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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난이 유익하다 (롬5:1-5)

본문

오늘 본문 가운데서 3절 말씀에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는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환난 중에도 즐거워한다면 그건 좀 머리가 이상한 사람입니다. 실제로 사실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놀라운 사람입니다. 여기에서 환난이란 것은 그 원어가 '들립세신'이란 것인데 아주 심하게 비틀어서 쥐어 짜는 고통을 말합니다. 어지간한 고통이 아니고 아주 악착같이 피와 눈물이 나오도록 쥐어 짜는 그런 고통입니다.
그런데 이런 고통 속에서도 즐거워한다는 말은 환난이 있는데 환난 가운데에서도 담대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이 누구냐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라고 했습니다.바울 사도의 '우리는 환난 중에도 즐거워한다'라는 것의 문제는 이 우리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입니다. 도데체 어떤 사람이기에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는지 오늘 말씀을 세가지로 나누어서 애기하겠습니다.
첫째는,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는 사람들, 우리라는 사람들이 누구냐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3절에 '우리가' 그랬습니다. 이 사람들만 되면 되는 것입니다. 환난이 있든 없든 간에 거기에 신경쓰지 말고 환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는 그런 사람만 되면 되는것입니다. 그들은 환난을 두려워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러면 그 사람은 어떤 사람들이냐 오늘 본문에서 보면 세 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1).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는 자, 이런 사람들은 환난 중에도 담대하다고 했습니다.(1절)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과 나와 어떤 관계냐 하면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는 사람 즉, 영혼에 평안이 있는 사람은 세상을 향해서 담대합니다. 하나님과 화평이 뭡니까 하나님이 내 아버지되시는 거지요. 그게 세상을 이기는 평화입니다. 그게 근본입니다. 여러분 대통령이 내 아버지라고 해 보십시오. 하물며 하나님이 내 아버지이신데 겁날게 뭐 있어요. 얼마나 힘이 나겠어요.
(2).2절의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자는 환난 중에도 즐거워한다' 이 말이 무슨 말인가 하면 지금 현재는 환난 중에 있기 때문에 심히 답답하고 괴롭지만 미래에 소망이 있는 사람입니다. 앞으로 소망이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기 때문에, 오늘은 좀 어렵지만 내일이 있는 사람 미래가 있는 사람, 앞으로 소망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낙심하지 않습니다.
(3).5절에 '우리에게 주신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이 말씀은 성령님 받은 사람을 말하는데 아주 재미있게 표현했습니다. 여기에 컵이 있잖아요. 빈 컵인데 유리컵이에요. 이 컵에다가 주전자에 있는 물을 따라 붓는 겁니다. 그러면 컵에 주전자의 물이 올라오는 것이 보이잖아요. 그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님이란 그릇으로 우리 마음에 이렇게 부은 바 된다는 뜻이죠. 그러니까 내가 환난 중에 있을수록, 어려움 가운데 있을수록 하나님의 사랑이 실제로 내게 부은 바 되며 내 마음과 내 생활에 부은 바 된다는 말입니다.하나님께서 지금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붙들고 계시다는 것을 아는 사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데 괴롭기 때문에 더 사랑하신 것입니다. 환난 중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이 더 부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랑하는 가족이라면 내가 괴로워할 때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와서 사랑을 부어 주잖아요. 여보 왜 그래요 하고 위로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고, 하나님이 내 아버지이신 사람, 그리고 소망이 있어 지금은 좀 어렵지만 앞으로 미래가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더 잘된다는 소망이 있는 사람, 그리고 하나님이 오늘도 나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 오늘도 나를 위로해 주셨고 사랑해 주셨고 붙들어 주셨고 깨닫게 해 주신 그 하나님의 사랑이 부은 바 되었다는 사실을 실제로 알고 있는 사람. 자, 여러분도 그런 사람이라고 하실 수 있습니까 그러한 넓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님이 나를 붙들어 주시기 때문에 환난중에도 담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새롭게 그런 힘을 얻으시기를 축원합니다.
힘을 얻으십시오. 내가 이 따위 환난에 겁을 먹을 줄 아냐 하고 큰 힘을 받으십시오.하나님께서 밀어 주잖아요. 힘을 내라고 하나님이 사랑으로 팍팍 밀어 주는 겁니다.
