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왕노릇 (롬5:17-18)
본문
미국의 흑인들이 돈을 벌면 제일 먼저 사는 것이 캐딜락이다. 이들 에게 자동차는 가장 매력적인 것이요 그중에도 캐딜락은 부의 상징으 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던 캐딜락을 끌고 다니면서 왕이 된 느낌을 갖는다. 이들에게 아무리 다른 것을 주어도 절대로 만족이 되지 않는다. 일단 캐딜락을 가져야 그 다음에 다른 것 들이 만족이 되기 시작한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 사람들도 비슷하다. 일단 외형적으로 최고의 것을 가져다 놓아야 부자가 되고 귀족이 된 느낌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비싼 것을 사서 집에 전시하려 한다. 그것을 부의 상징 으로 의지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서 중국 사람들은 정반대로고 한다. 아무리 부자라도 외모로는 절대로 티를 내지 않는다. 부자인지 아 닌지는 겉으로는 절대로 알 수 없다. 외면에 나타나건 않건 재산을 부로 보고 의지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것이다.
그것말고 의지할 것도 세상에는 많이 있다. 사람들 은 명예나 친구를 신뢰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기술과 신 용을 신뢰하기도 한다. 재산에 덧붙여져서 이런 것들이 중요한 의지 대상이기는 하다. 하지만 사실상 얼마나 불안한 대상인가! 이런 것들 이 과연 우리가 신뢰할 대상인가! 왜 이런 약한 것들 밖에 의지할 대상이 없는가! 좀 더 확고한 대상은 없는가! 이러한 상황은 인류가 타락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본래는 하나님이 인간의 의지 대상이었다.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말씀을 순종함으로 영생을 누리게 만들어졌다. 말씀이 곧 하나님이었기 때문이었따. 하나님은 자신을 말씀에 실어서 인간에게 주셨다. 인간과 그렇게 커뮤니케이션을 한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의 도움을 말씀을 통해서 받게 되었다. 그말씀 은 곧 하나님이었기에 생명이었고 능력이었다. 보라 최초의 인간이 얼 마나 영광스러웠던가! 하나님의 형상이 빛나는 모습은 만물 위에 영광 스러웠다.그러나 어떻게 했던가 인간의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였다. 그리고 마귀의 말씀을 받아 복종한다. 이것이 바로 선악과의 사건이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단절이다. 그로부터 인간의 운명은 마귀가 지배한다. 조상 한 사람의 범죄로 모 든 후손이 죽음의 그늘에 나앉게 된 것이다. 인간 속에는 하나님이 축복이 임할 수 없었다. 대신 마귀의 선물이 채워지게 된다. 사람에게는 병이 왔고 가난이 왔고 미움과 다툼이 왔다. 툭하면 남을 원망하고 좌 절하고 절망하였다.이것이 본래 인간 자신 안에서 나온게 아니라 하나님의 결핍이요 마귀의 선물이었다. 한계에 빠진 이런 인간들이 의지할 대상은 세상의 것들뿐이었다. 세상의 재산과 권력을 의지하는 것이다.그것들에 모든 시간과 마음을 쏟 고 모든 정력을 다하다.
그것들을 가지거나 사용하는 것이 잘못된게 아니다. 그것들을 의지하고 그것들을 하나님처럼 경배하는 것이 잘못 된 것이다.그러한 세상의 물질들이 악한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것 을 악하게 사용하는 것이 문제였다. 이것은 마귀의 방법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선하게 사용하시지만 마귀는 모든 것을 악하게 사용한다. 하나님이 없는 인간의 마음은 악 이다.출발부터가 죄다. 결과적으로 평안도 기쁨도 없는 형버이요 죽음 이다. 그러니 죄에 빠진 인간이 세상의 아무리 좋은 것들을 얻어도 절 대로 그것으로 의로운 일을 할 수는 없다. 더욱 더 죄를 짓는데 사용 할뿐이요 하나님의 원수 노릇할 뿐이다. 인간은 왕노릇하기를 원한다. 누구든지 남의 밑에 있지않고 지배하는 자리에 있고 싶어한다. 그러나 죄인에게 왕노릇하라고 해보라.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죽음의 그늘에 있는 인간은 죽음으로 지배하려고 할 것이다. 모든 권력이나 재산이 더욱 죄짓는데 사용딜 것이고 하나님과 원수되는 일에 허비될 것이다. 권력과 재산이 클수록 폭군이 될 것이 요 악은 더해질 것이다. 히틀러는 모든 권력을 움켜쥔 뒤에 6백만의 유태인을 죽엿따. 2차대 전서 수천만 쏘련에서만 2천만을 죽게했다. 스탈린이 죽인 자기 나라 사람이 역시 2천만이 넘는다.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이 죽은 것이다. 김일성부자가 저지른 짓은 얼마나 혐오스러운 것인가! 권력자 말고도 유명하고 돈많은 사람들의 죄악은 말로 다할 수 없다. 엘비스 프레슬 리의 방탕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다. 이들이 신뢰한 것은 세상의 힘이요 이들의 출발점은 자신의 죄였다.
