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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교회 (롬16: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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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70년대와 80년대에 경이적인 부흥과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다가 90년대에 들어와서 교회의 성장이 둔화되면서 많은 교회들이 성장은커녕, 교인수가 감소하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교회성장에 관한 세미나가 어디에서 열린다하면, 많은 목회자들이 그 세미나에 참석을 합니다.
왜냐하면 목회자들은 모두가 교회성장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장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회의 건강입니다. 교회는 큰 교회이건, 작은교회이건 규모에 관계없이 건강할수도 있으며, 병들었을 경우도 있습니다. 교회의 건강은 교인의 숫자나 예산의 규모에 관계가 없습니다. 교회는 성장보다 건강에 가장 큰 관심을 가져야합니다. 교회가 건강하면 성장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성장하라고 명령을 내릴 필요가 없습니다. 부모가 건강한 분위기속에서 영양가가 좋은 음식을 자녀들에게 제공하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성장할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잘 성장하지 못한다면, 무엇인가 잘못되었을것입니다.
1987년부터 1989년 초까지 18개월에 걸쳐서 미국의 보수적인 남침례교회의 목사들가운데
2,1000명이 교회로부터 해임을 당했다고 합니다. Neil Anderson교수에 의하면 미국교회의 20%정도 많이 살아있는 신앙공동체로 실질적인 열매를 맺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건강한 교회이며 35-50%는 역기능적 상태에 있어서 전혀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많은 교회가 선교와 섬김의 사역을 감당하지 못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다툼과 논쟁과 분열로 대부분의 에너지와 정력을 소비하고 있다는것입니다. 대부분의 교회는 마치 자동차에 후진 기어에 놓인듯이 전진은 켜녕, 후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무엇보다도 건강한 교회가 되기위하여 힘써야 할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의 마지막장인16장에서 로마교회를 섬기고 있는 동역자들을 일일히 기억하며 그들의 사랑의 수고에 감사하며, 그들에게 문안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러다가 바울은 갑자기 교회안에서 분열을 일으키며 교회를 파괴할수 있는 이단들, 사람들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죄와 허물없는 성자들의 공동체가 아니고 용서받은 죄인들의 공동체입니다. 그러하기에 어느 교회건 문제와 논쟁과 다툼이 없는 교회는 없습니다. 건강한 교회는 분쟁, 다툼이 생겼을더라도 교회적으로 더좋은 발전의 기회로 삼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병들었을때는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 그것을 감당할수 없습니다. 우리몸의 예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내 몸이 건강할 때 바이러스가 들어와도 내몸이 극복할수 있지만 내몸이 약해지고 쇄약할땐 병균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병들게됩니다. 문제없는 교회는 없습니다. 초대교회에 문제가 없었더라면, 바울의 서신이 쓰여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바울의 서신은 편지를 받는 교회의 문제에 대한 바울의 해답입니다. 로마교회에 어떠한 문제가 있었는지 우리는 알수없지만, 로마교회라고 이상적인 교회는 아니었습니다. 그 교회도 지금 어떠한 문제를 안고있던지 아니면 앞으로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있는것입니다. 특히 이단들이 숨어들어 순전한 성도들을 미혹할수 있는 가능성이 많기에 바울은 교회를 파괴할수 있는 사람들과 교회에 침투할 이단들에 대하여 로마성도들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첫째로, 바울은 교회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악한자로부터 떠나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7절에서 바울은 말합니다. "형제들이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자(신앙생활에 장애물을 놓는 사람들)를 살피고(조심하고) 저희에게서 떠나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받은 교훈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최후만찬을 제자들과 함께 나누시면서, 제자들이 하나되기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21-22절에 보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성도들이 그리스도안에서 화하며 사랑으로 하나됨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교훈의 말씀입니다. 에베소 4장 3절에도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님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했습니다. 주안에서 하나되라고 우리에게 말씀이 주어졌기에 우리는 교회안에서 불화와 분쟁을 일으키는 자들이 되어서는 아니될것입니다. 