둘째는, 그러면 환난 중에서도 즐거워하는 이유를 우리는 더듬어 봐야 됩니다. 막연히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고 할 때에 감정적으로 "믿습니다"라고 하면 되는 것이 아니예요.지적인 면에서도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힘이 있는 것입니다. 막연하게 믿습니다 그러면서 감정적으로는 흥분해서 힘이 없는 겁니다. 분명하고 논리적이며 합리적이어야 됩니다. 그래야 뒤에서 힘이 강하게 오는 것입니다. 과연 환란 중에서도 즐거워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여섯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환난이 오게 되면 나는 깨어지고 내 자신의 실상이 드러나게 됩니다. 사람이란 가만 놔두면 다 천사 같아요. 저 보십시오. 목사 가운 입고 멋지게 서 있으닌까 얼마나 거룩하게 보입니까 이것이 진짜 모습일까요 아닙니다. 이렇게 거룩한 가운 입고 거룩하게 보이는 이 손목사를 환난의 망치로 꽝 때려 보면 이 껍질이 다 벗겨져 버립니다. 깨져 나갑니다. 호두껍질 깨 나가듯이 그리고 내 속에 들어 있는 나의 참 실상의 내면 세계가 드러납니다. 뭐가 보입니까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환난을 당했을 때 얼마나 나는 쪼그라지고 형편없는 모습입니까고집세고 혈기 많고 옹졸하고 사랑이 어디에 있으며 믿음이 어디에 있으며 지혜가 어디에 있습니까 형편이 없지요.참으로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그러한 나의 부끄러운 모습이 드러남으로 인해서 무엇이 있습니까 회개가 있습니다. 오, 하나님 나는 이런 모습입니다. 뼈아픈 눈물의 회개가 나옵니다. 때문에 환난을 통해서 거듭 거듭 흔들어 봐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실상이 또 드러나고 또 드러나서 또 회개하고 또 회개하고 하는 이것이 얼마나 큰 유익입니까
(2).환난을 당함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됩니다. 그래서 환난은 모험이예요. 두 가지로 작용합니다.하나는 환난을 당하면 어떤 사람은 딱 넘어져 버립니다. 가짜들이지요. 완전히 절망해 버립니다.하나님을 떠나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은혜를 참으로 받은 사람은 환난이 심할수록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그로 인해서 내가 또다시 체험하는 것은 이러한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환난 가운데서 괴로워서 너무너무 슬퍼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부르짖고 의지하는 가운데서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계시구나 하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3).환난의 유익은 연단을 이루는 것입니다. 3절에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이 연단이란 말이 "독키매"라는 것인데 그건 검증하고 검증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전자제품을 사러 가면 그 전자 제품에 딱지가 붙었어요. 어떤 딱지냐 하면 '검사필'이라고 붙었지요 이 제품은 엄격한 검사를 통과한 합격품이므로 안심하고 쓰십시오. 그런 뜻입니다.연단이란 말이 바로 그 말입니다. 도대체 나라고 하는 존재가 참으로 하나님의 백성인가 아니면 이것 가짜가 아닌가 하는, 그래서 불량품인지 진짜로 은혜받은 하나님의 자녀인지의 검증이 바로 환난입니다.그래서 혹독한 환난으로 100번, 1000번 수없이 환난으로 통과해서 검증해 봤는데 틀림없거든요. 환난을 검증하면 할수록 이게 진짜 하나님의 자녀라는 거지요. 그게 연단입니다. 그러면 더 이상 이 사람은 검증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합격품이다. 그렇게 되면 걱정할 필요 없어요. 이 사람은 연단 받은 사람이에요. 내놓아도 안 넘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로 우리가 이 자리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연단의 그 자리, 검증이 끝난 사람, 다시는 흔들리지 않는 사람으로 그 자리에 꼭 들어가시기를 축원합니다.