그러므로 절대로 이 방법은 사람을 유익하게 하지 못한다. 이러한 왕 노릇은 단지 죄의 왕이요 죽음의 지배일뿐이다. 누구든 구원받지 못한 인간에게 건강과 재산과 시간을 주어보라 반드시 그는 죄를 지을 것이다. 보라 역사가 그것을 여실히 증명하지 않았던가. 아무도 여기서 벗 어나는 사람은 없다. 한 여신이 인간을 사랑했다. 그와 결혼한다. 그녀는 제우스에게 자기 남편에게 영원한 생명을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영원한 젊음을 함 께 줄 것은 잊었다. 그냥 죽지 않을뿐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남편은 수백년을 살았지만 너무도 흉칙한 모습이었다. 이간이 불로초를 먹고 영원히 산다면 이 모습이 될 것이다.죄악 속에 영원히 산다. 이것이 바로 지옥이요 영원한 죽음이다. 참된 생명은 영원한 젊음이요 하늘의 기쁨이다.이것을 주기 위해서 그리스도는 사람이 되셨다. 우리들과 같아지심은 우리에게까지 낮아지 시려는 마음이다. 우리의 힘으로 감당 못할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다.우리는 병을 감당하지 못한다.미움을, 약함을, 절망을, 죽음을 감 당하지 못한다. 그러기에 그가 대신 짊어지셨다. 그래서 그가 그 악한 것들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이다. 이제 그리스도는 우리 삶의 방향을 바꾸길 원하신다. 우리가 신뢰하는 세상을 다시 세상에서 자신에게 돌릴 것을 원하신다. 이제 우리는 신뢰의 대상을 바꾸어야 한다.그리스도가 바로 신뢰의 대상이다. 그의 말씀을 믿고 그가 하신 일을 믿는 것이다. 그가 하신 일이 무엇인가 죽음의 그늘을 걷으신 것이다. 동시에 병과 가난과 미움으로 병든 마음을 치료하신 것이다. 1838년 자마이카의 노예들이 해방되었다. 그들은 커다란 관을 만들었다. 거기에 그들을 억압하던 물건들이 담겼다. 족쇄,채찍,쇠사슬,고문 기계,쓰던 모자.더러운 옷들이었다. 그들은 관을 땅에 묻으면서 과거 를 잊기 바랐다. 그래도 커다란 비석을 세웠다. "노예의 무덤"이었다. 그러나 그런다고 습관이나 의식도 죽은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훨씬 뒤에까지 살아 남아 있었다. 같은 일은 우리에게도 나타난다. 주께서 우리를 해방시키셨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옛습관과 의식에 눌려있다.
그리스도가 묻힐 때 무 엇을 했는가 우리의 굴레를 함께 묻은 것이다. 우리의 죄를 과거의 악한 습관을, 늘 불평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우리의 병을 , 우리의 약 함과 가난을, 비록 우리가 느끼지 못해도 이 사실을 인정하고 믿어야 한다. 그것이 그를 신뢰하는 것이다. "그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들을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 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더니"(엡2:2-3). 이 말씀이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 어떻게 했던가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 2:4-6) 여기의 시제는 모 두 과거이다.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함께 일으켰고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이 사실은 이미 완료된 것이다. 우리를 하늘의 왕으 로 그리스도와 함께 왕좌에 앉히셨다. 이것이 그가 우리와 같이 되신 이유이다. 우리를 자기와 같이 되게 하심이다. 그것이 우리가 누릴 일이다. 우리는 별안간 죽음의 그늘에 서 하늘로 들려 앉혀진 것이다.마귀의 노예가 별안간 하늘의 주인으로 만드러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통치하는 자가 된 것이다. 자신 의 운명을 지배하고 역사를 움직이여 나가는 존재가 된 것이다. 물론 자기 힘으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다.
