역에서 올라온 언어가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알아 들을수 있는 말을 말한다.
그런데 성령님이 그들을 점령하니까 영이 육신을 들고 다닌다. 성령님이 말하게 한다. 또 성령님이 점령하니까 전에는 사람들을 두려워 하던 육을 들고 다니면서, 핍박하고, 박해하는 그들앞에서서 담대히 복음을 전하지 않는가 이 모든 것들이 성령님이 점령을 하니까 영이 육을 들어 쓰고, 들고 다니면서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들을 하지 않는가 그러니 여러분과 저도 우리의 영이 육을 들고 다니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들을 이루어 나가게 하려면 성령님이 여러분의 영과 육을 점령하게 해서 다스리게 하자. 그러면 언제 성령님이 점령하여 다스리고 정복하는가 ㉮행2:1 기도에 전혀 힘쓸 때 성령님이 점령한다. 우리가 28일 새벽기도회를 바로 이 일을 위해서 한다. 기도해서 성령님이 나를 점령하게 하므로 우리의 영이 육을 들고 다니게 하자. ㉯행10:44 말씀을 듣을 때 성령님이 점령하다. (행 10:44)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님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내 경험과 내 지식과 내 이론과 내 이성을 접어두고 하나님을 그대로 받아 들이겠다는 것이 말씀을 듣는 것이다. ㉰행2:38 회개할때에 성령님이 점령한다. (행 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 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까지는 우리의 육이 영을 들고 다녔다. 그랬기에 돌아 보면 흥할짓 보다 망할짓을 얼마나 많이 했는가 육신에게 져서 육신이 원하는대로 살아 오지 않는가 성경은 분명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원수된 것이라고, 그것은 사망이라고,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서, 성령님을 쫓아 행하여 성령님이 나를 점령하여 나를 다스리고 지배하게하는 기도와, 말씀과, 회개를 함으로 우리의 영이 육을 들고 다니고, 우리의 영이 육을 지배하고, 우리의 영이 육을 사망에서 들고 나오게 하는자 되자. 오늘도 이시간 육이 여러분의 영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고 영이 육을 지배케 하자. 집으로 돌아갈 때에 육이 영을 들고 가는 것이 아니라 영이 육을 들고 가기 바란다. 교회에 오실 때 육은 어떻게 하든지 오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영이 오기 싫어 하는 영을 들고 교회로, 예배 드리려, 새벽기도회로 나오게 하자. 직장에 가시고, 어디를 가시든 영이 육을 들고 가서 영이 육을 다스리게 해서, 환경을 이기고,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기분 나쁜 것을 이기고, 자존심을 이기고, 이기심을 이기고, 세상의 욕심을 이길수 있기 바란다. 따라서 하자. 지금까지는 육이 영을 들고 다니게 했지만, 이제부터는 영이 육을 들고 다니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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