종교개혁당시에 마틴 루터가 부폐된 교회를 개혁하는 운동을 마틴 루터를 로마교황 리오 10세는 루터를 가르켜 하나님의 포도원을 망치는 야생멧돼지라고 불렀습니다. 루터는 하나님의 포도원인 교회를 망치는 사람이 아니었고, 부패된 교회, 하나님을 떠난 세속화된 교회, 타락한 교회를 개혁하고 순결케하는 운동을 벌린 하나님의 사람이요,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예언자였습니다. 부패되었고, 타락했던 중세기 로마카톨릭교회를 개혁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마틴루터와 요한칼빈과 같은 개혁자를 세우셨습니다. 교회를 개혁하는 일과 교회를 파괴하는 일과는 다릅니다. 교회를 분열시키고 파괴하는 일은 사탄의 일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사탄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될것입니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교회나 어떠한 공동체에서 이웃과 더불어 화목하지 못하고 자주 타투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자신과 화목하지못하고, 자기 자신과 다투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어느 40대의 남자분이 자기 아내와, 처가집 식구들과, 직장의 동료들, 그리고 교회의 다른 성도들과 원만한 관계를 가지지 못하고, 항상 불만스러운 관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크리스챤 상담가를 찾아가서 상담받던중, 자기도 모르게 상담가에게, "선생님! 내가 다른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 내가 나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은 아닌가 생각되어집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문제의 핵심을 찔렀던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 화목한 관계를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은 내가 나자신과 원만한 관계, 화목한 관계를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안에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신 사실을 잊어버리고, 자기 자신을 받아주지 못하고, 스스로를 학대하며, 스스로를 미워하며, 스스로에 대하여 부정적이며 비판적일때가 많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친절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 친절합니까 성서는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은혜와 사랑, 용서, 인내의 자세를 가지고 대하라고 하는데,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 은혜와 용서, 인내의 선물을 주고 있습니까 다른 사람에 대하여 은혜와 용서, 인내를 가지고 대하기 위하여는 먼저 나 자신에 대하여 은혜와 사랑, 용서, 그리고 인내의 자세를 가지고 대할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교회안에서 분쟁을 일으키며, 신앙의 본이 되지 못함으로 다른 사람의 믿음성장에 거침돌이 되는 사람들을 떠나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그들과 함께 더불어 싸우라고 하지 않고 사탄의 일을 하는 사람들로부터 떠나라고 말합니다. 교회안에서 분쟁하며 파당을 짓고, 악성 소문을 퍼트리며, 이단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과 변론하거나 토론하며 접촉하다가 나도 모르게 악한 영향을 받아 염려가 있기에 그들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여호와의 증인을 비롯한 많은 이단들은 아파트나 개인 주택의 대문에 교회문패가 붙어있는 집만 골라찾아와 접촉하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런 사람들과는 아예 말상대도 하지 말고 문을 닫아야만 합니다. 잘못된 교리와 거짓으로 가득찬 가르침을 가진 이단들과는 접촉을 하지 않는 것이 그들을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시편 1장에도 보면 복있는 사람을 가리켜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라고 말합니다. 메튜 헬리라는 성서주석가는 말하기를 "선악과를 따먹지 않으려면 선악과 근처에 가지 말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훌러라는 분은 말하기를 "마귀와 거래하고 싶지 않으면, 마귀의 상점에 가지 말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간혹 성도들 가운데, "나는 믿음이 있고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어떤 곳에서 누구를 만나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것은 매우 어리석고도 위험한 생각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과신하면 안됩니다. 인간은 너무나 약하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넘어지고 실수하기가 쉽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그러나 우리안에는 아직도 인간의 옛사람이 우리속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악을 이길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 있다면, 우리를 미혹시키는 것들을 보지도 않고 만지지도 않고 가까이 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다른 사람에 대한 험담을 시작하면, 우리는 그 사람과의 대화를 즉시 그만두어야 합니다. 