그러나 문제는 노예의 의식이 아직도 살아있다는 사실이다. 아직도 옛사람의 의식구조 속에서 산다. 아직도 세상을 섬기며 마귀를 섬기고 있지 않은가! 아직도 병과 가난을 두려워하고 아직도 남을 미워하고 아직도 낙심하고 절망한다. 육신의 한계를 느낀다. 피곤해 하고 약하 다고 믿는다. 해방되었건만 아직도 마음은 노예요 아직도 노예의 습관 을 조금도 벗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믿음이 무엇인가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서 해 주신 일의 내용을 믿는 것이다. 무엇이 믿을 내용인가 많다. 그러나 가장 최상의 내용은 이것이다. 가장 복된 소식이 이것이다. 우리의 위치는 옮기워졌다. 자 기삼의 노예에서 지배자로 바뀐 것이다. 사망에서 하늘나라로 옮기셨다.이미 끝난 사실이다. 만약 누가 옮겨달라고 기도하면 그는 믿지 않는 자이다. 그는 신자가 아니다. 앞으로 무엇을 하겠다는게 믿음이 아니다. 이미 그리스도가 해 주신 일을 믿는 것이다. 앞으로의 문제도 여기에 근거해서 이미 해결된 것이다.우리는 이미 하늘에 앉혀진 사람들이다. 이 일을 하나님이 하셨다.
그렇다면 우리의 믿음이 무엇인가 우리도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현실은 어떻게 하려는가 그냥 내버려두어라. 노예의 사고와 입 장을 버리는 것이 우선이다. 고통의 밑바닥에서 사람들을 부르짖는다. 그러면 돈이 오고 도움이 오고 그리고 병이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수도 없지는 않다.그러나 우리는 고통 속에서도 먼저 우리의 위치를 확인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의식을 지옥으로부터 옮겨야 한다. 우리의 의식을 노예에서 지배 자로 바꾸어야 한다. 우리를 성질 나쁘고 비판적이고 부정인 상태에서 하늘의 사람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리하여 왕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돈도 도움도 병나음도 다 그 다음 의 일이다. 노예에게는 돈이 없다. 노예에게는 존경도 없다. 오직 고 통과 모욕뿐이다. 자비를 요청해도 여전히 그 수준의 도움 밖에 오지 않는다. 그러나 왕에게는 모든 것이 있다. 왕은 재산도 존경도 있다. 부하도 많고 돕는 이도 많다. 그는 왕이기 때문이다. 신앙 의식도 노 예가 아닌 왕임을 아는데서 시작한다. 그리스도가 우리와 같아지신 것은 우리를 그와 같아지게 하려는 것이다. 이미 그와 하나되지 않았는가 이 사실을 인정하라.
그래서 자신 이 특별한 존재가 된 것처럼 여기라. 그리스도의 모든 생명이 자기 속 에 들어와 있다고 여기라. 그리고 그 생명으로 통치하고 내 살믈 지배 할 수 있다고 주장하라.마치 내가 위대한 신앙인이 되고 그리스도의 새로운 능력의 사람인 것처럼 여기라. 크고 아름다운 생각을 하라. 비록 상황이 무엇이라도 마치 그리스도 가 지상 생활을 하는 것처럼 바라보라. 잠시 하늘의 처소에서 땅으로 내려와 일하는 것처럼 여기라. 그렇게 최면을 걸라는게 아니다.이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이미 앉혀진 사람이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생명으로 통치한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인 내와 연단과 아름다움이 있다. 베드로는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다."그러므로 이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 를 절지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벧후1:3). 우리의 위치는 하늘나라이다. 우리는 거룩한 백서이요 왕같은 제사장 들이다. 우리가 무엇을 걱정할 것인가하나님의 일을 하셨다는 사람이 돈을 걱정할 것인가 누구를 의지할 것인가 사람을 의지할가 돈을 의 지할까 무엇이 신뢰의 대상이 될까 단 하나, 예수 그리스도 아닌가! 그는 내 안에서 나와 하나가 되셨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처럼 생각하고 그리스도처럼 행동한다. 자.이제 세상 것들을 다 놓고 새롭게 일어나자.흑인들이 캐딜락을 매 달리고 중국인들이 돈에 매달리는 것처럼, 내 안의 그리스도를 신뢰하 자. 그래서 내 삶이 더 이상 땅에서 기는 벌레가 아님을 인정하자. 그리스도가 이미 고양시켜 놓은 우리의 삶을 그대로 인정하자. 하늘에 보좌를 가진 이들이여. 이 사실을 인정하자. 당신 속에 믿음이 있다. 무한한 지혜와 능력과 영광이 있다. 생명이 왕노릇을 그리스도처럼 사는 것이다. 사랑과 의로 왕노륵한다. 이 왕은 때때로 약해 보이기도 하고 손해 보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 속이는 자 같기도 하고 바보같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참으로 사는 자요 강한자요 모두를 유익하게 하는 사람이다. 이 왕은 참으로 지배한다. 자기의 마음과 삶을 , 자기의 운명을, 그리고 세상을 지배한다.
