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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의 믿음 (롬4:1-25)

본문

로마서를 통해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바울은 오늘의 4장에서는 실제의 한 인물을 선정하여서 믿음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그 사람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아브라함이었습니다.1절에서는 아브라함을 '육신으로 우리 조상된 아브라함' 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믿고 있었고 거기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습니다.이 아브라함,그가 얻은 것이 무엇이며 또한 그것을 어덯게 얻었겠느냐하는 질문을 먼저 던지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그가 얻은 것은 의이고 그 의는 행위로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얻었다는 것이 4장에서, 바울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행위로서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2절의 말씀에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앞에서는 없느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유대인들은 그리고 특히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행위를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그들은 율법을 지키는 자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구원을 얻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그래서 그들은 율법의 세부사항까지 준수하고져 노력하였고 율법을 어기는 자에게는 엄한 벌을 내렸습니다.율법을 잘 준수하는 자신들에게 당연한 결과로 구원이 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구원을 율법준수에 대한 결과로 그 댓가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그래서 바울은 본문 4절 이하에서 일하는 사람과 그 삯을 비유로 설명하고 있습니다.일한 사람에 주어지는 삯은 일의 결과에 대한 당연한 보상입니다.일한 다음에 우리는 일한 만큼 삯을 받아야 합니다.유대인들은 구원을 당연히 받아야하는 삯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할례받은 백성이 율법을 가진 백성이 마땅히 누려야할 행위의 결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즉 바을은 일 안한자가 누리는 행복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5절의 말씀에 '일을 아니할 찌라도' 그리고 6절에는 '일한 것이 없이'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바울은 하나님의 구원을 노력의 산물로 보지 않으며 은혜의 산물로 보고 있습니다.내가 어떠어떠한 일을 했기 때문에 구원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떠어떠 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어지는 것이 구원이며 이는 하나님의 은혜의 산물임을 바울은 본문을 통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리고 그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내세운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3절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라고 먼저 바울은 반문하고 있습니다.이 질문은 아주 중요한 질문입니다.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성경에서는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즉,성경의 판단이 무엇이고 성경의 기준이 무엇이며 성경에서 말하는 우선순위가 무엇이고 성경의 의지가 무엇이고 성경의 관심사가 무엇이고 성경이 정말 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하는 질문입니다.우리는 끊임없이 성경을 향하여 물어야 합니다.성경은 묻지 않으면 대답하지 않습니다.나의 삶의 실존에서 내가 처한 형편과 처지에서 우리는 성경이 지금 나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물어야 합니다.그리고 들어야 합니다.가 장 확실하고 생생하고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우리에게 나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 성경안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라는 말씀은 성경에서는 아브라함의 의에 대하여 어덯게 말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바울은 창세기 15장6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 아브라함이 의롭다고 인정함을 받은 것은 순전히 그의 믿음 때문이었다는 말씀입니다.그의 행위때문이 아니었다는 말씀입니다.아브라함의 생애를 살펴보면은 그는 처음부터 믿음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오히려 그는 실수와 실패를 반복하는 삶을 살았습니다.그의 첫실패는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으로 떠날 때에 조카 롯을 데리고 떠난 일이었습니다.하나님은 분명히 모든 친척을 버리고 떠나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카 롯을 데리고 떠났던 것입니다.롯의 종들과 아브라함의 종들과의 싸움으로 인해 두 사람은 지역을 달리해서 거주하여야 했고 후에 아브라함은 조카 롯으로 인해 가나안 동맹군과 불필요한 싸움을 하기도 합니다.복의 근원이 되리라는 약속을 받고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들어가지만 땅에 기근이 들자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저버리고 애급으로 이주하고 말았습니다.애급의 바로는 아내 사라의 미모에 취하여 그를 얻으려고 하였습니다.이 때 아브라함은 사라를 자기의 누이라고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우리는 여기에서 아브라함의 연약함과 그리고 비겁함을 보게 됩니다.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상황에서도 간섭하시어 아브라함과 그 가족들을 애급과 바로의 손에서 구출하셨습니다.아브라함을 구출하신 하나님께서는 그와 언약을 다시 체결하시면서 그의 몸에서 후자가 날것이며,그리고 큰 민족을 이루게 될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그러나아브라함은 이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였습니다.후사를 얻기 위해 당시의 풍습대로 여종 하갈의 몸에서 이스마엘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하나님의 약속을 포기하고 그는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이제 하나님과의 약속은 파기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그러나 파기한 것은 아브라함이었지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하나님은 인내하셨고,하나님은 다시 용서하셨으며,당신이 맺으신 언약에 신실하셨습니다.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떠났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떠나지 아니하였다는 말씀입니다.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의로써가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의 삶을 살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후에 믿음의 조상도 될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뿐만이 아니라 우리들 모두도 그렇습니다.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의 백성이 되었고 그의 자녀가 되었습니다.우리는 날마다 주님을 떠나있었고 주님께 신실하지 못했습니다.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에게 신실하셨으며 은혜로 오늘날까지 우리의 삶을 인도하셨습니다.5절의 말씀대로 일을 아니할 찌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바울은 다윗의 시를 인용하여 7절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이것이 은혜이고 본문의 표현대로 행복입니다.