그는 나에게 찾아올것이 아니라 그가 험담하는 상대방에게 찾아가지 말아야 할것입니다. 만일 우리 주변에 다른 사람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경건치 못한 비방을 그만두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험담 때문에 파괴되고 있습니까 때로는 나도 그처럼 쓰레기 같은 이야기들을 듣기를 원할때가 있는데, 그것은 내속에도 더러운 본성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하여 험담하고 싶은 유혹이 일어날 때, 그 사람을 위하여 오히려 기도할 수 잇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다른 성도에 관한 험담을 할 때 내가 그말을 중단시키지 않고, 그냥 듣기만 해도 그것은 죄가 됩니다. 잠언 17:4 절에 보면 "악을 행하는 사람은 사악한 말에 솔깃하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중상하는 말에 귀를 기울인다." 텔포트신학교의 닐 앤더슨교수가 큰 기업체의 간부직을 사임하고 신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엔더슨은 어느날 다니던 교회의 성가대 지회자와 함께 골프를 쳤다고 합니다. 그때 그는 교회의 목사님에게서 감명을 받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지휘에게 존경하는 목사님과 함께 일히는 것이 즐겁지 않냐고 물었는데, 지휘자는 "나는 솔직히 말해서 목사님과 함께 일하는 것을 견딜수 없습니다."라고 하면서 18홀을 도는 동안 지휘자는 계속하여 목사님의 온갖 작은 허물들을 들추어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기전에 엔더슨은 그러한 허물들을 전혀 눈여겨 보지 않았는데, 지휘자의 말을 듣고보니 그럴듯하여, 그후 몇 달 동안 목사님을 미워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엔더슨은 결국 목사님을 찾아가서 그 동안 그가 목사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했음을 고백했다고 합니다. 그 목사님은 계속하여 지금도 훌륭한 목회를 했지만 성가대 지휘자는 어느 여인과 함께 도망쳐 버렸다고 합니다. 닐 앤더슨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우리는 다른 사람이 찾아와 다른이들의 험담을 할 때 5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1)나에게 이말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2)어디에서 그 정보를 얻었습니까
3)그 정보를 직접 규명해 보았습니까
4)그것이 사실인지 개인적으로 조사해 보았습니까 5)내가 조사해본후에 당신의 말을 인용해도 됩니까라는 질문해 해보아야 할것입니다. 바울은 교회안에서 분열을 일삼고 다른 사람의 신앙생활에 장애물을 놓는 사람들을 조심하고 그들을 멀리하며, 그들에게서 떠나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을 우리가 달리 해석을 한다면, 교회안에서 평화를 만들며, 화목케하는 사람들과 친교를 가지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상처받은 사람을 위로하기를 기뻐하며, 환자를 심방하여 중보기도하며,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베풀며, 어려운 일에 뛰어들어 봉사하기를 즐거워하는 사람들과 교제를 자기며 그러한 사람들과 영적인 교제를 가짐으로 믿음의 성장을 가져오게 하라는 말씀으로 우리는 해석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항상 다투고, 분쟁하고, 분열하는 교회를 다니다보면, 나도 모르게 나쁜 습성을 배우게 됩니다. 개인뿐만 아니라 신앙공동체인 교회도 개성과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싸우는 교회는 항상 싸움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평화스러운교회, 성도간에 화목한 교회, 좋은 교회를 선택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이사간 교인들에게 집에서 가까운 교회를 다니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이헐게 말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좋은 교회를 다니라고 말해주어야 합니다. 교회를 선택할 때 내집에서 가까운가, 먼가를 기준해서는 안됩니다. 미국 하버드대학이나 영국의 켐브리지대학에서 전액 장학금과 생활비까지 주면서와서 공부하라고 하는데, 너무 멀어서 안가겠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멀어도 서울대학병원이나 삼성의료원으로 갑니다. 병이 고쳐진다면 거리가 문제가 아닙니다. 좋은 대학이나, 병원, 회사는 멀어도 가는데, 교회만큼은 가까운데 가겠다는 것은 잘못입니다. 대전의 과학기술원에 일하는 사람들 가운데 서울의 분당에 있는 어느 교회를 다니는 분들이 상당히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두 번째, 바울은 자기 중심적이 아니고 그리스도 중심이어야 한다고 합니다. 18절에 보겠습니다.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smooth talk, 그럴듯한 말)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라." 교회안에서 분쟁을 일삼고, 다른 성도들의 믿음성장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의 특징은 그럴듯한 말, 간사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전한 성도들의 마음을 미혹하여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자기를 지지하는 파당으로 만듭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자기의 배만 섬긴다고 했습니다. 