그것말고 의지할 것도 세상에는 많이 있다. 사람들 은 명예나 친구를 신뢰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기술과 신 용을 신뢰하기도 한다. 재산에 덧붙여져서 이런 것들이 중요한 의지 대상이기는 하다. 하지만 사실상 얼마나 불안한 대상인가! 이런 것들 이 과연 우리가 신뢰할 대상인가! 왜 이런 약한 것들 밖에 의지할 대상이 없는가! 좀 더 확고한 대상은 없는가! 이러한 상황은 인류가 타락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본래는 하나님이 인간의 의지 대상이었다.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말씀을 순종함으로 영생을 누리게 만들어졌다. 말씀이 곧 하나님이었기 때문이었따. 하나님은 자신을 말씀에 실어서 인간에게 주셨다. 인간과 그렇게 커뮤니케이션을 한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의 도움을 말씀을 통해서 받게 되었다. 그말씀 은 곧 하나님이었기에 생명이었고 능력이었다. 보라 최초의 인간이 얼 마나 영광스러웠던가! 하나님의 형상이 빛나는 모습은 만물 위에 영광 스러웠다.그러나 어떻게 했던가 인간의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였다. 그리고 마귀의 말씀을 받아 복종한다. 이것이 바로 선악과의 사건이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단절이다. 그로부터 인간의 운명은 마귀가 지배한다. 조상 한 사람의 범죄로 모 든 후손이 죽음의 그늘에 나앉게 된 것이다. 인간 속에는 하나님이 축복이 임할 수 없었다. 대신 마귀의 선물이 채워지게 된다. 사람에게는 병이 왔고 가난이 왔고 미움과 다툼이 왔다. 툭하면 남을 원망하고 좌 절하고 절망하였다.이것이 본래 인간 자신 안에서 나온게 아니라 하나님의 결핍이요 마귀의 선물이었다. 한계에 빠진 이런 인간들이 의지할 대상은 세상의 것들뿐이었다. 세상의 재산과 권력을 의지하는 것이다.그것들에 모든 시간과 마음을 쏟 고 모든 정력을 다하다.
그것들을 가지거나 사용하는 것이 잘못된게 아니다. 그것들을 의지하고 그것들을 하나님처럼 경배하는 것이 잘못 된 것이다.그러한 세상의 물질들이 악한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것 을 악하게 사용하는 것이 문제였다. 이것은 마귀의 방법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선하게 사용하시지만 마귀는 모든 것을 악하게 사용한다. 하나님이 없는 인간의 마음은 악 이다.출발부터가 죄다. 결과적으로 평안도 기쁨도 없는 형버이요 죽음 이다. 그러니 죄에 빠진 인간이 세상의 아무리 좋은 것들을 얻어도 절 대로 그것으로 의로운 일을 할 수는 없다. 더욱 더 죄를 짓는데 사용 할뿐이요 하나님의 원수 노릇할 뿐이다. 인간은 왕노릇하기를 원한다. 누구든지 남의 밑에 있지않고 지배하는 자리에 있고 싶어한다. 그러나 죄인에게 왕노릇하라고 해보라.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죽음의 그늘에 있는 인간은 죽음으로 지배하려고 할 것이다. 모든 권력이나 재산이 더욱 죄짓는데 사용딜 것이고 하나님과 원수되는 일에 허비될 것이다. 권력과 재산이 클수록 폭군이 될 것이 요 악은 더해질 것이다. 히틀러는 모든 권력을 움켜쥔 뒤에 6백만의 유태인을 죽엿따. 2차대 전서 수천만 쏘련에서만 2천만을 죽게했다. 스탈린이 죽인 자기 나라 사람이 역시 2천만이 넘는다.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이 죽은 것이다. 김일성부자가 저지른 짓은 얼마나 혐오스러운 것인가! 권력자 말고도 유명하고 돈많은 사람들의 죄악은 말로 다할 수 없다. 엘비스 프레슬 리의 방탕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다. 이들이 신뢰한 것은 세상의 힘이요 이들의 출발점은 자신의 죄였다.