우리는 원래 죄인이었으며 불법을 일삼는 사람들이었는데,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인정치 아니하시고 오히려 우리를 의인으로 인정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9절의 말씀을 보십시요 /그런즉 이 행복이 할례자에게뇨 혹 무할례자에게도뇨 대저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하노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그리고 11절 이하에서는 율법보다는 믿음이 앞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아브라함이 의롭다고 인정함을 받은 것도 할례받기 이전에 무할례시에 있었던 일이고 할례라는 것은 그 의를 나타내어주는 일종의 표라는 것입니다.11절이하에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써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아브라함은 할례를 받지 않은 자나 할례를 받은 자 모두에게 믿음의 조상이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그리고 그것은 바로 오직 믿음으로 이루어 진다고 바울은 본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13절의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그렇습니다.우리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며 믿음의 약속의 자녀가 되고 믿음으로만이 의롭다고 인정함을 받을 수 있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우리는 모두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이제 바울은 본문 17절 이하에서 본격적으로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아브라함의 믿음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까지 율법의 믿음과 은혜의 믿음을 대비하였습니다.17절이하의 말씀을 읽어보면은 처음에 말씀드린 아브라함의 실패와 모순되어지는 말씀들로 우리가 받아들이기 쉽습니다.구체적으로 19절의 말씀에는 그의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 졌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우리의 아는 바는 그의 믿음은 약해졌고 그는 의심하였고 하나님의 약속을 파기하고 인간의 방법대로 이스마엘을 갖는 등,그의 믿음이 약하여 진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그의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여러분이라면 어덯게 해석을 하시겠습니다. 약해진 것은 그의 율법의 믿음이었습니다.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때 내가 꼭 지키리라 다짐하며 또 다짐했던 것들은 약하여졌습니다.목숨이 아까와서 하나님의 약속을 저버리고 두번씩이나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기 까지 그의 율법적인 믿음은 약하여 졌습니다.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은혜의 믿음은 강하여 졌습니다.은혜의 믿음이라는 말씀은 그의 행위에 기초한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인내와 하나님의 은혜에 기초한 믿음이라는 말씀입니다.결국 이 말씀은 믿음이라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 생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의 선물로 주시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비록 우리의 율법적인 믿음은 약하여 진다고 하여도,우리의 신실함,우리의 진실함이 약하여 진다고 해도 결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믿음은 약하여 지지 아니하고 더욱 강하여 진다는 것이 성서가 우리에게 약속하고 있는 믿음의 내용인 것입니다.그리고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아브라함의 경우입니다.그가 믿음의 조상이 될수 있었던 것은 철저히 그의 행위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셨고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주시기로 작정하시고 약속하시는 은혜의 믿음이 본문에서 몇가지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첫째는,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믿음입니다.우리에게 있어서 없는 것은 무가 아닙니다. 없는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일 뿐이라는 것입니다.그러니까 없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입니다.여러분,무엇이 필요하십니까 무엇을 원하십니까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우리에게 있어서는 모두 있는 것이고 우리는 이미 가진 자들입니다.우리는 결코 가난하지 않습니다.우리는 결코 약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은 우리에게는 없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우리는 부요한 자들입니다.우리는 이미 가진 자들입니다.문제는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믿음을 갖는 일입니다.
둘째는,바랄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믿음입니다.바랄수 없는 상황을 가르켜서 우리는 절망이라고 부릅니다.100세가 되어서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불가능입니다.그래서 그의 율법적인 믿음은,행위의 믿음은 약하여 졌습니다.
왜냐하면 절망의 상황에 부딪쳤기 때문입니다.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면서 여러가지의한계상황에 부딪칩니다.내 힘으로는 도저히 어덯게 할수 없는 상황에 부딪치기도 합니다.원치 아니하는 사고를 당하기도 합니다.참으로 연약한 우리들은 바랄수 없는 상황에 너무나 자주 빠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찌하시겠습니까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결코 우리와 맺은 언약을 파기치 아니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그리고 신실하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믿음을 소유하는 것입니다.즉 바랄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믿음입니다.이것이 곧 소망입니다.믿음의 사람은 결코 소망을 잃지 않습니다.어떠한 절망의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그리고 끝까지 믿는 것입니다.올해까지만 기다려 보고 안되면 안믿는 것이 아니라 요것이되면 믿고 안되면 안믿는 것이 아니라 되든 안되든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끝까지 믿는 사람이 결국에 승리하는 삶을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바랄수 없는 절망의 상황에서 이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고 끝까지 믿은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욥입니다.그리고 대작 로마서를 기록하는 바울 자신입니다.우리의 승리한 믿음의 선배들은 모두가 바랄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을 가지고,소망을 가지고 끝까지 전진하였던 사람들이었습니다.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절망의 상황이 아닙니다.문제는 그러한 상황에서 믿음을 잃지 아니하고 승리할수 있느냐는 것입니다.비록 우리는 약하여 진다 하더라도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믿음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나아갈 때,반드시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인도하실 것을 분명히 믿고 우리는 전진하는 것입니다. 세째로,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는 믿음입니다. 찬송가 399장은 바로 이 약속을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는 찬송입니다./주의 약속하신 말씀위에서 영원토록 주를 찬송하리라/소리높여 주께 영광돌리며 약속믿고 굳게 서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오늘 말씀을 다 기억하실 필요는 없습니다.그러나 한가지 만이라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그것은 약속믿고 굳게 서자는 것입니다.우리는 모두 약속의 백성입니다 언약의 공동체입니다.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의 불성실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부르셔서 우리와 언약을 맺으셨습니다.23절의 말씀을 보면은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이것이 바로 우리의 믿음인 것입니다.오늘의 제목이 은총의 믿음인데 그 은총의 믿음은 바로 25절의 말씀을 믿는 믿음입니다.예수는 우리의 범죄함을 인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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