배만섬기는 사람이란 욕심에 사로잡혀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신앙생활도 자기의 권위, 자기의 명예, 자기의 정욕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만 사는 사람이 자기의 배만 섬기는 사람입니다. 교회안에도 자기의 정욕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파당을 짓고, 다른 성도를 비방하며, 교회를 파괴시키는 자기의 배를 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야고보서 4장 1절에 보면 "너희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라고 말합니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영국의 죠지 버나드쇼에게 한 신문사에서 현대의 위대한 작가 열두사람을 말해달라고 했더니 즉석에서 대답하기를 '첫째 죠지 버나드 쇼,둘째 죠지 버나드 쇼,셋째 죠지 버나드 쇼하면서 열두번이나 자기 이름을 말했다고 합니다. 그는 자기중심적이며 철저하게 이기적인 사람으로 자기의 배만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세 번째, 바울은 선한일은 행동을 함에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9절을 보겠습니다. "너희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인하여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데 지혜롭고 악한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선한데 지혜롭다는 말은 어느 영어성경에는 선에 전문가가되며, 악에는 순진한 사람이 되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악한 일에는 순진한 사람이 되고 선한 일에는 전문가가 되어야겠습니다. 선한 일에 전문가가 되기 위하여는 경건에 이르는 연습과 실습을 해야합니다. 음악가나 미술가, 운동선수가 되려면 많은 실습과 연습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실습과 연습과 훈련을 통하지 않고, 음악가나, 미술가, 운동선수가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선한일에 전문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생활을 하여야 하지만, 말씀을 실천하는 실습과 연습을 해야만 선한 일에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선한 일은 이론적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고 현실의 삶에서 선한 일을 행하는 사람들을 보고서 배운다고 합니다. 부모나 스승이나 멘터의 삶에 나타나는 선한 행동을 보고 그와 같이 행동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하기에 가정의 부모, 학교나 교회의 교사들, 회사의 상사, 교회의 교역자와 장로님들은 다른 사람에게 본보기가 되는 삶을 살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사회에 선한일에 전문가들이 많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영국의 켐브리지 대학 경영대학원을 MBA과정을 수석으로 졸업한 젊은 청년이 굴지에 회사에서 간부로 일하게되었습니다. 그가 회사에서 일하면서 보니 회사의 운영방침이 전혀 마음에 들지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회사가 시정해야 할 운영방침을 50개의 항목으로 기록한 후 사장 집무실을 약속도 없이 찾아가 사장에게 회사가 이것을 고쳐야 할 50개의 항목을 지시했습니다. 사장은 인내심을 가지고 그의 불평을 다 들은 다음 말하기를, "내가 앞으로 3주의 시간을 줄 터이니 , 자네가 말한 시정해야 할 점 50개의 회사 운영방침에 대한 더 좋은 대안을 기록하여 나에게 가져오게"하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이 그가 불평한 50개의 회사 운영방침보다 더 좋른 정책을 생각해보니 생각이 전혀 나지 않더랍니다. 불평은 했는데 더 좋은 대안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3주 후에 사장이 그 젊은 간부를 불러, 더좋은 대안으로 제시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청년간부는 솔직하게 자기가 불평은 했는데, 더 좋은 대안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사장에게 고백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불평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물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비판하기보다는 우리 크리스챤은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창의적인 대안으로 제시하는 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 더 좋은 대안, 긍정적이며 창의적인 대안이 없으면 불평하지 말어야 할것입니다. 20-21절은 읽겠습니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 지어다." 예수께서 우리를 죄와 사랑의 권세로부터 자유케하시고 영원한 구원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탄과 그의 추종자들은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그날, 최후의 심판이 있는 그날에 영원한 불의 심판을 받게될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는 말세때에 이단들, 교회내에서 분쟁과 미혹시키는 이러한 시대에 우리는 그들로부터 떠나고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며 선한일에 전문가가 되러 날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 가시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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