그러므로 절대로 이 방법은 사람을 유익하게 하지 못한다. 이러한 왕 노릇은 단지 죄의 왕이요 죽음의 지배일뿐이다. 누구든 구원받지 못한 인간에게 건강과 재산과 시간을 주어보라 반드시 그는 죄를 지을 것이다. 보라 역사가 그것을 여실히 증명하지 않았던가. 아무도 여기서 벗 어나는 사람은 없다. 한 여신이 인간을 사랑했다. 그와 결혼한다. 그녀는 제우스에게 자기 남편에게 영원한 생명을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영원한 젊음을 함 께 줄 것은 잊었다. 그냥 죽지 않을뿐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남편은 수백년을 살았지만 너무도 흉칙한 모습이었다. 이간이 불로초를 먹고 영원히 산다면 이 모습이 될 것이다.죄악 속에 영원히 산다. 이것이 바로 지옥이요 영원한 죽음이다. 참된 생명은 영원한 젊음이요 하늘의 기쁨이다.이것을 주기 위해서 그리스도는 사람이 되셨다. 우리들과 같아지심은 우리에게까지 낮아지 시려는 마음이다. 우리의 힘으로 감당 못할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다.우리는 병을 감당하지 못한다.미움을, 약함을, 절망을, 죽음을 감 당하지 못한다. 그러기에 그가 대신 짊어지셨다. 그래서 그가 그 악한 것들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이다. 이제 그리스도는 우리 삶의 방향을 바꾸길 원하신다. 우리가 신뢰하는 세상을 다시 세상에서 자신에게 돌릴 것을 원하신다. 이제 우리는 신뢰의 대상을 바꾸어야 한다.그리스도가 바로 신뢰의 대상이다. 그의 말씀을 믿고 그가 하신 일을 믿는 것이다. 그가 하신 일이 무엇인가 죽음의 그늘을 걷으신 것이다. 동시에 병과 가난과 미움으로 병든 마음을 치료하신 것이다. 1838년 자마이카의 노예들이 해방되었다. 그들은 커다란 관을 만들었다. 거기에 그들을 억압하던 물건들이 담겼다. 족쇄,채찍,쇠사슬,고문 기계,쓰던 모자.더러운 옷들이었다. 그들은 관을 땅에 묻으면서 과거 를 잊기 바랐다. 그래도 커다란 비석을 세웠다. "노예의 무덤"이었다. 그러나 그런다고 습관이나 의식도 죽은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훨씬 뒤에까지 살아 남아 있었다. 같은 일은 우리에게도 나타난다. 주께서 우리를 해방시키셨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옛습관과 의식에 눌려있다.
그리스도가 묻힐 때 무 엇을 했는가 우리의 굴레를 함께 묻은 것이다. 우리의 죄를 과거의 악한 습관을, 늘 불평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우리의 병을 , 우리의 약 함과 가난을, 비록 우리가 느끼지 못해도 이 사실을 인정하고 믿어야 한다. 그것이 그를 신뢰하는 것이다. "그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들을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 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더니"(엡2:2-3). 이 말씀이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 어떻게 했던가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 2:4-6) 여기의 시제는 모 두 과거이다.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함께 일으켰고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이 사실은 이미 완료된 것이다. 우리를 하늘의 왕으 로 그리스도와 함께 왕좌에 앉히셨다. 이것이 그가 우리와 같이 되신 이유이다. 우리를 자기와 같이 되게 하심이다. 그것이 우리가 누릴 일이다. 우리는 별안간 죽음의 그늘에 서 하늘로 들려 앉혀진 것이다.마귀의 노예가 별안간 하늘의 주인으로 만드러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통치하는 자가 된 것이다. 자신 의 운명을 지배하고 역사를 움직이여 나가는 존재가 된 것이다. 물론 자기 힘으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다.