(4).환난의 유익은 환난을 통해서, 환난을 받은 자는 위로자가 되는 겁니다. 이 땅에는 수 많은 환난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어야 됩니다. 누가 위로할 수 있습니까 먼저 환난을 당해 본 사람만이 위로할 수 있습니다. 이게 환난의 큰 비밀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4절에 보면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장로님이 저에게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그분이 섬기는 교회에 어느 자매님의 아들이 죽었어요. 갑자기 아들이 죽었는데 이 장로님이 그 아들을 잃은 자매님께 가서 위로를 좀 하고 싶은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기가 가서 아무리 번지르한 말로 위로해 봤자 그 자매 귀에도 안 들어갈 것 같더래요. 말을 못해서도 아니고 위로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럴 이유는 이 장로님이 생각할 때에 자기는 아들을 잃은 부모의 슬픔을 맛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더랍니다.그러닌까 그 자매의 슬픔을 진정으로 모른다는 것입니다. 건성으로 가서 하는 것이 될 수도 있는데 어떻게 위로할까 그러다가 마침 최근에 외아들을 사고로 잃어버린 여집사님이 생각나더래요, 그래서 그 여집사님한테 전화해서 같이 갔더니 아들을 잃어버린 두 어머니가 만났는데 아무 소리도 않고 두 분이 서로 끌어 안고 하염없이 울기만 하더래요. 말이 없어요. 아들을 잃어버린 두 어머니가 서로 끌어 안고 울기만 하는 바로 그 속에 서로 통하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나눔이 있는 것입니다. 저는 한때 왜 나는 이런 저런 인생의 고달픔과 단맛과 쓴맛을 봐야 되는가 하고 제자신을 서글프게 생각했던 적이 솔직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와서는 바로 그러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의 아픔을 느낄 수 있고 위로할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환난의 큰 비밀입니다.
(5).환난의 유익은 환난을 당하는 성도가 다른 성도들을 깨끗케 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 좀 이상하지요. 하지만 이것이 참 소중합니다.저는 여러분을 대할 때에 영육 간에 형통하고 잘 되신 분들을 보면 그런대로 기뻐요. 좋으닌까 평안하지요. 그렇지만 또 우리 성도들 가운데에는 남달리 환난이 심하고 고난이 많은 그런 성도들도 계십니다. 제가 그 분들을 볼 때에 그 어려운 환난 속에서도 믿음으로 살려고 발버둥치는 그 가냘픈 모습과 피투성이 되어서 몸부림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면서 제가 무엇을 느끼느냐 하면 저의 흐트러진 심령, 무디어진 마음 또 무슨 일로 불평을 갖고 짜증을 냈던 내 자신의 추한 모습이 너무너무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그분들, 그 고난 속에 있는 분들을 대할 때마다 다시 한번 내가 정신을 차리게 되고 다시 중심을 잡게 되고 내 심령이 깨끗이 씻어지는 새 생명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순결해야 되는데 하나님의 교회가 순결해지는 방법중의 하나는 성령님의 말씀이고 또 하나는 환난 중에 있는 성도들이 그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비록 그분들은 환난 중에 있기 때문에 내가 무슨 일을 합니까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의 생명의 뿌리이며 우리 교회를 교회답게 만드는 그런 귀한 일을 누가 하고 있느냐 하면 우리 성도들 중에 남달리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보화는 그런 분들입니다. 이 말씀이 이해가 되어지기를 축원합니다.
 그 분들은 환난중에 있지만 그 환난 중에 있는 그 성도의 모습 자체가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깨끗케 만듭니다. 저는 제가 알고 있는 한 장로님을 보면 너무 부끄러워져요. 내가 얼마나 추한 사람인가 나는 장로님에 비해서 100배, 1000배 감사하고 살아야 할 사람이예요.
그런데 그러지 못하거든요. 저는 장로님의 100분의 1도 못되고 1000분의 1도 못되는 사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는 장로님의 환난을 알기 때문입니다. 모르는 사람은 비웃을 지 모르지만 정결케 하는 생명을 유지하는 귀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6).환난의 유익은 증거를 하게 됩니다. 물론 처음에는 조롱을 받습니다. 믿어서 뭐 좋은게 있느냐 입을 비쭉거립니다. 가슴이 아픕니다. 시편 42편 3절에 "네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뇨하니" 종일토록 내 마음에 칼로 찌르는 것 같습니다. 대답할 수가 없어요. 현실이 어려우니까, 조롱거리입니다. 사람들이 다 쳐다봐요, 입을 삐죽거리고 봐요.어떤 사람은 사랑으로 보지만 주목의 대상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으로 끝나겠습니까 그렇게 주목의 대상이 되게 한 다음에 하나님께서 그를 축복하십니다. 되게하십니다. 그래서 영광을 받습니다. 특별히 가까운 가족들 에게는 이 방법외에는 증거가 안 됩니다. 말로 증거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가족이 나를 괴롭히고 비웃고 핍박하는 내 사랑하는 가족들이 마침내 그를 지켜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아름답게 설 때 점점 더 영광스러워지는 모습을 보고는 마침내는 여러분 가족들이 고개를 숙이고 우리 아버지 앞으로 돌아오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들을 구원하는 증거의 길이 됩니다.