그러나 문제는 노예의 의식이 아직도 살아있다는 사실이다. 아직도 옛사람의 의식구조 속에서 산다. 아직도 세상을 섬기며 마귀를 섬기고 있지 않은가! 아직도 병과 가난을 두려워하고 아직도 남을 미워하고 아직도 낙심하고 절망한다. 육신의 한계를 느낀다. 피곤해 하고 약하 다고 믿는다. 해방되었건만 아직도 마음은 노예요 아직도 노예의 습관 을 조금도 벗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믿음이 무엇인가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서 해 주신 일의 내용을 믿는 것이다. 무엇이 믿을 내용인가 많다. 그러나 가장 최상의 내용은 이것이다. 가장 복된 소식이 이것이다. 우리의 위치는 옮기워졌다. 자 기삼의 노예에서 지배자로 바뀐 것이다. 사망에서 하늘나라로 옮기셨다.이미 끝난 사실이다. 만약 누가 옮겨달라고 기도하면 그는 믿지 않는 자이다. 그는 신자가 아니다. 앞으로 무엇을 하겠다는게 믿음이 아니다. 이미 그리스도가 해 주신 일을 믿는 것이다. 앞으로의 문제도 여기에 근거해서 이미 해결된 것이다.우리는 이미 하늘에 앉혀진 사람들이다. 이 일을 하나님이 하셨다.
그렇다면 우리의 믿음이 무엇인가 우리도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현실은 어떻게 하려는가 그냥 내버려두어라. 노예의 사고와 입 장을 버리는 것이 우선이다. 고통의 밑바닥에서 사람들을 부르짖는다. 그러면 돈이 오고 도움이 오고 그리고 병이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수도 없지는 않다.그러나 우리는 고통 속에서도 먼저 우리의 위치를 확인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의식을 지옥으로부터 옮겨야 한다. 우리의 의식을 노예에서 지배 자로 바꾸어야 한다. 우리를 성질 나쁘고 비판적이고 부정인 상태에서 하늘의 사람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리하여 왕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돈도 도움도 병나음도 다 그 다음 의 일이다. 노예에게는 돈이 없다. 노예에게는 존경도 없다. 오직 고 통과 모욕뿐이다. 자비를 요청해도 여전히 그 수준의 도움 밖에 오지 않는다. 그러나 왕에게는 모든 것이 있다. 왕은 재산도 존경도 있다. 부하도 많고 돕는 이도 많다. 그는 왕이기 때문이다. 신앙 의식도 노 예가 아닌 왕임을 아는데서 시작한다. 그리스도가 우리와 같아지신 것은 우리를 그와 같아지게 하려는 것이다. 이미 그와 하나되지 않았는가 이 사실을 인정하라.
그래서 자신 이 특별한 존재가 된 것처럼 여기라. 그리스도의 모든 생명이 자기 속 에 들어와 있다고 여기라. 그리고 그 생명으로 통치하고 내 살믈 지배 할 수 있다고 주장하라.마치 내가 위대한 신앙인이 되고 그리스도의 새로운 능력의 사람인 것처럼 여기라. 크고 아름다운 생각을 하라. 비록 상황이 무엇이라도 마치 그리스도 가 지상 생활을 하는 것처럼 바라보라. 잠시 하늘의 처소에서 땅으로 내려와 일하는 것처럼 여기라. 그렇게 최면을 걸라는게 아니다.이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이미 앉혀진 사람이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생명으로 통치한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인 내와 연단과 아름다움이 있다. 베드로는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다."그러므로 이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 를 절지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벧후1:3). 우리의 위치는 하늘나라이다. 우리는 거룩한 백서이요 왕같은 제사장 들이다. 우리가 무엇을 걱정할 것인가하나님의 일을 하셨다는 사람이 돈을 걱정할 것인가 누구를 의지할 것인가 사람을 의지할가 돈을 의 지할까 무엇이 신뢰의 대상이 될까 단 하나, 예수 그리스도 아닌가! 그는 내 안에서 나와 하나가 되셨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처럼 생각하고 그리스도처럼 행동한다. 자.이제 세상 것들을 다 놓고 새롭게 일어나자.흑인들이 캐딜락을 매 달리고 중국인들이 돈에 매달리는 것처럼, 내 안의 그리스도를 신뢰하 자. 그래서 내 삶이 더 이상 땅에서 기는 벌레가 아님을 인정하자. 그리스도가 이미 고양시켜 놓은 우리의 삶을 그대로 인정하자. 하늘에 보좌를 가진 이들이여. 이 사실을 인정하자. 당신 속에 믿음이 있다. 무한한 지혜와 능력과 영광이 있다. 생명이 왕노릇을 그리스도처럼 사는 것이다. 사랑과 의로 왕노륵한다. 이 왕은 때때로 약해 보이기도 하고 손해 보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 속이는 자 같기도 하고 바보같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참으로 사는 자요 강한자요 모두를 유익하게 하는 사람이다. 이 왕은 참으로 지배한다. 자기의 마음과 삶을 , 자기의 운명을, 그리고 세상을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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