셋째는, 환난 중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성도 여러분 3절에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한다고 했습니다.한마디로 즐거워한다고 했지만 그 말씀을 들여다 보면 네 가지가 있습니다.
(1).우리가 환난 중에 회개합니다.
왜냐하면 환난 중에서 나를 보게 됐기 때문에, 내 자신의 형편없는 모습 부끄러운 을 다시 한번 볼 수 밖에 없기 때문이고, 우리가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회개합니다.너무 부끄러워서 너무 처참하게 무너졌기 때문에 회개합니다. 회개하는 영혼은 즐거움이 있어요. 평안이 있습니다.
(2).환난 중에는 괴롭기 때문에 나의 연약함을 알기 때문에, 나의 어리석음을 뼈저리게 느끼기 때문에 더욱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쉽게 말하면 환난을 당한 사람은 까불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환난 당하기 전에는 막 까불었어요. 왜요 자기 잘난 맛으로 산 줄로 알거든요.
그런데 환난을 당해 보면 이것이 쑥 들어가 버립니다. 교통 사고로 한 번 혼나봐야 안 까불어요. 핸들 잡고 기도하라고 해도 처음에는 웃어요. 핸들 잡고 무슨 기도를 하냐고 그래요. 그러다 정말로 교통 사고 당하면 핸들 잡고 진지하게 기도합니다. 교만할 수가 없어요. 이제는 환난을 통해서 내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에 그만큼 진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믿음의 사람이 되는 거예요.
(3).기다림입니다. 이 환난은 반드시 지나갑니다. 기다리십시오. 시간이 필요합니다. 환난은 소망을 이루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셨어요. 우리가 원하는 소망이 반드시 이루어 집니다. 환난은 지나갑니다. 마침내 영광이 나타납니다. 시편 40편 1절에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라고 했습니다. 소망이 꼭 이루어 집니다.
(4).우리가 환난을 당하게 되면 부끄러움이 옵니다. 굉장히 부끄러워요. 그래서 숨어 버립니다. 나타나지를 않아요.외톨이가 됩니다.슬픔의 너울을 둘러쓰고 쓸쓸히 다닙니다. 그러지 마십시오. 절대로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마귀의 함정입니다. 부끄러우닌까 그럴 수 밖에 없겠지만 환난은 하나님의 은혜로 사랑 안에서 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슬프고 괴로워도 더 앞으로 나와야 합니다. 어느 자매님의 사랑하는 남편이 갑자기 죽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그만 남편이 죽었기 때문에 슬퍼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자매가 너무 슬퍼했어요. 정신없이 울었습니다. 관 속에 들어 있는 자기 남편을 보고 애기 아빠의 이름을 부르면서 목사님 왔소 일어나요! 그래요. 그렇게 슬퍼했기 때문에 제가 참 걱정이 됐습니다. 이 초상이 끝난 다음에는 완전히 무너져 버리거나 잘못 될 것 같아서 참으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초상이 끝나고 그 다음 주일인데 교회에 나왔어요. 물론 슬픔이 가득한 모습이지만 교회에 나왔어요. 여러분 그걸 통해서 슬픔이 많을수록 그 슬픔을 짊어지고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나타날 때 다른 하나님의 백성들이 크게 힘을 얻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환난 중에 있다고 골방으로 들어가지 마세요.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로 오세요. 가운데에 서면 우리 형제들이 힘을 얻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고 계십니다. 반드시 위로하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오늘의 환난 속에서 쓰러지지 말고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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